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사무엘기상 17:45)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기상 17:(1a, 4-11, 19-23) 32-49)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도전하다
...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36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37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38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39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40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43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46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47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시편 9:9-20) 주님 찬양 (지휘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9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10 주님, 주님을 찾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므로,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 너희는 시온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3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이끌어 내신 주님,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4 그렇게 하시면 주님께서 찬양 받으실 모든 일을 내가 전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을, 아름다운 시온의 성문에서 기뻐하며 외치겠습니다.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16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드는구나.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갈 곳은 스올, 하나님을 거역한 뭇 나라들이 갈 곳도 그 곳뿐이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셀라)
(고린도후서 6:1-13)
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아무도 우리가 섬기는 이 일에 흠을 잡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거리낌거리를 주지 않습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하나님의 일꾼답게 처신합니다. 우리는 많이 참으면서,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5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6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합니다.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11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12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13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
(마가복음 4:35-41)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
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36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만 의지할 때 탐욕과 공포를 이긴다’입니다.
구약,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사무엘기상 17:32)
시편,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시편 9:10)
서신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린도후서 6:10)
복음서,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가복음 4:40)
오늘 요절은,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입니다.(사무엘기상 17:4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기상 17:(1a, 4-11, 19-23) 32-49, 시편 9:9-20)]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다윗과 골리앗’입니다.
골리앗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포는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 때문인데(17:4-7)
그보다 먼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 다윗의 눈은(16:13) 골리앗의 외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없는 그의 내면을 꿰뚫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욕한 골리앗을 향해 나갑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과 칼 같은 무장에 의지하지 않고(39)
오직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향해 나가니(45),
마치 다윗이 위험에 처한 양들을 건져내었듯이(34-35)
참 목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양 다윗을 하나님께서 건져내십니다.(37)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곤경에서 구원받은 자의 감사 찬송’입니다.
“억울한 자들”(압제를 당하는 자)이란, 힘이 없어서 불의하게 핍박받는 자,
의지할 곳이 오직 주님밖에 없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이름”의 무게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그 이름만, 즉 주님만 의지할 수 있는 자요
하나님께서 약자의 억울한 피를 묻어두지 않고(창4:9-10)
반드시 복수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입니다.(12)
오늘 구약본문의 다윗이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전장에 나서는 모습과(삼상17:45)
10절이 짝을 이루고
제 힘만 믿고 약자를 업신여기다가 멸망한 골리앗의 모습과
15절, 17절이 짝을 이룹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6:1-13, 마가복음 4:35-41)]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화해의 직분’입니다.
자신이 고린도교회에서 받은 오해와 상처가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의 뜻, 복음의 진보를 가로막지 못하도록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아들이라고 권면합니다.(1)
하나님의 은혜를 고스란히 받으려면, 그 걸림돌들,
즉 화해를 가로막는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11-13)
그렇게 제대로 은혜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약해보이는 처지가 부끄럽지 않습니다.(4-5)
은혜 받은 사람이란, 주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즉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입니다.
예수님의 많은 표적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귀신들보다도 예수님을 모릅니다.(3:11)
그래서 위기의 때, 고난당할 때에 주님의 침묵 앞에서
마치 물에 빠진 듯(37) 의심에 빠져듭니다.(38)
그러나 이 믿음 없는 제자들에게(40) 여전히 희망이 있는 것은
난파직전의 배처럼 위기상황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고 늘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제자들은 이런 위기가 단련의 기회가 되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자라갑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6.25전쟁일 직전 주일에 받은 말씀의 거울에
한국교회의 민낯이 환히 드러납니다.
골리앗의 호통 앞에서 몹시 놀라 떨기만하는 이스라엘의 공포와(삼상17:11, 32),
거센 풍랑 앞에서 믿음이 실종된 제자들의 공포가(마가4:38, 40)
6.25의 상처를 씻지 못한 한국교회의 레드 콤플렉스와 겹쳐 보이는 것입니다.
구약본문의 저 무시무시한 사자나 곰, 그리고 골리앗이
오늘 한국교회에게는 북한의 핵미사일이요,
그보다 훨씬 더 뿌리 깊고 더 극심한 6.25상처-레드콤플렉스입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후보의 무속신앙 때문에 한국교회 구석구석에서 떠돌던 말,
<그래도 공산당보다는 무당이 낫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진실을 가리고 스스로를 속인 사기였습니다.
우리 안의 상처(공포)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덧나게 악용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백년 천년 내내 위험한,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6.25상처는
묵으면 묵을수록 점점 더 켜켜이 쌓여 우리 안에 갖가지 방어기제를 만들어갑니다.
