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복음 14:27)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16:9-15)
9.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4.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15.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시편 67)
1.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셀라)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4. 주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의 온 나라를 인도하시니, 온 나라가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치면서 노래합니다.(셀라)
5.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6. 이 땅이 오곡백과를 냈으니,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니, 땅 끝까지 온 누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여라.
(요한계시록 21:10, 22-22:5)
10. 나를 성령으로 휩싸서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24.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5.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7.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22:1.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2.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3.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성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 안에 있고, 그의 종들이 그를 예배하며,
4.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고,
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3-29)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이 말을 너희에게 말하였다.
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27.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28.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29.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주님께서 내게 이토록 가까이 오셔서’입니다.
사도행전,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사도행전 16:15)
시편,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시편 67:1)
서신서,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계시록 22:5)
복음서,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한복음 14:23)
오늘 요절은,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입니다.(요한복음 14:27)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16:9-15 / 시편 67)]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소제목은 ‘바울이 환상을 보다, 루디아가 믿다’입니다.
바울이 우여곡절 끝에 유럽선교를 시작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빌립보에 이르고,
유럽선교의 첫 열매가 될 루디아를 만납니다.
인상적인 것은, 바울이 먼저 청하여 거기 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말씀(복음)을 듣기 원하는 간청으로 빌립보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9-10)
그리고 루디아의 집에까지 가서 묵게 된 것도 그러합니다.(15)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첫 계획이 막힌 것도, 루디아의 마음이 열린 것도(14) 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온 세계 위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입니다.
오늘 시편노래는 복(福)으로 시작해서 복(福)으로 마칩니다.
1절은 민수기 6:24-26절의 <제사장의 축복>을 줄인 꼴입니다.
추수철(수장절) 제사장의 축복에 대한 응답찬양처럼 보입니다.
복(福)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복(福)주시는 “주님의 뜻”(“주의 도”-개역개정, “당신의 길”-공동번역)은
주님의 공의, 공의로운 심판과 통합니다.(4)
(추수는 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추수한 쌀(禾)을 나누되(口) 공평하게(平) 하는 것을 가리키는 “평화(平和)”입니다.
진정한 친교의 첫 단추, 평화(平和)입니다.
친교의 핵심인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이 친교, 이 평화를 이루는 곳에서 주님과의 친교가 살아납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 ‘떼제 찬양’ 중에서)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21:10, 22-22:5 / 요한복음 14:23-29)]
오늘 계시록본문의 소제목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안이 해처럼 밝은 빛으로 가득하니
낮과 밤이 따로 없고 대문은 늘 열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나 그 문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을 행하는 자는 못 들어갑니다.(27)
왜냐하면, 그런 더러운 것들은
“새 예루살렘(큰 평화의 집)”의 친교를 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교의 핵심인 평화, 그 알맹이인 사랑과 정 반대 세계의 것들, 즉
육에 속한 것들, 어둠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부활절의 중요한 주제는, 성부와 성자의 친교(궁극적인 결합)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를 완전히 깨친 자들,
즉 제자들과 삼위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23)
이러한 친교의 모습은(23)
오늘 본문 앞에 있는 14:2-3절과 크게 대비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에게로 오시니 말입니다.
심지어 이 친교(동거)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친교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친교의 열쇠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증거는 “내 말(주님의 말씀)”을 깨치고 지키는 것입니다.(23)
이는 15절 말씀의 반복이고(21) 또 반복일 만큼(23) 중요하고 필수적입니다.
그 사랑, 그 말씀,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26)
이 신비롭고 기쁜 <친교>의 열매요 동시에 열쇠인 평화!
