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어라”(마가복음 3:5)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상 3:1-10(11-20))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시다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4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서,
5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7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8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 것이다.
12 때가 오면, 내가 엘리의 집을 두고 말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겠다.
13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14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15 사무엘은 아침이 밝을 때까지 누워 있다가, 주님의 집 문들을 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자기가 환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엘리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였다.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렀다. 그는 "내 아들 사무엘아!" 하고 불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17 엘리가 물었다. "주님께서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나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라. 주님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서 한 마디라도 나에게 숨기면, 하나님이 너에게 심한 벌을 내리고 또 내리실 것이다."
18 사무엘은 그에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였다. 엘리가 말하였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19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20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시편 139:1-6, 13-18) 주님은 늘 가까이 계시다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5-12) 질그릇에 담긴 보물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8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늘 몸을 죽음에 내어 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12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마가복음 2:23-3:6)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주님이 우리와 이어져 있으시니’입니다.
구약,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사무엘기상 3:19)
시편,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시편 139:18)
서신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고린도후서 4:10)
복음서,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마가복음 3:5)
오늘 요절은,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입니다.(마가복음 3:5)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상 3:1-10(11-20), 시편 139:1-6, 13-18)]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사무엘이 부르심을 받다’입니다.
늙은 엘리와 어린 사무엘이 여러모로 대비를 이룹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웠고(2),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 가까이에서 잠을 잡니다.(3)
엘리는 주님 말씀을 받지 못했고(1), 사무엘은 말씀을 받기 시작합니다.
사무엘이 예언자로서 처음 받은 말씀이 무겁고 무섭습니다.
회개의 기회조차 없는 심판의 예고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주님과 이어지는 지름길인 예배를
‘회개의 기회인 예배(제사)’를 멸시한 죄이기 때문입니다.(2:12-17)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시인은 죄인이라는 혐의를 받는 바람에(23-24) 억울한 마음을 주님께 쏟아냅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내 속을 아무에게도 뒤집어 보여줄 수 없으니,
오직 나를 환히 아시는 주님께 내 마음을 쏟아낼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을 경험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내가 주님과 늘 가까이 이어져있음을 깨닫게 되고,
일평생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갈 꿈이 생긴 것입니다.
주님 생각, 주님 마음은 상상초월 신비의 경지이시니, 그분 뜻 다 알았다 할 수 없으니!(17-18)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4:5-12, 마가복음 2:23-3:6)]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질그릇에 담긴 보물’입니다.
질그릇은 약해빠진 우리 몸이고, 보물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보물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 지식에서 엄청난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패배자처럼 보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법이듯이(고전 1:23-25),
이처럼, 질그릇처럼 못나 보이고, 약해빠지고, 궁상맞아 보이는 사도의 고난 안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10-11)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름, 안식일에 환자를 치유하심’입니다.
안식일에 밀 이삭 잘라먹은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시비 거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윗의 고사(古史)를 들어 안식일의 본령(本領)을 밝히십니다.
연이어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십니다.
환자의 오그라든 손은 펴지는데,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더 굳어집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병자가 병이 나아야 너도나도 우리 모두 안식할 수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해주신 뜻,
안식일 법에 담긴 하나님 마음은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법을 주었다. -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 이 때문에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준다.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몸 전체를 성하게 해주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분개하느냐? (요한복음 7:22-23) (※ 토요일 매일성서일과 본문입니다.)
(※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부분 참조)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오늘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는 장면에서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안식일을 피해 내일 고치실 수도 있지만
하루도 견디기 힘들만큼 지금 예수님은 저 장애인의 고통과 이어져 있으시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는 장면에서도(막3:5)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대자들과도
이어져 있으시다는!
그러고 보니 지금 친일 정권과 그들을 편드는 이들이 이토록 밉고 속상한 것은
그들이 일본인이 아니고 나처럼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짐승이나 벌레가 아니고 나처럼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나의 이웃인 저들이 더 이상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도록,
나의 가족인 저들이 자기 이득을 위해 약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악마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저 죽임의 길, 죽음의 길을 하루라도 빨리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찮게도 오늘 복음서본문은 먹을거리 문제 시비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다윗의 먹을거리 일화로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먹을거리처럼, 안식일의 본질이 생명과 직결됨을 암시합니다.
급기야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십니다.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막3:4)
안식일의 본질은 생명을 구하고 보전하는 것이요
그 뿌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닿아있습니다.
하나님이 약하셔서 일곱째 날 쉬신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상식에 비추어
안식일의 본질은 약자들을 위한 은혜로운 배려라는 것을 자연스레 우리는 압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이어져 있으므로 쉬신 것입니다.
생명의 원리, 창조질서에 어긋나게 쉬지 않고 일하는 욕심
그래서 약자들이 겪는 피로와 고통
그 고통을 지금 하나님께서 느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손이 오그라든 이의 고통을 느끼시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길을 가지 않고 역행하여 내 몸과 맘 구석구석, 지구촌 구석구석
점점 창조의 기운이 오그라드는 우리에게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손을 내밀어라”(막3:5)
주님의 이 사랑을 향하여 지금 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 나와 모두가 이어져 있음을 활연관통 깨치도록.
