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복음6:35)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하 11:26-12:13a)
26 우리야의 아내는, 우리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의 남편을 생각하여 슬피 울었다.
27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니,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왔다. 그 여인은 이렇게 하여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이 한 이번 일은 아주 악하였다.
12:1 주님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2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3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6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8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10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안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너의 아내들도 빼앗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대낮에 너의 아내들을 욕보이게 하겠다.
12 너는 비록 몰래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나는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바라보는 앞에서 이 일을 하겠다.’”
13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시편 51:1-12)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에 뉘우치고 지은 시]
1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5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6 마음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가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씻어 주십시오.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주님께서 꺾으신 뼈들도, 기뻐하며 춤출 것입니다.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에베소서 4:1-16)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선물의 분량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성경에 이르시기를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포로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 합니다.
9 그런데 그분이 올라가셨다고 하는 것은 먼저 그분이 땅의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하늘의 가장 높은 데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11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12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14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16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몸에 갖추어져 있는 각 마디를 통하여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몸이 건설됩니다.
(요한복음 6:24-35)
24 무리는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30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34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와 가까워질 때’입니다.
구약,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삼하 12:9)
시편,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가지 말아 주십시오”(시편 51:11)
서신서, 우리는...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에베 4:15)
복음서,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요한 6:35)
오늘 요절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입니다.(요한복음 6:3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하 11:26-12:13a, 시편 51:1-1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나단이 책망하자 다윗이 죄를 고백하다’입니다.
나단의 ‘두 사람’ 비유에 다윗은 본의 아니게,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4배 배상을 선고합니다.
4배 배상은 출애굽기 22:1에 근거하며, 실제로 다윗은 네 명의 아들을 잃습니다.
(삼하 12:19, 13:28-29, 18:14-15, 왕상 2:24-25)
비로소 나단이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전합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 이 두 가지 죄에 해당하는 두 가지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과 달리 회개하고,
사울과 달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주님의 백성이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히나
다시 돌이켜 주님께 가까워질 때 다시 생명의 길은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넷째 참회시)’입니다.
이 시편은, 죄 용서를 비는 구약성경의 기도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기도문으로 손꼽힙니다.
4절은, 다윗의 죄가 우리야와 밧세바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림을 너머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7절의 “우슬초”는 정결예식의 상징으로서,
시인 자신이 나병환자처럼(레14:4-7), 주검(에 접촉한 사람)처럼(민19:18) 불결한 상태라는 고백이며,
8절은, 죄인의 죄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죄용서를 약속하는 제사장의 선언에
회중이 크게 기뻐 환호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죄는 우리를 사람과 주님으로부터 단절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회개는 우리를 주님과 가까워지게 함으로써 생명과 회복에 이르게 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4:1-16, 요한복음 6:24-35)]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됨과 은사의 다양성’(하나 되는 진리)입니다.
3절은, 2주전 본문인 2:14-22에서 보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을 강조하며,
4-6절은 그 대전제입니다.
11절에 나열한 은사는, 특히 복음(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고 먹이는 직분들입니다.
교회의 지체 하나하나가 각자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12)
주님을 점점 더 잘 알아가게 합니다.(13),
이로써 주님의 몸 교회가 세워지고(12), 자라서(13), 거짓가르침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14)
이렇게 교회는 복음(말씀)의 기초 위에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한 몸으로 자람으로(15-16)
점점 주님과 가까워져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된 주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예수는 생명의 빵이시다’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빵’을 통해서 ‘만나’를 기억나게 하고,
마침내 영생을 주는 빵(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오작교 역할을 합니다.
‘빵’은 육체 생명력의 상징에서 출발하여, 광야역사 생명력의 상징을 거쳐,
영적 생명, 영원한 생명력, 영생의 상징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광야 40년의 교훈을 압축하면,
임마누엘 하나님 체험,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백성의 불평불만 불순종의 원인, 그게 바로
늘 빵과 물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저 광야 40년 백성과 다름없는 이들에게
35절 한 말씀으로, 그 불신앙의 핵심, 그 올무를 끊어주신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6:35)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신 영생이,
그 영생이 이제 백성의 눈앞에 등장한 것입니다, 드러난 것입니다.
