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서일과 4본문]
(예레미야 1:4-10)
4.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5.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7.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8.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9.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고,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10.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
(시편 71:1-6)
1. 주님,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보호하여 주시고,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2. 주님은 의로우시니, 나를 도우시고, 건져 주십시오. 나에게로 귀를 기울이시고,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3.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은, 내가 어느 때나 찾아가서 숨을 반석이 되어 주시고, 나를 구원하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4. 나의 하나님, 나를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시고, 나를 잔인한 폭력배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5. 주님, 주님 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 어려서부터 나는 주님만을 믿어 왔습니다.
6.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에 나를 받아 주신 분도 바로 주님이셨기에 내가 늘 주님을 찬양합니다.
(고린도전서 13:1-13)
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4:21-30)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 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28.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 <말씀기억의 끈>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사랑으로 그 길 가는 예언자’입니다.
구약,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예레미야 1:8)
시편,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에 나를 받아주신”(시편 71:6)
서신서,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고린도전서 13:8)
복음서,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누가복음 4:26)
오늘 요절은,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입니다.(고전 13:8)
[구약과 시편 (예레미야 1:4-10 / 시편 71:1-6)]
오늘 구약본문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는 스스로 말을 잘 못하고 어리다면서 예언자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레미야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인간의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고스란히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7)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불안정한 삶의 대명사인 예언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유다가 한창 어려웠던 시절, 오랜 세월 예언자 노릇을 합니다.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처럼 매우 고단한 인생을 삽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가 끝까지 이 힘든 예언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 사랑의 기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8)
오늘 시편본문은 전형적인 약자의 탄원시입니다.
이 시편이 구약본문의 응답찬양이어서 그런지 딱 예레미야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약속을 상기시켜드리는 듯합니다.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렘 1:8)
“주님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보호하여 주시고...”(시 71:1)
특히 다음 구절은 주님만 의지하는 느낌이 유독 강합니다.
“주님, 주님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주님, 어려서부터 나는 주님만을 믿어 왔습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에 나를 받아주신 분도 바로 주님이셨기에 내가 늘 주님을 찬양합니다.”(5-6)
참으로 하나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사람의 노래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고린도전서 13 / 누가복음 4:21-30)]
오늘 서신서본문은 3주째 연속되는, 고린도교회의 은사문제를 풀어주는 말씀입니다.
다양한 지체들의 다양한 은사들로 한 몸을 이루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
바로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모든 은사는 사랑에 기초할 때 은사(은총의 선물)로서 목적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본문에 열거된 사랑에 대한 수많은 기준들에 비추어(4-7)
그 중 하나라도 자신 있는 것을 나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내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녀라면,
그 사랑의 씨앗이 분명히 내 안에 어딘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8)라는 말씀이 강렬한 희망을 일으킵니다.
고린도교회는 물론이고, 나날이 추락중인 한국교회를 향하신 귀한 선물,
‘하나님 사랑’ 기억을 활활 불러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구약본문과 짝을 이루어 예언자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구약본문의 주인공인 예레미야는 복음서본문의 주인공 예수님과 많이 닮았습니다.
예수님처럼 예레미야는 독신입니다.(렘 16:1-4)
오늘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 때문에 고향사람들이 살해하려 합니다.(렘 11:21)
예수님처럼 성전 무너질 것 예언하다가 살해 위협을 받습니다.(렘 26:8-9)
그래서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괴로워하며 그 잔을 피하려 합니다.(렘 20:7- )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께서 죽음을 면하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 묘사가 남다릅니다.
“... 그들은 예수를 산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29-30)
공동번역은, 이 마지막 구절 “떠나가셨다”를,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로 번역합니다.
예언자의 길을 가시는 모습입니다.
그 길은 목숨을 거는 길이요, 약자들을 향하는 하나님 사랑의 길입니다.
[정리]
예언자의 길은 하나님 사랑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예언자의 길은 하나님 사랑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 사랑 받고 가는 길, 하나님 사랑 전하며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고향사람들을 향해 퍼부으신 말씀 가운데 인상적인 내용은 이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무시하던 지역인 시돈 땅 사렙다와 시리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시당하던 과부와 나병환자에게 예언자가 다가갔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흐르시는 하나님 사랑!
이게 바로 하나님 예언자 사명의 알맹이입니다.
[말씀동시] '정'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2학년. 「성실문화」85호)
가족하고 고향은 거들떠도 안보는 놈이 이끄는
마찬가지로 집 버리고 떠난 놈들의 무리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알까?
