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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대림절 3주 (2016년 12월 1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35:1-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2.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3. 너희는 맥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4.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5.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6.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8.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1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시편 146:5-10)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자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

6.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을 위해 공의로 재판하시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감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시켜 주시며

8.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9. 나그네를 지켜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멸망으로 이끄신다.

10. 시온아,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신다! 나의 하나님께서 대대로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야고보서 5:7-10)

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마태복음 11:2-11)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물어 보게 하였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가서,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눈 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며,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7. 이들이 떠나갈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려고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두고 성경에 기록하기를,

10.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닦을 것이다' 하였다.

1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리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주님 오실 희망입니다.

 

구약,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이사야 35:5)

시편, “눈먼 사람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시편 146:8)

서신서,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야고보서 5:8)

복음서, “눈먼 사람이 보고” (마태복음 11:5)

 

오늘 요절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입니다. (야고보서 5:8)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이사야 35:1-10 / 시편 146:5-10)]

오늘 구약본문은 첫째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앞으로 있을 바벨론 포로들의 예루살렘 귀환을 신비롭게 묘사합니다.

둘째 이사야의 내용(40-55)을 압축해서 미리 보여주는 듯합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광야와 사막 길은 바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지름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끝없이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보존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눈먼 사람”(8), “고아와 과부”(9), “굶주린 사람”(7) 같은 약자들을 향하신 관심은

오늘 구약본문과 직통합니다.(이사 35:5-6)

악한 자들을 벌주시는 것도 통합니다.(이사 35:4,8, 시편 146:9)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야고보서 5:7-10 / 마태복음 11:2-11)]

오늘 서신서본문의 알맹이는 인내입니다.

지금 약자들은 수많은 불이익을 조금만 더 견디면 됩니다.

지금의 고난이 아무리 커도 이제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참을 수 있습니다.

 

지금 약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강자들의 핍박일 수도 있고 (본문 앞 4-6)

또는 교우들 사이의 원망일 수도 있습니다.(9)

그 고통이 아무리 커도 오고 계시는 주님만 바라보면 견딜힘이 생깁니다.

주님만 바라던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견딜힘이 생깁니다.(10-11)

 

오늘 복음서본문은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하시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예수님은 예언자 이사야가 곳곳에서 예언한 메시아 약속들이

예수님에 의해 하나하나 성취되어가고 있음을 4-5절에 압축해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지난 주 본문에서 드러난 요한이 기다리는 메시아,

심판자 주님 모습과는 달라 보입니다.(마태 3:7-12)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큰 자비,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그러나 예수님은 마침내 약속하신대로, 요한의 기대대로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 재림 예수의 소식은

지금 고난당하고 있는 약자들에게 매우 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모두 주님을 기다리는 약자들입니다.

(서신서 역시 본문 앞 4절을 보면 그러합니다.)

눈먼 사람으로 대표되는 여러 약자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이사 35:5, 시편 146:8, 마태 11:5)

강포한 자들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들이 느껴집니다.

 

(대기업)과 정보(언론), 공권력(정권)들이 약자들 편에 서지 않고

저희끼리 잘 먹고 잘 살려고 약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시편 146:5)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에 비해 훨씬 더 가까워졌음에도, 주님의 날, 심판의 때를 느끼지 못합니다.

 

역사를 보는 눈, 말씀을 읽는 눈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소리를 들을 귀, 말씀을 외치는 예언자의 소리를 들을 귀가 닫힌 것입니다.

그 닫힌 눈을 열려면, 닫힌 귀를 열려면 내가 가진 힘을 나누고 덜어 더 약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을 열고 지금 내게 오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목숨은 걸지 못해도, 제자라면, 아니 적어도 교인이라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나머지] (3년 전 정리한 것을 요약해서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

오늘 서신서 본문에 묘한 장면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야고 5:9)

앞부분 7절과 8절에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라며 계속 기다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미 문 앞에 서 계시다는 겁니다. 무언가 상당히 긴박하고 중대한 변화의 요청, 그 알맹이는 바로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겁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원망은 왜 생길까요?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온 지체의 실수나 범죄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들을 묵상하면서, 신앙공동체 구성원 사이 원망의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건 잘못된 기대 때문에 생기는 실망과 원망입니다. 여기서 잘못된 기대라고 표현한 까닭은, 기대(期待)는 기대게(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가 기대하는 것 외의 상대방이 가진 장점, 진면목은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가 바라는 것만 보이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리는 이치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실문화 77호 복음서 묵상에 나온 기대의 감옥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합니다.(주원남 목사님) 신앙공동체는 철두철미하게 주님께 기대야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복이 있다.”(시편 146:5)

교회가 어려울수록, 교인 수가 줄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할수록, 교인들 하나하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기대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그게 원망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목숨은 걸지 못해도, 제자(弟子)라면, 아니 적어도 교인(敎人)이라면 주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이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좀 더 먹고 그 말씀 의지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주님께 희망을 거는 길입니다.

