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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주현절 3주(2016년 1월 2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

 

[성서일과 4본문]

(느헤미야 8:1-3, 5-6, 8-10)

1.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3. 그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4. 학자 에스라는 임시로 만든 높은 나무 단 위에 섰다. 그 오른쪽으로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서고, 왼쪽으로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다.)

5. 학자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서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그가 책 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스라가 책을 펴면, 백성들은 모두 일어섰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모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경배하였다.

(7.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는, 백성들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율법을 설명하여 주었다.)

8. 하나님의 율법책이 낭독될 때에, 그들이 통역을 하고 뜻을 밝혀 설명하여 주었으므로, 백성은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10.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돌아들 가십시오. 살진 짐승들을 잡아 푸짐하게 차려서, 먹고 마시도록 하십시오. 아무것도 차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먹을 몫을 보내 주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의 거룩한 날입니다.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기는 법이니, 슬퍼하지들 마십시오.”

 

(시편 19)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2.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3.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해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니,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

7.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8.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10.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

11.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이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2:12-31a)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14. 몸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습니까?

18. 그런데 실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

19. 전체가 하나의 지체로 되어 있다고 하면, 몸은 어디에 있습니까?

20.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 없습니다.

22. 그뿐만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

24. 그러나 아름다운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더 풍성한 명예를 주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

28.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몇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 다음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요,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요, 관리하는 사람이요,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29. 그러니, 모두가 사도이겠습니까? 모두가 예언자이겠습니까? 모두가 교사이겠습니까? 모두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30. 모두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모두가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모두가 통역하는 사람이겠습니까?

31. 그러나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4:14-21)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 <말씀기억의 끈>기쁨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통형식은 말씀선포이고, 그 내용은 ‘(해방의)기쁨입니다.

 

구약,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 8:10, 개역개정)

시편,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시편 19:8)

서신서,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고전 12:28)

복음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누가 4:18)

 

오늘 요절은,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입니다. (시편 19:8)

 

 

[구약과 시편 (느헤미야 8:1-3,5-6,8-10 / 시편 19)]

오늘 구약본문은 느헤미야가 바사에서 귀환하여 성벽재건을 마친 후의 상황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대가를 포로생활을 통해 뼈저리게 겪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 율법책 읽어줄 것을 요청합니다.(1)

 

학자 에스라가 읽는 율법책은 백성이 못 알아듣는 히브리어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에스라의 독경소리와 레위인들의 통역에 잔뜩 귀 기울입니다.(8)

새벽부터 정오까지(3) 그 긴 시간동안 앉지도 않고 기립해서 경청합니다.(5)

사람이 읽어주는 말씀이어도, 하나님 말씀 경청하는 자세가 지극정성입니다.

 

마침내 말씀을 들으며 백성이 모두 웁니다.(9)

처음 듣는 말씀에 감격하고, 그 말씀과 동떨어져 살아온 모습에 송구했을 것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그리고 레위사람들이 울지 말라 타이릅니다.(9)

특히 총독 느헤미야는 울지 말고 기뻐하라고 역설합니다.(10)

하나님 말씀, 하나님 율법의 핵심은, 두려움도 슬픔도 아닌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바로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8)

시편 19장은 119장처럼 시종일관 말씀으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 위대하심을, 그 달콤함과 기쁨을 노래합니다.

 

그 말씀(계명, 증거, 법규, 교훈)이 기쁜 이유는

말씀으로, 끔찍한 죄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13)

그뿐 아니라 그 말씀 순종하면 푸짐한 상까지 주시기 때문입니다.(11)

 

말씀을 지키면 내가 슬기로워지고 바르고 온전해지고 죄에서 해방되기까지 하는데,

즉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말씀을 지키는 것인데 상까지 주시다니,

아무리 계산해 봐도... 우리 주님은 셈이 너무 흐리신 걸까요?

 

이건 셈이 아니라, 은총입니다.