그들의 마음속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정이 있음을!
[말씀시조] 은혜로운 예수말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5호)
은혜로운 예수말씀 나사렛에 임하여도
고향회당 사람들이 예수님 박대하네
나아만과 사렙다 과부 어처구니 없으리
[말씀한시] 백 척 구덩이에서 구원 받았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5호)
印度聖者宣多信(인도성자선다신)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迎接救主家人戾(영접구주가인려) 구주를 영접하자 식구들이 거부했다
投入井窪百丈沈(투입정와백장심) 백 척 구덩이로 던져 넣었는데
忽然天使擧上救(홀연천사거상구) 홀연히 천사가 나타나 들어 올려 구원했다.
[말씀서예] 시편 71:6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5호)
[말씀노래] ‘예수님 말씀에 감탄하고도’ (이정훈 작사, 김광수 곡 ‘엄마야누나야’ 개사. 「성실문화」85호)
[본문] (누가복음 4:21-30)
[노랫말]
1절) 예수님 말씀에 감탄하고도, 나사렛 사람들이 얕잡아보네
참다운 예언자 예수님말씀, 나사렛 고향에서 홀대받는다
2절) 엘리야 엘리사 예언자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얕잡아볼까
큰흉년 큰나병 큰고통중에, 이방인 두사람만 선택받았다
3절)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장군, 예언자 말씀에 순종하였네
갈등과 의심이 솟아났어도, 예언자 말씀에 순종하였네
4절) 예수님 말씀이 나를찌를때, 나사렛 사람들이 모두분노해
예언자 입을막고 없애려해도, 말씀은 거침없이 갈길을간다
[해설]
누가복음 4:21-30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어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작사, 김광수 작곡)가락에 얹었다.
[악보] ‘예수님 말씀에 감탄하고도’ (이정훈 작사, 김광수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71:1-6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5호)
(* 천자문 독송, 즉 전래자장가 풍으로)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다함께)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나--는-- 항--상--, 주-를 (주-를) 찬송하리∼이∿다∼∥)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주현절 4주, 2016년 1월 31일 (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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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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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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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
가로열쇠
①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누가복음 4장)
②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로서 아합왕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던 때에 참된 예배를 회복시켰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었다.(막 9:4) 이름 뜻은 ‘야훼는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 4장)
③ 예언자 엘리야가 큰 가뭄 때 이 마을 한 과부의 집에서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신비로운 일과 죽은 아들을 살려주는 일을 했다. 이 마을은 이방지역으로서 사르밧이라고도 불렸다. 이름 뜻은 ‘부어넣다’이다. (누가복음 4장, 열왕기상 17장)
⑤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로서 갈릴리 북서쪽에 있다. 상업이 번창하여, 유대인 회당도 있고 로마 세관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고향을 떠나 가장 많이 활동하셨고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신 곳이다.(누가복음 4장)
⑥ “주님, 주님 밖에는, 나에게 ○○이 없습니다.”(시편 71)
세로열쇠
① 유대 예언자로서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이 있다.(렘 9:1), 하나님께서 결혼도 하지 말고 자녀도 두지 말라고 하셨다.(렘 16:2)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침없이 전하고 그것 때문에 큰 핍박을 받았다. 이름 뜻은 “야훼께서 높이신다”, 또는 “야훼께서 기초를 놓으신다”(누가복음 4장)
② 북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의 제자로서, 엘리야가 승천할 때, 스승의 영적 능력을 갑절이나 받게 해달라고 청했었고, 스승처럼 죽은 아이를 살리기도 했으며,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이름 뜻은, ‘하나님의 구원’ (누가복음 4장)
④ “내가 ○○○○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린도전서 13장, 새번역)
⑤ 아람(시리아)의 군대장관이다. 나병에 걸렸다가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금으로써 깨끗해지는 장면이 열왕기하 5장에 나온다. 그의 이름은 ‘즐겁다’는 뜻이다.(누가복음 4장)
⑥ “그러므로 믿음, ○○,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장)
[말씀동화] 예언자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길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가 성경말씀 들을 때마다 ‘하트 눈’이 되던 시절 이야기야.
유대나라 어느 존경받는 제사장 집안에서 응애응애 사내아이가 태어났단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마에 한창 여드름이 돋아나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부르셨어.
“예레미야야, 내가 너를 예언자로 세운다. 사실 네가 엄마 뱃속에서 생기기도 전부터 나는 너를 예언자로 선택했단다.”
예레미야는 깜짝 놀라서 얼른 손사래를 쳤겠지?
