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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4년 3월 16일 (사순절 2주) 예배준비 노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2:1-4a)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시편 121)

1.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2.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3. 주님께서는, 네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5.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6. 낮의 햇빛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빛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7. 주님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8. 주님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로마서 4:1-5, 13-17)

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17)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이다.

7.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을, 너는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9.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

1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 안에서 느낀 것을 요약하면, 변변찮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베푸시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를 압축해서 선포하신 예수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한 3:16)를 전체 주제로 삼습니다.

 

① 구약(창세기 12:1-4a)

오늘 구약의 주인공은 아브람입니다.

구약의 알맹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내 모든 터전을 버리고 떠나기입니다.

 

75살이나 먹은 노인이면 자기 삶의 개혁을 꿈꾸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익숙해진 그 편안함을 버리기란 어려운 나이입니다.

몸도 굳어지고 마음도 굳어질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귀가 굳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주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매우 당황스런 말씀을 들었지만, 아브람은 굳은 몸을 움직여 기어이 길을 떠납니다.(1절, 4절)

모든 편안하고 익숙한 생활의 시스템, 내 모든 기반을 버리고 떠납니다.

불편해도, 두려워도 떠납니다.

그분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한 아브람은 마침내 어마어마한 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복(축복)”이라는 단어가 5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복은, 온 누리 민족들에게 복덩이가 된 사실입니다.(2절)

75살에 출가하여 175살에 죽기까지, 아브라함의 100년 인생길은 복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아니 그 뒤로 두고두고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복덩이가 되었습니다.

 

② 시편(121편)

구약의 주인공 아브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면,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도움을 받았다고 노래합니다.(1-2절)

구체적으로 그 도움은 지켜주심입니다.

“지키신다(지켜주신다)”는 구절이 7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는 말씀에서 기운찬 믿음이 느껴집니다.(8절)

 

③ 서신서(로마서 4:1-5, 13-17)

서신서본문에서 바울은 오늘 구약본문의 아브라함을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알맹이는 “믿음”이요, “은혜”입니다.

이 가운데 “약속”이라는 단어가 5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구약에서 “복”을 받고, 시편에서 “도움(지켜주심)”을 받았다면, 오늘 서신서본문에서는 “약속”을 받습니다.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된다는 약속입니다.(13절)

물론 “믿음”만이 이 약속을 보장하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약속이라는 든든한 믿음! 이 하나면 충분합니다.(17절)

 

④ 복음서(요한복음 3:1-17)

구약에서 “복”을 받고, 시편에서 “도움(지켜주심)”을 받고, 서신서에서 “약속”을 받았다면, 오늘 복음서본문에서는 무엇을 받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생(구원)”입니다.(15, 16, 17절)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사랑, 외아들을 주신 그 “사랑”입니다.(16절)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 그 사랑을 느낀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5절)

 

⑤ 정리

내 인생의 태클인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의 걸림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디딤돌이었습니다.

말씀은 마치 걸림돌처럼 늘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드십니다.

저 아래 막장 끝까지 가게 하시려나 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나를 훨훨 날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실 줄이야!

 

문제는 들을 귀입니다.

아무리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말씀이어도, 그 사랑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귀!

구약본문의 아브람은 늙었어도 그분 음성에 민감하게 열린 귀가 있었습니다.

복음서본문의 니고데모에게는 그런 귀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귀가 있나요?

 

니고데모는 아브람과 달리 예수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면 엉뚱한 다리만 긁고 있는 꼴입니다.

아브람과 비교해보진 않았지만, 가진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가진 게 많고, 아는 게 많으면, 간절함이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남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핀잔을 맞습니다.(10절)

 

그런데 꽉 막힌 줄 알았던 니고데모의 귀가 아주 막힌 건 아니었나봅니다.

그 뒤로 니고데모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밤에 예수님을 찾았던 이가, 큰 용기를 내어 예수를 변호합니다.(요한 7:45-52)

마침내 십자가형을 당한 중범죄자로 인생을 마감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기 위해 큰돈을 바쳐 동행합니다.(요한 19:38-40)

부디 우리 귀가 진리의 말씀 앞에서 조금이라도 열려 있기를 빕니다.

 

⑥ 나머지

*구약본문(창세기 12:1-4)의 주제인 ‘떠나라’라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지난 주 구약의 ‘먹지 말아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먹으면 죽는다(먹지 않으면 산다)’와 ‘떠나면 복(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이 대비가 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먹지 말아라’와 ‘떠나라’의 공통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하와), 그리고 아브람을 그리 불편하게 만드신 까닭은 바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역설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는 사순절 1주 말씀과 2주 말씀이었습니다.

사순절은 전통적으로 금욕과 절제의 계절입니다.

온갖 탐스러운 먹을거리, 볼거리, 놀거리로부터 떠나야 할 때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계절 ‘먹지 않기’와 ‘떠나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고받는 사랑 가운데 우리는 “생명”을 얻고 “복”을 받았습니다.

