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50:4-9a)
4.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5.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6.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 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시편 31:9-16)
9. 주님,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내 눈이 시력조차 잃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도 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10. 나는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근력은 고통 속에서 말라 버렸고, 뼈마저 녹아 버렸습니다.
11.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한결같이 나를 비난합니다. 이웃 사람들도 나를 혐오하고, 친구들마저도 나를 끔찍한 것 보듯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이마다 나를 피하여 지나갑니다.
12. 내가 죽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깨진 그릇과 같이 되었습니다.
13. 많은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방에서 협박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14.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빌립보서 2:5-11)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11-54)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총독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하고 말씀하셨다.
12.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 때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14. 예수께서 한 마디도, 단 한 가지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
15. 명절 때마다 총독이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그런데 그 때에 [예수] 바라바라고 하는 소문난 죄수가 있었다.
17. 무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
18.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하여 예수를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세요.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
20.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구슬러서,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고, 예수를 죽이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물었다.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그들이 말하였다. "바라바요."
22. 그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23. 빌라도가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사람들이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24.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26.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27.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를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가서, 온 부대를 다 그의 앞에 불러모았다.
28. 그리고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걸침 옷을 걸치게 한 다음에,
29.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의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말하면서 그를 희롱하였다.
30. 또 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서, 머리를 쳤다.
31. 이렇게 희롱한 다음에, 그들은 주홍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그를 끌고 나갔다.
32.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만나서,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33. 그들은 골고다 곧 '해골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서,
34.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예수께 드려서 마시게 하였으나, 그는 그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서, 그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6. 그리고 거기에 앉아서, 그를 지키고 있었다.
37.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 이렇게 쓴 죄패를 붙였다.
38. 그 때에 강도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렸다.
3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여
40.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43.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라지.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다."
44.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욕하였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하여 주나 두고 보자"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51. 그런데 보아라,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53.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은 사순절 6주, 고난주간 시작하는 수난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수난주일과 종려주일 본문은 똑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가, 나, 다, 세 해의 수난주일 본문은 복음서를 제외하고 모두 같습니다.)
4본문을 묵상하다가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빌립 2:5)를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억울하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낮아지시는 예수님의 순종!
그 순종의 마음입니다.
높고 높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낮고 낮은 사람을 끝끝내 사랑하는 그 사랑이 빚어내는 순종입니다.
⓪ 법(法)
‘크르지스토프 키쉴롭스키’라는 감독의 영화를 열심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블루』, 『레드』, 『화이트』 삼부작으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은 『십계』 10부작이 더 좋았습니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짤막한 분량으로 10편의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현대 폴란드 어느 마을 아파트촌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상생활 속에 십계명의 열 가지 주제를 녹여 담은 수작입니다.
1편에서 엑스트라로 나온 사람이 다음 편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도 납니다.
십계명이 옛날 골동품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이렇게 중요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시나리오를 어느 대법관 출신 법조인이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경의 십계명이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관심이었는지 알만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는 온통 법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약속의 책인 구약과 신약 전체를 걸쳐 그러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시작된 불순종 이래 지금까지 그러합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는 순종과 불순종, 죄와 의에 대한 주제로 가득합니다.
사사 시대에도, 법을 다루는 일은, 사사가 맡은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가운데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왕 또한 그러합니다.
대표적으로 솔로몬은 시비(是非)를 제대로 가려 법을 세울 수 있는 지혜를 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그리스도 역시 율법을 완성시키시는 분입니다.(마태 5:17)
더 말할 것도 없이, 율법서 뿐 아니라 모든 신구약 성경책은 법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법(法)이란 물이 가는 길, 물 수(水) 갈 거(去), 즉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은 그 법(法)의 뿌리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 곧 사랑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말입니다.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는 그 사랑 말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 13:8-9)
그 법은 세상의 모든 법의 뿌리여야 마땅하며, 모든 법에 우선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법,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서,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세상 법정에 서십니다.
그렇게 흠 없이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어주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빌라도 법정은 너무나 속상합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죄 없이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 때문에 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8절)
게다가 자기 아내조차 예수께서 아무 죄 없으시다는 강력한 변호인, 또는 증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19절)
그럼에도 빌라도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저 억울한 죽음을 손 씻음과 채찍질로 속전속결 해버리고 맙니다.