“아이쿠 하나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이렇게나 어리고 말도 좔좔 유창하지 못한 걸요?”
하나님께서 인자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그 음성에는 귀여운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 같은 따뜻한 사랑이 가득 배어있었지.
“예언자는 말이다,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예언자는 내가 가라는 곳으로 가서 내가 전하라는 말만 고스란히 전하는 그런 사람이란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보호해 줄테니!”
그날부터 예레미야는 일평생을 하나님의 예언자로 살았지.
제사장처럼 편안하고 존경받는 삶이 아닌, 예언자 특유의 매우 불편하고 왕따 당하는 인생이었단다.
혼인도 못하고, 눈물도 많이 흘리고, 얻어맞고, 왕따 당하고,
어디 그뿐인가? 고향사람들에게까지 살해위협을 받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그래도 예레미야는 받은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어.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말씀이 뜨거웠기 때문이지.
예언자란 하나님께서 말씀을 맡긴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 말씀이 너무너무 뜨거워서 그냥 담아두고만 있을 수 없는 거거든!
왜 그런 걸까?
왜긴? 그 말씀 안에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지 알잖아?
때론 얼핏 보면 그 말씀이 무시무시한 저주 같지만,
가만히 새겨보면 그 말씀 안에는 결국은 우리 모두를 살리시려는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어.
하나님께서 목숨 바쳐 우리를 살리시려는 그 뜨거운 사랑 말이야!
예언자 예레미야로부터 600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
마침내 그 뜨거운 사랑의 말씀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셨단다.
갈릴리 예언자, 그 이름 예수!
뭐? 예수님이 예레미야랑 성이 같은 ‘예’씨라고?
예언자는 ‘예’로 시작하니까 모든 예언자들 성이 전부 ‘예’씨 아니냐고?
그게 무슨 말이야, 유대나라는 우리 한국이랑 성씨구조가 다른 걸 몰라?
그런데 가만 보니까, 정말 예레미야랑 예수님이랑 많이 닮았네?
혼인 안 하고 하나님 말씀만 전한 것도 그렇고,(렘 16:1-4)
말씀 전하다가 고향사람들에게 살해위협을 받은 것도 똑같고,(렘 11:21)
성전 무너질 것 예언하다가 살해 위협 받은 것도 똑같고(렘 26:8-9)
그래서 그 길이 너무 괴로워서 그 잔을 피하려 한 것까지 똑같네?(렘 20:7- )
예수님이 갈릴리 예언자로서 처음 말씀선포를 시작하실 무렵
어느 날 고향 나사렛에 가셨단다.
나사렛 회당 안팎에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모였겠지?
갈릴리 가버나움이 예수님 사랑 말씀으로 들썩들썩하다는 소문이 자자했거든.
나사렛은 가버나움보다 600미터나 높은 지대에 있는 달동네인데도
그 소문이 날개를 달고 나사렛 촌구석까지 씽씽 날아온 거지.
그런데 예수님이 고향에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바로 이사야 61장 말씀이었어.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말씀 들은 나사렛 고향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어.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님 음성에서 듣도보도 못한 포스를 느낀 거야.
이분은 예전에 우리가 알던 코흘리개 꼬맹이 예수가 아니었단 말이지.
게다가 예수님이 찾아 읽으신 이 이사야 61장 1, 2절 말씀은 매우 힘차면서도 위태위태한 말씀이었거든!
왜 위태위태하냐고?
그건, 그 당시 갈릴리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코흘리개 여섯 살 무렵 어느 날, 갈릴리에 온통 피바람이 불었단다.
갈릴리의 중심 도시인 세포리스에서
메시야 시대를 선포한 어느 예언자 비슷한 사람이 등장하는 바람에
로마 군인들이 남자란 남자는 모조리 몰살하는 사건이 벌어진 거야.
그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 시대를 선포하는 말씀을 읽으신 거잖아?
게다가 그 말씀 다 읽으신 다음에 예수님이 뭐라 그러셨는지 알아?
이렇게 말씀하셨어.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누구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잖아?
하나님 뜨거운 사랑의 말씀이 오신 거였잖아?
그러니 그 말씀이 지금 너희가 귀로 들은 것처럼,
너희 눈으로 보는 앞에 이렇게 우뚝 서 있노라, 이런 말씀이잖아!
그러니 나사렛 사람들 심정이 어떠했겠어?
쿵덕쿵덕 난리가 났겠지?
로마 군인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있는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61장이라니?
게다가 예수님이 빠뜨리신 구절이 있었어.
