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5:1-12, 17-18)
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2.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뿐입니다.
3.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7.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너에게 이 땅을 주어서 너의 소유가 되게 하려고, 너를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
8. 아브람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와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한 마리씩을 가지고 오너라."
10. 아브람이 이 모든 희생제물을 주님께 가지고 가서, 몸통 가운데를 쪼개어, 서로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반으로 쪼개지 않았다.
11. 솔개들이 희생제물의 위에 내려왔으나, 아브람이 쫓아 버렸다.
12. 해가 질 무렵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가운데, 깊은 어둠과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니, 연기 나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갑자기 나타나서, 쪼개 놓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갔다.
18.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시편 27)
1.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2.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구나.
3.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4.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5. 재난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주님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감추시며, 반석 위에 나를 올려서 높여 주실 것이니,
6. 그 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주님의 장막에서 환성을 올리며 제물을 바치고,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하겠다.
7. 내가 주님을 애타게 부를 때에, 들어 주십시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여 주십시오.
8. 주님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9. 주님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노하지 마십시오. 나를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나를 버리지 마시고,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0.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11.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 원수들이 엿보고 있으니,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12. 그들이 거짓으로 증언하며, 폭력을 휘둘러서 나에게 대항해 오니, 내 목숨을 내 원수의 뜻에 내맡기지 마십시오.
13. 이 세상에 머무는 내 한 생애에, 내가 주님의 은덕을 입을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14.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
(빌립보서 3:17-4:1)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19.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누가복음 13:31-35)
31.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35.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 <말씀기억의 끈>은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구약,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창세기 15:1)
시편,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 27:1)
서신서,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빌립보서 4:1)
복음서,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누가복음 13:33)
오늘 요절은,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입니다.(시편 27:10)
[구약과 시편 (창세기 15:1-12, 17-18 / 시편 27)]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 아브람이 하나님께 처음 들은 말씀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입니다.
방금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에게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아브람은 사병 318명을 이끌고, 큰 적을 무찌르고 조카 롯도 구해온 터였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시는 하나님 말씀에는 여러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방금 전쟁 중에 죽음의 공포를 겪었을 아브람을 위로하시는 느낌이 강합니다.
“나는 너의 방패다”는 말씀에서 아브람을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체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뒤에 12절에서 아브람은 진짜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건 강력한 하나님 임재의 증거입니다.(독일성서공회판성경 해설)
(17절의 “연기”와 “횃불” 역시 그 증거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일방적인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게 여기시는 장면도 나옵니다.(6)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람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이상한 의식입니다.(9-10)
그 약속 성취하지 못하면 내가 이렇게 죽을테니 의심 말라는 뜻입니다.(렘 34:18-19, 독일성서공회판성경 해설)
이것은 성자하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떠오르게 합니다.
약속을 어겨서 죽으심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죽으시는 하나님!
나를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살리시기 위해 스스로 죽으시는 이 하나님 사랑을
아브람은 상상이나 했을까요?
오늘 시편본문의 시인은 원수들을 피해 성전으로 달려갑니다.
거기 날 구원하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임재하심보다 하나님의 부재가 더 두렵습니다.(9)
요사이 자식을 죽이는 부모들이 늘어가는 이 악한 세상에서 이 시가 가슴을 울립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10)
시인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을 굳게 믿으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14)
[서신서와 복음서 (빌립보서 3:17-4:1 / 누가복음 13:31-35)]
오늘 서신서본문의 알맹이는,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입니다.(4:1)
주님 바깥, 즉 땅의 것만 생각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19)
땅의 것만 생각하는 이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19)
물욕(物慾), 맘몬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타게 호소합니다.(18)
영지주의든, 할례주의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알맹이를 놓친 자들은
그 이론이 제아무리 논리적이고 화려해도, 그 끝은 돈과 권력의 노예 신세로 떨어질 뿐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눈물로 호소하는 것을 넘어 이렇게 강력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21)
돌보심을 넘어 우리를 주님처럼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몸”, 돈의 노예로 살던 나를, “영광스러운 몸”,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인생으로 변화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부활의 신비, 부활의 능력, 부활의 기쁨을 살게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말씀이 매우 강렬합니다.
죽음의 공포를 피하지 않으시고, 죽음과 정면으로 맞서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33)
목숨 걸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니 목숨 바쳐 우리를 돌보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마음이 송두리째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34, 35절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독일성서공회판성경 해설)
예언자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마음,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마음,
말씀의 빛으로, 미망에 사로잡힌 우리 눈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정리]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는 영원히 해결할 길 없는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그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님의 부활!
