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누가복음 15:32)
[성서일과 4본문]
(여호수아기 5:9-12)
9.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10. 이스라엘 자손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여리고 근방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11. 유월절 다음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 날에, 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12.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부터 만나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시편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셀라)
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고린도후서 5:16-21)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3, 11b-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14.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15.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25. 그런데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27.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고난의 길 끝에서’입니다.
구약,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버렸다”(여호수아기 5:9)
시편,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하였더니’(시편 32:5)
서신서,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복음서, “그제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누가복음 15:17)
오늘 요절은,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입니다.(누가복음 15:3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여호수아기 5:9-12 시편 32)]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가나안 땅에서 행한 할례와 유월절 행사’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의 모든 왕들이 떨고(5:1)
여호수아는 주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이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전에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새로이 바쳐지는 의례이며(창17:10-14)
동시에 광야에서 저지른 앞 세대의 죄를(민14:22-23) 정리하고
이집트 노예살이의 수치를 없애버리는 정결예식입니다.
백성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으며(출12:2-6,48)
무교병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출12:18-20)
400년 노예살이와 40년 광야생활 끝에 주님께서 베푸신 잔치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죄 용서받은 복’입니다.
시인은 자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을 찬송하며
이 경험을 회중에게 교훈으로 전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그러뜨리고
이로써 사람의 영과 육이 깊이 병듭니다.
이를 회복할 길은 하나님께 내 죄를 다 털어놓고 용서받는 길 뿐입니다.
특히 1-5절은 예배를 예배답게 하려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열쇠와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은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과 깊이 통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후서 5:16-21, 누가복음 15:1-3, 11b-32)]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화해의 직분’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적 적대자들을 염두에 둔 바울의 가르침은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한 정리>에 이어서
마침내 우리 죄를 다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으로 열리는 <하나님과 화해의 길>에 다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이미 “육신의 잣대” 같은 “옛것”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존재입니다.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이 “새로운 피조물”은 압니다.
하나님과 화해의 문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활짝 열어주셨다는 사실을!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과 어그러진 관계가 회복된(21) 우리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절”로서(20)
“화해의 말씀”을 맡고(19) “화해의 직분”을 받습니다.(18)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음식까지 드시는 것을 두고 투덜거리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잃은 양, 잃은 은화의 비유에 이어서
잃은 아들의 비유(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와 민족을 떠나서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나
그런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님을, 즉 거기는 생명이 없음을 이내 깨닫습니다.
돼지를 치며 돼지 여물조차 얻어먹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서야
마침내 자기 죄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아버지께 돌아가 회개하는데,
그 과정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됩니다.
아버지의 용서의 속도와 규모가 아들들의 예상을 뛰어넘어버린 것입니다.
부자간 관계의 회복은 아들의 상상을 초월해서
(오늘 서신서본문 말씀처럼) 그야말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후5:17)
작은아들이 단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란 것과 달리
예전보다 더 멋진 존재로 회복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이 적극적인 사랑의 이유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그 사랑의 기쁨 역시 아버지만 아십니다.
다만 그 기쁨의 잔치에 제대로 동참할 때 우리는,
아버지의 그 사랑 그 기쁨을 조금이나마 느낄 뿐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 됨을 기억(기념)하고,
우리(교회)가 하나 됨을 기뻐하며 나아가 세상과 하나 될 것을 기원하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성찬)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하나 되는 잔치는
철두철미 하나님(아버지)께서 베푸신 잔치입니다.
다른 종교의 예배가, 먼저 우리가 상을 차려 신을 불러 바치는 것과 달리,
기독교예배는 하나님께서 상을 차려 우리를 불러 먹이시는 말씀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제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봉사하신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독일어 “예배”(고테스딘스트 Gottesdienst)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집트 노예생활 400년이나 광야 40년보다는 짧지만
우리의 한 주간 세상 삶 끝에 주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모여서 말씀을 먹음으로써
주님과 친교하는 관계인, 대단히 거룩한 나의 존재를 다시 기억하고
사랑과 평화의 기쁨과 기운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예배 과정에서 한 가지 꼭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이 친교의 기쁨 여부와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길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여부와, 우리의 기쁨 유무의 관건은
우리 예배자의 삶, 그 <진실>의 문제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생활 가운데 불쑥불쑥 돋아나는 거짓말(속임)이
우리 예배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기독교예배는 나의 죄 고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씻음의 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하고
이 구원의 기쁨을 세상에 전하라는 파송으로 마무르며
파송받은 예배자들이 세상에 나가 말씀의 도(성찬의 도)를 실천하는 일, 즉
거짓 세상에 복음(회개 촉구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예배 이 거룩한 잔치에서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거짓의 기운이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속이는 새빨간 거짓말은 물론, 탐욕에 눈 어두워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소프트한 과장과 매끄러운 왜곡이 상습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은 그런 내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십니다.