 

** 수도원생활의 원리 가운데 “넘어지고, 일어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케이트 처음 배울 때, 자전거 처음 배울 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 결심이 허물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스케이트를,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고 있는 나를 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끊었다가 실패하는 건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약한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낙심하지만 이내 다시 일어섭니다.

그 순간, 내 안에 스며드시는 하나님 사랑이 느껴집니다.

제자는 하루 또 하루 이런 설렘으로 삽니다.

 

 

 

[말씀 동시] 니고데모가 물었네 (전아침 지음. 향린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78호)

니고데모가 물었네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지”

예수님 말씀하셨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시 살아나 하나님 세상으로 가지”

 

우리는 알았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예수님을 통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야.

 

그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하나님 세상으로 갈 수 있지.

 

 

 

[말씀 시조] (요한 3:1-17)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78호)

바리새 니고데모 한밤중에 찾아오니

신령한 중생도를 예수께서 펼치시네

독생자 보내신뜻을 십자가에 새기리

 

 

 

[말씀 서예] (오세주 목사님 작품. 『성실문화』78호)

 

 

 

 

 

[말씀 노래] (요한복음 3:1-17) (홍의종 지음. 『성실문화』78호)

[노랫말]

1.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갈 수 없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 들어갈 수 없다

2.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해설]

예수님과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중 거듭남(3,5절)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16절)을 중심으로 노래를 만들어 보았다. 태어날 때 모든 존재는 순전하다. 그래서 아이는 순수함의 상징으로 사용되나 보다. 거듭나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니 순수한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이 노래를 불러보면 어떨까?

 

[악보] 누구든지 (홍의종 지음, 2014년 1월 10일)

음원을 듣기를 원하는 분들은 다음 카페의 ‘성서일과사랑방’으로 가셔서 노래자료실에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동화] 영구가 말씀놀이 맛에 푹 빠졌어요!

 

영구는 하루 종일 제 방에 틀어박혀 이리저리 궁리를 했어요.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머리를 짜냈지요.

그리고 드디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하나님 방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똑, 하나님, 저 질문이 있어요.”

 

“오, 우리 영구 왔구나.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질문이냐?”

 

“저, 지난주에 저희 교회학교 선생님께 배웠는데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시던데... 맞나요?”(벧후 3:8)

 

“오 그렇게 배웠구나.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고?”

 

영구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리고 입술에 잔뜩 힘을 주고 하나님께 여쭈었지요.

 

“그럼 하나님, 하나님께는 1억년이 정확히 얼마나 긴 시간인가요?”

 

“글쎄다, 계산하기 복잡하니까 대략 1분과 같다고 생각하렴.”

 

그러실 줄 알았다는 듯이 영구의 눈빛이 불을 뿜기 시작하네요.

 

“그럼 1억 원은 하나님께 얼마나 큰돈인가요?”

 

“허허, 그 녀석 참, 1억 원은 내게 1원과 같단다.”

 

영구가 속으로 외쳤어요.

 

'걸려들었어, 걸려들었어, 드디어 하나님이 내 꾀에 걸려들었어!'

 

영구의 콧구멍이 1원짜리 동전만큼 커졌어요.

영구의 눈동자는 5백 원짜리 동전처럼 커지고요.

 

“하나님, 그럼 제게 1원만 주실래요?”

 

영구는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짜릿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

갑자기 하나님께서 껄껄 웃으시네요?

 

‘뭐지? 이 웃음은 뭐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듯한 이 오묘한 웃음은 도대체 뭐지?’

 

영구가 마구 당황하기 시작하네요.

이윽고 하나님께서 개구쟁이 표정을 지으시며 대답하셨어요.

 

“오냐 알았다. 그럼 딱 1분만 기다리렴, 푸하하하∼”

 

하루 종일 궁리했지만 오늘도 역시 하나님께 KO패를 당했네요.

영구는 구시렁구시렁 넋두리하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셔. 천지를 짓는 일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나랑 매일 벌이는 말씀퀴즈놀이도 계속 이기시고, 심지어 이런 개구쟁이 농담 솜씨도 이렇게 능수능란하시다니!’

 

영구는 요새 매일 하나님과 퀴즈놀이를 하는 중이랍니다.

정식 이름은 말씀퀴즈놀이, 줄여서 말씀놀이!

지난주일 예배말씀인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였죠.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처음 읽을 때는 꼭 무슨 수수께끼 놀이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반복해서 읽다보니까, 그 질문과 대답 속에 무슨 심오한 진리의 말씀이 담기는 것 같았죠.

특히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이 대단한 말씀이 담겨 있었거든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아하, 이렇게 심오한 진리의 말씀나무도, 이런 말씀놀이 동산에 심을 수 있는 게로구나!’

 

비록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지만, 저 정도 말씀놀이 쯤은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유대 사람의 지도자라는 니고데모 같은 사람의 질문도 딱 어린아이 수준 같았거든요.

