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2.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3. 너희는 맥 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4.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5.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6.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8.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1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시편 146:5-10)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5:7-10)
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마태복음 11:2-11)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시켜서,
3. 예수께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요한을 두고 무리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10. 이 사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먼저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 4본문 말씀의 주제는, 대림절 3주 본문답게, 역시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주 본문의 알맹이는, ‘희망’입니다.
그런데, 희망은 좋은 말인데, 오늘 본문들 가운데는 희망의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납니다.
정말 내가 희망을 걸어야 하는 곳, 희망을 걸어야 할 분을 찾지 못하고 다른 것에 희망을 걸 때 말입니다.
정말 내가 희망을 걸어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오늘은 네 본문을 하나로 종합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4본문들마다 반복되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① ‘주님 오신다.’
구약, 이사야 35:4절에는 두 번 반복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포로생활로 주눅 들고 절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대단한 희망의 말씀일 것입니다.
서신서는, 야고보서 5:7,8,9절에 연이어 주님오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7)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8)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9)
복음서 마태 11:3절에는, 식민지 상황, 더욱이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 세례자 요한의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오신 주님, 오실 주님... 해방자, 메시야, 그리스도,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들입니다.
이 대림절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② ‘주님 오시면...’
오늘 구약본문은 이사야 35장입니다.
10절밖에 안 되는 짤막한 장이지만 기운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는 앞뒤 장과 비교했을 때,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 묘사될 정도입니다.(성실문화 77호 구약묵상, 김준헌 목사님)
주님 오시면... 밑바닥 막장인생이 변합니다.
인생역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살림살이가 고달프고 힘들어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그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7)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주님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8)
그러고 보니, 살림살이가 힘들지 않으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늘 본문말씀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참고 견디며 그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상당히 느슨하고 여유 있게 기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비추어, 이런 느슨한 기다림은 과연 정상적일까요?
제 생각엔... 이건 비정상적입니다.
성경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이건 상당히 문제 있습니다.
졸다가 등불 기름도 없이 신랑예수를 놓쳐버린 어리석은 다섯 처녀를 보십시오! (마태 25:1-13)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마 25:12)
이게 지금 우리 현실입니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다 해도, 사실은 너무나 여유 있는, 그래서 심히 걱정스러운 우리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깨달은 사람들은, 스스로 기득권과 재산을 버리고 청빈, 불편과 배고픔의 길을 갔나 봅니다.
(※ 그러고 보니, 오늘 구약본문은, 혼례식을 연상시킵니다. 이를테면... 사막이 꽃처럼 피어나고, 꽃이 만발하고, 거룩한 길이 나고, 그 길은 고향 길, 곧 내 본향 천국잔치 길, 그 길로는 더러운 자, 악한 자, 어리석은 자, 짐승들이 올 수 없는, 즉 예복을 갖추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으나(마 22:1-), 오히려 다른 장애인들은 예복을 갈아입듯 몸이 온통 깨끗하게 회복되는!...)
③ ‘눈먼 사람이 보고...’
오늘 구약, 시편, 복음서 등 세 본문에 공통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구약(사 35:5)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시편(시 146:8)
“눈먼 사람이 보고,” 복음서(마 11:5)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할 때마다, 육체적인 장애인과 더불어 영적인 장애를 가진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지난 주 주제는 ‘주님을 아는 지식’ 즉, ‘다시 오실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그분은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눈 뜨고도 못 보는 나조차 제대로 보게 해주실 분이십니다.
눈을 뜨면, 진리를 바로 보고(천국을 맛보고), 지금 살아가는 내 삶의 길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 재산을 정리해서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주님가신 길 따라나설 수 있게 됩니다. (마 19:21, 막 10:21, 눅 18:22)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막 10:21)
그렇다면... '나는 아직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이게 솔직한 지금 내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어떡하죠?
④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에 묘한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9)
앞부분 7절과 8절에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라며 계속 기다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미 문 앞에 서 계시다는 겁니다.
무언가 상당히 긴박하고 중대한 변화의 요청이 느껴집니다.
그 알맹이가 무엇입니까?
바로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겁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원망은 왜 생길까요?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온 지체의 실수나 범죄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세상에서는 그 구성원을 찍어내거나 숙청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공동체는, 웬만해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들을 묵상하면서, 신앙공동체 구성원 사이 원망의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건 잘못된 기대 때문에 생기는 실망과 원망입니다.
