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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성령강림절 10주(성령강림 후 9주, 2024년 7월 2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마가복음 6:56)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하 7:1-14a) 나단의 예언

1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2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3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4 그러나 바로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6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7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9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10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11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12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시편 89:20-37) 주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맹세 [에스라 사람 에단의 마스길]

20 나는 내 종 다윗을 찾아서, 내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었다.

21 내 손이 그를 붙들어 주고, 내 팔이 그를 강하게 할 것이다.

22 원수들이 그를 이겨 내지 못하며, 악한 무리가 그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23 내가 오히려 그의 대적들을 그의 앞에서 격파하고,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쳐부수겠다.

24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내 약속을 성실하게 지킬 것이며, 내가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겠다.

25 그의 손은 바다를 치며 그의 오른손은 강을 정복하게 하겠다.

26 그는 나를 일컬어 주님은 나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내 구원의 반석입니다하고 말할 것이다.

27 나도 그를 맏아들로 삼아서, 세상의 왕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왕으로 삼겠다.

28 그에게 내 신의를 영원토록 지키며,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겠다.

29 그의 자손을 길이길이 이어 주며, 그의 왕위를 하늘이 다할 때까지 지켜 주겠다.

30 그러나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내버리고 내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31 내 율례를 깨뜨리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32 나는 그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다.

33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34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을 두고 한 번 맹세하였는데, 어찌 다윗을 속이겠느냐?

36 그 자손이 영원토록 이어지고, 그 왕위는 내 앞에서 태양처럼 있을 것이니,

37 저 달처럼, 구름 속에 있는 진실한 증인처럼,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을 것이다." (셀라)

 

(에베소서 2:11-22) 하나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12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마가복음 6:30-34, 53-56) 오천 명을 먹이시다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몰려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그에게 보고하였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보고, 그들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53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55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가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상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56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차별없이 끊임없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입니다.

 

구약,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삼하 7:9)

시편, “나도 그를 맏아들로 삼아서, 세상의 왕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왕으로 삼겠다”(시편 89:27)

서신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 2:16)

복음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마가 6:34)

 

오늘 요절은,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입니다.(마가복음 6:56)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하 7:1-14a, 시편 89:20-37)]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다윗과 다윗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언약궤 옮기기도 다윗 마음대로 안 되었듯이, 성전건축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다윗의 꿈을 바로잡아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의 집에 대한 든든한 약속으로 발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백성 사랑이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까닭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지만(역대상22:8)

그 이면(裏面)에 하나님의 백성 사랑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백성이 옮겨 다닐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도 옮겨 다니셨으며(7),

백성이 정착할 수 있을 때에야 나도 정착하겠노라는 하나님 마음이 느껴집니다.(10)

바로 이 하나님 마음이, 다윗에게 고한 우리야의 마음과 통합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삼하 11:11)

(이 대목에서 우리야가 예언자처럼 느껴집니다. 다윗은 이때 오늘 본문의 하나님 뜻을 기억했어야 했건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신 것은 백성을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삼하5:12, 대상14:2)

 

그리고 지금 다시금 깨달았을 것입니다.

백성이 정착해야 성전건축을 허락하시겠다는,

유리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두머리 다윗부터 밑바닥 백성까지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답게,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다시 다룹니다.

구약본문의 약속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된 노래입니다.

 

하나님 약속의 신실하심은

다윗의 자손들을 통해 확증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자손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다윗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 사랑 때문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에베소서 2:11-22, 마가복음 6:30-34, 53-56)]

오늘 서신서 본문 소제목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일치입니다.

옥중에서도(3:1) 바울은 교회의 일치를 위해 편지를 씁니다.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

하나님 백성이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분열된 사랑이 아니라,

하나 된 사랑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분열의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14, 16)

 

20-21절은 교회를, 건축 중인 건물로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입니다.(1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불완전했던 교회가 이리 하나로 완전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15), “하나님의 가족”(19)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리심,

목숨을 바쳐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온누리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오천 명의 급식,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다입니다.

백성의 여윈 모습을 예수님께서 보십니다.

목자 없는 양이어서 저들은 굶주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참 목자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말씀을 먹이시고 떡을 먹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33, 55)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 예수님께서 이들의 온갖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무슨 병이든 다 나았습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사랑이신 하나님은 늘 아래로 흐르십니다.

무조건적인 내리사랑 아가페는 물처럼 흐르십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만유를 적십니다.

 

그 사랑 쏟으시려 당신 빼닮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이방인 가리지 않고

부자 가난한 자, 건강한 자 연약한 자 가리지 않고

단비처럼 이슬처럼 내리십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잊고 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흐르시는 그 사랑은

마침내 우리를 그 사랑에 물들게 하십니다.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2:14) 평화로이 하나 된 새 사람으로만드십니다.(15)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거침없고 끊임없고 차별 없으신데

하물며 우리가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할 때에는

얼마나 뜨겁고 강렬하게 진동하시겠습니까, 그 사랑이!