말씀은 족쇄가 아니라 사랑이고 은총이십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고린도전서 12:12-31a / 누가복음 2:1-11)]

오늘 서신서본문의 주제는 지난주에 이어 고린도교회의 은사문제입니다.

지체는 여럿이고 몸은 하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각각 역할과 격이 다른 지체들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골고루 짜 맞추셔서”(24) 균형과 조화를 이루십니다.

 

여러 은사들 가운데 첫손 꼽히는 것,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예언자요, 셋째는 교사요”(28)

즉 여럿이 함께 한 몸을 이루는 중심 역시 말씀입니다.(28, 6:2)

 

오늘 복음서본문은 회중 앞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점에서 오늘 구약본문과 짝을 이룹니다.

에스라의 말씀선포에 온 백성이 기립하고 열광했듯이

예수님의 말씀선포에 온 갈릴리 유대 사람들이 영광 돌립니다.(15)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장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21)

 

이사야 예언이 가리키는 바로 그분이

바로 오늘 모두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앞에 등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등장이, 예수님 자체가 바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18)

 

 

[정리]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저들을 더 절망시키는 게 아니라,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주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약자들이 거기서 힘을, 희망을, 기쁨을 얻지 못한다면,

그건 교회가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예언자, 교사, 전도자들은 늘 이 사실을 기억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말씀 전하는 자로서 내가 얼마나 말씀 앞에 정직한지를!

 

말씀 자체가 정직하다고 오늘 시편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19:8)

그 말씀 전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 역시 정직해야,

그 말씀 전하는 교회가 정직해야

그 말씀, 그 말씀의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입니다.

 

 

[나머지] (3년 전 예배준비 노트에서 발췌)

* 에스라와 요시야

오늘 구약본문 느헤미야 8장을 읽으면서 요시야 왕 이야기가 떠오릅니다.(왕하 23, 대하 34)

 

감추어져 있던 두루마리를 찾아 서기관 사반이 봉독하는 말씀을 듣고 통곡했던 요시야로부터 180년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자 에스라가 봉독하는 말씀을 듣고 웁니다.

성전을 보수하며 발견한 두루마리였고, 성벽을 재건하고 재발견한(간청한) 두루마리였습니다.

서기관 사반도 큰 소리로 읽었고(왕하 22:10c), 서기관 에스라도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3b)

요시야도 말씀을 들은 뒤에 처음으로 절기를 지켰고(유월절, 왕하 23:21-23), 에스라의 백성들도 말씀을 들은 뒤에 처음으로 절기를 지켰습니다.(초막절, 느헤 8:13-18)

 

** 에스라와 초막절

오늘 구약 본문의 자리가 바로 초막절 직전이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초막절 준수와 더불어 일러준 모세의 육성으로부터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 31:10-13) 10. 모세가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일곱 해가 끝날 때마다, 곧 빚을 면제해 주는 해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뵈려고 그분이 택하신 곳으로 나오면, 당신들은 이 율법을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읽어서, 그들의 귀에 들려주십시오. 12. 당신들은 이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성 안에서 당신들과 같이 사는 외국 사람도 불러모아서, 그들이 율법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13. 당신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차지하는 땅에 살게 될 때에, 이 율법을 알지 못하는 당신들의 자손도 듣고 배워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십시오."

 

그 당시 사람취급 받지 못하던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외국인까지 말씀을 듣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자리 역시 성인 남자만이 아니라, 여성과 (말귀를 알아들을만한) 아이들까지 모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씀을 못 알아듣고 지루해 하지는 않을까요? 사실 아이들이 더 잘 알아듣습니다. 머리로는, 논리적 이해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말씀을 몸으로 영으로 흡수합니다. 그건 아이들 자신도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말씀은 아이들에게 더 잘 스며듭니다.

 

3.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편 19)

 

그 말씀 아이들 가운데 구석구석까지 스며드십니다. 그 말씀 아이들을 참 사랑하십니다.

 

 

 

 

[말씀동시] 주님의 영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중등부 1학년. 성실문화85)

하나님이 예수님께 영을 내리시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과 은혜를 주신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나중에 깨닫고 후회하지 않을까?

