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52:7-10)
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8.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시편 98)
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2.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알려 주시고, 주님께서 의로우심을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드러내어 보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기억해 주셨기에,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다.
4. 온 땅아, 소리 높여 즐거이 주님을 찬양하여라. 함성을 터뜨리며,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여라.
5.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아우르는 악기들을 타면서, 찬양하여라.
6. 왕이신 주님 앞에서 나팔과 뿔나팔 소리로 환호하여라.
7.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과 세계와 거기에 살고 있는 것들도 뇌성 치듯 큰소리로 환호하여라.
8. 강들도 손뼉을 치고, 산들도 함께 큰소리로 환호성을 올려라.
9.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
(히브리서 1:1-12)
1.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2.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하나님의 본체대로의 모습이십니다. 그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서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높게 되셨으니, 천사들보다 더 빼어난 이름을 물려받으신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그러나 자기의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7. 또 천사들에 관해서는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바람으로 삼으시고, 시중꾼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 하였고,
8. 아들에 관해서는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 주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공의의 막대기는 곧 주님의 왕권입니다.
9. 주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님의 하나님께서는 주님께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셔서, 주님을 주님의 동료들 위에 높이 올리셨습니다" 하였습니다.
10.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태초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하늘은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11. 그것들은 없어질지라도, 주님께서는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그것들은 다 옷처럼 낡을 것이요,
12. 주님께서는 그것들을 두루마기처럼 말아 치우실 것이며, 그것들이 다 옷처럼 변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같으시고, 주님의 세월은 끝남이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10.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14.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4본문 전체에 감도는 느낌]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의 느낌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그리고 밝습니다.
구약과 시편에 반복해서 나오는, “함성”, “환호성”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서신서와 복음서에 나오는, “광채”, “빛”, “생명” 등이 그렇습니다.
빛은 창조의 첫 단추였습니다.
생명은 창조의 절정입니다.
빛과 생명, 이 창조의 두 기둥은 말씀이 낳은 쌍둥이 같습니다.
오늘 성탄절 4본문, 반복되는 단어들 속에서 느낀 어둠과 빛은
창조질서의 훼손(毁損)과 회복(回復)으로 정리됩니다.
오늘 어둠을 뚫고 솟아나는 환호성은
창조질서의 회복, 빛의 도래,
이른바 광복(光復)의 기쁨 같은 함성입니다.
오늘 요절은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히 1:3)으로 정합니다.
[구약과 시편 (이사야 52:7-10 / 시편 98)]
구약본문은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의 광복(光復)희망으로 넘실거립니다.
7절에 “희소식”, “평화”, “구원”, “하나님의 통치”가 열차처럼 지나갑니다.
벌써부터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러 달려가는 고향열차 같습니다.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9)
그 이름 ‘평화의 성(터전)’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진정한 재건은 평화의 회복일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광복(光復)입니다.
시편본문은 하나님의 “구원” 소식으로 가득합니다.(1, 2, 3)
그런데 사람들만 함성을 터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본문에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이 함성을 터뜨린 것처럼,
시편본문은 “온 땅”(4), “바다”(7), “강, 산”(8)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오염된 바다,
사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강들,
송전탑 건설로 파헤쳐지는 산들...
저 한없는 인간의 탐욕도 이제 곧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훼손된 자연의 회복, 그 광복(光復)의 날이 곧 온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환호성을 올리는 것입니다.(시 98:9)
오늘 시편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온 땅이 기뻐 노래하는 듯합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히브리서 1:1-12 / 요한복음 1:1-14)]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은 빛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
심지어 복음서본문엔 “빛”이 8번이나 반짝이고 또 반짝입니다.
물론 예수님 탄생을 기억하는 성탄절 본문으로서,
그 빛의 정체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히 1:3)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만물은 창조세계를 뜻합니다.
이 창조세계를 붙드시는, 지탱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또다시 ‘창조질서 보전’이 떠오릅니다.
이는 이미 엉망진창이 된 지구의 회복,
특히 인간의 탐욕에 대한 심판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빛이 반복해서 언급되는 것은, 너무 어두운 환경 때문일 것입니다.
2014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유독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공의의 막대기는 곧 주님의 왕권입니다.”(히 1:8)
“주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습니다.”(히 1:9)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본문은 성부하나님이 그대로 현현하신 듯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방금 언급한 히브리서 1장 8-9절처럼,
히브리서 1장 10-12절도 시편이 묘사한 하나님 모습을 예수님께 적용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과 3절의 묘사 또한 그러합니다.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본문은 주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합니까?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기초를 훼손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훼손한 우리의 탐욕,
이를 기어이 회복시키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성부하나님의 이 마음을 똑 같이 품고 성자하나님이 오십니다.
