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58:1-12)
1.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
2.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3.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4.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너희의 목소리를 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는다고 해서 어찌 이것을 금식이라고 하겠으며, 주님께서 너희를 기쁘게 반기실 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9.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10.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11.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12.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시편 112:1-10)
1. 할렐루야.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2. 그의 자손은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며, 정직한 사람의 자손은 복을 받으며,
3. 그의 집에는 부귀와 영화가 있으며, 그의 의로움은 영원토록 칭찬을 받을 것이다.
4. 정직한 사람에게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칠 것이다. 그는 은혜로우며,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사람이다.
5. 은혜를 베풀면서 남에게 꾸어 주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6. 그런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영원히 기억된다.
7.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주님을 믿으므로 그의 마음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8. 그의 마음은 확고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마침내 그는 그의 대적이 망하는 것을 볼 것이다.
9.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주니,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는 영광을 받으며 높아질 것이다.
10. 악인은 이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를 갈다가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욕망은 헛되이 꺾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2:1-16)
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 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낸 증거로 한 것입니다.
5.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7.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8.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11.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15.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20)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주현절 5째 주일입니다.
주현절, 주현(主顯)의 계절은 예수님이 우리 주님으로 드러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 4본문에서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그렇게 점점 주님 닮아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며 얻은 제목은,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고전 2:16)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그릇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오늘 구약본문은 “하나님의 규례”(2절), 시편본문은 “주님의 계명”(1절), 복음서본문은 “이 계명”(19절)등으로 표현했고, 서신서에서는 “하나님의 비밀”(1절), “하나님의 지혜”(7절), “하나님의 생각”(11절), “주님의 마음”(16절)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① 구약(이사야 58:1-12)
먼저 구약본문의 알맹이를 꼽자면, 6절의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일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크나큰 과제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과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2절 이하에 보면, 겉으로만 종교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6절 이하에 보면, 속이 충실한 종교생활, 즉 제대로 된 금식을 하여야 복스러운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 하십니다.
이 때, 복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여러 표현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빛”입니다.
“네 빛”(8절), “너의 빛”(10절)이 반복됩니다.
이는 시편에서는 4절에 “어둠 속에서도 빛이 비칠 것이다.”로, 특히 복음서본문에서는 “세상의 빛”(14절), “너희 빛”(16절) 등으로 반복해서 묘사됩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본문에서 제가 본 가장 중요한 알맹이는, 6절과 9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멍에”라는 단어입니다.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고, “무거운 멍에”를 없애 버리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바로 2주 전, 주현절 3주 구약본문의 알맹이였던, 주님의 마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사야 9장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들에게 “큰 빛”으로 오시는 주님,(2절) 그분께서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는 것 말입니다.(4절)
결론으로, 약한 백성들이 강제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온갖 멍에를 꺾어주시는 것이 주님의 일이요,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 마음, 주님의 마음을 품고 결행할 것을 주님께서 기뻐 바라신다는 사실입니다.
② 시편(112:1-10)
오늘 시편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본문의, <약한 사람들의 “멍에”를 꺾기 원하시는 주님 마음 품기>와 짝을 이루는 구절이 시편에도 나옵니다.
시편 4절에 “그는 은혜로우며,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사람이다.”가 눈에 크게 들어옵니다.
바로 이 표현은 정확히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를 가리켜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바로 정직한 사람, 거슬러 올라가 1절에서 묘사하는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 말씀읽기, 말씀살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것입니다.
③ 서신서(고린도전서 2:1-16)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알맹이 말씀들이 참 많습니다.
이를 하나로 요약하자면, 가장 끝 16절의 “그리스도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1절), “하나님의 생각”(11절)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말씀”일 것입니다.(지난 주 본문, 고전 1:18)
정리하자면, 오늘 서신서말씀의 알맹이는 이것입니다.
내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는 주님의 마음, 그 마음을 바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노라는 선언입니다.(16절)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저는 늘 가슴이 떨립니다.
④ 복음서(마태복음 5:13-20)
오늘 복음서본문은 “계명”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여기서 “계명”은 다름 아닌 주님의 마음입니다.
계명이 주님의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면, 그 계명 하나하나는 바로 그 그릇 안에 담긴 알맹이, 즉 구체적인 주님의 마음들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하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19절)
그래서 이 계명들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시는 것입니다.(19절)
왜 이렇게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주님의 마음을 느끼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현현을 느끼며 감격하고 감사하고만 있지 말고, 그 주님의 현현을 너희도 닮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위대하신 십자가 행군을 보고 박수치고 찬양만 하고 있지 말고, 너도 지금 그렇게 그 길 가라시는 것입니다.
