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의 피난처”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9:1-4)
1.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님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2.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3.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4. 주님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27:1, 4-9)
1.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4.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5. 재난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
6. 그 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주님의 장막에서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
7. 내가 주님을 애타게 부를 때에, 들어 주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8. 주님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9. 주님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나를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나를 버리지 마시고,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10-18)
10.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
1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식을 전해 주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2.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
13.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14. 내가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준 일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5. 그러므로,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스데바나 가족에게도 세례를 주었습니다마는, 그 밖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마태복음 4:12-23)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15.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16.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17.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 동생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며 얻은 제목은, “내 생명의 피난처”(시편 27:1)입니다.
4본문을 관통하며 이어주는 끈과 같은, 이번 주 주제어, “큰 빛”입니다.(이사 9:2)
그런데 이 “큰 빛”은 4본문을 읽을수록 점점 여러 모양으로 발전해갑니다.
① 구약(이사야 9:1-4)
먼저 구약 본문에서, “큰 빛” 앞에 “어둠”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1절, 2절)
“큰 빛”으로 “어둠”이 변하는 것입니다.
멸시받던 사람들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1절)
이는 마치 창세기 1장 첫머리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성실문화』 77호 ‘구약묵상’에서 김준헌목사님은, 이 부분이 ‘새 창조’의 희망을 품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성실문화에 실린 4본문 묵상과 주석은 매우 유익합니다. 성실문화를 구독 신청하시거나, 아니면 다음카페 ‘성서일과사랑방’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큰 빛”으로 “어둠”이 변화하는 것에서 ‘새 창조’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전적 개입,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출현 말입니다!
그리고
“큰 빛”은 3절의 “큰 기쁨”으로 이어집니다.“큰 기쁨”의 이유는 물론 “큰 빛”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약자들을 짓누르던 “멍에”, “통나무”, “몽둥이”들을 주님께서 꺾으셨기 때문입니다.(4절)
오늘 복음서본문은 그 “큰 빛”, 그 멍에들을 꺾어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 멍에들을 꺾어주신다는 시적 표현이 현실적으로 묘사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마태복음 4:23)
② 시편(27:1, 4-9)
오늘 시편은 약자, 억눌린 자들의 멍에를 꺾어주실 “큰 빛”이 바로 주님이시라고 노래합니다.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1절)
그 멍에들을 꺾어주신 주님을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6절)
그런데 오늘 시편본문에서는 주님을 나의 빛이시며, 특히 “내 생명의 피난처”라고 묘사합니다.
(비교하자면, 공동번역은 새번역처럼 “내 생명의 피난처”로, 그런데 개역개정은 “내 생명의 능력”이라 번역했습니다)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1절)
그리고 연이어서 “주님의 집”, “성전”(4절), “주님의 초막”, “주님의 장막”(5, 6절)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시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핵심어는, “주님의 집”, 즉 “성전”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성전”을 달리 표현한 “주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9절)
주님의 얼굴과 관련한 구절은 오늘 시편본문 다른 곳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4절의 “주님의 자비로운 모습”, 그리고 8절인데, 이는 개역개정 번역으로 볼 때 더 잘 드러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편 27:8절, 개역개정)
정리하면, 나를 구원하시는 큰 빛, 내 생명의 피난처, 주님의 집, 성전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이를 좀 더 강렬하게 “주님의 얼굴”이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③ 서신서(고린도전서 1:10-18)
“큰 빛”, 즉 “내 생명의 피난처”, “주님의 집”, “주님의 얼굴”은 오늘 서신서 본문에서 무엇이라 묘사되었나?
바로 “복음”입니다.(17절)
좀 더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말씀”(18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오늘 바울은, ‘주님의 얼굴’ - ‘주님의 몸 교회’가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생각”으로 뭉친(10절) ‘한 몸’입니다.
