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줄 것이며”(룻기 4:15)
[성서일과 4본문]
(룻기 3:1-5, 4:13-17)
1.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말하였다. “얘야, 네가 행복하게 살 만한 안락한 가정을, 내가 찾아보아야 하겠다.
2. 생각하여 보렴. 우리의 친족 가운데에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요즈음 그 집 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잘 들어 보아라. 오늘 밤에 그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를 것이다.
3. 너는 목욕을 하고, 향수를 바르고, 고운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서, 타작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마칠 때까지, 너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4. 그가 잠자리에 들 때에, 너는 그가 눕는 자리를 잘 보아 두었다가, 다가가서 그의 발치를 들치고 누워라. 그러면 그가 너의 할 일을 일러줄 것이다.”
5. 룻이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4:13.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인이 자기 아내가 되자, 그는 그 여인과 동침하였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늘 기리어지기를 바랍니다.
15.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가 그 아기를 받아 자기 품에 안고 어머니 노릇을 하였다.
17. 이웃 여인들이 그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다!” 하고 환호하였다. 그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다. 그가 바로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시편 127)
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2.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3.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4.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5.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히브리서 9:24-28)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25.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26.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아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8-44)
38.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약자들을 향하시는 주님 눈길, 그 사랑의 풍성하심’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룻기 4:13)
시편,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시편 127:2)
서신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히브리서 9:28)
복음서,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마가복음 12:43)
오늘 요절은,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줄 것이며, 늘그막에 그대를 돌보아줄 것입니다”입니다.(룻기 4:1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룻기 3:1-5, 4:13-17, 시편 12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룻이 나오미의 조언을 따르다, 룻이 보아스와 혼인하다’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행복을 위한 큰 용기, 큰 결단을 강권합니다.
나오미의 지나친 권유에도 룻은 순종하고 결국 보아스와 재혼합니다.
마침내 룻은 아기를 낳고
아기는 나오미의 양자가 되며, 그는 장차 다윗의 조부가 됩니다.
이 모두가 주님께서 보살피셨기 때문입니다.(4:13)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만사가 하나님 내리시는 복에 달렸다’입니다.
시 127편의 구체적인 주제는 ‘주님만이 가정에 복을 주신다’입니다.(새번역 소제목)
전반부는(1-2절) 가정을 이루고 먹고사는 수고에 관한 내용이고,
후반부는(3-5절) 자식생산에 관한 내용입니다.
남녀가 혼인하여 가정을 세우는 일, 먹고사는 일, 자녀를 갖는 일,
이 모두가 오직 주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시인은 강조합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룻과 보아스의 가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2절이 인상적입니다.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오늘 우리에게 귀한 교훈입니다.
2절 하반부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번역마다 맛이 다양합니다만, 새번역과 공동번역이 문맥과 잘 통하여 이해하기 쉽습니다.
개역개정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로,
새번역은,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로,
공동번역은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로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매시간, 24시간 내내 눈여겨보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히브리서 9:24-28, 마가복음 12:38-44)]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그리스도의 일회적 희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직접 나가시기 위해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처럼 모형이 아닌 실물인 하늘 성소에,
속죄소(시은소)가 아닌 실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신 것입니다.(24)
그리고 다시 오시기를 고대하는 우리를 위하여
마침내 다시 오셔서 구원을 선물하실 것입니다.(28)
땅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이(롬 8:26),
하늘에서는 성자예수님이(요일 2:1, 롬 8:34),
이렇게 천상천하 그 어디에서도 우리를 보살피시다가
마침내 우리 눈에 보이게 다시 오셔서 손수 건져주신다는 말씀입니다.(28b)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율법학자들에 대한 경고, 과부의 헌금’입니다.
예수님께서 몽매한 율법학자들의 탐욕을 경계하십니다.
명예욕(38), 권력욕(39), 돈욕심(40) 등 탐욕의 3종 세트가
종교지도자들 내면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처음 유혹받으신 것이어서 더 절실합니다.(마태 4:1-11)
이어서 이런 탐욕과 반대편에 있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교훈을 가르치십니다.
그 교훈이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많은 제물(재물), 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온전한 정성과 믿음(주님만 바라고 의지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마치 오늘날 우리 교회의 거울과 같은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두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시선입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부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해도
분명한 것은 주님의 시선이 가난한 과부의 중심을 보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시편 127:2절의 교훈처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주님의 따듯하신 시선, 그 풍성하신 사랑입니다.
오늘 구약의 룻은 주님의 따듯하신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여자 룻은 곤경에 처한 시어머니를 끝까지 공경하느라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의지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에 이릅니다.
