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이사 2:1-5)
1.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두고, 계시로 받은 말씀이다.
2. 마지막 때에,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 가운데서 으뜸가는 산이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니, 모든 민족이 물밀듯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4.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님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
(시편 122)
1.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할 때에 나는 기뻤다.
2. 예루살렘아, 우리의 발이 네 성문 안에 들어서 있다.
3. 예루살렘아, 너는 모든 것이 치밀하게 갖추어진 성읍처럼, 잘도 세워졌구나.
4. 모든 지파들, 주님의 지파들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 그리로 올라가는구나.
5. 거기에 다스리는 보좌가 놓여 있으니, 다윗 가문의 보좌로구나.
6. 예루살렘에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여라.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7. 네 성벽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네 궁궐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 빈다" 하여라.
8. 내 친척과 이웃에게도 "평화가 너에게 깃들기를 빈다" 하고 축복하겠다.
9. 주 우리 하나님의 집에 복이 깃들기를 빈다.
(로마 13:11-14)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14.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마태 24:36-44)
36.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집주인이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알고 있으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 4본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떠오른 주제어는 ‘평화의 임금’입니다.
구약본문들은, 평화의 임금(주님)께로 모든 이들이 물밀 듯 모여드는 장면이고,
신약본문들은, 평화의 임금께서 모든 이들에게로 오고 계시는 장면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약본문들은 평화의 임금께서 오시는 과정이 매우 임박하고 급박한 느낌을 줍니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대구(對句) 찾기)
“모든 산”, “모든 언덕”, “모든 민족” (사 2:2)
“주님의 산”, “주님의 길”, “주님의 말씀” (사 2:3)
“주님의 집”(1) / “하나님의 집”(9) (시 122)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로마 13:11)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서”, “준비하고 있어라.”(마태 24:42, 43, 44)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 13:12)
“주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이사 2:5)
(반복구 찾기)
“예루살렘”(x4, 시 122:2, 3, 6)
“평화”(x5, 시 122:6, 7, 8)
[구약과 시편 (이사 2:1-5, 시편 122)]
오늘 구약과 시편 본문에는, 오늘 복음서 본문 마태 24:37-39절에 나오는 노아 이야기 때문인지, 마치 산에 있는 노아의 방주로 수많은 짐승들과 노아 가족이 모여드는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이사 2:3)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자”(시편 122:1, 4)
왜 주님의 산, 주님의 집으로 올라갑니까?
거기 바로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이사 2:3)
그 주님 말씀의 알맹이가 바로 ‘평화’입니다. (4절)
시편 122:8절과 9절에 축복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8. 내 친척과 이웃에게도 "평화가 너에게 깃들기를 빈다" 하고 축복하겠다.
9. 주 우리 하나님의 집에 복이 깃들기를 빈다.
본문 전체를 통해 보니, 축복의 알맹이 역시 ‘평화’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복은 바로 평화입니다.
불안, 분쟁, 전쟁의 시대에 평화만한 복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 구약의 중심무대인 “예루살렘”의 이름은 “평화의 땅(터전)”입니다.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사 2:4)
창으로 찌르고 칼로 가르는 분열관계를 변화시키는 ‘말씀’의 힘!
그건 바로 보습과 낫으로 모두 함께 일하는, 어진 임금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태평성대입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임하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성서일과사랑방’ 나눔 중 동인들로부터 나온 느낌들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로마 13:11-14, 마태 24:36-44)]
오늘 신약말씀의 중심은, 땅의 것에 착념하지 말고 하늘말씀 붙들고 말씀농사, 하늘농사에 부지런하자 입니다.
그 하늘말씀, 하늘농사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마태 5:9, 공동번역)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야고 3:18, 공동번역)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들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은, 자녀 된 우리로부터 이 평화의 열매를 찾으실 것입니다.
심판(추수)의 주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이 하늘농사, 평화농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는 그 때가 우리 예상을 뛰어넘으므로 지금 깨어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이젠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식으로 영적 긴장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말씀에서, 노아의 때를 비유로 드시면서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로마 13:11)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서”, “준비하고 있어라.”(마태 24:42, 43, 44)
→ “잠”에서 깨어나라는 말씀...
→ 잠이란? 나태, 중독, “어둠의 행실”(로마 13:12), “육신의 일”(14), & “땅에 속한 것”(야고 3:15, 골로 3:5)
→ 이것이 바로 평화를 가로막는 다툼의 씨앗입니다.
