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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왕국절 9주, 창조절 8주-종교개혁주일, 2020년 10월 25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데살로니가전서 2:4)

 

[성서일과 4본문]

(신명기 34:1-12)

1.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4.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서,

6. 모압 땅 벳브올 맞은쪽에 있는 골짜기에 묻혔는데, 오늘날까지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8.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서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

10.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11. 주님께서는 그를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보내셔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을 하게 하셨다.

12.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없다.

 

(시편 90:1-6, 13-17)

1.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2.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3. 주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

4.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5.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

6. 풀은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 버립니다.

13. 주님, 돌아와 주십시오. 언제까지입니까? 주님의 종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평생토록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

16. 주님의 종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 주시고, 그 자손에게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시오.

17. 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2:1-8)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검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6.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

7.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유순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34-46)

3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35.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36.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하였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41.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42.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43.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44.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46. 그러자 아무도 예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 날부터는 그에게 감히 묻는 사람도 없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실마리는 개혁의 토대’(종교개혁주일에)입니다.

 

구약,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신명기 34:6)

시편,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순간의 꿈일 뿐”(시편 90:5)

서신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5)

복음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마태복음 22:37)

 

오늘 요절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4)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신명기 34:1-12 / 시편 90:1-6, 13-17)]

오늘 구약본문의 소제목은 모세의 죽음입니다.

본문에 모세의 발언이 한 줄도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노 예언자의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그것은 광야의 회한보다(20:12) 더 절절합니다.

마지막 선물처럼,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을 통째 보여주시는(1-3) 하나님 사랑에

아마 모세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40년 수고의 결실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후배에게 넘겨주고 떠나는(9),

그리고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흔적도 없이 떠나는(6),

이것이 바로 <하나님 종의 길>이라는 사실을 오늘 모세는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뒷사람들은 모세를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출애굽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모세를 기억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소제목은 덧없는 인생의 피난처이신 주입니다.

이 시는 모세의 기도라고 알려진 탄원시입니다.

모세는 덧없는 인생을 깨달으며 마침내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즉 변함없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느낍니다.

 

사람이 죽음을 예감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면,

죽음은 또 하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도자 모세는 살아 숨 쉬는 동안에도, 주님 은총으로

제대로 살게 해주시기를(17), 즐겁게 살게 해주시기를 구합니다.(14-15)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데살로니가전서 2:1-8 / 마태복음 22:34-46)]

오늘 서신서본문소제목은 데살로니가에서 벌인 바울의 사역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일부)가 의심하는, 그래서 잘못 고발하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방어합니다.(3-5)

 

그것은 <교인들을 달콤한 말로 미혹하여 제 욕심을 채우는 문제>인데,

이것은 당시 그런 지도자들이 종종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반복되는 우리의 문제로서,

교회개혁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만으로도, 바울은 참다운 주의 종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소제목은 가장 큰 계명, 다윗의 자손입니다.

율법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신명기 6:5절과 레위기 19:18절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이 둘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여기 네 목숨을 다하고를 더하심으로(37),

지금 우리의 말씀생활이 한없이 부족함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의 자손에 관한 예수님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교회의 근간인 이 신비로 오늘 한국교회는 여전히 설레는가?

그래서 그 말씀 경천애인(敬天愛人) 잔치에 기쁨이 있는가?

오늘 예수님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상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해설 일부 참조)

 

 

[정리]

코로나19시대에 한국교회는 여러 차례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8.15 광화문집회로 교회가 바이러스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고,

교회의 대면예배 강행으로 돈밖에 모른다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에 주시는 말씀들은 한국교회에게 거울입니다.

모세로부터, 바울로부터,

그리고 예수님 말씀으로부터 큰 교훈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는 모세를 보면서,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에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 쓰는 바울을 보면서,

주님의 종은 재산은커녕 무덤조차 안 남기고

오직 일꾼을 남기는 법이라는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죽음 앞에서 의연한 저 예언자들의 모습을 우리가 닮을 수 있다면,

그렇게 죽음을 직면할 수 있는 영적인 용기가 한국교회에게 있다면,

그렇게 덧없는 인생의 부귀영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개혁은 물 흐르듯 보다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라는 바울의 선언에서(살전 2:6),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살전 2:4)

불철주야 내 마음을 닦고 삶을 닦으라는,

수신제가(修身齊家)함으로 마침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라는

예언자의 소리를 느낍니다.