주님의 시선은 늘 곤경에 처한 약자들을 향하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곤경에 처한 약자를 향할 때 주님의 시선과 만납니다.
지금 곤경에 처한 자, 사회적 약자들은 나와 주님의 시선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나머지]
* 두 렙돈, 컵라면과 삼각김밥
노동자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16이 한 앗사리온입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 일당을 10만원으로 볼 때, 한 앗사리온은 오늘날 6,250원이고, 그게 참새 두 마리 값이었습니다.(마태 10:29) 한 앗사리온이 8 렙돈이었으니 과부의 두 렙돈은 참새 반 마리 값이요, 렙돈 한 닢은 약 800원이니, 두 렙돈이란 편의점에서 가장 싼 컵라면 한 개와 삼각김밥 한 개를 살 수 있을까말까 한 금액입니다.
** 주님 사랑만으로 충분한 인생
내 가정, 내 나라를 세우시고 지키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잠도 안자면서 애써 일한다고 살림살이 문제의 근본이 풀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잠을 쿨쿨 자는 동안에도 주님께서 도우시면 문제가 술술 풀리고 살림살이가 살아납니다.(시편 127:2) 아등바등 악착같이 일하는 게 사는 길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길, 우리가 잘 사는 길은 주님께서 지키시고 일하셔야 활짝 열립니다. 관건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내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온전히 그분만 의지하는 것, 이게 바로 주님 사랑을 받는 열쇠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헌금이란, 바로 이 주님 사랑을 느낀 사람의 응답입니다. 주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사랑표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응답에 대해 주님께서 다시 응답하십니다. 주님의 응답이란 헌금 액수(또는 헌금 정성)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사랑, 다시 주님의 사랑입니다. (두 렙돈 바친 가난한 과부를 바라보며 느끼시는 예수님의 감동 말입니다.) 그게 다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그걸 느끼며 헌금하는 사람은 복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은 큰돈을 버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만족하며 살림을 사느냐에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만 살리는 게 아니라, 약한 이웃까지 살리는 살림의 길이란 돈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 눈여겨보고 계시는 주님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시는 장면입니다.(41) 언뜻, 상당히 민망한 한편, 이렇게 은밀하고 민감한 부분까지 눈여겨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없는 철부지 인생들을 일일이 살피시고 고쳐주시려는 주님의 마음!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바치는 두 렙돈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게 그녀의 전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먹을거리를 예언자 엘리야에게 바쳤던 사렙다 과부의 모습과 일부 겹칩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소유를 다 바치는 가난한 과부의 모습에서는 오묘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바로 앞 40절에 나온, 종교지도자들에게 사기당한 어느 과부의 안타까운 느낌과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동화 같은 바램이지만, 두 렙돈 과부가 바로 그 사기당했던 과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 사기당했음에도, 나머지를 하나님께 다 바치는 과부! 오늘 구약본문의 행복한 두 과부, 끝이 행복한 두 과부 나오미와 룻처럼 오늘 복음서본문 과부에게도 살 길이, 행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룻을 눈여겨 보살피셨듯이(룻기 4:13) 두 렙돈 과부도 눈여겨보고 계시니 말입니다.(마가 12:41)
**** 예수님 시선의 끝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 시선이 마치 매의 눈처럼 날카롭고 부지런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의 탐욕과 위선을 낱낱이 꿰뚫고 계실 뿐 아니라 성전 헌금함에 헌금하는 무리들까지 낱낱이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선의 끝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율법학자들의 속이 시커멓고 더럽습니다. 반면에 두 렙돈 과부의 속은 그들과 다릅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두 렙돈 가난한 과부처럼 가난한 과부 룻과 나오미가 오늘 주님께 큰 복을 받습니다.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음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마태1:5) 하나님의 시선이 룻의 속을 보신 것입니다.(룻기1:16c) 오늘 성서일과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늘 우리를 살펴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그 시선이 날카롭고 부지런하심을 새삼 기억합니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일하시는 주님! 룻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사랑스런 자녀들에게는 잠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십니다.(시편127:2) 문득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시선과 우리 시선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일지 또 그 시점이 언제일지 궁금합니다. 사랑의 불꽃이 튀고 주님의 은총이 단비처럼 내릴 그 시점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작은 약자를 향할 때일 것입니다. 주님과 눈 맞추기 위해 부지런한 인생이 복스럽습니다.
