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20:1-17)
1.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5.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7.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9.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11.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12.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도록 살 것이다.
13. 살인하지 못한다.
14. 간음하지 못한다.
15. 도둑질하지 못한다.
16. 너희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17. 너희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나 할 것 없이,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시편 19)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2.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3.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해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니,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
7.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8.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10.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
11.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이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18-25)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20. 현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요한복음 2:13-22)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져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14. 그는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걷어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하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알맹이는 정화(淨化), 성결(聖潔)입니다.
그 절정(絶頂)은 십자가입니다.
구약, “거룩하게 지켜라”(8)
시편, “깨끗하게 씻어주십시오”(12)
서신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23)
복음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19)
오늘 요절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요한 2:16)입니다.
[구약과 시편 (출애굽기 20:1-17 / 시편 19)]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하나님 뜻)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첫 열쇠,
즉 십계명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어제 토요일 매일성서일과 본문이었습니다.)
“나 주에게 가까이 오는 제사장도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주가 그들도 쳐서 죽일 것이다."(출애굽기 19:22)
주님을 만나는 첫 관문이 바로 성결함입니다.
이런 눈으로 십계명을 보면
성결(聖潔)이란 탐욕을 씻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 안식일 범하기, 그밖에 온갖 못된 짓거리들은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탐욕은 온갖 부정부패(不正腐敗)와 거짓을 낳습니다.
이런 오물을 뒤집어쓴 더러운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십계명 중 6계명 이하(13절 이하)를 묵상하다가 문득 야고보서 말씀이 떠오릅니다.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4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벗함이 하나님과 등지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2-4)
오늘 구약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출애굽기 20:1)
그런데 오늘 시편본문 역시 바로 그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는 구절로 가득합니다.
4절의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는 구절이 특히 눈에 띕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십계명을 포함한) ‘말씀’으로 우리는 성결해 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1절까지 깊이 묵상하고 나서 보면 12-13절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이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14절은,
마치 하나님을 바로 내 앞에, 심지어 내 안에 모신 것처럼 부르는 황송한 노래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고린도전서 1:18-25 / 요한복음 2:13-22)]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성결의 집’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담겨 있습니다.
다름 아닌 “십자가의 말씀”입니다.(18)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보다 훨씬 더 많이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반복해서 대구를 이룹니다.
이는 또한 지난 주 복음서본문의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과도 대구를 이룹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귀에는 예수님 “십자가의 말씀”이,
그 “하나님의 일”이 한없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서도,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어리석게, 거슬리게 여깁니다.(23)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24)
무슨 지혜, 무슨 능력입니까?
가장 비천한 죄인을 성결한 의인으로 만드시는 능력입니다.
가장 낮은 자를 인생역전 시켜 드높이시는 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시고 하나님 만나게 하시는 십자가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바로 앞장인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라 했는데,
오늘 요한복음 2장에서는 “성전”이라 부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고 다시 완성시키신 것처럼(에베 2:15, 마가 5:17)
성전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시며
돈으로 오염된 성전을 정결케 하시자 사람들이 묻습니다.
무슨 권리, 무슨 근거, 무슨 명분으로 이러시느냐고!
그러자 예수님은 성전이 정결해져야 하는 까닭 설명 대신
참 성전이 무너지고 다시 서는,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성결해집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로써 성전의 존재 이유, 즉 주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까닭을 깨닫게 됩니다.
성전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전(聖殿)은 성결(聖潔)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장사, 돈, 그에 따른 온갖 거짓과 탐욕은 성결을 훼손하는 주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외치셨던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요한 2:16)
[정리]
오늘 구약본문은 십계명을 통해 탐욕을 씻어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정결해져야 하나님(하나님의 뜻)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오늘 서신서본문은 거슬리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지혜와 능력을 설파합니다.
한없이 추한 죄인조차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성전 정화 광경은,
서신서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리석어 보이고 상당히 거리낍니다.(고전 1:23)
그러고 보니 오늘 예수님의 성전 정화 과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전을 허물어뜨리심, 즉 십자가 죽으심을
저들의 눈높이 버전으로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온갖 허물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십니다.