(골로 3: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야고 3: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야고 4:1-3) 1.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2.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는 구절은... 이사야 2:4절 끝에 나옵니다.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언제부턴가 절약이 몸에 배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많건 적건, 에너지가 많건 적건 간에 절약하게 됩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음식물찌꺼기도 애써 공을 들여 골라서 재활용합니다.
일반 쓰레기 봉지에 버려지는 것들도 온정신을 집중하여 분류하고 골라내는 것은 물론입니다.
‘물 맑은 양평’에 살게 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에너지 낭비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 때문입니다.
상수원이 더럽혀지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는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내 심성의 문제입니다.
물질을, 에너지를 함부로 쓰며 낭비하는 것, 음식을 과식하는 것 등은, 내가 점점 탐욕스런 인간, 땅에 속한, 육체에 속한, 어둠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가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군사훈련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탐욕스러운 에너지 낭비요, 가장 참혹스러운 ‘어둠의 행실’이라는 생각입니다.
보십시오. 무기 생산과 매매로 돈을 벌고 권력을 얻는 사람들 때문에, 군사훈련은 그칠 줄 모릅니다.
군사훈련을 위해 무기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말도 말은 되지만,(전쟁 억제력을 위해 무기를 만든다는 말도 말은 되지만) 그 뿌리를 알면, 그 열매를 보면, 그건 지독한 범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상대 쪽 진영(국가)는 온 힘을 기울여 전시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또한 어마어마한 에너지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기 낭비, 기름 낭비뿐 아니라, 노동력 낭비, 엄청난 양의 육체적, 정신적 소모입니다.
가난한 나라의 군인들은 평화 시에 농사를 지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국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시작하면, 모든 일손을 멈추고, 손에 든 보습과 낫을 버리고 얼른 창과 칼을 잡고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우리 억울하고도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세계의 화약고, 3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예루살렘 부근에서부터 이제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나날이 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그렇고, 아름다운 서해 마을 도두리 대추리까지 뻗치는 ‘평택기지’가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이어도’를 두고 벌이는 일촉즉발의 대결도 그렇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태평양 전선(戰線)을 이루게 되면 한반도야 말로 세계의 화약고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디 이 가상 시나리오가 웃기는 짬뽕, 한 여름 밤의 개꿈으로 끝나버리길 빌 뿐입니다.
이 와중에 오늘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종미(?)다 종북이다 하며 쉬지 않고 헐뜯고 있습니다.
평화의 임금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이 이렇게 울퉁불퉁합니다.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이란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일까요?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듯이,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로마 13:11)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지금 이 어수선한 한반도에도 평화의 임금 예수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로마 13:14)
이 말씀을 다른 세 본문과 연관하여 읽으니, 이 로마서 말씀에서 나를 평화의 일꾼 삼으시려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말씀시조] (이정훈 지음)
인자가 오실 날을 아는 이 누구인가
그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르노라
인생아 깨어 준비하라 느닷없이 오시리
[절기노래] ‘오소서 평화의 임금’(이건용 작)
오소서 오소서 평화의 임금, 우리가 한 몸 이루게 하소서. 아멘
[말씀 동화] 우리 외삼촌 예비군복이 수상해요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박지혜!”
“오냐 우리 교회 귀염둥이 지혜 왔구나!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이 목사님을 찾았느냐?”
“목사님, 오늘은 좀 심각한 걸 여쭤보려고 왔어요.”
지혜는 우리교회에서 가장 똘똘한 초등학생입니다.
세상에서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초등학교 3학년생이죠.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면서도 언제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참 밝고 슬기로운 아입니다.
“그래 이번엔 또 어떤 문제가 우리 지혜를 이렇게 심각하게 만들었을까? 어서 말해보렴”
“저, 그게 말이죠... 목사님 혹시 군대 가보셨어요?”
“군대? 아 물론이지. 목사님은 대한민국 육군에서 33개월간 군복무를 했어. 여기서 복무(服務)라는 말은, 힘써서 일한다는 뜻이란다. 목사님은 꽤 열심히 군 생활을 했지.”
목사님의 대답을 들은 지혜는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럼 목사님도 예비군훈련이라는 거 해보셨겠네요? 지금도 하시나요?”
“예비군 훈련? 목사님은 예비군 훈련 끝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었는걸? 물론 목사님도 한 때 예비군 훈련을 받았었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느냐?”
