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만민의 주님!”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42:1-9)
1.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2.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3.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4.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5.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는 온갖 것을 만드셨다. 땅 위에 사는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고, 땅 위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주셨다.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
7.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이다.
8. 나는 주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9. 전에 예고한 일들이 다 이루어졌다. 이제 내가 새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한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다."
(시편 29)
1. 하나님을 모시는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돌려드리고 또 돌려드려라.
2.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 물을 치신다.
4. 주님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주님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5. 주님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6. 레바논 산맥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시룐 산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
7.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튀긴다.
8. 주님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님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
9. 주님의 목소리가, 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10. 주님께서 범람하는 홍수를 정복하신다. 주님께서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신다.
11.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
(사도행전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37.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3:13-17)
13.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1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며 얻은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 만민의 주님!’(행전 10:36)입니다.
오늘 4본문들은 주현절 1주(주님의 수세일)이라는 예배력 주제에 따라 선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묵상하기에 앞서, 먼저 주현절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현절, 현현절이라고도 불리는 주현절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더불어 3대 절기로 매우 중요한 절기였습니다.
뒤에 성탄절이 제정되면서 조금 축소되었고, 특히 한국 개신교회들은 주현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주현절은 주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보여주셨던 힘찬 천국사역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되새기는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주현절을 두고 교회들은 두 가지 면에서 각각 두 종류로 나뉩니다.
먼저 천주교회처럼 동방박사 방문 때부터 (예수께서) 이미 공적으로(주님으로) 나타나셨다고 보는 입장,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주님으로 드러나셨다고 보는 나머지 교회들의 입장입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1월 6일 주현절을 동방박사 방문 기념일로, 그 직후에 오는 주일을 주님의 수세일로 기념하는 식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또 하나 주현절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주현절(1월 6일), 그리고 주현절 첫째 주일만 절기의미를 부여하고, 그 뒤 (사순절 전까지) 이어지는 주일들은 주현절기와 무관한 비절기 주일들(연중주일, 일반주일 등으)로 부르며 주현절의 주제(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입장이 있습니다.
반면에, 주현절 마지막 주일까지 주현절의 주제에 입각해서 본문을 보려고 애쓰는 입장의 교회들도 있습니다.
저는 계간 『성실문화』를 통해 후자의 입장에 서서 본문들을 묵상하고 그렇게 예배를 준비하는 편입니다.
이번 2014년 주현절(1월 6일) 본문말씀 묵상, 예배준비노트, 말씀동화 등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만, 지난 1월 6일 월요일, 마침 저희 이웃에 있는 ‘홍성훈 오르겔바우’(파이프 오르간 공장)의 시무예배를 인도하게 되어, 마침 그날이 주현절이어서, 주현절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고, 말씀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홍성훈 선생은 저희 『성실문화』의 동인이시기도 합니다.
홍성훈씨가 독일에서 10여년 공부하던 지역이, 1월 6일 주현절을 공휴일로 지킨다는 얘기를 들어 더욱 뜻 깊었습니다.
오늘은, 늦었지만, 지난 1월 6일 주현절 말씀노래와, 오늘 주현절 첫째 주일 말씀노래까지 모두 싣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말씀노래는 제가 가사를 짓고, 최지혜 선생께서 곡을 붙여주셨습니다.
최지혜 선생님은 우리가락 작곡가로 매우 실력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린이들도 금세 외워 부를 수 있도록 쉽게 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최지혜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머리글이 길어졌네요.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반복하지만, 오늘 4본문의 알맹이를 요약하자면, 만유(萬有, 모든 존재)의 주(主), 만민의 구원자이신 “주님”과 그분의 “공의(의)”입니다.
① 구약(이사야 42:1-9)
오늘 구약 본문에서 가장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8절입니다.
“나는 주(여호와)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느낌이 매우 강렬합니다.
아마 주현절 첫 주일이어서 그럴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환하게 드러내시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구절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크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1절입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선언적이고 명령형인 두 구절 모두 힘이 넘치고 당당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의 종’은 한마디로 공의를 세우고(4절) 베푸는(1절, 3절) 존재입니다.
