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대림절 3주(성서주일, 2014년 12월 14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슬픔 대신에 기쁨!”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61:1-4, 8-11)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2.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

4. 그들은 오래 전에 황폐해진 곳을 쌓으며,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곳도 세울 것이다. 황폐한 성읍들을 새로 세우며, 대대로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던 곳을 다시 세울 것이다.

8. "나 주는 공평을 사랑하고, 불의와 약탈을 미워한다. 나는 그들의 수고를 성실히 보상하여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9. 그들의 자손이 열방에 알려지며, 그들의 자손이 만민 가운데 알려질 것이다. 그들을 보는 사람마다, 그들이 나 주의 복을 받은 자손임을 인정할 것이다."

10.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에 뿌려진 것을 움트게 하듯이, 주 하나님께서도 모든 나라 앞에서 의와 찬송을 샘솟듯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시편 126)

1.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2.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일을 하셨다."

3.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4.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데살로니가전서 5:16-24)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 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6-8, 19-28)

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 사람은 그 빛을 증언하러 왔으니, 자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그는 그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그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20.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21. 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그들이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23.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24.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6.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28.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지난 대림 1주와 2주의 주제가 “깨어”,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일이었다면,

오늘 대림절 셋째 주 성서일과 4본문은 어떤 ‘설렘’으로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구약과 시편본문은 온통 “기쁨”으로 들썩들썩할 정도입니다.

서신서본문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살전 5:16)

그래서인지, 복음서본문의 세례자 요한에게서도

기다리던 주님을 가장 먼저 알아본 자의 기쁨이 묻어납니다.(요한 1:27)

 

오늘 요절은, “슬픔 대신에 기쁨”으로 정합니다. (이사야 61:3)

 

 

[구약과 시편 (이사야 61:1-4, 8-11 / 시편 126)]

오늘 구약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기쁜 소식”(1), “기쁨”(3), “크게 기뻐하며”(10) 등입니다.

오늘 시편본문 역시 “기쁨”이 5, 6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오랜 포로생활 끝에 주시는 환희의 말씀입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시편 기자는 ‘꿈꾸는 것 같다’고 할 정도입니다.(1)

 

특히 구약 1, 2절 말씀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첫 선포로 유명합니다.

갈릴리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사자후(獅子吼) 말입니다.(누가 4:18-19)

그러고 보니 이 말씀은 수천 년 세월을 넘어

어느 시대에나 약자(弱者)들의 눈물을 닦으시고 큰 힘주시는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 상한 마음, 포로, 갇힌 사람,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

지금 제가 아는 가장 슬픈 자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비롯해서,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는 억울한 눈물 흘리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힘없어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사람들,

힘없어 매 맞는 사람들, 왕따 아이들의 눈물들,

우울증으로, 불치병으로 매순간 큰 슬픔과 분노, 고통 중에 사는 사람들...

 

씻을 길 없는 내 허물로 받는 형벌들,

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앙을 받으면서

큰 죄인처럼 뒤집어써야만 하는 재!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십니다.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십니다.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오르게 하십니다.(3)

 

인생역전!

저리 슬프던 바벨론 포로들이 저리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2천 년 전 주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도 이 기쁨을 누렸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들 마음은 어떻습니까?

 

적어도, 지금 억울한 눈물 흘리는 약자들,

의지할 곳도,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오시는 주님,

슬픔 대신에 기쁨주실 예수님 어서 오시길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데살로니가전서 5:16-24 / 요한복음 1:6-8, 19-28)]

오늘 서신서본문은 첫머리부터 “항상 기뻐하라”입니다.(살전 5:16)

그리고 기도와 감사, 기타 여러 지침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첫머리가 기쁨인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23)

“흠이 없이 완전”한 건(23), 다른 말로, 지극한 기쁨체(體)일 것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불법의 세상,

부정, 부패, 불의가 판치는 맘몬세상임에도 우리가 기쁠 수 있는 건,

땅의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 불법세상을 끝내러

지금 주님께서 달려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오늘 요한은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들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하는 가운데서도,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춥니다.

 

그리스도는 물론 엘리야도 아니고 약속된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올 엘리야에 대한 언급은 말라기 4:5-6절에 나옵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말 4:5-6)

 

특히 누가복음 1:17절, 그리고 마태복음 11:14절과 마태복음 17:10-13절에서는

천사도,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을 장차 올 엘리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누가 1:17)

너희가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면,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마태 11:14)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마태 17:10-13)

 

영락없이 세례자 요한은 엘리야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춥니다.

