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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대림절 2주(2014년 12월 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40:1-11)

1.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2.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4.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5.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6. 한 소리가 외친다. "너는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7.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9.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힘껏 높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말하여라.

10.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그가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리실 것이다. 보아라, 그가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11. 그는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시편 85:1-2, 8-13)

1.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땅에 은혜를 베푸시어, 포로가 된 야곱 자손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2. 주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악을 용서해 주시며, 그 모든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셀라)

8.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9.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

10.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11.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12.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13.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3:8-15a)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마가복음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8.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대림절 둘째 주의 분위기는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주님 오실 길 닦는 사람>입니다.

시편본문은 이를 ‘정의’라고 표현합니다.(13)

복음서본문은 이를 ‘세례자 요한’이라고 소개합니다.(4)

 

오늘 요절은,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로 정합니다.(이사야 40:3)

 

 

[구약과 시편 (이사야 40:1-11 / 시편 85:1-2, 8-13)]

오늘 구약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한 소리가 외친다”(3, 6)입니다.

이 “소리”는 두 가지 명령을 외칩니다.

 

(1) 하나는 ‘주님 오실 길 닦기’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사막에” 길을 닦고, “큰 길을 곧게” 내라고 합니다.(3)

왜 그런 곳에 길을 내라는 것일까요?

광야, 사막이란 복잡한 도시에 비해 외진 곳, 즉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입니다.

먹을거리 마실 것 하나 없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의식주(衣食住)가 없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경제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곳입니다.

주님 오실 길은 바알 같은 물신(物神)들이 다니는 길과 차원이 다른 길입니다.

 

그리고 “모든 계곡”, “산과 언덕”, “거친 길”, “험한 곳”을

평평하게 하라고 합니다.(4)

주님 오실 길을 내는 데는 ‘경제 잡귀잡신’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銘心)해야 합니다.

 

(2) 다른 하나는 ‘외치는 일’입니다.

무어라 외치는가? 풀과 같다고 외치는 것입니다.(6)

바벨론은 아주 약하다. 알고 보면 강대국은 아주 약하다.

갑(甲)질하는 갑돌이 갑순이들은 아주 약하다.

정의를 왜곡하고 무소불의로 휘두르는 권력은 사실 아주 약하고 볼품없다.

곧 마르고 시들 풀꽃 같을 뿐이다.

이것이 6-9절에서 가리키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외쳐야 할 말씀입니다.

 

권력과 경제 앞에 주눅 들지도 현혹되지도 않고,

평등의 깃발을, 하나님 말씀의 깃발을 치켜드는(8) 삶!

이것이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인생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정의”와 “평화”입니다.

각각 3차례씩 반복해서 나옵니다.

특히 10절의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주님의 길을 닦는 일을 가리켜 “정의”라 의인화(擬人化)하여 묘사합니다.(13)

구약본문에서, 주님의 길 닦는 열쇠인 ‘평등’의 문제가 다시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베드로후서 3:8-15a / 마가복음 1:1-8)]

오늘 서신서본문에는 대림절 주제 ‘기다림’의 양면성이 보입니다.

우리가 주님 오심 기다림과(12, 13, 14)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심, 즉 “오래 참으심”입니다.(9, 15)

 

“하나님의 날”(12),

그런데 그 날(“새 하늘과 새 땅”)에 “정의가 깃들여”있다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13)

지금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그분,

그분 오시는 길,

그분 오셔서 이루실 나라가 바로 정의의 나라라는!

 

그러니 정의와 반대편에서 권력과 경제를 주무르며 사는 사람들은

그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날 오기를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불평등, 부정부패 세상에서 신음하는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12)

그런 염원을 품은 자는 마땅히 주님의 길 닦기에 여념이 없는 법입니다.

미끄러질 듯 반질반질하게, 그리고 곧게 길을 닦아야

더 빨리 오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오실 길 닦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서본문은 그 첫 걸음이 바로 “회개”라고 합니다.