우리의 온갖 탐욕의 오물덩이로 가득 채운 성전을 미련 없이 단번에 허무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성전 정화의 목적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참 성전을 환하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지금도 성전인 교회를, 성전인 내 몸을
“장사하는 집”, 즉 온갖 탐욕과 거짓이 가득한 집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머지]
* 진정한 안식
지난 주 ‘성서일과 사랑방’ 모임에서 구약본문 중 ‘안식일’을 묵상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내가 안 쉬면, 노예와 가축조차 못 쉬면, 땅이 못 쉬면,
하나님도 못 쉬시는 게 아닐까?”(중원교회 엄재문 목사님)
안식이란 내 안의 모든 탐욕이 사라질 때 비로소 솟아오르는
그야말로 창조질서의 알맹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나를 먹여 살리시는 어버이 되심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참 안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안의 탐욕을 비우고 씻어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안식의 알맹이를 잘 담고 있는 시편 127:2절 말씀 끝부분,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를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새번역)
“이른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밤늦게야 잠자리에 드는 것도, 먹으려고 애쓰는 것도 다 헛되고 헛되니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공동번역)
[말씀 동시] 깨끗한가? (김윤서 지음. 명암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2호)
성전은 주님의 집
성전이 더러워졌다
지금은? 우리교회는?
깨끗한가?
[말씀 시조] 유월절 성전정화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2호)
유월절 성전정화 예수님의 성전사랑
장사꾼들 유대인들 당황하고 질투하네
성전을 허물어보라 사흘 만에 세우리
[말씀 한시] 미친 운전자를 끌어내려라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2호)
耶穌揮鞭謀利輩 (야소휘편모리배) 예수님은 모리배에게 채찍을 휘둘렀고
德國學者罵納粹 (덕국학자매납수) 독일의 신학자는 나찌를 꾸짖었다
狂者運轉將車覆 (광자운전장차복) 미친 사람이 운전을 하면 자동차가 전복 된다
强牽逐士以腕勢 (강견축사이완세) 완력을 동원해서 강인(强引)하여 끌어 내리자.
[말씀 서예] 시편 19:12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2호)
[말씀 노래] 이 성전을 허물어라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82호)
[본문] (요한복음 2:13-22)
[노랫말]
이 성전을 허물어라
보이는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해설]
유월절을 맞아 성전에 오르신 주님은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판을 엎으신다. 분개한 이들이 항의하며 무슨 권리로 이런 일을 하는지 표징을 보이라고 요구하자, 주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19절을 중심으로 반복해서 부르도록 짧은 코러스로 엮었다.
[악보] 이 성전을 허물어라 (주원남 지음, 2014.12.25.)
[시편 송서(誦書)] 시편 1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2호)
(* 천자문 독송-전래자장가 풍으로)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다함께]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말씀 동화] 12세 소년 예수, 유월절 상경기(上京記)
따뜻한 봄날입니다.
만물이 되살아나는 생생한 봄날,
예루살렘에도 봄꽃이 피기 시작하네요.
물 찬 제비 한 마리가 빙빙 성전 위를 날더니 날렵하게 내려앉습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니 참새가 반갑다고 연신 짹짹짹 노래합니다.
“푸르른 내 친구 푸르푸르 푸르야 오랜만이야. 강남은 여전히 따뜻하지?”
“야 십보라, 너는 아직도 나를 푸르라고 부르냐? 푸르는 제비뽑기 할 때 그 제비라니까? 왜 자꾸 푸르래? 그냥 제비라고 불러!”
“아니야 난 푸르가 좋아. 발음도 좋은데 뭘? 난 그냥 이렇게 부를래, 짹짹짹, 푸르푸르푸르르∼♬”
“어휴, 이게 다 내 잘못이다, 내 탓이야, 내 탓! 한국에서는 날아다니는 제비랑 제비뽑기하는 제비, 두 제비가 발음이 똑같더라고 괜히 가르쳐 줬다니까!”