여기서 ‘잘못된 기대’라고 표현한 까닭은, 기대(期待)는 기대게(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가 기대하는 것 외의 상대방이 가진 장점, 어쩌면 정작 그 본질, 진면목은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가 바라는 것만 보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리는 이치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실문화 77호 복음서 묵상에 나온 ‘기대의 감옥’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주원남 목사님)
신앙공동체는 철두철미하게 주님께 기대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교회가 어려울수록, 교인 수가 줄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할수록, 교인들 하나하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기대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그게 원망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목숨은 걸지 못해도, 제자라면, 아니 적어도 교인이라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좀 더 먹고 그 말씀 의지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님께 희망을 거는 길입니다.
[말씀시조] (마태 11:2-11) (이정훈 지음)
감옥에 갇혀서도 그리운 그리스도
천하의 예언자도 주님만을 기다리네
조그만 심부름꾼 되어 오시는 길 닦으리
[말씀노래] (오실 그분이) (주원남 지음)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 기다려야 합니까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 걷게 되고, 나병환자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말씀 동화] 황을순 집사님 말문이 또 터졌어요
(지난 2013년 5월 19일, 성령강림절 말씀동화에 이어)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이태선 작사, 박재훈 작곡 '눈')
오랜만에 함박눈이 내립니다.
유달리 떡을 좋아하는 현금이가 ‘눈’ 노래를 신나게 부릅니다.
마치 엄마 들으라는 듯이 자꾸자꾸 노래하네요?
1절은 놔두고 자꾸 2절 가사만 반복해서 부릅니다.
현금(玄琴)이 동생 해금(奚琴)이도 오빠를 따라서 노래합니다.
특히 이 대목 ‘하얀 가루 떡가루를’을 목청껏 부릅니다.
아이들이 눈을 노래하는 건지, 떡을 노래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에요.
아이들 엄마 황을순 아줌마 얼굴이 활짝 핍니다.
좋은 옷은 못 사줘도 아이들 좋아하는 떡은 마음껏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황을순 집사님은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베트남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우리 마을 양평군 봉황면으로 시집을 왔죠.
베트남은 대한민국을 뺨칠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랍니다.
“한국 사람들은 참 떡을 좋아해. 떡으로 별의별 것을 다 만들어 먹네. 떡볶이, 떡 오뎅, 떡 샐러드, 특히 떡으로 국을 만들어 먹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걸?”
눈 타령, 떡 타령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엄마가 중얼거립니다.
사실은 황을순 집사님도 이젠 떡을 좋아합니다.
한국에 시집 온지 십여 년 만에 한국 사람이 다 된 거죠.
“참,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얘들아 우리 어서 눈 치우러 나가자.”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눈 치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베트남은 더운 나라라 북쪽 높은 산지를 제외하고는 눈 구경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 처음 눈 치울 땐 힘도 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젠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아이들과 내 집 앞길을 다 치우고 나서 얼른 교회로 달려갑니다.
봉황교회에 도착하니 목사님이 구성지게 찬송을 부르면서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할렐루야! 황 집사님 어서 오세요. 현금이 해금이도 왔구나?”
“목사님 안녕하세요?”
해금이가 넉가래로 밀면 현금이는 눈삽으로 퍼서 멀리 던집니다.
아이들은 눈을 치우면서도 이 많은 눈이 모두 떡가루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겠죠?
어쩌면 출애굽기에 나오는 만나가 딱 이런 함박눈 같은 떡가루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 많은 눈이 밉지 않고 오히려 귀해 보입니다.
여럿이 함께 눈을 치우다보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묵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문득 며칠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할아버지 돌아가신 일로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만델라 할아버지는 남아프리카 평등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목사님, 며칠 전에 돌아가신 만델라 할아버지는 참 대단한 분인가 봐요. 뉴스를 보니까 전 세계 대통령들까지 다 한데 모여서 장례식을 치를 정도였어요.”
“그래 맞다. 그분은 참 대단한 영웅이시지. 그런데 만델라 할아버지 장례식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궁금해요 목사님. 알려주세요.”
“그래 잘 들어보렴. 만델라는 남아프리카의 영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웅이기 때문이란다. 그 분이 세계적인 영웅인 까닭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바로, 내 원수들을 몰아내지 않고 오히려 품어준 사람이라는 사실이야! 그분은 자신을 27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만든 백인 권력자들, 그토록 무서운 고문과 강제노동을 시켰던 그 원수들까지도 용서했지. 용서는 하되 잊진 않는다는 정신으로, 인권을 철저히 무시했던 그 천한 독재자들을 다 용서했던 거야. 지난주일 성경말씀 기억하느냐? 로마서 15장 7절 말씀,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 그 때 설교예화로 진주조개 얘기한 것 기억하지? 진주조개는 일반조개와 달리, 부드러운 자신과 전혀 다른 날카로운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제 몸에 상처가 나더라도 뱉어버리지 않고 그대로 품어줄 때 만들어진다는 거! 그러고 보니 만델라 할아버지는 지금 이렇게 전 세계의 영롱한 진주조개가 된 셈이로구나!”