3절과 4절의 이음새가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마가 1:3-4)

 

이는 서신서본문 14절과도 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벧후 3:14)

 

그리고 9절의 알맹이도 회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벧후 3:9c)

 

 

[정리]

대림절 2주의 주제는 ‘주님 오실 길 닦기’입니다.

그 길 닦기의 핵심은 평등입니다.

일반 토목공사 ‘길 닦기’에도 ‘평등’이라는 주제가 스며있습니다.

 

권력과 경제의 평등은

유사 이래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꿈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런 정의(正義)의 열매는 주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열매,

약속하신 나라입니다.(벧후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나라를 완성하러 오시는 주님,

그 오시는 길을 닦기 위해 우리는 티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합니다!(벧후 3:14)

주님 오실 길 닦기 첫걸음은 바로 내 안의 불평등, 부정부패를 닦는 일,

곧 회개입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처럼 사는 일입니다.

그가 입은 옷, 먹는 음식, 사는 곳, 즉 의식주(衣食住)를 유심히 보십시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마가 1:6)

 

그의 삶은 맘몬, 물신(物神)주의, 경제이데올로기의 손아귀로부터 멉니다.

물론 광야가 아닌 세상나라들 속에 섞여 사는 우리는

의식주, 즉 경제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명심(銘心), 즉 심장에 새겨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식주(衣食住) 즉 경제평등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없이

오늘 본문말씀이 가리키는 온전한 회개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 강강술래 노랫말

 

뛰어보세 뛰어보세, 업신업신 뛰어보세

높은 마당 낮아지고, 낮은 마당 높아지게

 

강강술래에서 자주 반복되는 노랫말입니다.

마치 오늘 구약본문인 이사야 40:4절 말씀이 연상됩니다.

 

강강술래를 놀았던 우리 전라도 바닷가 아주머니들께서

이 성경말씀을 알고 지은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온 몸으로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일까요?

 

** “마당은 기울어졌어도 장단은 바로 쳐라!”

오래전부터 전통문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해온 말입니다.

비록 마당이 삐뚜름하게 기울어졌어도

장단을 치는 고수가 울퉁불퉁하게 치면 안 되는 법입니다.

시대가 공평하지 않고 불평등해도

장단을 치는 고수, 즉 언론은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요새 언론은... 참 마음이 아픕니다.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입니다.

1985년 경 나에게 노자와 장자를 가르쳐주셨던

함석헌 선생님께서도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부가 강도의 소굴이 되고, 학교, 교회, 극장, 방송국이 다 강도의 앞잡이가 되더라도 신문만 살아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사실 옛날 예수, 석가, 공자가 섰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습니다. 신문이 민중을 깨우고 일으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씨의 소리’ 창간호 창간사 중에서, 『시사IN』374호 73쪽에서 재인용)

 

 

 

 

[말씀 동시] 우리는 지금 힘들지만 (변나빈 지음. 향린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1호)

우리는 지금 힘들지만

하느님나라가 올거야.

지금 조금만 참으면

우리는 구원 받을 거야.

하느님나라가 올거야.

우리가 손잡고 위로하는 그곳이.

그때가 하느님나라일거야.

 

 

 

[말씀 시조] 예수님 오실 때에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1호)

예수님 오실때에 길닦는 심부름꾼

광야에서 외치는자 그이름 요한이여

요단강 세례베풀며 성령세례 기다려

 

 

 

[말씀 한시] 몸에 걸친 단 벌 옷이 내게 족하고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1호)

心言作詞牧者乎(심언작사목자호)심언(心言) 목사님은 ‘저 목자여!’ 찬송을 창작했다

簞瓢單衣自足恩(단표단의자족은)‘몸에 걸친 단벌옷이 내게 족하고’(이 구절이 너무도 은혜스럽다)

朱門宗人不便歌(주문종인불편가)배부른 종인(宗人)들은 부르기가 편치 않아

新編讚集除外刊(신편찬집제외간)咄(돌!) 새 찬송가 출판할 때 아예 빼어버렸다. 쯧쯧!