***** 나를 송두리째 바치는 사랑
오늘 서신서 본문인 히브리서 9장 말씀의 알맹이는 이것입니다. 단 한 번에 송두리째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중원의 고수들 가운데 절세 고수 한 사람이 나타나, 여러 합을 겨룰 필요도 없이 단 일합에 중원을 평정한 것처럼, 더 할 필요 없이 오직 단 한 번에 온전히, 당신 몸을 십자가에 송두리째 바치심으로, 온 인류의 구원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알맹이도 이것입니다. 단 한 번에 송두리째 바치는 과부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과부의 헌금이 가장 크다고 하신 것이죠. 작고 작은 돈, 마침 동전이 두 개. 두 렙돈이었습니다. 딱 절반이라도 남겨두어 하루라도 더 연명할 길을 마련할 수 있었겠으나, 그 가난한 과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다리조차 불살라버리는 각오로, 오직 주님만 의지한다는, 이제부터 세상 그 무엇도 의지하지 않으리라는, 이제 남은 생명 순간순간을 오직 주님만 기억하며, 주님께만 매달려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 과부는 결코 불쌍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히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이미 거룩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의 알맹이는 이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위해 제 인생을 단번에, 송두리째 바친 가난한 과부 룻의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그 시어머니는 마치 하나님처럼, 한없이 며느리를 사랑합니다. 누군들 룻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룻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친구)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참 아름다운 룻!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고 오늘 시편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애써 집을 짓고 새벽 일찍 일어나 돈 벌려고 수고해도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시편 127편의 알맹이입니다. 오늘 말씀의 알맹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은, 그렇게 하나님께 사랑받는 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마침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인도에 따라 보아스와 재혼하여 오벳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오벳은 관습에 따라 시어머니의 양자처럼 자랍니다. 이방여인으로 태어나 제 인생을 외로운 시어머니를 위해 바친 룻, 자신의 첫 아기조차 시어머니께 바친 룻! 그 아기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자, 먼 훗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친 룻은 자신만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행복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원조입니다.
****** 두 개의 등불, 성 마틴과 전태일
11월 11일은 성 마틴의 날입니다.
마틴은 빈자(貧者)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생을 산 대표적인 분입니다. 해마다 이 날 저녁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독일 어린이들은 모두 등불을 들고 골목골목 행진을 합니다. 모든 초등학교 아이들, 유치원 아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심지어 유모차를 탄 아이들도 유모차에 등불을 걸고 행진에 참여합니다. 마틴의 정신을 기리는 노래도 반복해서 부릅니다. 경찰들은 이날 아이들의 행진을 곁에서 지켜줍니다. 마치 내 가까이 작은 자, 약한 자로 오신 주님을 찾아다니는 것만 같습니다.(마태 25:40)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전통을 온몸으로 익히는 나라는 참 슬기로운 나라입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두운 골목, 후미진 곳을 등불을 들고 걷는 모습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을 연상시킵니다.
11월 13일은 전태일의 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태일 앞에도 ‘성(聖)’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싶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혹사당하는 모습을 보고 버스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고 자기는 통금에 걸리면서까지 그 먼 집까지 걸어 다닌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배운 성경말씀대로 살려다가, 굶더라도 정의의 편에, 약한 자의 편에 서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제 온몸을 기름삼아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22살 저 어린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무너진 세상을 바꿔보려고 몸부림친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 나보다 더 약한 자들 곁을 끝까지 지키려던 전태일, 저 작은 전태일이 숨질 때, 주님께서 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셨다는 사실, 전태일의 일생에, 주님은 항상 그와 함께 하시며 눈여겨보고 계셨음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복음 5:9. 공동번역)
법이 허물어진 세상, 정의의 깃발이 꺾인 세상에서 법의 주춧돌을 다시 놓으려, 꺾인 정의를 다시 세우려 애쓰는 사람이 바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마태 5:9)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녀들에게는 환한 등불과 넉넉한 기름이 있습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예수님은 보신다 (기혜윤 지음. 광주다일교회 초등부. 「성실문화」 120호)
예수님은 보셨다
율법학자들의 행동을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은 보셨다
가난한 과부의 처지를
그 과부의 마음을
예수님은 보신다
우리들의 마음을
[시편시조] 시편 127, 집 짓고 성을 쌓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20호)
집 짓고 성을 쌓고 먹고살려 애를 써도
주님을 잊은 인생 헛되고 헛되도다
잘 때도 복 주시는 분 내 주님만 의지해
[시편노래] 시편 127,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이정훈 편사, 오순정 작곡. 「성실문화」 120호)
[본문] (시편 127)
[노랫말]
1.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 짓는 자 모든 수고 헛수고되고
주님께서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 허무하여라
늦게 자고 일찍 깨어 수고하는 삶, 먹고 살려 애쓰는 일 부질없어라
자다가도 복 받으리 주를 바라라, 진실로 사랑의 주 주만 바라라
2. 주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선물, 태 안의 열매는 주님의 상급
젊어서 낳은 자식 든든하여라, 용사의 손에 들린 화살 같아라
그 화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 그 용사 든든하고 복스러워라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빛나는 그의 얼굴 당당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한국교회음악작곡가협회 회원이신 작곡가 오순정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27 (주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이정훈 편사, 오순정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2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2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2.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3. 자식-은-- 주님-께서-,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4.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5.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말씀동화] 철수의 꿈은 엄마의 단꿈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감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자다가 대봉 홍시감이 입속으로 쏙 떨어지던 시절 이야기예요.
