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시편 146:8)
[성서일과 4본문]
(룻기 1:1-18)
1. 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 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 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 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8.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제각기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너희의 남편들과 나를 한결같이 사랑하여 주었으니, 주님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9. 너희가 각각 새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오미가 작별하려고 그들에게 입을 맞추니, 며느리들이 큰소리로 울면서
10.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11. 그러나 나오미는 말렸다.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
12. 돌아가 다오, 내 딸들아. 제발 돌아가거라. 재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설령, 나에게 어떤 희망이 있다거나,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13.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 그 때까지 재혼도 하지 않고, 홀로들 지내겠다는 말이냐? 아서라, 내 딸들아. 너희들 처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구나. 주님께서 손으로 나를 치신 것이 분명하다.”
14. 그들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울었다. 마침내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다. 그러나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었다.
15. 그러자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시편 146)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 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9:11-14)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3.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그 육체가 깨끗하여져서, 그들이 거룩하게 되거든,
14. 하물며 영원한 성령을 힘입어 자기 몸을 흠 없는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야말로, 더욱더 우리들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떠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습니까?
(마가복음 12:28-34)
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목숨을 다하는 사랑으로’입니다.
구약,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룻기 1:17)
시편, “내가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시편 146:2)
서신서,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히브리서 9:12)
복음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마가복음 12:30)
오늘 요절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입니다.(시편 146: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룻기 1:1-18, 시편 146)]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룻이 나오미와 더불어 베들레헴으로 이주하다’입니다.
나오미는 이방 땅에서 나그네 되고 과부가 된 약자 중의 약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 나오미의 뜻은 ‘기쁨’입니다.
아무데도 의지할 것 없게 된 나오미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미가 이름처럼 살 수 있게 하시려고
세상을 의지하는 문들을 하나하나 닫아 걸어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문만 열어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때 며느리 룻이 시어미 나오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동행합니다.
그러고 보니 룻의 이름 뜻은 ‘친구’입니다.
한없이 가여운 약자 나오미의 곁을 지키는 참 친구가 바로 룻입니다.
부모와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룻의 마음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연상됩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나오미를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에서
참 좋은 친구 예수님의 사랑이 연상됩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심’입니다.
“야곱의 하나님”(5)은,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즉, 신실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을 떠올리는 관용어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6)
특히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강렬히 묘사한 9절은
구약본문의 나오미와 룻을 떠오르게 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9:11-14, 마가복음 12:28-34)]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일회적 희생’입니다.
과거 성전시대의 정결예식과 달리, 진정한 정결은
육체가 아닌 마음, “양심” 안에서 일어납니다.(14)
단순히 죄책만 씻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 존재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즉, 죽은 행실 (죽음을 가져오는 행실) 말고 새롭게 된 마음으로 드리는 산 예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최고의 계명에 대한 물음’입니다.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지킴이
그 어떤 성전제사, 희생제사보다 하나님께 영광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더 반기신다.(잠언21:3)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세아6:6)
그런데 이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서 “마음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심(盡心)이 곧 진심(眞心)입니다.
진심을 다할 때 비로소 내가 사랑할 그분,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 바로 이웃, 내 곁의 약자들 말입니다.(마태25:40,45)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왕국절(신정절) 11째 주(창조절 10째 주) 성서일과에서는
목숨을 다하는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이야기(막12:30-31)
주님께서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노래로 가득합니다.(시146:8)
“목숨을 다하고”(막12:3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마음에 걸립니다. 무겁습니다. 그리고 무섭습니다.
그만큼 편안하고 편리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아무튼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 주님의 뜻을 따라(시146:8)
내가 할 수 있는 낮은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 그런 이웃은 누구일까요?
[나머지]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구약의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효도하려 애쓰다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관계 맺게 됩니다. 시편의 시인은, 내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주님께 희망을 걸면서 주님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 서신서는,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 맺고 섬기게까지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는, 계명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사랑에 이어 이웃사랑까지 실천하게 되고 마침내 제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됩니다. 목숨 걸고 시어머니와의 관계의 끈을 놓지 않은 룻은 마침내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어지고, 그 뒤에 이런저런 복스러운 관계들을 맺게 됩니다.(보아스, 다윗, 예수님...)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마가12:30)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시편146:5)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것이며...(마가12:33), 예수님께서 그 길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 주님께 희망을 거는 공동체
“억눌린 사람”, “굶주린 사람”, “감옥에 갇힌 죄수”(시편146:7), “눈먼 사람”, “낮은 곳에 있는 사람”(8), “나그네”, “고아와 과부”(9) 오늘 시편본문은 우리 가까이의 약자들을 이렇게 하나하나 열거하며 주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5) 오늘 구약본문에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모든 인생길이 막히자 비로소 주님께서 고향에 풍년 들게 하셨다는 소식이 귀에 들립니다.(룻기1:6)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16) 룻은 이런 시어머니 나오미가 의지하는 하나님께 희망을 겁니다. 그 안쓰럽고 처절한 희망에서 강력한 마음이, 강력한 사랑이, 강력한 공동체가 나온 것입니다. 오늘 룻이 굳게 마음먹은 그 마음은 장차 큰 사랑, 큰일을 일으킵니다. 천하의 왕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고, 룻의 그 마음, 그 사랑은 마침내 평화의 왕, 사랑의 임금 예수님(출생)으로 이어집니다.(마태1:5) 룻에게 진심(盡心, 眞心)을 주신 하나님, 절망에 빠진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마음, 일체감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그리고 남과 북 모두에게 서로를 향한 불신 대신, 일체감을 불러일으켜주시길 기원합니다. 서로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서로를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켜주시길 빕니다.
