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2주(2024년 1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사무엘기상 3:10)

 

[성서일과 4본문]

(사무엘상 3:1-10 (11-20))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 때에는 주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4.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고서,

5.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하고 말하였다.

7.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님을 알지 못하였고,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8. 주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 그런 뒤에 주님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을 듣는 사람마다 무서워서 귀까지 멍멍해질 것이다.

12. 때가 오면, 내가 엘리의 집을 두고 말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겠다.

13. 엘리는, 자기의 아들들이 스스로 저주받을 일을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식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 죄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집을 심판하여 영영 없애 버리겠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14.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을 두고 맹세한다. 엘리의 집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 씻지 못할 것이다.”

15. 사무엘은 아침이 밝을 때까지 누워 있다가, 주님의 집 문들을 열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자기가 환상으로 보고 들은 것을 엘리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였다.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렀다. 그는 내 아들 사무엘아!” 하고 불렀다. “,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17. 엘리가 물었다. “주님께서 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나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말아라. 주님께서 너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서 한 마디라도 나에게 숨기면, 하나님이 너에게 심한 벌을 내리고 또 내리실 것이다.”

18. 사무엘은 그에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말하였다. 엘리가 말하였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이다.”

19.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20.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시편 139:1-6, 13-18)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12-20)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요한복음 1:43-51)

43. 다음 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려고 하셨다. 그 때에 빌립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44. 빌립은 벳새다 출신으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고향 사람이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빌립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시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두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48.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9. 나다나엘이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5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주제는, ‘거짓이 없는 참된 사람이 누릴 복입니다.

 

구약, ‘주님께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셨다’(삼상 3:4)

시편,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시편 139:18)

서신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전 6:20)

복음서,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오늘 요절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입니다.(사무엘기상 3:10)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사무엘상 3:1-10(11-20) / 시편 139:1-6, 13-18)]

오늘 구약본문 소제목은 사무엘이 부르심을 받다입니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야 할 엘리는 눈이 어둡고

그 아들들은 행실이 어둡습니다.

급기야 하나님 말씀이 그 어린 사무엘에게 내립니다.

 

하나님 말씀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기어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우리 예상과 습관, 상식을 뛰어넘는 방법으로라도

말씀은 마침내 실현됩니다.

 

누구보다 언약궤 가까이에서 잠을 자던 사무엘이 말씀을 받은 점이 인상적입니다.

성전에서, 그것도 주님의 시은소 언약궤 가까이 살면서도

주님을 모르던 사무엘입니다.(7)

(이건 어쩌면 지금 우리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무엘을 환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도 주님을 환히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온몸으로 거짓에 빠져 사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거짓 없이 깨끗한 어린 사무엘,

주님과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희망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소제목은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노래는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이며, 동시에 복음서본문에 대한 정확한 응답찬송입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하여 환히 아십니다.(1)

나도 모르는 나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완전히 아시는 분입니다.

 

인생의 그 어떤 환란, 그 어떤 고통과 고독 속에서도,

정신 차리고 깨어 보면

주님은 늘 나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18)

 

일생의 연단 가운데서 내가 주님을 조금씩 더 알아 가면 갈수록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지금 모든 형편과 행복의 길, 생명의 길을

주님께서 환히 알고 계시니 말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6:12-20 / 요한복음 1:43-51)]

오늘 서신서본문 소제목은 성령의 전입니다.

타락의 대명사 고린도!

천여 명이나 되는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 여사제(신전 창녀)들이라는 환경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음행 문제를 짚어줍니다.

 

몸은 영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으며,

몸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신비로운 것이며,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며,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몸의 재발견으로, 탐식과 음행 문제가 드러납니다. 13)

(오늘 구약본문 엘리의 아들들의 죄 역시 탐식과 음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삼상 2:12-17, 22)

 

내가 나 자신을 이렇게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몸이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야 비로소 나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19-20)

몸을, 육체의 한계를 핑계 삼아 느슨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벼락같은 선언이요, 또한 크나큰 은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소제목은 처음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 주님으로 모시는 제자들의 당황과 감동이 교차됩니다.

