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사순절 2주(2015년 3월 1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7:1-7, 15-16)

1. 아브람의 나이 아흔아홉이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2. 나와 너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5.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6. 내가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너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왕들도 나올 것이다.

7.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것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이 언약을 따라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뿐만 아니라, 뒤에 오는 너의 자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아내 사래를 이제 사래라고 하지 말고, 사라라고 하여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 내가 너의 아내에게 복을 주어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들이 그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시편 22:23-31)

23.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여라. 야곱 자손아, 그에게 영광을 돌려라. 이스라엘 자손아, 그를 경외하여라.

24.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25.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서원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치겠습니다.

26.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27. 땅 끝에 사는 사람들도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이며,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을 경배할 것이다.

28.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29. 땅 속에서 잠자는 자가 어떻게 주님을 경배하겠는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가 어떻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겠는가?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

30.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

3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주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고 선포할 것이다.

 

(로마서 4:13-25)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23.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마가복음 8:31-38)

31.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3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38.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중심어는 언약(약속)”, “죽음”, “구원등입니다.

사순절 둘째 주일, 그리고 삼일절을 맞으며 뜻 깊은 말씀들입니다.

 

구약,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2)

시편,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31)

서신서, “죽임을 당하셨고... 살아나셨습니다”(25)

복음서,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31)

 

오늘 요절은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시편 22:24)입니다.

 

 

[구약과 시편 (창세기 9:8-17 / 시편 25:1-10)]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아브라함)과 세우시는 언약입니다.

특기할 것은, 부부의 이름을 바꾸어주시는 장면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그리고 자손들 가운데서 왕들이 나오리라 반복하는 장면입니다.(6, 16)

그리고 이 언약이 자손대대로 영원한 언약이라는 사실입니다.(7)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수많은 후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입니다.(7)

 

이는 시편본문의 알맹이로 이어집니다.

 

내 자손이 주님을 섬기고 후세의 자손도 주님이 누구신지 들어 알고,”(30)

 

그런데 오늘 시 22편은 극심한 탄식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역전되는,

탄식과 감사가 하나로 결합된 보기 드문(어쩌면 유일한) 본문입니다.

22편은 이렇게 극심한 죽음의 고통을 외치며 시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1)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2)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6)

나를 보는 사람은 ...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7)

그가 주님께 그토록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그를 구하여 주시겠지...”(8)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18)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 시의 후반부인 오늘 본문은 이렇게 역전(逆轉)됩니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24)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24)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29)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31)

 

그러니 나는 물론이고 내 자손의 자손들까지도

구원의 주님을 믿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오늘 시편은,

오늘 전체 주제를 함축한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베드로전서 3:18-22 / 마가복음 1:9-15)]

오늘 서신서본문은 오늘 구약본문을 그대로 받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잇습니다.

서신서본문의 상당부분이 아브라함 이야기지만, 알맹이는 뒤의 짧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오늘 예수님 이야기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입니다.

 

구약에서 인용한 아브라함 이야기의 핵심은,

죽음(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언약(약속x7)”, 그리고 믿음입니다.

이 약속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17)

즉 이 약속의 알맹이는,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17)

 

정리하자면,

자기 몸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19)

약속을 믿은 그 아브라함의 믿음이

죽으신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결론은, 불가능한 것(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그를 믿는 믿음 때문에!!

 

오늘 복음서본문

바로 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처음 선포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죽으시고 다시 사실 것을 처음으로 가르치시는 예수님,

그리고 미친 듯이 놀라는 베드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친김에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관계를 새로 정리하십니다.

 

제자가 되려면(“나를 따라오려면”)(34)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절반이 넘는, 34절 이하 통째로,

죽음에 대해 더 깊이 묵상하고 결행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그 교훈을 알고 있다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힘들어도,

적어도 그 말씀을 멱살 잡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물투성이 나를 의롭게 만드시려는 저 거룩하고 장엄한 죽음과 부활의 청사진을

꾸짖듯 찢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리]

오늘 본문들의 두 주인공을 꼽으라면 아브라함과 베드로입니다.

이 두 사람이 아주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브라함은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한 인물이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만 생각한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들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이란, 비유하자면, ‘죽음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영원한 생명약속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이 하나님 약속을 외면한 채, 시나브로 죽음의 세력에 빨려 들어가는 가련한 살림살이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참 곤혹스러운 믿음입니다
.

지금까지 내 경험,

아니 인류의 생리적인 상식,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약속을 믿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경험, 내 체험, 인류의 상식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베드로를 후려치신 치도곤(治盜棍)과 같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건 사람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상상조차 못하는 제 잘난 사람의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베드로와 달랐습니다.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것에서 생명을,

무궁무진한 생명의 용솟음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마치 탄광 막장에 매몰되어 갇힌 광부와도 같았던 시인이,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푸른 하늘을 환하게 보며

귀로는 들리지도 않는 구조 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있는 것처럼

오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24)

그러나 나는 주님의 능력으로 살겠다”(29)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다”(31)

 

이 노래 제대로 부를 수 있기를,

이 노래 부를 수 있을 만큼 내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길 원합니다.