[나머지]
*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마가복음 3: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가 당신 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마음이 내 뜻과 다를지라도 주님 마음 바로 알려고 애쓰고 힘들어도 그 뜻을 따르는 것, 그게 효도입니다. 엘리는 늙을수록 점점 주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자식들의 범죄를 알면서도 멈추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벌을 받을 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고후 4:6)을 우리는 외면하고 삽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발자취와 그 말씀 안에 하나님 뜻이 고스란히 담겼음에도 그중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외면하고 사니 말입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마가복음 3: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명하십니다. 환자의 병을 고치고, 동시에 마음이 병든 바리새인들을 고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약자를 향한 그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환히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한반도 남과 북의 허리가 끊어진지 80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반도가 신음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그 소리가 안 들리는지 여전히 서로를 욕하며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귀에는 그 신음소리가 들리실 것입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마가복음 3:3) 지금 하나님께서 역사의 한 가운데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계 역사, 하나님의 역사 한 가운데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남과 북의 오그라든 손과 마음을 펴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침내 참 자유를 얻고 마음껏 일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안식일은 쉬는 날 (서무석 지음. 성실문화 119호)
안식일은 쉬는 날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지으시고
푹 쉬신 거 따라하는 날
하나님이 요것조것 예쁘게 만드시고
기분 좋게 쉬신 거
너도나도 따라 쉬는 날
기분 좋게 쉬려면
푹 쉬려면
쫄쫄 굶으면 안 되고 몸이 아프면 더 안 된다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다
쫌 배워라 이놈들아
[시편시조] 시편 139, 내 생각 나의 행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9호)
내 생각 나의 행실 낱낱이 아시는 분
나를 환히 아시는 주 나를 감싸 주십니다
내 몸을 지으신 주여 늘 함께해 주시길
[시편노래]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성실문화 119호)
[본문] (시편 139:1-6, 13-18)
[노랫말]
1.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샅샅이 살피시네, 앉았거나 서 있거나 주님은 다 아시네
멀리서도 다 아시네 내 생각을 다 아시네, 길가거나 누웠거나 내 모든 것 다 아시네
2. 나의 앞뒤 두루 감싸 주님의 손 얹으시니, 혀를 놀려 말 안 해도 하려는 말 다 아시네
이 깨달음 나에게는 너무 높고 놀라워라, 주님의 뜻 주님의 길 측량조차 못하오리
3. 모태에서 나를 만져 내 장기를 지으신 주, 하나하나 내 뼈조차 주님께서 다 아시네
오묘하고 놀라워라 나를 빚은 주의 손길, 내 영혼이 다 아오니 나 주님께 감사하네
4. 나의 형질 갖추기 전 주님은 나를 보고, 나의 날 시작 전에 주님 책에 기록되니
심오하신 주의 생각 많고 많은 주님의 길, 깨어보니 나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주원남 목사가 지은 ‘시편 24, 문들아 머리 들라’(성실문화 107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39:1-6, 13-1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9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그렇게도--) 많은-지요-?
[다함께]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함-께-) 있습∼니∿다-∼∥
[말씀동화] 철수의 주문(呪文)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발가락을 다친 다람쥐 바라보며 눈물짓던 시절 이야기예요.
“스까스따스∼! 스까스따스∼!”
울보 철수가 오늘도 어눌하게 주문을 외웁니다.
오늘은 또 누구 신세타령을 들은 걸까?
속상한 사람의 속상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철수는 마치 자기 일인 양 속상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동네사람들은 유전병 때문이라며 울보 철수를 가엽게 여깁니다.
철수의 엄마도 엄청난 울보시거든요.
엄마는 언제나 온 동네 아줌마들 신세타령 다 받아주고
그럴 때마다 엉엉 울음보가 터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철수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예전보다도 우는 날은 더 많아졌는데
평소보다 얼굴이 더 밝고 맑아졌죠.
“교회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스까스따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철수의 울음보가 더 자주 터지게 된 것은
속상한 사람들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그 상한 마음을 느껴버리고
심지어 사람뿐 아니라 말 못하는 동물과 식물들의 아픔까지 느끼게 된 겁니다.
유전병이라고 수군대는 동네사람들 걱정 섞인 수다도
철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온 동네 속상한 마음들, 말 못하는 동식물의 고통들로
철수의 낯빛이 나날이 어두워져가던 어느 날 바로 이 말씀을 들은 거죠.
“상처 받은 조갯살이 진주를 만들 듯이, 철수 너의 상처는 별이 된단다.”
‘스카스 투 스타스(scars to stars)’라는 신비로운 말을 가르쳐주시며
선생님은 철수가 남의 아픔을 느끼며 눈물 날 때마다
마치 주기도문을 외우듯 이 말을 되뇌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철수는 속상한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고통 받는 동식물들 벌레들 때문에 눈물 쏟을 때마다
기도하듯 주문처럼 이 멋진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내 아픔이 별이 되어 밤하늘이 한 뼘 더 아름답게 밝아진다고 믿게 됩니다.
“스까스따스∼! 스까스따스∼!”
비록 어눌하게나마 오늘도 철수는 노래 부릅니다.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철수의 주문은 장단(長短)을 타고
슬픔이 짙을수록 그 가락은 더 구성집니다.
이젠 한바탕 눈물바람 뒤에도 오히려 속상한 이를 위로해주고
말 못하는 동식물들을 어루만지며 위로할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철수의 낯빛은 점점 밝아져갑니다.
철수의 낯빛이 별처럼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교회학교 선생님이 그렁그렁 감동하여 찬양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시편139:17-18)
찬양소리가 하늘에 닿으니
별처럼 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응답찬송을 부릅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시편139:1-4)
오늘도 철수의 눈물이 밤하늘 구석구석 밝은 별이 되니
한 뼘 더 밝아진 밤하늘만큼이나 하나님의 마음도 밝아지십니다.
[이정훈 지음. 2024년 6월 1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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