 

 

 

 

 

[말씀 서예] 시편 85:13 (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1호)

 

 

 

 

 

 

[말씀 노래] 세례요한 (홍의종 지음. 『성실문화』81호)

[본문] (마가복음 1:1-8)

[노랫말]

주의 길을 예비하고 곧게 하라 한 것 같이 / 세례 요한 부름 받고 주님 앞서 왔다네

회개 세례 선포하니 사람들 죄 회개하고 / 요단강에 들어가서 세례 받았네

우 - / 우 -

낙타 털옷 가죽 띠에 메뚜기와 들꿀 먹는 / 세례 요한 이와 같이 선포하였네

나는 그분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도다 /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그리스도 성령으로 세례 베푸실 것이다 /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아멘

우 - / 우 -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아멘

 

[해설]

본문 말씀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어 보았다.

음원은 다음 카페 ‘성서일과사랑방’의 ‘노래 자료실’ 방에 올려놓았다. 악보만 보기보다는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는 것이, 곡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성서일과사랑방’ 카페에서 곡을 들어보고 소화하여 창조적으로 표현해 보기를 권한다.

 

[악보] 세례 요한 (홍의종 지음, 2014년 10월 17일)

 

 

 

 

 

[시편 송서(誦書)] 시편 85:1-2, 8-13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1호)

(*전래자장가-천자문 독송-풍으로)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그-- 산물을) 내리-로다-∼

 

[다함께]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의-가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말씀 동화] 세례자 요한, 메뚜기랑 어깨동무하다!

 

봉성리 둥글레수도원 지붕 위로 둥근 해가 둥실 솟아오릅니다.

둥글둥글 둥그런 수도원 지붕이 파파 할머니머리처럼 하얗습니다.

밤새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가 따뜻한 햇볕에 서리서리 녹기 시작합니다.

 

수도원 아이들이 삼삼오오 수도원 언덕을 오릅니다.

도란도란, 속닥속닥, 꺄르르 꺄르르르 ...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는 아이들 세상입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말씀놀이 하는 날이거든요.

한 달에 한번 말씀놀이는 아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놀이입니다.

흔히 성경퀴즈대회라고 부르는 수도원 말씀놀이에는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죠.

그건 성경퀴즈 문제를 선생님과 아이들이 번갈아 낸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문제를 낼 차례입니다.

 

‘선생님들이랑 수사님들이 쩔쩔매는 문제를 내고야 말겠어!’

 

아이들은 지난 주 내내 기발한 말씀놀이 문제를 뽑기 위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자, 첫 번째 문젭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왜 하필이면 ‘광야’와 ‘사막’에 길을 내라고 했을까요?”

 

초롱초롱 눈빛으로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수사님들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어른들을 보는 재미가 꺄르르 꺄르르입니다.

벌름벌름, 아이들의 콧구멍이 점점 커집니다.

바로 그 때 유재석 선생님이 번쩍 손을 들며 크게 외칩니다.

 

“정답! ,,, 싸니까!”

 

‘싸니까’라니? 이건 무슨 뜻일까요?

유재석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아이들 표정을 굽어보며 아빠미소를 머금고 대답합니다.

 

“큰길을 내는데 도시에다 내려면 길 가의 집도 허물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집을 사들여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들고, 집주인이 안 팔겠다고 하면 골치 아프고, 그러니까 아예 아무도 안사는 광야나 사막에 길 내는 게 훨씬 편하고 싸지 않겠어? 경제적으로 깊이 고려한 결과라고 나는 봐!”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갸우뚱거리고만 있습니다.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아이들도 정답을 아는 건 아닙니다.

자기들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가리고 가려서 뽑아낸 문제거든요.