“실은 저희 외삼촌 때문에 그래요...”
지혜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망설입니다.
지혜의 눈빛도 조금씩 흐려지네요.
목사님은 그런 지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으십니다.
지혜네 외삼촌은 총각선생님이세요.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분이신데, 지금 지혜네 집에서 함께 삽니다.
지혜네 엄마는 틈만 나면 아무나 붙잡고 남동생 자랑에 열을 올릴 정도로, 동생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답니다.
지혜의 눈빛이 다시 반짝반짝 살아납니다.
“저, 혹시 목사님께도 예비군복 있으신가요? 얼룩덜룩한 예비군복이요.”
“예비군복이라...? 글쎄... 아마 뒤져보면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왜?”
“실은 목사님, 저희 외삼촌이 좀 이상해서요. 외삼촌은 아직 우리교회에는 안 나오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엄마 아빠랑 함께 교회에 나오려고 하는데요, 목사님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저희 외삼촌은 정말 멋진 교수님이시거든요? 삼촌은 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정말 짱 많은 멋진 신랑감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실력도 대단하고, 게다가 성격도 얼마나 부드럽고 상냥한지, 저희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지금도 신부감들이 줄을 섰대요. 아주 길게! 아마 저희 외삼촌이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젊은 이모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게 될걸요?”
지혜가 한바탕 외삼촌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신바람 나게 종알거리는 지혜의 수다를 들으시면서 목사님 얼굴이 환해지십니다.
“그것 참 멋진 일인걸? 지혜 외삼촌이 그렇게 멋진 분이었구나? 그런데 그런 외삼촌이 이상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이번에는 목사님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합니다.
잠깐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지혜가 드디어 결심한 듯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예비군복 때문이에요. 저희 외삼촌이 이상한 게 아니라 사실은 예비군복이 수상해요. 실은 제가요 얼마 전에 학교 다녀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외삼촌을 만났거든요. 다들 비슷비슷한 예비군복을 입었지만, 외삼촌 예비군복은 좀 더 거무스름한 색다른 옷이라 금세 외삼촌을 알아 볼 수 있었죠. 외삼촌이 있던 부대는 매일 밤 야간투시경이라는 것을 쓰고 적진 침투작전 훈련을 주로 하는 특수부대였대요. 아무튼 예비군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인데 동무들과 어울려 깔깔거리며 걸어오는 폼이 영 이상하고 낯설었어요. 윗도리 단추도 다 풀고 모자도 삐뚜름하게 쓰고, 길에서 막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오고 있었죠. 그러다 길가는 젊은 여자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아주 불량스럽게 휘파람도 불고 막 그러는 거예요. 그러다 그 언니들이 째려보거나 짜증을 내면 막 우우∼ 하면서 늑대우는 소리까지 내는 거예요. 제가 하도 놀라고 무안해서 삼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냥 막 집으로 와버렸죠. 그리고 그날 저녁밥 먹을 때 엄마 아빠한테 다 일러바쳤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랬더니 저희 아빠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게 되는 법이란다.’ 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는 거예요. 목사님 이게 무슨 뜻이죠? 분명히 예비군복이 문제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목사님은 지혜의 말과 심각한 표정이 하도 귀엽고 재미있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눌러 참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우리 지혜 고민거리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목사님도 젊었을 때 예비군복을 입으면 지혜네 외삼촌이랑 비슷한 장난도 치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단다.”
“우와 목사님도 그러셨다구요? 그렇다면 그 예비군복은 정말이지 대단한 옷이로군요? 목사님, 늑대인간 아시죠? 둥근 달만 뜨면 늑대로 변해버린다는? 예비군복은 딱 그런 늑대인간이랑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늑대들처럼 떼로 몰려다니면서 모르는 아가씨들한테 휘파람도 불어대고, 막 흉하게 늑대 울음소리도 내고...!”
목사님께서 또 한바탕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지혜야,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혜 너도 옷이 여러 벌 있지? 그 중에는 설날 세배할 때 입는 때때옷도 있고, 주일 예배 때 갈아입는 찬양대 옷도 있고, 그리고 학교 체육시간에 입는 운동복도 있고 그렇지? 그런데 말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렴, 너도 그 여러 종류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자세가 달라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걸 느끼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까 목사님 말씀이 맞네요.
