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내보내셨다”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9:8-17)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에게 직접 언약을 세운다.
10. 너희와 함께 있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 곧 너와 함께 방주에서 나온 새와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에게도, 내가 언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및 너희와 함께 있는 숨 쉬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언약의 표는,
13. 바로 무지개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가 될 것이다.
14. 내가 구름을 일으켜서 땅을 덮을 때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면,
15. 나는, 너희와 숨 쉬는 모든 짐승 곧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을 물로 멸하지 않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날 때마다, 내가 그것을 보고, 나 하나님이,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 곧 땅 위에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것과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겠다."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땅 위의 살과 피를 지닌 모든 것과 더불어 세운 언약의 표다."
(시편 25:1-10)
1.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2.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의지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내 원수가 나를 이기어 승전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3.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지만, 함부로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입니다.
4.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5.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6. 주님,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베푸셨던, 주님의 긍휼하심과 한결 같은 사랑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7. 내가 젊은 시절에 지은 죄와 반역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8.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9.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
10. 주님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베드로전서 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19.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20.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21.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9-15)
9.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오셔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예수께서 물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12.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이어주는 끈은, 죽음의 상징 “물”입니다.
구약, “물로 멸하지 않겠다.” (창세 9:15)
서신서, “물에서 구원받은” (벧전 3:20)
복음서, “물속에서 막 올라오시는데” (마가 1:10)
오늘 요절은, “광야로 내보내셨다”로 정합니다. (마가 1:12)
[구약과 시편 (창세기 9:8-17 / 시편 25:1-10)]
오늘 구약본문에서 많이 반복되는 단어들은, “땅”(5회), “언약”(8회), “모든”(10회)입니다.
즉,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땅”의 “모든 것들”과 맺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들이란, 사람만이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생물들입니다.
특히 새번역 성경은 다른 번역들과 달리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 “살과 피를 지닌 모든 것”이라는 표현을 5번이나 반복합니다.
“살아 숨 쉬는”이라는 수식도 앞에 자주 붙입니다.
그래서 오늘 언약의 당사자가 짐승들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사람들과만 맺으신 언약이라면,
아브라함과 언약 맺으실 때처럼 ‘할례’와 같은 어떤 의무가 붙었겠지만(창세 17장)
오늘 본문의 언약에서는 아무런 의무조항도 안 보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과도 맺으신 언약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반복하지만, 오늘 언약은 사람보다 짐승들이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더, 특히 15절 이하를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그 느낌이 확연합니다.
나는 너뿐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이다" 하고 다시 다짐하셨다. (창세기 9:15-17, 공동번역)
집짐승 뿐 아니라 “모든 들짐승”이라고 하신 것도 눈에 띕니다.(10)
(지나친 오지랖이지만, 이는 오늘 복음서본문 13절의,
광야 예수님의 동무가 되어주었던 “들짐승들”과 묘하게 이어집니다.)
오늘 언약의 표지는 ‘무지개’입니다.
문자대로 보면,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보고 기억하시겠다는 표지입니다.(14-15)
무지개는,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의 표지입니다.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가 될 것이다.”(13)
무지개는 구름 속에 두셨다가(13) 구름 사이에서 드러날 것이라 하셨습니다.(14, 16)
이 “구름”은 오늘 복음서본문의 “광야”와 통합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언약을 이루어가는 길, 언약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훈련의 길(약속의 땅으로의 여정),
언약의 배꼽시계, 언약의 자명종(自鳴鐘)인 예언자들이 가야 할 길...
그래서 ‘광야’와 ‘구름’은
예언자가, 제자들이,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예언자가 바로 무지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세상이 점점 광야처럼, 먹구름처럼 변하면 변할수록
무지개처럼, 교회는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온 땅이 보고 희망을 가질 무지개처럼!
오늘 시편본문에서 반복되는 알맹이는 ①‘주님을 기다립니다’(1, 3, 5)입니다.
왜 기다립니까?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길 기다리는 것입니다.(4)
그 길 가르쳐 달라고 “종일 주님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5)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은 “주님의 길”입니다.(4)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8),
곧 회개의 길입니다.