⑤ 정리
구약본문의, <약한 사람들의 “멍에”를 꺾기 원하시는 주님 마음 품기>와,
시편본문의 <그는 은혜로우며,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사람이다.>가 짝을 이룬다면,
복음서본문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가 그 짝일 것입니다.
2주전 주현절 3주 본문의 알맹이가 바로 “주님이 나의 빛”(시 27:1)이었습니다.
(이사 9:2)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마태 4: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주현절은 ‘주님의 마음 품기’, ‘주님 닮기’를 위하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더 꼼꼼히 읽고 또 읽어야 할 계절입니다.
⑥ 나머지
* 지난주 목요일 매일성서일과 가운데 요한일서 5장 3절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자꾸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다보니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주님 가신 그 길 고스란히 따르는 일, 주님의 마음을 품는 일, 주님의 계명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일...
이것은 내 모든 것을 하나하나 포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포기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무겁지만, 점점 그 사랑 깊어갈수록, 점점 그 ‘포기’가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너를 위해 나를 다 포기하고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말씀 동시] 소금과 빛처럼 (이선구 지음, 양일중학교 3학년. 『성실문화』 77호)
예로부터 그림과 책은 /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빛내고 /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밝게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행실은 / 글씨 없는 책과 텅 빈 그림에 불과하니 / 어찌 작가의 이름을 알릴 수 있으며 / 어찌 서가에 꽂히고 벽에 걸리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 도리어 불태워져 장작으로밖에 쓰이지 못하리라
만일 텅 빈 그림과 텅 빈 책에 / 작가의 뜻대로 아름다운 그림과 글이 담긴다면 / 사람들은 끝없이 작가의 이름을 찬양하고 / 그 이름 대대로 전해지리라
[말씀 시조]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7호)
빛처럼 환하게 소금처럼 짭짤하게
빛처럼 소금처럼 천부영광 빛내거라
하늘언약 굳게 지키면 천국문이 가까워
[말씀 서예] (벽해 오세주 목사님 작품. 『성실문화』 77호)
[말씀 노래] 착한 사람아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77호)
1.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란다, 너 착한사람아
부디짠맛 잃지말고 빛을 지켜라, 너 착한사람아
2. 썩은세상 소금되고 그늘백성 빛되어라, 너 착한사람아
하늘아버지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리라, 너 착한사람아
3.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 너 의로운사람아
예언자의 말을 이루러 왔노라, 너 의로운사람아
4. 하나님 말씀 낱낱이 가르쳐라, 촘촘히 지키거라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 될것이다, 너 착한사람아
[말씀 동화] 그림자 세 보따리
[첫 번째 보따리] ‘그림자의 후회’
옛날에 해를 싫어한 마법사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해를 싫어했기 때문에 주인인 마법사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법사님, 해를 없앨 수 없을까요?”
“할 수는 있지만 왜 없애려고 하니?”
“제가 해를 싫어해서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주마.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죠?”
“그렇지만 해를 없애면 네가 후회할지 모른단다.”
“후회 안 해요!”
“좋아, 그럼 해를 없애주지!”
해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자 그림자는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림자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림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마법사가 “안녕...”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림자는 깨달았습니다.
해의 빛이 없어지면 모든 생명이 죽고 그림자인 자신도 없어진다는 것을...!
[이소현 지음, 2014년 2월 7일 금요일 - 원덕초등학교 3학년 참나리반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그림자의 원리를 가르쳐주시면서 각자 그림자를 소재로 동화를 지어보라고 하셔서 지은 순수 창작동화입니다.]
[두 번째 보따리] ‘그림자의 사랑’
옛날에 마리라는 아름다운 소녀와 테니라는 멋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마리와 테니의 그림자는 서로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와 테니는 서로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와 테니의 그림자는 서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림자는 주인에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주인님, 제발 그와 만나 주세요!”
“그가 누군데?”
“테니 말이에요.”
그러자 마리가 인상을 쓰며 말했어요.
“아니, 내가 왜 그놈을 만나야하지?”
“제가 그의 그림자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뭐, 뭐라고? 네가 왜 그놈의 그림자를 사랑한단 말이냐?”
“제발 그와 화해해 주세요, 제발...”
하는 수 없이 마리는 그림자의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테니의 그림자도 주인에게 똑같이 부탁을 했습니다.
테니도 자기 그림자의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둘이 화해하여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커서 결혼하였고, 그림자들도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소현 지음, 2014년 2월 8일 토요일 - 원덕초등학교 3학년 참나리반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자그마한 힌트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세 번째 보따리] ‘말씀 그림자’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셨어요.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 곁으로 모여드네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시더니 여덟 가지 복, 팔복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앞으로 예수님을 따라 어려운 길을 가야할 제자들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 주시려는 것이었죠.