제비는 자포자기 표정으로 참새친구 십보라를 바라봅니다.
십보라가 푸르에게 종알거립니다.
“그나저나 푸르야 난 지금 새봄 집 단장을 좀 하려는데 말이야, 어디가 좋겠니? 이번엔 저기 제단 곁에 지어보면 어떨까?
푸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죽거리며 대답합니다.
“제단 바로 옆에 둥지 튼다고? 너 무슨 참새구이 되고 싶냐?”
“야, 넌 시편도 모르니?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 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시편 84:3절 말씀! 으이그 하긴 맨날 이 나라 저 나라 해외여행만 다니는 네 녀석이 뭘 알겠니? 나처럼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살아야 뭘 알아도 좀 알지.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 내가 이래 봬도 성전참새 몇 년 차인지 알아?”
한창 재잘대던 성전 터주대감 십보라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반짝 명랑하게 빛납니다.
“야야야, 푸르 푸르야, 저길 좀 봐, 우리 친구 또 하나 올라온다!”
“오! 예수구나, 해마다 유월절이면 늘 엄마 아빠 손 꼭 잡고 성전에 올라오는 우리 친구 예수!”
“와! 키가 몰라보게 부쩍 자랐는걸? 가만있어봐, 올해 예수가 몇 살이더라? 옳지, 열두 살이네!”
“열두 살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네? 이젠 제법 목소리도 묵직해졌겠는 걸?”
문득 참새 십보라가 제비 푸르를 가만히 바라보며 묻습니다.
“초등학교? 그게 뭐야? 6학년은 또 뭐고?”
푸르가 눈을 껌뻑이며 소 닭 보듯 십보라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열두 살 소년 예수가 성전바깥마당으로 들어옵니다.
300리 머나먼 길을 꼬박 사흘 동안 걸어온 여행길이지만
지치기는커녕 성전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은 반짝반짝 샛별처럼 빛납니다.
유월절은 정말 복잡하고 왁자지껄한 명절이에요.
그래서 이 때 키 작은 어린이들은 성전에 거의 오지 않죠.
그러나 나사렛 어린이 예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졸라 성전에 왔습니다.
오늘도 유달리 성전을 사랑하는 소년 예수가 드디어 성전 바깥뜰에 올라섭니다.
엄마아빠께서 볼일을 보시는 사이에 예수는 성전 뜰을 꼼꼼히 둘러봅니다.
장사꾼들 흥정 소리로 왁자지껄하네요?
어쩌면 좋죠? 우리 예수 얼굴이 급히 어두워지고 있어요.
예수는 드넓은 성전바깥뜰에 가득한 장사꾼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립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장사를 하다니 어떻게 저럴 수 있담! 해마다 장사꾼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만 가니 이대로 두었다가는 정말 국제시장보다 더 시끌벅적해지겠는 걸? 이래서야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수 있나? 어떻게 고요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겠어?”
무심코 소년 예수는 애창곡 시편을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이 나에게로 쏟아집니다.”(시편 69:9) 저 가축들 좀 봐. 가축들 똥냄새가 진동하지만, 그건 왠지 익숙해, 저건 아기 때부터 왠지 친숙한 느낌이야. 문제는 성전에서 돈을 주고받으면서 장사하는 거야. 저건 아닌 것 같아, 아니 아닌 게 확실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애쓰는 걸까?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사실을 잊은 걸까? 저기 참새도 제비도 먹이시는 하나님이신데...”
소년 예수는 두 주먹을 부르쥐고 중얼거립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이렇게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게 놔둬서는 안 되겠어!”
나사렛 소년 예수가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네요.
애창곡 시편 127편 2절 노래입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예수가 두리번두리번 무얼 찾나 봐요?
오, 무언가 발견한 듯 예수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갑니다.
한 무리의 어른들이 무언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네요?
가만, 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도 알아주는 율법 선생님들이로군요?
소년 예수가 어르신 선생님들 대화에 끼어듭니다.
가벼운 질문을 몇 개 던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대화에 깊숙이 끼어들었네요.
