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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4년 3월 30일(사순절 4주) 예배준비 노트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상 16:1-13)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내가 이미 그를 버렸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냐? 너는 어서 뿔병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거라. 내가 이미 그의 아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한 명 골라 놓았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내가 어떻게 길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암송아지를 한 마리 끌고 가서,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다고 말하여라.

3. 그리고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내가 거기에서 너에게 일러주겠다. 너는 내가 거기에서 일러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이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니, 그 성읍의 장로들이 떨면서 나와 맞으며 물었다.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좋은 일이오. 나는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소. 여러분은 몸을 성결하게 한 뒤에, 나와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갑시다." 그런 다음에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만은, 자기가 직접 성결하게 한 뒤에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9. 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런 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다 온 겁니까?" 하고 물으니, 이새가 대답하였다.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 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였다. "어서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시오. 그가 이 곳에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소."

12. 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 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에베소서 5:8-14)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2. 그들이 몰래 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13. 빛이 폭로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14. 드러나는 것은 다 빛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서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어 주실 것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9:1-41)

1.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4.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땅에 침을 뱉어서,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그에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갔다.

8.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인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하였다.

9. 다른 사람들 가운데는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또 더러는 "그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11. 그가 대답하였다.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소.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소."

12. 사람들이 눈을 뜨게 된 사람에게 묻기를 "그 사람이 어디에 있소?" 하니, 그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먼 사람이던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15. 바리새파 사람들은 또다시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신 다음에 내가 눈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말하기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였고, 더러는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표징을 행할 수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

17. 그들은 눈멀었던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18. 유대 사람들은, 그가 전에 눈먼 사람이었다가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마침내 그 부모를 불러다가

19. 물었다. "이 사람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런데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다 큰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가 자기 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 부모는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대 사람들이 이미 결의해 놓았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그 아이가 다 컸으니 그에게 물어보라고 말한 것이다.

24.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멀었던 그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서 말하였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우리가 알기로, 그 사람은 죄인이다."

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6.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네게 한 일이 무엇이냐? 그가 네 눈을 어떻게 뜨게 하였느냐?"

27. 그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하였는데, 여러분은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다시 들으려고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말하였다. "너는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30.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어주시는 줄을, 우리는 압니다.

32.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하였다는 말은, 창세로부터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34. 그들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완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났는데도,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그리고 그들은 그를 바깥으로 내쫓았다.

35.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물으셨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그가 대답하였다. "선생님,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38.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 절하였다.

3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못 보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은 서신서본문인 에베소서 5장 8절의,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성서일과 4본문 중에서 자주 눈에 띈 단어는“눈”과 “빛”, 그리고 “죄”입니다.

 

① 눈

눈의 역할은 보는 일입니다.

먼저, 구약본문의 사무엘은 중심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사무엘의 눈에는 엘리압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 들어온 것입니다.(7절)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삼상 16:7)

 

그러다가 마침내 막내둥이 다윗을 만납니다.

본문은 다윗을 가리켜 눈이 아름다운 소년이었다고 합니다.(12절)

그리고 그 눈은 나날이 빛났을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다윗을 계속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13절)

 

그리고 복음서본문의 주인공은 바로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입니다.

기나긴 본문 안에 그의 눈 뜨게 된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를 의심하는 바리새인들이 점점 더 눈이 어두워져가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은 육의 눈에 이어 영의 눈까지 열려 주님을 주님으로 뵙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나면서부터 깜깜했던 그의 눈이 나날이 빛나는 게 느껴집니다.

 

② 빛

눈이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덕분입니다.

영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은 중심을 보게 하고, 빛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5절)

 

그리고 오늘 서신서본문 역시 우리가 빛이라는 사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에베 5:8)

 

(야고 1:17, 계 21:23, 특히 요한 1:4-9절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 요한 1:1-9절은 토요일 매일성서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 1:5절 말씀은 오늘 서신서본문인 에베 5:1-8절과 비교하며 읽어봅시다.)

빛의 근원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빛으로 낳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답게” 사는 일은 무엇일까요?

 

 

③ 죄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죄(죄인)”라는 단어가 무려 12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안식일에 병 고친 일을 두고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주장과, 예수님의 뜻과 달리 나면서부터 눈먼 것이 죄 때문이라는 바리새인들의 주장(34), 그리고 스스로 지금 본다고 생각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죄가 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그러고 보니,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은 죄를 바로 볼 수 있는 삶입니다.

즉 눈을 뜨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껍데기가 아니라 중심을 보고 사는 것 말입니다.

중심을 보는 사람은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가깝게 살 수 있습니다.