또 하나, 오늘 시편의 반복어는, ②‘기억하여 주십시오’(6, 7)입니다.
무얼 기억해 주시라는 건가요?
“한결 같은 사랑”으로 그 길 가르쳐주시는 것 잊지 마시길 비는 것입니다.(6, 7)
오늘 구약본문의 무지개 약속을 기억하시겠다는 말씀(창세 9:15-16)과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오늘 구약과 시편을 종합하여 정리하자면,
내 안에, 우리 사회 안에 먹구름 점점 짙어지고, 우리가 점점 광야처럼 변해갈 때
물로 전멸시키지 않으시리라는 무지개 약속을 주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가던 길 멈추고 돌이켜 올바른 길, 주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걸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 때문에 더러워진 땅, 그래서 인간과 동시에 멸망했던 땅,
지금도 내 탐욕 때문에 점점 더러워져가는 이 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요 예의입니다.
그래서 무지개 약속은 천지인(天地人) 사이의 언약인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베드로전서 3:18-22 / 마가복음 1:9-15)]
오늘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은 구약본문과 더불어 “물”로 이어집니다.
구약본문에서 “물”이 죽음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서신서본문은 노아시대 홍수를 그대로 인용하여
“그 물”이 구원의 “세례”를 미리 보여준다고 합니다.(21)
물론 세례는 물로 적당히 몸을 씻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된 내가 죽고 주님 앞에 참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21)
오늘 서신서본문은
이 구원의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았음을 확실히 전하고 있습니다.
서신서본문에서 특기할 것은,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18)
이는 오늘 구약본문에서, 집짐승, 들짐승들까지 챙기시는 하나님 마음과 이어집니다.
온 생명을 살리시려는, 온 죄인을 살리시려는 하늘 아버지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무대는 요단강 세례와 광야 시험, 그리고 갈릴리 선포로 숨 가쁘게 이어집니다.
먼저 매우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예수님 세례 장면입니다.
물이 갈라지며 예수님이 솟아오르시고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리시며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성부의 말씀은, 지난 주 산상변화주일 본문, 변화산에서 들리신 성부 음성과 매우 비슷합니다.)
이어서 광야로 내몰리시는 모습입니다.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시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았다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는 유대적 관념으로 보자면, 타락 전 에덴동산의 모습, 즉 아담의 모습으로서,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예수님께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합니다.(이사야 11:6-7)
(독일성서공회판 성경해설 참조)
끝으로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모습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이는 복음의 정수(精髓)입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살던 이들일수록 기쁨이 더한 말씀일 것입니다.
때가 찼음에도 여전히 가던 길 계속 고집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먹구름 점점 짙어지고, 세상이 점점 광야처럼 변해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회개하지 못하는 지금 우리가 걱정입니다.
[정리]
때가 찰수록, 하나님 나라가 가까울수록,
교회는 점점 무지개의 일곱 빛깔로 선명해져야 합니다.
평소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낮아지며 지냈더라도,
때가 찰수록 교회는, LED 십자가 조명보다 더 환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게 바로 교회라는 증거이기도 하니,
교회는 지금 내 색깔에 대해 수시로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내 밝기에 대해 수시로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내 자리에 대해 수시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무지개는 항상 보이는 게 아닙니다.
비바람 몰아친 뒤, 즉 고난의 때 순식간에 떠올라 잠깐 희망을 주고 미련 없이 사라지는 게 무지개입니다.
호시절 대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며 커가는 게 아니라,
세상이 어려울 때 드러나야 무지개 제격이라는 말입니다.
덩치가 커진다고, 마이크가 커진다고 잘 보이고 잘 들리는 게 아닙니다.
너무 크면 오히려 잘 안보이고 안 들립니다.
오만가지 중독에 빠진 세상 사람들,
수많은 우상의 늪에 빠진 사람들 눈에 어디 뵈는 게 있겠습니까?
막장 인생들 눈에 높고 높은 고층 빌딩이 보일 리 없습니다.