예수님을 몰라 나사렛타령을 하며 업신여기던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주님으로 모시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와 그렇게 가까이 계셨음을,

나를 그렇게 환히 알고 계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우리 주님이심을 깨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진면목을 더 깊이 알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50-51)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을 참고했습니다.)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정리]

새해 첫머리, 주현절 2주에 주시는 말씀, 특히 구약과 서신서 본문은

은연중에 내 몸을 탐욕의 구실로 여기는 우리 인생에게

우레와 같은 경종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의 사랑, 그 하나님마음이 담긴 창조질서를

온갖 유혹으로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의 거짓말,

그 거짓말에 장단 맞추며 놀아나서는 안 될 존재임에도

우리 인생은 시도 때도 없이 과도한 탐식과 성욕에 빠져 몸을 망치기 일쑵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배경인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런 우리 속을 고스란히 확대해서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빛과 어둠, 참과 거짓은 내 몸(일상)에서부터 드러나는 법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며 주님을 만나 사귀는 일에 게으르면,

빛의 편, 참의 편에 서려 애쓰지 않으면 누구라도 어둠에 삼켜진다는 사실은

엘리 집안뿐 아니라, 심지어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서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을 하였다.(삼상8:3)

 

오늘 구약과 서신서 본문에 비추어 오늘 복음서본문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가리켜 말씀하신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1:47)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살아있는 사람, 즉 온 몸, 온 삶에 하나님 마음이 서린 사람,

어두운 거짓의 세력에 멱살 잡히지 않은 사람,

즉 탐욕에 빠지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탐욕의 뿌리인 식탐과 성욕, 돈 욕심을 다스려 빛을 회복하는 길,

내 몸이 주님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기쁘게 해드리는 길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치면서 시작합니다.(고전6:19-20)

 

그렇게 탐욕을 씻고 내 안의 온갖 거짓을 뽑아내며 차차 밝게 빛나는 몸, 참된 사람이 되어갈 때

시나브로 나다나엘처럼 귀가 열려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제자로서 이 기쁜 권리, 이 복스러운 일에 푹 빠져서

침잠완색(沈潛玩索)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사람이라야

창조질서, 천국질서가 꽃피는 인생,

자나 깨나 늘 주님과 동행하는 신비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139:18)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삼상3:10)

 

우리는 새벽마다 베푸시는 주님 말씀 앞에 섭니다.

그 말씀 떨어지는 즉시 시행하려는 종처럼 귀를 엽니다.

그 말씀 생명말씀이고 사랑말씀이니 나를 살리실 것입니다.

 

 

 

[나머지]

* 말씀과 함께

눈 어두운 엘리, 그리고 탐식과 음행으로 눈 어두운 그 아들들과 달리 주님 말씀을 직접 받을 만큼 사무엘은 밝고 깨끗했습니다. 문득 언약궤 가까이에 누워 자는 사무엘의 모습이(삼상 3:3) 마치 말씀을 끼고 사는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처럼 내가 아직 어려서 무슨 뜻인지 몰라도 읽고 읽고 또 읽다보면 그 뜻이 시나브로 드러납니다. 그 말씀이 점점 내 몸에서 내 삶에서 구현됩니다. 늘 말씀과 함께 사는 사람은 말씀 속에서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선물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그분 것이라는 고백은 이미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 이름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즉 그분의 은총, 선물입니다. “나다나엘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찌 사무엘과 나다나엘만 하나님의 선물이겠습니까? 나 역시, 구원받은 내 생명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3)

 

*** 오늘 본문 또 하나의 실마리, ‘성전

오늘 본문들의 주제, ‘주님 나를 잘 아심’, ‘주님 날 사랑하심’, 그래서 나와 아주 가까이 계심’... 성전을 실마리로 풀어볼 수도 있습니다. 구약본문의 사무엘은 <언약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삼상3:3)에서 자다가 주님과 만납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당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가까워져가는 나다나엘에게 스스로 성전이심을 드러내십니다.(요한1:51) 서신서의 바울은 내가 바로 성전임을(고전6:19), , 그분의 영을 몸소 모실 정도로 그분과 내가 가까움을 설파합니다. 이렇게 가까운 사이, 한 몸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면 마치 혼인서약처럼, 사랑하는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두 개 있습니다. 첫째, 오늘 구약과 서신서본문은, 내가 그분과 이렇게까지 가깝기에 지켜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그건 바로 내 몸입니다. 내 몸을 지켜야 합니다. 더욱이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그분이 지으신, 그분이 값을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엘리의 두 아들을 반면교사로, 서신서는 고린도교회를 반면교사로 보여주십니다. 탐식과 음행, 이 두 가지는 내 것 아닌, 거룩하신 그분의 소유, 내 몸을 망가뜨리는 대표주자들입니다. 내 몸을 탐식과 음행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고전 6:20) 이것은 사랑하는 분에 대한 도리이며, 권리요 자랑입니다. 둘째, 진정 사랑하는 사이는 서로의 진면목을 아는 법입니다. 주님은 나를 환히 아시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그분을 환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언약궤 곁에서 자고 깨는 어린 사무엘처럼, 나는 성경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환하게 켜놓는 성전 등불처럼 시대의 어둠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성경말씀을 엽니다.