예수님께서 “내 평화”라고 강조하신 그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27)
(평화를 비는 인사 “샬롬”을 넘어 이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아무 근심걱정 필요 없는, 평화입니다.(27)
자그마치 20-21절, 23절 수준의 신비로운 친교요 그 평화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오늘 부활절 6주에 읽은 성서일과 본문 말씀에는
내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말씀)
그리하여 그분과 친교하는 기쁨, 그 평화(平和)의 강물이 넘실거립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부터(계21:10)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14:23)까지
구구절절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밀물처럼 넘실거립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 안에 가득하신 사랑의 설렘이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과 우리 사이를 이으시는 말씀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말씀,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그 사랑은 <공평과 정의>의 다른 이름이고(시67:4)
그 열매가 평화입니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복음 14:27)
부디 그 평화를 받은 사람답게, 한국교회가
한국사회 구석구석에서
혐오가 아니라, 악마의 거짓말에 속고 또 속으며 차오른 혐오가 아니라
오직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5:9, 공동번역)
[나머지]
* 하늘 문이 열리고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문이 열릴 때
계시록의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릅니다. 21세기 예루살렘의 반(反)평화를 생각할 때, 오늘 예수님 말씀은 마치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21세기 한반도는 어떠한가? 이미 오래 전 완전히 닫혀버린 개성공단 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개성의 이름 뜻이 새삼스럽습니다. 바로 개성(開城)아닙니까? 그 이름만큼 활짝 열려야 제격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문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시록21:27) 이 말씀의 거울에 지금 우리 한반도의 반(反)평화스런 모습을 비추어 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개성공단 닫힌 문을 활짝 열고, 굳게 닫힌 판문점(板門店) 문을 활짝 열어젖힐 열쇠를 봅니다. 옛 개성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새 개성(開城)의 활짝 열린 문을 미리 봅니다.
** 무엇이 그리 급하셨나? 하늘 문 쪼개고 내려오시다니!
주님께서 친히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나에게 오시다니, 이런 황감(惶感)한 일이! 주님께서 왜 오십니까? 내가 주님 말씀 고스란히 지키며 살기 때문 아닙니까? 바로 그것이 내가 주님 사랑한다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 아닙니까?(요한복음14:23-24) 문득 이사야서 64장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늘 문을 여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쪼개고 내려오시는 그분! 그만큼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벅차고 뜨겁습니다. “1.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입니다. 2.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적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님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십시오. 3. 주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들이 예측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에,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4. 이런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말고 어느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5. 주님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이사야 64:1-5)
*** 마음 문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활절 6째 주일, 오늘 본문들은 온통 활짝 열린 문(門)의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그 열린 문으로 눈부신 진리의 빛, 사랑의 빛, 생명의 빛이 쏟아집니다. 그 빛에 휩싸여, 그 빛이 관통하여, 하나로 어울려 함께 삽니다.(행전16:15, 계시록21:10, 27, 요한복음14:23) 그 빛이 들어오시도록,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네 안에 들어가시도록 (행전16:14) 늘 마음 문 활짝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 문이 열리고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눈도 열려 생명수 콸콸 흘러넘치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 열두 열매가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질병을 고쳐줄 만병통치 약초 나뭇잎이 활짝 열립니다.(계시록22:1-2) 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까맣게 잊고 있던, 까마득하게 안보이던 하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애통하는 우리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상처가 사랑하는 주님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리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질주하며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이 자라갑니다. 나를 향해 활짝 열린 하늘문이 닫힐 겨를이 없습니다.