그 겸손에서 뿜어 나오는 한줄기 강렬한 기운을 봅니다.

기쁨의 기운입니다.

 

 

[정리]

대림절 3주 본문말씀들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슬픔 대신에 기쁨”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인생역전 주인공들을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의의 나무”, “주님께서..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릅니다.

나무는 순식간에 자라지 않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서서히 자랍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재림예수께서 저렇게 빨리 달려오고 계시지만,

오늘도 우리는 나무처럼 제 자리를 지키고 말씀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한 기쁨 덩어리로 만들어 오셨다는 것을

그날이 오면 환히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세례자 요한을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우울한 인생을 산 예언자 요한!

예수님처럼 짧디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신 예수님과 달리

스스로 거친 옷, 거친 음식, 광야살이 감옥살이를 마다 않더니,

급기야 목이 잘려 죽은 처절한 인생입니다.

 

거기 무슨 기쁨이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요한은,

늙으신 엄마아빠 품에서 자라면서,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을 뿜어냈었는지요!

 

누구보다 그리스도를 앙망하는 삶을 살면서,

당대(當代)에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기쁨을 누렸으며,

무엇보다도, 그분 오실 길 닦는 자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기쁨으로, 너희도 그길 닦으라 외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낮춤으로 우리에게 기쁨의 정수(精髓)를 보여 준 사람입니다.

 

요한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그가 권한 기쁨의 길은 갈 수 있습니다.

맘몬의 포로, 이런저런 중독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된

광복(光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징조와

지금 달려오고 계시는 재림예수님을 느낄 수만 있다면!

 

 

[나머지]

* “의(義)의 나무, 의(義)의 겉옷, 의(義)와 찬송”

(이사야 61:3, 10, 11)

 

오늘 구약본문에 의(義), 공의(公義)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불순종의 죄로 기나긴 포로 생활 끝에 오는,

“재 대신 화관”의 기쁨입니다.

 

그 연단과 정화의 기간을 거치며

내 안의 허물어진 곳을 보수하고,

마침내 저들은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까지 재건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허물어진 모습을 다룬 『쿼바디스』라는 다큐영화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영화가 얼마나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짚었는지 모르지만,

신성모독, 명예훼손이라 욕할 것이 아니라,

모처럼 발견한 거울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허물어진 곳이 공의롭게 재건되도록

돈과 권력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마침 지금 대림의 계절입니다.

 

왕이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의 옷을 찢었다..(왕하 22:11)

 

요시야 왕이 성전 보수 중에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나서 애통하며 옷을 찢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을 여선지 훌다에게 보내어 하나님 뜻을 재차 여쭙습니다.(13)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응답을 받습니다.

 

이곳이 황폐해지고 이곳의 주민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나의 말을 들었을 때에, 너는 깊이 뉘우치고, 나 주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옷을 찢고, 내 앞에서 통곡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네 기도를 들어 준다. 나 주가 말한다(19)

 

요시야는 하나님 말씀을 처음 듣자마자

‘시대 상황’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느낀 지도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마음이 통하고 응답받게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비교가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처음 들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시대 상황은커녕, 거기서 하나님의 징조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세례자 요한은, 지나친 조급증 환자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말씀(?)이나 전할 것이지, 쓸데없이 정치지도자의 불륜을 들춰내다가

감옥에 갇히고 목 잘려 죽은 불쌍한 사람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은 결코 세례자 요한의 인생을 불쌍하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정의로운 삶,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 말씀 앞에 민감한 인생 속에서 기쁨의 정수(精髓)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기쁨, 온전한 기쁨이란

우리 안에 공의(公義)를 회복할 때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씀 동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고혜민 지음. 향린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1호)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그 이름 요한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는 요한

 

뒤에 오시는 분을 위하여

요단강 건너 베다니 복음을

전하는 요한

 

 

 

[말씀 시조] 광야 외치는 소리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1호)

광야 외치는소리 요한이 외치노라

너희는 곧게하라 주님의길 곧게하라

빛이신 그리스도를 온세상아 믿으라

 

 

 

[말씀 한시]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시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1호)

荒野有聲洗約翰 (황야유성세약한)황야에 외치는 소리 세례자 요한

吐吼臨迫震怒來 (토후임박진노래)‘진노가 임박했다!’ 사자후를 토하니

群衆會集救主乎 (군중회집구주호)무리들이 모여 들어 ‘그리스도이신가?’