이런 6.25∼빨갱이 방어기제들은 마치
오늘 다윗에게 입힌 사울의 갑옷처럼, 한국교회의 건강을 해치고 부흥을 가로막습니다.
한국교회는 내내 꽥꽥거리며 사기를 꺾는 골리앗과 같은 저 레드 콤플렉스를
다윗이 무장을 벗어버리듯 단번에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고후6:7)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삼상17:45) 선한 싸움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는(시9:12) 오늘 시편노래로
6.25한국전쟁 전후로 저지른 국가폭력으로 죽어간 수많은 양민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제주4.3, 보도연맹 등의 억울한 희생자 유족들이
부디 우리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늘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시9:16)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시9:19)
[나머지]
*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삼상 17:36)
오늘 구약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사자와 곰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까? 다윗의 주장이 믿기 어려울정도로 허황합니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의 사이버상의 전투장면 같습니다. 무시당한 소년의 흥분상태에서의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지난주일 마지막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삼상16:13) 그래서 딱 삼손의 모습이 연상됩니다.(사사14:6)
** ‘예수이름’에서 샘솟는 용기! 성령님께서 주시는 용기!
군대 안에 만연한 골리앗 공포와 싸우는 다윗의 용기, 교회 안에 만연한 옹졸한 마음들과 싸우는 바울의 용기, 풍랑+불신앙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용기...! 용기란 두려움이라는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습니다. 나의 두려움, 지금 우리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전쟁입니까? 역병(疫病)입니까? 가난입니까? 두려움은 지금 닥친 위기상황의 사태와 원리를 몰라서 생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일수록 더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마치 뱃사람이었던 제자들이 거센 풍랑 앞에서 떨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야기인즉 용기란 그 두려움을 일으킨 세상 원리를 파악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알맹이는 바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용기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요? 그 어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 가장 먼저 내 안에 새겨진 주님의 이름이 희미해지지 않았는가를 살펴 내 안에 주님 이름을 다시 곡진(曲盡)하게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주님의 이름, 주님의 사랑이 다시 생생하게 차오른다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고후 6:10) 그러면 그 두려움은 자연스레 희미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윗의 용기가 솟구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삼상 16:13) 성령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일꾼답게”(고후6:4)
오늘 구약의 다윗과 복음서의 제자들 믿음이 대조적입니다. 어린 다윗의 골리앗을 향한 기세가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다윗의 믿음은 평소 일상에서 반복 경험한 체험에서 온 믿음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의 믿음은 지금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가 4:40) 그런데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나라에만 집중하지 않고, 젯밥에만 정신 파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다윗처럼, 내 잇속이 아니라 사명에 몰두하면, 주님만 의지한다면, ‘너희가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6.25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초들, 그 유가족들의 노래 같습니다.(12) 6.25 직후 몇 달 동안 수만 명을 학살한 보도연맹 사건을 필두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6.25의 상처를 아물게 할 화해의 일꾼은 양손에 정의의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고후 6:7) 공평과 정의! 공정(公正)한 심판이 필수입니다. 이 과정이 철저해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민족의 평화통일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철저하도록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답게”, “많이 참으면서” 가야 합니다.(고후 6:4) (※ 전에 성실문화 블로그에 올린 것을 다듬은 것입니다.)