그 부활신앙이 우리를 그 공포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죽음의 공포에게 노예처럼 붙들려 살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집착하고, 자식에게 유산을 상속하려는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
부활신앙이 머리에는 가득하지만, 몸으로 삶으로 내려오는 순간 다 휘발되고 마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늙을수록, 죽음에 가까울수록,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돈과 권력에 집착합니다. 늙어 아무 힘없어 죽는 순간까지 나를 봉양할 사람-자식이 나를 버리지 않도록 하려고 유산을 부여잡고 삽니다. 따져보면 이건 결코 지나친 해석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활신앙을 내 몸에 육화하려면,
오늘 본문말씀들처럼, 목숨 걸고, 아니 목숨 바쳐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 사랑,
그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을 선명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늘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긴 만큼, 돈과 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부활신앙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끝까지 나를 지키고 돌보아주실 분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목숨 바쳐 사랑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머지] (3년 전 블로그에 올렸던 것 중에서 몇 개 간추려 다시 올립니다.)
*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돌보신다.
(상략)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될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아브람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엘리에셀이라고 하는 아브람의 종의 이름은 그 뜻을 번역하면 “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브람이 자기 종을 부를 때 “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는 말입니다. 즉, “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을 자기 종으로 부리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마치 자기 집 강아지의 이름을 자기 상관의 이름으로 정해놓고 불러대는 것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이 하나님을 대한 태도는 하나님은 자기의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는 분, 자기의 말을 듣고 실현해 주는 분, 자기에게 편하게 해주는 분으로 여겼지, 자기가 섬길 분, 자기가 따라야 할 분으로 여기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불러도 왜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사업을 위해, 내 자녀를 위해, 내 소유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매어 달렸는데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는 불만을 가진 분들은 지금 아브람처럼 하나님을 대하시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시오, 역사의 섭리자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바로 우리를 부르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지위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용될 수 있는 처분 가능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이성호. 「새벽에 길어 올린 처음말씀」(2000. 도서출판 성실문화) 53-54)
** 하나님 언약의 무게
아브람은 하나님이 하늘의 별을 보여주실 때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뭇별을 보여주시며 네가 이 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단지 아브람의 자녀의 숫자가 그와 같이 많으리라는 단순비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수많은 별들을 말씀 하나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한 하나의 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태양계는 다시 은하계에 속한 많은 비슷한 별들의 모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은하계는 소우주의 일부이며 이 소우주는 다시 대우주의 일부이며 우리는 이러한 대우주가 수백만 개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 이상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더 큰 세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우주의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많은 별들을 말씀 하나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면 우리는 반드시 이루어 질 줄로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략) (이성호. 「새벽에 길어 올린 처음말씀」(2000. 도서출판 성실문화)
*** 사순절과 대보름
오늘은 예배력으로 사순절 2째 주일이며, 내일 월요일은 한국 전통 달력으로 대보름날입니다. 꽉 차면 기우는 것이 달입니다. 대보름달을 보면서 이제 비울 때가 되었음을 느끼는 슬기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 예쁜 둥근달이 이리 불룩 저리 불뚝, 탐욕으로 울퉁불퉁, 배불뚝해지지 않도록, 이 시대 무한증식, 무한경쟁의 꿈을 버리고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위해 내 욕심을 한 뼘이라도 비우는 대보름날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비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꽉 찬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다시 3년간 자기 비움을 죽기까지 강행하셨습니다. 자기 비움은 용감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이제 새해 첫 보름달이 둥실 떠오릅니다.
[말씀동시] (시냇물교회 지음. 「성실문화」 86호)
그래서 나는 떠난다
이찬영(청년)
바보 같은 자들아
너희는 왜 모를까
왜 알지 못할까
나는 단지 너희를 사랑한 것 뿐인데
나는 단지 너희를 믿은 것 뿐인데
그래서 나는 떠난다.
영원한 그리움 속으로...
예수님 인생
조진호 전도사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더러 도망가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귀신 쫒고 병 고치느라 바쁘다고 전해라!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생명들 살려내느라 바쁘다고 전해라!