어설픈 베드로, 저 충동적이고 허깨비 같던 내 믿음, 늘 사람의 일만 생각하던 내 믿음이

단단한 베드로, 든든한 반석 같은 믿음,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믿음이 되길 원합니다.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로마 4:17)

그 하나님의 약속은,

바짝 마른 내 믿음의 눈시울조차 촉촉하게 적실 만큼 신비롭습니다.

축축하게 젖은 내 믿음의 장작조차 활활 타오르게 하실 만큼 뜨겁습니다.

 

 

[나머지]

* “사탄아 내 뒤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멱살을 잡는 대목입니다.

32절 끝에 베드로가 항의하는 대목은

33절의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대목과 비슷한 헬라어 단어입니다.

즉 이성을 잃은 베드로가 젊은 스승님의 멱살을 잡고 꾸짖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와중에도 예수님은 이성을 잃지 않고 십자가 길 그 정면을 응시합니다.

베드로, 이 걸림돌을 단호하게 정리하여 디딤돌로 바꾸십니다.

베드로를 향해, 아니 모든 제자들을 향해 외치십니다.

 

야 이 마귀새끼 같은 놈아, 내 뒤로 물러가! (가서 저 밑바닥부터 다시 따라와!)

(희랍어 성경에는 내 뒤로나를 따르라와 똑같은 “ὀπσω μου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전혀 죽을 생각 안 하며 살고 있는,

자기 십자가”(34)라고는 목걸이 십자가밖에 모르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죽음 뒤에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전혀 믿지 않고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는 모습도 종종 저 천방지축 베드로처럼

지금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주님의 멱살을 잡는 꼴은 아닐까요?

내 마음대로 십자가 길과 정 반대 길로 가려고 말입니다.

 

 

 

[말씀 동시] 나의 고백 (이채은 지음. 향린교회 어린이부 2학년. 성실문화82)

예수님!

모든 갖고 싶은 것에 욕심내지 않고

친구의 것에 질투하지 않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가족에게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게으리지 않겠습니다.

 

필요한 것을 생각하고

친구를 축하해주고

오늘 일은 바로 행하고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고

나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말씀 시조] 십자가 가로막는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2)

십자가 가로막는 사탄아 물러가라

날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 져야한다

내 말이 부끄러우면 무슨 이득 있으리

 

 

 

[말씀 한시]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아, 물러가라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2)

人子將次十字苦 (인자장차십자고) 인자는 장차 십자가 고난 길 가게 되리라

彼得抗議不決行 (피득항의결부인) 베드로가 가지 마십시요!’ 항의했다.

惟念人事撒坦退 (유념인사살탄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아, 당장 물러가라!

欲救生活反喪命 (욕구활명반성지) 살고자 하면 도리어 목숨을 잃느니라.

 

 

 

[말씀 서예] 시편 22:24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2)

 

 

 

 

 

 

 

 

[말씀 노래] 제자의 길 (홍의종 지음. 성실문화82)

[본문] 마가복음 8:31-38

[노랫말]

누구든지 주를 따르려면 / 자기를 부인하고 / 자기 십자가 지고 / 주를 따라가라

누구든지 제 목숨 구하면 / 잃어버릴 것이요 / 주와 복음 위해 잃으면 / 구할 것이라

그 말씀 순종하여 / 주님을 따라가리 / 자기 부인의 십자가 길 / 그 길 걸어가리

[해설]

이 곡은 34-35절을 중심으로 만든 곡으로서 성실문화 72, ‘노래마당 2012/9/16’에 실었던 곡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곡이 늘 바뀌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익숙한 멜로디에 가사를 음미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필자는 앞으로도 같은 본문이 주어질 경우, 이전에 지었던 곡을 계속 활용할 생각이다... 음원은 다음 카페 성서일과사랑방노래 자료실방에 올려놓았다. 악보만 보기보다는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는 것이, 곡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성서일과사랑방카페에서 곡을 들어보고 소화하여 창조적으로 표현해 보기를 권한다.