교회는 그들 눈에 진정 번쩍 뜨일 수 있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는 타락한 세상, 고난 받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인생 막장까지 들어가 그들 눈에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막장에서 떨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난로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구약본문을 따라,
우리 탐욕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멸종되어가고 있는 생명들,
이 땅의 생명 현실을 직시하며
교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그 동물들이 내몰린 막장까지 가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주가 되어줘야 할 것입니다.
온 죄인을 살리시려는, 온 생명을 살리시려는 성부 하나님 마음으로,
구원의 광야 길, 십자가 길을 순종하신 분,
용감하신 갈릴리 예언자, 성자 하나님 마음으로,
둥실 무지개가 되기 위해, 오늘도 교회는 다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머지]
* 광야로 내보내셨다?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서 가장 충격적인 구절을 꼽으라면 12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여기서 내보내셨다는 구절을, 개역성경에서는 ‘몰아내셨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좀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헬라어 성경 원문이 ‘에크발로’라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던져버린다는 뜻입니다.
고이 모시는 것이 아니라, 팽개치듯이 내던진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주 강권하시는 모습입니다.
조금 전까지 성부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하셨는데
금세 그 성령께서 내팽개치듯이 성자를 광야로 몰아내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오늘부터 한 주간 삶 가운데서 이 말씀을 화두로 잡으려 합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고 또 좋아하시는데...
왜 나를 이렇게 마귀와 들짐승들 우글거리는 광야 한 가운데로 내팽개치시는가?
** 무지개 동아줄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아이들 그리고 동물들...
입시지옥, 세상 온갖 폭력들... 갖가지 탐욕으로 멸종되어가는 생명들...
탐욕스런 호랑이에게 몰리고 몰려
자포자기하며 옥상으로 몰려올라가는 우리 어린 오누이 같은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작고 힘없는 동물들에게,
이런 튼튼한 동아줄을, 생명의 구름다리를
드리워줘야 하는 것이 무지개, 곧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 그 동물들 모두 그 무지개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튼튼한 동아줄 붙잡고 올라가
하늘의 해와 달처럼 빛나게, 별처럼 빛나게 해줘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시는 가운데 생생하게 들려오시던 하늘 아버지의 음성처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이 하늘 아빠의 음성을,
지금 꿈을 잃은 아이들, 마음의 힘을 잃은 온 세상 사람들,
심지어 온 세상 불의한 자들까지,
그리고 우리가 큰 빚지고 있는 온 생명, 작은 동물들까지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는 말입니다.
*** 온생명의 소중함
구제역파동으로 수많은 돼지들이 살처분, 생매장 당하고
조류독감파동으로 수많은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 당했습니다.
사대강 사업으로 수많은 물고기와 새들, 온생명들이 죽어갔습니다.
이 죄를 어떻게 다 씻을 수 있을까요?
탐욕을 줄여야 합니다.
토건 개발을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기를 줄여야 합니다.
마침 사순절입니다.
교회의 사순절은 전통적으로 고기를 끊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 직전 카니발(사육제謝肉祭) 때는 고기를 진탕 먹나봅니다.)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고기를 끊으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동물들의 고통을 줄여주면 참 좋겠습니다.
**** 주님의 에덴동산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 3:8)
노아 때나,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기억에 에덴동산은 어제처럼 생생하실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굽어보시던 어제였습니다.
창조질서가 살아 있던 거기, 그리고 거기 그 사람들...
그러나 사람들은 다릅니다.
비교적 첫 사람 아담 시절로부터 멀지 않았을 노아시절 사람들조차
에덴동산 시절의 창조질서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천벌을 받았습니다.
창조질서를 잃은, 잊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어떤 천벌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아담(고전 15:45) 예수님께서 광야 40일을 지내실 때가 궁금합니다.
예수님의 일생 33년 가운데서, 아마 가장 에덴의 기억이 생생하셨던 때가 아니었을까요?
만화 같은 설정입니다만,
마치 웜 홀 같은 통로를 통해 빨려 들어가
과거에, 고향집에 뚝 떨어지듯이 정신없이 몰려간 그 광야에서,
인적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광야에서 홀로 40일을 지내시며
들짐승들과 함께 노시며, 천사의 시중을 받으시는 동안
에덴동산의 기억이 환하게 살아나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는
첫 사람들이 뱀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때 그 슬픈 기억조차
솟아나셨을 것입니다.