 

 

 

 

[말씀시조] 성령의 능력 입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5)

성령의 능력 입은 갈릴리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네

보아라 이 성경말씀 오늘여기 이루다

 

 

 

 

[말씀한시]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5)

心言力說救主能(심언력설구주능) 심언 목사님이 구주의 능력을 역설하던 때

胎生盲人求治癭(태생맹인구치영) 날 때부터 눈 먼 사람 신유(神癒)를 간구했다

一言卽時瞽得明(일언즉시고득명) 한 말씀 선언하니 즉시로 눈을 떴다

耶穌古今不變應(야소고금불변응)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다.

 

 

 

 

[말씀서예] 시편 19:4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5)

 

 

 

 

 

 

[말씀노래] 주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노라(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85)

[본문] (누가복음 4:14-21)

 

[노랫말]

1) 사십일 금식하신 나사렛 예수, 성령의 능력입고 돌아오시니

       갈릴리 두루두루 소문이 나고, 회당마다 가르치며 영광받으시네

2) 모두들 존경하는 나사렛 예수,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하시네

       이사야 두루마리 받으신 예수, 한말씀 찾으셔서 읽어주시네

3) 주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노라, 주의 기름 나에게 부으셨노라

       약자들의 기쁜 소식 선포하노라, 이 말씀 오늘 여기 이루었노라

 

[해설]

누가복음 4:14-21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었고, 종로교회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주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노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시편 송서(誦書)] 시편 1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5)

(* 천자문 독송, 즉 전래자장가 풍으로)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는 그-의 신방에서--, (--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 -에서 나와---, -- -까지 운행함----,

   그-의 열기-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 곧 많-은 순금보다--, -- 사모할 것이---,

     꿀-과 송이꿀 (송이꿀)보다-, (송이꿀 보다) 더 달도---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다함께)

14. -의 반-석이시---, -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 열납되기를- 원하나∼∥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주현절 3, 2016124(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가로열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 꾸며 줍니다.” (고린도전서 12)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 기쁨을 안겨 주고” (시편 19)

이스라엘 북쪽의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해발 375미터의 산꼭대기 마을로서 예수님이 유년기를 보내신 고향이다. 그때는 인구 200명도 안 되는 벽촌이었으나, 지금은 6만여 명이나 산다고 한다. 예수님 고향이어서인지, 이스라엘임에도 지금도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무슬림 69%에 기독교인 약 30%)

7일로 된 한주의 마지막 날. 노동을 멈추고 쉬는 날이라는 뜻으로서 유대인들의 예배 날이다.

여호와께서 위로하셨다는 뜻의 이름으로, 바사(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왕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다. 주전 445년 유대 총독에 임명되어 예루살렘에 와서 52일 만에 성벽재건을 이룬 신앙심 깊은 애국자다.

 

세로열쇠

그것이 이루어질지어다!’, ‘그러하도다’, ‘진실로’ ‘확실히라는 뜻의 히브리어. (느헤미야 8)

이방 땅에서 포로로 태어났으나 율법에 밝은 애국자로 자란 그는 레위 족속 아론의 16대손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뜻의 아사랴의 줄인 꼴이다. 바사(페르시아)왕의 허락을 받고 2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혼란스런 동포들의 삶에 말씀(율법)의 질서가 잡히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성소에서 제사를 맡아 주관하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사람으로서, 레위 족속 가운데서도 아론의 후손들만 이 일을 맡아 했다. 24패로 나뉘어 차례대로 일했다. 나머지 레위인들은 성소의 다른 일들을 맡아서 했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 ○○을 전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4)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다는 뜻의 이름으로, 3명의 대예언자 중 한 사람이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주전 722년을 전후로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활동했으며, 왕족이나 귀족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 4)

 

 

 

 

[말씀동화] 비빔밥 대소동

 

옛날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비빔밥 먹던 시절 이야기에요.

