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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12주 (추수감사주일, 2014년 11월 16일) 예배준비 노트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성서일과 4본문]

(신명기 8:7-18)

7.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데리고 가시는 땅은 좋은 땅입니다. 골짜기와 산에서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이며,

8.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9.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돌에서는 쇠를 얻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입니다.

1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옥토에서, 당신들은 배불리 먹고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11.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전하여 주는 주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12. 당신들이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지라도,

13. 또 당신들의 소와 양이 번성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당신들의 재산이 늘어날지라도,

14.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당신들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5. 주님께서는 넓고 황량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광야와 물이 없는 사막에서 당신들을 인도하여 주시고, 차돌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16. 광야에서는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당신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7. 당신들이 마음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18.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당신들에게 힘을 주셨음을,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65)

1. 하나님, 시온에서 주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일이니, 우리가 주님께 한 서원을 지키렵니다.

2.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육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3. 저마다 지은 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려울 때에, 오직 주님만이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4. 주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어 주님의 뜰에 머물게 하신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집, 주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온갖 좋은 복으로 만족하렵니다.

5.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주님께서 그 놀라운 행적으로 정의를 세우시며,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시므로 땅 끝까지, 먼 바다 끝까지, 모든 사람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6. 주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허리에 띠를 동이시고 산들이 뿌리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7. 주님께서는 바다의 노호와 파도 소리를 그치게 하시며, 민족들의 소요를 가라앉히셨습니다.

8. 땅 끝에 사는 사람들까지, 주님께서 보이신 징조를 보고, 두려워서 떱니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까지도, 주님께서는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9. 주님께서 땅을 돌보시어, 땅에 물을 대주시고, 큰 풍년이 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놓으신 물길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오곡을 마련해 주시니,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다가 그렇게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10. 주님께서 또 밭이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이랑 끝을 마무르시며, 밭을 단비로 적시며, 움 돋는 새싹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11. 주님께서 큰 복을 내리시어, 한 해를 이렇듯 영광스럽게 꾸미시니, 주님께서 지나시는 자취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12. 그 기름이 광야의 목장에도 여울져 흐르고, 언덕들도 즐거워합니다.

13. 목장마다 양 떼로 뒤덮이고, 골짜기마다 오곡이 가득하니,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오고, 즐거운 노랫소리 그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9:6-15)

6. 요점은 이러합니다.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

7.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8.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9.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 한 것과 같습니다.

10. 심는 사람에게 심을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씨를 마련하여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여러분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

13. 여러분의 이 봉사의 결과로,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또 그들과 모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14. 그들은 또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여러분을 그리워하면서, 여러분을 두고 기도할 것입니다.

15.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아래, 『성실문화』 80호 '예배마당'에 실은 것을 조금 다듬어 실었습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추수감사절이라는 나무는 두 개의 큰 줄기로 자라고 있다.

‘추수’와 ‘감사’!

추수는 또한 두 개의 가지로 나뉜다.

내가 추수하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추수하시는 것!

주님께서 추수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심판,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

한 인간의 일생을 놓고 본다면, 그의 삶을 총 결산하는 죽음과정을 가리킬 것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제단을 준비할 때마다 우리는 늘 기쁨과 긴장이라는 두 가지 열매를 놓쳐서는 안 된다.

 

[4본문 전체에 감도는 느낌]

이번 성서일과 4본문에는 추수와 감사의 주제가 모두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감사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감사를 잊게 만드는 원인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요절로, “당신들은 기억해야 합니다”(“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개역개정)를 택했다.(신명기 8:18)

 

[구약과 시편 (신명기 8:7-18 / 시편 65)]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를 꼽으라면, ‘기억하라, 잊지 말라 하나님을’ 일 것이다.(11, 14, 18)

구약본문에서 자주 눈에 띄는 구절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네 하나님 여호와”)이다.

7, 10, 11, 14, 18절 등에 걸쳐 다섯 차례나 반복해서 나온다.

신명기(申命記)의 첫 글자인 ‘거듭 신(申)’이 가리키듯,

주님의 말씀을 거듭 되풀이해서 뇌야 함이 신명기의 주제인데,

그 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첫 이름, 바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다(11).

 

좋은 땅, 옥토로 이끄신 하나님(7, 10),

이렇게 추수할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나님(18)을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잊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오늘 구약본문에서는, 그건 바로 “교만한 마음”(14)이라고 단언한다.