[말씀 동시] 성경책 (김선우 지음. 향린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2호)
교회에서 받은
성경책 집중해서 보면
마음은 벌써 예수님께
예수님 세례 받던 그때로
광야에 계시던 그때로
마음은 벌써 성경 속
이곳저곳 구경나가
예수님 하신 말씀
새기고 기억하며
한 줄 한 줄 읽어본다.
[말씀 시조] 나사렛 예수께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2호)
나사렛 예수께서 요단강 세례받고
사십일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받네
믿어라 때가찼노라 회개하라 선포해
[말씀 한시] ‘사십’(四十)의 거룩한 뜻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2호)
挪亞洪水四旬間 (나아홍수사순간) 노아의 홍수도 사십 일간 계속 되고
西乃摩西天命聞 (서내마서천명문) 모세도 시내산에서 천명(天命)을 들었다
偵探伽南亦同期 (정탐가남역공기) 가나안 정탐도 그 기일이 사십 일
曠野孤行四十年 (광야고행사십년) 광야의 고행(孤行)도 사십 년이었다
約合勸告尼尼微 (약합권고니니미) 요나가 권고한 니느웨의 회개도
大悟悔改定時間 (대오회개귀정시) 사십 일 정한 기간 안에 돌아오길 외쳤다
耶穌臨神天音後 (야소임신천음후) 예수님 성령 임해 천음(天音)을 들으셨고
天使隨從荒野難 (천사수종황야난) 광야의 곤난 중에는 천사들이 수종했다.
[말씀 서예] 시편 25:4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2호)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2호)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다함께]
10. 여—호—와—의--, 모든 길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말씀 동화] 무지개다리를 타고 온 청산(靑山)의 어깨동무들
따뜻한 오후, 어느 햇볕도 보드라운 봄날입니다.
살랑살랑 봄나들이 나온 봄바람이
아무 구경거리도 없는 황량한 광야를
잠시 머물지도 않고 횡∼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네요?
그때였어요.
‘아비오∼ 쿵∼!’
“아이쿠! 엉덩이야!”
조용하던 광야가 갑자기 소란해집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아니 저렇게 잘생긴 홍두깨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어마, 깜짝이야?”
깜박깜박 낮잠을 자던 여우가 깜짝 놀랐나 봐요.
곁에 있던 오소리도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저기 자빠져 있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네요?
젊은 남자 한사람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빠졌어요.
저 사람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지?
어린 동물들은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신기하면서도 왠지 두렵습니다.
그때 용감한 늑대 한 마리가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갑니다.
“저기요, 어디 안 다치셨어요?”
“오, 난 괜찮아요. 늑대씨 안녕하세요?”
난생처음 사람과 인사를 나눈 것이 뿌듯했는지, 늑대의 표정이 우쭐합니다.
멀리서 지켜만 보던 여우도, 오소리도, 더 멀리서 바라보던 사슴까지 조심조심 다가옵니다.
들짐승들은 너도나도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가
살금살금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지나갑니다.
돌개바람이 뺑글뺑글 흙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런데 흙먼지가 가라앉자마자, 하늘이 새까매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광야의 들짐승들이 이방인을 버려둔 채 뿔뿔이 흩어집니다.
얼마 안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뚝 그칩니다.
그리곤 일곱 빛깔 무지개가 둥실 떠오르네요?
짜잔∼!
저건 또 뭐지?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났네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몰라도
알록달록 일곱 빛깔 낯선 손님들입니다.
덩치 큰 호랑이, 말로만 듣던 황금빛 파마머리 사자까지!
암소랑 꽃사슴, 옹기종기 토끼가족도 있네요?
어라, 강아지까지 왔어요!
저건 또 뭐지 고양이가 장화를 신었네?
낯선 이방동물들을 바라보던 토박이 동물들 가운데
배고픈 늑대가 군침을 꿀꺽 삼킵니다.