 

전라북도 전주는 소문난 맛 고을입니다.

산이 좋아 산나물도 많고

들이 넓어 쌀도 기름지고 온갖 곡식이 풍부하죠,

게다가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해산물까지 풍부했거든요.

 

전주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맛집이 있었어요.

조상대대로 물려온 맛의 비결로 반짝반짝한 집이었죠.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이 집 문턱은 늘 손님들 발길로 반들반들했답니다.

 

그런데 이 맛집 주인장에게 한 가지 큰 근심거리가 있었어요.

그건 바로 비빔밥 때문이었죠.

전주 하면 비빔밥이고, 비빔밥 하면 전주인데

주인장이 부모님으로부터 주방을 물려받은 뒤로 이집 비빔밥이 이상해진 겁니다.

 

손님들도 비빔밥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고

그 바람에 단골손님들도 하나 둘 비빔밥 잘하는 집으로 슬슬 떠나가네요?

도대체 이 집 비빔밥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요?

 

문제는 단 하나, 비빔밥이 잘 비벼지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밥이 문제인가 하고, 전주쌀, 김제쌀, 심지어 여주이천쌀에다가 철원쌀까지 다 써보았죠.

밥도 물로도 지어보고, 고기국물로도 지어보고, 우유로도 지어보고 별별 국물로 다 지어보았겠죠?

아니면 기름이 문제인가 하고, 들기름에 참기름에 갖은 기름을 다 써보았겠죠?

 

그것도 아니면 고추장이 문제인가 하고, 순창고추장에 찹쌀고추장에 볶음고추장에

매실고추장에 마늘고추장에 초고추장에 약고추장까지 별별 고추장을 다 써보았겠죠?

나중엔 비비는 도구가 문제인가 하고

숟가락에 젓가락에 주걱에 별별 것으로 다 비벼보았겠죠?

 

그러나 다 소용없었어요. 안 비벼져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아무리 비벼도 채소들끼리 섞이지 않고,

심지어 고추장까지 섞이지 않고 맨숭맨숭하기만 합니다.

 

드디어 주인장이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습니다.

그러자 효성 지극한 외동딸이 두 손 모아 백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하늘님 제발 저희 아버지 건강 되찾게 해주세요. 제발 저희집 비빔밥 예전처럼 잘 비벼지게 해주세요!”

 

하루는 효녀 외동딸이 기도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납니다.

 

네 정성이 지극하여 하늘님께서 나를 보내셨노라. 너희 집 비빔밥이 잘 비벼지지 않는 이유는 채소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러한데, 채소 중에서도 콩나물이랑 홍당무가 문제니라. 우리 산에서 나는 산나물들은 다들 산의 정기를 받아서 건강한데, 그놈의 콩나물이랑 홍당무는 산의 정기를 받지 못해서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니라.”

 

산신령님 콩나물과 홍당무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요?”

 

콩나물은 지나치게 갑()질을 하고, 홍당무는 지나치게 병()질을 하니 문제일수밖에!”

 

산신령의 말을 듣자마자 주방으로 달려간 효녀는 얼른 콩나물과 홍당무를 만납니다.

삐죽 자란 콩나물이 노란 대가리를 바짝 세우고 건들거리며 말합니다.

 

여기선 내가 갑()이야. , 갑이고말고! 나 없으면 비빔밥 절대 안 돼. 암 안 되고말고! 이렇게 멋지고 맛지고 영양가 많은 내가 저런 천한 것들이랑 한데 섞이는 거 나 정말 싫어. 나 이제 비빔밥 그만할래. 그냥 콩나물해장국만 할래.”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진 홍당무가 말합니다.

 

어떡하지? 나 때문인가? 무도 아니고 토마토도 아니고, 고추처럼 맵지도 않고 복숭아처럼 달지도 않고,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어떡하지? 콩나물이 빠지면 안 되는데, 어쩌면 좋지?”

 

그러자 곁에 있는 채소들까지 들썩입니다.