 

 

 

[나머지]

* 예언자라면

예언자는 예언자(預言者)입니다. ()는 미리라는 뜻과 맡긴다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 국한문 혼용 성경에는 예언자(豫言者)와 예언자(預言者)를 섞어서 썼습니다. 주님 뜻을 맡았으니 주님 행하실 일 미리 아는 것입니다.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 때 말씀을 맡아 전하는 목사를 예언자라고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예배에서 그 말씀 받는 모든 회중이 예언자가 됩니다. 말씀을 받아 맡았으니 예언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 끝에는 반드시 파송의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러 나갈 예언자들을 보내는 의식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 온 교회가 예언자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언자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예언자의 모범입니다. 모세는 어눌해도(출애 4:10) 평생 예언자 사명을 다했습니다. 120세 숨질 때까지 끝내 예언자로서 종신(終身)했습니다. 이런 예언자를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신명기 34:6)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뒷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을 기릴 (눈에 띄는) 무덤을 쓰지 않았다고도 보입니다. 달리말하자면, 땅에서의 명예, 권력, , 인맥, 인연 다 내려놓고 가는 모습입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가야 하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눈에 빛이 나고 기력이 정정한 모세가(7) 미련 없이 떠납니다. 목사라면, 아니 매 주일 예언자가 되는 성도(聖徒)라면, 오늘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서 모세가 떠나는 모습을 오래오래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 예배개혁

루터의 종교개혁은 예배개혁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의 근본을 짚은 말입니다. 교회의 근본이 예배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근본은 무엇일까요? 기독교 예배의 근본은 섬김입니다. 나를 낮추고 너를 높이는, 나를 떼어 네게 먹이는! 그걸 주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1237절의,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종들을 상에 앉히고 시중들 듯, 요한복음 1315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 발 씻어주는 본을 보이시고 나서 마침내 당신의 몸을 떼어 먹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매주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예배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에 비해서 유달리 내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어 바치시고 섬기신 역사를, 그리고 이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독일어로 하나님께서 섬기신다는 뜻을 담은 예배(Gottesdienst)’가 기독교예배의 근본 의미를 잘 드러내줍니다.

종교개혁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시작은 잘 했는데 뒤에 가서 달라져버린,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예배의 근본을 다시 찾아, 과연 어떻게 하면 나를 낮추고 낮출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봐야 예배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빈 무덤 안중근

무덤을 찾을 길 없는 모세처럼(신명기 34:6) 무덤을 지을 수 없는 아펜젤러처럼, 안중근 의사 역시 무덤을 찾을 길 없다고 합니다. 내일 1026일은 마침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가리켜 테러리스트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 의사께서는 거사 직후, 이건 (테러가 아니라) 전쟁 중에 벌어진 총격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의 자격으로 조선을 침탈한 일제와의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를 폐위시키는 등,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15가지 죄목을 나열합니다. 조선을 침탈하고 조선총독부(통감부)를 세워 첫 통감에 올랐던 이토 히로부미, 설상가상 한일합병을 위해 러시아 재무대신과 협상을 하러 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가로막으려 공개 사살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동양평화론의 주창자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평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역설합니다. 미치광이 버스 운전사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다 죽은 본 훼퍼가 떠오릅니다.

안중근이 갇혀 있던 뤼순감옥 간수 치바 도이치는 죽는 날까지 안중근의사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합장을 했으며, 뤼순감옥 형무소장 쿠리하라 사다키치는 안중근의 옥중 저작인 동양평화론완성을 위해서 사형집행 연기를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안중근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지극한 크리스천이요 한결같은 평화주의자라고 고백합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이렇게 주장합니다. 먼저 뤼순을 개방하여 영구 중립지대로 할 것, 3국 평화회의를 개최할 것, 한국, 중국, 일본의 통화(화폐)를 통일하여 정치경제 공동체 만들 것! 그래야 진정한 동아시아 운명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그래야 서구 열강의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지킬 수 있고, 그래야 궁극적인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모세, 민족의 영도자 모세의 무덤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덤을 찾지 못하는 안중근이 평화의 예언자, 평화를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복음 5:9, 공동번역)

(예전에 올린 것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립니다)

 

 

 

 

 

[말씀동시] 사랑했나요? (김윤서 지음. 세움교회 고등부. 성실문화104)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많이 들었고, 많이 보아왔던 말씀

익숙함 속에서 때론 지나쳐 왔던 말씀

 

오늘도...

 

따라가고 있나요?

지나치고 있나요?