심지어 6절에서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고까지 한 번 더 강조하실 정도입니다.
의란, 공의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는 공의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만 세우고 전할 수 있습니다.(1절)
둘째, 거세고 거칠고 거대하기만 할 것 같은데, 실은 매우 섬세하고 자상하게 펼쳐지며(2절, 3절), 또한 매우 끈질깁니다.(4절)
(한마디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가시는 스타일이, 매우 조용하면서도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셋째, 어두움에 갇혀 있는 이들을 환하게 풀어줍니다.(7절)
그러고 보니, 7절 바로 앞에,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내 가정이, 내 교회가, 내 직장이, 우리 사회가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는 환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나를 위해, 이렇게 어두컴컴한 사회를 위해 주님이 종을 세우십니다.(그렇게 스스로를 드러내십니다) 아주 환하게!
하나님의 공의 그것은 한 마디로, 갈 길 몰라 헤매는 앞이 캄캄한 우리에게 바른 길을 환하게 보여주시는 구원의 빛입니다.
바벨론 포로시절 백성들에게 들려주셨던 오늘 이 하나님 음성은, 왠지 매우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이 듭니다.
② 시편(29)
오늘 구약본문말씀이 하나님의 공의를 환한 빛으로 묘사했다면, 오늘 시편본문은 그것을 주님의 우렁찬 목소리로 묘사합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약 7회 반복해서 나옵니다.(3∼9절)
특히 3절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며 물위로 올라오실 때 들려오는 성부의 음성, 즉 오늘 복음서 본문을 연상시킵니다.
주님의 목소리가 물 위로 울려 퍼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큰물을 치신다.(3절)
아무튼 오늘 시편은, 오늘 구약본문처럼, 아주 거침없이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두드러지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주현절 첫째 주일 시편본문으로서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크고 강렬한 주님 목소리, 힘 있고(4절), 불꽃이 튀길 정도로(7절)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주님 목소리를, 과연 지금 내가 알아듣고 있는가?
혹시라도, 내 삶의 주변 곳곳에서,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주님 목소리를, 지금 내가 전혀 엉뚱한 소음으로 치부하고 흘려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랑은 전혀 입장이 다른 정치적인 구호 정도로만 여기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마침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매일성서일과 본문들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증폭되었습니다.
(목요일 ; 사도행전 9:3-6절)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금요일 ; 사도행전 9: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금요일 ; 사무엘상 3:10)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지난 주 성서일과사랑방에서 이 질문을 했을 때, 동인들 가운데서 엄재문 목사님께서 이런 답을 주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요한 10:27)”
주님 목소리 제대로 알아듣고 그 말씀을 제 때, 제대로 따를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평화의 복을 내리십니다.
오늘 시편본문 마지막 절이 바로 그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내리신다.(11절)
아무튼, 오늘 구약본문과 연관해서, 오늘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 그것은 한 마디로, 돌아가야 할 제 집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 오리무중(五里霧中) 나에게 선명하게 들려오는 내 엄마의 목소리, 바로 구원의 음성입니다.
③ 서신서(사도행전 10:34-43)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한 설교입니다.
요약하면, 성부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사역과 고난, 죽음, 부활, 재림약속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입을 통한 ‘주현(主顯)’증언입니다.
이 증언을 한마디로 요약한 요절을 꼽으라면,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36절)입니다.
그리고 이 요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 구절은 43절일 것입니다.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④ 복음서(마태복음 3:13-17)
오늘 복음서 본문은 매우 짧으면서도 강렬합니다.
짧은 본문을 길게 묵상하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주님으로 나타났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물속에 오래 숨어 계시다가 “짜잔∼”하고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면서, 그동안 변장했던 그 변장용 화장품이 벗겨진 것이 아닙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면서, 인성(人性)이 씻기어지고 신성(神性)이 더 드러나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낮추시고 낮추셔서 죄인들과 더불어 세례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15절)
이게 알맹이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마태 3:15)
이 구절은 마태복음이 기술한 예수님의 첫 말씀이십니다.