*** 목숨을 다한 사랑
오늘 복음서본문의 알맹이 역시 사랑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정리해주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 것은, “네 목숨을 다하고”라는 예수님 말씀입니다.(30) 이 부분을 반복해서 확인한 율법학자의 말에는 빠져 있습니다.(33) 이야기인 즉, 예수님과 율법학자가 인용한 신명기 6:5절에는 “목숨”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채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목숨 바쳐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어디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 가운데서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가장 믿지 못할 말씀 1순위가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여긴다”는 거였고, 반면에 시어머니들께서 가장 믿지 못하는 며느님 말씀 1순위는, 시어머니께서 전화 걸었을 때 며느리가 하는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아유 어머니, 제가 지금 막 전화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오늘 구약말씀의 주인공은 나오미와 룻입니다. 성경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남자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의 상징으로 다윗과 요나단을 꼽는다면, 여자들 사이의 사랑의 대명사로는 단연 나오미와 룻 저 특별한 고부간의 사랑을 꼽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에서 조금 다른 것을 느낍니다. 그건, 나오미에게 룻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죽어도 어머니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룻의 선언. 이건 마치 준엄한 선전포고 같습니다. 좀 지나친 상상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 문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룻에게서 하나님의 마음, 그 향내를 느꼈습니다.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 임마누엘 하나님! 내 백성들의 실생활을 보고 싶어서 변복을 하고 궐 밖으로 나가는 조선시대 임금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예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예 더불어 살러, 그리고 죽으러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 관계를 넘어 친구로, 큰 형님으로 오신 바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룻에게서 말입니다. 랍비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오신 싱싱한 청년 예수 하나님처럼, 딱 나 같은 과부의 모습으로, 친구보다 더 만만한 내 며느리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랄까? 이건 너무 비약이지만, 그래도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면서 룻에게서 그런 하나님의 기운을 느낍니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복음가수 이길승 목사의 노래 ‘철수엄마’ 노랫말입니다. 「철수의 엄마는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해녀랍니다. 그렇게 어렵게 5형젤 키운 엄마를 철수는 사랑합니다. 수화도 모르는 엄마이기에 온몸과 숨소리로 말했답니다. 어느 날 철수는 책방에 들러 한글공부 그림책 사가지고는, 글씨와 그림을 보여드리며 신나게 하나둘 가르쳤는데, 철수가 엄마에게 하고 싶던 말, 사랑이란 단어 위에 떨렁 그려진, 하트모양 그것을 설명하려다, 너무너무 어려워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해 울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성경 66권을 꽉꽉 짜서 짜낸 엑기스, 가장 큰 계명,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각별한 체험이 있는 사람조차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쏭달쏭해지는 것이 우리네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철철 넘치는 것만 같던 천국소망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손에 잡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맛에 대한 집착, 그 미망(迷妄) 때문에 새벽안개처럼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우리네 소망입니다. 700% 리얼인 것 같았다가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맹숭맹숭 아리송해지는 남녀 간의 사랑만큼이나, 지극히 추상적인 것이 우리가 말하는, 우리가 느끼는 소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사랑 또한 얼마나 추상적입니까? 이웃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도대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의지할 곳 아무데도 없는 우리 나오미, 밑바닥에 떨어진 나오미입니다. 그런 나오미를 주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시146:8) 룻을 통해서! 말로는 단호하게 며느리 너희들 다 갈 길로 가라고 했으나, 끝끝내 시어머니 곁을 지키려는 저 단호한 룻의 말을 들으며 나오미의 속마음은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나오미에게 룻은 마지막 동아줄,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웃은 누구입니까? 밑바닥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힘없는 이웃은 누구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찾으십시오. 왜냐하면, 그 이웃이야말로, 내가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 가장 큰 계명 ‘사랑’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이웃은 바로 시어머니 나오미였습니다.(나오미의 모습으로 룻에게 오신 하나님 같은!) 동시에 나오미에게 룻은 며느리의 모습으로, 과부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나오미를 주님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이웃 섬기듯 섬긴 것입니다. 어쩐지 룻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예수님! 내 몸을 먹으라고 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신 예수님, 그 사랑의 시작을 (예수님의 할머니이신) 오늘 룻에게서 느낍니다.