빛의 열매를 거두며 산다는 말입니다.(에베 5:9)

그러므로 중심을 보는 사람의 눈은 죄와 의를 가릴 수 있습니다.

 

 

④ 정리

오늘도 세상이 뿌옇습니다.

세상이 온통 황사, 초미세먼지 투성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다 우리 인간들의 탐욕, 과욕 탓입니다.

 

정치경제외교, 입법사법행정 총체적으로 혼미한 이 나라 꼴을 보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다 내 탓입니다.

눈 어두운 내 탓입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요한 9:7)

오늘 우리 교회가 실로암교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시대를 사는 맹인 같은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껍데기만 보는 우리, 더욱이 영의 눈은 깜깜절벽이니 말입니다.

 

진흙이 꽉 찬 답답한 내 눈을 실로암에 가서 씻듯이, 교회는, 예배는 말씀으로 우리 눈을 씻어 줍니다.

그리고 그 이름 실로암처럼 우리를, 우리 눈을 흐리게 만든 저 혼탁한 세상으로 다시 보냅니다.

말씀을 받은 우리는 모두 이 혼탁하고 위태로운 사울 투성이 세상에서 사무엘과 같은 예언자(預言者)가 되어야 합니다.

영의 눈을 열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빛의 자녀답게”, 주님의 자녀답게, 중심을 볼 수 있는 주님의 눈으로 이 시대의 죄와 의를 직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골라놓으신 새 희망을 기어이 찾아내어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 시대, 이 나라 구석구석의 작고 볼품없는 다윗들을 계속 감동시켜 주실 것입니다.

 

 

⑤ 나머지

*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요한 9:16, 29, 30, 33)

최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외국에서까지 인기라고 합니다.

별에서 온 그대... 그는 꽤나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은’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분, 존귀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못 알아보고 홀대하는 바리새인들이 참 답답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제대로 못 알아보는 건 지금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 분을 뵙기만 해도, 그분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이 정상일텐데...

성찬을 대할 때도, 말씀을 대할 때도, 작고 작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우리 안에 그런 설렘이 드무니 말입니다.

 

** ‘기름부음’도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구약본문과 시편본문입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삼상 16:13)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편 23:5)

 

기름부음의 의미가 여럿이겠으나, 특히 오늘은 거기서 ‘빛’이 느껴집니다.

오늘 주제 때문인지, 향기 뿐 아니라 강렬한 빛, 잔잔한 빛이 느껴집니다.

다윗이 오늘 시편을 지어 부르면서 어린 시절 사무엘로부터 받았던 그 기름부음을 기억했을까요?

아무튼 다윗은 두고두고 이 노래 부를 때마다,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이 대목을 노래할 때마다 그 아름다운 눈이 더욱 반짝반짝 빛났을 것입니다.

 

*** 침, 진흙, 실로암 연못물을 읽으며 지난주 복음서본문의 야곱의 우물이 기억났습니다.

비교하며 읽으니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과 실로암 연못,

죄 많다고 여기는 여인과 맹인,

그리고 ‘내가 그다’하시는 예수님 말씀입니다.(요한 4:26 / 9:37)

 

밤 기도회 때 큰 아이가 질문합니다.

그냥 말씀으로 고치시지, 왜 구태여 흙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눈에 바르고 실로암까지 가서 씻게 하셨을까요?

몇 개 생각이 떠오릅니다.

1) 죄를 씻는 느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죄라고 생각하는 당사자와 우리의 편견을 씻는 느낌입니다.

2) 안식일에 일 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주시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태여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표현한 것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14절)

 

아무튼, 안식일에 표적을 행하신 것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가운데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어찌하여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요한 7:19)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몸 전체를 성하게 해주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분개하느냐?(23절)

겉모양으로 심판하지 말고, 공정한 심판을 내려라.(24절)

무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해도, 이분이 하신 것보다 더 많은 표징을 행하시겠는가?”(31절)

 

**** 시 23편은 다윗의 노래지만,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노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 동시] 믿음 [명암교회 중등부 3학년 김현서 지음. 『성실문화』 78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믿지 않는 바리새인처럼

이 세상의 사람들은

왜 서로 믿지 못할까

작고 작은 자존심

깨져버린 존중과 신뢰

왜 사람들은 마음 합쳐

사이좋게 살지 못할까

 

 

 

[말씀 한시] 신안(神眼)이 열려 수 천 곡의 찬송을 지었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8호]

眼盲跌路衝石壁 (안맹질로충석벽)  앞 못 보는 맹인은 길에서 넘어지고 돌벽에 부딪치며

不見電視最不幸 (불견전시최불행)  텔레비전도 보지 못하니 제일로 불행한 사람

又加求乞爲乞丐 (우가구걸위걸개)  게다가 거지 되어 구걸하며 지냈다.