여기서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말씀”--나를 희생하여 너를 살리는, 내 살을 떼어 너를 먹여 살리는--곧 “복음” 일 것입니다.
④ 복음서(마태복음 3:12-23)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던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최대한 가깝게 묘사한 것이 “주님의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는 “주님의 얼굴”, “큰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환하게 드러냅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구약본문 말씀(1, 2절)이 바로 오늘 복음서본문에 인용, 성취되고 있습니다.(15, 16절)
오늘 복음서 본문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뒤, 광야 40일 금식 후 악마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직후의 상황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 말씀충만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외치신 첫 일성, 복음의 첫 소리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17절)
그리고 이 외침은 두고두고 계속 되었습니다.(17절)
이 복음은 매우 긴박하면서도 긴장되면서도 감사하고 행복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임박한 천국 일꾼으로 베드로 형제들과 세베대의 아들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외된 땅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억눌린 백성들의 멍에를 꺾어주기 시작하십니다.
⑤ 정리
주현절 3주, 4본문을 통하여 그분께서 다시 우리에게 환하게 드러나십니다.
4본문의 알맹이 “큰 빛”이란 구체적으로 “주님의 얼굴” 곧 예수 그리스도일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내가 거추장스러운 것 다 내려놓고 얼른 가서 만나고 따라가야 할, 성전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명을 받은 어부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제자로 따라나서는 장면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조국의 광복(光復)을 위해 가족을 등지는 광복군(光復軍)들입니다.
그분들이 가족을 등진 것은, 가족을 내팽개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처자식들이 광복(光復)을 보고, 그 빛을 만끽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는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이 부모와 가족들을 버려두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짧게는 로마 식민지 시대와 폭군 헤롯으로부터의 광복이요,
길게는 영혼구원, 즉 천국복음으로 인한 천국주인이 되는 광복이었을 것입니다.
내 온 가족과 함께!
⑥ 나머지
* 지금 나를,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그 “멍에”, “통나무”, “몽둥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최근 불거진 금융 신용정보 유출사태는 전 국민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내 재산을 지키고 내 신변을 지키는 방화벽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입니다.
크건 작건 내 재산, 내 소유가 나를 이렇게 부자유하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최근 제 아내의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동료들께서 보내주신 정보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마이뉴스 십만인 클럽, ‘김익중 교수 특강’을 보았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이후로 벌어지고 있는 핵문제들이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동영상을 보는 동안 내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핵무기, 핵발전소가 이렇게 큰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이건 내 재산, 내 신변의 문제 정도가 아니라, 바로 나와 내 가족들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 시대를 짓누르는 멍에들을 꺾어주실 그분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이 재난으로부터의 ‘내 생명의 피난처’, 주님의 집, 성전, 즉 교회를 찾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그런 피난처가 되기에 합당합니까?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늘 시편 27:4절 노래가 두고두고 두근두근... 마음에 남아 진동합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을 병행하여 다시 새깁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시편 27:4, 새번역)
야훼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야훼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야훼를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시편 27:4, 공동번역)
** 어젯밤 기도회 때 저희 집 장남 선구가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첫 제자로 삼으신 특별한 까닭이 있냐고?
저는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대답해줬습니다.
특히 NQ(Network Quotient) 즉 공동체지수에 대해서 길게 말해줬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어부들은 배를 타면 상명하복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설명했습니다.
목숨을 건 일이기 때문입니다.
큰 파도를 만났을 때, 또는 해적을 만났을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어부들!
그래서 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전래민요 ‘뱃노래’ 몇 종류를 꼭 가르칩니다.
특별히 교회의 생일날 뱃노래를 적당히 개사해 부를 것을 권합니다.
교회! 하면, 구원의 상징, 방주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말씀 동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소현, 원덕초등학교 4학년, 『성실문화』 77호)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며 선포를 하셨다.