인간세계 탐욕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이 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마음!
천지는 변하여도 하나님 그 마음은 변함없으십니다.(히 1:11-12)
[정리]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사 52:8)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시 98:9)
“자기의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히 1:6)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요 1:9)
오늘 4본문은 공통적으로 그분 오심을 선포합니다.
말씀마다 광복(光復)의 기운을 만끽하게 해주십니다.
그 빛이 오셔서 하나님의 창조물들의 권리를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오셔서 이 땅에 다시 하나님의 정의, 평화, 창조질서를 회복하십니다.
돈의 노예로 살던 어둠의 자식들조차
그 속에 빛의 기운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어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숨 막히게 길고 긴 터널 같은 시대!
그러나 제 아무리 짙은 어둠일지라도 결코 빛을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땅, 이 나라의 진실과 정의를 블랙홀처럼 삼켜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블랙홀 같은 안보논리(종북몰이), 블랙홀 같은 경제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빛 다 삼켜버리는 블랙홀조차 결코 삼킬 수 없는 참 빛!
그 빛 오시어, 그 말씀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 1:10, 14)
이 얼마나 든든한 말씀인지요!
어둠을 어둠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시 98:9)
[나머지]
* 하나님이 지으신 땅을 더럽히지 말라
문득 땅을 더럽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쫓아내신다는 언약이 기억납니다.
(창세기 6:12-13 ) 12.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들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었고, 그 끝날이 이르렀으니, 내가 반드시 사람과 땅을 함께 멸하겠다.
(레위기 18:24, 25, 28) 24.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다가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다. 25. 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악한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 28.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 낼 것이다.
(레위기 26:34) 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 땅이 그렇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 곧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비로소 땅은 쉴 것이며, 제 몫의 안식을 누릴 것이다.
(민수기 35:34) 너희가 사는 땅, 곧 내가 머물러 있는 이 땅을 더럽히지 말아라. 나 주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함께 머물고 있다."
** 세월호의 환호성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이사 52:9)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마치 세월호가 기뻐 함성을 내지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편 98:1절의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는 말씀도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 재판관들이 정치로 재판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시편 98:9)
우리 주님 말입니다.
정치가 정의와 반대말이 아닐 텐데, 참 곤혹스럽습니다.
아무튼 “주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십니다.(히브 1:9)
그러니 세월호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듯이, 세월호도 인양되어,
모든 것이 원래 제자리를 찾을 광복(光復)의 날을 고대합니다.
*** 말씀노래 나머지1 '그 말씀 사람이 되시오니' (이정훈 지음)
**** 말씀노래 나머지2, '성탄 아리랑' (이정훈 지음)
***** 말씀그림 '어둠을 거두어내는 큰 빛' (누가복음 2:28-34) (김재임 작품)
[김재임 작품]
[말씀 동시] 엄마얼굴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1학년, 『성실문화』 81호)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보니
따갑고 찡한 것이 눈을 찌르더군
그 폭력적인 낯설음이 너무 기분 나빠서
깜깜한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친절한 손가락이 내 눈꺼풀을 벗겨
잠깐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고 보니
웃고 있는 엄마 얼굴 보이더라고
천사 같은 엄마 얼굴 보이더라고.
[말씀 시조] 태초로 계신말씀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1호)
태초로 계신말씀 참생명 참빛이여
그말씀 육신되어 우리안에 사시누나
온생명 지으신말씀 어둔세상 빛이여
[말씀 한시] 등잔불 비취니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1호)
月落冬天漆黑夜 (월락동천칠흑야)달 저문 캄캄한 겨울밤
賴炷起焰夜逃忙 (뇌주기염애도망)등잔불 심지 돋우니 어둠은 달아나기 바쁘다
老母依燈縫弊衣 (노모의등봉폐의)희미한 등불 아래 늙으신 어머니 해진 옷을 꿰매시고
盜賊見光隱身惶 (도적견광은신황)도둑은 불빛 보고 몸 숨느라 당황한다
太古上帝造月光 (태고상제조월광)태고에 하나님이 달빛도 지으셨다
輾轉深夜殘月喪 (전전심야잔월상)뒤척이는 밤 깊어 잔월마저 사라질 때
小月映出燈盞裏 (소월영출등잔리)호롱불 속 작은 달님
一光殘照宇宙明 (일광잔조우주명)어둠을 밝히네.
