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9:36-43)
36. 그런데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가인데,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37. 그 무렵에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겨서 다락방에 두었다.
38.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이다.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그에게로 보내서,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는 일어나서, 심부름꾼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그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그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에 만들어 둔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시신 쪽으로 몸을 돌려서, "다비다여,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서 앉았다.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서,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42. 그 일이 온 욥바에 알려지니,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43. 그리고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욥바에서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묵었다.
(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9-17)
9.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모든 천사들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12.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 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하고 말하였습니다.
13. 그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내가 "장로님, 장로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그밖에 어떤 열도 그들 위에 괴롭게 내려 쬐지 않을 것입니다.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2-30)
22. 예루살렘은 성전 봉헌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24.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26.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목자와 양’입니다.
사도행전, “다비다여 일어나시오”(사도행전 9:40)
시편,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시편 23:2)
서신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요한계시록 7:17)
복음서,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요한복음 10:27)
오늘 요절은,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입니다.(시편 23:1)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9:36-43 / 시편 23)]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주인공은 베드로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께로부터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받은 뒤
오늘 본문에서 즉각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다비다(도르가)의 이름이 양과 통합니다.
(도르가는 사슴보다는 영양 즉, gazelle가젤로 번역합니다. TEB, 유진피터슨 번역 성경 「메시지」 등)
다비다는 살아생전 억세고 활발한 영양처럼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약자를 도왔습니다.
다비다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목자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양이 또 있을까요?
씩씩하게 되살아나는 다비다를 보면서
오늘 시편본문 23:3절이 떠오릅니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시편 23편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장 아름답고 알차게 묘사한 시입니다.
목자였던 다윗이 양이 되어 지은 노래입니다.
그러고 보니 베드로도, 다비다도, 다윗도, 모두 모두
양이면서 목자요, 목자이며 동시에 양,
즉 양의 마음을 잘 아는 목자요, 목자의 마음을 잘 아는 양들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7:9-17 / 요한복음 10:22-30)]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돋보이는 장면은, 수많은 양떼의 찬양을 받고 계신 목자의 모습입니다.
그 많은 양떼의 목숨을 목자께서 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목자가 바로 어린양입니다.(9, 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17)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무리가
온통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장면이 딱 양떼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목자 예수님은 우리의 목숨만 한차례 구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바람도 한기도 막아주시고(15), 뜨거운 열기도 막아주시고(16),
물과 먹을거리를 주시고(16), 위로해주시며 눈물도 닦아주십니다.(17)
그리고 마침내 “생명의 샘물”로 인도해 주십니다.(17)
오늘 복음서 본문은 어린양 예수님의 목자 진면목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목자와 양 사이의 관계입니다.
참목자 예수님께서 양들을 아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양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이 관계는 단순한 소유관계, 주종관계가 아닙니다.
이미 서신서본문을 통해 알고 있듯이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목자!
그리고 부활하신 뒤에도 끝까지 돌보시는 목자 종결자(?) 예수!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28)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29)
[정리]
오늘 본문들은 온통 목자와 양의 이야깁니다.
목자 같은 다비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양떼 같은 과부들,
참 목자 예수님 돌아가실 때 오열하던 여인들의 모습 같습니다.
주님의 종 베드로가 주님의 양 다비다를 살립니다.
베드로의 목자 역할은 무두장이 시몬의 집으로 이어집니다.
정결예법에 따라 부정한 직업인 무두장이임에도(독일성서공회판 성경 해설 참조)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거리낌 없이 여러 날 지냅니다.(43)
베드로는 하루하루 참 목자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시편과 서신서(계시록)에는 참 목자를 향한 양들의 진정한 찬양이 가득합니다.
내 생명은 물론 내 시시콜콜한 살림살이와 눈물까지 챙기시는
내 이름도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나의 목자를 찬양합니다.
오늘 복음서는 내 양들을 향한 참 목자의 참으로 든든한 선포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절대로 죽임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28)
목숨을 던져 구원한 양들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는 말씀에서(30)
또 한편, 양들과 나는 하나다라는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어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그리고 그제 4월 15일 타이타닉호 참사 104주기였습니다.
죽은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주님의 몸 교회라면 예수님처럼, 베드로처럼,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어야 합니다.
목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목자는 양떼와 하나가 된 마음으로 그 고통을 느끼는 법입니다.