그의 선포하는 모습이
장군이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말씀 시조]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7호)
요한이 붙잡히니 예수께서 외치시네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웁다
어부들 제자삼으시고 갈릴리를 품으시네
[말씀 서예] (벽해 오세주 목사님 작품, 『성실문화』 77호)
[말씀 노래] 회개하여라, 나를 따르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77호)
1. 회개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 세례요한 뒤를이어 예수께서 외치시네
갈릴리 가버나움 그늘진 백성에게, 가던길 돌이키라 소리높여 외치시네
2. 오너라 오너라 나를따라 오려므나, 베드로야 안드레야 나를따라 오려므나
내가너를 사람낚는 어부로 삼으련다, 야고보야 요한아 어서어서 오려므나
3. 갈릴리 구석구석 복음을 선포하고, 그늘진 백성들을 치유하신 주예수여
가던길 돌이키고 모든소유 내려놓고, 너울너울 덩실덩실 주만따라 가오리다
[말씀 동화] 미래소년 나오토가 방주를 지었어요!
푸른바다 저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높이 하늘높이 뭉게꿈이 피어난다∼
여기 다시 태어난 지구가 눈을 뜬다 새벽을 연다∼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난∼♬
세상에서 코난을 가장 좋아하는 나오토는 오늘도 힘차게 노래 부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어린이가 되어버렸어도, 나오토에게는 코난이 있어서 그 고난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오토는 코난과 닮았습니다.
과학기술을 하늘처럼 믿고 까불다가 망해버린 세상!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기술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인더스트리아 사람들과 싸우는 코난!
방사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나오토, 지금 핵발전소와 싸우는 나오토는 정말 코난과 많이 닮았습니다.
나오토는 일본 후쿠시마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삽니다.
푸른 바다 위로 흰 갈매기 떼가 날고, 그 위에는 꿈처럼 뭉게구름이 퍼져가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지금 나오토는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게 된 것입니다.
고기잡이 나가셨던 아빠가 실종되고 아빠를 찾으러 나가셨던 엄마마저 바닷물에 휩쓸려가셨습니다.
특히 마을에서 가까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살아남은 마을사람들은 전부 방사능을 피해 떠났지만 나오토는 가족을 찾아 헤매다가 피신을 못했지요.
뒤늦게 대피소를 찾았지만, 너무 많이 방사능에 피폭(被曝)되어서 대피소에 들어올 수 없다네요.
피폭이 뭐냐고요?
피폭이란 방사능이 내 몸 안팎에 묻어버리는 걸 말하는 겁니다.
나오토는 낙진(落塵)으로 샤워를 한 셈이었거든요.
낙진은 또 뭐냐고요?
낙진은 ‘떨어지는 먼지’라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방사능 먼지를 말합니다.
핵무기가 폭발하고 핵발전소 사고가 날 때 하늘로 치솟았던 그 방사능이 먼지가 되어 떨어지는 거죠.
그 방사능 낙진이 몸에 묻거나, 낙진이 땅에 떨어져 물을 오염시키고 흙을 오염시켜 농산물이 오염되면 결국 사람 몸속까지 방사능이 쌓이게 되고, 암과 같은 크나큰 질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흔히 낙진을 가리켜 ‘죽음의 재’라고 부른답니다.
나오토는 하는 수 없이 대피소를 포기하고 멀리 친척집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척집에서도 현관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습니다.
방사능 피폭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한 것입니다.
잠깐 낙심했지만 우리 씩씩한 나오토는 다시 힘을 내어 걷고 또 걸어서 혼자 집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집에 돌아와 먹을거리를 챙겨서 최대한 방사능이 없는 먼 곳으로 피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오토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왜냐고요?
집에 와보니 사라졌던 강아지 포비가 돌아와 있었거든요.
누구보다 ‘날쌘돌이’였던 포비는 쓰나미에 다쳤는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죠.