즉,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기본이 되는 말씀으로 보여집니다.(독일성서공회판 성경해설)
이 “모든 의”를 요약하자면, 낮추시고 또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낮추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대’입니다.(독일성서공회판 성경해설)
그 연대는 먼저 사람과의 연대입니다.
낮추고 또 낮추시어 마리아의 몸을 빌어 구유 안에 태어나신 성육신 순간부터 이미 그 연대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대는 하나님과의 연대입니다.
오늘 16, 17절에, 성경에서 유일하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한 자리에 등장하여 연대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내내 늘 낮은 자들과 연대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그분과 연대하셨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끊임없이 관계하고 소통하신 것입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눈먼 사람, 옥에 갇힌 사람, 어두운 영창에 갇힌 사람들과 관계하고 소통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의”를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이사 42:6, 7 / 마태 3:15)
⑤ 정리
오늘 주현절 첫째 주일 성서일과 4본문은, 어지럽고 어두운 시대의 빛으로 오신 구원의 주님을 보여주십니다.
나의 탐욕으로 창조질서가 무너진 이 땅, 마치 영화 『설국열차』처럼 부익부 빈익빈, 약육강식만 남은 것 같은 이 땅, 참 지도자가 없어 무너져가는 이 세상에 강렬한 목소리로 우리를 사로잡으시는 만민의 주님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그분께 집중하고, 그분께 희망을 걸고, 그분께 목숨을 걸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은, 거기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눈먼 사람, 옥에 갇힌 사람, 어두운 영창에 갇힌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관계하고 소통하시는!
그런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부드럽고 자상하신 하나님의 공의!
저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시기 위해 한없이 낮아지시는 그런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⑥ 나머지
오늘 복음서 본문말씀 중 성부하나님의 음성은, 주현절 첫째 주일 대주제를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17절)
참고로, 주현절 마지막 주일인 주님의 산상변화주일 본문에서도 같은 말씀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 또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말씀 서예] (시편 29:11) 벽해 오세주 목사님 글씨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말씀 시조] 마태복음 3:13-17 (이정훈 지음)
아니요 아니되오 제가 어찌 선생님을
떨리는 요한 앞에 예수 세례 받으실 때
내 사랑 내 아들이다 천부음성 울리다
[말씀 노래1 주현절(1월 6일)]
(마태 2:1-12) 동방의 박사들이
1. 동방의 박사들이 낯선별을 보았어요, 이세상 태어나신 큰임금님 별이래요
별따라 뚜벅뚜벅 왕을찾아 두근두근, 낯설고 물선길을 용기내어 걸었어요
2. 동방의 박사들이 그의별을 보았어요, 예루살렘 태어나신 평화의왕 별이래요
주민들이 웅성웅성 헤롯왕은 부들부들, 낯선임금 성탄소식 예루살렘 술렁여요
3. 동방의 박사들이 주님별을 보았어요, 베들레헴 태어나신 생명의왕 별이래요
별빛이 반짝반짝 박사들은 싱글벙글, 황금유향 몰약바쳐 예수님께 경배해요
[말씀 노래2 주현절 1주(주님의 수세일)]
(마태 3:13-17) 예수님 세례 받으시던 날
1. 천하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 갈릴리 고향떠나 요한을 찾으시네
요단강 터줏대감 요한이 깜짝놀라, 깨끗하신 선생님을 제가어찌 씻으리요
2. 낮은데로 낮은데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낮추시고 낮추시는 예수마음 하늘마음
맑디맑은 예수님이 요단강에 들어서니, 흐릿하던 요단물이 거울처럼 맑아지네
3. 요단강을 가르시고 물위로 나오실때, 하늘을 가르시고 성령이 나리시네
내사랑 나의아들 내가그를 좋아한다, 낮은데로 임하시는 성부성자 성령이여
[말씀 동화] 울퉁불퉁 세례반(洗禮盤)의 꿈
나는 호박돌, 울퉁불퉁 둥글넓적한 아주 자유롭게 생긴 호박돌이야.