재산이 늘어나게 되면(12-13) 자칫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17)

 

이 대목에서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은 매우 중요한 열쇠 하나를 준다.

뭐랄까? 참복[진복眞福]의 곳간열쇠랄까?

내 주님 덕분에 추수하여 재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주님을 더 잘 잊어버리기 십상인

이 고질적인 모순을 깨뜨릴 길,

그 참 복의 곳간열쇠는, 뒤에 반복되지만, 바치는 삶, 아낌없이 나누는 훈련이다.

 

오늘 구약본문이 “하나님”을

- 출애굽 시키시고(14), 광야 40년을 동행하시고(15-16), 옥토로 들이신(7-10) -

그 하나님 이름을 자꾸자꾸 부르는 최종 목적이 바로 이것,

아낌없이 나누는 일을 기억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내 삶에 참 복이, 참 감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으로 선택된 시편본문도

“주님”이 무려 22차례나 반복될 정도로 하나님,

우리에게 “온갖 좋은 복”(4), “큰 복”(11)을 내리신 그분을 부르고 있다.

올해도 “큰 풍년”(9)이 들게 해주신 주님을 자꾸만 부른다.

큰 복,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마땅히 해야 하는 최고의 표현 ‘감사 찬양’을 부르며

이렇게 주님을 자주 부르는 것이다.

이는 “복이 있는 사람”(4), 하늘 복을 깨달은 사람이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 은혜로 복스러운 추수를 하게 된 내가,

그래서 ‘머리’로 주님을 기억하고, 입으로 주님을 부르고 있는 내가,

동시에 ‘몸’으로, ‘공동체’로 주님을 기억하고 부르는 길은 무엇일까?

오늘 서신서본문이 이에 대한 중요한 길을 보여준다.

 

 

[서신서와 복음서 (고린도후서 9:6-15 / 누가복음 17:11-19)]

고린도교회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나눔의 길을 씩씩하게 가라고 권면하는

사도바울의 힘찬 육성이 오늘 서신서 본문에 구구절절이 잘 드러난다.

앞서 살핀 구약본문에 이어서,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이러한 나눔의 길이다.

바로 이점에 대하여 오늘 서신서 본문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여러분이 수행하는 이 봉사의 일은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입니다.”(고린도후서 9:12)

 

‘나’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넘어

‘너’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된다는 선한 논리,

상승(上昇, 相昇)논리이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크나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는 우리 모습을 거울처럼 환하게 보여주는 말씀,

유명한 ‘나병환자 열 사람’ 이야기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던 중에 생긴 일이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는데

나병환자 열 사람이 멀찍이 멈추어 서서 소리 높여 외친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는 행동으로 봐서, 몸은 상했어도 정신은 멀쩡하다.

율법을 준수할 줄도 알고, 예수님 소문 듣고 찬스를 놓치지 않는 순발력도, 판단력도 멀쩡하다.

게다가 간절한 마음도 있으며, 심지어 예수님 말씀에 즉시 순종하는 믿음도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 가지 병을 무려 열 사람이 동시에 앓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도 다양한 출신의 병자들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의 치병(治病) 기록 가운데 특이한 경우로 보인다.

 

열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유일하게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드린 건

단 하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나머지 아홉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었을까?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제사장에게 갈 필요가 없었던 걸까?

또는 필요성이 적었을까?

 

아무튼 분명한 건, 문맥으로 보아 지금 예수님 마음이 편치 않으심이다.

그럼에도 사마리아 사람에게 큰 덕담을 내리신다.

아니 새 생명을 선포하신다.

이로써 사마리아 사람은 열 사람 중 유일하게 예수님 가까이에 다가간 사람,

유일하게 예수님의 구원 육성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정리]

왜 제사장을 찾아가야 했는가?

정결예법이 무엇이고 예배법이 무엇인가?

지금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대행자 제사장을 찾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

예수님을 두고 도대체 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두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아홉 나병환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혹시 그 중 몇 명쯤은 늦게라도 예수님을 찾아 나서진 않았을까?

하나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교회예법에 따라 예배당에서 찬양하고 추수감사헌금 바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다 직접적인 예배, 참 성전, 참 하나님을 찾아가는 예배란,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처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바깥에 계시는 예수님,

우리 중의 작고 약한 자를 찾아가 내 것을 나누어 바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완성이요,

예수님 기억의 절정일 것이다.