(1967. 1. 26. 당시 필자의 집에는 전등불이 없었다. 호롱불 아래서 한 수 지었다.)
[말씀 서예] 시편 98:1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1호)
[말씀 노래] 태초에 계신 말씀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 81호)
[본문] (요한복음 1:1-14)
[노랫말]
태초에 계신 말씀 어둠을 비추는 빛 (X2)
1절) 영접하는 사람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네
2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독생자의 영광
태초에 계신 말씀 어둠을 비추는 빛 (X2)
[해설]
후렴구를 앞뒤로 두 번씩 반복하였는데, 더 많이 반복해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악보] 태초에 계신 말씀 (높은소리 주원남 지음, 2014.10.13)
[시편 송서] 시편 9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81호)
(* 천자문 독송 - 전래 자장가 풍으로 )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즐겁게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들이)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다함께]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말씀 동화] 광화문(光化門) 지킴이 해태가 뿔났어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샛노란 바람이 붑니다.
한겨울 삭풍이 멈추고 오랜만에 마파람이 올라오네요.
보배섬 진도에서 불던 짭짤한 바닷바람이
어느새 서울 빌딩숲 사이로 날아왔네요.
하늘을 찌를 듯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 사이사이로
곡예 비행사처럼 요리조리 씽씽 잘도 날아갑니다.
오랫동안 진도 팽목항을 파도처럼 펄럭이던 노란 바람이
깃발처럼 펄럭이며 시청 앞 서울광장을 지나 광화문으로 내달립니다.
‘뭐지? 저 노란색은 뭐지? 파도 같기도 하고 깃발 같기도 하고? 저게 도대체 뭐지?’
해태의 눈이 가늘어집니다.
해태는 광화문 지킴이로 유명합니다.
과자회사 이름으로도 불릴 만큼 인기도 짱짱하고요.
배고픈 건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기스타 해태가
저 앞에 있는 거북선에게 묻습니다.
“야 거북아 저기 노랗게 펄럭이는 게 뭐냐?”
“거북이라니? 내가 거북이가 아니라 용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거북이라니? 용머리랑 거북이 머리도 구분 못하냐? 그러니까 ‘해태눈깔’이란 말이 나오는 거야!”
“해태? 나 원래 이름이 해치거든? 네 바로 뒤 이순신장군님 뒤가 해치마당인 거 몰라? 그건 그렇고 거북이건 용이건 간에 아무튼 저 앞에 노란 게 뭐냐니까?”
“해태건 해치건 간에, 야 넌 그것도 모르냐? 넌 아무리 뒤에 쳐져 있기로서니 여태 그것도 몰랐어? 지금은 철거했지만, 봄여름가을 내내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노란리본이잖아? 그리고 내 뒤에 있어서 난 못 보긴 하지만, 세종대왕님 바로 앞에 광화문광장에도 아직 노란리본 많이 있지 않나?”
“노란 리본?”
해태의 눈이 갑자기 커집니다.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크게 부릅뜨고 앞을 바라봅니다.
해태는 불을 막아주는 상상의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렇게 눈을 부릅뜨면 사건의 옳고 그름이 환하게 보이고,
사람들의 선과 악을 환하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동물로 더 유명하거든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릅뜬 해태의 눈에서 뚝 뚝 눈물이 떨어집니다.
눈에 너무 힘을 줘서 눈이 시려서 저러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에요.
해태는 지금 진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곤 해태의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 하더니만
감추어져 있던 뿔이 해태의 머리에서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죄 많은 악인들을 발견하면 사정없이 치받아버리는,
코뿔소 뿔보다 몇 백배나 더 무서운 해태의 뿔입니다.
그 때 갑자기 거북선이 온몸을 부르르 떠네요?
“가만 가만 해태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내 등에 돋아난 뾰족뾰족 안테나들이 지금 네 심상치 않은 기운 때문에 난리야 난리! 갑자기 무슨 일인거야?”
“거북아. 나 말리지 말아라. 아무래도 조만간 나 큰 일 한번 저질러야 할 것 같다.”