그래야 선생님들도 못 풀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그때 곁에 있던 김제동 선생님이 끼어듭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는데 비싸고 싼 게 문제가 될까?

 

이 말을 듣고 있던 신해철 선생님이 끼어듭니다.

 

“내 생각엔 말이야, 광야나 사막 같은 곳에 길을 내는 이유는 두 가지 같아. 하나는, 거긴 화려한 집도 옷도 먹을거리도 없다는 거지. 한마디로 의식주(衣食住)가 없잖아? 가만히 생각해 봐라. 성경말씀에 보면 하나님이랑 정반대 편에 누가 있는지 알아? 그게 바로 바알신이나 아세라 신, 황금송아지 같은 우상들이거든. 그런 물신(物神), 물질의 신, 의식주의 신, 즉 돈, 풍년, 경제 이런 거 말이야. 그런 거대하고 화려한 우상들, 즉 의식주 경제문제로 사람들의 목줄을 꽉 틀어쥐고 있는 신들이라면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강남스타일 같은 곳에 길을 내서 온 세상 사람들 환호성을 받으며 거만하게 레드카펫을 밟으며 오겠지! 하지만 우리 주님이 과연 그런 분일까? 그건 아니지? 예수님 사신 모습 보면 알잖아? 딱 답이 나오잖아?”

 

“그럼 또 하나 이유는 뭔가요?”

 

초롱초롱 영구가 질문합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나리가 영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입니다.

 

“야, 우리가 질문하면 어떡해? 우린 문제를 내야지.”

 

영구가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사이에 신해철 선생님의 답이 미끄러지듯 이어집니다.

 

“좋은 질문이다. 그건 말이다, 우리 주님은 많은 사람들 눈에 띄게 오시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 딱 한번 ‘호산나 호산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에 입장하신 적이 있었지만, 십자가 지실 때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 받으실 때, 그거 아무 의미 없음! 딱 아셨거든. 그리고 오늘 서신서 말씀에도 나오잖아?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라고!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사람 아무도 안사는 광야나 사막 같은 곳에 길 내는 거 당연하잖아?”

 

초롱초롱 빛나게 경청하던 나리가 순발력 있게 질문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정답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나갑니다. 방금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온다고 했는데요, 왜 하필이면 ‘도둑’이라는 비유를 들었을까요? 느낌이 너무 안 좋잖아요? 거룩하신 주님을 가리키는 단어로는 부적절하다고 보는데요? 왜 도둑이라는 비유를 들었을까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선생님과 수사님들의 얼굴을 빙글빙글 바라봅니다.

어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들의 콧구멍이 다시금 벌름벌름 거리기 시작하네요?

바로 그때 또 다시 신해철 선생님이 입을 엽니다.

 

“역시 문제는 경제가 아닐까?”

 

“잠깐만요. 형은 아까 했잖아요? 나도 좀 말할게요.”

 

단추 구멍 김제동 선생님이 얼른 나섭니다.

‘단추 구멍’은 김선생님 눈이 고만큼 작아서 붙은 별명이죠.

신해철 선생님 뺨칠 정도로 달변이신 김제동 선생님의 해석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바로 그거죠. 방금 우리 해철샘 말씀처럼, 문제는 경제죠.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경제에 약하잖아요? 그건 돈 많은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이나 똑같아요. 온 세상의 아킬레스건이거든요. 그걸 건드리면 누구나 싫어하죠. 도둑이 뭡니까? 그게 바로 세상 사람들 아킬레스건을 겁도 없이 건드리는 나쁜 놈이잖아요? 내 경제를 건드리는 놈이잖아요? 내 목숨 같은 의식주, 내 돈을 몰래 훔쳐가는 놈이잖아요? 그게 도둑이죠? 주님께서 도둑처럼 오신다고 한 건 두 가지 뜻을 가진 아주 탁월한 비유라고 저는 생각해요. 첫째는 아무도 모르게 오는 거죠.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오신다는 거죠. 집주인이 빤히 다 알고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는 도둑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쵸? 둘째도, 바로 경제, 그겁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조차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그 경제, 내 돈, 그게 주님오시는 날, 아이고 의미 없다,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란 말씀이죠. 주님오시는 날이 바로 세상 경제 다 날아가 버리는 날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 불철주야 생고생하며 긁어모은 게 다 날아가 버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주님의 날 오는 걸 싫어할 겁니다. 도둑 싫어하는 것 처럼요.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린 꼴이 되니까! 그래서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오신다고 바울이 표현한 거죠. 물론 주님께서 도둑처럼 오신다고 한 것은 예수님도 표현하셨고요. 요한계시록 3장 3절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역시 김제동 선생님 대답은 언제나 물 흐르듯 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말이 많긴 해도 그래도 버릴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네요?