 

 

 

[나머지]

* 예수님의 옷술(마가6:56)

옷술을 만지기만해도 병이 나았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비상상황을 가리킵니다. 보통 때와 다른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병자가 한 두 사람이었으면 예수님께서 일일이 손을 얹어주시거나, 눈을 마주보며 따스한 말씀으로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주시고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실 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너무 많아서, 치료받아야 할 병자들이 너무 많아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의 옷 끝단에 달린 옷술을 만진 것입니다. 옷술은... 지난 6월 마지막 주일 말씀에 나온 12년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 몰래 그 옷자락을 만졌던 바로 그것입니다.(병행본문인 마태9:20절과 누가8:44절에는 정확히 예수님의 옷술을 만졌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옷술이 신통력을 발휘한 것입니까? 옷술이 예수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옷술은 찌찌트라고 불리는데, 그것을 만들어 달아야 하는 까닭이 민수기 15:37-41절에 나옵니다. (37.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38."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대대손손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옷자락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야 한다. 39.너희는 이 술을 볼 수 있게 달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그래야만 너희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라가거나 너희 눈에 좋은 대로 따라가지 아니할 것이고, 스스로 색욕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40.그리고 너희가 나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실천할 것이며,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될 것이다. 41.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었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옷을 입는 사람이나 그 옷을 보는 사람이나 모두가 저 푸르른 옷술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데로 빠지지 말라는, 육체의 쾌락, 내 알량한 계산과 경험으로 꿈꾸는 그런 행복 말고, 참 행복의 길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옷술의 목적은 미망(迷妄)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가 딱 옷술입니다. 예수님의 옷술! 병든 이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하나님의 약속 말씀이 기억나는 그런 옷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낙심했던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참 목자가 보이고, 그 옷술만 보아도 마음에 힘이, 희망이 솟는, 그래서 그 옷술을 만지려고 가까이 다가오는... 교회는 딱, 예수님 옷술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회는 옷술이 아니라 주님의 몸 자신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옷술과 같은 존재인 것이죠. 문제는 지금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옷술, 예수님의 옷술과 같은 존재로 살고 있느냐 입니다. 지금 병든 이들이 보기만 해도 예수님 뵌 듯 만지고 싶은가? 내가 사는 모습만 보고도 물질욕심이 사라지고 영의 말씀에 대한 욕구가 살아나는가...입니다.

 

** 님의 집, 주님의 몸, 교회

오늘 구약과 서신서 그리고 복음서에 각각 유리하는 백성, 불안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강렬합니다. 그 이름 임마누엘, 그 마음 임마누엘을 느낍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태1:23) 이를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일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강렬한 사랑이, 오늘 4본문에 철철 넘쳐흐릅니다. 오늘 구약의 교훈은 백성이 정착하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음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백성의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삼하7:6,7a, 21:3) 그러므로 백성이 유리(流離)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이 이 사실을 환히 보여줍니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유리(流離)하고, 또 유리(遊離)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갑니다.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체가 되어가니, ! 거기가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20-22)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리시기 전에 마음속 깊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 곳곳에 각종 난민들이 정처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저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는 안정될 수 있을까요? 지금 대한민국이 빈익빈부익부 문제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약자들이 불안정한데 강자는 안정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대답해야 할 때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 되어 가듯이,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교회라면 전혀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 되어갈 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는(에베 2:15) 평화의 임금 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적어도 지금 예수님의 그 옷술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마가6:56)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약한 자를 부르시는 주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9)

약한 자를 부르시는 주

우리를 불쌍히 여겨

먹이시고 또 치료하시네

누구든 다가오라 하시며

편안히 쉬게 하시네

목자 없는 양들을 부르시고

또 가르치시네

아 주님의 은혜

그 따뜻한 사랑

드넓은 사랑에 빠져들어

그분 안에 영원히 살아가네

 

 

 

 

[시편시조] 시편 89, 주님은 내 아버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9)

주님은 내 아버지 내 하나님 구원반석

다윗의 이 고백을 하나님이 사랑하네

무궁한 해와 달처럼 그의 자손 지키리

 

 

 

 

[시편노래] 시편 89, 나의 종 다윗을 찾았네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119)

[본문] (시편 89:20-37)

[노랫말]

1. 나의 종 다윗을 찾았네 내 거룩한 기름을 부었네, 내 손이 붙들어 주었네 내 팔이 그를 강하게 하였네

원수들 이기지 못하리 다윗을 이기지 못하리, 내 손이 원수를 부수고 다윗의 앞에서 부수리

2. 내 사랑 다윗이 이기리 온 땅을 정복해 나가리, 내 아들 나의 종 다윗을 온 땅의 높은 왕 삼으리

대대로 영원한 내 사랑 그 자손 대대로 이으리, 대대로 성실한 내 언약 그 왕위 영원히 지키리

3. 그 자손 내 법을 어기면 뼈아픈 죄 값을 치르리, 내 진실 변함이 없으니 내 언약 깨지지 않으리

거룩한 내 언약 미쁘니 그 자손 그 왕위 영원해, 해처럼 달처럼 빛나리 해처럼 달처럼 영원하리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89 (나의 종 다윗을 찾았네)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20240721 시편노래 89 나의 종 다윗을 찾았네.m4a
4.19MB

 

 

 

 

 

 

[시편송서(誦書)] 시편 89:20-3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9)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20. 나는 내 종 다윗을 찾아서, 내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었다.

