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이사야서 55:7)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서 55:1-9)
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4.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고, 많은 민족들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다.”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6.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7.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
(시편 63:1-8)
1.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2. 내가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3.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
5. 기름지고 맛깔진 음식을 배불리 먹은 듯이 내 영혼이 만족하니, 내가 기쁨에 가득 찬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6. 잠자리에 들어서도 주님만을 기억하고 밤을 새우면서도 주님만을 생각합니다.
7. 주님께서 나를 도우셨기에 나 이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거이 노래하렵니다.
8.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13)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8.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9.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10.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누가복음 13:1-9)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공동 주제는, ‘내가 그른 길을 갈 때’입니다.
구약,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이사야서 55:7)
시편,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시편 63:1)
서신서,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고린도전서 10:13)
복음서,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누가복음 13:8)
오늘 요절은,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입니다.(이사야서 55:7)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서 55:1-9 시편 63:1-8)]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본문은 바빌론 포로 신세인 유다 백성에게 전하는
두 번째 이사야의(40-55장) 마지막 (55)장 말씀입니다.
오랜 포로생활 동안 내내 되새겼을 조상들의 출애굽 기적의 역사에 잇대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약속>이 연상되는
<물, 포도주, 젖, 양식>(1-2)을 마음껏 먹으라고 하나님께서 초청하십니다.
자유를 빼앗긴 포로 신세, 그리고 고통스런 광야 인생이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리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께 돌아와 귀 기울여 약속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3)
그 때 하나님의 백성다운 영화로운 삶이 보장됩니다.(5)
더 이상 하나님을 불신하고 간보는 짓을 버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8-9) 기대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늘 너그러이 용서하십니다.(7)
오늘 시편본문의 소제목은 ‘하나님을 갈망함’입니다.
1절을 근거로 이 시는, 다윗이 유대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로 추측합니다.
(표제, 삼상22:5, 23:14, 24:1)
시인은 적들의 박해를 피해 성소로 달려가 자신의 진실함을 인정받으려 합니다.(2)
그런데 놀랍게도, 시인은 그 곤경 가운데서 오히려 먼저
한없이 흡족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중에 부를 감사 찬양을 미리 앞당겨 부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인은 자신이 진실하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것을(7) 확신하는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고린도전서 10:1-13, 누가복음 13:1-9)]
오늘 서신서 본문의 소제목은 ‘우상숭배를 경고함’입니다.
과거 출애굽 백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린도교회 역시
여전히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떠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의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바울은,
<세례와 성찬이 구원의 절대적 확실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세례와 성찬이 연상되도록 과거 출애굽 시절을 묘사합니다.(1-4)
즉 출애굽하여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 대부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광야에서 죽은 것을(5) 본보기 삼아(6,11)
교회는 더 이상 자만하지 말고(12)
우상숭배와 간음 등을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7-10)
오늘 복음서본문의 소제목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중에
당시 백성의 감정을 자극하는 큰 사건 2개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예화 1개로 회개(의 열매)를 가르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호9:10, 미7:1-4, 렘8:13, 29:17)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잘릴 위기에 빠지자 포도원지기가 주인께 간청합니다.
<진멸의 심판 전에 마지막 은혜의 유예기간이 시작되었음을>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것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 해설 일부 참조)
[정리]
오늘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예화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한국교회가, 내가 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어지는 문맥으로 보아,
그리고 오늘 사순절3주 본문들의 공동주제로 볼 때,
무화과나무에 3년 연속 열매가 없는 것은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음입니다.(눅3:8)
오늘 구약본문의 바빌론포로들과 출애굽 광야 백성들의 불순종,
그리고 서신서 본문 고린도교회의 불순종(不順從) 등, 저 불순(不純)한 혈통이
고스란히 지금 한국교회로 이어집니다.
우상을 가까이 하고 음행을 해도 구원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여기는 <니골라 당>처럼
언제부턴가 한국교회는 드러내놓고 점을 보고 음행을 저지르면서도
도대체 두려움이 없습니다.
철두철미 무당과 점을 의지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대통령까지 되는 세상이니
한국교회 니골라당은 날개를 달아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평등을 부르짖는 교우들은 교회에서 좌파로 몰려
점점 교회의 소수자가 되어갈 것이 불을 보듯 환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성경은, 하나님말씀과 동떨어져 호의호식하는 것이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환히 보여줍니다.