 

도저히 풀리지 않던 성경말씀이 조금조금 이해가 되니까 반갑고 기쁜 한편,

오늘도 어른들이 우리 문제 다 맞춰버리면 어쩌지 하는 표정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문제를 어른들이 하나라도 못 맞추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맛있는 상을 주게 되어 있거든요.

 

“오늘 말씀놀이 문제 다 떨어졌나?”

 

“아직 하나 남았거든요. 이게 진짜 어려운 문제니까 잘 듣고 답해보세요. 자, 문제 나갑니다. 오늘 구약말씀에 보면요,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고 하셨는데요. 이건 진짜 고속도로 같은 길 낼 때 공사하는 것 같거든요? 길은 울퉁불퉁하면 차가 못 달리니까요. 그렇다면 진짜 주님께서 오실 때도 자동차 타고 오신다는 건가요? 지난주일 마가복음에서는 분명히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구름타면 길 공사할 필요 없지 않나요?”

 

아이들의 콧구멍이 또다시 벌름거리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낚싯줄에 묵직한 월척이 걸렸을 때 기분 같습니다.

순간 또다시 김제동 선생님이 대답을 시작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끼어들 겨를도 없습니다.

 

“구름은, 성경말씀에서 구름이란 거룩하신 주님이 움직이실 때 당연히 따르는 현상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히브리 백성들과 동행하실 때 그 구름기둥 기억하죠? 복음서에도 보면, 변화산에서 예수님이랑 제자들 셋이랑 계실 때 구름 속에서 들려온 하나님 음성 기억하죠? 그건 그렇고, 왜 길을 닦으라 하셨을까? 그것도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아니라 넓고 잘 닦은 길을 내라고 하셨을까요?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봐요. 하나는 주님의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길을 잘 닦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에도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씀 나오잖아요? 그날을 앞당기는 방법은 씽씽 달려오실 수 있게 하는 거겠죠?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보다 씽씽 달려오는 거겠죠? 그러려면 길을 곧고 울퉁불퉁하지 않게 판판하게 잘 닦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길 닦는다는 표현에 담긴 알맹이가 바로 평등입니다. 어딘 높고 어딘 낮게 울퉁불퉁하다는 건 바로 경제적으로 잘살고 못사는 거 차이 많은 불평등한 세상을 가리킵니다. 물론 경제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불평등한 건 많겠죠?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큰 게 경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겁니다. 바로 이 울퉁불퉁한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드는 게 주님 오실 길 닦는 핵심이라는 거죠. 그런데 오늘 서신서와 복음서 본문을 잘 읽어보면요, 이 길 닦는 일이 뭐냐 하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린 누구나 다 마음속에 그리고 몸속에 불평등의 바이러스, 즉 욕심들이 참 많으니까요. 우리가 크고 작은 내 안의 탐욕을 하나하나 씻어내는 일이 바로 주님 오실 길을 닦는 일이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시스템문제, 그 울퉁불퉁한 불평등문제, 가난한 서민중심이 아니라 돈 많은 대기업중심의 경제정책들 이런 게 바로 우리 모두 힘을 합해 닦아내야 할 불평등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기업이 더 큰 부자가 되면 서민들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 얼마나 큰 거짓말인지는 이제 다 아는 사실이죠, 그쵸?”