 

 

 

 

[말씀동시] 믿어요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초등부 5학년. 성실문화89)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나는 믿어요

예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걸

나는 믿어요

예수님이 위대한 분이라는 것도

나는 믿어요

 

요한...

그 믿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예수님...

요한보다 더 큰 사람 없다고 칭찬하셨어요.

 

 

 

 

[말씀시조] 사막에 꽃이 피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9)

사막에 꽃이 피고 거룩한 길 열리는 날

눈먼 자 눈을 뜨고 귀먹은 자 귀 열린다

눌린 자 두려워마라 주님께서 오시니

 

 

 

 

[말씀한시] 약한 무릎 굳세지며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9)

上帝必至以報仇(상제필지이보구) 하나님이 원수를 복수하러 오신다

河流曠野發花苑(하류광야발화원) 광야에는 강물이 흐르며, 동산에는 꽃이 피어나며

膝弱爲健瞽目明(슬약위건고목명) 약한 무릎은 굳세지고,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리라

荒墟之區將樂歡(황허지구장락환) 폐허한 땅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리라

 

 

 

 

[말씀서예] 이사야 35:6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9)

 

 

 

 

 

[말씀노래] 당신이 그분인지 알고싶어요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89)

[본문] (마태 11:2-11)

 

[노랫말] 당신이 그분인지 알고 싶어요

1. 당신이 그분인지 알고 싶어요, 오실 분 그분인지 알려주세요

감옥에 갇혀서도 알고 싶어요, 요한이 제자시켜 여쭤봅니다

2. 눈먼자 못듣는자 환히 열리고, 저는자 나환자도 회복되노라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듣노라

3. 광야의 요한은 큰 예언자다, 나의길 십자가길 닦을 이로다

온세상 사람중에 큰사람이요, 천국의 사람중엔 작은이로다

 

[해설]

본문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다듬고, 성실문화 동인이며 월드뮤직그룹 공명단원이신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당신이 그분인지 알고 싶어요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2016. 9)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6:5-10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9)

(천자문 독송,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5. 야곱---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 삼으---,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 --들의 -을 여시---,

   여호-------, 비굴한 자들--- 일으키----

   여호-------, --들을 -랑하시---,

9. 여호-------, 나그네들을- -호하시---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다함께]

10. 시온---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

     네-- 하나---, 대대로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대림절 3, 20161211일 주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이사야 35:1-10, 시편 146:5-10, 야고보서 5:7-10, 마태복음 11:2-11

 

 

 

 

 

 

 

 

 

 

 

 

 

 

 

 

 

 

 

 

 

 

 

 

 

 

 

 

 

 

 

 

 

 

 

 

 

 

 

 

 

 

 

 

 

 

 

 

 

 

 

 

 

 

 

 

 

 

 

 

 

가로열쇠

만유의 창조주시며 구원자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른다. 천주교식으로 천주(天主) 즉 하늘의 주인, 즉 하늘님이 변해서 하느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 예전에 하날(하ᄂᆞᆯ)’이라 불렀던 것에 비추어 하늘님보다 하날님, ○○○이 더 오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보는 성경은 하느님으로 뜻을 모았다. ○○○에는 하늘의 느낌 외에도 하나를 뜻하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이사야, 시편)

공평과 정의를 뜻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품성 중 하나이다(18:25, 8:3, 37:23, 30:18). (시편)

여호와께서 구해주신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 낱말인 여호수아(예수아)의 헬라 말 이름이다. 인류의 구세주시며, 거룩한 아드님이신 하나님, 곧 성자(聖子)하나님의 이름이시다.(마태복음)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3미터이며, 잎은 길고 끝이 뾰족하다. 줄기는 단단하고 속이 비어 있으며 발, 삿자리(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따위의 재료로 쓴다. 습지나 물가에 자라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한다. 가을에 솜털이 많은 옅은 잿빛 꽃이 핀다. (이사야, 마태복음)

3명의 대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름 뜻이 야훼께서 구원을 베푸셨다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으며, 왕족이나 귀족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기록한 예언서는 모두 66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1-39장을 그가 지었고, 40-55장과 56-66장은 각각 다른 이들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로열쇠

