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예수를 따라갔다”(마가복음 1:20)
[성서일과 4본문]
(요나서 3:1-5, 10)
1.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4.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시편 62:5-12)
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6.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7. 내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내 견고한 바위이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다.
8.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셀라)
9.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11.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12.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7:29-31)
29.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마가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주제는, ‘위급할 때 우리의 피난처이신 주님’입니다.
구약, “사십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요나서 3:4)
시편,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시편 62:8)
서신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우리는”(고린도전서 7:29)
복음서,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마가복음 1:15)
오늘 요절은, “곧 예수를 따라갔다”입니다.(마가복음 1:2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요나서 3:1-5, 10 / 시편 62:5-1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요나의 설교와 니느웨의 회개’입니다.
요나는 참 단순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요나의 이름 뜻이 ‘비둘기’라는데, 비둘기가 딱 그렇습니다.
단순하고, 속이기 쉽고, 겁도 많고...
니느웨는 참 큰 성읍입니다.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원치 않는 투덜이 요나는
말씀 선포에 그다지 열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니느웨는 순식간에 회개하고 구원받습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사다리는 ‘상상초월 니느웨’입니다.
그 사다리의 끝은 회개할 줄 모르는 예루살렘, 즉 ‘우리’의 각성!
니느웨를 통한 대오각성(大悟覺醒)입니다.
니느웨라는 사다리를 타고 각성한 우리가 마침내 다다르는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니느웨의 회개를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랑,
발버둥치는 요나를, 기어이 요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니느웨 사랑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입니다.
오늘 시인은 내 안팎의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겉으로는 내게 친절하나 속으로는 날 죽이려는 적들입니다.(4)
너희가 그를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릴 궁리만 하고, 거짓말만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저주를 퍼붓는구나.(셀라) (4)
내가 살 수 있는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5)
내 안팎의 그 어떤 힘도 의지하지 말 것입니다.(10)
나 스스로에게조차 속아 넘어가는 신기루 같은 인생일 뿐입니다.(9)
이걸 깨달은 자는 오직 주님의 권세, 주님의 자비하심만 기다릴 뿐입니다.(11-12)
기어이 요나 같은 예언자라도 보내어 살리시는 그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릴 뿐입니다.(1,5)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7:29-31 / 마가복음 1:14-20)]
오늘 서신서본문의 소제목은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에 관하여’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은 첫머리부터 때가 찼다고 일깨웁니다.(29)
가진 것 많고 흥청망청 방탕한 고린도에 사는 고린도교회에게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형체는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도 일깨웁니다.(31)
만약 내가 그 미래를 내다볼 수만 있다면
지금 내가 귀하게 여기는 오만가지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상현실 같지만,
마치 아예 없었던 것처럼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29-31)
왜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오직 주님만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내가 쓸데없는 근심걱정 버리고 세월을 아낄 수 있는
참 유익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을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아름답게 살며 딴 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전7:35, 공동번역)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갈릴리에서의 예수 활동 시작, 처음 제자들을 부르심’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예수님의 첫 선포가 나옵니다.
“때가 찼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알맹이는,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는 게 아니라
마치 니느웨가 저절로 스스로 회개하길 기다리시지 않고
요나를 보내시어, 말도 안 되는 조건에서도 꿈처럼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신 것처럼,
아예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아니 이미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걸 깨닫고, 그런 하나님 사랑의 진면목을 깨닫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돌이키기도 전에, 먼저 하나님이 내게 오신다는!
이게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깨친 자는, 순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18,20)
(※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니느웨조차 알았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위기의 때 참 피난처,
우리 유일한 피난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오늘 서신서 본문의 바울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고(29)
오늘 복음서 본문의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하십니다.(15)
이 말씀의 거울에 오늘 우리를 비춰볼 때
지금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고 있는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로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는지 말로 다 못합니다.
후쿠시마에서 후쿠시마 앞바다와 먼 바다에서 바다생명들이 죽어가고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지구에서, 중동 구석구석에서, 그리고
대만 역시 전쟁의 위기가 감돕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연일 계속되는 한반도 전쟁분위기 때문에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 가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러하듯 위기가 기회입니다.
실타래처럼 꼬인 세상사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금이 기회입니다.
가던 길 멈추고 다시 주님께로 돌이킬 때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 평화의 열쇠이신 분께로!
그분께서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복음일꾼, 평화일꾼,
하나님나라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위기의 때에 나를 부르시는 그 음성 들을 귀 있는 사람이라면
곧 따라나설 것입니다.
오늘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들처럼 오직 그 음성에 몰두할 것입니다.