勿視指手瞻月煇 (물시지지첨월휘)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말씀 서예] 시편 126:5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1호)

 

 

 

 

 

[말씀 노래] 당신은 누구요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81호)

[본문] (마가복음 1:1-8)

[노랫말]

당신은 누구요 / 엘리야요, 그 예언자요

아니오, 아니오 / 주님의 길 곧게 하라고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X4)

[해설]

유대인의 대표자들이 베다니로 세례 요한을 찾아와 묻는다. “당신은 엘리야요?” “당신은 그 예언자요?” 세례 요한은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힌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삶은 복된 삶이다. 사명을 사는 삶이다.

[악보] 당신은 누구요 (높은소리 주원남 지음, 2014.10.15)

 

 

 

 

 

[시편 송서(誦書)] 시편 126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1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찬양대] 후렴)

1. 여호 와께 서-, 시온 의포 로를, 돌려 보- 내실, 때- -- 에-,

우- -리 는-, 꿈- 꾸는 것-, 같- -았 도-, 다- -- --∼

 

[여성 독창]

2. 그- 때- 에-, 우리 입에 는-, 웃- 음이 가득, 하- -- 고-,

우리 혀에 는-, 찬- 양- 이-, 찼- -었 도-, 다- -- --∼

 

[찬양대] 후렴)

그- -때 에-, 뭇- -나 라-, 가- 운- 데서, 말- -하 기를,

여호 와께 서-, 그들 을위 하여, 큰일 을행 하셨, 다- -- --∼ (하였도다)

 

[남성 중창]

3. 여호 와께 서-, 우- 리- 를-, (우- 리를) 위하, 여- -- --,

큰- -일 을-, 행하 셨으 니-, 우리 는기 쁘도, 다- -- --∼

 

[회중과 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여성 중창]

4. 여호 와- 여-, (여호 와- 여-), 우리 의- 포로, 를- -- --,

남- -- 방-, 시내 들- 같이, 돌려 보내 소-, 서- -- --∼

 

[찬양대] 후렴)

5. 눈- -물 을-, 흘- -리 며-, 씨를 뿌- 리는, 자- -- 는-,

(기- -- 쁨-), 기쁨 으- 로-, 거두 리- 로-, 다- -- --∼

 

[혼성 이중창]

6. 울- -- 며-, 씨를 뿌리 러-, 나가 는- 자는, 반- -드 시-,

기- -쁨 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 고돌 아오, 리- -- --∼ (로다)

 

[회중과 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후렴, 즉 뒷소리는 세마치로, 앞소리는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후렴)’ 부분의 가락은 전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가락으로 부른다.

‘후렴)’ 부분이 ‘시편’ 노랫말이면 찬양대 합창으로, ‘아리랑’ 노랫말이면 모두 합창으로 부른다.

앞소리는 가능하면, 여성독창, 남성중창, 여성중창, 혼성 이중창 등으로 변화를 준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 동화] 가리왕산(加里旺山) 성탄목(聖誕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모르 작사, 그뤼버 작곡]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자락 가리비 수도원 아이들이 성탄 새벽송 연습에 푹 빠졌습니다.

달도 안 뜬 깜깜한 밤에 촛불하나 밝혀놓고 새벽송 연습이 한창입니다.

 

가리비 수도원에 전기가 안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핵발전소 건설 반대랑 이산 저산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며

전기요금을 안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만 전기가 뚝 끊겨버린 겁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왜 ‘어둠에 묻힌 밤’이란 거지? 우리 가리비 수도원에 전기가 뚝 끊긴 걸 알아차린 건가? 예수님이 오신 거룩한 밤이면 온 세상이 환해지는 거 어닌가? 근데 왜 어둠에 묻히지? 예수님 오신 성탄절은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도 어둠에 묻히는 게 아니라 환하게 빛이 나야 맞는 거 아닌가? 우린 가뜩이나 어두운데 노래도 너무 우울해!”

 

영구가 툴툴툴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자 나리가 끼어듭니다.