**** 빛나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부터 빛고을 광주까지
오늘 부활절 6주 성서일과 4본문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주님과 친교하다’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주님께서 친히 이끄십니다. 바울이 갈 길도, 바울의 계획과 다른 길로 주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주님께서 친히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고(행16:14) 첫 신도로 세례 받아 주님과 하나 된 뒤에 바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친교로 이끄십니다.(15) 시편 기자가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길 간구합니다.(1) 이는 오늘 계시록 본문과 통하며(계21:23, 22:4-5) 이는 하나님의 공의, 공평과 정의의 심판으로 이어집니다.(시67:4) 이때 백성은 온전한 복(福), 온전한 평화(平和), 온전한 친교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코앞에 두신 상황에서 사랑과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그 안에 성부와 성자가 하나 되고, 나아가 우리와 하나 되시는(요14:23) 친교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아무 두려움 없는 “내 평화”의 정체를 다시 새깁니다.(27) 지난주 계시록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도 빛고을 광주(光州)를 느낍니다. 큰 평화의 집 예루살렘 성이 로마군에 의해 무너지고 학살된 몇 십 년 뒤 요한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빛고을 광주가 무너지고 학살된 수십 년 만에 비로소 그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둠에 묻혔던 빛고을이 다시 빛나기 시작하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요1:5) 그리고 오늘 계시록본문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가득한 빛 때문인지(21:23, 22:5) 더욱 빛고을이 떠오릅니다. 그 문은 밤낮 열려있으나,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 때문에(21:27) 더욱 빛고을 광주가 떠오르나 봅니다. 황차, 새 예루살렘 성이겠습니까! 부디 거기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물과 생명나무 열매와 나뭇잎이 민족들을 치료하듯이(22:2) 새 예루살렘 성과 그 보좌에 계신 어린양을 가장 많이 닮아야 할 교회, 그 한국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평화의 말씀, 공평과 정의의 말씀, 사랑과 친교의 주님 말씀이, 광주의 상처를 치료해주시기를 빕니다. 45년 전 5월 26일, 계엄군의 마지막 광주학살 하루 전날인 그날, 빛고을을 사수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아 죽음을 택했던 이들의 유족들의 상처와, 오늘 그 자리를 떠나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온 모든 이들의 모든 상처들을 따뜻하게 치료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빛고을과 이웃 고을들이 진심으로 친교하고, 한반도가 온통 친교 할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친교의 열매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 그 첫 사랑의 기억이 회복되기를
오늘 부활절 6주에 주신 성서일과 본문말씀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넘어서는 신비로운 경지를 보여주십니다. 빌립보의 루디아는 부활예수님을 만남으로 세례 받고 일상이 바뀝니다. 계시록의 요한은 천사의 인도로 상상초월 새 예루살렘 성을 보고, 복음서의 저 불안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 것이라는(요14:23), 조금 아까 말씀과는(14:1-3) 정반대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말씀을 듣습니다. 분명한 것은, 빌립보의 루디아, 계시록의 요한, 예수님 제자들 모두가 지금 일상에서 맛보지 못한 신비와 기쁨, 거룩한 복을 느끼고 있으며, 이것은 모두 까맣게 잊고 살던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신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환히 비추시어 기억나게 하신 그 뜻의 알맹이는,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맛있는 것 먹이고 싶으신 엄마 마음 같은, 그저 복주고 싶으신 주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계시록22:3-4절 말씀처럼, 그리고 복음서 말씀처럼(요14:23) 주님 얼굴 뵈며 예배하며 사는 것보다 더 복스러운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오늘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에 보인 루디아의 모습은(15) 오늘 예수님 말씀과 이어져(요14:23) 내내 주님과 동거하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미리 보여줍니다. 루디아가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영접하는 모습 속에서 오늘 시편가가 울립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됨으로(시67:2)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는 모습이 보입니다.(시67:3,5) 오늘 루디아의 기쁨, 그 첫사랑의 기억이 오늘 내 안에도 다시 환하게 회복되기를, 그러도록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주님말씀 기억하고 지킬 수 있기를 빕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나 주님 안에 있네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2호)
나 마음 연약하여
오늘도 넘어지지만
또 다시 주님 바라보며
말씀을 지켜나간다
나 비록 실패하여도
주님의 성령 오셔서
가르쳐 주시며
깨닫게 하시니
다시 또 일어선다
나 주님 안에
마침내 승리케 하심을 믿으며
두려움을 이기고
평화를 누린다
[시편시조] 시편 67, 철따라 복 주시는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2호)
철따라 복 주시는 공의로운 주 하나님
온 세상 모든 민족 주님 뜻 알게 하사
주님의 크신 구원을 찬송하게 하시길
[시편노래] 시편 67, 하나님 은혜와 복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 122호)
[본문] (시편 67)
[노랫말]
1. 하나님 은혜와 복 우리에게 베푸시고, 주님의 환한 얼굴 우리에게 비추소서
온 세상 온 민족이 주를 알게 하옵시고, 주님의 뜻 그 구원을 깨닫게 하옵소서
2. 하나님 민족들이 찬송하게 하옵시고, 온 민족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공의로 심판하며 온 나라를 이끄시니, 만백성이 환호하며 기뻐노래 하나이다
3. 하나님 민족들이 찬송하게 하옵시고, 온 민족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이 땅의 오곡백과 주님 주신 복이로다, 복 주신 하나님을 온누리는 경외하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 단원이신 작곡가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67 (하나님 은혜와 복) (이정훈 편사, 박승원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6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2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셀라)
2. 온 세상이 주님의 뜻을 알고 모든 민족이 주님의 구원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3.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4. 주-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의 온- 나라를- 인도하-시-니--,
온 나라가--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치면-서- 노래합∼니∿다-∼(셀라)
5. 하나님, 민족들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6. 이 땅이 오곡백과를 냈으니,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이다.