[말씀거울 – 역사이야기]
* 6월 26일 (1949년,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 피살)
백범 김구(金九, 본명 김창수, 1876~1949) 선생은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김순영(金淳永)과 어머니 곽낙원(郭樂園)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백범(白凡)이라는 호는 평민이라는 뜻이다. 19세에 동학의 지역접주로서 황해도 일대의 포수를 이끌고 황해감영을 공격하는 등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했다. 일본 장교를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탈옥하여 불교 승려가 되기도 했다. 을사늑약 무렵에는 기독교인이 되어 기독교인 중심으로 창립한 신민회에 가담하여 황해도 책임자로 활동했다. 1919년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창설되었을 때 그는 뒤늦게 15명의 동지를 이끌고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로 찾아갔다. 그때부터 임시정부청사의 문을 지키고 요인을 보호하는 일을 시작으로 주석이 되고 중경으로 옮기는 그 힘들고 가난한 과정 내내 25년 동안 임시정부를 지키는 주인 역할을 했다.[그 힘겨운 과정과 김구 선생 어린 시절 일화 등이, 임시정부 살림꾼이었던 수당 정정화 선생의 자서전 장강일기(長江日記, 학민사 2018)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돕고, 중경에서 김원봉 선생 등과 함께 광복군을 조직하고 대일선전포고를 했으며, 미국 OSS와 함께 광복군 특공대를 조직하여 국내 진공을 계획했으나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끝내 결행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승전국 정부가 되지 못해서 결국 김구선생은 개인자격으로 미군정이 보내준 수송기를 타고 김규식, 이시영 선생 등과 함께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구 선생은 계속 그가 거처하는 경교장을 임시정부 청사처럼 꾸미고 국무회의를 소집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고, 통일정부 수립운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나는 한국을 분할하는 남한 단독선거도 북한 인민공화국도 반대한다. 오직 정의의 깃발을 잡고 남북통일에 최후까지 노력하겠다”고 발표하고 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넘어가기도 했으나, 결국 1948년 5·10 총선거가 이루어져 남한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뒤 그는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회한의 나날을 보내던 중, 1949년 6월 26일 암살자 안두희의 총에 쓰러졌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임시정부의 소중한 기록을 담은 「백범일지」를 남겼는데 거기 다음 문장들이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이이화. ‘인물한국사’ 등에서 발췌)
** 6월 29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되어 1천여 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처음에는 대단지상가로 설계되었던 것이 정밀한 구조진단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되어 1989년 완공되었다. 그 뒤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되었으며, 붕괴조짐이 있었지만 백화점은 응급조치만 했다. 즉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설계·시공·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로서, 1년 전의 성수대교붕괴사건(1994년 10월 21일)과 함께 압축성장의 실체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례로 기록되었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 조짐이 있었다. 1995년 6월 29일 오전에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다.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1천여 명 이상의 고객들과 종업원들이 건물 내에 있었다. 당일 오후 5시 52분경에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건물은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20여초 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인명피해는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으로서 6.25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였다. 재산 피해액은 2,700여 억으로 추정되었다. 이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삼풍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되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물들에 대한 안전 평가가 실시되었고, 긴급구조구난체계의 문제점이 노출되어 119중앙구조대가 서울·부산·광주에 설치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말씀동시] 믿음과 거센 바람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9호)
나 예수님을 따를 때에
눈앞에 보이는 거센 바람에
두려움 더해지는데
곧바로 죽을까 살려달라 외치니
바람을 잠잠케 하시네
능력을 주셨음에도 나 다시 두려워
용기 없는 내 모습
내 연약함 아시는 주님과 동행할 때
나의 믿음은 더 자라네
나의 믿음은 강해지네
[시편시조] 시편 9, 공정한 심판으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9호)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신
오 주여 일어나사 악인들을 벌하소서
주 이름 아는 이들이 주만 의지 하오니
[시편노래] 시편 9,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 119호)
[본문] (시편 9:9-20)
[노랫말]
1.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주님의 이름을 의지합니다
시온에서 다스리는 나의 하나님, 그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후렴)주님은 언제나 기억하시네, 억울하게 고난 받는 약한 사람을
내가 피할 요새이신 나의 하나님, 든든하고 견고한 성 나의 하나님
2. 주님의 은혜를 내려주소서,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주소서
시온에서 찬양받을 나의 하나님, 그 은혜를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후렴)
3. 주님의 공의를 보여주소서, 불의한 나라들을 심판하소서
자기 덫 자기 함정 스올에 빠질, 저 악인들 두려움에 떨게 하소서
(후렴)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성실문화 108호에 지어 올린 시편노래 124 가락에 새 가사를 얹었다
[악보] 시편 9 (주님을 찾는 사람 받아주소서)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9:9-2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9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뒷소리) [찬양대]
9 주- -님 은-, 억울 한 자 들이, 피- 할- 요새, 이- -시 며-,
고난 받을 때에, 피- 신- 할-, 견고 한 성 이십, 니다 -- --∼
(앞소리) [독창]
10 주- -- 님-, 주- 님- 을-, 찾- 는- 사람, 을- -- --,
주님 께서 는-, 결- 단- 코-, 버리 지 않 으시, 므로 -- --∼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주님만 의지합니다.