무생채, 돈나물, 애호박, 느타리버섯, 고사리,

시금치, 상추, 오이채, 가지채에 미나리까지 들썩입니다.

 

, 이놈의 콩나물이랑 홍당무야. 너희 갑질, 병질 이젠 더 이상 못참겠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섞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비빔밥이냐? 너희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엉?”

 

채소들의 아우성에 번쩍 잠이 깬 효녀는 다시 두 손 모아 하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늘님 고맙습니다. 제게 비빔밥이 비벼지지 않는 원인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저희 집 콩나물이랑 홍당무가 서로 잘 섞일 수 있도록, 잘 비벼질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날부터 효녀는 몸져누우신 아빠를 대신해서 손을 깨끗이 씻고 주방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콩나물시루에 물을 줄때마다 기도를 하고 성경말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합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을 골라서 반복해서 읽습니다.

그리고 밭에서 홍당무 밭에 물을 주고 홍당무를 뽑아 씻고 채를 썰 때마다 말씀노래를 부릅니다.

말씀노래 중에서도 특히 고린도전서 12장과 13장 말씀노래를 부릅니다.

 

“...발이 말하기를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발이 몸에 속하지 않은 건 아니라네. 또 귀가 말하기를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한다고 해서 귀가 몸에 속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네. 온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듣겠나? 또 온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겠나? 그런데 실은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라네∼♬ 그러므로 눈이 손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가 없고, 머리가 발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게 쓸 데가 없다할 수 없다네그뿐 아니라, 몸의 지체 가운데서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하다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주신다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신다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하는 법,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는 법∼♬....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러자 콩나물이 변하기 시작하네요?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건들거리던 콩나물이 점점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숙입니다.

새빨갛게 경직되었던 홍당무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집니다.

 

사랑과 조화의 말씀노래를 듣게 되자 다른 채소들도 덩달아 부드러워집니다.

콩나물은 물론 홍당무랑 모든 채소들이 말씀노래를 들으며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한 몸 비빔밥의 비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맛이 다른 채소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영양가가 다른 채소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수많은 색깔이, 다양한 식감이 다른 채소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랑 다른 채소들이 섞이고 비벼지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없었던 맛과 영양이 환상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환상적인 완전체 비빔밥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과 조화의 말씀노래를 들은 채소들이 깨닫고 나서부터

효녀네 비빔밥이 명성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진땀 흘리며 비벼도 안 비벼지던 비빔밥이

너무너무 쉽게 비벼지는 것입니다.

 

젓가락을 갖다 대기만 해도 채소들이 서로서로 뒤섞입니다.

아주아주 사랑스럽게 뒤섞이고 비벼집니다.

그뿐 아닙니다. 비빔밥의 맛도 일품입니다.

다른 어느 집 비빔밥보다 맛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효녀네 비빔밥만 먹으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나 했더니

효녀네 비빔밥을 먹고 나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인 거였습니다.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는 법을 터득한 비빔밥을 먹으니

뱃속에 들어간 비빔밥이 온몸 구석구석 세포와 피에 사랑과 조화의 기운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자기만 독식하고 무한증식하려는 암세포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천하의 욕심꾸러기 암세포도 다른 세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암세포도 때가되면 저절로 숫자를 조절하여 팍팍 줄어듭니다.

 

피돌기를 방해하던 이런저런 찌꺼기들도 점점 깨끗하게 씻겨나갑니다.

효녀가 매일 기도하며 부르는 사랑노래 조화의 노래가

몸 속 모든 생명체의 밸런스를 맞춰주고 피돌기를 원활하게 해줍니다.

온몸이 이렇게 막힘없이 소통되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효녀네 식당은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여럿이 함께 비빔밥’!

 

이 특별한 비빔밥, ‘여럿이 함께 비빔밥을 먹으면서 효녀 아빠도 건강을 되찾습니다.

이 비빔밥을 먹으면서 전주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몸과 마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갑질을 멈추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약한 사람들도 자존감을 되찾고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희망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정훈 지음. 2016124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