성경을 읽고 역사를 살펴 얼른 돌이켜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위하여 부지런히 교회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줄 때입니다.
분명히 이 배신과 시련의 때에도
주님께서 마련해 두신 벗어날 길이 있을 것입니다.(고전10:13)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이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이사야서55:6)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이사야서 55:7)
[나머지]
* 사순절 광야의 목마름
이스라엘의 건기(乾期)의 고통은, 물 좋은 대한민국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런 척박한 환경이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보게 하지 않았을까요? 바짝 말랐을 때 작은 물기조차 귀하고 순식간에 빨아들이듯이, 광야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더 민감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순절 광야 길은 척박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결사적인 은혜의 때입니다.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이사야 55:6)
**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이사야서55:7)
그러고 보니 마가복음 11장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저주사건>은 무화과 열매철이 아니었음에도 주님께서 열매를 찾으셨다는 사실에서(13), 심판의 때란 우리 예상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회개의 때는 나중 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과 짝을 이루는 오늘 누가복음 13장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말씀은 포도원지기 덕분에 사망 직전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그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신실하심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가던 길 멈추고 주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시고(사55:7) 살려주시는(3) 한결같이 사랑 많은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라는 사실!(시편63:3) 그러니 지금 사순절 3째 고개를 넘고 있는 우리가 할 일은 어서 지금까지 나의 길을 돌이켜 주님께로 향하는 일입니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입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짓 이제는 그만 멈추고,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로(사55:7) 나를 통째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 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시편63:1)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이사야서6:9-10)
그리스도인은 점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관상도 볼 필요가 없고 오늘의 운세도 볼 필요가 없고 사주나 토정비결이나 주역점, 별점, 타로점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점들이 신통하게 잘 맞고,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신통하게 잘 맞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뜻을 잠깐 가리는 일일 뿐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점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비전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았으나 그 말씀 봐도 안 보이고 들어도 안 들리는 사람들이 점을 보는 것입니다. 왜? 불안하니까! 그러나 제대로 말씀을 받은 자들은 점을 보고 무당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애타게 주님을 찾는>(시63:1) 참 사람!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동시] 기회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성실문화」 110호)
물을 주어 목을 축이게 해주고
해를 끌어다 빛을 비춰주어도
기다리고 기다려도
너희는 열매를 맺지 않는구나
추수철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않는 너희는
겨울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불속으로 사라지겠지
[말씀시조] 우상을 숭배하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110호)
우상을 숭배하다 광야에서 망한 이들
말세의 우리에게 반면교사 되는도다
시련을 견뎌내시라 주님께서 도우니
[시편노래] 시편 63, 광야에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성실문화」 110호)
[본문] (시편 63:1-8)
[노랫말]
1. 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주님을 찾는 마음 애가 탑니다
온 땅이 주를 찾아 목이 마르고, 몸도 맘도 주님이 그립습니다
2. 주님을 뵈오려고 성소에 와서, 주의 권능 그 영광을 바라봅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주님의 사랑, 내 입술로 영광의 주 찬양합니다
3. 이 생명 다하도록 주 찬양하고, 내 손 들어 주의 이름 찬양합니다
좋은 음식 먹은 듯이 흡족하오니, 기쁜 입술 내 주님을 찬양합니다
4. 누워서도 밤새도록 주님 생각뿐, 오른 팔로 감싸시는 든든한 사랑
나를 위해 펼치시는 주님의 날개, 즐거워라 그 사랑을 노래합니다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인 주원남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63 (광야에서) (이정훈 편사, 주원남 작곡)
[시편송서(誦書)] 시편 63:1-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110호)
(※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다함께]
8. 나의- 영혼이 주--를--,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나-를) 붙드시거∼니∿와∼∥
[말씀동화] 하늘거울이 천리안 유리구슬을 내려다보며 부르는 노래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확대경 쓰고 보리쌀에 시편 1편 새기던 시절 이야기예요.
나리아빠는 맨날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려요.
주머니란 주머니 다 뒤지고 서랍이란 서랍 다 뒤지고 나면
그리고 또 책상이랑 밥상이랑 장식장 위까지 싹 다 살피고 나면
어이쿠! 여기 있었네, 신발장!
나리 엄마는 오늘도 나리더러 전화 걸어보라셔요.
또 휴대전화 잃어버린 거죠.
까르르 웃으며 나리가 엄마한테 전화합니다.
