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까마귀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시편 147:9)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40:21-31)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22.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 놓으셨다.
23.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24.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25.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29.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시편 147:1-11, 20c)
1. 할렐루야. 우리의 하나님께 찬양함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가!
2.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신다.
3.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 아픈 곳을 싸매어 주신다.
4.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
5.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니, 그의 슬기는 헤아릴 수 없다.
6.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이다.
7.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러드려라. 우리의 하나님께 수금을 타면서 노래 불러드려라.
8.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
10.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11.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20... 할렐루야.
(고린도전서 9:16-23)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하면 삯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못해서 하면, 직무를 따라 한 것입니다.
18. 그리하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없이 사는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 1:29-39)
29.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31.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33.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그는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께서 하신 일,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구약,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이사야서 40:29)
시편,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는 분이다”(시편 147:6)
서신서,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고린도전서 9:23)
복음서,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마가복음 1:38)
오늘 요절은, “우는 까마귀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입니다.(시 147:9)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40:21-31 / 시편 147:1-11, 20c)]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비길 데 없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은 ‘둘째 이사야’의 첫 장, 첫 예언입니다.
오랜 바빌론 포로 생활로 백성들이 낙심하고 지쳐있습니다.
이들에게 주신 희망의 말씀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언자는 바빌론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체, 그 별들조차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26)
그런 하나님께 세상 통치자들은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을 뿐입니다.(24)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우상숭배 멈추고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31)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세월 포로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무심하거나 무지하신 탓이 아닙니다.
피곤하고 지치신 탓도 아닙니다.(27-28)
백성이 주님만 의지할 때, 독수리 같은 새 힘을 불어넣어주실 것입니다.(31)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피조세계와 이스라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시편은 바빌론 포로지에서 귀환한 뒤에 지은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루는 구절이 많습니다.
마치 구약본문의 예언이 성취됨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4절,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신다”는 이사야서 40:26절과,
11절, “...당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이사야서 40:31절과,
3절, 6절, 9절의 약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이사야서 40:29절과 통합니다.
오늘 시편은 바빌론 포로들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체험한 뒤의 노래여서인지 더 신명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9:16-23 / 마가복음 1:29-39)]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사도의 권리와 자유’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전도는 생계, 명예, 업적이 아니라 ‘사명’입니다.(16)
바울에게 복음전도의 삯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의 복”에 동참하는 일(23), 즉 예수님처럼 사는 일입니다.
물처럼 낮은 곳을 향해 흐르시는 예수님처럼,
그래서 바울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22)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가버나움에서의 예수’입니다.
‘표적’은 하나님 통치의 표지이며 그 하나님나라 건설의 기초다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로 성부와 소통하시고(35)
그렇게 받은 성부의 뜻을 전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셨습니다.(38)
특히 귀신을 내쫓으시는 일이 지난주에 이어 반복해서 강조됩니다.(34,39)
귀신은 백성을 속이고 더럽히고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귀신이 귀신같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제대로는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알았더라도 제대로 전할 리가 없습니다.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 복음서본문에서도 귀신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려 애씁니다.
그러나 귀신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제대로 모릅니다.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즉 예수님의 인성이 곧 복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 주님의 진면목은 물처럼 한없이 낮은 곳으로만 흐르신다는 점입니다.
하늘보좌를 버리고 내려오신 뒤로, 한없이 낮은 곳, 약자들을 향하십니다.
막강한 슈퍼파워 자체가 나와 아무 상관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한없이 낮은 곳을 향하시고, 그렇게 나의 약한 곳을 향하시는
그렇게 맺어지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 이게 핵심입니다.
악마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이것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염없는 거짓말로 죽음공포 건드려 탐욕을 부추김으로
주님과 나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악마의 거짓말, 탐욕에 빠져 우상에 팔려있는 우리를 깨우치시려고
예수님은 쉬지 않고 복음 전하시고(막1:38),
주님 따라 바울도 복음을 전하고,(고전9:16,23)
나 역시 내 생명, 네 생명, 우리 생명을 위해 복음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복음! 하나님 바로 알기, 하나님과 나의 관계 바로 알기! 그런 하나님나라 오신 소식!