아마 옹기종기 토끼를 보고 군침 삼킨 것 같아요.
그러나 감히 토끼에게 다가가지도 못합니다.
왜냐고요?
세상에나! 토끼가 사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잖아요?
눈치를 챈 호랑이가 한마디 합니다.
“이봐 친구, 웬 어이없는 표정인가?”
호랑이의 포스에 눌린 늑대가 얌전하게 대답합니다.
“사이즈가 안 맞잖아요? 저기 사자랑 토끼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거 안 이상해요?”
“맞아 맞아, 정말 이상해요! 어떻게 사자가 토끼를 안 잡아먹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죠?”
광야 토박이 동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빙그레 웃으며 호랑이가 대답하네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저렇게 자연스러운 걸 보고 이상하다니, 난 너희가 더 이상해!”
나도 질세라 오소리가 말합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당신들 어디서 왔어요?”
오소리의 질문에 이방동물들이 모두 한꺼번에 오소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합창을 하네요?
“아아∼ 여기서 살고 싶어, 맑고 푸르른 청산에서∼
아아∼ 여기서 살고 싶어, 너랑 나랑 우리 함께∼
달콤한 머루가 열려 있어 새콤한 다래도 아주 많아∼
달콤한 머루가 열려 있어 새콤한 다래도 아주 많아∼
오늘도, 내일도, 새콤 달콤 맑고 푸르른 청산이야∼♬”
[‘청산별곡’ 1절, 박새봄 작사, 박승원 작곡]
“우린 청산(靑山)에서 왔단다. 다들 에덴동산이라 부르는 곳이지.”
노래를 마친 이방동물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갑니다.
사자와 토끼, 호랑이와 암소, 꽃사슴과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까지
남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부비며 절을 하네요?
“주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 여러분도 다들 잘 지냈나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예요? 그리고 날 어떻게 금세 알아보죠?”
토끼가 앞으로 썩 나서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이번 달 반장을 맡은 엽기토끼예요. 그게 궁금하시군요.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릴게요. 저희는 주님 얼굴보다 먼저 냄새로 금세 알아 볼 수 있답니다. 저희에겐 눈보다 코가 더 확실하거든요. 그런데 저흰 주님 얼굴도 잘 알아요. 왜냐하면요... 지금 에덴동산에서 예수님이 제일 인기 스타시거든요! 에덴동산 식구들 모두가 매일매일 거울 연못가로 가서 거기 비친 예수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답니다. 좀 아까 세례 받으시던 장면은 에덴동산 시청률 99%였어요. 모든 동물들이 모여서 박수치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본걸요? 그런데 곧 성령님께서 주님을 여기로 휘옹∼ 보내시는 걸 보고, 이렇게 황량한 광야생활이 너무 적적하실 것 같아서 저희가 금세 어깨동무 팀을 꾸려서 대표로 달려왔죠.”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토박이 동물들이 웅성웅성 하네요?
아까 그 배고픈 늑대가 앞으로 나서며 말합니다.
“잠깐만요, 조용한 남의 동네에 와서 무슨 동창회 하시나 봐요. 너무 시끌벅적하네요. 좀 절제해 주시고요... 그리고 너 포동포동한 토끼야. 여기가 왜 적적하니? 여기도 상당히 다이내믹하고 변화무쌍한 곳이거든? 하나도 안 적적해. 네 눈엔 우리 토박이들이 안 보이냐?”
그러자 이번엔 사자가 천천히 일어서며 대답합니다.
저렇게 키 큰 사자는 처음 봅니다.
“늑대야, 너무 그러지 마라. 우리 반장님 놀라실라. 그리고 너 자꾸 우리 반장님 보고 군침 삼키지 마라. 그러다 체할라. 에덴동산에서는 절대 동물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짓은 하지 않아요.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거랑 똑같은 꼴이거든!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가장 잘 아니까, 우리가 벗이 되어드릴 거야. 그렇게 알거라.”
그러자 이번엔 오소리가 툭 튀어나오며 묻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알기론 옛날 노아 홍수 때 에덴동산도 다 물에 잠겨 거기 사는 동물도 다 죽고 식물도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래?”