그런데 그뿐 아니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가면서 버리고 간 이웃집 강아지들과 가축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나오토는 집에 남아 포비와 버림받은 가축들을 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집마다 헛간을 뒤져 사료를 찾아 주고 물을 먹이며 매일매일 가축들을 돌보았습니다.
나오토가 돌보기 시작하자 가축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난∼♬
나오토는 고난 중에도 코난을 흥얼거리며 오늘도 열심히 텃밭을 일굽니다.
몸이 예전보다 훨씬 쉽게 피곤해져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코난 노래를 부르며 코난처럼 씩씩해지려고 애씁니다.
불쌍한 가축들의 사료가 부족할 것 같아서 콩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방사능에 오염된 물과 오염된 땅이지만 나오토는 오늘도 콩을 심고 물을 줍니다.
코난에게 사랑하는 여자 친구 라나가 있듯이, 우리의 나오토에게는 유리카가 있습니다.
유리카는 한마을 친구입니다.
유리카는 쓰나미와 핵발전소 사고 때 마침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친척집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유리카는 적은 양이지만 방사능에 피폭되었습니다.
방사능은 특히 여자 어린이에게 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유리카는 엄마와 함께 방사능을 피해 깨끗한 이웃나라 한국에 가 있습니다.
지금 나오토는 유리카가 매우 보고 싶습니다.
유리카는 볼 수 없지만 대신 유리카의 아빠 아베 아저씨는 가끔씩 뵐 수 있습니다.
아베 아저씨는 지금 대피소에서 사십니다.
왜 가족과 함께 후쿠시마를 떠나지 않았느냐고요?
그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다 피난을 가면 피해 보상금을 안 준다는 정부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베 아저씨는 마을에 혼자 남은 나오토가 걱정되어서 가끔씩 먹을거리를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아베 아저씨는 나오토가 유리카와 쉽게 대화할 수 있도록 노트북도 구해주셨습니다.
이젠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에서 인터넷도 불통이지만, 두 시간만 걸어가면 인터넷이 됩니다.
역시 유리카의 편지에는 유리카가 가장 좋아하는 나우시카 그림이 들어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착하고 굳센 소녀, 만화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입니다.
코난 흉내를 내며 놀 때 나오토는 은근히 유리카가 라나처럼 행동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유리카는 얼른 코난 뺨치게 터프하고 씩씩한 나우시카를 흉내 내곤 했죠.
그러고 보니 코난의 세상도 나우시카의 세상도 모두 황폐한 세상이네요?
어른들의 탐욕 때문에 망가진 세상, 그 세상 끝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살아남은 어린이들입니다.
코난과 나우시카는 지구의 희망입니다.
나오토와 유리카는 코난과 나우시카처럼 되자고 다짐하며 오늘도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에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유리카가 한국에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로운 유리카가 어느새 성실한 교인이 되었나봅니다.
가장 친한 벗 나오토에게 벌써 전도를 시작하네요?
유리카는 성경구절도 보내왔습니다.
요사이 가장 좋아하고 매일매일 암송하는 성경구절이라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이사야 9:2)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재난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시편 27:1, 5)
처음 보는 성경구절이지만, 왠지 나오토의 마음에도 쏙 들어옵니다.
특히 ‘죽음의 그림자’라는 구절과, ‘내 생명의 피난처’라는 구절이 마음에 듭니다.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시라는데... 주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주님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피난 간 대피소보다 더 좋은 분일까?’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마태복음 4:23)
‘아하! 주님이라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군!’
나오토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예수님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늘따라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나오토의 마음에 쏙 들어오십니다.
왠지 예수님께서 방사능의 모든 질병과 모든 아픔을 고쳐주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리카는 재미난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나오토는 압니다.
그런데 그게 성경에 나오는 것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나오토도 점점 유리카처럼 성경과 예수님, 그리고 교회에 대해 관심이 깊어갑니다.
방주란, 아주 먼 옛날 온 세상이 물에 잠겨 다 죽게 되었을 때, 사람과 동물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지은 커다란 배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노아 할아버지가 지었습니다.