원래 이사야 61장 2절은 이렇거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드디어 원수 갚으실 날이 이르렀다는 말씀이잖아!
그러니 나사렛 사람들 가슴은 온통 방망이질치고 있었겠지?
예수님 제자들 중 열혈당원이었던 시몬이랑 가룟유다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아무튼...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그 고향사람들 뜨거워진 심정에 찬물을 쫙 끼얹어 버린 거야.
느닷없이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러시더니
예언자의 대명사인 엘리야랑 엘리사의 고사까지 들먹이시는 거야.
그 고사, 그 옛날이야기가 뭐냐고?
뭐긴, 사렙다 과부랑 시리아 나아만 장군 이야기지.
예수님 말씀의 결론은, 천하의 예언자 엘리야랑 그 제자 엘리사도 한결같이
예언자는 위기의 상황에서 제 고향땅 사람들 먼저 돌아보지 않고
엄한 이방인들만 돌보는 법이라는 말씀이었어.
제 친자식이 죽어가는 마당에, 제 자식 돌아보지 않고, 남의 자식 살리러 돌아다니는 부모라?
아무튼 그 말씀 마치자마자 나사렛 사람들이 난리가 났겠지?
급기야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죽이려는 찰라에,
예수님은 용감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르고 떠나, 고향을 완전히 등지고 마신 거야.
예수님이 너무 하신 거 아니냐고?
아무리 엘리야랑 엘리사가 그랬어도 그렇지,
예수님 코흘리개 시절 환히 아는 고향사람들이 좀 깔보는 기색이 있더라도
잠깐 참으시고 말씀을 차근차근 전하시고, 표적도 보이시고 그러면 금세 예수님 충신들이 되었을 거 아니냐고?
글쎄? 이사야 61장, 그 힘찬 말씀을 선포하시자마자
왜 예수님이 엘리야랑 엘리사 고사를 말씀하신 걸까?
언뜻 두 가지가 떠오르네?
먼저 예언자를 통하신 하나님 사랑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게 아닐까?
사렙다가 속한 시돈이나, 대국이었던 시리아나
유대나라의 시온주의사상으로는 천한 이방나라였겠지?
게다가 천한 과부와 죄의 가장 큰 상징인 나병환자라...!
하나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씀이야.
예언자는 제 나라, 제 고향, 제 가족보다 먼저
이방나라,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가서 사랑말씀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거야.
또 하나, 예수님은 배수의 진을 치신 거 아닐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 투쟁이 벌어질텐데...
무섭고 두려운 그 전쟁 중에 제일 먼저 고향이 떠오를 거잖아?
언제라도 나를 지지해줄 가족들, 형제들, 친족들, 친구들이 있는 곳, 내 고향 나사렛 말이야!
예수님은 그렇게 되돌아갈 다리를 끊어버리신 거야.
하나님 사랑의 말씀을 완성 할 그 십자가 길을 끝까지 가시기 위하여!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밀쳐 떨어뜨리려는 낭떠러지에서도
당신이 가야할 그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만 보고 곧바로 앞으로 나가신 거야.
예언자는 아무데서나 죽지 않는다. 에언자는 오늘도 이렇게 제 길을 가는 법이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든 길이어도, 예언자는 가족을, 고향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 의지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 안에는 하나님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때로부터 2천년이 흐른 오늘
우리 한국에는 예수님 같은 예언자,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가 있을까?
없나? 아니면 있나? 있으면 어디 있나? 도대체 어디에 꽁꽁 숨어 있나?
고린도전서 13장 8절 말씀이야.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새번역)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 사랑은 변함없으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담뿍 품은 사람,
그 사랑말씀 담뿍 품은 예언자 역시 없어지지 않는 법!
그렇다면 그 예언자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그건 바로 예수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곳,
주님의 몸 교회가 아닐까?
오늘도 한데 모여 사랑의 말씀, 하나님 말씀을 담뿍 받는 사람들!
그렇게 말씀을 받아, 말씀을 맡아, 예언자가 된 사람들!
그래서 매주일 파송을 받아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
그래 맞아, 너희가 바로 예언자야.
예레미야처럼, 예수님처럼 낮은 곳을 향해야 하는,
내 가족보다 남의 가족의 아픔을 먼저 감지해내는 사람!
가족에게조차 왕따 당하고 옥에 갇히는 거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이 흐르는 길, 그 길 따라 오늘도 거침없이 그길 가는 사람!
너희가 바로 그 예언자야!
[이정훈 지음. 2016년 1월 31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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