물 맑은 개울가에 가만히 누워 하루하루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온 게 도대체 몇 년째인지 나도 몰라.
새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에 하얀 구름, 검은 구름이 천천히 흐르고,
까만 새, 하얀 새들이 꼬물꼬물 지나가네?
불그레한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은은히 바라보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하늘은 온통 벼루처럼 먹물처럼 까매진단다.
까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천만에! 까만 하늘은 파란 하늘보다 훨씬 멋지고, 열두 배나 신비롭단다.
왠지 아니?
그건, 하늘이 까매져야만 비로소 하늘나라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야.
햇님이 쿨쿨 자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하늘은 파란색 커튼을 걷기 시작하지.
달님조차 쿨쿨 잠드는 날이면, 하늘은 그야말로 온통 별천지가 된단다.
목성과 화성, 토성과 금성, 그리고 수성이 어디어디에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밤새 뱅그르르 돌아가는 국자모양 북두칠성은 환하게 알지.
그런데 가끔 달님 따라 별님들까지 모두 잠이 들어버리는 날이 있단다.
달님도 별님도 모두 잠이 드는 그런 날엔 하늘이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지.
어느 날 그렇게 주룩주룩 비오는 밤이었어.
그날도 나는 우울한 마음에 한숨만 폭폭 내쉬고 있었지.
바로 그때였어.
나를 축축하게 적시던 빗물이 내게 말을 거는 거야.
“돌멩아 안녕?”
엉겁결에 내가 대답했어.
“나 돌멩이 아니거든? 이래 뵈도 난 이 개울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 둥글넓적 호박돌이야.”
“그래그래 호박돌아 반갑다 반가워! 난 물이야 물!”
“그래 너 물인 건 알겠는데, 그런데 왜 조용히 명상 중인 나에게 말을 거는 거지?”
“호박돌아, 사실은 네게 중요한 얘기를 들려주려고 이렇게 일부러 너를 찾아 왔단다.”
“뭐? 빗물은 그냥 아무렇게나 내리고 그치고 그러는 건데, 뭐?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고?”
“그래 그래, 사실 난 그냥 보통 물이 아니야. 난 아주 특별하고 신비로운 물이란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는 언제나 어디나 어떤 모양으로나 갈 수 있지! 퐁퐁 솟아나는 옹달샘으로도 갈 수 있고, 철철 흘러넘치는 폭포수로도 갈 수 있고, 이렇게 쏟아지는 빗물로 올 수도 있단다.”
“뭐라고? 세상을 참 오래오래 살다보니 별 이상한 물을 다 보겠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냐?”
“호박돌아, 너 지금까지 거짓말하는 물 본적 있니?”
“아니... 그런 건 없는데?”
“그렇지? 그럼 그냥 믿어. 믿으면 복 받아. 그러니까 그냥 믿어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무슨 물이 이렇게 말을 잘하지?
난 물새하고도 말해보고 개울가 돌 틈에 피어나는 풀꽃이랑도 말해보고, 재잘재잘 흘러가면서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개울물 소리들은 들어보았어도, 이렇게 또랑또랑 말 잘하는 빗물은 처음이었거든.
“호박돌아. 너 혹시 예수님 아니?”
“언제였나? 흘러가는 구름에게 그 이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예수님이 누군지 잘은 몰라.”
“그렇구나.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란다. 성부(聖父) 하나님의 아드님이시지. 그래서 성자(聖子) 하나님이라고 불러. 그런데 하나님이신 그분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땅에 오신거야. 좀 어렵지? 그러면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예수님은 우리 물이랑 아주 많이 닮으셨어.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시지. 예를 들면, 지금 나처럼 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사시다가, 사시면서도 내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흘러흘러 가시다가, 어느 날 가장 낮은 곳,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리고 다시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지. 우리 물들도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흘러 바다로 흘러가 하늘로 증발하여 다시 비처럼 쏟아지잖아? 그렇게 또 예수님은 그렇게 다시 땅으로 오시마고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단다.”