이 생각은 다음 주 본문인 마태복음 25:31-46로 이어진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마태 25:40)

 

 

[나머지]

* 어플루엔자 [= 어플루언트 affluence 풍요 + 인플루엔자 influenza 유행성 감기]

풍요병, 명품병, ‘소비중독 바이러스’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런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까지 생겼다.

기존의 가치 체계가 붕괴되면서, 돈이 모든 것의 최종판단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오늘 구약본문의 “교만한 마음”, 즉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웃을 잊어버리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증세가 아닐까?

이런 어플루엔자가 심해지면서 사람은 걸귀(乞鬼),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걸귀,

내 옆에서 배고파 신음하는 약자가 절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결귀가 되어가는 것일 게다.

 

** 우울하신 예수님

오늘 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우울하시다.

나병을 고쳐주셨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아홉 사람 때문이다.

어떤 보상을 바라신 것이 아니다. 치료비를 바라신 것이 아니다.

감사헌금을 바라신 것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무런 감사의 표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감사로 응답하는 법이다. 받은 은혜만큼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의 마음이 솟으면 자연히 자기 형편대로,

감사한 마음의 감동만큼 이런 저런 방법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주님께 은혜를 받았는가?

나병환자들만큼 은혜를 받았는가?

아니다 어찌 나병을 고치신 것과 비교가 되겠는가?

온몸의 살과 피를 다 쏟아 나를 살리셨는데, 그 은혜를 어찌 나병 고치신 것에 비길 수 있겠는가!

 

그러면 나의 감사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단 한사람 사마리아 사람처럼 주님 앞으로 달려와 엎드려 감사를 표현하는

그런 아주 단순하고도 아주 상식적인 그 감사가 지금 나에게 있는가?

 

기쁜 추수감사절을 맞아 더 이상 주님을 우울하시게 만들지 말자.

감사의 구체적인 표현, 적극적인 표현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주님께서 지금 가장 즐거워하실 감사의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금 굶는 이들에게 내 먹을거리를 나누어주는 일일 것이다.

 

 

 

 

[말씀 동시] 양들과 개 한 마리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1학년. 『성실문화』 80호)

병든 양들과 비루먹은 개 한 마리

목자의 간호로 새 삶을 얻어 놓으니

양들은 풀밭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고

개 홀로 앉아서 목자 곁을 지킨다

개를 바라보며 내쉬는 목자의 한숨

 

 

 

[말씀 시조] 누가복음 17:11-19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0호)

예수께 부르짖던 열사람 나병환자

말씀에 순종하니 길가다 나았도다

열사람 다나았는데 아홉명은 어디에

 

 

 

[말씀 한시]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0호)

耶路撒冷路 (야로살랭로) 예루살렘 가는 길에서

癩病十人面 (나병십인면) 한센 환자 열 명을 만나셨다

皆口號叫救 (개구호규구) 부르짖으며 ‘고쳐 주소서’ 큰 소리로 외치니

耶穌卽時全 (야소즉시전) 주께서 그 즉시로 온전케 하셨다

只一感謝主 (지일감사주) 하지만, 단 한 사람만 주께 와 감사기도

主曰餘九安 (주왈여구안)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施恩莫求報 (시은막구보) 은혜를 베푼 자는 보답을 기다리지 말 것이고

受者勿忘恩 (수자물망은) 은혜를 입은 자는 그 은혜를 잊지 말자.

 

 

 

[말씀 서예] 시편 65:1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0호)

 

 

 

 

 

[말씀 노래] 나병환자 열사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0호)

[본문] (누가복음 17:11-19)

[노랫말]

1. 예수님 예루살렘 가시는 길에, 갈릴리 사마리아 사잇길에서

나병환자 열사람 만나셨어요, 저들이 멀찍이서 소리칩니다

2. 예수님 선생님 예수선생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너희몸 제사장께 보여드려라, 나병환자 열사람 길을 갑니다

3. 저들이 길을가다 깨끗해지네, 단한명 찬양하는 사마리아인

가던길 돌이켜서 예수님께와, 큰절을 올리면서 감사합니다

4. 어리둥절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열명중 아홉사람 어디있느냐

사마리아 사람아 일어나거라, 네믿음이 네모든것 구원하였다

 

[해설]

나병환자 열 사람 가운데 십분의 일인 사마리아 나병환자만 돌아온 사건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어서 아리랑가락에 얹었다.