다시 토끼가 대답합니다.
“여러분, 좋은 질문이에요. 노아 홍수 때 에덴동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전설이 있죠.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잠깐 구름 위로 올라가 있다 내려왔다는 설과, 150일 넘게 물속 용궁이 되어 지냈다는 설이죠. 그러나 진실은 아무도 몰라요. 저흰 모두 하룻밤 잠들었다 일어났었거든요. 홍수가 났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니까요?”
늑대가 대답합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토끼씨 미안해요. 나이도 나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자꾸 군침 삼켜서! 미안하지만, 사실 아직도 군침은 자꾸 넘어가고 있어요.”
“괜찮아요 늑대씨. 참느라 힘들죠? 조금만 견뎌 봐요. 그럼 우리 에덴동산 식구들처럼 똑같아지긴 어려워도 비슷해질 수는 있을 거예요. 우리가 늑대씨 다이어트 도와드릴게요.”
그때 이방인 남자, 아니 예수님이 끼어드시네요?
“늑대씨, 그리고 토끼씨 참 대단해요. 금세 가까운 친구처럼 되니까 참 보기 좋네요. 에덴 식구들이 함께 해서 그런가? 이사야 예언자가 노래한 평화의 나라가 된 것 같아요.(이사 11) 그나저나 여긴 정말 아무것도 먹을거리가 없군요. 나도 앞으로 40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참아볼 거예요. 늑대씨도 나와 함께 노력해 봐요. 배가 너무 고파서, 벗을 잡아먹고 싶은 악한 유혹이 닥쳐도 우리 함께 참아 봅시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기 시작하네요?
어느새 먹구름이 새까맣게 몰려왔어요.
꾸르릉∼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토박이 동물들과 에덴동산 동물들이 한데모여 어깨동무가 되더니 예수님을 둘러쌉니다.
“여러분, 괜찮아요. 이 정도 비쯤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까 물에 퐁당 빠졌을 때 비하면 하나도 안 추운걸요?”
비가 그치자 일곱 빛깔 무지개가 둥실 떠오릅니다.
어느새 어깨동무가 된 토박이 동물들과 에덴동산 동물들이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동물들 미소가 무지개처럼 아름답습니다.
오소리가 큰소리로 말합니다.
“와∼! 난 무지개가 참 좋아! 무지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약속의 표시거든!”
“맞아, 나도 우리 할머니께 들었어. 옛날에 노아 홍수 끝나고 무지개를 바라보시면서 우리 동물들을 사람만큼 사랑하신다고 하나님께서 고백하셨대. 그게 하나님 마음이래. 그래서 무지개를 보면 우리도 약한 동물들 잡아먹는 거 멈추어야 한다고 하셨어. 그게 원래 에덴동산 시절 하나님 마음이라고 하셨어. 무지개를 타고 건너가면 거기 에덴동산이 있다고 하셨어.”
늑대도 무지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모든 동물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무지개를 바라봅니다.
예수님도 동물들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새들도 날아와 어깨동무를 합니다.
모두 입을 모아 합창을 합니다.
“2. 아~ 아~ 새들이 노래하네, 햇살 눈부신 새벽 아침∼
아~ 아~ 새들이 노래하네. 웃음소리 넘치도록∼
짹잭잭 뭐라고 하는 걸까. 랄랄라 나 역시 노래하네
짹잭잭 뭐라고 하는 걸까. 랄랄라 나 역시 노래하네
오늘도 내일도 지지배배 나도 따라서 랄랄랄라∼♬
3. 아~ 아~ 저 높이 새 한 마리 하늘 건너서 멀어지네∼
아~ 아~ 저 높이 새 한 마리 멀리 멀리 떠나가네∼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서 두리번거리며 먹이 찾지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서 두리번거리며 먹이 찾지
오늘도 내일도 바쁜 새야 나는 거기서 너를 본다∼♬”
[‘청산별곡’ 2∼3절, 박새봄 작사, 박승원 작곡]
[이정훈 지음. 2015년 2월 22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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