[나머지] (3년 전 여기 올린 글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 수전절(修殿節) 예수님 마음
수전절이라는 이름은 신구약 성경 중에, 요한 10:22 단 한곳, 단 한 번 나옵니다. 성전봉헌절이라고도 하고 광명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성탄절과 날짜가 거의 일치합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의 때가 수전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전절을 맞아 솔로몬 행각(주랑)을 거니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추측컨대, 주전 165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지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정결하게 회복되고 재건된 것을 기념하는 이 절기를 맞아, 성전이신 당신의 몸이 모욕당하시고 무너지실 것, 그리고 마침내 다시 정결하고 신비로운 부활의 첫 열매로 세워지시리라는 언약(요한 2:19-21)을 되새기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솔로몬 행각(주랑)에서
요 10:23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사람들과 신론(神論)에 관하여 심하게 갑론을박하는 장면이 나오고,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의 놀라운 표적을 본 백성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나옵니다.(행 3:11, 행 5:12) 솔로몬 행각에는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으며, 주로 종교적인 강의, 대화, 토론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 다비다(도르가)에 대하여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중요한 등장인물인 다비다(도르가)의 이름 뜻이 산양(山羊; 염소, 가젤)입니다. 사슴, 노루라는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 산양(염소)이 더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산양은 험한 바위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모험심도 강하고 적극적이며, 그 젖과 고기 또한 사람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산양의 젖이 우리 몸에 우유보다 더 유익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도르가의 평소 삶이 이웃들에게, 마치 산양처럼, 적극적이고 유익했습니다. 산양의 억센 활동력과 그 활동반경을 연상하며 도르가의 평소 착한 일과 구제사업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도르가만큼이나 적극적인 욥바의 제자들과(38) 과부들(39)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거울에 나와 우리 교회를 비추어 봅니다.
[말씀동시] 목자의 양과 다른 양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교회학교 중등부 2학년. 「성실문화」86호)
목자의 양들은 목자가
자기들을 돌봐줄 것을 믿어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지내네
하지만 다른 양들은
행복한지 기쁜지도 모르고 살아가네
[말씀시조] 나는 내 양을 알고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6호)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들 나를 안다
내 양이 아닌 자는 나를 알지 못하는다
내 양들 영생 얻으니 멸망하지 않으리
[말씀한시]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6호)
耶穌行聖殿(야소행성전) 예수님이 성전에 가셨을 때에
猶太環之言(유태환지언) 유대인이 둘러싸고 큰 소리로 소리치며
爾若爲基督(이약위기독) 그대가 만일 그리스도이어든
可明以曰眞(가명이왈진) 정체를 분명하게 밝혀 주시오
予曾數告汝(여증삭고여) 내가 일찍이 여러 차례 말하지 않았더냐?
吾存亞伯前(오존아백전) 나는 아브라함보다도 더 먼저 있었다
而爾不信我(이이불신아) 그런데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았다
我羊識我本(아양식아본) 내 양은 나의 정체를 알 수 있나니.
[말씀서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6호)
[말씀노래]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86호)
[본문] 요한복음 10:22-30
[노랫말]
1. 한겨울 예루살렘 성전봉헌절, 예수님은 성전을 거니십니다
무너졌다 다시세운 수전절이라, 예수님 생각이 깊어집니다
2. 유대인 여러명이 몰려오더니, 예수님을 둘러싸고 안달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돈지 말해주세요, 속시원히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3. 내가이미 너희에게 말해주었다, 내아버지 이름으로 일도하였다
그러나 너희들은 믿지않는다, 나의말도 나의일도 믿지않는다
4. 너희가 내양이면 믿을 것이다, 내양들은 내음성을 알아듣는다
내음성을 알아듣고 나를따른다, 나는나는 그들에게 영생을준다
5. 아무도 내양들을 뺏지못한다, 내양들을 나는결코 안빼앗긴다
내아버지 양들이다 안빼앗긴다, 만유의주 내아버지 나와하나다.
[해설]
요한복음 10:22-30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종로교회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이 말씀노래는 본문을 다 넣으려 노력했는데, 1절은 행간의 느낌을 담아 조금 부연했다. 즉, 수전절의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성전이신 주님의 몸의 무너짐과 다시 사심에 대한 묵상이다. 수전절 성전을 거니시며 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리고 분위기를 깨며 이어지는 눈 어두운 이들을 상대하시며 무슨 느낌이 드셨을까?
[악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5. 12.)