이리하여 빌라도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둘도 없을 어리석은 악인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저 악한 유대 지도자들과 어리석은 유대 백성들보다 더 큰 악한(惡漢)으로, 더 어리석은 자로 낙인찍힌 것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책임자임에도, 빌라도는 법의 이름으로 불법(不法)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의 불법은 물로 손을 씻는다고 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 모욕
오늘 구약본문인 이사야 50:6절 말씀은 마치 오늘 복음서본문의 빌라도 법정(法庭)과 빌라도 관저(官邸)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압축해 놓은 것 같습니다.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이런 극심한 모욕에도 마음 상하지 않습니다.
날 도우시는 주님, 나의 결백과 의로움을 누구보다 환히 아시는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이사 50:7-9)
그럼에도,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 참담한 모욕과 고통, 그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시편본문은 그 아픔을 절절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울다 지쳐 시력조차 잃고, 뼈마저 녹아버려 이젠 "깨진 그릇"처럼 되었다고 노래합니다.(시편 31:9-13)
그러나 그리 엎어졌던 시편기자 또한 다시 일어섭니다.
그 모욕과 협박과 살인의 음모조차(13절) 마침내 이겨냅니다.
이 역시 내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때문입니다.(시편 31:14-16)
오늘 복음서본문을 읽으면서 극심한 답답함을 느낍니다.
빌라도 관저에서 벌이는 로마병정들의 희롱 잔치도 분통이 터지지만,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희롱은 점입가경, 아주 가관입니다.
그러나 당장 뛰어내려오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예수님은 끝까지 그 모욕을 견디십니다.
② 순종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죄인의 꼴로 모욕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속이 터지기 마련입니다.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쏟아내고 또 쏟아내도 시원치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원수를 어떻게 싹 다 갚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갑절로 갚아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예수께서 한 마디도, 단 한 가지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마태 27:12-14)
세상에 둘도 없을 억울한 한(恨)임에도, 예수님은 묵묵히 견디십니다.
그 모습이 딱 어린양 그대로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은 이를 가리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립 2:8)라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낮추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쉽고도 어려운 말입니다.
금세 이해가 가는 듯하다가도 묵상하면 할수록 생각이 꽉 막혀버립니다.
아니 생각이 막히는 것보다 먼저 숨이 막힙니다.
그런데 이 숨 막히게 답답한 마음을 나더러 품으라시는 겁니다.(빌립 2:5)
하도 억울해서 잠도 못자는 이 고통은 어떡하라고,
하도 억울해서 시력조차 다 잃어버리고 뼈마저 녹아버릴 정도의 이 한(恨)은 어떡하라고...
그럼에도... 아무리 억울해도, 그게 아버지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만약 그게 온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길이라면 그 길 끝까지 가겠습니다.
이게 바로 오늘 본문말씀의 알맹이인 주님의 마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지긋지긋하게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걸 가리켜 ‘케노시스’(자기 비움)이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립 2:7a)
③ 정리
구약본문의 앞머리의 “학자처럼”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말도 잘하고 말을 잘 알아듣기도 한다는 학자!
추측컨대 그 <말>은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말씀일 것입니다.
지친 사람에게 힘이 되는 말입니다.(4절)
나 또한 힘든 세월, 무법천지의 시대를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주시는 힘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과 빌라도 관저, 그리고 십자가에서 오만가지 희롱과 모욕, 폭력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참으십니다.
꾹꾹 눌러 참으십니다.
그러다가 터져 나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시편을 환하게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시 22편의 첫 소절을 부르짖으십니다.
‘새벽 암사슴가락’에 맞추어 부를 겨를은 없으셔도, 그 고통과 공포와 원통을 담아 터뜨릴 수 있는 좋은 그릇이었을 것입니다.
신포도주를 조금 받아 입술을 축이시고 다시 큰 소리를 지르며 운명하십니다.
몸의 고통은 누구라도 견디기 힘듭니다.
마음의 고통 역시 마찬가집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이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묘사합니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나 구원하여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40)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42)
몸과 마음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신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며, 이번 고난주간을 보냅니다.
지난 주 4월 9일은, 제주 4.3에 연이은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아주 치욕스럽고 슬픈 골고다의 날이었습니다.
딱 39년 전, 1975년 4월 9일 새벽, 8명의 억울한 사람들이 법의 이름으로 사형을 당합니다.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한지 18시간 만에 그냥 사형을 집행해 버린 것입니다.
유신체제 반대세력들에게 겁주기 위한 대표적인 조작사건이었습니다.(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세월이 흘러,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는 저들 유족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랜 세월, 오히려 역적의 피붙이, 빨갱이의 새끼라는 낙인으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저들의 눈과, 저들의 뼈가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억울하고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이름들을 기억합니다.