이 복음으로 우상숭배 멈추고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사40:31)
[나머지]
* 회당에 귀신이 있었다니!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마가 1:39) 오늘 복음서본문 마가복음 1:39절을 읽으며 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회당에 귀신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 본문도 그랬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이 쫓겨난 일 말입니다. 회당도 성전 다음으로 거룩한 장소인데 정결예법에 충실한 저들이 “더러운 영”(악한 귀신)들린 사람을 회당에 들일 리 만무한데...? 추측컨대, 위장 잠입해 있던 더러운 영이 거룩하신 말씀이 스며들어오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본문도, 갈릴리 여러 회당 구석구석에 잠입해 있던 더러운 영, 악귀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자 발광하며 드러나 결국 쫓겨나게 됩니다. 회당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들, 그 몸으로부터 쫓겨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자녀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 더러운 요소들이 시시때때로 드러납니다. 거룩한 지체들을 시새워하고 미워하게 하는 악한 영들... 온갖 종류 탐욕의 시궁창에 내 마음을, 내 몸을 퐁당퐁당 빠뜨리는 교활한 영들...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쓰고 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오늘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치 변검(變臉)술사처럼, 만나는 사람에 맞게 무한 변신을 거듭합니다. 종류가 다른 경우지만, 이런 바울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어느 영화에 나오는 조폭 일망타진하려고 조폭이 되어 잠입하는 형사 이야기입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으니 또 하나 떠오르는 게, 어디선가 들은 홍콩 도풍산(道風山)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아니다 싶어 또 하나 떠오른 것이 나병환자들에게 들어가 나병환자가 된 데미안 신부 이야기입니다. 저들은 어쩌면 바울의 오늘 말씀을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그 바울이 닮으려 했던 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고 사람이 되어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인 척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보다 더 완전한 참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참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몸소 보여주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께서 주님으로 나타나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주현절! 주현절의 알짬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참사람으로 사신 그 길을 기억하고 그 길 따라 사는 일입니다.
*** 복음의 복에 동참하는, 복음의 기쁨을 회복하는 길
예수님은 사람처럼 오신 분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보다 더 완전한, 완전한 생명, 참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귀신은 이 사실을 자꾸 흐리려 합니다. 딱 세상이 원하는 모습, 신통력으로 세상 권력을 주름잡는 존재로만 왜곡하고 축소하려 합니다. 광야 40일 금식 때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했던 바로 그 내용입니다. 오늘 구약과 시편본문 말씀처럼, 세상 어떤 권력, 그 어떤 천체의 세력들조차 비길 수 없는 분이심에도, 참 하나님이시고 참사람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낮추어 종이 되려하셨습니다.(마가10:44-45) 그게 참사람의 알짬이요, 참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주인공 사도바울은 바로 이 “복음의 복에 동참”하길 원하는 것입니다.(고전9:23) 그래서 주님처럼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9) 그리고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22) 예수님께서 기도하고(마가1:35)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처럼(39), 사도바울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처럼(고전 9:19), 교회는 늘 기도하고 말씀 먹고 낮아지는 훈련에 몰두해야 합니다. 자꾸 높아지려하고 더 움켜쥐려하는 욕망들, 그 쩔어붙은 적폐들을 예수님께서 귀신 쫓아내듯 내 안에서, 교회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게 주님 닮아가는 길이고, 복음의 복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교회가 복음의 기운을, 복음의 기쁨을 회복하는 길이 거기 있습니다.
(※ 전에 실은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복음서 말씀동시] 봄 향기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7호)
눈도 채 안 녹았는데
어디선가 풍기는 꽃향기
겨우내 얼어붙은 마음
화아악 풀어주네
무슨 꽃일까 생각해봐도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그러나 어딘가 그리운 향기
온 동네를 누비네
봄을 전하러
[시편시조] 마음이 상한 사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7호)
마음이 상한 사람 싸매고 고치시며
별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지으신 분
주님을 찬양하는 일 아름답고 좋아라
[시편노래] 시편 147, 할렐루야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7호)
[본문] (시편 147:1-11, 20c)
[노랫말]
1. 할렐루야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아름다운 일
예루살렘 세우시고 백성을 모아, 마음을 고치시고 싸매주신다
2.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붙여주시니
위대하신 우리 주님 능력의 주님, 우리 주님 슬기는 셀 수가 없다
3. 악한 사람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 불쌍한 사람들은 도우시는 분
주님께 노래하자 감사노래를, 수금 타며 하나님께 노래부르자
4. 주님은 힘센 다리 반기지 않네, 새순을 싹틔우려 비 내리시네
한결같은 주 사랑을 기다리거라, 할렐루야 주님만 경외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어서, 예전에 이석훈 목사가 지은 ‘시편 147, 예루살렘 시온아 찬양하여라’(성실문화 105호) 가락에 붙였다.