21. 내 손이 그를 붙들어 주고, 내 팔이 그를 강하게 할 것이다.

22. 원수들이 그를 이겨 내지 못하며, 악한 무리가 그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23. 내가- 오히려 그-대적들--, -의 앞에서 격파-하고-,

-미워하-- 자들---, (--하는 자들을) 쳐부수겠다-

 

24. 나는 그를 사랑하고, 내 약속을 성실하게 지킬 것이며, 내가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겠다.

25. 그의 손은 바다를 치며 그의 오른손은 강을 정복하게 하겠다.

 

26. -는 나-를 일컬---, ‘주님은 나-의 아버---,

-의 하나님 - 구원의- 반석-, (반석)입니다-’ -고 말할- 것이다---

 

27 나도 그를 맏아들로 삼아서, 세상의 왕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왕으로 삼겠다.

28 그에게 내 신의를 영원토록 지키며,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겠다.

29 그의 자손을 길이길이 이어 주며, 그의 왕위를 하늘이 다할 때까지 지켜 주겠다.

 

30 그러나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고-, - 규례를- 따라서 살지- 않고-,

31 내 율례를-- 깨뜨-리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32 나는 그 죄를 물어 채찍으로 치고 그 죄악을 물어 매질할 것이다.

33 그러나 그에게 약속한 나의 진실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34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을 두고 한 번 맹세하였는데, 어찌 다윗을 속이겠느냐?

 

36 -- 자손이 영-원토록-, (영원토록--) 이어-지고-,

-- 왕위는 내 앞-에서-, 태양처럼-- 있을 것이니-,

 

[다함께]

37 -- 달처럼 (- 달처럼-), -- 속에 -는 진실한 증인처--,

-원토록- 견고-하게-, (-고하-) 서 있을- --∼∥" (셀라)

 

20240721 시편송서 89;20-37.m4a
6.64MB

 

 

 

 

 

[말씀동화] 잘 바위 숙암리(宿岩里)에 아픈 짐승들이 몰려든 까닭은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낮잠 자다가 옛 친구 웅녀랑 춤추는 단꿈 꾸던 시절 이야기예요.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리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아리랑 1)

 

검은 구름이 강원도 정선하늘을 겨울이불처럼 뒤덮더니

후드득 후드득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평창올림픽 때 수도 없이 잘려나간 나무들로 지금껏 끙끙 앓고 있는

가리왕산에도 비가 내립니다.

 

한없이 내리는 비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숨긴 동물들이

여기저기 상처 난 몸을 혀로 핥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목사님 보고 싶다!”

 

 

평창올림픽과 함께 사라진 숙암리(宿岩里) 숙암교회에는

원래 시도 때도 없이 아픈 동물들이 몰려들었죠.

잘바위 전설이 감도는 숙암리 숙암교회에만 오면

온 신경이 곤두설 만큼 아픈 동물들도 스르르 잠이 들었거든요.

 

쿨쿨 한숨 푹 자고 나면 온몸이 가뿐해지니

너도 나도 아픈 동물들은 숙암교회로 몰려들고

잘바위처럼 편안하고 넉넉한 목사님의 미소를 바라보며

아픈 동물들은 어느새 쿨쿨 잠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동물들이 너도나도 찾아가던 숙암교회 마을이

평창올림픽으로 케이블카 역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숙암교회도 사라지고 목사님도 떠났으니

아픈 동물들이 찾아갈 병원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 옷자락만이라도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세월이 흘렀어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가리왕산이 여전히 끙끙 아프니

가리왕산 동물들도 끙끙 온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픕니다.

 

늘 사람들에게 쫓기고 큰 동물들에게 쫓기느라 콩닥콩닥

쉴 새 없이 도망 다니는 작은 동물들의 눈망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주르르 눈물을 흘리시던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이리 와서 좀 쉬어라

 

목사님의 목소리만으로도 스르르 잠이 들고

그렇게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회복되니

에덴동산이 부럽지 않던 그 시절

따듯하게 스치던 목사님의 옷자락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잘바위 숙암교회가 애타게 그리운 동물들이 너도나도 기도합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꾸역꾸역 자꾸만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목자 잃은 양과 같은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울다가 잠깐 잠들어도 악몽 때문에 숙면할 수 없는 것은

동물들이 몸을 맡긴 엄마 품 같은 가리왕산이 여전히 떨고 있고

숙암리도 시도 때도 없이 우르릉 우르릉거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사님 다시 오게 해주세요.

우리 가리왕산 어서 낫게 해주세요.”

 

진정한 잘바위 너럭바위 같은 목사님

목사님 사랑이 그리운 가리왕산 동물들이

숙암리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누군가 목사님을 그리며 흥얼흥얼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가리왕산 곤드레딱죽이 임의 맛만 같으면,

올 같은 흉년에도 몸 살아나겠네

(평창아리랑. 가사 조금 바꿈)

 

[이정훈 지음. 2024720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