철수 엄마는 언제나 밝은 아줌마예요.
구름이 많은 날 해님 얼굴은 빛을 잃지만, 아줌마 얼굴은 언제나 빛나죠.
가난한 살림에도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십니다.
백화점에서 포장하는 일도 잘하시고,
전철타고 버스타고 달려가서 물건을 전달하는 일도 씽씽 잘하시지만
뭐니 뭐니 해도 철수 엄마가 가장 잘하시는 일은 역시 식당일이죠.
처음에는 주로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하셨는데
늘 환하게 웃는 밝은 미소 덕분에
요새는 주로 손님들께 음식을 차려드리는 일을 하세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철수 엄마의 얼굴에서 그 한결같던 미소가 사위어갑니다.
그건 바로 밝은 미소가 퐁퐁 샘솟던 미소의 샘이 마른 탓이죠.
그 밝고 아름다운 미소의 샘이 뭐냐고요?
뭐긴 뭐겠어요, 아름다운 꿈이죠.
철수 엄마에게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아름답고 단단한 꿈이 있었거든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만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 잘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꿈!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심지어 하루에 몇 가지씩 일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잠을 줄이고 또 줄이며 밤새 부업을 해도
좀처럼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으니까요.
엄마의 얼굴에서 시나브로 미소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낀 철수가
식당일 마치고 오셔서도 계속 부업 일감을 쌓아놓고 일하시는 엄마 곁에서
살그머니 우쿨렐레를 들고 와서 도로롱∼ 반주하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시편127:2, 새번역성경)
철수의 시편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엄마의 입가에서 희미하게 미소가 번집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도로롱 도로롱 우쿨렐레 서툰 솜씨와 설익은 시편노래에도
엄마의 마음이 조금조금 따듯하게 풀리기 시작하고
일에 집중하느라 곤두선 눈매도 슬금슬금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깊은 잠에 빠진 철수 엄마는 참 오랜만에 단꿈을 꿉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꿈입니다.
나보다 더 어렵게 사는 나이 많은 신참 아줌마가 주방설거지 하다가
그릇을 깨뜨려 안절부절 허둥대는 모습을 철수 엄마는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쭈그리고 앉아 허둥지둥 깨진 그릇 조각을 줍고 있는 신참 아줌마에게
얼른 달려가서 염려 마시라 따듯하게 위로하고 깨진 그릇 함께 주우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로 신참아줌마와 눈을 맞춰드립니다.
그런데 눈물 그렁그렁 충혈 된 그 아줌마의 눈동자 속에서
사랑에 겨운 예수님이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으시는
그런 눈물겨운 단꿈입니다.
참 오랜만에 푹 단잠 자며 보약 같은 단꿈을 꾼 철수 엄마는
마치 예수님과 눈 마주치는 순간 그 아름다우신 눈빛이 스며든 사람처럼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고 아름다워지고
심지어 단풍처럼 울긋불긋, 두근두근 첫사랑의 설렘으로 물들어버렸죠.
왜냐고요?
왜긴 왜겠어요, 새로운 꿈이 생겨버렸거든요.
그건 사실 오랜 세월 까맣게 잊힌 꿈, 오래 묵은 옛 꿈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내내 꿈꾸던 백년 묵은 산삼처럼 설레는 꿈,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에요.
발 빠르게 식당일도 줄이고 부업도 확 줄이고 동화 짓기를 시작하는 엄마에게
철수가 또박또박 사랑이 담긴 문자를
엄마에게 생기를 되찾아드리는 문자를 보냅니다.
“이제부터 수면시간 최소 3시간 더 늘리세요!
그래야 단꿈을 더 많이 꾸죠.”
철수의 문자를 읽으며 하트눈이 되어버린 엄마가
기억을 더듬어 철수의 시편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릅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시편127:2)
[이정훈 지음. 2024년 11월 9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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