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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왕국절 10주, 창조절 9주, 2020년 11월 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성서일과 4본문]

(여호수아기 3:7-17)

7.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오늘부터 내가 너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고,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겠다.

8.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강의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이 곳으로 와서, 주 당신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이루어질 이 일을 보고, 당신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당신들 가운데 계셔서,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당신들 앞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1.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언약궤가 당신들 앞에서 요단강을 건널 것입니다.

12. 이제 이스라엘의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뽑으십시오.

13.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강 물에 닿으면, 요단강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끊기고, 둑이 생기어 물이 고일 것입니다.”

14.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15.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 가에 닿았을 때에,

16.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17.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온 백성이 모두 요단강을 건널 때까지,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시편 107:1-7, 33-37)

1.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3.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모두 주님께 감사드려라.

4. 어떤 이들은 광야의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며,

5. 배고프고 목이 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셔서, 사람이 사는 성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33. 주님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옥토를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35.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막을 연못으로 만드시며, 마른 땅을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드시고,

36. 굶주린 사람들로 거기에 살게 하시어, 그들이 거기에다 사람 사는 성읍을 세우게 하시고,

37. 밭에 씨를 뿌리며 포도원을 일구어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데살로니가전서 2:9-13)

9.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10. , 신도 여러분을 대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잡힐 데가 없이 처신하였는지는, 여러분이 증언하고, 또 하나님께서도 증언하십니다.

11.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이, 우리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합니다.

12. 우리는 여러분을 권면하고 격려하고 경고합니다마는, 그것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3:1-12)

1.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3.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6.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7.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9.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실마리는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심입니다.

 

구약,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궤를 멘 제사장들”(여호수아기 3:13)

시편, “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셔서”(시편 107:7)

서신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복음서,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마태복음 23:10)

 

오늘 요절은,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여호수아기 3:7-17 / 시편 107:1-7, 33-3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다입니다.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서

흡사한 방식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심으로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은 하나님의 종임을 보이십니다.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진 사건은 동시에 언급되기도 합니다.(시편 114:3,5)

그런데 특히 요단강에서 돋보이는 것은

제사장들이 멘 주님의 언약궤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 본문에 무려 7번이나 반복해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언약궤를 묘사할 때

온 땅의 주권자이신 주님의언약궤라고

반복해서 표현한 것이 의미심장합니다.(11, 1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들이셨음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모든 땅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호수아기,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면 선물 받은 땅을 잃게 된다는 각성이 깔려있습니다.

땅의 주인은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니!

 

오늘 시편본문소제목은 구속받은 자들의 감사시입니다.

이 시편은 큰 감사축제 예배 의식의 서문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반부는 광야 사막을 헤매던 대상(隊商)들이

하나님 도우심으로 길을 찾게 된 것을 묘사하는데,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룬 것으로 볼 때,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반부 역시 구약본문과 짝지어 볼 때

강을 마르게 하시거나(33) 그 반대이거나(35)

주님께서 백성을 위해 얼마든지 이루실 기적이니

우리는 그저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께 감사할 뿐입니다.(1-3)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2:9-13 / 마태복음 23:1-12)]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데살로니가에서 벌인 바울의 사역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 이어, 바울은 교회를 위한 자신의 노력,

특히 자신이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한 것을 강조함이 인상적입니다(9, 살후 3:8-9 )

 

그리고 지난 주 7절의 어머니와 짝을 이루는 11절의 아버지가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어버이처럼 성도들을 대해온 바울의 편지는 점점 더 강한 어조로 발전합니다.

마침내 교회가 바울의 전도를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13)

교회 안에 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이 매우 감동적이고 강렬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소제목은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시다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은 온통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강하게 꾸짖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묶어서 비판하신 이 말씀들은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주는 권고요 경고의 말씀입니다.(1)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강조점은 말씀 실천과 말씀 겸손입니다.

생활 전반에서 말씀을 생활화하기, 그리 살면서 나날이 겸손해지기!

벼가 익을수록 고개 숙이듯,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9) 문맥상 랍비같은 율법학자에 대한 존칭으로 보입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종교개혁주일 다음 주일인 오늘은, 바로 종교개혁일(10/31) 이튿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성서일과 말씀들에서 <말씀>에 집중해 보니, 먼저

구약본문의 언약궤와 복음서본문의 경문곽”(5)이 짝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 둘은 차이가 너무 큽니다.