“와! 멋져요 목사님! 진주조개 만델라!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지금 그런 진주조개 만델라 할아버지 같은 분이 있나요?”
“글쎄...? 예전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없구나. 지금 우리나라 남한 대통령은 자기 편들어주지 않는 껄끄러운 사람은 큰 모욕을 줘가면서까지 쫓아내버리고, 더욱이 지금 북한에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을 오만가지 죄목을 다 갖다 붙이면서 순식간에 처형해버릴 정도이니, 지금 우리 한반도에는 그런 진주조개 같은 영웅은 없다고 봐야겠지.”
바로 그때였어요.
목사님과 아이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황을순 집사님이 갑자기 말을 시작하네요.
“목사님, 그런데요 우리 베트남에는 그런 진주조개 같은 영웅이 있어요.”
“그래요? 그게 누구시죠?”
“바로 호찌민 할아버지죠.”
“아! 그렇군요, 그 분 참 대단한 분이시죠?”
“엄마, 호찌민 할아버지가 누구세요? 어떤 분이세요?”
아이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을 바라보며, 엄마는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호찌민 할아버지를 베트남 사람들은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라고 부른단다. 호 할아버지는 엄마가 태어나던 해인 1969년에 80세로 돌아가신 분이셔, 베트남의 첫 대통령을 지내셨지. 미국과의 오랜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던 대단한 분이신 데도, 그분이 돌아가신 뒤 남기신 재산은 단 한 푼도 없었단다. 그분을 기리는 기념관에 가보면, 호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은 모자 하나,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리고 책 세 권이 전부야. 그만큼 청렴하신 분이셨지! 그런데 그분이 평생 그렇게 청렴한 정치가로 사실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 아니? 바로 그분이 남긴 책 세 권 가운데 한 권 속에 그 비밀이 담겨 있는데, 그 책이 바로 대한민국의 영웅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지으신 『목민심서(牧民心書)』야. 그 책의 영어번역본을 평생 읽으며 백성을 사랑하는 진정한 목자처럼 살아가실 수 있었던 것이지! 그래서 나는 베트남에 살 때부터, 호 할아버지가 존경했던 다산 정약용선생님 때문에 대한민국을 동경했었고, 그래서 이렇게 혼인하여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 현금이 해금이 너희를 낳게까지 된 것이란다.”
“우와∼ 짱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셨군요?”
“그런데 얘들아, 호 할아버지께서 정말 세계적인 영웅이신 까닭은 청빈한 지도자셨다는 사실 말고도 또 하나 더 있단다. 그것은 바로 평생 정치적인 적들을 한 번도 숙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호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베트남의 진주조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과거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남과 북의 오랜 전쟁 중이던 시절에도, 호 할아버지의 생일이 되면 적국인 남베트남 국민들조차 가게 문을 닫고 그 날을 기념할 정도로 그분은 존경받았던 거지.”
목사님의 눈이 휘둥그레지십니다.
“와! 우리 황 집사님 또 말문이 터지셨네요! 황 집사님 말문이 터지면 우리 교회가 두근두근 정말 신바람이 나는데, 이번에도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호찌민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분이신 줄은 나도 몰랐어요. 내가 미국에 잠깐 있을 때 들은 건데요, 미국사람들 사이에서 아시아 사람을 향한 가장 심한 욕이 바로, ‘이 호치민 같은 놈’이거든요... 그건 미국의 드높은 코를 납작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호찌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겠죠. 그건 그렇고, 정말 호 할아버지야말로 완전 진주조개신걸?.”
“맞아요 목사님, 우리 호 할아버지는 베트남의 영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웅이세요. 지금 저희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 양민들까지 학살했던 미국과 한국까지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미국과의 전쟁의 승리자라는 자부심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원수조차 품어줄 수 있는 바로 이런 호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 저희 베트남은 교육열이 대단한데요, 그것도 우리 호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은 덕분이에요. 호 할아버지는 대통령으로서 미국과의 전쟁을 지휘하고 계실 때, 그 미군의 폭격이 끊이지 않던 정신없는 전쟁 상황 중에도, 10대 후반에서 20세까지의 젊은이들 수천 명을 매년 국비를 들여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유학을 보냈었답니다. 다른 대통령 같았으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강제징집해도 모자랄 판국에 나랏돈을 들여 일이십 명도 아니고 수천 명을 해외 유학을 보낸 거예요. ‘미국과의 전쟁은 우리가 마무리하고 조국을 통일시켜 놓을 테니, 너희는 열심히 공부해서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하라!’ 이것이 우리 호 할아버지의 당부였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 베트남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인물들은 그 때 그 유학생들이죠. 그리고 지금 베트남의 그 지도자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달리 청렴하고 건강하답니다. 이 역시 호 할아버지를 닮으려는 마음 때문이죠.”