너희는 무엇에 그다지도 바쁘더냐.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말씀시조] 헤롯의 죽음권세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6호)
헤롯의 죽음권세 가소롭다 전하거라
여우가 훼방해도 예언자는 길을간다
가련타 저 예루살렘 버림받을 집이여
[말씀한시] 통곡의 벽에서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6호)
耶穌預言將亡都(야소예언장망도) 예수님의 예언(預言) ‘이 성은 장차 망하리라’
羅馬軍隊來侵城(라마군대래침성) 마침내, 로마 군대가 침공해 와서
毁破聖都殘餘壁(훼파성도잔여벽) 성도(聖都)를 훼파하고 벽의 한 귀퉁이만 남겨 놓았다
悔改古史擗踊亡(회개고사벽용망) 무너진 성벽에서 회개하며 가슴치고 발 구른다.
[말씀서예] 시편 27:4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6호)
[말씀노래] 오늘도 내일도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 86호)
[본문] (누가복음 13:31-35)
[노랫말]
1절.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하겠다
2절.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고 영광의 십자가 내 길 가리라
[해설]
헤롯의 암살음모를 전해 들으신 주님은 위축됨이 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노라 말씀하신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떤 죽음을 죽어야 하는지 아는 이들은 삶의 고통이나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다. 주님의 당당한 선언을 1절과 2절로 구성하였다.
[악보] 오늘도 내일도 (주원남 지음, 2015.12.27.)
[시편 송서(誦書)] 시편 2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86호)
(*천자문 독송, 즉 전래 자장가 풍으로)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 하소서---∼
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 내-가 산-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확실-히-- 믿었-도다-)∼
[다함께]
14. 너-는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사순절 2주, 2016년 2월 21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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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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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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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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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가로열쇠
① 오늘날 바그다드 언덕에까지 이르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가의 충적지에 있었던 나라. 주전(B.C.)5천년 전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주전 586년경 이 나라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했다. (창세기)
(충적지 : 흙이나 모래가 물에 흘러 내려와 범람원이나 삼각주 따위의 낮은 지역에 쌓여 생긴 토양의 땅)
② 아브라함의 종. 다마스쿠스 출신이다. 이름 뜻은 ‘하나님은 도우시는 이, 나를 도우시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창세기)
③ “○○의 날이 오면, 주님의 초막 속에 나를 숨겨 주시고” (시편 27)
④ ‘빛, 빛남’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서, 바벨론의 동남 225km 지점. 유프라테스강 서쪽에 있다. 메소포타미아 갈대아(바빌로니아)인의 성읍이다. 아브라함이 한동안 이곳에서 살다가 여호와의 지시를 받고 정처 없이 떠났다. (창세기)
⑤ ‘활발’이라는 뜻을 가진 지역으로서, 과거 아람(시리아)의 수도였고,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인데, 때때로 이곳이 수도였던 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삼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670미터 높이의 평지에 있다. 주전 64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Km나 떨어져 있었지만,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온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이곳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가다가 부활예수님을 만나 회심하여 바울이 되었다. (창세기)
세로열쇠
① 데라의 아들이며 사라의 남편이다. 이름의 뜻은 ‘높은 아버지, 큰 아버지’인데, 나중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창세기)
② ‘구별된 자’라는 뜻을 가진 유대교 종파 이름. 마카베오 전쟁(주전 160여년 경부터 시작) 이후부터 강한 종파로 대두되기 시작해서 주후 70년 경 예루살렘이 망한 뒤 가장 강력한 종파가 되었다. 율법, 십일조, 정결예법 등에 철저했다. 처음에는 평신도 운동이었으나 차차 서기관(율법학자)계층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누가복음 13장)
③ “주님이 내 생명의 ○○○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 27)
④ “가서, 그 ○○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누가복음)
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4개 강 가운데 하나로서, 티그리스강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루었다. 터키 동부 고원에서 발원하여 시리아와 이라크를 가로질러 흐른다. (창세기)
[말씀동화] “여우에게 전하거라.”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가 여우에게 쩔쩔매던 시절 이야기에요.
길 가던 여우가 길고양이를 만났어요.
“야, 이 무례한 고양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어째 조그만 녀석이 어른을 내려다보느냐?”
아무 말 없이 저 위에서 계속 깔아보고 있는 고양이에게 여우가 다시 말합니다.
“아니 저 쥐방울만한 녀석이, 계속 내려다보네?”
고양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입니다.
아무리 못 배웠어도 그렇지, 고양이에게 쥐방울이라고?
계속 무시하는 고양이에게 여우가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야 이놈아, 네가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너는 목숨이 아홉 개라도 되느냐?”
여전히 무시하는 고양이에게 여우는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합니다.