마치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사는 우리에게(9)
예배자의 치열한 자기정화과정을 보여주십니다.(1-5)
그런 예배자의 모범을 2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새번역)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공동번역) “야훼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자.”
(메시지번역) “스스로 행운아로 여겨라. 하나님께서 흠잡으실 구석 전혀 없고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길 것 없는 그대”
죄의 시작은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탐욕을 배가시키고 탐욕은 또 반복해서 거짓말을 낳습니다.
창세기 머리부터(3장) 계시록 끝에 이르기까지(21:8, 22:15)
거짓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악마가 뿌린 가라지입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고갯마루에서 베푸신 시편을 반복해서 부르며
우리 안의 거짓을 하나하나 씻어내어
우리 안에 잃어버린 예배의 기쁨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하신 아버지의 그 기쁨이(눅15:32)
우리 예배 안에 샘물처럼 솟아 시냇물처럼 흘러흘러
나와 너와 우리를 적시는 기쁨을 누립시다.
[나머지]
* 내 아버지 잔칫상을 제대로 맛보려면
약속의 땅에 들어서면서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 백성들의 이집트 종살이의 수치를 없애버리십니다. 하나님 백성답지 않은 노예의식을 굴려버리신 것입니다. 세상 물질과 세상 권력에 주눅들어 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 약속만 믿고 전진하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세상에서 마음껏 받고 누리려면 하나님 자녀답지 않은 온갖 수치스러운 것들부터 없애야 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도저히 하나님 자녀라 할 수 없는 이 수치를 먼저 굴려버려야 합니다. 이 “수치”의 상흔은 “육신의 잣대”로 남는 법입니다. 이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길은, 근심을 멈추고, 계산을 멈추고 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일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내 아버지의 집에 차려진 잔치, 내가 상상도 못한 잔치, 온 세상 쾌락의 종결자조차 맛보지 못한 내 아버지의 잔치상을 맛보려면 먼저 이 “수치”와 “육신의 잣대”부터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 잔치의 진짜 주인
오늘 사순절 4주 또 하나의 주제는 <주님께서 새롭게 하시다>입니다. 주님 십자가 죽으심으로 내가 “새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주님 자녀로서의 내 모든 권리가 회복됩니다. 이를 한마디로 집약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고후 5:18) 잔치를 벌이신 아버지께 항의하는 큰아들, 그 아들을 다독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작은 아들을 위해 차린 잔치지만 이 잔치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닌가! 지금 누구보다 기쁜 사람은 아버지 아닌가! 염소새끼 고기는커녕, 지금 작은 아들은 하도 굶어서 살진 송아지 요리는 입에도 못 댄다고 큰 아들에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사족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버지가 잔치의 주인공, 잔치를 가장 크게 즐기는 분입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버지인 것입니다.(32) 아마 지금 가장 신명나게 춤추고 있는 사람도 아버지일 것입니다.(25) 아버지께서 이렇게 기뻐하시는 걸 보면, 내가 새로워진 게 틀림없습니다!
*** 잔치 마니아 작은아들
좀 엉뚱하지만, 30절 말씀에서 큰 아들이 힐난하는 작은 아들의 행동과 예수님의 잔치행동이 묘하게 연결됩니다. 작은 아들이 창녀들과 어울리며 아버지 재산을 탕진한 것(개역개정과 새번역, KJV, RSV 등은 ‘삼켰다’고 번역했습니다.)과 예수께서 창녀, 세리 등과 잔치를 벌이신 것은 아주 다른 것인데... 어쩌면 이 비유의 말씀을 처음 듣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상한 기시감(旣視感)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잔치를 즐기셨다는 말입니다.