“왜? 왜 그러는데? 도대체 뭐가 문젠데? 이 거북이랑 용도 구분 못하는 해태야? 응? 어서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눈을 부릅뜨고 보니까 저기 광화문광장이랑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던 노란 리본들에 담긴 진실이 환하게 보여. 그리고 세월호라는 배가 왜 바다에 빠지고 왜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는지도 환하게 보여. 그리고 누가 누가 이 어마어마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인지도 환하게 보인다, 보여! 그런데 그 진짜 범인들이 지금 모두 뻔뻔스럽게 웃으며 잘 살고 있네? 그러니 지금 내가 뿔이 안 나게 생겼느냔 말이다! 이런 일 있었으면 진작 내게 알렸어야지! 이 느림보 거북이 녀석아∼!”
거북선이 혀를 끌끌 차며 대답합니다.
“그래 해태야. 내가 네 심정은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이제 와서 세월호 타령이야? 세월호 참사를 처음 알았다느니, 진짜 범인들을 뿔로 받아버려야겠다느니 하는 세월호 타령이냐고? 너야말로 느림보구나, 어휴, 저런 철부지 녀석!”
“광화문 공사 때문에... 내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정신이 좀 없었거든...”
잠깐 시무룩해지던 해태가 다시 반짝반짝 눈빛을 내며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거북아, 어느새 성탄절이잖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탄절이야!”
“교회도 못 나가는 해태 네가 웬 성탄절 타령이냐?”
“너 그것도 모르느냐? 성탄절은 예수님 오신 날이잖아? 내가 원래 예수님하고 되게 많이 닮았거든! 그래서 매년 성탄절만 되면 미역국부터 먹고 싶어진다니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해태가 예수님을 닮았다니?”
“하긴 넌 너무 너무 느린 거북이니까, 내가 다 이해한다, 이해해. 사람들은 언뜻 내가 호랑이랑 비슷한 줄 알지만, 사실 난 사자랑 닮았어. 사자는 원래 나처럼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기운이 있다고 믿었던 영물이잖아. 그래서 우리나라 북방 지역 탈춤들은 탈춤 시작할 때 제일 앞에 사자춤을 춰서 터를 깨끗이 씻지. 사자랑 외모가 비슷한 ‘삽살개’ 이름에도 귀신을 쫓는다는 뜻이 담겨 있단다. 심지어 예수님을 사자로 비유하기도 하잖아? 무슨 ‘아슬란’인가 하는 사자 있지?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거북선의 귀가 쫑긋쫑긋 점점 올라갑니다.
해태가 저렇게 이모저모로 유식한지 처음 알았거든요.
해태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거북이 너 혹시 알지 모르겠다. 성경말씀에 보면 열왕기상 13장이랑 20장에 사자(獅子)가 두 번 연거푸 나오거든. 거기서 사자가 뭐 하러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예언자들을 물어 죽이는 역할을 하지. 그게 사자거든! 그렇게 사자는 무서울 정도로 법을 철저히 지키는 법의 수호자 역할을 해. 내가 바로 그런 일을 하잖아! 그래서 나는 원래 사헌부(司憲府) 정문 앞에 있었지. 사헌부는 나라가 옳게 발전하도록 하는 언론의 역할도 하고 공무원들 잘잘못을 따지고 벌주는 그런 곳이었단다. 성경의 사자가 예언자를 물어죽이듯이, 나는 엉터리 재판관들 엉터리 공무원들 같은 못된 권력자들을 벌주는 법의 수호자란다.”
“해태야, 그런데 그게 예수님 오시는 성탄절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인데?”
“성경말씀 히브리서 1장 9절에 보면, 예수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는 분이시래. 어때, 나랑 너무너무 비슷하지 않냐?”
거북선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해태가 딱 목사님 같이 성경을 줄줄 읊조린담? 세상에 저런 해태가 또 있을까?’
그 때 해태가 또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북아 너 그거 아느냐? 예수님이 참 빛으로 오셨다는 거?”
“아니 난 몰라. 금시초문인데?
“몰랐구나? 요한복음 1장 9절 말씀에 보면,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고 하시거든. 내가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보아도 찾아낼 수 없는 악한 사람들까지도 참 빛이 오시면 환하게 다 드러나겠지? 그럼 내가 냉큼 달려가서 그 악한 사람들을 냅다 들이받을 거고! 그렇게 따끔한 벌을 받아 봐야 그때 비로소 그 놈들은 회개가 뭔지 깊이 고민하기 시작할거야. 그리고 늦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회개하고 예수님의 벗이 되어가겠지. 그래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세상 모든 악한 놈들을 환히 비추시는 예수님의 그 빛이 바로 참 빛, 생명 빛인 거야.”
