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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마지막 주(2024년 2월 11일, 주님의산상변화주일) 예배준비 노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가복음 9:7)

 

[성서일과 4본문]

(열왕기하 2:1-12)

1.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가 되니, 엘리야가 엘리사를 데리고 길갈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베델까지 내려갔다.

3. 베델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4.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여리고로 갔다.

5. 여리고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요단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났다.

7. 예언자 수련생들 가운데서 쉰 명이 요단강까지 그들을 따라갔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 가에 서니, 따르던 제자들도 멀찍이 멈추어 섰다.

8. 그 때에 엘리야가 자기의 겉옷을 벗어 말아서, 그것으로 강물을 치니,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물이 마른 강바닥을 밟으며, 요단강을 건너갔다.

9. 요단강 맞은쪽에 이르러,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을 제가 갑절로 받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참으로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네 소원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들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가 이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

 

(시편 50:1-6)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3. 우리 하나님은 오실 때에, 조용조용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6.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셀라

 

(고린도후서 4:3-6)

3.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4.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6.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9:2-9)

2. 그리고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모습이 변하였다.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예수와 말을 주고받았다.

5.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랍비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6.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7. 그런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8. 그들이 문득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고,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어,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빛나는 주님 나를 비추시다(주님을 더 잘 알도록!)’입니다.

 

구약,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 엘리야만 회오리바람에 싣고 하늘로 올라갔다”(열왕기하 2:11)

시편,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시편 50:2)

서신서,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비추셔서’(고린도후서 4:6)

복음서, “그 옷은 ... 새하얗게 빛났다”(마가복음 9:3)

 

오늘 요절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입니다.(마가복음 9: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열왕기하 2:1-12 / 시편 50:1-6)]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엘리야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 에녹처럼 매우 신비롭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5:24),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듯이(11:5)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12절에, 엘리야와 헤어지면서 엘리사가 외치는 한마디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불병거와 불말”(11)과 이어지는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

예언자야말로 진정한 국력(國力)임을 드러냅니다.

한국교회의 예언자들에게 큰 각성(覺醒)과 반성(反省)을 일으키는 대목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과장이 아닙니다.

그만큼 의지했고, 그만큼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그 뒤 엘리사가 살아간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러합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7)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여!"(왕하 13:14)

 

자식이 부모를 빼어 닮듯 이렇게 고스란히 스승의 뒤를 따른 삶!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내려다보시며 그러셨듯이,

하늘 스승은 땅의 제자를 내려다보며 내내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바른 예배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형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진행합니다.

 

시내산에 나타나 십계명을 세우셨던 하나님께서(5)

시온산에 눈부시게 나타나시는 모습은(2-3)

오늘 구약본문의 불병거와 불말로 엘리야를 데려가시는 하나님과

오늘 복음서본문의 빛나는 예수님의 징검다리입니다.

 

당신의 백성을”(4), “성도들을”(5) 심판하려고 모으시는 것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십계명)

하늘이 증언(선포)하는 하나님의 공의는(6)

약자를 돌보시는 공평과 정의, 즉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4:3-6 / 마가복음 9:2-9)]

오늘 서신서본문 소제목은 사도의 직분에 담긴 복음의 광채입니다.

구약에서는 모세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으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태초에 빛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 얼굴의 빛으로(6)

우리 모두 그 빛을 닮아가게 하십니다.(6, 3:18)

특히 교회를 위해 종이 되는 것은 딱 예수님 때문입니다.(5)

예수님의 삶을 닮은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빼닮은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예수의 변모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서 하늘로 사라졌던 엘리야가,

오늘 복음서본문에 다시 나타납니다.

 

다시 나타난(나타날, 재림) 엘리야는 마지막 때를 상징합니다.(4:5)

그러고 보니, 오늘 복음서본문의 바로 앞과 뒤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고지하십니다.(8:31-38, 9:30-32)

 

예수님의 죽음 준비는 부활준비요,

이는 곧 승천과 재림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하나님 사랑이 짙어집니다.