[나머지]
* ‘광속(光束)같은 말씀 반응속도’1
니느웨 사람들과 갈릴리 어부들의 회개는 오늘 우리에게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말씀 반응속도가 번개처럼 빠를 수 있을까? 때가 꽉 찬 것을 느낀 것... 어떻게 그걸 느낄 수 있었을까? 길은 한 가지 뿐입니다. 진짜 꿈같은 이야기지만, 다시 태어난 겁니다. 다시 태어난 아기들에게 배가 무슨 소용이요 그물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무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빠조차 필요 없습니다. 오로지 엄마 젖이 필요할 뿐입니다.
** ‘광속(光束)같은 말씀 반응속도’2
사람은 자라면서 수많은 트라우마를 겪기 마련입니다. 그 크고 작은 상흔들이 쌓이고 쌓여 마치 내 영혼의 굳은살처럼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자극이 와도 아프지 않은 겁니다. 무감각해지고 쉽게 잊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목소리를 들을 때, 갈릴리 어부들이 예수님 목소리를 들을 때, 그 굳은살들이 녹아버린 것입니다. 내 모든 굳은살이 녹아지고 아기살처럼 보드라워지면 ‘그 말씀’에 온 몸이 반응하게 됩니다. 오직 그 말씀의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오직 그 말씀, 주님께만 희망을 두게 됩니다. 우리도 오늘 하나님 말씀 들을 때, 내 안의 상처 다 녹아내리고, 말씀 반응속도가 광속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말씀 따라, 내 모든 걸 버리고 따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 은하수가 쏟아지듯 환한 말씀
다산 정약용에게 처음 전도한 이는, 그의 사돈이자 스승이라 할 광암 이벽선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한강을 따라 흐르던 배 안에서, 다산은 자기보다 8살 많았던 이벽으로부터 복음을 듣는 순간,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온 영혼이 환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다산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찾아오셨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나를 만나시러 그분이 내게 오신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을 믿어라”(마가 1:15) 오늘 예수님은 그 복음을 믿으라 하셨고, 오늘 시편은 마치 복음을 받은 자에게 불러주는 듯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시편 62:5)
**** 때가 찼을 때 해야 할 일, 잠잠히 그분만 기다리는 일
때가 찼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참지 못하시고 싫다는 요나도 억지로 보내시고, 기어이 당신께서 몸소 오십니다. 오늘 예수께서 제자들 부르시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스승이 제자를 부르는 게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찾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당신께서 직접 찾아가 제자를 부르십니다.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오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 하나님 사랑 철철 넘치는 복음을 느낀 자라면, 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어부 베드로·안드레·야고보·요한처럼 그 소중한 그물 다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거짓말 같은, 가상현실 같은 니느웨처럼, 고린도교회를 향한 저 가상현실 같은 바울의 선포처럼, 내 모든 집착들일랑 아예 없었던 것처럼 쉬 잊어버리고 오직 그분만 바라봅니다. 오직 나를 찾아 몸소 오신, 심지어 친히 나를 부르기까지 하시는 오직 그분만 보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가장 선한 일은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세상을 둘러보며 때가 찼음을 느끼는 일입니다. 그리고 잠잠히 그분만 기다리는 일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사람을 낚는 어부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청년부. 「성실문화」 117호)
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다
크고 큰 바다에서
넓고 넓은 이 세상에서
굶주린 채 헤엄쳐 다니는 하나님의 아이를 건져
사랑으로 채워주고
더 큰 사랑이 되어 돌아올 그날을 고대하며
다시 이 넓은 세상이란 바다로 보내준다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함께 집으로 돌아갈 그 때를 기다리며
한 명, 두 명
돌아간 아이들의 바다는 사랑으로 물들겠지
오늘도 나는 사람을 낚는다.
[시편시조] 시편 62, 하나님만 희망이니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7호)
하나님만 희망이니 하나님만 기다려라
재물이 늘어나도 거기에 속지마라
권세는 하나님의 것 그분만을 의지해
[시편노래] 시편 62, 내 영혼아 잠잠히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7호)
[본문] (시편 62:5-12)
[노랫말]
1.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로지 하나님 그분이다
하나님만 나의 반석 나의 구원 피난처니, 나의 구원 나의 영광 하나님 그분이다
2. 백성아 언제든지 하나님만 의지하라, 그분이 피난처니 너희 속을 다 맡기라
낮은 자도 입김이요 높은 자도 속임수니, 저울에 달아봐도 입김보다 가벼웁다
3. 폭력으로 뺏은 재물 덧없고 허망하다, 너희가 행한 대로 주님께서 갚으신다
우리 주님 한 말씀에 두 가지를 깨쳤노라, 사랑 권세 이 모두가 하나님 것이로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62, 내 영혼아 잠잠히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62:5-1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7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오--직--,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6.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7. 내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내 견고한 바위이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다.