흥분한 황집사님은 숨 가쁘게 호찌민 할아버지의 역사를 자랑스레 얘기합니다.
숨차지만 우리 황을순 집사님의 얼굴은 행복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황 집사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 사람들 정말 대단하네요. 호 할아버지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고요. 더구나 그렇게까지 청렴하게 사셨다니, 만델라와 쌍벽을 이룰만한 정말 큰 진주조개 같은 분이시네요!”
현금이와 해금이는, 엄마의 고향 베트남과 아빠의 고향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호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분이 그토록 존경했던 다산 정약용선생님이 자랑스러운 겁니다.
엄마 아빠가 각각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렇게 두 배로 자랑스럽기는 처음입니다.
어깨가 으쓱으쓱, 얼굴빛도 발그레해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목사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저는 오늘 황집사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는 만델라와 같은, 그리고 호찌민과 같은 지도자가 없어요. 그런 청렴한 지도자, 더구나 정적을 숙청하지 않고 품을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지닌 지도자, 강철같이 강력하면서도 조갯살처럼 부드러운 진주조개와 같은 영웅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우리에겐 다산 정약용 같은 어른도 계셨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나라에 만델라나 호찌민 같은 분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죠.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우리 현금이랑 해금이가 만델라나 호찌민 같은 영웅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잘 교육시켜야 해요! 그런데 황집사님, 집사님도 아시겠지만, 참 교육은 돈으로 시키는 게 아닙니다. 많은 돈 들여 좋은 학원 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걸 놓쳐서는 안 되죠. 내 생각에는 지금 베트남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많은 돈을 들여 유학생활을 했지만, 그들이 한 알짜배기 공부는 큰돈 들여 한 유학공부가 아니라 바로 호찌민 할아버지가 보여준 삶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들 심장에 아로새겨진 가장 강력한 공부는 바로 이 호찌민 할아버지의 삶의 모습이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지금 우리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부모님들이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교육이니까요! 너무 각박한 모습, 아이들 학원비 벌려고 애쓰는 돈에 찌든 모습 보다는, 지금보다 한 뼘 더 즐기며 사는 모습, 가진 게 별로 없어도 나보다 더 가난한 이웃과 나누며 사는 모습, 그렇게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게 중요합니다. 적어도 만델라나 호찌민 같은 커다란 진주조개는 못되어도, 자그마한 진주조개는 될 수 있게 말이죠. 지난주일 로마서 말씀에 나온 ‘서로 받아들이십시오’처럼, 이번 주일 야고보서 말씀에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5:9)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야 진짜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조개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주일 말씀의 알맹이는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입니다.
만델라도 호찌민도 예수님을 존경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야 말로 청렴한 삶의 대명사요, ‘네 원수를 사랑하라!’하시며 원수조차 품어주는 온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조개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죠. 그래요! 우리는 이런 예수님께 희망을 걸어야 해요! 그리고 바로 우리 부모들부터 예수님처럼 살려고, 만델라와 호찌민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을순이 아줌마가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현금이와 해금이도 목사님 말씀을 조금은 알아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만델라 할아버지 덕분에 호찌민 할아버지도 알게 되었고 자랑스러운 다산 정약용선생님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느덧 교회 주변 눈을 다 치워버렸네요?
순간 현금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엄마, 우리 어서 혼자 사시는 동네 할머니 댁으로 가요. 가서 어서 눈 치워 드려요.”
현금이네는 목사님께 인사드리고 서둘러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댁을 찾아 갑니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 앞길에 잔뜩 쌓인 눈을 치워드리면서 현금이가 말합니다.
“엄마, 우리 이번 성탄절에 이 집 할머니께 떡국 많이 드시게 가래떡 해드리면 어떨까요?”
엄마의 눈에는 우리 아들 현금이 얼굴이 가래떡보다 더 환하게 빛나 보입니다.
이어서 해금이가 입을 엽니다.
“엄마, 사실은요 제가 지난주에 우리 반 예원이랑 말다툼했거든요... 그래서 며칠 동안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지냈는데요... 내일 학교에 가면 제가 먼저 사과해야겠어요. 만델라 할아버지랑 호찌민 할아버지 이야기 들으면서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났어요.”
“와! 우리 해금이 멋진 걸?”
엄마와 오빠가 해금이를 보며 활짝 웃습니다.
뉘엿뉘엿 저무는 은은한 햇빛에 우리 해금이 밝은 이마가 영롱하게 빛납니다.
꼭 진주조개처럼 빛납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12월 14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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