和泥洗池卽得明 (화니세지즉득명)  진흙을 눈에 바르고 연못에서 씻었더니 그 시로 눈이 밝아졌다.

十字女士幼爲瞽 (십자부인유위고)  크로스비(十字) 여사는 어려서 앞을 못 보게 되었으나

迎接救主神眼通 (영접구주신안통)  구주를 영접하고 신안(神眼)이 열려

作詩靈感數千曲 (작시영감수천곡)  영감 받아 수 천 곡의 찬송을 지어 부르니

蕩子悔歸開目中 (탕자회귀개목중)  탕자들이 눈이 열려 주께로 돌아오고 있다.

 

 

[말씀 시조]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날 때부터 눈먼 걸인 안식일에 눈을 뜨니

뜬눈 맹인들이 왈가왈부 말이 많다

이 눈도 열어주소서 그리스도 예수여

 

 

 

[말씀 서예] 시 23:1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8호]

 

 

 

 

 

[말씀 노래]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 78호]

날 때부터 소경인 나를 주님 찾아오셨네 / 주님을 만난 뒤로 난 눈을 떠 보게 되었네

침 뱉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시고 / 실로암 물가에서 씻으라시네 눈을 뜨라 하시네

실로암 보냄 받았네 실로암 주 위해 살리 / 실로암 보냄 받았네 실로암 주 위해 살리

 

[해설]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눈을 뜨게 된 소경의 이야기이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진정한 눈 뜸은 보냄 받은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소경의 입장에서 주님을 만나 눈 뜬 사건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곡을 붙였다.

 

[악보] 날 때부터 소경인 나를 (2014년 1월 16일)

 

 

 

 

 

 

[말씀 동화] 우리 심청이 눈이 활짝 열렸어요!

 

심청이는 6학년 3반 반장이에요.

도화초등학교 6학년 여러 학급 가운데 유일한 여자 반장이죠.

심청이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합니다.

물론 달리기도 잘하고 춤도 잘 추죠.

아마 인기투표를 하면 전교 일등이 바로 우리 심청이일 걸요?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심청이에게도 한 가지 불만이 있답니다.

그건 바로 이름 때문이에요.

판소리를 좋아하는 아빠께서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그 심청이랑 이름을 똑같이 지었지 뭐예요.

 

심청이는 아빠가 한창 판소리 심청가에 빠져 있을 때 태어났데요.

딸이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심청이라고 지어버리셨죠.

 

“뭐야, 그럼 아빠가 춘향가 배우실 때 태어났으면, 내 이름이 춘향이가 되었겠네?”

 

청이가 투덜거릴 때마다 엄마는, 아빠 이름이 심학규씨가 아닌 걸 천만다행인 줄 알라고 놀리곤 하시죠.

심학규는 판소리에 나오는 심청이 아빠 이름이거든요.

심학규씨는 맹인이었고, 효녀 심청이는 아빠 눈을 열어드리려고 깊은 물 인당수에 몸을 던지죠.

 

“흥! 난 중학교 가면 절대 중이(中二) 되지 않을 거야. 중이는 열다섯 살이니까! 중일(中一)에서 곧바로 중삼(中三)으로 점프할 거라고! 중삼은 열여섯, 춘향이랑 이도령이 데이트하던 이팔청춘 좋은 나이거든∼!”

 

얼씨구? 공부만 잘한다면야 학년은 점프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이는 점프할 수 없다는 걸 모르나?

심청이가 아빠 눈 열어드리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던 때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거든요.

우리 심청이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죠?

 

아무튼 6학년이 되자 한자에 눈을 뜬 심청이는 인터넷을 통해 제 이름을 꼼꼼하게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름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려고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네요.

 

한문수업 시간에 심청이가 선생님께 여쭙습니다.

 

“선생님, 인터넷에는 판소리 심청가의 주인공 이름 심청(沈淸)이가 한자로 ‘성씨 심’에 ‘맑을 청’자로 나오는데요, 제 이름은 ‘갤 청(晴)’이거든요. 어떤 게 맞나요?”

 

“좋은 질문이다. 판소리 책에 따라 그렇게 ‘맑을 청’과 ‘갤 청’ 두 종류가 있단다. 그런데 판소리꾼들은 이 때 ‘갤 청(晴)’을 주로 ‘눈망울 청’이라 새기는데, 특히 ‘성씨 심’을 ‘가라앉을 심(침 沈)’이라 새기기도 하지! 마치 어두운 아빠 눈망울을 밝게 해드리려고 깊은 물속에 가라앉으리라는... 어때? 이건 딱 심청이의 앞날을 예언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니?”