[악보] 나병환자 열사람 (이정훈 지음, 2014년 월 일)

 

 

 

 

 

 

[시편 송서(誦書)] 시편 65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80호)

(*천자문 독송 - 전래 자장가 풍으로)

 

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3. 죄-악이-- 나를- (나를-),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 나이다---

 

8.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 나이다---

 

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

 

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기쁨으로-- 띠를 띠-었- 나이다---)∼

 

[다함께]

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말씀 동화] 흥부놀부의 꿈 이야기

(* 흥부놀부 이야기와 성 마틴 이야기, 그리고 전래민담 ‘저승곳간(영암 덕진 다리) 이야기’를 참고해서 재구성했습니다. 마침 지난 주 11/11일이 ‘성 마틴의 날’이었습니다.)

 

놀부랑 흥부는 서로서로 딴 마을에 삽니다.

놀부는 아랫말, 흥부는 윗마을에 살아요.

원래 놀부랑 흥부는 친형제라 한집에 살았었죠.

그런데 놀부 형이 유산 욕심 때문에 아우 흥부를 집에서 내쫓아버린 거예요.

 

아랫말과 윗마을 사이에는 흑천(黑川)이 흐르고 있었죠.

물개처럼 새까만 돌들이 많아 맑은 냇물이 까맣게 보인다고 흑천입니다.

그런데 몇 해 전 홍수로 다리가 떠내려갔네요?

그 바람에 아랫말과 윗마을은 졸지에 남남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늦가을 추운 밤이었어요.

흥부는 낡은 외투 옷깃을 잔뜩 여미고 집에 가고 있었죠.

그런데 저게 뭐지?

집 가까이 길가에 웬 낯선 사람이 잔뜩 웅크리고 엎드려 있네?

어디서 온 사람인지는 몰라도 춥고 배고픈 나그네 노숙인이 틀림없습니다.

 

주머니에 돈도 한 푼 없는 흥부는 얼른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어줍니다.

 

“죄송합니다. 가진 거라곤 이 낡은 옷뿐이네요. 이거라도 덮고 추위를 이기세요.”

 

흥부는 추위에 덜덜 떨며 얼른 집으로 달려갑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혹시 집에 남은 밥이 있나 찾습니다.

밥솥에 밥이 있을 리 없는 가난한 흥부넵니다.

 

흥부는 얼른 화덕에 불을 붙여 물을 데웁니다.

그리곤 낯선 노숙인에게 따뜻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조심조심 달려갑니다.

누추하지만 집에 모셔 찬이슬이라도 피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라?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네요?

 

그날 밤 흥부는 희한한 꿈을 꾸었어요.

하늘나라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구름처럼 많은 천군천사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섰습니다.

예수님 가까이에는 천군천사가 아니라 감사대장들이 앉아 있었고요.

 

감사대장이란 살아생전에 하나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 바로 옆 오른쪽에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앉아있네요?

바로 예수님이 고쳐주신 사마리아 나병환자였어요.

나병환자였던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 여쭙습니다.

 

“예수님, 왜 그리 낡은 외투를 입고 계십니까? 더럽고 더워 보이십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십니다.

 

“잘 보렴. 이 옷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벗, 흥부가 어젯밤 내게 준 선물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옷이지!”

 

흥부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리다가 잠을 깼어요.

어제 그 노숙인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니!

이런 대박 대박 대박사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세상에서 제아무리 큰 박을 타고 거기서 금은보화가 쏟아진다 해도,

이런 큰 박, 이런 대박 꿈은 세상에 또 없겠죠?

 

흥부는 발걸음도 가볍게 예배당을 향합니다.

예배당에 가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찬양, 감사기도를 올립니다.

흥부는 꿈에서 본, 예수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마리아 사람이 생생하게 기억났어요.

그리고 나도 일생동안 감사대장이 되기로 결심했죠.

 

입으로만 “주님 감사합니다” 한다고 다 감사대장이 아닙니다.

진짜 감사대장은 언제나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나보다 약한 사람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게 감사대장이라는 증거입니다.

감사대장은 그래서 누구보다 사랑의 힘이 센 사람입니다.

사랑의 시각, 사랑의 후각, 사랑의 청각이 발달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근력, 사랑의 순발력, 사랑의 지구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예배당을 나온 흥부는 흑천을 헤엄쳐 건너 아랫말 형님네로 갔어요.

