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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부활절 3주 (2016년 4월 10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나를 따르라!”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9:1-6 (7-20))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20. 그런 다음에 그는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

 

(시편 30)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

2. ,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3.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6.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7. ,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8.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9.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10.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11.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12.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님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요한계시록 5:11-14)

11. 나는 또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수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13.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1:1-19)

1. 그 뒤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는데, 그가 나타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8.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알맹이는 회복입니다.

 

사도행전,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사도행전 9:18)

시편, “나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시편 30:3)

서신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요한계시록 5:12)

복음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복음 21:15-17)

 

오늘 요절은, “나를 따르라!”입니다.(요한복음 21:19)

 

 

[사도행전과 시편본문 정리 (사도행전 9:1-6(7-20) / 시편 30)]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주인공은 사울입니다.

그의 시력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납니다.(9, 18)

진리를 못 보던 눈이 아예 아무것도 못 보게 사흘 동안 깜깜해집니다.

그리고 회복되어 진리를 바로 보고 진리의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18-20)

 

오늘 시편본문은 큰 병으로 몸이 망가졌다가 회복된 자의 찬양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찬양을 특히 수전절에 부릅니다.

30편이 왜 수전절 대표 찬송이 되었을까요?

수전절(修殿節)은 크게 망가졌던 성전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요한계시록 5:11-14 / 요한복음 21:1-19)]

오늘 서신서본문은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린양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처럼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로 죽으셨다가 온전히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죽음권세 깨뜨리고 온전히 회복하심으로써, 온 인류를 회복하십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아직 제 길을 찾지 못하던 제자들이 길을 찾아 가는 과정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부활 예수님과 대화중에

그분과의 수많은 기억을 회복하고 마침내 길을 찾게 됩니다.

목자의 길, 십자가의 길 말입니다.

 

 

[정리]

오늘 사도행전과 복음서본문의 공통점은 회복인데,

부활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회복, 사울과 시몬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그 회복의 길은 시원하게 달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고난의 길입니다.

 

부활예수를 만난 사람은 인생길이 회복됩니다.

물질중심의 세상길에서 돌이켜 진리의 길 천국의 길로 회복됩니다.

죽음권세 깨뜨리신 부활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활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을 따라 부활의 증인이 되어갑니다.

 

오늘 베드로는 부활예수님을 만나

나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던 기억을 회복합니다.(누가 5:1-11)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내 밥, 내 권력, 내 명예를 채우는 군침 도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 몸을 먹여야 할 책임을 지는 참으로 무거운 길입니다.

 

내 양떼를 먹여라”(15-17)

나를 따르라!”(19)

 

당신의 몸을 아낌없이 바치신 십자가의 길 말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 권세 무너뜨리신 부활의 길 말입니다.

 

 

[나머지]

* 오늘 본문 가운데 짝을 이루는 구절들

먼저 부르심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행전 9:4)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7)

 

이어서 급식(給食)’입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행전 9:19)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내 양떼를 먹여라”(요한 21:15-17)

 

그리고 고난함께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행전 9:16)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요한 21:19)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급식의 길, ‘고난 함께입니다.

그 길 가라고, 부활예수님께서 오늘도 제 길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 오늘 시 30편은 수전절 찬양시

주전 165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지고 파괴된 성전을 정결하게 재건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광명절, 성전봉헌절)입니다. 오늘 시 30편은 이 수전절에 부르는 시편찬양입니다.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수전절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수전절은 성경전서 중에 요한복음 10장에 딱 한 번 나오는 절기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로마군에게, 유대인들에게 모욕당하시고, 그렇게 온몸이 허물어지고 다시 부활하신,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수전절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바로 이 절기를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오르신 예수님, 성전 솔로몬 행각을 거니신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그 때 무슨 묵상을 하셨을지 묵상합니다. (3년 전, 2013년 여기 올린 묵상 중 발췌)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서의 부활 예수님과 베드로의 새벽 대화에 나오는 사랑의 희랍어 단어가 아가페와 필리아로 구분되는 것에 대해, 구별된 의미로 보는 입장과, 차이 없이 썼던 당시 문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묵상에서는,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시는 대목과, “내 양떼를 먹여라고 하시는 말씀,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 때문에, 아가페의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아가페는 당신의 몸을 먹이로 주신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양떼를 먹이라는 말씀이 아니실까 생각하며 묵상했습니다. (3년 전, 2013년 여기 올린 묵상 중 발췌)