“네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구나. 내가 누구냐 하면 말이다. 나 구미호야. 그래그래 내가 바로 그 유명한 구미호라고.”
고양이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여우의 꼬리를 힐끗 바라봅니다.
“아, 원래는 아홉 개였어. 요새 경기가 하도 안 좋아서 하나만 남기고 다 팔아먹었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여우가 말합니다.
“난 얼마 전 까지 어린왕자의 인생상담자였단다. 그때가 전성기였지. 그 전에는 여우누이 노릇하느라, 사람으로 둔갑해서 부모형제 잡아먹는 짓 때문에 욕 좀 먹은 뒤로 개과천선한 거였거든. 그런데 여우누이 전에는 더 부끄러운 일도 많았단다. 그중에서도 역대급으로 부끄러운 역사에 남을 짓은... 바로 예수님 만났을 때였어. 헤롯이라는 왕 노릇 할 때였는데, 사실 그때가 가장 화려한 나의 전성기였을 뻔했는데, 권력에 취하고 쾌락에 취하는 바람에 그만... 정의로운 예언자 요한의 목을 뎅겅 잘라버렸지. 세례자 요한이 내 정체를 밝히려고 했었거든. 호랑이 눈썹을 어디서 구했는지, 내가 여우라는 걸 알아차렸지 뭐겠어? 아마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런가봐. 하나님 말씀이 호랑이 눈썹보다 몇 백배나 더 환하거든. 사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 중에 참 사람은 별로 없잖아? 예수님도 그러셨지? 누가 참 사람이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 사람이 내 부모형제다, 참 사람이다. 뭐 이런 말씀?”
여우의 말이 점점 흥미로운 지 고양이가 자세를 바로 하고 경청합니다.
물론 아무 말 없이요.
“그런데 예수님이 너무너무 무서운 거야. 세례자 요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 내가 왕인데, 천하의 요한조차 목을 친 어마무시한 왕인데, 이 무시무시한 왕님을 그냥 무시하는 거야. 예수님이. 그래서 내가 소문을 막 퍼뜨렸지. 예수님도 죽일 거라고! 지금 준비 다 끝냈다고.”
고양이 눈이 동그래집니다.
무슨 저런 겁 없는 여우가 다 있나, 이런 표정입니다.
“아 물론, 거짓말이지. 그냥 겁주려고 한 말이었어. 암, 그렇고말고.”
고양이가 안도하는 표정입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이 그러셨다는 거야.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거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이게 무슨 말씀이야? 내가 여우라는 사실을 얼굴도 안 보시고 알아차리신 거 아니겠어? 그야말로 호랑이 눈썹 정도가 아니라, 세례요한의 예언자 포쓰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이신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아니겠어? 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어. 예수님은 내가 여우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해버리신 거야. 고양이 네 녀석이 날 무시하는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를 개 무시, 아니 여우 무시하신 거지.”
고양이는 여우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조금씩 표정이 바뀝니다.
여우가 짠해지나 봅니다.
“그런데 고양아. 예수님이 나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 바로 뒤에 하신 말씀이 참 이상해. 뭐라 그러셨느냐하면,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셨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내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 끝에,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이 말씀이 예수님 돌아가신다는 말씀 같지 않니? 정말 대단해. 무슨 목숨이 아홉 개나 되는 양반도 아닌데,,, 예수님은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걸까?”
고양이는 다시 소 닭보는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봅니다.
구미호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래 그래 나도 알어, 안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거, 나도 다 안다고요! 죽음을 이기신 거잖아. 그래서 난 사람이 부러워. 그냥 사람 말고, 나처럼 짐승이 둔갑한 사람 말고, 참사람이 부러워. 예수님 말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부활의 길을 갈 수 있는거잖아? 누가 그랬더라? 옛 성현의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도 있잖아?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빌 3:21) 고양아, 너도 참 사람이 참 부럽지 않으냐?”
고양이가 처음으로 여우의 말에 반응합니다.
고개를 끄덕 끄덕합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먼 산을 바라보더니 길을 떠납니다.
고양이가 길을 가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립니다.
말인지 노랜지 모를 말을 읊조리며 걸어갑니다.
“여우에게 전하거라.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거라...”
여우는 중얼거리며 떠나가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고양이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말의 장단에 맞추어 으쓱거리며 걸어갑니다.
여우처럼 약은척하는 세상은
오늘 여우에게 전하는 예수님 말씀을 과연 듣고 있을까요?
[이정훈 지음. 2016년 2월 21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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