예수님 세례 받으실 때 처음 들렸던 성부음성이,

이젠 제자들에게까지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7)

 

그 성부 음성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한 몸이신 사랑하는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주현절 마지막 주일인 주님의 변모주일 성서일과 말씀들에는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엘리야를 끔찍이도 사랑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데려가신 하나님께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편 엘리야를 따르는 제자 엘리사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비교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를 세 번 반복하고 끝까지 따랐던 오늘 엘리사와

스승님을 떠나 세 번 알지 못한다고 한 베드로가 비교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리사랑! 스승의 사랑은 한결같습니다.

어두운 내 눈 밝히시듯

눈부시게 나타나시어 복음의 빛”, “지식의 빛을 비추십니다.(고후4:6)

 

그러고 보니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께서 변모하신 산은

제자들을 위한 변화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콕 찝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높은 산에 올라(2)

구태여 그들이 보는 앞에서변모하시고(2)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고 하신 것입니다.

 

주현절 첫 주 본문이었던 마가복음1:11절과 달리,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때마침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가복음8:33) 야단치신 직후의 일입니다.

분노조절장애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천방지축 사고뭉치 과격한 행동을 일삼던

베드로와 보아너게(우레의 자식들) 야고보 요한 형제,(마가3:17)

저 세 사람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누가복음9:54)

 

특히 이 세 제자를 유심히 살피시고 자주 데리고 다니신 예수님 사랑으로

이 세 제자가 남다르게 강력히 변화하였듯이,

오늘 180도 변화해야 할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이 남다릅니다.

그 말씀 들으면 우리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사랑스럽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가복음 9:7)

 

 

 

[나머지]

* 말씀의 호위무사

오늘 구약본문은 불의 예언자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가 헤어지는 장면입니다. 갈멜산 제단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천하의 엘리야가 세상을 뜨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길갈에서 베델과 여리고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는 여정에서 저들이 같은 말을 반복(反復)하는 대화가 흥미롭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2,4,6) 같은 말을 세 차례나 반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떼어놓으려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떠나지 않으려고 룻이 반복하던 말도 떠오릅니다. 의리의 사나이 엘리사! 스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엘리사! <엘리사는 슬픔에 겨워서, 자기의 겉옷을 힘껏 잡아당겨 두 조각으로 찢었다.(12)> 한편 엘리사의 모습은 마치 주인 곁을 끝까지 지키려는 호위무사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일평생 주님 말씀 따르며 목숨 걸고 말씀 지켜온 말씀의 호위무사엘리야! 그를 닮은 제자 엘리사가, 목숨 걸고 스승 곁을 지키려다 난데없는 불병거와 불말을 만납니다. 불의 예언자 엘리야이기 때문일까요? 불병거와 불말이 마치 성()과 속()을 구분하듯이, 땅에 남을 사람과 하늘에 오를 사람을 갈라놓는가 싶더니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합니다. 이 때 엘리사의 외마디 소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마병이시여!"(12)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불병거와 불말을 보고 떠오른 말이었을까요? 특기할 것은, 세월이 흘러 엘리사가 죽을 때도 같은 말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어가는 예언자 엘리사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왕하 13:14) 병거와 마병이란 군사력의 상징입니다. 문득 예언자가 바로 천군(天軍)과 같은 진정한 군사력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사사기 7:22에서도 사사 기드온의 300 용사 나팔소리에 미디안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무찌릅니다. 역대하 20:21절 이하에는 군인의 나팔소리가 아니라 성가대의 노래가, 군복도 아닌 예복을 입고 노래하자 적군이 서로 저희들끼리 무찌르는 일이 벌어집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대하 20:20) 말씀을 지키려는 예언자에게서 호위무사라는 좀 우스꽝스런 표현을 떠올린 것은, 이밖에도 말씀을 가리켜 이라 묘사한 바울과 요한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에베 6:17) “그러니 회개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계시록 2:16)

 