그런데 유리카는 그 방주가 지금도 있다고 하네요?
그게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교회라고?’
나오토는 가축들 먹이는 일도 힘들지만, 매일매일 두 시간씩 걷고 또 걸어 유리카의 메일을 읽습니다.
힘들어도 메일은 매일매일 읽어야 제 맛입니다.
유리카가 보내준 성경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재미를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찬송부르는 법도 배웠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성경말씀을 읽고 찬송을 부를 때마다 왠지 마음에 큰 힘이 느껴집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문득, 나오토는 자신이 노아할아버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워진 동물들을 구해낸 노아할아버지!
마침내 나오토는 자신이 돌보는 가축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방주를 지어야지!’하고 결심했습니다.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 집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오토의 집 대문 앞에 십자가와 간판을 달았습니다.
간판에는 ‘방주교회’라고 이름도 지어 굵은 매직펜으로 써넣었습니다.
교우라곤 나오토와 나오토가 보살피는 가축들이 전부입니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방주니까 가축들도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목사님만 모셔오면 되는데 아직 모셔올 목사님이 없어서 그게 가장 아쉽습니다.
가끔씩 유리카의 아빠 아베 아저씨도 오셔서 함께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십니다.
어느 날 예배를 마친 뒤에 아베 아저씨는 나오토에게 어려운 단어 하나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나오토 군, 너는 참 씩씩하구나. 부모님을 잃고 방사능 속에서 살면서도, 너는 정말 코난처럼 씩씩하구나! 네가 우리의 희망이다! 네가 바로 지구의 희망이야! 그리고 나오토 군, 이 말을 꼭 명심하거라.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단다. 아주 나쁜 일이 뒤집어져서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지. 예를 들면 내 몸의 암덩어리가 오히려 복덩어리로 변한다는 거야. 너와 유리카 덕분에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쓰나미와 핵발전소 사고가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되었구나. 자, 이젠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예수님만 굳게 믿고 핵발전소를 없애는 일만 남았다.”
나오토는 전화위복이라는 멋진 말을 배우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맞아! 내가 부모님을 잃고 몸에 병도 들었지만, 예수님을 알게 되고 방주의 참 뜻도 알게 되었네? 게다가 내가 노아할아버지 흉내 내며 방주를 세우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전화위복이로군! 그런데 진짜 방주라면 생명을 건강하게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해! 나와 내 가축들은 비록 방사능에 오염되었지만, 다른 생명들은 건강하게 보호해 줘야 진짜 방주지!’
그리고 나서 나오토는 유리카에게 매일매일 방주교회의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냅니다.
유리카에게 한국 곳곳에 다니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증언하라고 권했습니다.
이제 유리카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처럼 여기저기 씽씽 바람처럼 다니며 증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옆 방주교회 이야기도 전합니다.
더 이상 방독면이 필요 없는 세상, 더 이상 핵발전소 사고 걱정 없는 세상을 위해서 이제부터 좀 불편해도 전기를 절약하고 모든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말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모두 방주의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온 세상에 홍수처럼 가득했던 핵발전소와 방사능이 다 사라진,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회복된 깨끗한 세상, 다시 태어난 지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나오토는 힘차게 성경말씀을 암송합니다.
그리고 코난처럼 씩씩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푸른바다 저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높이 하늘높이 뭉게꿈이 피어난다∼
여기 다시 태어난 지구가 눈을 뜬다 새벽을 연다∼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난∼♬
[이정훈 지음, 2014년 1월 26일 주일 아침]
* 나오토와 유리카는 실존인물입니다. 언젠가 SBS스페셜에서 본 후쿠시마의 마츠무라 나오토 씨(어른)가 버려진 가축 돌보는 사연, 그리고 향린교회 예배 동영상에서 본 후쿠시마 유리카 어린이의 증언을 감명 깊게 듣고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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