[시편 송서(誦書)] ( 지음. 「성실문화」86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함께]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4주. 2016년 4월 17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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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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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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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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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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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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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① 성경에서 이 나무는, 번성하는 생명, 승리와 늘 푸름을 상징하는 나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를 외쳤었다. 원래 대추알 같은 열매가 열려서 ‘대추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무인데 성경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요한계시록)
②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입는 옷 이름을 빌린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옷은 말도 타고 태껸 발차기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긴 도포조차 뒤와 양옆이 트여 있는데, 이 옷은 뒤와 옆이 두루 막혀 있어서 옷 이름도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옛 성경이 둘둘 말게 되어 있어서 불리는 이름 ‘두루마리’와 비슷해서 혼돈하기 쉽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요한계시록)
③ 욥바에 살던 예수님의 여제자로서 착한 일과 구제 사업을 많이 한 사람인데, 그의 그리스 식 이름이다. 이름의 뜻은 사슴(노루)이다. “...그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인데...” (사도행전)
④ 욥바에 살던 예수님의 여제자의 원래 이름. 참고로 욥바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55km지점 지중해 안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솔로몬 때 성전 건축에 쓰인 레바논의 백향목은 뗏목으로 이 항구에 운반 되었으며(대하2:16, 에스라3:7), 요나가 이 항구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욘1:3) “그런데 욥바에 ○○○라는 여제자가 있었다.”(사도행전) 또 참고로, 성경에서 예수님의 “여제자”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여기 단 한 곳뿐이다.
⑥ 성경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 열 명이 넘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게바=시몬)가 들어가 묵은 집의 주인인 동명이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욥바에서 ○○이라는 ◎◎◎◎의 집에서 묵었다.”(사도행전)
세로열쇠
① 짐승 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다음사전)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욥바에서 ◎◎이라는 ○○○○의 집에서 묵었다.”(사도행전)
③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의 헬라어(=희랍어=그리스어)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킨다. “... 당신이 ○○○○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요한복음)
④ 욥바에서 동남쪽 약 18km 지점으로 구약에는 ‘롯’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베냐민의 성읍인데, 이름 뜻은 ‘장식’이다. 베드로가 이곳에서 중풍병으로 8년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애니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다. “○○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이다...”(사도행전)
⑤ 지붕 바로 아래에 이층처럼 높게 만든 방(다음사전) “...베드로가 그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그를 ○○○으로 데리고 올라갔다...”(사도행전)
⑥ 다윗의 아내 밧세바가 나은 둘째 아들. 이름 뜻은 ‘평화롭다’는 뜻이다. 지혜의 대명사이며 수많은 잠언과 시가를 지었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건축했지만, 여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이방 신까지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범죄를 저질러 끝이 안 좋은 왕의 대명사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요한복음)
[말씀동화] 양들에게 물어봐
옛날옛날 호랑이가 아무나 껴안고 마구마구 인사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광활한 몽골 들판에 사는 테무친이 아빠와 함께 예배당에 갔어요.
아빠 따라 처음 가는 예배당이 너무 신기하네요?
동그마한 장막 게르가 십자가를 건 성막(聖幕)이 되었습니다.
게르, 아니 성막 앞에는 목사님과 목사님 딸 소구가 서 있습니다.
소구는 소고(小鼓) 즉, 작은 북이라는 뜻이래요.
소구가 처음 온 테무친을 맞이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네요?
“샬롬!”
그러자 테무친은 멋쩍은 듯이 소구를 가만히 껴안습니다.
그 바람에 점점 긴장 타던 소구가 순간 깜짝 놀라 뒤로 펄쩍 물러나네요?
테무친은 예쁜 소녀 소구가 자기 인사에 깜짝 놀라자 두 배나 더 놀랍니다.
동그란 눈이 더 똥그래져 놀란 망아지 눈이 됩니다.
곁에 선 아빠 목사님이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소구야, 왜 그리 놀라니? 처음 본 친구가 무안해 하잖아?”
어느 새 아빠 뒤에 숨은 작은 북 소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쟤가 내 머리카락 냄새를 맡았어요!”
소구의 말에 잔뜩 귀 기울이던 어른들은 그제야 한바탕 껄껄 웃으십니다.
“소구야, 그건 몽골의 전통적인 인사법이란다.”
소구는 아빠 말씀에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립니다.
“무슨 인사가 그래요. 우리 집 몽이처럼...”
몽이는 소구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에요.
소구는 몽이에게 밥 주러 갈 때마다 몽이가 제 주변을 돌며
이리저리 킁킁 냄새 맡는 게 질색입니다.
‘내가 방귀 뀐 걸 어느새 알아채버린 걸까? 역시 개코가 다르군! 저리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몽이가 제 냄새 맡으려 들 때마다 소구는 질색입니다.
아빠가 말씀하십니다.