** 변화산 제자들, 예수님 모시고 십자가 행군을 시작하다

오늘 주현절 마지막 주일 복음서본문의 자리는 변화산이다. 변화산은, 예수께서 주현절 첫 주일 세례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심을 시작으로 갈릴리 곳곳에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다가 마침내 오른 산이다. 변화산은, 마치 예수님 공생애의 분수령처럼, 갈릴리 활동을 마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십자가 행군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변화산 이야기의 알맹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리고 주현절 마지막 주간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변화산에서 예수님 옷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3) 죽으심을 가리키는 수의와 동시에 빛나는 부활의 몸을 가리키는 상징처럼 보인다.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주고받는 말씀 역시(4), 마지막 때, 즉 죽으심부활승천재림이 주제였을 듯하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성부 하나님의 음성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역시 동상이몽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경청하고 순종할 것을 명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이런 주제의 흐름 속에서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9)이라는, 제자들이 알아듣기 힘든 말씀까지(10) 하신 것이다. 더불어 오늘 변화산 본문의 앞뒤에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예고를 하신 것(8:31, 9:31) 역시 이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인다. 문제는 제자들이다. 비록 무지몽매, 동상이몽 제자들이지만, 변화산에서 이렇게 이중삼중 배려하신 하나님 사랑이 시나브로 스며들 것이다. 결국 변화산은 예수님의 변모뿐 아니라, 제자들 변화의 맹아(萌芽)가 발아하기 시작한 자리였음이 틀림없다.

 

*** 말씀으로 변화하는 교회

주현절 첫 주일에 주님 세례 받으실 때 들려오는 성부의 음성이 주현절 끝 주일에 주님 변모하실 때 다시 들려옵니다. 그런데 다시 들리는 성부음성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이 듣습니다. 그만큼 제자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오늘 시편본문 시온산에서 눈부시게 나타나신 하나님처럼, 오늘 복음본문 변화산에서 눈부시게 변하시는 예수님처럼, 오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눈부시게 변화해야 교회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 받는 눈부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의 마음속을 비추셔서(고후 4:6) 눈부시게 빛나는 예수님 말씀을 환하게 깨달아 주님을, 그 사랑을 빼어 닮게 하시길! 그래서 탐욕을 죽이고 교회를 구할 신령한 힘을 주시기를, 엘리야처럼, 엘리사처럼 나라를 구할 신비한 힘을 주시기를! 엘리사가 그랬듯이, 바울이 그랬듯이 스승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 말씀을, 그 사랑을 닮아가게 하시기를 빕니다.

 

 

 

 

 

[말씀동시] 변화산에서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7)

하얗게 빛나는 옷에

시공을 초월한 만남

구름이 일어나고

하늘이 선언하네

겁먹고 횡설수설

정신 못 차리다가

입조심 한다는 걸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네

 

 

 

 

[시편시조] 시편 50, 하늘땅 증인 불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7)

하늘땅 증인 불러 백성을 심판하려

불바람 일으키며 눈부시게 오시는 분

그분만 재판장이다 공의로운 하나님

 

 

 

 

[시편노래]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이정훈 편사, 이방실 작곡. 성실문화117)

[본문] (시편 50:1-6)

[노랫말]

1.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저기까지, 말씀으로 하나님이 온 세상을 부르신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나오신다, 눈부시게 나오신다 하나님이 나오신다

2. 하나님 오실 때에 불길이 춤을 추고, 무서운 돌풍마저 사방에서 일어난다

백성을 심판하려 하늘땅 부르신다, 위의 하늘 아래의 땅 증인으로 부르신다

3.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오라, 언약을 세운 자들 나에게로 모아오라

우리의 재판장은 하나님뿐이시니, 하늘이 선포한다 주의 공의 선포한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거문고 연주자인 국립국악원 정악단 이방실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50 (해 돋는 데서부터) (이정훈 편사, 이방실 작곡)

 

20240211 시편노래 50 해 돋는 데서부터.m4a
4.49MB

 

 

 

 

 

[시편송서(誦書)] 시편 50: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7)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2. 더없이 아름다-- --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시게 나타나신다-,

3. ---- 하나-님은-, -- 때에 조용조-- 오시지 않고-,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시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4. 당신의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다.