이제 백성은 영생,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 다가가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게 된 것입니다.
(※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요사이 청문회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간은 욕심 앞에서 얼마든지 언제든지 거짓말 할 수 있는 존재로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거짓의 아비, 세상권세와 죽음권세 송두리째 휘두르는 저 놈 웃음소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귀를 찌르고 하늘을 찌릅니다.
인간의 먹을거리를 상징하는 빵은,
그래서 예수님께서 금식하실 때 광야에서 마귀가 건드린 바 있는 빵은,
마귀에게 멱살 잡힌 인류의 아킬레스건인 빵은,
오늘 예수님 덕분에 누덕누덕 오명을 씻고 거룩한 이름, 신비로운 향기를 얻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었던 빵이 마치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으로 변화하여(요6:27)
“참 빵”(32), “하나님의 빵”(33), “생명의 빵”(35)으로 거듭난 듯이!
오늘 예수님은 신비롭고 구수한 빵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참사람답게 제대로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일, 즉 예수님께 다가가는 일입니다.(35)
오늘 바울의 입을 빌리자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하는 일입니다.(엡4:15)
그렇게 주님께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멱살을 쥔 마귀의 손아귀는 맥이 풀리고
우리의 생명력은 빛을 뿜고 향기를 발하여 차차 온 세상 희망이 되어갑니다.
거짓의 아비에게 가까워지던 다윗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자백합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12:13)
생명의 빵 예수님께로 방향을 잡고 첫 걸음을 떼는 선언입니다.
마귀의 손아귀에서 기운이 빠지고 그놈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나머지]
* 극진(極盡)한 빠띠쉐, 예수!
올림픽의 도시 고대 아테네 시에서는 빵 반죽하는 이들 곁에 늘 피리를 부는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음악은 일하는 사람의 마음에 힘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빵 반죽에게도 힘을 줍니다. 그래서 빵 반죽이 더 향기롭게 잘 부풀고 빵 맛이 더 부드러워집니다. 반죽할 때 들어가는 물에 음악이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요? 좋은 음악이 물의 결정(結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이미 실험을 통해 잘 압니다. 유기농 하우스 농사를 짓는 사람들 가운데 하우스 안에 늘 좋은 음악을 틀어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까닭은 농작물들이 좋은 음악을 들으면 좋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식물 안에 든 수분 때문입니다. 논에서 김매기를 할 때 풍물을 치는 것도 두레꾼들에게 힘을 줄뿐 아니라 동시에 벼이삭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사람 몸속에 있는 수분 즉 피가 영향을 아주 많이 받습니다. 마음과 몸 양방향으로 동시에 직결되는 것이 바로 피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의 피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이미 잘 압니다. 이런 만화를 그려봅니다. 빈들, 수많은 배고픈 군중들 앞에서 빠띠쉐 복장을 하신 예수님! 땀 흘리며 빵 반죽을 하고 있는 예수님, 그리고 그 곁에서 장구 반주에 맞추어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그리고 아쟁을 연주하는 제자들... 예수님의 빵 반죽은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으며 향기롭게 부풀어 오르고, 부풀어 부풀어 잭의 콩나무처럼 부풀어 아무리 많은 사람들도 다 나눠먹을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오릅니다.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에까지 다다를 만큼 한껏 부풀어 오른 빵 반죽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의 연주가 달아오름에 따라 부푼 빵 반죽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것입니다.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 굽는 냄새만큼 희망적인 냄새가 또 있을까요? 저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그리고 제자들이 연주하는 이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조금씩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 빵 굽는 냄새와 음악소리에 옹졸했던 마음들도 너그러워집니다... 예수님은 태생부터가 남달랐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말 밥그릇이었습니다. 남의 밥이 될 운명을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그 마구간이 있던 마을, 즉 예수님이 출생하신 마을 이름은 바로 빵집(베들레헴)입니다. 빵집에서 태어나서 빵 굽는 빠띠쉐가 되셨을 뿐 아니라 마침내 빵이 되신 분, 예수님! 지금도 예수님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로, 지구 곳곳에서 2천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예수님의 몸이 나눠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은 너희 죄를 위해 흘린 내 피다... 하시면서 주님의 몸을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렇게 극진한 빠띠쉐, 이렇게 성실한 빠띠쉐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전 세계 교회를 위해 매주일, 아니 매일 당신의 몸을 쪼개어 나누어주고 계십니다. 이건 오병이어의 표적을 넘는 기적입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서신서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또 이런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렇게 나누어지는 예수의 몸이 바로 여러분, ‘교회’라고!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세워가고, 건설해가는 일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을 위해서 교회는 자라야 하는가? 