배불뚝이 놀부는 흥부의 꿈 이야기를 듣더니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 맙니다.

그래도 흥부는 낙심하지 않고 빈들로 나갑니다.

 

빈들에서 흥부는 허리를 굽혀 열심히 이삭줍기를 합니다.

떨어진 벼 이삭도 줍고, 고구마 자투리도 줍고, 배추밭에 버려진 배춧잎도 줍고...

이정도면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빈들에서 흥부는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날 밤 놀부도 꿈을 꿉니다.

시커먼 저승사자가 방안에 우뚝 서 있네요?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가만히 보니 구약성경에서 보았던 험상궂은 골리앗입니다.

 

‘무슨 골리앗이 저승사자가 되었담?’

 

골리앗을 따라 하늘나라에 올라가보니 저 멀리 예수님이 보이네요.

자세히 보니 예수님 오른쪽에는 양들이, 왼쪽에는 염소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받는 중인 게 틀림없습니다.

 

‘뭐지? 벌써 세상이 끝나는 건가? 어젯밤 뉴스에선 아무 소식도 없었잖아?’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저승사자가 놀부를 염소 떼 속에 집어넣네요?

기겁을 한 놀부는 예수님께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예수님 예수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럼 흥부처럼 착하게 살겠습니다.”

‘흥부’라는 소리에 예수님의 귀가 번쩍 열립니다.

고개를 들고 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씀하시네요.

 

“네가 바로 우리 흥부, 흥부 형 놀부로구나. 내가 알기로는 네가 모든 면에서 흥부랑 정 반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특별히 네 아우 흥부를 봐서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세상에 내려가서 흥부처럼 살거라.”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열두 번 절을 올리고 놀부는 일어섭니다.

어? 그런데 저승사자 골리앗이 꿈쩍도 안하고 장승처럼 서있네요?

놀부가 조심스레 말을 겁니다.

 

“이봐요, 저승사자님 저 데려다 주셔야죠?”

 

“이 놀부놈아 내가 왜 너를 데려다 줘야하는데?”

 

골리앗의 험상궂은 표정과 목소리에 잔뜩 주눅이 든 놀부가 모기소리처럼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내려가라고 하셨는데요?”

 

“나는 데려오는 건 몰라도 다시 데려다주는 법은 없다. 다만 우리 주님 명이시니까 좀 기다려라 하루만 쉬었다 가자.”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놀부는 하루만 참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께름칙한 마음이 들어서 저승사자에게 묻습니다.

 

“저 혹시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 집에 돌아가면, 거기도 내일이겠죠?”

 

“무슨 소리야? 여기서 하루면, 거기선 천년이지! 몰랐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어요.

놀부는 자기 집 곳간에 쌓아둔 산더미 같은 쌀가마니랑 과자, 초콜릿 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맞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도 있었지!

놀부는 골리앗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합니다.

 

“저승사자님 제발 저 지금 당장 데려다 주세요. 집에 가면 제가 맛있는 거랑, 수천 만원, 아니 수억 만원 수고비도 드릴게요.”

 

“흥! 놀부 너 아주 무식하구나? 천국 시민들은 땅에 사는 사람들 먹는 거랑, 돈이랑 하나도 안 좋아해. 우린 오직 천국 곳간에 있는 것만 좋아하거든?”

 

“네? 천국에도 곳간이 있나요?”

 

“그럼 있고말고! 어디 네놈 곳간에 한번 가볼까?”

 

놀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골리앗의 뒤를 졸졸 따라갑니다.

이윽고 놀부 곳간에 도착했어요.

곳간 문을 열어보니, 아니 이럴 수가, 천하의 부자 놀부 곳간이 텅 비어있네요?

가만 보니까 저 구석에 다 썩은 볏단 하나가 구르고 있고요.

 

“껄껄껄, 내 이럴 줄 알았지! 네 녀석이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썩은 볏단 하나는 있네? 웬일이래?”

 

놀부는 곰곰이 그리고 꼼꼼이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계산 하나는 똑 부러지는 놀부거든요.

문득 몇 해 전 가난한 여종이 혼자 애를 낳느라 애쓰는 걸 보고

썩은 볏단을 던져준 게 기억났습니다.

 

“그런데요 저승사자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제 기억엔 분명히 볏단을 세 개 던져 주었거든요?