4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비슷한 뜻으로 새긴다. 마태가 중심이 된 공동체가 경건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므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기 송구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마태복음)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로마서 3:10)라고 할 정도로, 엄격한 의미에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전혀 무죄하거나 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타락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래도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전적 의미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시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이들의 말 가운데는 앞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현재 상황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밝히고, 교회에 주님의 지시를 전달하며 교회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었다.(야고보서, 마태복음)

이스라엘 아셀 지파 땅에 있는 540미터 높이의 산으로서, 석굴이 많고 수목이 울창하며 산 아래 기손강이 흐른다. 샤론 평원과 또 다른 평원 사이에 솟아 있어서, 두 평원과 지중해까지 내려다보이는 경관 좋은 산이다. 보통명사로 넓고 기름진 땅이라는 뜻으로 쓰일 만큼 옛날부터 과수와 수목 등 식물이 잘 자라며 아름답기로 유명했다(35:2; 7:5; 7:14). BC 860년경 우상 숭배자의 대명사 아합 왕 때 북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야는 이 산 정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명과 겨루어 승리함으로써 후대에 이 산은 엘리야의 산이라 불리기도 했다(왕상 18:41-46, 예루살렘 성전이 가장 번창하였던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 숫자가 약 480명 정도였음에 비한다면 기원전 9세기의 바알 종교가 이스라엘 내에서 얼마나 극성을 부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사야)

예배의식상의 외침인데,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야훼의 줄인 꼴이다. (시편)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하얀 소녀와 푸른 고래가 만났어요

 

옛날옛날 한옛날에, 이건 호랑이가 촛불을 들던 시절 이야기예요.

 

심학규 아저씨는 맹인이세요.

예수님 만나 눈을 뜬 바디매오가 되게 부러웠지만

심학규 아저씨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어요.

공양미 3백석도 바치고 무진 애를 썼지만 눈을 뜰 수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심학규 아저씨 눈이 활짝 열린 거예요.

어떻게 눈먼 사람이 눈을 뜨게 되었냐고요?

되게 궁금하죠?

그건 바로바로 그리운 딸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황후가 된 우리 언니 심청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두 눈이 활짝 열려버렸어요.

그런데 심청언니가 어떻게 해서 황후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것도 물에 빠져 죽었던 심청언니가 살아나서 말이죠!

 

맞아요. 우리 심청언니는 바다에, 그것도 아주아주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인당수라는 곳에 풍덩 빠져서 죽었답니다.

그런데 용궁에 가서 그리운 엄마도 만나고 여차저차해서

연꽃을 타고 다시 살아나서 황후님이 되신 거죠.

 

 

그나저나 오늘 우리 엄마 얼굴이 퍽 밝아지셨어요.

대통령 물러나라고 맨날 광화문 광장에 나가시는 바람에

요새 할머니랑 아주 사이가 나쁘셨거든요.

그런데 왜 갑자기 표정이 좋아지신 걸까요?

 

그건 아마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풍선 두 개 때문이신 것 같아요.

하나는 하얀색 풍선인데요, 커다란 평화의 소녀상이고요.

또 하나는 파란색 풍선인데요, 커다란 고래예요.

평화의 소녀상은 잘 아는데, 고래는 도대체 뭐냐고요?

 

그건 김영만 아저씨라는 분이 만든 풍선인데요,

원래 석정현이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감동해서 만드셨대요.

푸른 고래는 등 위에 노란색 종이배도 업고, 304명의 인형도 업고 있대요.

세월호에서 숨지거나 실종된 그 304명이죠.

 

그런데 그 고래가 바다 위를 헤엄치며 오고 있더라내요?

무슨 바다냐고요?

무슨 바다긴요, 광화문 광장 촛불 바다죠!

촛불 바다 위로 촛불파도를 타고 헤엄치는 파란색 고래! 정말 멋지지 않아요?

 

 

하얀색 소녀상 풍선이랑 파란색 고래풍선을 보고 감동하신 엄마가

주일예배 마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오디오 성경을 크게 틀어놓고

오늘 받은 성경말씀을 반복해서 들으십니다.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는 그런 짐승들은 없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이사야 35:8-9)

 

몇 번을 들으면서도 아멘!”을 연창하시던 우리 엄마가

운전하시다가 힐끗 나를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십니다.

 

국희야 정말 멋지지 않니? 오늘 말씀이 딱 그 말씀이잖아?”

 

그 말씀이라니?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씀인데?”