 

**** 기억에 대하여

새벽 바다에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던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와 진행과정은 딱 누가복음 5장을 연상시킵니다. 밤새 허탕만 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던,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잔뜩 잡았던, 이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마지막 만난 베드로는, 오른쪽으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잔뜩 잡으면서 예수님과의 그 첫 만남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그 날 나를 따라오너라...”(1:17) 그 음성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마지막 만난 오늘도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21:19)

12절에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생전 주님과 마지막 나누었던, 며칠 전 그 밥상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내 양을 먹여라하시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께서 스스로 몸을 쪼개 주셨듯이 베드로는 양떼를 먹이기 위해, 주님의 몸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다 던져야 하는 목자의 심정을 실천하게 됩니다. 19절 말씀들이, 특히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17절에서 베드로는, 새벽바닷가에서 3번 연거푸 질문하시는 선생님 때문에 몹시 불안합니다. 그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3연속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어쩌면 그 새벽, 첫 닭 울음과 함께 울었던 그 통곡이 기억났을지도 모릅니다.

(3년 전, 2013년 여기 올린 묵상 중 발췌)

 

 

 

 

[말씀동시] 나를 따라 오라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3학년. 성실문화86)

스러진 줄 알고 버렸던 과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재가 되어 왔을 때

우리는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고기를 낚고 있었다.

살아가기조차 벅찼던 우리에게

준비된 내일을 맞이하는 힘을 주시고

나를 따라 오라하신다

 

 

 

 

[말씀시조] 배고픈 제자들아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6)

배고픈 제자들아 어서와 아침먹자

시몬아 내 사랑아 내 양을 먹이거라

디베랴 새벽밥상에 부활예수 사랑가

 

 

 

 

[말씀한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세주 지음. 성실문화86)

力冠召命入神學(역관소명입신학) 약관에 소명 받고 신학을 공부하고

而立按手投身聖(이립안수투신성) 서른에 안수 받고 목사가 되었는데

禱中主音汝愛我(도중주음여애아) 기도 중 주의 음성, “나를 사랑하느냐?”

卽應投身尋僻窮(즉응투신심벽궁) 그 부름 듣고서 벽촌에서 목회했다

渡越世波奉七處(도월세파봉칠처) 험한 세파 견디며 일곱 교회 섬겼고

才藝富貴棄虛空(재예부귀기허공) 부귀영화 재능도 허공으로 던졌다

獻身生涯加獨子(헌신생애가독자) 청춘도 바치고 아들까지 바치고

一路邁進向主容(일로매진향주용) 오직 한 길 주의 자취 바라보며 따랐다.

(2008. 3. 벽해 오세주 목사 회고시懷古詩)

 

 

 

 

[말씀서예] 시편 30:2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6)

 

 

 

 

 

[말씀노래] 디베랴 새벽바다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성실문화86)

[본문] 요한복음 21:1-19

[노랫말]

1. 디베랴 새벽바다 배고픈 일곱제자, 밤새도록 던진그물 한마리도 못잡았네

   예수님 말씀따라 오른쪽에 던진그물, 큰물고기 백쉰세마리 감당하기 어려워라

2. 디베랴 새벽바다 행복한 일곱제자, 밤새도록 고생하다 부활예수 만났어라

   예수님 말씀따라 떡과고기 받아먹네, 오병이어 잔치처럼 신비롭고 행복해라

3. 디베랴 새벽바다 두근두근 일곱제자, 요한의아들 시몬아 네가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 말씀따라 예수님 사랑해요, 내양떼를 먹여라 두근두근 사랑해라

 

[해설]

요한복음 21:1-19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목사가 4.4조로 다듬었고,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단원인 박승원 선생이 곡을 붙였다.