 

[악보] 제자의 길 (홍의종 지음, 2012. 6. 20)

 

 

 

 

 

[시편 송서(誦書)] 시편 22:23-31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2)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곤고한 자의- 곤고---, 멸시하거나- 싫어하-- 아니하----,

그의 얼굴을- 그에게-- 숨기지 아니하시고-,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손한-- (겸손한) 자는-, -고 배부를 것이---,

--와를 찾는 자--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의 모----, -(풍성)한 자----,

---- -(경배)-, (경배-)-- 것이---,

---- 속으--- ----가는- --,

--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다함께]

31. -서 그-의 공의---, 태어날 백성에--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행하셨--) 할 것이∼∥

 

 

 

 

[말씀 동화] 경칩(驚蟄)도 되기 전에 깨어난 개구리 떼 소동

 

꼬르륵 꼬르륵

 

이게 무슨 소리지?

겨우내 꽁꽁 얼었던 대동강 얼음이 녹는 소린가?

 

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한강 얼음이 녹는 소린가?

 

아니에요. 그것도 아니에요.

 

정말? 우수(雨水) 지난지가 언젠데?

우수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 몰라?

 

아니 아니, 아직 경칩(驚蟄)이 하루 이틀 남았잖아요.

 

그렇군. 아직 경칩 전이로군!

그럼 저 꼬르륵거리는 소리는 대체 무슨 소리람?

 

, 저건 개구리 배꼽시계소리예요.

겨우내 잠자느라 텅 빈 개구리 뱃속에서 나는 소리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비틀비틀, 꿈틀꿈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에요.

마치 요새 우리 사는 모습이랑 너무 비슷해요!

 

뭐라고? 아직 경칩도 안 되었는데 개구리들이 일어났다고?

저런 부지런한 개구리들이 다 있나?

상이라도 줘야겠는 걸?

 

아니 아니, 부지런한 게 아니라 그냥 놀라서 깨어난 거예요.

 

놀라서 깨어나?

놀라서 깨어나는 게 말 그대로 경칩(驚蟄) 아니냐?

아직 경칩 전이라면서?

 

삼촌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서 살다 와서 모르셨죠?

사실은, 어제 33일이 우리 황제폐하 인산일(因山日)이었어요.

돌아가신지 40일 만에 상여가 나가는데

그 큰 인파에 개구리들이 깜짝 놀라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이틀 전부터 개구리들이 깨어나더니 놀라 자빠지더라니까요?

 

개구리가 놀라자빠져?

난 살다살다 개구리가 놀라자빠졌다는 소린 처음일세?

 

진짜에요. 그날, 31일 대낮부터 만세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서울 종로 중심에 있는 파고다공원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한 만세소리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전국으로 막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개구리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만세 부르며 발을 구르고 일제 경찰에 쫓겨 정신없이 뜀뛰는 소리에

삼천리 방방골골이 지진이 나듯 쿵쿵거렸겠죠?

땅속에서 잠자던 개구리들이 얼마나 놀랐겠냐구요?

저 보세요, 오늘은 우리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게다가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다는 소문이 쫙 퍼졌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했겠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평화를 택했어요.

아주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는 거죠.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쩌면 저렇게 평화적일 수 있을까요?

손에 부지깽이는커녕 태극기 하나 달랑 들고

마치 춤을 추듯 펄쩍펄쩍 뛰는 하얀 옷의 사람들을 보고

아마 개구리들은 두 번 놀랐겠죠?

 

우리 임금님이 억울하게 죽임 당하셨다니 화가 날만도 하겠군.

 

그뿐인 줄 아세요?

요새 우리 형편이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데요?

 

얼마나 어려운데?

 

군대랑 경찰의 무력으로 억누르는 무단정치(武斷政治)가 극에 달했다니까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우리 역사도 못 배우게 하려고

민족교육은 완전히 없애버렸죠.

농민들은, 토지조사사업으로 땅 다 빼앗기고

농사지을 권리마저 빼앗겨버렸죠.

상인들은, 민족자본가들은 다 몰락하고

노동자들도 일본인 노동자 월급의 절반도 안 되는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지 않을 수 있겠냐구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평화적으로 만세시위만 할 수 있단 거야?

작대기, 몽둥이, 곡괭이에 죽창이라도 들어야지?

우리 바보 아냐?

 

아무튼 이번 만세시위는 대단한 평화 만세운동이에요.

4년 넘게 벌어지다가 최근에 끝난 세계대전 후에

세계 최초로 벌어진 반제국주의 대규모 시위죠.

이번 시위로 일본도 반성하고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이

우리를 독립시켜 주지 않을까요?

 

글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같은 형편인 아시아 여러 나라의 해방운동, 독립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강대국들이 반성하게 만들 수는 없을 걸?

강대국들 대부분이 식민지 지배 맛에 중독된 놈들인데?

 

식민지에서 나는 쌀 다 빼앗아가고 정작 그 쌀의 주인들에게는 값싼 강냉이죽만 먹이고,

지하자원도 다 빼앗아가고, 어디 그뿐인 줄 아느냐?