 

5.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

희생제물로- -언약을 세- 사람들--,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다함께]

6. 하늘--- 주님의 공의를, (공의---) 선포-함은-,

하나-그분-만이-, (--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 셀라

 

20240211 시편송서 50;1-6.m4a
3.35MB

 

 

 

 

[말씀동화] 세탁기 돌릴 때마다 엄마가 부르시는 이상한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빨래방망이 휘두르며 덩실덩실 몽둥이춤 추던 시절 이야기예요.

 

진주 남강 빨래 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하는데 난데없는 말굽 소리

고개 들어 힐끗 보니 하늘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서 못 본 듯이 지나더라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하다

[전래민요 진주난봉가]

 

엄마는 세탁기에 빨랫감 집어넣으시며

또 흥얼흥얼 이상한 노래 진주난봉가를 부르고

순이는 이면지에 그림 그리다 말고 엄마 얼굴을 빤히 올려다봅니다.

 

빨래는 다 희게 빨아야지 왜 검은 빨래 검게 빨아?”

 

빙그레 환하게 빛나는 얼굴빛으로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우리 순이, 벌써 그게 궁금하구나!”

 

세탁기 돌릴 때마다 엄마가 부르시는 이상한 노래지만

그러고 보니 이제야 순이는 그 대목이 궁금해진 겁니다.

왜 검은 빨래 검게 빨지?

 

그리고 불현 듯 또 하나가 떠오릅니다.

엄마가 세탁기 돌릴 때 마다

검은 빨래는 검은 빨래끼리 모아서 빠신다는 사실이.

 

 

예전에 초등학생들이 살색크레파스를 살구색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어른들이 어린이들 말대로 따라한 거 기억나지?”

 

몽롱하던 순이 눈빛이 점점 총총해지고

다문화 가정 친구들 중에

얼굴빛이 살구 색보다 훨씬 거무스름한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어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어린이들이 먼저 깨달은 것이었어요.

친구들 살색이 각각 다른데 크레파스 살색은 딱 하나뿐이었던 것을.

 

세상엔 색깔이 참 많지. 그 다양한 빛깔들을 전부 다

검은 색이나 하얀 색으로, 또는 파란색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해 보렴.”

 

그건 정말 이상하고 괴상하고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이 어두워지면 세상은 제 빛깔을 잃고 전부 어둠에 물들어 검게 되어버리지만

다시 날이 밝아지면 온 세상 빛깔들은 흰색이 되는 게 아니라, 제 빛깔을 되찾게 된다고!

 

그렇게 빛은 온 세상의 제 빛깔을 되찾게 해주는 법이라고

엄마는 찬찬히 설명해 주십니다.

 

 

바로 그때 순이의 두 눈이 단추 구멍처럼 가늘어지더니

얼른 스마트폰을 열어 교회학교 단톡방에 들어갑니다.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가복음9:3)

 

순이가 더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교회학교에서 읽은 이번 주일 성경말씀을 또박또박 읊조립니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 조상님들처럼 흰 옷을 좋아하셨나 보네.”

 

온 세상 어둠이 걷히고 빛이 올 때 비로소 만물이 제 빛깔을 되찾게 되듯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제일 먼저 친구들 얼굴빛, 살색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어른들보다도 어린이들 마음속에, 먼저 빛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엄마는 또박또박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눈부시게 나타나신다... 하늘이 주님의 공의를 선포함은,

하나님, 그분만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시편50:2,6)

 

진주난봉가 대신 이번에는 시편노래 부르시며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하늘같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탄 힘센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못 본 듯이 지나쳐버리는 어둔 세상을

이제 곧 깨우쳐 바로잡아주실 거야,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정훈 지음. 2024210일 토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