“소구야. 몽골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양을 키우며 살아왔단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은 우리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게 아빠 생각이야. 그런데 이분들은 양을 치면서 양들에게 배우는 게 있었대요. 그게 바로 상대방의 냄새를 맡는 거지. 양들은 시력이 아주 나빠서 1미터 앞도 간신히 분간할 정도래. 그래서 목자의 목소리에 아주 민감하고, 또 냄새에도 민감하지. 냄새를 맡으면서 주인이 어디 다녀오셨나, 무얼 잡수셨나, 무얼 가지고 오셨나, 이런 걸 다 알아맞히는 거야. 그래서 오래 전부터 몽골사람들은 인사할 때 살짝 상대의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며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친분을 표시했단다.”
“그럼 우리 몽이가 밥 주러 갈 때마다 내 냄새 맡는 이유도 그런 건가요?”
“그래, 딱 그거야. 몽이도 내게 밥을 주시는 내 주인이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나, 누굴 만나셨나, 무얼 잡수셨나, 지금 기분이 어떠실까, 이런 걸 알고 싶어서 네 주변을 돌며 킁킁 냄새를 맡는 거야. 그러니까 그건 네게 대한 믿음과 친근함의 표시니까 앞으론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렴.”
그제야 소구는 이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테무친에게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테무친의 아빠 예수게이 아저씨가 말씀하십니다.
“예쁜 소녀 소구야. 우리 테무친은 착한 아이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거라.”
귓불이 빨개지면서 하얀 이빨이 활짝 드러나도록
소구는 미소를 지으며 예수게이 아저씨께 꾸벅 인사합니다.
예배를 마친 뒤 점심을 먹으면서 소구가 묻습니다.
“테무친, 너 양이랑 친하니?”
테무친은 상기된 얼굴로 대답합니다.
“그럼! 난 우리 동네 아이들 중에서 제일 솜씨 좋은 목동이야.”
“우와, 정말? 대단하다 너. 그럼 너 혹시 시편 23편 아니?”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편이 23편인걸?”
“그래? 그럼 시편 23편 지은 사람 직업이 뭔지도 알아?”
“알지! 왕이잖아, 다윗 왕!”
“그럼 혹시, 다윗 왕이 너처럼 어렸을 때 목동이었다는 것도 아니?”
그 순간 테무친의 눈이 망아지 눈처럼 동그래집니다.
“그게 정말이야? 다윗 왕이 어린 시절 목동이었다고?”
소구는 테무친에게 다윗 왕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다윗 왕의 믿음이 좋은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목동 경험 때문일거라는 말도 합니다.
“나는 시편 23편처럼 멋진 시를 지을 수 있었던 건, 다윗 왕이 목동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양의 마음도 잘 알고 목자의 마음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멋진 시를 지을 수 있었을 거야.”
잠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테무친이 입을 엽니다.
“그러고 보니까 성경말씀에는 목자랑 양의 이야기가 정말 많네? 이제부터 성경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어. 특히 예수님이 목자와 양 이야기를 어떻게 하셨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싶다.”
“그래 테무친.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몽골사람들은 목자들이 많아서 예수님 말씀을 누구보다 더 리얼하게 이해하고 믿음이 깊어질 수 있는 분들이라고 하셨어. 그런데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시편 23:2절에 보면,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그래서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했는데, 양들은 정말 풀이랑 물만 있으면 되나?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뭐 없을까? 예를 들면 어쩌다 초콜릿 같은 거 맛보면 그거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든지, 물 대신에 오렌지 주스 맛을 보면 물보다 그거 먹고 싶어 한다든지? 그리고 4절에 보면,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두려움이 없다는데, 정말 위태로운 길을 가도 지팡이 짚은 목자만 곁에 있으면 아무 두려움 없는 게 맞을까? 어떻게 생각해?”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쉬지 않고 쏟아내는 소구의 질문을
우두커니 듣고 있던 테무친이 천천히 대답합니다.
“글쎄?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건 양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테무친의 엉뚱한 대답에 반짝이던 소구의 눈빛은 까르르 은하수처럼 쏟아집니다.
테무친과 소구가 손에 손을 잡고 테무친네 양떼를 향해 달려갑니다.
양들이 테무친 주변에 몰려들며 냄새를 맡기 시작합니다.
의젓한 목동 테무친이 양들을 쓰다듬어 줍니다.
양들이 목자를 알려고 열심히 냄새 맡는 모습을 보면서 소구가 생각합니다.
‘나는 얼마나 우리 목자 예수님을 알고 있을까? 지금 우리 목자 예수님 마음은 어떠실까? 오늘 나에게 오시는 참 목자 예수님의 냄새는 과연 무엇일까?’
[이정훈 지음. 2016년 4월 17일 주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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