 

[악보] 디베랴 새벽바다 (이정훈 작사, 박승원 작곡. 2015. 12.)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6)

(*천자문 독송, 즉 전래자장가 풍으로)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 여호--- 내 하나님이---, -가 주-부르짖----,

   나-를 고치셨나이---, (-를 나-를 고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 ---- 성도-들아-, 여호와를-- -송하며-,

   그-의 거-(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 --------, ---- 은혜---,

   나-를 산 같이 굳----, (-게 굳-)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가 근-심하였나이다-,

   (-의 얼굴을 가리-시매-, -가 내-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 여호와여-- 들으-시고-, -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돕는) -- 되소서 하였나이다-

 

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다함께]

12. ---하지 아니-하고-, -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가 주-영원히 감사하∼∥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부활절 3, 2016410(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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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서, 과거 아람(시리아)의 수도였고,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인데, 때때로 이곳이 수도였던 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삼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670미터 높이의 평지에 있다. 주전 64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Km나 떨어져 있었지만,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온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이곳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가다가 부활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다. (사도행전)

갈릴리 어부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다. 그의 아내 역시 예수님을 열성적으로 섬겼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의 아들들과 제자들 가운데서 다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다.” (요한복음)

예수님 제자 가운데 한명이며, 이름 뜻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참고로, 이름 끝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요한복음)

그것이 이루어질지어다!’, ‘그러하도다’, ‘진실로’ ‘확실히라는 뜻의 히브리어. ‘그러자 네 생물은 ○○!”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세로열쇠

기쁨이라는 뜻의 고을로서, 사도 바울의 고향이다. 소아시아 동남부 지역에 있으며, 로마시대에는 유명한 키케로가 총독으로 있을 만큼 중요한 도시였으며, 인구 8만 정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유명한 문화도시였다. (사도행전)

히브리말로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무저갱’(無底坑 ; 악마가 벌을 받아 한 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갇혀 있는 그 밑 닿은 데 없이 깊다는 구렁텅이. 악마의 행위를 따르는 사람도 죽어서 그곳으로 간다 함), ‘음부’, ‘지옥등으로 쓰여 악마의 거처처럼 사용되었다. (시편)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 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다는 뜻이며, 창세기의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의 후손들이 세운 유대나라를 이 이름으로도 부른다. (사도행전)

예수님 당시 갈릴리 호수 서쪽 해안에 있었고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도시다. 주후 20년경에 헤롯 안티파스가 당시 황제(티베리우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황제 이름을 따서 ○○○라는 이름을 붙였고 호수도 ○○○ 호수라 불렀다. 호수가 워낙 커서 바다라고도 불렀다. (요한복음)

예수님 고향 나사렛에서 북쪽 6정도 떨어진 마을이며, 예수님의 첫 표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으로 유명하다.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이름 뜻이 야훼는 은혜로우시다인 다메섹에 살던 예수교인(그리스도인)으로서, 사울(사도바울)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다. 사도행전 5장에 동명이인(同名異人,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이 나온다. (사도행전)

 

 

 

 

[말씀동화] 눈먼 호랑이 싸울이가 눈을 떴어요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가 지팡이 짚고 더듬더듬 다니던 시절 이야기에요.

 

뒷산에 집채만 한 대호 한마리가 살았어요.

대호(大虎)는 무지무지 큰 호랑이라는 뜻이죠.

그 호랑이 이름은 싸울입니다.

싸울이 싸움 솜씨가 대단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싸울이가 천벌을 받았어요.

멀쩡하던 두 눈이 그만 안 보이게 된 겁니다.

왜 천벌을 받았느냐고요?

그야 물론 맨날 싸움질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님께서 그토록 편식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건만

고기만 좋아하는 싸울이 녀석은

약한 산짐승들을 잡아먹으려고 맨날 싸우는 겁니다.

 

하늘님 지금이 어떤 시댄데 여태 샐러드 타령이세요? 지금은 약육강식(弱肉强食)시대란 말이에요. 나처럼 강한 호랑이가 약해빠진 산짐승들 잡아먹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라니까요? 그리고 나는 샐러드 별로에요. 난 스테이크만 좋아요.”

 

이렇게 까불거리며 약한 짐승들 잡아먹는 일에만 몰두하던 어느 날

너무 몰두하느라 싸울이 두 눈이 시뻘겋게 혈안(血眼)이 되더니만

급기야 눈의 실핏줄들이 몽땅 터지면서 눈이 멀어버린 겁니다.

싸울이 눈이 멀자 마자 어디선가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넌 왜 그리 나를 괴롭히느냐?”

 

누구시죠? 그런데 전 사울이 아니라 싸울인데요? 사람, 아니 호랑이 잘못본 거 아닌가요?”