그건 바로 지금 기가 죽은 우리 이웃의 약자들에게 새 힘을 줄, 희망을 줄 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의지할 곳 몰라 나날이 시들어가는 저들에게 신비로운 산삼과 같은 힘을 주고, 아름답고 행복한 음악소리, 저 고소하고 향긋한 빵 굽는 냄새를 전해주기 위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우리야처럼 죽어가는 북극곰을 보며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의 줄거리는 죄와 벌, 회개와 용서, 그리고 회복입니다. 회복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말합니다. 그 중심에 예언자가 있습니다. 오늘 신약본문의 배경 그림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관습과 관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 온갖 교훈의 풍조” 등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에베4:14)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깨뜨리고 사랑으로 용납하고(에베 4:2),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살고(15), 사랑 안에서 자라야 할 때입니다.(16) ‘먹고 마시는 문제’는 인류의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요한6:26)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막강한 무기인 ‘죽음의 공포’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죽음권세를 송두리째 무너뜨리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그 먹고 마시는 문제의 핵심을 짚으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35) 더 이상 먹고 마시는 문제에 목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예수님의 몸을, 그 말씀을 꿀꺽 삼킬 때입니다. 지금 온 세상이 무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인류의 지나친 편리추구와 이윤추구가 맞물리면서 탐욕의 극대화를 초래하고 그것이 오늘 우리 지구를 끙끙 앓게 만든 것입니다. 하릴없이 죽어가는 북극곰이 마치 헷 사람 우리야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예언자 나단처럼 모든 언론이 소리쳐도 이미 익숙해진 자동차와 에어컨은 멈출 줄 모릅니다. 발전소와 공장 역시 멈출 길을 잃었습니다. 나단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회개하고 길을 찾았건만, 21세기 인류는 회개의 길을 잃었습니다. 인류의 나태와 망각을 깨우치시려고, 막힌 귓구멍을 뚫어주시려고 주님께서 나단처럼 우리를 보내려 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생명 바쳐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먹이시어, 일용할 만나보다 더 많은 걸 움켜쥐려는 어리석음들을 허무실 것입니다.
*** 하나님의 전부였던 우리야, 하나님의 전부인 우리
오늘 구약본문의 예언자 나단의 고발에 나온 가난한 자와 한 마리뿐인 어린 양은 우리야와 그 아내 밧세바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는 동안 점점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야 가족으로 느껴집니다. 불경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가난한 자로 여겨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지극히 작은 자와 일치시키신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마태복음25:45),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께는 전부인 듯 귀하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늘 다윗의 시 “오직 주님께만” 죄를 지었다는 노래가 더 절실하고 절절합니다. 다윗이 훔친 밧세바는 우리야의 전부였으며, 동시에 다윗이 죽인 우리야는 하나님의 전부였으니! 오늘 우리는 우리야 덕분에 우리가 우리 주님의 전부라는 느낌을 얻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 되는 진리, 하나라는 진리를 여러 각도로 보여줍니다. 이 진리의 중심에 사랑이 있습니다.(2,15,16) 그 사랑의 발현이신 참 생명의 빵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들이 오병이어 맛에 이끌려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찾던 이들이 귀한 진리, 거룩한 사랑을 만납니다. 내가 전혀 슬기롭지도 않고 거룩하지 않은데도 주님을 만나 점점 물들어갑니다.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근심의 근본이 사라지고(요6:35) 부러진 뼈다귀조차 기뻐 춤춥니다.(시51:8)
**** 생명의 빵이 되어가는 예언자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 나단을 통하여 <예언자란> 자기 생명을 걸고 생명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죄인의 생명을 구하는 존재임을 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이 특히 생명말씀을 전하는 은사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대목에서, 교회의 지체들이 건강하게 자라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이르려면(13) 생명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습니다. 생명말씀으로 눈 열리고 귀가 열려 마침내 제 은사를 깨달아 성실히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표적 직후 무리들의 입에서 ‘만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오병이어와 만나의 껍데기 공통분모인 ‘빵’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들의 알맹이 공통분모인 “참 빵”(32), “하나님의 빵”(33), “생명의 빵”(35)으로 이야기를 발전시키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신의 정체임을 밝히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신 바로 그분이십니다.(요한1:14) 생명의 빵은 바로 생명말씀이십니다. 우리가 늘 먹는 성경말씀, 성찬말씀이십니다. 교회는 이 생명의 빵, 주님말씀을 먹고 자라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는 이 생명말씀을 먹고 그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그 말씀 따라, 내 몸을 쪼개어 나누는 성찬의 도(道)! 그렇게 내가 생명의 빵이 되어가는 예언자들입니다.