오늘 언약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의 중심에 있었으나

오늘 경문곽은 예수님의 나무라심 중간에 있습니다.

 

오늘 언약궤나 경문곽이나 모두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점은 같으나

언약궤는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을 목격하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것임에 반하여

경문곽은 율법학자 바리새인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자랑거리일 뿐입니다.(마태 23:5)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바울의 편지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13)

 

바울의 전도를 교회가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놀랍고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강단의 상황과 차이가 너무 커서 놀라운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말씀은 지금 어떠합니까?

그 작은 경문곽을 크게 만들어봐야 얼마나 더 크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마태 23:5)

그건 사람들에게 잘나 보이려는, 허무하고 위태롭고 부끄러운 행동일 뿐입니다.

 

세상이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리만 추구하며 안일하게 사는 동안

임계점에 다다른 자연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듯 우리의 요단강을 건너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의 광야생활을 뒤로 하고 결단하기를,

하나님의 언약궤, 시은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교회로 거듭나서

연암의 열하(熱河)처럼 우르릉 쾅쾅 넘쳐흐르는 저 요단강을 향해 한발 내딛기를,(3:15)

그리고 마침내 그 거센 강물이 멈추어 온 세상이 건너는 사이에도

교회는 그 요단강 한 가운데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도할 때입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이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읽히기를,

그리하여 시나브로 내 안에서 그 말씀 살아 움직이시기를 빕니다.(살전 2:13)

그때 지금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움직이고 계시는 이 든든한 감동과 감사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처럼 말씀을 맡은 예언자들이 튼튼하게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 일부가 욕먹고 흔들린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 가족, 내 직장 동료들에게 여호수아 같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정 가운데 튼튼히 우뚝 서 있어야 할 말씀의 일꾼들입니다. 지금 우리의 천국길을 가로막는 요단강은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한국사회의 흘기는 눈입니다. 더 커지고 높아지려고만 하는 한국교회의 욕심입니다. 점점 더 늘어만 가는 내 안의 온갖 탐욕입니다. 이 명량(鳴梁)의 거센 물줄기 같은 요단강 급류를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는 내게 맡겨진 말씀을 언약궤처럼 메고 여럿이 함께 말씀을 메고, 거기 이순신처럼 의연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부끄럽지 않게, 말씀이 부끄러워지지 않게, 말씀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오늘의 요단강 가운데서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은 한국교회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려 하십니다. 세상논리, 경제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세상맛들인 교회, 돈맛에 물든 교인들이 아무리 아우성치며 엉뚱한 길로 가자고 외치더라도, 2,000 규빗(1) 거리를 두고(3:4), 주의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먼저 앞서 갑시다. 너무 앞서간다고 비꼬는 소리 들려와도 그냥 말씀 따라 신나게 행진합시다. 그리고 멈추라하신 그 자리에 멈추어 섭시다. 쓰나미 같이 몰려드는 약육강식(弱肉强食) 아귀 같은 돈의 횡포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말씀이 붙드시는 대로 거기 튼튼하게 서 있읍시다. 내가 그 위태로운 자리 정 가운데서 오직 말씀 하나만 붙들고 튼튼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내 가족은, 내 동료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진정 나의 주인이 누구신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종교개혁의 남은 숙제 - 작은 자 편들기

1517년에 벌여졌던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알맹이는, 종교귀족, 종교재벌들 때문에 허리가 휘는 약자들의 발견입니다. 지금 말씀으로, 믿음으로 다시 선 교회에게 남은 일은 약자의 편에 서는 일입니다. 그게 종교개혁의 핵심, 하나님의 뜻! 그게 바로 하나님 말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편드시는 분이라는 사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목숨처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부터 시작해서, 신약의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약자 중의 약자인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 하신 말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편드시는 하나님, 약한 자 편을 드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강한 자나 약한 자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러나 어느 부모나 다 그러하듯이, 많은 자식들 가운데서도 특히 약한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입니다. 더구나 강한 자식이 약한 자식의 목을 조를 때는... 강한 자식이 제 것 다 먹고도 더 먹으려고 약한 자식의 몫을 빼앗으려 할 때, 정상적인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매를 들고 강한 자식을 때리고 벌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빼앗겨서, 억울해서, 아파서 울고 있는 약한 자식을 달래고,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먹을 것을 줄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강한 자식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때릴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게 편드시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사랑의 원리인 것입니다.