“도대체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런데, 그 예수님 얘기는 왜 꺼내는 건데?”
“어? 어, 어 그래, 내 말이 좀 어렵지? 아무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0년 동안 평범하게 사시다가, 어느 날 세례를 받게 되셨어. 그 당시 세례라는 건 죄를 씻는 일이었는데,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게 되신 거지. 누가 시켜서 그러신 게 아니라, 다들 말리는데도 예수님이 스스로 세례를 받으신 거야. 내가 그랬잖아, 예수님은 스스로를 물처럼 낮추시고 또 낮추시며 사셨다고! 아무튼 예수님은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잔뜩 주눅 들어 살아가는 죄 많은 세상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신 거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주아주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 거야! 예수님께서 땅의 사람들과만 어울리신 것이 아니라, 하늘 하나님과도 어울리신 사건이야”
“뭔데? 그게 뭔데?”
“호호호, 호박돌 너 지금 굉장히 궁금하구나, 그치?”
이게 뭐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금 이 엉뚱한 빗물 이야기, 예수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건가?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빗물은 예수님 세례 받으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어.
“지금부터 2천 년 전, 저 머나먼 이스라엘 땅 요단강물은 그날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지. 나는 마침 그 때 흘러흘러 요단강을 통과하는 중이었단다. 그런데 여태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흘러만 가던 내가 순간 멈춰버린 거야. 그날도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동무들과 함께 흘러가던 내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 어느새 나는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네?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축축하게 적신 채 물 위로 솟아오른 거야. 햇빛은 쨍쨍했고, 이제 조금 있으면 나는 하늘로 증발하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아주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 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하늘로 증발하기도 전에 나는 아주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매우 뜨거운 기운을 느꼈어. 그건 햇빛 때문이 아니었어. 조금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건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거였어. 바로 예수님의 젖은 머리 위, 그러니까 바로 내 위로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신 거야. 그 때 내 기분이 어땠겠니?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뿐이 아니었어. 그 순간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거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이 하늘 음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 내 몸이 마구마구 진동하기 시작하는 거야. 진동수가 되었냐고? 육각수가 되었냐고? 아냐 그런 정도가 아냐. 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동시에 접속한 세상에서 유일한 물이 되어버린 거란다. 알아듣겠어? 호박돌아?”
난 빗물이 들려주는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어슴푸레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어.
빗물의 신기한 이야기는 계속 되었지.
“그리고 그 뒤부터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게 된 거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아무데나 막 돌아다니는 떠돌이는 아니잖아? 나는 예수님만 졸졸 따라다녔어.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졸졸 따라다녔지. 가나 혼인잔치마당에서 포도주로 변할 물이 되어 돌항아리에도 들어가 보았고, 폭풍우 치던 날 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실 때 예수님 발을 받쳐드린 물이 되기도 했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마신 물이 되었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창에 옆구리를 찔리실 때 예수님의 거룩한 피와 함께 땅에 쏟아지기도 했단다. 그 뒤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부터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성찬식과 세례식의 물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곤 한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빗물 이야기를 정신없이 듣고 있던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있어서 물었어.
“그런데 빗물아, 지금 여긴 성찬식이나 세례식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여긴 왜 왔지?”