 

‘니고데모만큼만 질문하면 하나님께 야단맞지는 않겠지? 아니 오히려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실지도 몰라. 나는 초등학생이니까!’

 

그 뒤로 영구는 매일매일 성경말씀을 읽으며 재치 있는 질문을 만들어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중이죠.

그날 밤 영구는 창세기 12장 말씀을 열심히 읽다가 거기서 질문거리 하나를 찾아냈어요.

그리고는 이튿날 다시 하나님 방을 찾았습니다.

 

“똑똑똑, 하나님 저 또 왔어요.”

 

“옳거니, 우리 영구가 왔구나.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재미난 질문거리를 가져왔을꼬?”

 

“오늘 질문은요, 어제랑 달리 좀 심오한 건데요, 아브람 이야기예요. 창세기 12장 첫머리에 나오는데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셨잖아요. 혹시 기억나시나요?”

 

“암, 기억나고말고. 그런데...?”

 

하나님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셨어요.

하나님의 가슴이 영구의 말씀질문 때문에 두근두근 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주일 저희 교회학교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요, 그 당시는 지금부터 4,000년 전 아주 오랜 옛날이라, 경찰서도 없고 파출소도 없고,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기 때문에 집과 고향을 떠나면 무사히 살아남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던데요, 아브람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젊은이도 아니고 75살이나 된 할아버지가요. 저는 그게 굉장히 궁금해요 하나님!”

 

하나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네요.

 

“우리 영구 말씀질문이 날이 갈수록 예리해지는구나. 좋은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브람은 내가 준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길을 떠날 수 있었단다. 왜 아브람이라고 고민이 없었겠니? 더구나 노인의 몸으로 하루아침에 집과 친족들을 떠나는 것은 매우 불안하고 어려운 일이었겠지.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내가 준 약속을 굳게 믿는 믿음이 있었단다. 그래서 그 길을 떠났고, 마침내 크나큰 복을 받고, 또한 많은 이들에게 큰 복덩어리가 될 수 있었던 게지.”

 

“그렇지만요 하나님,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요, 사람의 귀는 딱 무능한 독재자의 귀 같아서요 자기가 좋아하는 말, 아첨하는 말만 잘 들리고,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은 잘 안 들리게 되어 있다던데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인이라 귀도 어두울 텐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떠나거라!’ 하시는, 죄송합니다만, 그런 어처구니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말씀이 귀에 들렸던 것일까요? 그게 참 궁금해요 하나님!”

 

“참 좋은 질문이다. 영구야, 반복하는 말이지만, 네 질문의 답은 바로 믿음이란다. 아브람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믿음이란 말이다, 바로 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뜻하지! 가족이나 친척, 내 집과 재산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는, 그렇게 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 즉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내 명령이 귀에 들리는 법이란다! 그런 믿음의 사람은 내가 아무리 작게 얘기해도 그 소리가 환하게 귀에 들리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아직도 영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네요?

아무래도 초등학생에게는 좀 어려운 말씀인가 보죠?

 

“그러면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사람이, 다른 것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생길 수 있나요? 저도 그런 믿음이 있으면 참 좋겠거든요?”

 

“옳거니! 우리 영구 질문이 점점 무르익어가는 걸? 믿음이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게 아니란다. 그건 내가 주는 선물이거든! 좀 어려운 말이지? 그런데 성경말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는데 기억나느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즉 영구 네가 지금처럼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읽다보면 자연히 귀가 열리게 되고 내가 네게 주는 것들이 고스란히 네 귀에 들리게 될게다.”

 

“그렇지만 하나님, 제가 아브라함 할아버지처럼 귓구멍이 크지 않고, 바늘구멍처럼 작다면 어떡하죠? 아브라함 할아버지랑 비교하면 제 믿음은 그만큼 밖에 안 되거든요.”

 

하나님께서 또 한 차례 껄껄껄 시원스레 웃으시네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해주십니다.

 

“영구야, 어제 우리 나눈 대화를 그새 잊었느냐? 내겐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단다. 내겐 아무리 큰 1억 원도 1원 같고, 반대로 1원이 1억 원 같단다. 1억 원을 바쳐도 1원만큼 보이기도 하고, 작은 어린이가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산더미만한 식량창고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 그러니 바늘구멍만한 귓구멍도 내겐 코끼리랑 기린이 나란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동굴 입구처럼 크단다. 이제 겨자씨 한 알만큼 작은 믿음이 내게 얼마나 큰 믿음으로 보이는지 알겠느냐?”

 

“아하 그렇군요. 그런 신비로운 이치가 있었군요. 하나님 고맙습니다. 내일 또 재미난 말씀놀이 질문거리 가져오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영구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 얼굴처럼 환하게 빛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영구의 얼굴보다 한 뼘 더 환해집니다.

영구가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영구의 믿음이 자랄 때마다, 하나님 마음은 그만큼 더 환해지십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밤]

오늘 말씀동화 맨 앞부분 하나님과 나누는 1억 원, ... 퀴즈 이야기는 오래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어서 아쉽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