 

! 너 정말 모르겠어? 엄마가 얘기 해줬잖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보여줬잖아? 하얀 소녀상 풍선이랑 푸른 고래 풍선 말이야!”

 

그게 뭐? 그리고 오늘 예배 때 성경말씀이 왜 딱 그 말씀인건데?”

 

잘 들어봐. 그 말씀은 멀리 포로로 잡혀갔던 바벨론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말 꿈같은 말씀이야. 그런데 그들이 지금 지름길로 돌아온다는 거거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지름길이 바로 광야고 사막길이거든! 근데 거기 꽃이 피고 물이 솟고 생명의 기운이 장난 아니거든! 그리고 거기 거룩한 길이 난다는 말씀이거든! 거룩한 길은 하나님의 길이잖아? 이건 하나님이 함께 오신다는 말씀이거든! 이 길은 구원받은 사람 말고, 어리석은 사람이나 악한 사람들, 짐승 같은 사람들은 얼씬도 못한다는 말씀이거든!”

 

, 그런데?”

 

점점 흥분하는 엄마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고 있나 봐요.

엄마는 점점 더 신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국희야, 그런데 말이야,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오늘 예배 때 들은 이 성경말씀이 잘 정리도 안 되고 크게 감동도 안 되었었거든? 그런데 광화문 광장의 촛불파도랑 그 하얀 소녀상이랑 파란 고래풍선을 생각하는 순간 깨달아지는 거 있지!”

 

뭐가? 그게 어째서?”

 

잘 들어봐, 촛불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소녀상이 딱 남양군도에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소녀잖아. 그리고 세월호랑 304명 인형들을 등에 업고 촛불파도를 타고 헤엄치는 푸른 고래는 또 어떻고! 지금 소녀상이랑 푸른 고래가 거룩한 길을 따라 고향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거잖아! 딱 그 모습이잖아!”

 

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바라보았어요.

엄마가 오늘따라 저렇게 표정이 밝아지고 점점 흥분하는 것이 확 이해가 되었어요.

심지어 저까지도 점점 가슴이 쿵쿵 뛰는 거였어요.

그 순간 제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엄마, 그럼 세월호 언니오빠들이 심청언니처럼 다시 살아나는 거네? 심청언니는 연꽃 타고 나왔는데, 세월호는 푸른 고래를 타고 나오는 거네? 그럼 심청언니가 눈먼 아빠 눈 열어준 것처럼, 세월호 언니오빠들도 눈먼 아빠 눈 열어주나?”

 

 

우리 엄마 눈이 동그래지십니다.

곁에서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 우리 국희 생각이 엄마보다 빠른데? 세월호 언니오빠들이 심청언니처럼 정말 눈먼 아빠들 눈 열어주겠다, 그치?

 

그럼 눈먼 아빠가 누구지? 누굴까?”

 

갸웃거리는 나를 보시며 엄마랑 아빠가 빙그레 웃으십니다.

아빠가 따스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국희야, 우리나라에는 지금 눈을 떠야 할 사람들이 참 많단다. 잘못된 관습 때문에, 또는 탐욕 때문에 눈이 먼 사람들이 참 많단다. 그런데 이번 촛불파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 눈이 열리고 있어. 뉴스를 보니까 촛불집회를 보고 감동한 청와대 사람들이 막 양심선언하고 그러잖아. 그게 다 촛불파도를 타고 온 심청언니들이 눈 열어줬기 때문 아니겠니?”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니까 이번에는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맞아. 지금 우리나라 곳곳의 촛불파도가 딱 거룩한 길같아. 그리고 촛불을 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예수님 오실 길을 닦으셨던 세례요한 같아. 이젠 한국교회가 심청언니가 되고 거룩한 길이 될 차례가 아닐까? 한국사회의 갈라진 마음들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 될 수 있게 눈을 열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럼, 할머니 마음이 열리시려면 엄마가 잘 말씀드려야겠네? 심청언니 아빠도 딸 목소리 듣고 눈이 열렸잖아? 그런데 엄마가 무슨 말로 할머니 마음 열어드릴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면 노래로 열어드릴 수는 없을까? 노랫소리도 목소리는 목소리니까. 그치?”

 

엄마아빠가 내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깔깔 큰소리로 웃으십니다.

그리곤 흥얼흥얼 오늘 말씀노래를 반복해서 부르십니다.

나도 엄마아빠를 따라 말씀노래를 흥얼흥얼 읊조립니다.

발그레 둥근 해님도 뉘엿뉘엿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이사야 35:5)

 

[이정훈 지음. 20161211일 주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