 

****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들

오늘 본문말씀들은 주님의 진면목을 알게 해줍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 알고 보니 상상을 초월할 만큼 내 가까이 계셨던 하나님! 구약의 사무엘이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우리의 허물을 낱낱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 그 허물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시편의 기자가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나의 처음과 끝을 낱낱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 나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자나 깨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서신서의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우리 영혼뿐 아니라 몸까지 통째로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 나의 곁에 계실 뿐 아니라 아예 내 몸 안에 들어와 사시는 하나님입니다. 복음서의 나다나엘이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살피실 만큼 내가 궁금하신 하나님, 세상 누구보다 내 진면목을 아시며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47) 주현절은 예수께서 우리 주님으로 드러내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계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공생애를 낱낱이 되새기며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계절입니다. 주현절 두 번째 주일에 주시는 말씀에서 이토록 나에게 관심 많으신 주님, 이토록 나를 낱낱이 알고 계시는 주님, 이토록 나를 인정해 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고스란히 만나는 곳,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고 나니(요한1:51) 이토록 나와 가까이 하시기 위해 몸소 내 안에 들어오신 그분으로 내가 성전이 되어갑니다.(고전6:19) 성전이란 거룩한 곳입니다. 거룩한 성전답게, 내 몸이 탐욕을 멀리하고 깨끗해져야 합니다. 거룩한 성전답게, 내 마음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져야 합니다. 주현절을 살아가는 한국교회가 명심할 일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내가 가고 싶은 길 말고 (김현서 지음. 세움교회 청년부. 성실문화117)

어제도 오늘도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왔지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 하시네

인생의 의미 되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네

그분은 거짓이 없다고 말씀하시네

내가 더 큰 일을 볼 것이라 말씀하시네

그가 부르시는 길로

오직 그 분이 이끄시는 곳으로

나는 가네

 

 

 

 

[시편시조] 내 마음 나의 행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17)

내 마음 나의 행실 낱낱이 아시는 분

나의 뼈 오장육부 하나하나 지으신 분

언제나 내 곁에 계신 고마우신 하나님

 

 

 

 

[시편노래]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17)

[본문] (시편 139:1-6, 13-18)

[노랫말]

1.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샅샅이 살피시네, 앉았거나 서 있거나 주님은 다 아시네

멀리서도 다 아시네 내 생각을 다 아시네, 길가거나 누웠거나 내 모든 것 다 아시네

2. 나의 앞뒤 두루 감싸 주님의 손 얹으시니, 혀를 놀려 말 안 해도 하려는 말 다 아시네

이 깨달음 나에게는 너무 높고 놀라워라, 주님의 뜻 주님의 길 측량조차 못하오리

3. 모태에서 나를 만져 내 장기를 지으신 주, 하나하나 내 뼈조차 주님께서 다 아시네

오묘하고 놀라워라 나를 빚은 주의 손길, 내 영혼이 다 아오니 나 주님께 감사하네

4. 나의 형질 갖추기 전 주님은 나를 보고, 나의 날 시작 전에 주님 책에 기록되니

심오하신 주의 생각 많고 많은 주님의 길, 깨어보니 나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20240114 시편노래 139 나를 환히 아시는 주.m4a
5.94MB

 

 

 

 

[시편송서(誦書)] 시편 139:1-6, 13-1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17)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 주님-께서-, -를 샅샅이 --보셨으니-,

---- ----, (-) -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 -무 놀랍고 너무 높----,

---- ----, --할 수-차 없습-니다-

 

13.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 곳에---, ---- 지으-셨고-,

-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 주님의 생각이, -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그렇게도--) 많은-지요-?

 

[다함께]

18. 내가- 세려고 하----,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 있습-∼∥

 

20240114 시편송서 139.m4a
6.39MB

 

 

 

 

[말씀동화] 하늘호리병 물을 마신 백두산호랑이의 변신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콩고기 스테이크 먹던 시절 이야기예요.

 

백두산 호랑이가 갑자기 식탐이 부쩍 늘었어요.