그 길은 바로 ‘천국맞이 길’, ‘십자가 길’이었습니다.
천국맞이를 위한 회개의 길, 세상을 회개의 길로 이끄는 십자가의 길!
그 길은 무척 고달픈 길이었거든요.
그래서 힘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너희가 바로 천국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무지무지 복스러운 말씀을 주신 거에요.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은 세상의 모든 맛을 살아나게 합니다.
음식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짜서 못 먹지만, 적당히 넣으면 음식의 제 맛이 되살아나는 법이죠.
옥수수 삶아먹을 때도 설탕을 안 넣고 소금을 넣어야 제 맛이 나는 거 알죠?
콩국수 먹을 때도 설탕이 아니라 소금을 넣어야 더 맛있어지는 거 알죠?
빛은 세상의 모든 빛깔을 살아나게 합니다.
어둠의 빛깔은 검정색이지만, 빛의 빛깔은 하얀색이 아니랍니다.
자세히 보면, 빛은 빨주노초파남보, 세상의 모든 빛깔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 빛이 비치게 되면, 세상은 모두 하얀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치면, 온통 시커멓던 세상은 마침내 제 고유의 빛깔로 환하게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소금과 빛은 세상의 잃어버린 맛과 빛깔을 되살려줍니다.
이렇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 구석구석에 되살려주는 사람들입니다.
“소현아 어때? 아빠 말씀동화가 좀 어땠어?”
“음∼ 좀 괜찮았어요. 예수님 말씀이 조금 더 잘 느껴졌어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니?”
“그게... 좀 재미는 없네요.”
아빠는 막내 소현이에게 매주 말씀동화의 맛이 어땠는지 물어보십니다.
그 때마다 소현이는 맛있는지 맛없는지 정확히 대답해주는 돌직구 평론가가 됩니다.
소현이는 요사이 말씀동화에 점점 흥미를 많이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말씀동화를 잘 짓기 위해서 우선 그림동화 짓기에 열심입니다.
사실 소현이가 말씀동화에 점점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된 건 만화영화 때문입니다.
원래 소현이는 오빠들과 달리 컴퓨터 게임보다는 만화영화 보기를 더 좋아하죠.
‘안녕 자두야’를 보기 위해 애쓰지만 오빠들이 협조를 안 합니다.
그래서 오빠들과 따로 만화영화를 보게 해달라고 아빠에게 떼를 씁니다.
그러자 아빠는 그림일기를 잘 써오면 만화영화 상을 주겠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소현이는 그림일기 쓰기가 싫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동화를 지어보라고 하셨어요.
과학시간에 그림자의 원리를 설명해주시다가 그림자를 소재로 각자 동화를 지어보라고 권하신 겁니다.
그래서 소현이는 즉석에서 ‘그림자의 후회’라는 멋진 그림동화를 지었습니다.
선생님께도 칭찬받고 집에 와서는 아빠께도 칭찬받았습니다.
더구나 상으로 ‘안녕, 자두야’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소현이는 ‘안녕, 자두야’ 다음 편을 보기 위해 그림동화를 또 한 편 지었습니다.
그림일기 대신 그림동화를 지어도 상을 주시겠다는 아빠 말씀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어제 선생님께서 주신 동화짓기 힌트를 바탕으로 지은, ‘그림자의 사랑’이라는 그림동화입니다.
그림자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그림도 더 잘 그려집니다.
아빠가 크게 감탄하시며 또 상을 주십니다.
아빠는 소현이의 그림동화, 그림자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말씀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요한복음 1:9)
성경말씀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소개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세상에 두 가지 선물을 주시죠.
하나는 제 빛깔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사람들이 빛으로 제 빛깔을 되찾게 될 때 자연스레 얻게 되는 또 하나의 벗이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빛, 진리의 빛, 말씀의 빛을 받으며 점점 제 빛깔을 되찾아 갑니다.
정신없이 사느라 까맣게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마음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빛으로 주님의 마음을 갖게 되자, 자연스레 닫혔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네요?
그러자 그동안 안 보이던 이웃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안 들리던 지구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안 느껴지던 길고양이의 추위와 배고픔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권력가들의 부정, 부패, 불의에 화가 치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점점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내 안에 빛이 들어오기 전, 내 안에 주님말씀 들어오시기 전에는 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빛으로 내 빛깔을 찾게 되자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그림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는 불편합니다.