 

*** 가나안 7부족을 쫓아내신 까닭은

이런 맥락에서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가나안 7부족이 강자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자가 아니라, 사람이 강자이고 땅이 약자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 말씀 몇 곳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25:23)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49:6-11) (공동번역) “6. 한갓 돈 많음을 자랑하며 재물을 믿는 그들이거늘, 7. 하느님께 돈을 바친다고 죽을 목숨을 살려주시랴? 8. 목숨 값은 엄청난 것, 그 값을 치르기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 9. 저승길을 가지 않고 영원히 살리라고는 생각도 마라. 10. 지혜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 우둔한 자 모두 죽는 법이다. 두고 가는 재산은 결국 남의 것, 11. 그들이 땅에다가 제 이름 매겼더라도 그들의 영원한 집, 언제나 머물 곳은 무덤뿐이다.” (새번역 11.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둘째, 하나님의 땅을 오염시킬 때, 창조질서를 무너뜨리고, 탐욕으로 오염시킬 때 땅은 그게 어느 민족이건 모두 토해버린다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탐욕은, 돈을 추구하는 과정, 즉 그 당시 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갖 음란한 행위들로 표현되었습니다.

(6:12-13 ) “12.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18:24, 25, 28) “24.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다가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다. 25. 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악한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 28.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 낼 것이다.”

(26:34) “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이 그렇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 곧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비로소 땅은 쉴 것이며, 제 몫의 안식을 누릴 것이다.”

(35:34)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머물러 있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나 주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함께 머물고 있다.”

그리고 오늘 시편 본문말씀입니다. (107:33-34) “주님께서는 강들을 사막으로 만드시며, 물이 솟는 샘들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옥토를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그렇습니다. 오늘 구약본문말씀 가운데 가나안 일곱 부족을 몰아내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땅을 탐욕으로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 탐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땅은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은 땅을 망가뜨리고 그렇게 땅을 망가뜨린 자들은 그것이 원주민이건 이주민이건 간에 누구라도 그 땅에서 쫓아낸다는 것이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뜻입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엉터리 국토개조론을 들먹이며, 하나님의 땅을 제 것인 양 착각하고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깨부순 지 오랩니다. 이것은 아주 상징적이면서도, 아주 실제적인 상황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 결과를 볼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살지 맙시다. 그것을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맙시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해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미 나의 것, 즉 우리의 것입니다! 그것을 내 이름으로 등기하기 위해 몸부림하며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간 이들의 비극을 성경은 아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 이름으로 등기하기 위해 돈 벌려고 애쓰지 말고, 우리 남은 인생을 오직 약자를 편드는 일을 위해 삽시다. 그것이 슬기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내 천국을 이루어가는 길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 욕위대자(欲爲大者) 당위인역(當爲人役)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배재학당 교훈입니다. 마태 20:25-27절 말씀인데, 오늘 본문 마태 23:11절 말씀과도 통합니다. 물론 여기서 크고자 하거든의 큰 사람[大者]이란, 크게 성공한 사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마태복음 20장 본문의 앞뒤 문맥만 보아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보물찾기로 비유한다면, 천국의 열쇠는 절대 높은 자리에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낮고 낮은 자리 저 아래 숨어 있습니다.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낮은 곳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중등부. 성실문화104)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더 좋아하겠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

높은 자리를 좋아했고

인사받기만 좋아했지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셨어

으뜸가는 사람은 섬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어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거라고

 

낮은 자리... 참 귀한 자리

 

 

 

 

[말씀시조] 밤낮으로 노동하며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4)

밤낮으로 노동하며 주의 복음 전할 때에

참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아

그 말씀 여러분 안에 생동하고 있나니

 

 

 

 

[말씀서예] 데살로니가전서 2:12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4)

 

 

 

 

 

[시편노래] 시편 107, 감사하세 감사하세 (이정훈 편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104)

[본문] (시편 107:1-7, 33-37)

[노랫말]

1. 감사하세 감사하세 선하신 우리 주께, 동서남북 사방에서 주님께 감사하세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배고프고 목마를 때, 생명길 열어주신 우리 주께 감사하세

2. 감사하세 감사하세 인자하신 우리 주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하세

사막에서 물주시어 마을 짓고 농사지어, 굶주린 자 살려주신 우리 주께 감사하세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107 (감사하세 감사하세)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201101_시편가 107 감사하세 감사하세.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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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송서(誦書)] 시편 107:1-7, 33-37 (이정훈 다듬. 성실문화104)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 (-자하심이 영원)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4. 그들이 광-야 사막길에서-, --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 그들의 영혼이, -들 안에서 피곤하--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