 

“영구 넌 어디 멀리 갔다 왔니? 서울 갔다 왔니? 지난 주 연습할 때 수사님이 가르쳐주셨잖니? 이 노래는 원래 어둠에 묻힌 밤이 아니라 온 세상이 환하게 밝은 밤인데, 번역을 잘못해버렸다고! 그러니 너무 우울해 하지 마라 영구야.”

 

나리 말을 들으면서 어리둥절하던 영구가 차차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쩐지,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입니다.

새벽송 지도하던 시냇물 수사님도 빙그레 웃으십니다.

 

우리 시냇물 수사님은 강원도 정선 벽탄(碧灘)초등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푸를 벽 여울 탄, 푸른 여울이라는 뜻의 학교 이름이 하도 예뻐서

스스로 붙인 아호(雅號)가 시냇물입니다.

예배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원래 시냇물이라는 뜻이라시며,

어린이 새벽송 같이 졸졸졸 작고 고요한 음악을 특히 좋아하십니다.

 

다시 마음을 모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아주 작고 고요하게 부르기 시작합니다.

 

“쿵∼!!”

 

‘뭐지?’ 하나뿐인 촛불이 꺼져버릴 만큼 큰 진동입니다.

난데없는 커다란 소리에 놀란 아이들 눈이 보름달만큼 커집니다.

다람쥐보다 빠른 맹구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네요?

칠흑같이 깜깜한 밤인데도 갑자기 바깥이 환한 거예요.

너도나도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불도 없는 수도원 마당에 무언가 환한 물체가 떨어진 겁니다.

두근두근 조심조심 다가가보니, 세상에!

환한 빛을 뿜는 축구공만한 덩어리가 땅에 박혀 있지 뭐예요?

그게 운석(隕石)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요새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운석이 발견되고

남극 기지에서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운석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이죠.

 

운석(隕石)이란, 떨어질 운, 돌 석, 즉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돌이라는 뜻이에요.

흔히 별똥이라고 합니다.

별이 똥을 누었는데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졌네?

얼씨구? 그럼 지구가 변소란 말인가?

아무튼 뭐 옛 어른들이 그런 재치 있는 이름을 붙였네요.

 

“우와! 돌에서 빛이 나네?”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합니다.

 

“이상한데? 운석에서 이런 빛이 난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시냇물 수사님도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합니다.

언제 달려 나오셨는지, 다른 수사님들도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거립니다.

 

“근데 무슨 운석이 이렇게 울퉁불퉁 못 생겼지? 운석들은 대부분 매끈매끈 잘생겼던데?”

 

그때 수도원 막내 서빈이가 종알거립니다.

 

“우리 크리스마스트리에 저 별을 달면 참 좋겠다!”

 

서빈이의 말에 아이들은 너도 나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너나할 것 없이 아이들은 별똥 조각들을 줍습니다.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꺄르르 꺄르르∼”

 

어라? 어디서 나는 소리지?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갸우뚱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줍습니다.

엄지손톱만 한 것부터 서빈이 손바닥만 한 것까지 크기도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모두 열두 개 별똥조각을 주워 예배실 안으로 달려갑니다.

 

불도 없이 깜깜한 예배실 안이 은은하게 빛납니다.

성탄목에 달린 열두 개 별똥 조각들 덕분입니다.

가리비 수도원 성탄목에는 이미 12개의 장식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옆에 하나씩 별똥조각들을 붙이니까 참 보기 좋습니다.

마치 열두 제자들이 청사초롱 하나씩 밝힌 듯합니다.

 

금년엔 대림 첫 주일부터 성탄목을 세월호 생명나무로 꾸몄습니다.

세월호 노란 리본도 붙였습니다.

노란 바람개비도 붙였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 언니 오빠들의 예쁜 그림들도 붙였습니다.

별처럼 밝은 얼굴들입니다.

 

프란치스꼬 수사님은 성탄목에 열두 개 장식을 붙이시며

새 세상 생명나무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가 열린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생명수의)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요한계시록 22:2)

 

마치 하늘나라 세월호 언니오빠들이 생명나무 열매로 주렁주렁 열린 것만 같습니다.

언니오빠들 저 환한 미소가 지구별 아픈 사람들 마음을 다 치료해 줄 것만 같습니다.

욕심꾸러기 어른들의 시커먼 마음도 환하게 씻어줄 것만 같습니다.

 

“꺄르르 꺄르르∼”

 

또 꺄르르 꺄르르?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릴까?