지혜도 때때옷과 예배옷을 입을 때는 꽤나 조심스럽게 걷고 행동하지만, 운동복을 입었을 때는 마구 뛰어다니고 목청껏 큰 소리도 내지르고 그러거든요.
그러나 외삼촌의 예비군복에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어요.
그런데 지혜는 아직은 차마 목사님께 그 문제를 털어놓기가 좀 어려웠어요.
그 문제는 혼자서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 지혜는 목사님께 꾸벅 감사인사 올리고 교회를 나왔어요.
지혜가 예비군복을 늑대인간과 관계있는 수상한 옷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그날 길거리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에 벌어진 놀라운 일 때문이었죠.
그날도 지혜는 오줌이 마려워 한밤중에 잠이 깼어요.
엄마도 아빠도 곤히 잠들어 계신 깊은 밤이었죠.
그런데 변소에 가려고 거실로 나오는데 외삼촌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거예요.
삼촌이 아직 안주무시고 뭐하나 하고 지혜는 아무 생각 없이 삼촌 방문을 활짝 열었겠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외삼촌은 화들짝 놀라 얼른 컴퓨터 화면을 꺼버리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마자 삼촌은 스피커 스위치도 황급히 꺼버렸어요.
“외삼촌 지금 뭐하고 있었어요?”
눈이 휘둥그레졌던 지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삼촌을 째려보며 물었어요.
“아무, 아무 것도 아냐. 너 왜 안자고 나왔어? 그리고 노크를 해야지 노크를!”
더듬거리는 외삼촌이 지혜는 아무래도 수상했어요.
품위 있는 교수님이 볼만한 내용이 아닌, 좀 이상한 동영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어요.
그러고 보니 외삼촌은 얼굴빛도 벌겋고 눈빛도 충혈된 것이, 느낌이 이상했어요.
순간 생각해보니까, 며칠 전 길거리 예비군복 사건이랑 관련된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고민 고민하며 며칠이 흐르면서, 지혜는 참다 참다 목사님을 찾아뵈었던 것이었죠.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지혜는 예비군복과 늑대인간의 관련성을 확신하게 된 것이고요.
오늘 목사님께는 차마 말씀 못 드렸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날 밤 외삼촌이 밤새 눈이 충혈 될 정도로 뚫어지게 보던 이상한 동영상 역시 늑대 같은 사람, 즉 늑대인간과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세상 모든 예비군복에는 늑대인간의 피가 묻어있는 게 틀림없어!’
그날 저녁밥을 먹은 뒤에 지혜는 다시 외삼촌 방으로 갔어요.
외삼촌은 지혜 눈치를 슬슬 보면서 묻습니다.
“우리 지혜 웬일이냐? 또 외삼촌 방에 들어왔네, 노크도 없이?”
“외삼촌, 외삼촌께 할 말이 있어요. 저는 저번에 외삼촌 예비군훈련 받던 날 있었던 일을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밤새도록 이상한 동영상 볼 때 있었던 일도 다 알아요.”
순간 외삼촌 얼굴이 하얘집니다.
“얘가 지금 뭐라는지 모르겠네?”
“외삼촌, 제가 비록 어리지만, 알건 다 알거든요. 그리고 이건 외삼촌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제가 우리 교회 목사님을 찾아뵙고 이미 자세히 확인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 예비군복 입지 마세요. 왜냐하면, 세상의 예비군복에는 모두 늑대인간의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죠. 이번 주일 예배 성경말씀에도 나왔어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서 13장 12절 말씀이죠. 또 있어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장 14절 말씀이고요”
잠시 어리둥절하던 외삼촌이 정신을 가다듬고 찬찬히 말씀하시네요.
“지혜야. 그런데 말이야, 대한민국 국민이면 국방의 의무를 해야 마땅하단다. 군복무를 다 마친 뒤에도 예비군훈련을 받는 것 역시 국방의 의무에 해당하지.”
“아니에요 외삼촌. 오늘 성경말씀 중에는 이사야서 2장 4절 말씀도 있어요. 들어보세요.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때요. 예비군훈련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 맞죠?”