[다함께]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니--,
땅- 끝까지- 온 누-리는-,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여∿라-∼∥
[말씀동화] 할미꽃과 솜다리의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길가다가 산모롱이 한 송이 할미꽃 보고 넙죽 절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무등산 산모롱이에 조용히 피어난 할미꽃 한 송이가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람결에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산마루 하얗게 핀 꽃 솜다리를 올려다봅니다.
“어째 설악산 솜다리 애들바이스가 무등산에 피었다냐?”
솜다리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할머니 보고 싶어 산신령 콧바람타고 잠깐 마실 왔죠.”
깜짝 놀란 할미꽃이 대답했어요.
“땅에 박혀 사는 꽃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 못써. 큰일 나.”
그러곤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립니다.
“우리 아들은 어디 피었을까? 우리 아들도 산신령 바람타고 오면 참 좋겠네.”
시신조차 찾지 못한 고등학생 어린 아들을 찾으려고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엄마는
4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치매 할머니가 되셨고
어두운 밤만 되면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섭니다.
젊은 시절 내내 잃어버린 막둥이들 찾으려 여기저기 떠돌던 습관 때문인지
아무데나 돌아다니다 겨우겨우 엄마 찾던 딸들의 손에 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합니다.
1980년 광주 도청에서 5월 27일 뒤로 자취를 찾을 길 없는 아들을 찾으려고
하염없이 걷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걷고 또 걸은 엄마는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고, 머릿속까지 하얗게 되고서도
하염없이 하릴없이 걷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딸들의 눈물바람이 하늘에 닿은 어느 날
그래서 하늘님 가슴 속 우레가 치던 바로 그날
할머니는 조그마한 할미꽃이 되어 무등산 산모롱이에 피어납니다.
어린 아들 손잡고 소풍 다니던 무등산 산모롱이에 조용히.
“어여 다시 돌아가. 하늘님 아시면 큰일 나, 어여!”
할미꽃의 걱정에 하얀 꽃 솜다리가 갑자기 울먹울먹 대답합니다.
“할머니, 아니 엄마. 나야 나. 나 막둥이예요”
솜다리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실은 산신령이 아니라 하늘님 숨을 타고 무등산까지 온 것이라고.
아무데도 돌아다니지 못하는 할미꽃 신세가 되어서도 기어이
아들이 보고 싶어 갈수록 더 붉어지는 할미꽃을 보신 하늘님 눈물바람을 타고.
꿈에 그리던 막둥이라는 말에 할미꽃은 솜다리를 다시 보고 싶어
안간힘을 씁니다.
붉디붉은 할미꽃이 터질 듯 더 붉어질 무렵
하늘에서 거센 바람 불어와 할미꽃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막둥이 솜다리를 바라봅니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복음14:27)
하늘나라 예수님의 선창을 따라 천사들이 돌림노래를 부릅니다.
오매불망 따듯한 눈물에 온통 젖은 할미꽃과 솜다리 꽃잎에 하늘노래가 닿으니
할미꽃 이파리 하나와 솜다리 이파리 하나가 쑥쑥 자라
재크의 콩나무처럼, 흥부네 박넝쿨처럼 쑥쑥 자라
엄마와 아들은 두 손 마주잡고 높은 소리로 노래 부릅니다.
“주님의 얼굴을 환하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어서...(시편67:1)
주님께서 온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세상의 온 나라를 인도하시니,
온 나라가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치면서 노래합니다”(4)
무등산 산모롱이 할미꽃과 솜다리의 붉디붉은 평화노래에
다시 천사들의 합창, 하늘땅 하나 되는 하늘노래가 메아리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한복음14:23)
[이정훈 지음. 2025년 5월 24일 토요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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