가만히 보니 별똥조각들이 내는 소리입니다.

귀여운 소리를 낼 때마다 더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 때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은 얼른 바깥으로 달려 나갑니다.

바깥에 있던 수사님들 얼굴빛이 얼룩덜룩합니다.

모두 눈동자가 보름달만큼 커졌습니다.

아뿔싸! 별똥이 종알종알 말을 하는 겁니다.

 

“얘들아 안녕? 아이들 보니 더 반갑네?”

 

해물탕 가리비처럼 입이 딱 벌어진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수사님들과 달리

아이들은 별똥이의 인사에 종알종알 장단을 맞춥니다.

수빈이 형 현빈이가 인사합니다.

 

“야, 너 말할 줄 아네? 너 이름 뭐야?”

 

“내 이름? 난 이름 없어, 너희가 지어줘.”

 

그 때 현빈이 형 유빈이가 썩 나섭니다.

 

“난 유빈이야. 한유빈. 반가워 별똥아. 이제부터 넌 유성(流星)이야. 내 이름하고 비슷하니까 너도 내 동생 하면 좋겠다. 난 이미 동생이 둘이나 있거든? 현빈이랑 서빈이랑...”

 

유성이가 꺄르르 웃습니다.

 

“고마워 유빈아. 그런데 어쩌지? 난 너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걸?”

 

“몇 살인데?”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몰라. 하늘에선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거든... 아무튼 난 저 하늘위에서 이리저리 마실 다니면서 지구별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곤 했단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님 태어나실 때도 베들레헴 마을 꼭대기로 놀러 와서 기웃거리며 천사들의 합창을 들었지. 2천 7백 년 전 예언자 이사야가 노래하는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깜빡깜빡 졸기도 했단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의의 나무, 주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손수 심으신 나무라고 부른다.(이사야 61:3)

 

“그럼 유성아 이제부터 형이라고 부를게. 유성이 형아,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우리말을 잘하고 기억력도 좋아? 이사야 할아버지 자장가까지 다 기억하네?”

 

“오, 그건 그건, 참 좋은 질문이야. 그런데 유빈아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사야의 자장가 정말 아름답지 않니? 온 세상 힘없는 약한 사람들, 힘이 없어서 울고만 있는 사람들의 슬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기쁨이 스며들게 해주는 노래잖아?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이 기를 펼 수 있는 정의의 열매가 열린다는 노래야! 어때 우리 함께 불러볼까?”

 

그 때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네요?

이윽고 다른 수사님들과 아이들도 하나하나 합창을 합니다.

 

“재대신 화관을 내게, 슬픔대신 희락을, 근심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사,

우리로 여호와의 심으신 의의 나무되어 주께 영광돌리라.“

[Robert Whitney Manzano지음, 예수전도단 번역]

 

밝고 행복한 노래인데, 프란치스꼬 수사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네요?

그도 그럴 것이,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지금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전국을 돌아다니시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치셨거든요.

강원도 정선 산골짜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왕복한 것만도 여러 번이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수백 년 동안 우리 가리왕산을 지켜오던 나무 수만 그루가

겨울올림픽 스키장 만든다고 맥없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죠.

아무 힘없는 수사님 마음만 저리 무너져 내린 겁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 주르르 눈물과 함께

우리 프란치스꼬 수사님 마음 속 슬픔과 아픔까지 다 흘러내렸나 봐요.

별똥을 바라보는 수사님 얼굴이 훨씬 밝아졌습니다.

 

“유성이 형 고마워요! 오랜만에 이 노래를 부르니까 내 마음에 힘이 솟네요. 가리왕산 나무가 잘려나갔어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가 되어서 가리왕산을 지킬 거예요. 점점 큰 나무로 자라서 정의의 열매 많이 거두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거예요.”

 

가리비 수도원 아이들이 유성이를 꼭 안고 예배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수사님과 함께 유성이를 성탄목 꼭대기에 올려 장식합니다.

유성이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네요.

깜깜한 예배실 안이 환하게 빛납니다.

성탄목 세월호 언니오빠 얼굴들도 환하게 빛납니다.

 

별똥 조각 열 두 개도 꺄르르 꺄르르 시냇물처럼 맑게 웃습니다.

가리왕산 가리비 수도원에 전깃불보다 더 밝은 별빛이 들어왔습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12월 14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