곰순이랑 둘이서 동굴에 들어가 100일을 작정하고 쑥과 마늘만 먹다가

도저히 못 견디고 뛰쳐나온 뒤로 식탐이 두 배나 늘어버린 거예요.

 

곰순이는 100일 미션을 마치고 아리따운 여자가 되어

웅녀라는 이름까지 얻었는데, 심지어 쑥과 마늘 맛을 알고 난 뒤로

고기도 안 먹고 채식에 맛 들여 몸까지 날씬해지니

그런 곰순이를 볼 때마다 호랑이는 식탐이 두 배 세 배 마구 늘어나버린 거죠.

 

호랑이의 식탐 때문에 백두산 동물들이 오들오들 떱니다.

이 고기 저 고기, 마치 걸신이 들린 아귀처럼 고기 먹기에만 몰두하니

백두산에 비상이 걸린 겁니다.

 

 

참다못한 백두산 동물들이 산신령을 찾아갔어요.

 

신령님, 제발 호랑이 좀 말려주세요.”

 

산신령이 호랑이를 찾아가서 타일렀어요.

 

여보게 산군(山君), 백두산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식탐을 좀 줄이게

 

그러나 호랑이는 산신령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식탐이 늘어만 갑니다.

 

 

참다못한 산신령이 백두산 천지(天池)에 올라갔어요.

사흘 밤 사흘 낮을 기다리니 선녀들이 두레박을 타고 내려옵니다.

 

선녀님, 제발 호랑이 좀 말려주세요.”

 

대장 선녀가 목욕도 안 하고 얼른 호랑이를 찾아가 타일렀어요.

 

사람은 못 되어도 웅녀처럼 날씬해질 순 있어요.”

 

그러나 호랑이는 선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사람 되기랑 날씬해지기랑 다 포기한 호랑이는 식탐만 꾸역꾸역 늘어갑니다.

 

 

참다못한 선녀님이 하늘님께 올라갔어요.

 

하늘님, 제발 호랑이 좀 말려주세요.”

 

나날이 늘어만 가는 호랑이의 식탐을 눈여겨보시고

나날이 늘어만 가는 백두산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시던 하늘님이

선녀에게 자그마한 호리병을 주십니다.

 

호리병에 든 물을 호랑이에게 먹여보렴.”

 

신바람 난 선녀는 두레박 차례를 기다릴 겨를도 없었어요.

초음속 날개옷으로 갈아입고 최고 속력으로 날아와서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 호리병에 담긴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죠.

 

 

오늘도 온산 동물들을 실컷 잡아먹은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옹달샘에 와서 벌컥벌컥 물을 마십니다.

그러곤 식곤증으로 늘어지게 한잠 자고 일어났죠.

그러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요.

 

여태 한 번도 안 보이던 백두산 동물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호랑이를 만나면 늘 도망가기 바쁜 동물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들오들 떠는 얼굴, 낯빛이 창백해진 얼굴,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람?”

 

문제는 그러고 나서부터 식욕이 줄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동물들을 잡아먹으려 할 때마다 얼굴이 보이면 식욕이 싹 달아나고

그래서 얼굴을 안 보려고 눈을 감아버려도 소용없었어요.

마음속에 동물들 얼굴이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죠.

 

 

그런 뒤로 정말 놀라운 일들이 줄줄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동물들 얼굴뿐 아니라 땅속 동물들 얼굴까지 보이기 시작하고

심지어 땅속에서 정답게 악수하는 나무들의 잔뿌리까지 보이기 시작하네.

 

그러고 나서 하늘을 보니 날아가는 새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하늘 높이서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시는

하늘님 얼굴까지 보이는 겁니다.

 

그때 하늘님이 내려주시는 단비를 맞으며 호랑이는 자기 속을 들여다봅니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단비를 핥아먹으며 중얼거립니다.

 

식물들이 서로 악수하듯이 동물도 서로 잡아먹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하늘에서 선녀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옵니다.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빚어진 것이 오묘하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시편139:13-14)

 

선녀들의 합창을 들으며 백두산 호랑이는 중얼거립니다.

 

사람은 못되었어도 사람의 마음은 조금 닮아가는 건가?”

 

호랑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호랑이가 닮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백두산 천지를 향해 올라갑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산꼭대기에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때 하늘님이 선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저 호랑이야말로 참 백두산 호랑이다.

그에게는 식탐이 없다.”(요한복음1:47절 흉내)

 

[이정훈 지음. 2024113일 토요일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