8.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속마음을--) 털어놓아라-∼ (셀라)
9.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11.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다함께]
12.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말씀동화] 인왕산 호랑이의 금식기도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장독 위에 떠놓은 정화수를 홀짝홀짝 핥아먹던 시절 이야기예요.
사람이 된 곰순이 웅녀를 몹시 부러워한 호랑이의 후손인 인왕산 호랑이는
전혀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았어.
왜냐면, 호랑이눈썹, 속눈썹을 치켜뜨고 보면 다 보이거든
저게 사람이 아니라 사람처럼 생긴 개, 돼지, 닭, 너구리, 늑대라는 게.
그래서 인왕산 호랑이는 사람을 짐승으로 보고 종종 잡아먹기도 했지.
그런데 아주 가끔 진짜 사람, 참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절을 했단다.
그런 참 사람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데
그 사람 안에 가득한 빛이 얼굴로 눈으로 뿜어져 나오는 게 호랑이 눈엔 다 보이더래.
그 빛이 너무 밝고 아름다워서,
남몰래 그런 사람을 경외하던 인왕산 호랑이는
날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드렸어.
“하나님, 사람에게 부어주신 빛을 저에게도 부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인왕산 호랑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사람이 빛나는 것은 나를 닮았기 때문이고, 늘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란다.”
그 뒤로 인왕산 호랑이는 자기도 하나님을 바라보려 애썼어.
그래야 빛나는 하나님의 빛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애쓰던 어느 날 홀연히 깨쳐버렸지.
그건 바로 성경말씀 가까이 하기랑, 약자들 가까이 하기라는 사실을!
그런데 인왕산 호랑이는 그 귀하디귀한 성경책을 구할 수 없어서
일단 약한 동물들을 가까이하려 애썼단다.
그런데 웬걸, 이게 쉬운 일이 아니네.
약한 산짐승들이 호랑이만 보이면 줄행랑을 치기 바쁘니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인왕산 호랑이가 호시탐탐 약한 동물들을 도와주려고 찾아다니는데
갑자기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정신없이 내달리며 이렇게 외치는 거야.
“하늘이 무너졌다∼!”
어라? 그런데 그 토끼를 따라 작은 동물들이 줄줄이 달리고 있네?
알고 보니 그 토끼는 인왕산에서 소문난 소심토끼, 걱정토끼였어.
그날도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참나무 아래 깜박 잠들었다가
얼굴 위로 도토리 하나 똑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달리기 시작한 거였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넋 나간 걱정토끼가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고 있네.
저러다가는 토끼는 물론 온 산 동물들이 전부 낭떠러지에 떨어질 판이잖아.
인왕산 호랑이는 발 빠르게 달려가 길을 가로막고 큰 소리로 소리쳤어.
“어흥∼ 그만 멈춰! 정신 차렷!”
호랑이의 큰 소리에 정신이 들어 달리기를 멈춘 걱정토끼는 머리만 벅벅 긁고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 한 동물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갔단다.
겁 많고 약한 동물들을 구해낸 인왕산 호랑이를 바라보며
하나님은 따듯하게 웃으셨고
하나님의 밝은 미소가 따듯한 바람을 타고 인왕산 호랑이의 머리에까지 닿았지.
그런데 얼마 뒤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백두산 호랑이들이 인왕산 호랑이를 물리치고
남녘땅 산짐승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려고 달려온다는 거야.
그래서 멀리 울산 장생포 고래 한 마리가 온 바다를 누비며 이렇게 외쳤데.
“사십 일만 지나면 서울이 무너진다.”(요나3:4절 흉내)
그러자 장생포 귀신고래는 물론 돌고래까지 제주도를 거쳐 인천 앞바다까지
빙빙 돌며 외쳤으니 이 흉흉한 소문이 인왕산 호랑이의 귀에까지 들린 것이지.
그러니 걱정토끼의 걱정이 이만저만 말도 못했겠지?
걱정토끼는 온산 토끼들과 작은 산짐승들과 함께
인왕산 호랑이를 찾아와 물었단다.
“어서 피난 가야겠죠?”
하나님의 밝은 미소를 받은 뒤로 한층 슬기로워진 호랑이가 노래했어.
“백성들아, 어떤 일을 당하든지 너희는 하느님을 믿어라.
마음에 있는 걱정일랑 하느님께 쏟아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다”(시편62:8, 공동번역)
늠름한 인왕산 호랑이의 노랫소리에 걱정 투성이 산짐승들은 정신을 차리고
씩씩한 인왕산 호랑이의 선포에 따라 금식기도를 시작했단다.
금식기도란, 나보다 약한 자를 잡아먹지 않는 것,
그런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었지.
올바른 금식기도를 선포하는 인왕산 호랑이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밝은 미소가
다시 한 번 인왕산 호랑이의 머리를 따듯하게 어루만지셨단다.
[이정훈 지음. 2024년 1월 20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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