“그래 지혜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라와 나라가 서로를 치지 않는다는 확실한 약속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게 바로 군축회담 같은 건데, 군사비용을 축소하기로 나라와 나라끼리 서로 약속하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무기를 만드는 회사랑 무기 판매를 맡은 사람들이야. 그들은 큰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무기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큰돈을 벌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써서 무기를 소모시키는 군사훈련을 하게하고, 심지어는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 핵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들은 어서 핵개발을 멈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단다. 왜일까? 핵무기 개발을 완성하게 되면 국방력도 강해질 뿐 아니라 핵무기나 핵무기 기술을 큰돈을 받고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 하루 속히 전 세계가 핵무기 개발을 멈추고,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도 하나하나 핵무기를 폐기시켜가기로 서로 약속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마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사고가 일어난 뒤에, 유럽의 독일이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기로 하고, 지금 있는 핵발전소도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없애나가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말이다.”
지혜는 외삼촌 말씀이 좀 어려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역시 대학교 교수님이라서 그런지 우리 외삼촌은 아는 게 참 많아요.
“그리고 지혜야, 예비군 훈련은, 큰 무기를 소모하고 기름과 같은 에너지를 대량으로 써버리는 큰 군사훈련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주국방의식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란다.”
“그래도 외삼촌, 절대 예비군복만은 입지 마세요. 그 옷만 입으면 늑대인간처럼 변해버리잖아요. 삼촌처럼 멋진 교수님이, 그 옷을 입자마자 길거리에서 어두컴컴한 행동을 막 하고, 밤에 어두컴컴한 동영상을 막 보고 그렇게 나쁘게 변하잖아요.”
당황한 외삼촌이 좀 더듬거리면서 대답을 합니다.
“어? 어∼! 그래 알겠다. 그런데 규정상 예비군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오늘 성경말씀처럼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거 말이에요. 또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빛의 갑옷처럼 변신하도록 외삼촌의 예비군복을 어린양의 피로 빨래를 하는 거예요. 늑대인간의 피가 깨끗이 씻겨나가게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어린양의 피로 예비군복을 빨래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지혜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고 있던 외삼촌은 해물탕 큰 조개처럼 입이 딱 벌어졌어요.
“우리 지혜는 이름처럼 정말 지혜롭구나. 어떻게 그 어려운 성경말씀들을 줄줄 외우는 거지?”
“아, 그건 우리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선포하신 성경말씀인데요, 우리 교회학교에서는 매 주일마다 목사님 설교 요절 말씀들을 외우는 성경암송 시합을 하거든요. 후후”
“그랬구나. 아무튼 그동안 외삼촌이 너희 집으로 이사 온 뒤로 교회도 잘 안 나가고 게으르게 살면서 묻어두었던 일들이 있는데, 우리 지혜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그게 하나하나 기억나게 되는구나.”
“그게 뭔데요 외삼촌?”
“응, 그건 말이다. 예비군복을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빨아서 희게 한다는, 빛의 갑옷처럼 환하게 만든다는 네 얘기를 듣는 동안 기억난 건데, 사실은 외삼촌이 군복무를 다 마친 뒤에 꼭 하려고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거든. 그런데 그걸 이런저런 핑계로 마음속에만 묻어두고 살아왔어. 그게 뭐냐 하면, 군복무를 한 것만큼 평화복무를 하는 일이란다. 아주 오래전에 외삼촌이 다니던 교회 교육전도사님이셨던 송강호 전도사님께 배운 것인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 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거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읽고서 송전도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군복무한 것 이상으로 평화복무를 해야 마땅합니다!’ 나는 그 ‘평화복무’가 바로 지혜 네가 말한 ‘예비군복을 어린양의 피에 빠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지금 막 결심했어. 그 평화복무의 첫걸음으로, 이번 겨울 방학 시작하자마자 나는 필리핀 태풍피해지역으로 달려가서 난민들 구호하는 일을 할 거야. 평화의 임금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참 잘 어울리는 일 아니니?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이렇게 평화복무를 열심히 하다보면, 어두컴컴한 데서 이상한 짓하는 ‘어둠의 행실’도 벗어버리고, 당당하고 씩씩한 ‘빛의 갑옷’을 입게 되겠지.”
지혜는 외삼촌의 말이 좀 어렵긴 했지만, 왠지 멋져 보였어요.
어두컴컴하던 외삼촌 얼굴빛이 벌써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네요.
그리고 지혜는 나도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평화복무를 하는 그리스도의 군병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네요.
지혜는 주일아침에 배운 대림절 찬양, ‘오소서 평화의 임금’을 읊조립니다.
나지막한 찬양이지만 지혜에게 평화의 큰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좋은 찬송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3년 11월 30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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