***** ‘감사노래’
오래전 오늘 본문말씀을 읽으며 오래 전에 지은 말씀노래를 소개합니다. (향린교회가 만든 「국악찬송가」230장에 실려 있습니다.)
1절)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일용할 만나를 주시는 주님
남아도 썩지 않는 주님의 만나, 보리떡 다섯 개는 열두 광주리
2절) 오천명 오만명을 먹이신 사랑, 어린양 십자가에 오르신 사랑
이천년 베푸시는 주님의 만찬, 보리떡 다섯 개는 열두 광주리
3절) 너희가 저들에게 밥을주어라, 너희가 저들에게 만나가 되라
하나님 하늘사랑 땅을 적실 때, 보리떡 다섯 개는 열두 광주리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예수를 먹어요 (김은주 지음. 골방교회 교우. 「성실문화」 119호)
TV를 켜면 모두가 먹고 있네
음식 맛을 평하며 모두들 신이났네
왜 사람들은 넘치게 먹을까
먹어도 먹어도 헛헛하니까
사고 또 사도 비루하니까
결핍이 아니라 결핍감이라네
그러지 말고 예수를 먹어요
배고픈 사람과 나눠먹구요
그러지 말고 예수를 마셔요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예수로 배불러요
세상은 당신이 먹고 마시기에
합당하지 않아요. 차마 입맛이 없어지니까
세상의 진수성찬은 부끄럽고 불편해요
예수를 먹어요
예수를 마셔요
[시편시조] 시편 51, 뼛속 깊은 죄인으로 (이정훈 지음.「성실문화」 119호)
뼛속 깊은 죄인으로 죄 중에 태어난 몸
우슬초로 씻으소서 나를 씻어 주옵소서
마침내 자비 베푸실 한결같은 그 사랑
[시편노래] 시편 51,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성실문화」 119호)
[본문] (시편 51:1-12)
[노랫말]
1.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께 저지른 죄 반역죄를 아시오니, 더러운 이 죄악을 씻어내 주옵소서
2.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죄 중에 태어난 몸 뼛속 깊은 이 죄인을, 우슬초로 씻으시고 주의 지혜 부으소서
3.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새로 지은 깨끗한 맘 새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께서 꺾으신 뼈 춤을 추게 하옵소서
4.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날 버리지 마옵소서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구원의 이 기쁨을 노래하게 하옵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주원남 목사가 성실문화 112호에 지어 올린 시편노래(79 ‘오 하나님 이방들이 주님 땅에 들어와서’) 가락에 새 가사를 얹었다.
[악보] 시편 51 (하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51:1-12 (지음.「성실문화」 119호)
(※‘새야새야’ 가락에 맞추어, ‘쉼표’까지가 중모리 한 장단)
1.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5.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6. 마음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가== 깨끗하게==,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씻어 주십시오.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주님께서 꺾으신 뼈들도, 기뻐하며 춤출 것입니다.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11.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12.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다함께]
내==가== 지탱할 수==,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말씀동화] 철수의 시간화수분, 영희의 평화반창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고 싶어서 무더위에 다이어트 하다가 쓰러지던 시절 이야기예요.