“아차차, 내가 중요한 걸 깜빡했구나. 그럼 이제부터 내가 여기 온 목적을 말해주지. 그건 바로, 네가 세례반이 될 예정이라는 걸 알려주러 온 거란다. 얼마 안 있으면 네 몸은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거야.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것처럼, 네 몸은 절반 가까이 살이 떨어져 나가게 된단다. 그 때 너무 아파서 기절하거나 참기 힘들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절대 안 돼!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네 스스로 몸을 두 동강이로 갈라져버리지 말란 말이야! 왜냐하면, 너는 매우 소중한 세례반이 될 것이거든! 내 말 꼭 잊지 말거라. 넌 이제부터 거룩한 돌멩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예수님 머리를 적셨던 거룩한 세례물,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동시에 어루만지셨던 나, 이 거룩한 세례물이 흠뻑 적셔준 호박돌이란다! 그리고 넌 이제부터 거룩한 세례물이 담길 세례반이 되는 거야. 세례란 십자가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나를 죽이고 거룩한 주님의 몸 교회 안에 다시 태어나는 의식이란다. 호박돌아, 거룩한 호박돌아! 부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적셔서 거룩한 성도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신비로운 세례반이 되길 바란다. 그럼 이만, 샬롬!”
“아니요 아니되오 제가 어찌 선생님을
떨리는 요한 앞에 예수 세례 받으실 때
내 사랑 내 아들이다 천부음성 울리다!”
봉황리 수도원 프란씨스 수사님이 구성지게 시조를 읊조리는 소리야.
내일 주현절 첫 주일 예배 준비를 위해 모처럼 세례반을 닦으며 신명나게 말씀시조를 읊조리시는 거지.
시조는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에 자랑할 만한 멋지고 오랜 문학이고 음악이란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고?
나야 나, 그새 잊었어? 울퉁불퉁 둥글넓적 호박돌이야!
흑천 개울가에 누워있던 내가 지금은 멋진 세례반(洗禮盤)이 되었단다.
정확히 말하면 세례반 제일 꼭대기에 앉아 있는 돌확, 즉 돌그릇이 된 거야.
그날 밤, 나를 적시던 빗물, 예수님 머리를 적셨던 그 세례물의 예언대로 된 거야.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문으로 들어가는 예식이야.
그래서 난 예수님의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졌단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작품, 우주와 자연을 대표한다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그리며 지었지.
그래서 나를 지은 작가이신 오요섭 권사님은, 불로 쇠를 녹이고 구부려 발을 짓고, 뽕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다시 불로 그을려 몸통을 만들고, 양평 삼성리 흑천(黑川) 물가에 있던 나를 발견해서 머리로 삼으신 거야.
그리고 내 가슴에는, 쇠를 녹이고 두드려 씻을 세(洗)의 전서체 모양을 만들어 붙였단다.
둥글넓적한 나를 물 담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가운데를 정으로 쪼아내다가 내 속이 겉모습과 다르게 온통 옥빛 찬란한 걸 발견하고는 오 권사님은 오 할렐루야를 연발하셨단다.
그런데 나를 처음 본 수도원 수사님들은 또 다른 이유로 할렐루야를 외치셨어.
그 이유는 바로 ‘연대(連帶)’, 즉 어깨동무 때문이었지.
연대란 여럿이 하나 되어서 함께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야.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목화토금수, 즉 나무와 쇠, 그리고 돌까지 어깨동무한 모양 때문에 연대의 맛이 물씬 우러난다는 거야.
그런데 왜 세례반을 지을 때 이런 ‘어깨동무’가 중요한 것인지 알지?
아까 거룩한 나의 벗 빗물이 들려준 이야기,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시며 땅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하늘 하나님과도 연대하셨다는 사실, 기억하지?
목화금(木火金)을 이루었으니, 이제 물[수(水)]만 담기면 되는데...
그런데 아직 내 안에 물이 담기지 못했단다.
어서 물이 담겨야 세례반이 완성되는 것인데...
그래야, 하나님께서 흙[토(土)]으로 빚으신 창조의 완성, 최고의 작품(에베 2:10), 사람과 만나 세례반의 목적을 완성할 수 있을텐데...
그나저나 그날 그 빗물, 아니 예수님 세례물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우리 수도원에서 세례 받을 사람이 생기는 날, 내 안, 세례반 안에 세례물로 찾아와 줄까?
그런데 세례식이 있다고 그 세례물에게 어떻게 알리지?
누구 아는 사람?
[이정훈 지음.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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