**** 잔치 알레르기 큰아들
우리 신앙생활, 우리 일생의 맛이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잔치답지 않습니다. 잔치 알레르기 큰아들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회개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용서할 줄 모르고, 화해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줄 알고, 용서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화해할 줄 아는 이들만이 진정한 잔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돈 없어도, 콩 세알만 가지고도 잔치의 알맹이를 맛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일생 동안 내내, 예수님 잔치를 맛보며, 맛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걸 맛본 사람은, 큰 아들과 달리, 그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절대 거절 안 할 것입니다.
***** 4본문 대구(對句) 모음
오늘 4본문에 서로 짝을 이루는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구약 “수치”(수 5:9) / 시편 “허물”(시 32:1) / 서신서 “옛 것”(고후 5:17) / 복음서 ‘돼지치기’(눅 15:15) 이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는 길은 주님께 있습니다. 구약의 이집트 종살이 수치는 복음서 탕자의 돼지치기 수치와 통합니다. 구약의 유월절 잔치는 복음서 아버지께서 차리신 탕자의 잔치와 통합니다. 탕자가 타지에서 즐기던 잔치와 귀가하여 아버지께서 차려주신 잔치가 대비됩니다. 탕자가 타지에서 치던 “돼지”와(15) 귀가하여 아버지께서 잡아주신 “살진 송아지”가(23, 30) 대비됩니다. 거기 또 하나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있습니다.(29) “분별없는 노새나 말”(시 32:9)은 “육신의 잣대”(고후 5:16)와 통하고, 복음서의 탕자의 첫 모습과 통하며(눅 15:12-13), 특히 큰 아들의 모습과 더 잘 통합니다.(28-30)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보물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0호)
내게는 사랑하는 두 보물이 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그런 보물
어느 날 보물 하나가 사라졌다
이게 어디로 갔을까
속이 타고 눈물이 났지만
제 발로 돌아오기 전까진 찾지 못할 텐데
어느 날
사라진 보물이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군데군데 흠집이 나고 깨진 구석도 있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이
내 보물이 맞구나
너무너무 기뻐라 잔치를 열자
여전히 쭈욱 내 품안에 얌전히 있던 또 다른 보물아
시샘하지 말아라
너는 내 모든 것이니
너희 둘이 다 함께 있으니 참 기쁘고 즐겁구나
[말씀시조] 옛 것은 지나가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0호)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화해의 직분이라
진실로 간청하노라 하나님과 화해를
[시편노래] 시편 32,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110호)
[본문] (시편 32)
[노랫말]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주님께서 죄 없다고 여겨주신 자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복되어라 그런 사람 복스럽구나
2. 죄 고백 안 하려고 입을 다물 때, 온종일 나의 뼈가 녹았나이다
드디어 나의 죄를 주께 아뢸 때, 기꺼이 용서하여 주시나이다
3. 경건한 사람이 고난 받을 때, 주님께 기도하게 도와주소서
피난처 내 주께서 지켜주시니, 소리 높여 내 구원을 노래합니다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의 갈길 내가 손수 가르쳐주마
분별없는 노새처럼 되지 말아라, 눈여겨 너를 지켜 이끌어주마
5. 악한 자 불의한 자 고통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자 사랑 넘치리
의인들아 주님을 기뻐하여라, 정직한 자 너희 모두 환호하여라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32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은 자)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32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나-를) 두르시리-∼이∿다--∼(셀라)
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다함께]
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즐거이) 외칠지∼어∿다∼∥
[말씀동화] 행복한 철수엄마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아들 딸 앉혀놓고 천자문 가르치던 시절 이야기예요.
철수네 엄마는 짱이에요.
온 동네, 아니 온 나라 최고 울트라 슈퍼 짱이죠.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나라 최고 대학 수석입학 수석졸업에다가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몇 개나 따가지고 왔거든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전공도 하지 않은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
어디 그뿐인가, 대금이면 대금, 해금이면 해금에 거문고까지
악기란 악기는 전문가 뺨치고요,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부르시는데요.
얼마나 대단하면 아이돌들이 배우러 온다니까요, 우리 동네까지!
아이돌 아이들이 몰려오면 온 동네가 환해지겠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반짝반짝 아이돌들이 철수엄마 앞에만 오면 전혀 빛나지 않아요.
철수엄마가 뿜는 아름다운 빛이 어마어마하거든요.
맵씨는 또 얼마나 좋으신지
아무리 값싼 옷을 입어도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수를 놓은 듯
철수엄마의 옷에서 빛이 납니다.