 

 

 

 

[말씀시조] 고난과 모욕에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104)

고난과 모욕에도 담대히 전합니다

하나님 기쁨위해 이 복음을 전합니다

어여쁜 데살로니가 사랑스런 교회여

 

 

 

 

[말씀서예] 데살로니가전서 2:8 (오요섭 작품. 성실문화104)

 

 

 

 

 

[시편노래] 시편 90, 대대손손 품어주신 사랑의 주여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성실문화104)

[본문] (시편 90:1-6, 13-17)

[노랫말]

1. 대대손손 품어주신 사랑의 주여, 영원무궁 내 하나님 우리의 주여

티끌처럼 풀잎처럼 시들 인생을, 천년을 하루같이 돌보신 주여

2. 어리석은 백성에게 돌아오소서, 오 주여 영광의 빛 부어주소서

주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이오니, 은총을 그 기쁨을 부어주소서

 

[해설]

시편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찬양사역자이신 전일교회 홍의종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시편 90 (대대손손 품어주신 사랑의 주여) (이정훈 편사, 홍의종 작곡)

 

20201025_시편가 90 사랑의 주님.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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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송서(誦書)] 시편 90:1-6, 13-1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104)

(전래자장가 가락, 즉 천자문독송 가락으로)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 사람---, 티끌로 돌아가-- 하시---,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 그들---, -수처럼- 쓸어가시나이--,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하게- 하사-,

우리를 일-(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 행하신 일을-, ---에게 나타내시며-,

-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다함께]

17. -- -리 하나님의--,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 은총을 우리-에게-),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 --하게 하소---,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견고하--) ∼∥

 

20201025_시편송서 90;1-6,13-17.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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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동화] 무덤지기 석마(石馬)가 용마(龍馬)를 만났을 때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마음이 자라던 시절 이야기예요.

 

왕의 무덤이 아홉 개나 있다는 동구릉(東九陵) 어느 무덤 앞에

동그마니 서 있는 돌로 만든 말 석마(石馬)

상강(霜降)이 지나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다 문득 깨었는데.

 

머리 위 저 멀리서 히히힝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보니

하늘에서 용마(龍馬)가 내려옵니다.

 

형은 어디서 오셨수?”

 

용마가 대답하기를

 

나는 저 건너 아차산 자락 최고봉 용마산(龍馬山)에 살던 용마라네. 조선 첫 임금 태조가 묻혔다는 건원릉의 억새가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잠깐 놀러왔지.”

 

과연 다른 왕 무덤과 달리 태조 이성계의 무덤은

잔디 대신 억새풀이 한창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비를 위해 아들이 고향땅 함경도 영흥(함흥)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풀을 심은 거라오.”

 

 

오랜 세월 무덤을 지켜온 석마의 믿음직한 설명을 들으며

용마는 멀리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우리 장군님은 무덤도 없는데, 여기 동구릉엔 무덤이 참 많구먼.”

 

형을 타고 다니던 장군님은 누구셨는데 무덤도 없단 말이오?”

 

석마의 질문에 용마는 천천히 대답합니다.

 

나는 원래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였으나, 아기장수께서 일찍 숨지신 뒤에 나는 새 주인을 찾아다녔지. 그러다가 백여 년 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적군 장수인 이등박문을 15개 죄목으로 총살한 안중근 장군님을 만나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마음먹었는데, 악한 일제는 중국 뤼순감옥에서 우리 장군님을 처형하고, 심지어 무덤조차 만들어드리지 않는 악행을 저질렀던 거야. 대한을 구할 뿐 아니라 동양과 서양까지 아울러 온누리 평화세상을 만들 위대한 꿈을 가지셨던 그 분을!”

 

눈이 주먹만큼 커진 석마가 부르르 떨며 외칩니다.

 

세상에 저런 못된 놈들이 있다니!”

 

 

흥분한 석마를 진정시키며 용마는 부드럽게 말을 잇습니다.

 

나의 첫 주인 아기장수의 무덤 역시 아무도 모르듯, 세상을 구할 위대한 장군님들은 원래 무덤에 모시기에는 너무 벅찬 분들인 게야. 3,500년 전 이집트 노예들을 탈출시킨 히브리인의 영도자였던 모세 장군님 역시 그 무덤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지 않은가?(신명기 34:6)”

 

건원릉 무덤지기 석마가 끄덕끄덕 고개를 숙입니다.

용마산 용마가 고개를 들며 작별인사를 합니다.

 

건원릉 억새 구경 잘 하였으니 나는 이제 목이나 축이러 가야겠다. 그럼 다음에 또 보세.”

 

건원릉 무덤지기 석마와 헤어져 동구릉을 떠나는 용마가

슬프고도 아름다운 옛 노래를 한수 읊조립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 풀은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 버립니다.”(시편 90:5-6)

 

건원릉 억새풀이 가을바람에 춤을 춥니다.

건원릉 무덤지기 석마의 잔등에 따뜻한 가을볕이 내려앉습니다.

 

[이정훈 지음. 20201024일 토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