띠로롱∼뾰로롱∼ 오늘은 화장실에서 울립니다.
나리는 그럴 때마다 유리구슬이 떠오릅니다.
쓰담쓰담 어루만지며 잃어버린 거 이름 부르면
짜잔∼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하게 보여주는 유리구슬!
나리엄마는 오늘도 ‘오늘의 운세’를 뒤적입니다.
나리아빠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식 그래프를 살핍니다.
엄마아빠는 두 눈이 벌게지도록
스마트폰을 보고 또 봅니다.
나리엄마와 아빠가 오늘의 운세와 주식 그래프를 스마트폰으로 보는데
나리할아버지는 언제나 화투로 점을 치시죠.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잘 맞는다며
할아버지는 엄마와 아빠의 스마트폰을 깔보세요.
나리도 친구들이랑 스마트폰으로 맨날 ‘오늘의 운세’를 봅니다.
언제부턴가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오늘의 운세가 대세가 되어버렸거든요.
온 집안에 오늘의 운세가 들썩이던 어느 날
나리할머니가 나리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옛날옛날 한 옛날에, 천리안 유리구슬이 있었단다...”
나리의 눈이 왕방울만해지고 눈동자는 콩자반만해졌어요.
나리가 꿈에 그리던 유리구슬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할머니의 유리구슬 이야기는 좀 이상했어요.
세상 모든 잃은 물건 찾아주고
오늘의 운세까지 다 알려주는데
웬일인지 분위기가 어둑어둑하네.
“할머니! 환히 보여주는데 왜 유리구슬은 분위기가 밝지 않고 어두컴컴해요?”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대답하셨어요.
“역시 우리 나리는 마음이 참 맑아. 맑은 사람은 금세 느끼지, 유리구슬의 어두운 기운을!”
유리구슬은 공중에서 만들어진 천리안(千里眼)이었대요.
하늘과 땅 사이 공중에서 힘이 제일 센 악마가
마치 함박눈을 뭉쳐 눈사람 만들 듯이
온갖 마술의 기운을 뭉치고 또 뭉쳐서 유리구슬을 만든 거죠.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이 벌떼처럼 유리구슬에게 모여들었단다.”
사람들은 유리구슬 덕분에 오늘의 운세는 물론 내일 일까지 다 알게 되자
점점 부자가 되었데요.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점점 자기밖에 모르는 유리구슬을 닮아갔거든요.
악마의 기운이 깃든 유리구슬은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내어주기는커녕
자기를 위해서라면 남의 것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았죠.
그렇게 유리구슬에 빠진 사람들이 하루하루 부자가 되고
힘세고 높은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시편63:1)
그러자 유리구슬이 종알거렸어요.
“흥! 잃어버린 거 찾으려면 나한테 물어볼 것이지 웬 노래람?”
그 노래는 하늘거울이 부르는 노래였어요.
“이 몸이 주님께 매달리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꼭 붙잡아 주십니다∼♬”(시편63:8)
노래를 마친 하늘거울이 유리구슬을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여태 이 노래를 깨닫지 못했느냐?”
할머니말씀이 점점 따뜻하고 밝아집니다.
“세상이 천리안 유리구슬에 빠져든 것은 하늘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마음속 가득한 탐욕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고, 그래서 점점 불안하고 그럴수록 점점 더 탐욕스러워져 갔지.”
반짝반짝 샛별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나리가 얼른 물었어요.
“그럼 성경말씀 읽으면 오늘의 운세 안 보게 되요?”
“물론이지. 성경말씀에 푹 빠진 사람은 내일 일이 두렵지 않고 오늘의 운세가 궁금하지 않단다.”
나리가 얼른 또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천리안 유리구슬 따위를 없애버리시지 않고 그냥 주셨죠?”
나리의 돌발질문에 할머니가 당황하셨나 봐요.
“그, 그것은... 왜 그러셨을까? 성경말씀 안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궁금한 건 도저히 참지 못하는 나리가 또 질문합니다.
“그런데 하늘거울은 무엇을 보여주는 거울이죠?”
그제야 할머니가 다시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늘거울은 잃어버린 나를 되찾게 해주는 거울이지.”
할머니는 나리에게 하늘거울이 부른 노래를 가르쳐주셨어요.
이 노래를 부를수록
우리 안에 하늘거울이 점점 더 맑고 밝아진다고 하시며!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시편63:3-4)
[이정훈 지음. 2022년 3월 19일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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