[악보] 시편 147 (할렐루야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147:1-11, 20c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7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할렐루야. 우리의 하나님께 찬양함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가!
2.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신다.
3.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 아픈 곳-을 싸매어- 주-신다-,
4.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
5.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니, 그의 슬기는 헤아릴 수 없다.
6.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이다.
7.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러--드려-라--,
우리의 하나님-께- 수금을 타면서, 노래 불러--드려-라--∼
8.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
10.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힘센 다리를 가진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다함께]
11.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한결 같-은-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20) 할렐∼루∿야∼∥
[말씀동화] 호랑이와 얼룩말과 잔나비의 잔칫상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한라산 등산하려고 공항으로 달려가던 시절 이야기란다.
백두산 호랑이가 한라산에 놀러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도 배가고파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어.
잠잘 곳도 여의치 않으니 고시원에서 살았지.
그것도 비슷한 신세인 얼룩말과 잔나비도 함께.
편의점 알바가 좋은 점은
유통기한 넘긴 음식 맘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란다.
오늘도 호랑이는 으쓱으쓱 어깨춤에 콧노래까지 흥얼흥얼,
버리는 삼각 김밥이랑 도시락에 핫바까지 수두룩했거든.
손바닥만 한 고시원에 돌아와 손가락만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며
군침 삼키는 얼룩말과 잔나비에게 호랑이는 말했어.
“이거 건드리는 날엔 전쟁이닷!”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냉장고가 텅 비었네.
호랑이 눈이 등잔만큼 커지고
순식간에 도끼눈 부릅뜨고 얼룩말과 잔나비를 향해 말했어.
“내 식량 건드린 놈 누구야. 솔직히 말하면 이번만은 용서하마.”
부들부들 떨리는 호랑이의 으름장에도 얼룩말과 잔나비는 하품만 하네.
얘들이 천하의 백두산호랑이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단다.
얼룩말은 최전방 금강산부대 GP출신이야.
비무장지대를 넘나들면서도 위장크림조차 바를 필요 없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지.
잔나비는 세상의 모든 요괴를 때려잡은 손오공의 후예라며
날마다 사자후를 단련 중이었거든.
아무리 으름장을 놓아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얼룩말과 잔나비 때문에
호랑이는 머리에서 지진이 날 지경이었단다.
그때 잔나비가 한마디 툭 던지기를
“호랑이 언니는 덩치는 산더민데 마음이 너무 작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마태6:31)
예수님 말씀도 몰라?”
호랑이가 ‘여기서 그 말씀이 왜 나와’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얼룩말이 빨랐어, 늘 그렇듯이.
“맞아 맞아, 잔나비 말이 맞아. 언제나 예수님 말씀은 백퍼 정답이지.”
호랑이가 분노로 정수리까지 빨갛게 달아오르자
잔나비가 사자후 단련하던 솜씨로 씩씩한 노래를 부르네.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시편147:8-9)
그러곤 약속이나 한 듯이 얼룩말과 잔나비가 한목소리로 말했어.
“까마귀새끼도 먹이시잖아”
자꾸만 소리 지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맥이 빠진 호랑이에게
다독다독 얼룩말이 말했어.
“냉장고 또 망가져서 밤새 바깥에 두었어.”
잔나비가 빛의 속도로 호랑이의 식량을 가져오고
밤새 바깥에서 꽁꽁 언 호랑이의 식량은 방바닥에 전시되었지.
꼴깍꼴깍 군침 삼키는 얼룩말과 잔나비를 바라보며
어느새 마음이 풀린 호랑이가 말했어.
“어차피 냉장고도 망가졌으니 한번 같이 먹어보지 뭐.”
꽁꽁 언 삼각 김밥과 도시락, 핫바를 바라보는
호랑이와 얼룩말과 잔나비의 눈은 하트눈이 되고
그렇게 따듯하게 녹은 마음들 덕분에
호랑이의 식량은 고시원 식구들의 따듯한 양식이 되었단다.
[이정훈 지음. 2024년 2월 3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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