-이 변하여 마른- 땅이-, (-- 땅이) -게 하시---

 

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 -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 준비하게-- 하시---

 

[다함께]

37. -에 파-(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 소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

 

20201101_시편송서 107;1-7, 33-37.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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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상자박물관 막둥이 경문곽의 노래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가서 낮잠 자던 시절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다 사라진 한밤중,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상자박물관의 크고 작은 상자들이 하나둘 깨어납니다.

휘영청 곱디고운 달빛에 취한

아름다운 음악상자 오르골의 은은한 연주를 들으며 기지개를 켭니다.

 

오르골에 뒤질세라 달빛을 받은 보석상자도

오색빛깔 영롱한 빛으로 주변을 곱게 물들입니다.

오미자가루를 담았던 조미료상자도, 다섯 가지 오향가루를 담았던 향기 상자도

달빛이 어루만지자 은은한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박물관 구석을 지키던 어두침침한 뒤주,

느티나무로 만든 100년 묵은 쌀뒤주조차

음악에 취하고 빛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니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때깔 나는 크고 작은 상자들 반대편에는

유명한 옛 상자를 본떠 만든 모형 상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기 상자는

신비롭고도 컴컴한 기운이 감도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판도라의 상자보다는 덜 유명해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상자를 꼽으라면 역시 언약궤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모세의 십계명 돌판이 담겨있는 언약궤는

어느 교회에서 성경의 설계도대로 지어서 박물관에 기증한 귀하신 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쓰던 손때 묻은 상자들의 전시대와

모형 상자 전시대 사이에 있는 신참 상자들의 전시대에

어제 이사 온 작디작은 상자 하나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모든 고참 상자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을 느끼며 막둥이가 종알거립니다.

 

달빛이 참 따뜻하네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경문곽이예요. 외국에선 테필린이라고도 부르죠.”

 

 

까무잡잡 작디작은 경문곽이 도대체 어디 쓰는 물건인지 궁금하여

상자박물관의 수많은 눈빛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입니다.

 

, 저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 말씀을 담는 상자예요. 구약성경 말씀 가운데서 유명한 출애굽기와 신명기 말씀 네 구절을 담았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줄로 묶어서 이마에 달거나 팔뚝에 매달고 매일 아침 기도하죠.”

 

하나님 말씀이 담겼다는 경문곽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자들의 눈빛이 점점 고와지고

고운 눈빛을 느낀 경문곽은 점점 신이 납니다.

 

눈에 제일 잘 띄는 이마에 저를 다는 까닭은 기억을 위해서예요. 우리를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 기억하기, 우리는 이제 그 무엇의 노예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기억하기! 경문곽을 볼 때마다 너도 나도 기억하기!”

 

 

마음이 뜨거워진 상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수줍은 듯 경문곽이 조용조용 한마디를 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마태복음 23:5) 제가 비록 기억을 위한 상자지만, 크다고 더 잘 보이고 더 잘 기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저를 크고 멋지게 만들어서 스스로 멋있는 척하려는 사람이 많은가 봐요. 저는 멋있게 보이려는 장신구가 아닌데...!”

 

경문곽은 작아야 제 맛이 난다며 빙그레 웃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마에 다는 경문곽보다 더 작아도

그 안에 어떤 말씀이 들었는지 기억하면 된다고 경문곽은 말합니다.

 

우리가 돈과 권력의 노예도 명예의 노예도 아닌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예배하는 완전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유로운 예배자답게 살면서, 작디작은 경문곽처럼

점점 더 작고 낮은 겸손한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고 작은이 경문곽은 말합니다.(마태복음 23:12)

 

박물관 상자들의 따뜻한 눈빛이 경문곽을 어루만져줍니다.

박물관 막둥이 경문곽이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그 노래에 둥실둥실 춤을 춥니다.

 

주님께서는 사막을 연못으로 만드시며, 마른 땅을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드시고, 굶주린 사람들로 거기에 살게 하시어, 그들이 거기에다 사람 사는 성읍을 세우게 하시고, 밭에 씨를 뿌리며 포도원을 일구어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시편 107:35-37)

 

[이정훈 지음. 20201031일 토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