 

‘어휴,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네, 내 이름이 무슨 요한계시록인가? 무서워라!’

 

 

사순절 4째 주일을 준비하며 심청이는 성서일과 본문말씀을 읽습니다.

이번 구약 본문의 주인공은 소년 다윗입니다.

성경말씀에 보니까 소년 다윗은 눈이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합니다.

 

‘다윗도 나처럼 눈이 예뻤구나! 아마 '상속자들' 이민호나 '완득이' 유아인 비슷했을까?’

 

심청이는 비슷한 또래였을 소년 다윗이 문득 정답게 느껴집니다.

다윗 정도라면, 내 남자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심청이 얼굴이 발그레 붉어집니다.

그런데 함께 등장하는 사무엘은 팔십이 다 된 할아버지네요?

연세가 너무 많아서 눈이 어두워지신 걸까?

천하의 사무엘이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실수를 하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나 심청이가 우리 사무엘 할아버지 눈도 좀 열어드려야겠는걸?’

 

철부지 심청이가 말씀을 읽으면서 철이 들어가나 봐요?

이젠 제 이름을 즐길 줄도 아네요?

 

사무엘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드디어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줍니다.

성스러운 기름이 다윗의 눈에도 흘러들어 다윗의 눈이 아마 두 배는 더 맑아졌을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뒤부터 주님의 영이 계속 다윗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다윗의 눈이 열두 배는 더 맑고 밝아졌을 것 같습니다.

 

복음서 본문의 주인공은 나면서부터 눈먼 어느 맹인이네요?

예수님께서 그 맹인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눈에 발라주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순종하자 그의 눈이 환히 열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을 질투하는 철부지 바리새인들!

그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아들을 못 알아봅니다.

그러나 눈이 열린 맹인은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고 큰절을 올립니다.

보던 사람이 못 보게 되고 못 보던 사람이 보게 된 것입니다.

 

문득 심청이는 우리 예수님이랑 심청이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토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얼른 전도사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와, 우리 심청이 대단한 상상력인 걸? 네 이름이 심청이라서 그런가? 너 이젠 심청이 박사가 다 되었구나? 내 생각도 너랑 같다. 세상에서 우리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 심청이가 첫손가락에 꼽힐걸? 오늘 복음서 본문말씀에 나오는 맹인의 눈을 열어주신 것처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 모든 어두운 눈을 다 열어주시려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시고 마침내 다시 오시는 우리의 왕 예수님! 요한계시록 뒤에 나오는 어린양 혼인잔치와 새하늘 새땅 말씀도 기억하지? 그런데 심청가에 나오는 심청이의 모습도 딱 우리 예수님과 비슷해! 아빠 눈 열어드리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물에 빠졌다가 용궁에서 엄마를 만나 연꽃을 타고 다시 태어나듯 땅으로 돌아오고 큰 나라의 황비가 되어 천하맹인들을 잔치에 초대하고 마침내 아빠 심학규씨의 눈이 열리자마자 천하맹인들의 눈까지 다 열리게 된다는, 어디 그뿐인가? 천하 모든 눈먼 짐승들의 눈까지 열려버린다는 저 드라마틱, 판타스틱 스토리텔링!”

 

전도사님이 흥분하셨나봐요.

별로 안 어울리는 영어가 막 술술 나오네요?

점점 흥분하신 전도사님이 판소리 심청가의 뒷부분, 천하맹인이 눈을 뜨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판소리 심청가를 들으면서 우리 심청이 큰 눈이 보름달처럼 휘둥그레집니다.

심청이가 대단한 여성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예수님을 많이 닮은 줄은 몰랐거든요.

전도사님의 서투르지만 신명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도 내 이름처럼 진짜 심청이가 되어야지. 내 이름 크리스천처럼, 진짜로 예수님을 닮아야지! 겉모습만 보고 중심은 보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진리의 말씀도 못 알아보는 눈 어두운 사람들에게 맑고 밝은 눈망울이 되어주어야지, 우리 예수님처럼!’

 

(자진모리) 만자(만좌)맹인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담양 새갈무 띠는 소리라 짝 짝 짝 허드니만은 모다(모두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달 안에 큰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하고 내려간 봉사(맹인)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 중로에서(길가다가) 눈을 뜨고 천하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

(휘모리) 가다뜨고 오다뜨고 자다깨다 뜨고 울다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앉어뜨고 서서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졸다 범득뜨고 눈을 끔적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느라고 뜨고, 저 비금(飛禽)주수(走獸)라도 눈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었구나∼

 

[이정훈 지음. 2014년 3월 30일 주일 아침.  판소리 '심청가' 끝부분 사설을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