태어나서 한 번도 해태를 본 적이 없는 거북선은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기에, 해태는 저렇게 아는 게 많은 걸까요?
대체 무얼 먹으면 저렇게 유식해지는 걸까요?
“거북아, 내 뒤에 있는 커다란 대문이 바로 경복궁(景福宮)의 대문인데, 그 위에 널찍한 문패가 붙어있단다. 큰 문 위에 매단 간판을 현판(懸板)이라고 부르는데, 이 현판에 광화문(光化門)이라는 이름이 새겨있지.”
“야 야, 나도 알어. 경복궁 대문 이름이 광화문인 거 다 알거든∼”
해태가 아는 게 너무 많으니까 거북선이 좀 시새워하나 봐요.
“미안 미안! 거북아 내가 왜 이렇게 자세히 얘기 하냐 하면, 우리 경복궁이랑 광화문이랑 전부 성탄절이랑 깊은 관계가 있는듯해서 말이야.”
“성탄절이랑 깊은 관계? 무슨 관계?”
“참 빛이신 예수님,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이 오신 날이 성탄절이잖아.”
“그런데?”
“경복궁(景福宮)의 경(景)은 ‘볕 경’, 햇빛이 뜨거운 걸 뜻하지, 난 왠지 이 글자에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이 느껴져. 그런데 경(景)은 크다는 뜻도 있단다. 그러니까 경복궁(景福宮)은 아주 아주 복스러운 궁, 뜨거운 복이 있는 궁, 큰 복이 있는 궁이야. 나는 예수님이 오시면 경복궁에 모시고 싶어. 물론 수문장은 바로 나, 나고! 만복의 근원이신 분이 머무시기에 딱 좋은 이름이지? 더구나, 그 대문 이름이 광화문(光化門)이잖아? 빛이 되는 문이라! 임금님의 환한 뜻이 활짝 펼쳐지는 문이란 뜻이야. 참 빛이신 예수님이 여기 들어오실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일까?”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거북선은 해태의 해석에 혀를 내두릅니다.
대단한 해석이죠?
“거북아,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할까? 세월호 얘기 말이야. 내가 너무 뒷북을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무리 늦었어도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난 내 임무를 다해야겠다.”
해태의 의연한 목소리에 거북선은 두근두근 조심스런 목소리로 묻습니다.
“무슨 임무?”
“내 임무가 뭐겠느냐? 무너진 법을 일으켜 세워 잘잘못을 가리고 벌주는 것이잖아? 세월호 참사의 진짜 범인들을 낱낱이 가려내서 벌줄 거야. 회개는커녕 여전히 저 더러운 권력을 휘두르면서 잘 먹고 잘사는, 두 다리 쭉 펴고 잠만 잘 자고 있는 저 사이코패스 같은 악한(惡漢)들을 내 뿔로 받아버릴 거라고!”
해태의 눈이 다시 촉촉해지고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합니다.
“거북아 난 이 자리에서 오랜 세월동안 일제 강점기를 통째로 지켜보았단다. 그리고 수많은 친일파들이 잘 먹고 잘사는 걸 보아야 했지. 그런데 광복(光復)이 된 뒤로도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잘 먹고 잘사는 거야. 저 세월호 참사의 진짜 범인들처럼,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약한 사람들을 막 억누르기 일쑤고! 이게 과연 광복(光復)일가? 빛이 회복된 거냐고? 절대 아니거든! 그래서 내가 때만 보고 있었거든. 진짜 광복(光復)의 때, 참 빛이신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를 말이야. 그 때, 난 내 머리에 난 뿔로 벌을 줄 거야. 지칠 줄 모르고 여전히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저 친일파 후손들을 내 뿔로 받아버릴 거라고! 그 때 비로소 저 놈들은 회개를 시작하겠지?”
해태의 복받치는 감정을 느끼면서, 거북선은 문득,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해태처럼, 여전히 그 기억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기억의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 이야기를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문득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세월호는 세월호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라앉은 세월호의 기억이 계속된다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세월호도 언젠가 물 위로 둥실 떠오르겠죠?
왠지 올핸 성탄절 캐럴소리마다 해태의 마음이 담긴 듯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어둠 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것들을 환하게 끌어올리시는 예수님!
다시 오시는 예수님 따라
세월호 속에서 깊이 잠들었던 사랑하는 벗들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1호 ‘예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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