 

“흥! 놀부 네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천국곳간 환율에 대해 소문도 못 들었느냐? 넌 참으로 천국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이 살아왔구나?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건 천국곳간에서 세배, 삼십 배, 삼백배가 되고, 부자가 나누어 주는 건 천국곳간에서 정 반대 환율로 쌓인다는 사실을 몰랐느냐?”

 

놀부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립니다.

 

“어쩐다지? 이를 어쩌면 좋담?”

 

“걱정마라. 네 아우 흥부 곳간이 있지 않느냐. 거기서 빌려 쓰고 내려가서 갚으면 되느니라.”

 

그 말에 귀가 번쩍 열린 놀부는 다시 골리앗의 뒤를 졸졸 따라갑니다.

흥부 곳간 문을 엽니다.

우와! 아니나 다를까, 흥부 곳간 안에는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요.

많은 곡식과 과자, 왕사탕, 그리고 돈들이 가득가득 쌓여 있습니다.

 

딱 벌어진 놀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가난뱅이 흥부의 곳간은 자기 집 곳간보다 세 배나 더 컸거든요.

자기 곳간에 쌓인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었고요.

 

저승사자 골리앗은 수고비로 쌀 삼백 가마를 요구합니다.

일단 흥부 곳간에서 쌀 삼백 가마를 빌려서 수고비를 줍니다.

그러자 골리앗은 왕방울만한 눈을 부릅뜨고 놀부에게 명령합니다.

 

“놀부 네 이놈! 땅에 내려가면 반드시 흥부에게 쌀 삼백 가마의 세배를 갚아야 하느니라!”

 

저승사자 골리앗이 놀부를 번쩍 들더니 구름 아래로 휙 집어던지네요?

 

“엄마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깹니다.

놀부는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합니다.

 

“이런 대박, 이런 무서운 박이 다 있다니!”

 

놀부의 박에서 장팔사모창을 든 장비가 튀어나와 호통을 친다해도,

아마 저승사자 골리앗처럼 무섭진 않을 겁니다.

더욱이 쌀 삼백 가마의 세배, 구백 가마를 갚을 생각을 하니 말이죠!

 

날이 밝자 놀부는 종을 보내 흥부를 부릅니다.

그리곤 쌀 구백 가마짜리 수표를 주네요.

쌀 운송비보다 돈으로 계산해 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나보죠?

어리둥절하던 흥부는, 하루아침에 변화된 형 놀부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흥부는 그 돈으로 흑천에 새 다리를 놓기로 합니다.

놀부 형이 준 돈으로 다리를 놓을 재료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아랫말 웃말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튼튼한 다리를 놓았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을 튼튼한 다리, 아랫말과 윗마을을 맘껏 소통시킬 수 있는 다리입니다.

 

흥부는 다리 이름은 ‘오작교(烏鵲橋)’로 지었습니다.

오작교는 까마귀, 까치 다리라는 뜻이죠.

헤어진 견우와 직녀를 다시 만나게 해주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몰려와 하늘 다리가 되어준 옛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죠.

 

그런데 오작교에는 또 하나 더 큰 뜻이 담겨 있는데요...

까마귀는 자기를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상징이고,

까치는 구렁이로부터 자기 새끼들을 구해준 나그네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목숨을 바쳐 의리를 지킨, 보은(報恩)의 상징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대장이 되고 싶은 흥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네요!

그 뒤로 놀부는 얼른 곳간 문을 열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흥부가 형 놀부가 하는 짓이 하도 이상해서 이유를 묻습니다.

 

“넌 몰라도 돼. 부자는 아무리 많이 적선(積善)을 해도 정작 천국곳간에는 조금밖에 안 쌓이거든. 얼른 다 나눠주고 최대한 가난해져야 조금만 바쳐도 크게 쌓인단 말이지. 그게 훨씬 이득이라니까?”

 

셈이 빠른 놀부, 역시 놀부네요!

흥부가 씩 웃으며 말합니다.

 

“형님! 그런데요, 천국곳간도 중요하지만, 천국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감사대장이거든요. 그러니까요, 약한 분들 돕는 일을 할 때마다, 우쭐우쭐 베푸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자기 꿈보다 아우 흥부의 꿈이 더 대박이라는 걸 아는 놀부는

오늘도 고개를 크게 끄덕입니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0호에 실은 것을 조금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