 

잘못보긴 제대로 봤지. 그리고 나는 네가 맨날 괴롭히는 하늘님이야! 너 약한 동물들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느냐? 네가 약한 동물들 잡아먹는 게 나를 잡아먹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느냐?”

 

하늘님 말씀을 듣고 싸울이는 눈만 먼 게 아니라 마음까지 무너져 내립니다.

그래서 싸울이는 하루하루 야위어갑니다.

보다 못한 숲속 동물들이 맛있는 과일을 가져다 줘도 먹지 않고

하루하루 간신히 목숨만 붙어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싸울이 눈이 다시 번쩍 열리네요?

그건 바로 하늘님 은혜로

심청이 아빠 심봉사 눈이 열리게 되는 순간에 벌어진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죠.

 

“(자진모리)만자맹인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담양 새갈무 띠는 소리라 짝 짝 짝 허드니만은 모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잔치에 먼저 와서 참례하고 내려간 봉사들도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 못헌 맹인 중로(中路)에서 눈을 뜨고, 천하맹인이 일시에 눈을 뜨는디(휘모리)가다 뜨고 오다 뜨고 자다 깨다 뜨고 울다 웃다 뜨고 떠보느라고 뜨고 앉어 뜨고 서서 뜨고 무단히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졸다 범득 뜨고 눈을 끔적거리다 뜨고 눈을 비벼보느라고 뜨고저 비금(飛禽)주수(走獸)라도 눈먼 짐승도 일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었구나” [판소리 심청가 중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된 싸울이는 가만히 생각했어요.

 

도대체 내 눈이 어떻게 해서 다시 보이게 된 걸까? 하늘님 말씀 안 들어 눈이 멀었는데, 그렇다면 하늘님께서 다시 뜨게 해주셨나?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싸울이에게

하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앞산 고갯마루로 가거라. 거기 가면 심언(心言)이라 불리는 너럭바위가 있다. 거기 너럭바위 위에서 고기를 끊고 백일기도를 드리거라. 그러면 백 일째 되는 날, 내가 오래 전 네 안에 심어준 네 마음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참 사람처럼 고기를 안 먹고 열매와 나뭇잎을 먹고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도, 약한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니라.”

 

싸울이는 제 두 눈을 낫게 해주신 하늘님 말씀에 처음으로 순종합니다.

고기를 끊고 너럭바위 심언 위에 올라가서 백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고기를 못 먹어서 금단증상이 상당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제 앞다리가 스테이크로 보여 깨물었다니까요?

 

하루 이틀이 지나고, 여드레 아흐레가 지납니다.

싸울이는 이를 악물고 고기 생각을 지우고 기도에 전념합니다.

그렇게 아흔아홉 밤을 지낸 어느 날 밤,

홀쭉해진 싸울이의 귓가에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이젠 먹고살기 위해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에게 영양가 많은 식물을 넘치도록 줄테니 그걸 먹고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렴. 그리고 네 동무들에게도 내 뜻을 널리 알려서 고기 먹으려는 싸움을 멈추고, 내가 주는, 고기보다 더 맛있는 식물을 먹으라고 권하거라

 

배고파 기진맥진했던 싸울이가 정신을 차려보니

너럭바위 끄트머리에 무언가 수북이 쌓여 있었어요.

엉금엉금 기어가서 보니 그건 땅콩이랑 고구마, 그리고 이름 모를 과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죠?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식물에서 묘한 향기가 느껴지네요?

고소하고 향긋한 아주 맛있는 냄새였습니다.

싸울이는 땅콩을 씹고 고구마를 씹어 먹습니다.

 

난생 처음 맛보는 아주 고소하고 달콤한 맛입니다.

과일들은 더 달콤합니다.

신바람이 난 싸울이는 다른 호랑이 친구들에게도

이 신기한 소식을 전하려다 문득 궁금한 게 하나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하늘님, 하늘님은 왜 제 이름 싸울이는 놔두고 자꾸 저를 사울이라고 부르시죠?”

 

하늘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십니다.

 

그게 궁금하냐?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렴.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배타고 그물질 하던 시절에, 네 눈을 뜨게 한 심청이를 아주 많이 닮은 예수라는 사람과 그 제자 시몬, 그리고 너랑 이름도 비슷하고 하는 짓도 비슷한 사울이란 자가 한 나라에 살았단다...”

 

[이정훈 지음. 2016410일 주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