그림자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내 안에 진리의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질수록, 내 그림자는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그만큼 내 마음은 더 불편해집니다.
내 마음에 평화가 사라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주님, 저는 좀 흐릿한 빛이 되고 싶어요.”
“왜?”
“빛이 세면 그림자도 진해지거든요.”
“왜? 그림자가 싫으냐?”
“네. 그림자가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주님말씀의 빛으로 그림자가 생기니까요, 안 보이던 것도 막 보이고, 안 들리던 것들도 막 들려오고, 좀 불편합니다. 아니 솔직히 너무 많이 불편해요. 저희 같은 주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불편한데, 저희가 세상 빛이 되어서. 그것도 너무 센 빛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말씀 그림자’가 생긴다면, 그 사람들 아마 불편해서 못 견딜 거에요. 아무도 진리의 빛, 예수님 말씀 안 들으려할걸요?”
“얘들아, 그런데 그 불편한 그림자 덕분에 미워하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겠느냐? 너희 혹시 소현이가 지은 ‘그림자 사랑’ 모르느냐? 그림자 때문에 평화가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그 멋진 이야기 아직도 안 읽었느냐?”
“에이, 예수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림자가 어떻게 사랑해요?”
“내가 옛날이야기, 아니 요즘 이야기 하나 들려줄 테니 잘 들어보렴. 대한민국에는 교회가 참 많지? 그런데 그 교회들이 이리저리 많이 갈라져 있단다. 대표적으로 감리교회랑 장로교회랑 서로 갈라져서 다투고, 작은 교회 큰 교회들이 서로 갈라져 다투는 거 너희는 아느냐? 오래 전에 내 사랑하는 제자 하나가 전라도 지역에 가서 ‘다운교회’라는 교회를 세웠단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감리교회를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그런데 그 교회는 감리교회였지. 그러자 동네에서는 감리교회는 이단이라며 하도 왕따를 시키는 바람에 결국 교회 문을 닫고 말았단다. 그 뿐 아니야, 강화도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 그런데 서울 어느 동네에 서로 이웃해 있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있었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이웃사촌이 아니라 이웃원수들이었지. 한 교회는 자그마하고, 다른 한 교회는 매우 큰 교회였어. 설상가상으로 작은 교회 교인들 여럿이 이웃에 있는 큰 교회로 슬그머니 옮기는 일이 벌어진 뒤로는 그 작은 교회는 큰 교회를 무지무지 미워하게 되고, 큰 교회 교인들도 작은 교회를 깔보고 무시하게 되었단다. 나중에는 감리교가 이단이다, 아니 장로교가 삼단이다 할 정도로 동네 개구쟁이들 싸움처럼 되어버렸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불현 듯(불을 켠 듯) 성경 말씀이 두 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제대로 비치기 시작하신거야. 그 진리의 빛은 점점 강렬해져갔지. 그러자 그림자도 점점 선명해져갔단다. 그러자 목사와 교인들은 아직 채 느끼지 못했을 때, 그림자들이 먼저 서로를 느끼기 시작했지. 서로가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를 말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런저런 것들로 서로를 평가 하지만, 그림자는 그렇지 않단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서로 똑같았거든. 알록달록 자랑스럽게 으스대는 빛깔이 아니라, 그림자들은 서로 똑같이 통증, 통증 같은 것이거든! 약한 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을 고스란히 내 몸에 느끼게 되는 통증 말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 아느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불쌍히 여기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 말이다. 마침내 큰 교회 작은 교회의 그림자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 그러자 처음에는 몹시 힘들었지만, 차차 두 교회는 서로를 다시보게 되었고, 서로를 올바로 알아가게 되었단다, 나중에는 두 교회 목사들이 각각 상대교회 예배를 인도하게도 되고, 두 교회가 친선 체육대회도 함께 하게 될 정도로 친하게 되었지. 어때, 이제 좀 알겠느냐? 그림자는 불편하지만, 그림자는 통증이지만, 그림자는 평화를 깨뜨리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그림자가 평화를 이룬단다. 무너진 평화를 재건한단다. 왜냐고? ‘말씀 그림자’는 내 진리의 빛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너희도 이제부터 세상의 빛이 되고, 너희 착한 빛을 온 세상에 환히 비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 ‘말씀 그림자’를 두려워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거라. 끝으로, 오래전 내 사랑하는 제자 바울이 한 말을 들려주마.”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얘들아, 너희도 이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스도의 마음이 무엇이지? 그건 십자가 마음이란다. 너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십자가 사랑’ 말이다. 이 아프지만 빛나는 마음을 너희는 지금 가지고 있느냐?”
[이정훈 지음, 2014년 2월 9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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