부디 이 고난주간 복음서본문이 그 유족들의 억울한 눈물을 닦아주실 수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교회는 케노시스, ‘자기 비움’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신앙의 꽃을 피우기 위해 내 모든 탐욕부터 비워야 할 것입니다.
부활신앙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교회가 맡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의 십자가 길을 끝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오늘 복음서본문 마지막 절에 나오는 백부장의 고백입니다.
지난 주 복음서본문의 주제와 통하는 대미(大尾)입니다.
‘참으로 이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주님의 몸이로구나!’ 우리는 이런 말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금, 케노시스! 주님의 그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말씀 서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8호)
[말씀 동시] 무리들의 선택 (성실교회학교 6학년 이진구 지음, 『성실문화』 78호)
무리들은 예수님을 살릴까?
아니면 소문난 죄인인 바라바를 살릴까?
결국 무리들 소문난 죄인인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님을 처형장으로 보냈다.
[말씀 시조]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유대땅 시기심과 빌라도의 어리석음
죽음의 십자가로 생명예수 희롱하니
참성전 운명하실 때 성전휘장 갈라져
[말씀 한시] 마지막 피 한 방울마저도 떨구시어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8호)
架上耶穌目覩下 (가상야소목도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발아래를 바라보시니
殘忍兵士眼偏瞎 (잔인병사안편할) 잔학한 망나니는 애꾸눈 병사
揮槍虐刺中心藏 (휘창학자중심장) 창 휘두르며 심장을 찔러올 제
湧血一滴療固疾 (용혈일적료고질) 최후의 피 한 방울마저도 떨구시어 그 눈 고쳐 주셨네.
[말씀 노래] 부끄러운 이름 빌라도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 78호)
1. 빌라도 빌라도 어리석은 빌라도야 / 성결하신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야 /
꿈조차 증언하는 정의로운 예수님을 / 십자가 사형선고 씻지못할 부끄러움
2. 빌라도 빌라도 어이없는 빌라도야 / 존귀하신 예수님을 천대하는 빌라도야 /
무엇을 탐하느냐 무엇이 두려우냐 / 십자가 모진고통 씻지못할 부끄러움
3.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대신지고 / 이름모를 백부장은 예수님을 알아보네 /
씻어도 씻어도 부끄러운 너의이름 / 빌라도 빌라도 부끄러운 너의 이름
[시편 송서] 시 31:9-16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중모리 한 장단)
9.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10.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11.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었으므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감싸였나이다 그들이 나를 치려고 함께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 (내 하나님==),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다함께]
16. 주의 얼굴==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 (구원)하-소-서==∼∥
※ 가락은 ‘새야새야, 파랑새야’로, 장단은 중중모리로 읊는다.
※ 쉼표(‘,’)까지 한마디가 12박 한 장단이다. (즉, 한 줄이 중중모리 두 장단이다.)
※ 한 박(‘=’)은 편의상 2분박(‘--’)으로 쪼개어 짚을 수도 있다.
※ 밑줄(‘ ’)친 부분은 글자 수가 많아도 3박으로 읊으면 된다.(이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여유있게 읊는 것이 좋다.)
※ 굵은 글자는 찬양대가 송서(誦書, 새야새야)로 읊조리고, 나머지는 회중이 낭독한다. (찬양대가 읊조릴 때 회중도 콧노래처럼 작게 따라 해도 좋다.)
※ 가락이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이 오히려 어우러지는 멋이 있어 좋다.
※ 마지막 절은 다함께 읊조린다.
[말씀 동화] 항아네 달항아리가 깨지던 날
항아네 집엔 멋진 도자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주 귀한 조선시대 백자(白磁)예요.
하얀 보름달처럼 생겨서 사람들은 달항아리라고 부른답니다.
엄마는 저 달항아리가 우리 집 가보라고 애지중지 하세요.
돌아가신 항아 외할아버지의 유물이라서 더 아끼시는 거죠.
틈날 때마다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 또 닦으시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시곤 합니다.
하얀 수건에 먼지 하나 묻어나지 않아도 닦고 또 닦으시죠.
지난 주 수요일엔 달항아리를 닦는 엄마 손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4월 9일!
해마다 이날이면 항아 엄마는 더 정성스럽게 달항아리를 닦으십니다.
바로 항아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이거든요.