마음씨는 또 얼마나 고운데요.
솜씨와 맵씨가 구단이라면 마음씨는 십이단이라고
온 동네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죠.
철수동생 영희도 대단해요.
엄마를 빼닮은 영희는 우리 동네 큰 자랑이죠.
엄마가 해님이라면 영희는 별, 별 중의 별이에요.
엄마의 뒤를 이어서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일등으로 들어갔죠.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아름다운 영희 때문에
온 동네가 종종 시끄러워지는 까닭은
같은 대학교 남자아이들이 불쑥불쑥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그런 영희를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세요?
영희아빠는 틈만 나면 동네사람들에게 영희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맞장구쳐줘도 속으로는 별로예요.
자랑이 너무 심하거든요.
동네사람들은 영희아빠가 부러운 한편 측은합니다.
왜냐하면 영희아빠는 부인인 영희엄마랑 너무 다르거든요.
얼굴도 못생겼고, 좋은 대학 졸업장도 좋은 직장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고 성격도 그냥 그렇거든요.
아빠를 빼닮은 철수는 누이동생 영희랑 너무 달라요.
아무도 모르는 이름 없는 대학을 겨우 졸업한 뒤로
일도 안 하고 맨날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온종일 방문 잠그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철수네 집에서 아빠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철수가 컴퓨터로 온라인 도박을 해서 큰 빚을 지게 된 거였어요.
그래도 고집불통 철수는 잘못했다는 소리 한마디도 안 합니다.
결국 철수네 엄마아빠는 집을 팔아 철수의 도박 빚을 갚아주고
우리 동네 후미진 곳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철수에게 남은 돈을 주며 말씀하십니다.
“이 돈으로 어디 여행이나 다녀오렴. 맛있는 것도 사먹고.”
난생처음 큰돈을 갖게 된 철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콧노래 부르며 얼른 집을 나섭니다.
동네 사람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른 좋은 차 한 대 빌려 타고 씽하고 떠나갑니다.
봄꽃 필 때 떠난 철수가 돌아온 것은 첫눈 내릴 무렵이었어요.
멋진 외제차 타고 떠났던 철수가 누가 버린 다 떨어진 겨울옷을 주워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겨우겨우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디 가서 무얼 하다 가진 돈 다 써버리고
저렇게 불쌍한 꼴로 돌아왔는지는 안 봐도 훤하죠.
마을사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철수네 집에서 잔치가 벌어진 거였어요.
철수엄마가 철수에게 최고 좋은 옷을 사 입히고
철수 친구들을 다 초청해서 극진한 잔치를 열어준 겁니다.
철수엄마의 제자 아이돌들을 총출동시키니
후미진 곳 자그마한 철수네 집이
온 동네의 중심이 되어버립니다.
불평불만 철수아빠는 못난 아들 철수가 부끄러워서 외출해버렸는데
잔칫상 차리는 철수엄마와 누이동생 영희는 왜 저렇게 신이 났을까?
온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하십니다.
“부모가 약할수록 잘되는 자식에게 눈 많이 가고, 부모가 강할수록 약한 자식에게 마음 많이 가는 법이지.”
“맞아. 약한 부모일수록 자식자랑 극성이고, 강한 부모일수록 자식자랑 별로 없어.”
“그나저나 철수엄마는 왜 저렇게 잔치를 대단하게 벌였을까?”
“철수가 난생처음 무릎 꿇고 엄마아빠한테 싹싹 빌었다나 봐.”
“그런데 그게 저렇게 큰 잔치 벌일 일이야?”
“그러게, 난 철수엄마가 저렇게 기뻐하고 자식을 저리 자랑스러워하는 거 처음 봐!”
“철수엄마 워낙 높은 사람이잖아. 우리랑 달라. 우리 눈에는 차이가 커보여도, 아마 철수엄마 눈에는 철수나 영희나 별 차이 없을 걸? 그리고 자식이 높아지는 것보다, 부모랑 가까워지는 걸 더 좋아할 거야.”
“오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철수엄마네! 저거 봐 철수엄마 노랫소리야, 저렇게 신나는 노래 처음이야!”
철수네 집에서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철수엄마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니 여럿이 함께 신나게 따라 부릅니다.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시편32:1-2,11)
[이정훈 지음. 2022년 3월 26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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