***** 주님께로 방향을 바꾸어 바짝 다가가야 할 때
왕국절(신정절) 11째 주일 성서일과 말씀은 신앙의 기본에 충실할 것을 깨우치십니다. 어렵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자칫 멀어지기 쉬운 하나님께 더 바짝 다가가시라! 룻! 위기의 상황, 인생의 기로,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더더욱 시어머니께 바짝 다가간 룻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의 기본을 봅니다. 나오미! 과부요 이방인인 <약자 중의 약자> 시어머니 나오미, 룻의 선택은,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고생문이 훤한 길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약한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큰 계명 안에 룻의 모범이 겹쳐 보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신앙의 기본을 돌아봅니다. 지금 우리는 내 편안과 편리, 나의 이익만을 쫓는 길을 멈추고 세상손해 무릅쓰고 주님께로 방향을 바꾸어 바짝 다가갈 때입니다. 그 길이 바로, 지금 눈에 보이는 약자들을 찾아가서(요일4:20) 주님 섬기듯 꾸준히 섬기는 길임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8.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9.“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로마서13:8-9) / 16.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요한일서3:16-18) / 10.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9.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일서4:10-11, 19-21)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달맞이꽃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20호)
달빛 속에서 태어난 나는
날 태우는 태양을 피해 잠들고
오직 그대 떠오르는 밤에 고갤 들어
하염없이 사랑 노래를 부릅니다
내리는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
칠흑의 어둠 속 빛나는 사랑만을 받아
내 곁의 그대를 닮은 노란빛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언젠가 그대 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이윽고 해가 지지 않는 날이 찾아오고
그대 떠오르지 않는 밤이 왔을 때,
나는 달빛사랑 먹고 자란 아이들과 함께
이미 그대 곁의 별이 되어 빛나고 있겠지요.
[시편시조] 시편 146, 맹인의 눈을 열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0호)
맹인의 눈을 열고 고아 과부 도우시며
공의로 재판하고 굶주린 자 먹이는 분
주님만 의지하리라 할렐루야 찬양해
[시편노래] 시편 146, 할렐루야 내 영혼아 (이정훈 편사, 박소연 작곡. 「성실문화」 120호)
[본문] (시편 146)
[노랫말]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평생토록 찬양하며 목숨 다해 찬양하라
사람들 덧없어라 권력자를 믿지 말라, 숨 한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리
2. 복스러운 사람들은 주님만 바라보네, 천지를 지으신 분 주의 신실 의지하네
공정하게 재판하고 굶주린 자 먹이시고, 갇힌 자 풀어주는 주님만 바라보네
3. 눈먼 사람 보게 하고 낮은 사람 일으키고, 의인을 사랑하고 악인의 길 막으신 분
나그네를 지키시고 고아과부 도우시는, 영원하신 주의 통치 찬양하라 할렐루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거문고병창클럽 단원이신 거문고 및 거문고 병창 연주자 박소연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46 (할렐루야 내 영혼아) (이정훈 편사, 박소연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4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2. 내--가-- 평생-토록-, 주-님 (주님)을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3. 너희는 힘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4. 사람은 숨 한 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니,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이 바로 그 날로 다 사라지고 만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 (멸망)으로-- 이끄-신다-∼
(다함께)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막둥이 선녀 보라의 어깨춤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비눗방울 놀이하다가 비눗방울에 갇혀 둥실 떠오르던 시절 이야기예요.
보라는 하늘나라 선녀예요.
선녀들 가운데서도 막둥이죠.
하늘궁전 하늘님 옥좌 뒤에서는 늘
일곱 선녀가 아름다운 악기를 연주합니다.(계4:3)
첫째 선녀 빨강이와 주랑이 노랑이 초록이 파랑이 남이 그리고 막둥이 보라
이렇게 모두 일곱이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장구와 징
아름다운 일곱 악기를 타며 하늘궁전을 아름답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들이 막둥이를 나무랍니다.
“막둥이 너는 징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언니들은 막둥이 보라의 징소리가
장단이 조금조금 뒤뚱거린다며 야단입니다.
부끄러운 보라는 낯빛이 점점 더 진보라가 되어버렸죠.
늦은 밤 보라 혼자 훌쩍이며 마당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지나가던 견우 아저씨가 보라를 달래주었어요.
“징소리는 평화의 소리란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하늘님의 자녀란다.”(마5:9)
예로부터 전쟁을 그칠 때 치는 신호 악기가 바로 징이라고
견우 아저씨는 친절하고 구수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줍니다.
어느새 다가온 직녀공주가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시146:8)
막둥이 선녀 보라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노래가 다 있었다니!
층층시하 시집살이하듯 여섯 언니들 등쌀에
늘 풀죽었던 일곱째 막둥이의 마음이 설렙니다.
하늘님께서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라는 노래에
풀죽고 기죽었던 보라의 마음속에서 자신감이 솟아납니다.
직녀공주님의 저 아름답고 따듯한 노래가
바로 시편노래라는 사실을 알고는
매일매일 시편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시편노래가 점점 익숙해질수록 보라의 어깨는 장단을 타게 되고
으쓱으쓱 어깨춤에 보라의 징소리는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집니다.
어느새 무르익은 보라의 징소리에 언니 선녀들의 눈은 보름달처럼 휘둥그레지고
하늘님 옥좌는 더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정훈 지음. 2024년 11월 2일 토요일 아침]
(다시 아름다운 후배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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