선생님들도 처음엔 무심하더니 점점 예수를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어른들 표정이 점점 놀라운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얘야, 네,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오 그래 예수였지, 예수야, 그런데 너는 왜 그리도 성전바깥뜰에서 장사하는 걸 못마땅하게 보는 것이냐? 생각해보렴. 머나먼 타향에서 여기까지 제물을 일일이 끌고 온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 그래서 가볍게 돈만 가져와서 현장에서 제물을 사는 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잖아? 또 성전세를 바치기 위해서 멀리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환전을 해야 하니까 돈 바꾸어주는 환전상이 있는 건 매우 편리한 것 아니겠느냐? 이게 주님께 제사 드리는데 도움이 되면 되었지 무슨 지장을 준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는 걸?”
모든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 예수를 바라봅니다.
이윽고 예수가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잖아요? 성전은 하나님 만나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니까 하나님의 집은 당연히 거룩한 곳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거룩할 성(聖)자를 붙여서 성전(聖殿)이라고 부르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 반대의 것이 부정과 불의 아니겠어요? 부정과 불의가 뭐죠? 부정(不正)은 비뚤어진 것, 불의(不義)는 옳지 않은 것, 즉 거짓이죠. 부정과 불의랑 정반대말이 바로 정의(正義)아닙니까?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정의와 다른 것이 아니죠.”
“아휴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래 네 말이 틀리지 않구나. 그런데, 왜 자꾸 성전이랑 거룩하심, 하나님의 정의를 자꾸 말하는 거지?”
“제 말이 좀 길었나요? 이제 결론을 말할게요. 그러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보세요. 지금 하나님의 집이 이런저런 편리를 핑계로 점점 장사하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잖아요? 물론 장사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성전이 장사하는 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장사하는 저 모습을 보세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고 팔려고, 조금이라도 돈을 덜 내고 사려고, 다들 거짓말도 서슴지 않잖아요. 게다가 장사하는 자릿세, 권리금, 보호세,,,이중삼중으로 돈이 오가고, 게다가 성전과 제사를 관리하는 레위인 제사장들조차 점점 돈맛이 들어가고 있어요. 염불보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하나님만 바라봐야 할 사람들 머릿속이 온통 돈이랑 거짓말만 가득하잖아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은 이런 곳이어서는 안 되죠. 어떻게 이렇게 거룩과 정의랑 정 반대로 탐욕으로 더러워진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어요?”
나사렛 시골 소년의 이야기에 지체 높은 선생님들이 쩔쩔 맵니다.
소년 예수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127편을 불러드릴까요?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얼마나 멋지고 명쾌 상쾌한 노랩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자는 동안에도 배불리신다는데, 왜 저렇게 먹고살려고 아등바등하며 거룩한 성전을 돈 냄새, 거짓말냄새로 더럽히면서까지 무리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시편 노래의 알맹이는 ‘안식’입니다. 잠도 못자고 쉬지 않고 일하며 돈 번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죠. 돈, 먹을거리, 행복의 원천은 돈 벌려고 애쓰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먹여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야 참 안식,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 그런 사람이라야 참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깊이 대화할 수 있는 법이죠.”
지체 놓은 선생님들이 시골 소년 예수의 거침없는 지혜에 혀를 내두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이런 지혜라니!
이건 하늘에서 온 지혜인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품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수많은 선생님들이 너도나도 시골 소년 예수를 빙 둘러싸고
질문을 시작합니다.
이러다가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우리 예수, 갈릴리 나사렛 집으로 돌아가긴 다 틀렸네요.
하긴 여기가 내 아버지의 집이니 뭐가 걱정이겠어요?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소년 예수의 마음속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가슴이 뜨겁습니다.
점점 더 내 아버지의 집에 대한 사랑이 차오릅니다.
[이정훈 지음. 2015년 3월 8일 주일 아침]
(* 시편 84:1-4, 그리고 누가복음 2:41-52절을 배경으로, 특히 42절 “해마다 유월절에”, 49절 “내 아버지의 집” 등에 착안하여 상상을 더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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