그 지하자원으로 만든 상품들을 다시 식민지 백성들에게 비싼 값 주고 팔아먹을 수 있고,

그러니 강대국들이 식민지를 독립시키겠냐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이 땅에서 안 된다면, 어디 다른 나라에라도 가서 임시정부를 세워야 해!

임시정부는 더 이상 임금님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를 따라야할 테고!

아무튼 부디 이번 삼일만세 운동으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생겨나면 좋겠구나.

 

! 저것 보세요 삼촌! 개구리들이 마구마구 깨어나고 있어요.

마치 출애굽기에 나오는 개구리들 같지 않아요?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일강에서 올라온 개구리 떼 말이에요.

그 개구리들이 바로 왕의 궁전에도 들어가고, 이집트 고관대작들과 그 백성들을 괴롭혔잖아요?

 

허허, 정말 그렇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렴.

그 때 그 개구리 떼 때문에 바로가 히브리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었느냐?

아니었거든. 외눈하나 깜짝 안 했거든!

 

바로와 이집트 백성들은 10번째 재앙까지 남김없이 맛보고 나서야

겨우 히브리백성들을 독립시켰지.

아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다시 뒤쫓아 가다가

끝내 홍해바다에 퐁당 빠지게 되었었지?

 

그게 다 제 마음대로 노예를 부리는 지배자의 근성이라는 거다.

식민지 지배하는 맛은 중독성이 크거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바로 왕처럼 더 큰 천벌을 받고나서야 조금씩 정신 차릴 걸?

 

그나저나 총칼도 없이 태극기만 들고 개구리떼처럼 펄쩍펄쩍 뛰기만 하는 우리 동포들이

부디 다치지 말아야 할 텐데...

저 사람들 다 잡혀 들어가서 고문당하고 억울한 감옥살이하다가 순국하게 될까봐 걱정이구나.

 

그런데 삼촌!

우린 저분들처럼 용감하게 태극기 흔들지도 않고

여기 방안에만 가만히 앉아서 창밖 구경만 하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서울역으로 광화문으로 우리도 얼른 뛰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기 좀 보세요.

몇 안 되는 친일파놈들은 일제 순사들 뒤에 숨어 있어요!

사람들이 태극기 흔들며 만세 부르다가 일제 순사들에게 두드려 맞고

쓰러지고 태극기는 찢어지고 저러고 있잖아요?

어쩌죠, 삼촌?

 

네 말이 옳구나.

일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여럿이 함께니까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가 난다.

지금이 마침 우리 예수님께서 식민지 로마 군병들에게 모욕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을 기억하는 사순절 기간이라서

내가 그때 로마 식민지시대랑 지금 일제 식민지시대를 비교하며 노래를 하나 지었는데,

우리 이 노래 한번 불러보고 힘을 내어 나가자꾸나.

 

비록,

태극기 찢어질 정도로 힘차게 흔들었는데도 금세 독립이 안 된다 해도 우리 낙심하지 말자꾸나.

태극기 빼앗기고 다 찢어 버려질지라도, 우리 옷도 다 찢기고 감옥에 갇힐지라도 낙심하지 말자꾸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걸 잊지 말자꾸나.

정의는, 진리는 저 막강한 죽음조차 이기는 힘이 있단다!

 

사람들이 종려나무 흔들며 호산나 외치며 환영해도 금세 잡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을 때

예수님께 대들던 그 베드로 기억하지?

하나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가 예수님께 혼찌검 난 베드로 말이다.

나중에 예수님 모른다고 배신했다가 새벽닭 울음소리 듣고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던 베드로 기억하지?

 

우리나라 삼천리가 온통 십자가 처형장이 되고 온통 무덤으로 뒤덮인다 해도

우리 삼천리는 갈보리언덕처럼 영원한 진리 생명, 정의와 평화의 출발점이 될 거야.

, 이제 이 노래 한번 힘차게 부르고

우리도 용기를 내어 손잡고 나가서

서울역에도 가고 광화문에도 달려가서 태극기 휘날리며 만세를 부르자꾸나!

 

, 삼촌 좋아요! 우리 그렇게 해요!

 

1.개구리도 쿨쿨 자는 이른 봄거리, 꿈처럼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

   굽이굽이 파도소리 독립만세라, 하얗게 춤을추네 십자나무들

2.호산나 독립만세, 호산나 독립만세, 호산나 독립만세, 목이 메어라

   찢어진 태극깃발, 찢어진 태극깃발, 보랏빛 한숨

3.겟세마네 피울음에 목이 메어라, 신새벽 닭울음에 잠을 깨어라

   굽이굽이 삼천리라 갈보리언덕, 둥실둥실 춤을 추네 십자나무들

   [‘춤추는 십자가이정훈 작사, 최창남 작곡]

 

[이정훈 지음. 201531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