11 너희는 시온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뒷소리) [찬양대]
13 주- -- 님-, 나- -에 게-, 은혜 를 베 풀어, 주- -십 시오,
죽음 의 문 에서, 나- -- 를-, 이끌 어 내 신 주, 님- -- --∼
(앞소리) [독창]
나- -- 를-, 미워 하- 는-, 자들 에게 서-, 받는 고통 을-,
(고- -- 통-, 고- 통- 을-,) 살펴 주십 시-, 오- -- --∼
14 그렇게 하시면 주님께서 찬양 받으실 모든 일을 내가 전파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그 구원을, 아름다운 시온의 성문에서 기뻐하며 외치겠습니다.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뒷소리) [찬양대]
16 주- -님 은-, 공- -정 한-, 심- 판- 으-, 로- -- --,
그- -모 습-, (그- 모- 습-), 드- -러 내시, 고- -- --∼
(앞소리) [독창]
악- -- 한-, 사- 람- 은-, 자- 기- 가-, 꾀- -한 일에,
스- -스 로-, (스- 스- 로-), 걸- 려드 는구, 나- -- --∼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갈 곳은 스올, 하나님을 거역한 뭇 나라들이 갈 곳도 그 곳뿐이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앞소리) [독창 또는 찬양대]
자- -- 신-, 들- -- 이-, 한낱 사람 에-, 지나 지 않 음을,
스- -스 로-, (스- 스- 로-), 알게 하여 주십, 시오 -- --∼ (셀라)
(뒷소리)[다함께]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말씀동화] 하늘나라 상여소리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다람쥐 업고 자장가 부르다 제가 먼저 코골던 시절 이야기예요.
“자장자장 자장 자장 우리아기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흰둥개도 짖지 마라
우리아기 잠잘 적에 꼬꼬닭도 울지 마라
송아지도 울지 말고 망아지도 울지 마라∼”
[전래자장가 가락]
추운 겨울 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따듯한 자장가소리가 울립니다.
잠든 아기 품에 안고 사랑에 겨워 자장가 부르는
마리아의 눈에서 맑고 밝은 눈물이
또로록 굴러내립니다.
잠든 아기 귓가에 맴도는 엄마의 따듯한 자장가 소리는
엄마 뱃속에서 맨날 듣던 노래와 닮은 가락이어서
더 따듯하고 더 편안합니다.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 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부분, 누가복음1:50-53, 시편송서-전래자장가 가락으로]
휘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는 바람도
자진모리장단으로 자지러지는 미친 파도도
그 풍랑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배에서 쿨쿨 잠드신
예수님에게는 편안한 굿거리장단 자장가로 들릴 뿐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마가복음4:38)
제자들의 아우성에 그제야 기지개를 켜시며 말씀하십니다.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마가복음4:39)
미친바람 휘몰아치는 골고다언덕
피비린내 진동하는 십자가 아래서
마리아는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자장 자장 노래합니다.
“자장자장 자장 자장 우리아기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흰둥개도 짖지 마라
우리아기 잠잘 적에 사람들아 울지 마라
딸들아 울지 마라 예루살렘아 울지 마라∼”
창자가 끊어지는 절망 속에서 상여소리 대신 부르는 자장가는
한줄기 희망의 노랩니다.
잠든 아들 깨어나리라는 희망의 노랩니다.
예루살렘 너머 골고다 너머 저 멀리 가자지구 위로
하늘만나 같은 구호식량 낙하산이 떨어지고
그것을 주우러 달려가던 아이들에게
미친바람 군인들이 총질을 합니다.
숨진 자식 품에 안은 엄마들이 웁니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가자지구에서 웁니다.
미친바람 그칠 줄 모르는 가자지옥에서 웁니다.
바람 부는 제주에서 4.3 어멍들이 울고
허리 잘린 한반도 남쪽 구석구석에서
미친바람 보도연맹 희생자 가족들이 울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6.25 유족들이 웁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엄마들의 통곡이 하늘로 치솟아
구름을 뚫고 하늘나라 집집마다 바닥이 뚫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웅웅웅 그 울음소리에 웁니다.
하나님 눈가에 맺힌 맑은 눈물을 바라보며
하늘나라 천사들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한바탕 눈물을 씻고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자장자장 자장 자장 우리아기 잘도 잔다
가자지구 울지 마라 한반도여 울지 마라
우리아기 예쁜 아기 쿨쿨자고 눈을 뜨면
이리와 어린양 함께 사는 평화세상 일어난다”
(이사야서 11:6, 65:25)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9호 예배마당에서 옮김]
'성실문화 응용하기 > 본문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강림절 8주(성령강림후 7주, 맥추감사주일, 2024년 7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1) | 2024.07.05 |
---|---|
성령강림절 7주(성령강림후 6주, 2024년 6월 3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4.06.28 |
성령강림절 5주(성령강림후 4주, 2024년 6월 16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0) | 2024.06.14 |
성령강림절 4주(성령강림후 3주, 2024년 6월 9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1) | 2024.06.07 |
성령강림절 3주(성령강림후 2주, 2024년 6월 2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1)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