“그 해, 그 날도 수요일이었는데...”
항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1975년 4월 9일도 아마 수요일이었나 봐요.
그런데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에 대해 항아가 질문할 때마다 엄마는 늘 얼버무리곤 하시죠.
“엄마, 엄마는 달항아리 닦을 때마다 외할아버지 생각해요?”
“항아야, 엄만 우리 아빠 세수 시켜드리는 마음으로 늘 이렇게 달항아리를 닦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멋진 이유가 또 하나 있단다.”
“그게 뭐죠? 가르쳐줘요 엄마. 어서, 어서요. 네?”
항아 엄마는 달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엄만 이 달항아리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님 생각을 한단다.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로 내 어두운 마음을 비춰주시는 우리 예수님,(시편 31:16) 그리고 또 속이 텅 빈 예수님의 낮은 마음! 그 마음을 생각하지.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빌립보서 2장 7절 말씀 너도 알지?”
오늘도 항아 엄만 그 말씀을 읊조리며 묵상하시네요.
엄마는 그래서 텅 빈 달항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길 즐기시나 봐요.
아마 그래서 달항아리 안에 꽃도 꽂지 않고 그냥 비워두시는 거겠죠?
아무튼 텅 빈 달항아리는 항아 엄마에게 아빠도 되고 예수님도 되는 보배중의 보뱁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아주 슬프고 중요한 날이죠.
엄마와 아빤 지금 성금요일 예배에 가고 집에 안 계셔요.
우리 항아는 꾀병을 부리며 예배를 빼먹은 것도 모자라 텔레비전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네요?
오토바이 춤도 추고, 4기통 춤도 추고, 아주 막춤 삼매경에 무아지경입니다.
쿵쿵 음악소리에 흥분했는지 강아지 초코도 우리에서 튀어나와 왈왈거리며 함께 춤을 춥니다.
초코는 깡충깡충 토끼춤을 추더니만 이젠 흥분이 넘쳐 올림픽 높이뛰기 선수처럼 뛰기 시작합니다.
“쨍그랑!”
... 이를 어쩐담?
우리 항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어요.
달항아리를 깨뜨린 초코는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얼른 제 우리로 들어가 버립니다.
“어떡하지? 난 이제 완전히 죽었네. 하필 예수님 돌아가신 날! 나 정말 어떡하지?”
항아는 엄마 아빠가 돌아오신 한 밤중까지 잠도 못자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깨진 달항아리 조각을 치울 엄두도 나지 않아 그대로 두었습니다.
모처럼 항아랑 같이 자려고 엄마 아빠와 함께 오신 수은 이모를 반길 겨를도 없습니다.
항아는 슬금슬금 엄마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깨진 달항아리를 바라보는 순간 항아 엄마 얼굴이 달항아리보다 더 하얘집니다.
엄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시고 아빠가 조심조심 깨진 달항아리 조각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우리 항아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죄송해요 아빠, 제가 초코랑 뛰다가 그만...”
항아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용서를 빕니다.
“난 괜찮다. 그런데 엄마가 걱정이구나. 엄마의 최고 보물이었는데...”
조마조마 항아는 안방 문을 흘깃흘깃 훔쳐봅니다.
한참을 지나 드디어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십니다.
항아는 얼른 일어서더니 엄마께 용서를 빕니다.
고개도 못 들고 용서를 비는 항아를 엄마가 다가와 도닥여 주십니다.
“괜찮아 항아야. 이젠 괜찮아.”
“으앙∼ 엄마 정말 죄송해요. 죽을죄를 지었어요. 엄마...!”
“세상에 죽을죄가 어딨니? 그만 울어. 오늘 우리 예수님이 돌아가셨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 다 괜찮아. 예수님이 이제 다 용서해 주셨어.”
“예수님이요?”
“그럼 그럼, 예수님께서 벌써 다 용서해 주셨어... 우리 달항아리 깨진 게, 딱 우리 예수님 돌아가신 거랑 똑 같구나... 흑 흑...”
엄마는 드디어 참던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흐느끼던 울음이 엉엉 통곡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당황한 항아는 어쩔 줄 모릅니다.
수은 이모가 엄마에게 다가가 꼭 껴안고 아무 말 없이 함께 울어줍니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모가 이야기합니다.