오늘도 우리 전도사님이 뻘뻘 진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연신 합죽선으로 부채질하며 땀을 식히지만 땀이 식질 않아요.
한여름 무더위도 무더위지만 이게 다
우리 교회학교 상상력대장 철수 때문이죠.
성경공부 시간 철수의 느닷없는 상상력이 펜싱처럼 날카롭고 교묘합니다.
“나중에 내가 꼭 블랙홀의 정체를 밝혀낼 거예요.”
철수는 물질을 한없이 쏟아내는 화수분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죠.
하늘에서 계속 비가 내려도 바닷물이 계속 짭짤한 까닭이
옛날 옛적 바다에 빠진 소금화수분에서
지금도 계속 소금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화수분이 흑화하면 블랙홀이 되는 게 확실해요!”
화수분이 물질을 너무 많이 쏟아내서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면
화수분이 흑화해서
반대로 자기가 쏟아낸 물질을 다시 삼켜버린다고 철수는 굳게 믿나 봐요.
철수의 상상력은 마치 화수분처럼 한없이 쏟아집니다.
세상 어디엔가 시간을 쏟아내는 화수분이 있다고 철수는 믿습니다.
시간화수분을 어서 찾아내어서 어두운 방에 가지고 들어가
검정색 칠을 하여 억지로라도 흑화시키면
시간을 다시 빨아들이는 타임머신이 된다나 뭐라나.
도대체 철수의 시간화수분 상상력은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그게 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꼬마장군 다윗 때문이에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다윗 때문에 성경공부시간이 신났는데
갑자기 다윗이 나이를 먹더니 왕이 되고 아주 몹쓸 짓을 저지른 거죠.
천하의 다윗이 착한 충신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빼앗다니!
그래서 철수는 두 손 모아 기도했어요.
3천 년 전 다윗에게 갈 수 있게 해주세요!
다윗의 어린 목동 시절로 돌아가서 절친한 친구가 되어서
다윗이 그런 몹쓸 짓을 저지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밧세바 어렸을 때 다윗의 여친으로 만들어주면 된다나 뭐라나.
그래서 타임머신을 찾다가 시간화수분까지 궁리해낸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엉뚱한 철수의 상상력에 우리의 눈길은 화살처럼 빠르게
전도사님의 눈과 입을 향합니다.
한참 우물쭈물하던 전도사님이 마침내 입을 여십니다.
“철수의 착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야.”
어느덧 하트눈이 되어 부드러워진 전도사님의 낯빛과 목소리에
우리 마음도 한결 편안하고 부드러워지니
우리 교회학교 성경대장 영희가 한마디 합니다.
“시간화수분을 시간블랙홀로 만들면 나도 함께 가자”
다윗에게 “평화의 띠”(엡4:3)가 꼭 필요하다고
영희는 힘주어 말합니다.
밧세바가 우리야랑 만나기 전에 다윗을 만나게 해준 뒤에도
다윗이 다른 엉뚱한 짓을 절대 하지 못하도록 ‘평화의 띠’로 묶어줘야 한다고.
철수와 영희의 엉뚱 발랄한 상상력에 우리 모두 고개를 주억거릴 때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로 전도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시간화수분’을 찾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평화의 띠’가 있으니까!”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저지른 몹쓸 짓은 세상에 다시없을 고약한 짓이 분명한데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다윗이 뉘우쳤다는 사실이라고
전도사님은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나단 예언자에게서 하나님말씀을 들은 다윗이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12:13)라고 자백하고 회개한 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하늘동아줄처럼 소중하다고.
“다윗보다 작은 우리가, 언젠가 다윗보다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다윗보다 작아도 용기 내어 회개할 수 있어야겠지?”
상처가 나면 반창고를 붙여주듯이
우리 모두 ‘평화의 띠’를 준비하고 있다가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예언자 나단처럼 달려가서
친구의 잘못을 알려주고 평화의 반창고를 붙여주어야 한다고.
[이정훈 지음. 2024년 8월 3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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