 

우리 수도원 아이들 표정이 또 가지각색이네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는 얼굴표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너무 어렵다는 표정도 있고,

또 어른들이 다 맞춰버렸네 하는 허탈한 표정도 보이네요?

바로 그 때 맹구가 얼굴가득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합니다.

 

“이게 진짜 마지막 문제인데요, 이번엔 유재석 선생님이 대답해 주세요. 좀 어려운 문제지만요, 난센스퀴즈 비슷한 거니까 너무 겁먹지는 마시고요.”

 

“너무 오래 뜸들이지 말고 어서 문제 내라.”

 

유재석 선생님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맹구의 입만 바라봅니다.

맹구와 아이들은 꽁꽁 감추어두었던 비장의 무기, 히든카드를 꺼냅니다.

 

“오늘 복음서말씀에 보면요, 세례자요한이 나오는데요, 아까 해철샘 말씀처럼 요한의 의식주 얘기가 나오는데요, 그러니까 요한은 예수님 오실 길 닦는 사람답게 의식주, 경제문제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의 포스가 막 풍겨 나오거든요? 잘 지은 집도 없는 광야에서 살면서 옷도 거친 옷만 입고, 먹는 것도 기름진 고기도 안 먹고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안 먹고, 들꿀만 먹는다잖아요? 여기서 문제! 왜 요한은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을까요? 메뚜기가 꿀을 먹을 수 있나요? 들꿀은 곰돌이 푸가 좋아하는 거니까, 푸와 함께 들꿀을 먹었다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텐데, 왜 꿀을 먹지도 않을 것 같은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고 표현한 걸까요? 그나저나 과연 요한은 어떻게 그 작은 메뚜기와 어깨동무가 된 것일까요?”

 

유재석 선생님 표정이 복잡합니다.

역시 난센스퀴즈는 어른들의 약점입니다.

신해철 선생님이랑 김제동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경본문을 다시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마침내 맹구의 난센스퀴즈의 답을 알았다는 듯

두 선생님은 깔깔깔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평소 메뚜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유재석 선생님만 여전히 심오한 표정으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윽고 유재석 선생님이 답을 내놓습니다.

 

“아주 남다른 좋은 문제구나. 물론 메뚜기는 세례자 요한 뿐 아니라 누구나 좋아하는 곤충이란다. 뒷다리가 튼튼해서 달리기도 퍽 잘하지.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메뚜기를 좋아하는 데는 다른 까닭이 있단다. 성경에서 메뚜기는 세례자 요한과 비슷한 레벨로 통하거든! 출애굽기 10장에 보면 하나님말씀 우습게 여기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8번째 재앙으로 메뚜기떼를 보내시지. 그뿐 아니라 성경말씀 곳곳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보다 경제를 더 좋아해서 우상숭배할 때면 종종 메뚜기떼를 보내신단다. 그러면 모든 경제의 중심인 곡식이 다 없어지는 바람에 백성은 쫄쫄 굶게 되고, 마침내 회개하게 되거든! 늘 문제는 경제야! 경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도 멀어지게 되는 거거든. 경제 때문에 하나님 오실 길도 울퉁불퉁하게 되고 말이야. 그래서 그 울퉁불퉁한 경제문제를 깨끗이 평평하게 해결하는 해결사가 바로 메뚜기지! 그러니까 메뚜기랑 요한이랑 어깨동무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아마 메뚜기가 세례자 요한의 마스코트 같은 게 아니었을까?”

 

김제동 선생님과 신해철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마주보며 배를 잡고 깔깔 웃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정말 그럴듯한 유재석 선생님의 대답에 너도나도 무릎을 칩니다.

오늘도 둥글레수도원 말씀놀이 한마당이 밝은 웃음꽃 속에서 무르익어갑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12월 7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