“항아야, 이모가 아주 어린 아기 때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 거 알지? 지금 엄마는 예수님 돌아가신 거랑 우리 아빠 돌아가신 거랑 함께 슬퍼하고 있는 중이란다. 우리 아빤 인혁당인지 민청학련인지 하는 이상한 이름으로 엉터리 재판을 받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셨거든. 딱 빌라도 같은 재판관들의 그 엉터리 재판 때문에,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지. 딱 아빠 같고 예수님 같았던 소중한 달항아리가 깨지는 바람에 아빠랑 예수님이 죽으신 게 지금 더 많이 기억나신 거야.”
항아는 엄마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항아는 엄마랑 이모랑 함께 엉엉 소리 내어 웁니다.
마치 십자가 아래 여인들처럼 하염없이 웁니다.
아빠는 혼자서 치우던 달항아리 조각을 하릴없이 만지작만지작 하십니다.
바로 그 순간 수은 이모의 눈빛이 반짝입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도 씩씩하게 얘기를 시작합니다.
“항아야, 너 어서 가서 접착제 찾아봐라. 형부, 혹시 집에 널빤지 같은 거 없나요?”
아빠는 문간방으로 달려가 둥그런 반달모양 널빤지를 가져오십니다.
오래전에 엄마 화장대 둥근 거울 깨진 유리 치우고 남은 겁니다.
“딱 안성맞춤이네요! 언니 혹시 집에 깨진 타일 조각 같은 거 없어? 초록색이나 파란색 같은 거면 좋겠는데?”
“타일조각? 지난 번 화장실 보수공사할 때 남은 타일조각이 파란색이긴 한데, 참! 초록색 컵 깨진 것도 괜찮니? 깨진 그릇 모아둔 데 보면 아마 비슷한 색깔들이 좀 있을 걸?”
“처제, 대체 이걸로 뭐하려고 그러지?”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멋진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이모는 미술대학을 나온 미술가예요.
혼자서 뚝딱뚝딱 못 만드는 게 없는 만능 아줌마죠.
“내가 좋아하는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있어요. 지금도 130년 동안이나 건축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을 처음 설계하고 짓기 시작한 분이예요. 그런데 그분이 평소 지었던 집과 공원에 가보면 정말 아름다운 곡선과 형형색색의 타일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우린 그걸 파타일이라 부른답니다.”
“그럼 이모 지금 그 파타일을 만드는 거예요? 이 깨진 달항아리 조각으로?”
“물론이지!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 부활하신 것처럼, 돌아가신 우리 아빠, 그리고 함께 억울하게 사형 당하신 분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도록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신문기자, 사업가, 직장인, 교사, 학원 강사, 대학생 등 나이도 직업도 다양하던 그분들을!”
수은 이모가 커다란 반달처럼 둥그런 널빤지를 바닥에 놓고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리저리 고민 끝에 다시 쓱쓱 지우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둥그런 원을 그립니다.
널빤지가 꽉 차도록 커다란 동그라미입니다.
그런데 그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 넣습니다.
그러고 나서 달항아리 조각 하나하나에 접착제를 붙여가며 널빤지에 붙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항아가 열심히 이모를 돕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이내 거들기 시작합니다.
성금요일 한밤 철야 작업입니다.
기도와 찬양을 반복하는 동안 달항아리 조각을 거의 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텅 빈 동그라미 안에 초록빛깔, 푸른빛깔, 그리고 짙은 쪽빛 타일조각들을 붙여 넣습니다.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우와!”
온 가족이 탄성을 지릅니다.
우리 안에서 근신 중이던 초코가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바라보네요?
어느덧 항아네 집 거실에 둥그런 대보름달이 떴습니다.
그런데 하얀 대보름달 안에 알록달록 푸르스름한 지구가 안겨 있습니다.
‘지구를 품은 달’입니다.
안타까운 우리 달항아리가 다시 살아난 겁니다.
우리네 알록달록한 행복과 얼룩덜룩한 슬픔까지 다 품어주시는 예수님으로 되살아난 겁니다.
항아의 입이 벙글어집니다.
초코도 덩달아서 다시 깡충거리기 시작합니다.
엄마랑 아빠랑 손을 꼭 맞잡습니다.
수은 이모가 뒤에서 항아의 어깨를 꼭 껴안아줍니다.
성금요일 철야를 마치고 새벽 햇살이 비쳐들고 있습니다.
내일이 바로 부활절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4월 13일 주일 아침]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사형집행에 대한 평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1995년 4월 25일 MBC가 사법제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판사 315명에게 실시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인혁당 사건 재판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함으로 이 사건이 정상적이지 못했음을 법조인들도 인정했습니다.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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