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성서일과 4본문]
(신명기 34:1-12)
1.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4.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서,
6. 모압 땅 벳브올 맞은쪽에 있는 골짜기에 묻혔는데, 오늘날까지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8.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서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
10.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11. 주님께서는 그를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보내셔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을 하게 하셨다.
12.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 없다.
(시편 90:1-6, 13-17)
1.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2.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가 생기기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3. 주님께서는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죽을 인생들아,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4. 주님 앞에서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5.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
6. 풀은 아침에는 돋아나서 꽃을 피우다가도, 저녁에는 시들어서 말라 버립니다.
13. 주님, 돌아와 주십시오. 언제까지입니까? 주님의 종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평생토록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
16. 주님의 종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일을 드러내 주시고, 그 자손에게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시오.
17. 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실하게 하여 주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2:1-8)
1.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권면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나님께 검정을 받아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이 아는 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하는 말을 한 일이 없고,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6. 우리는 또한, 여러분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일이 없습니다.
7.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마치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유순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을 사모하여,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34-46)
34.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가 사두개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한 자리에 모였다.
35.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하나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36. "선생님,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합니까?"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달려 있다."
41.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42.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43.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44.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46. 그러자 아무도 예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 날부터는 그에게 감히 묻는 사람도 없었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어서인지,
성서일과 본문에는 ‘근본(根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가득합니다.
구약과 시편본문은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출애 34:5-6, 시편 90:3)
서신서본문의 바울은 사도적 권위보다는 더 근본적인 엄마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다.(살전 2:7-8)
복음서본문의 예수님은 모든 계명의 근본인 사랑을 설파하십니다.(마태 22:40)
오늘 요절은 말씀의 근본, “사랑하(여)라”로 정합니다.(마태 22:37, 39)
[구약과 시편 (신명기 34:1-12 / 시편 90:1-6, 13-17)]
오늘 구약본문의 무대는 모세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 모압 땅입니다.
모세가 요단강 근처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릅니다.
주님께서 약속의 땅을 한바탕 파노라마처럼 빙 둘러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모세는 그 땅을 밟지 못하고 모압 땅에서 죽습니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10)
이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는 주님 얼굴을 결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얼굴’이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먼저 ‘진면목(眞面目)’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 상상, 나의 상처, 나의 탐욕이 덧칠되지 않은 주님의 민낯!
광야에서 모세는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얼굴(근본)과 늘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유심히 보면, 10절의 알맹이는 ‘얼굴’을 넘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리저리 윤색된 말씀, 모호한 말씀이 아니라,
늘 돌직구(민낯)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처음 1절부터 우리의 본향이 주님 품임을 고백합니다.
2절은 시간의 본향 역시 주 하나님이심을 노래합니다.
3절, “돌아가거라”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응답찬양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데살로니가전서 2:1-8 / 마태복음 22:34-46)]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바울은 매우 거침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데 아무 눈치도 안봅니다.
교인들에게 어떤 사심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맡은 그대로 복음을 전합니다.”(4)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마음”이나, “속임수”도 없습니다.(3)
“아첨하는 말”도, “탐욕을 부린” 말도 없습니다.(5)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는, “영광”받으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6)
한마디로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4)
바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는”데 있습니다.(4)
바울은 이렇게 늘 근본을 놓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도의 권위”를 넘어 “어머니”의 마음으로 전도(傳道)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7)
그만큼 그 교회가 목숨처럼 사랑스러웠던 것입니다.(8)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예수님은 근본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이 담겨 있다고 하십니다.(40)
그리고 하나 더,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개념의 근본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이렇게 당신의 근본을 조금씩 드러내십니다.
[정리]
모세처럼 늘 주님의 진면목을 뵐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의 알맹이와 늘 동행할 때 교회는,
모세처럼 눈빛을 잃지 않고 기력이 정정할 수 있습니다.(신명기 34:7)
바울처럼 해야 교회의 사랑은 깊어지고 진해지는 법입니다.
당장 사람의 환심을 살만한 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런 건 근본사랑(하나님사랑∼이웃사랑)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근본사랑 가득한 ‘말씀’, 말씀의 민낯, 말씀의 돌직구!
교회에는 무엇보다도 말씀의 알맹이, 사랑이 늘 가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랑 말입니까?
예수님처럼 살기는 어려워도,
모세처럼 살기는 어려워도,
바울처럼 살기는 어려워도,
프란치스코처럼 살기는 어려워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닮으려 애쓰며 살 때,
아무리 바빠도 주님과 교통하는 시간 가지려 애쓸 때,
내 허리띠 졸라매고 그 돈 어려운 이웃 위해 쓰려 노력할 때
내 교회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피어날 것입니다.
내 하나님 찬양이
프란치스코 수사의 신비로운 찬양처럼,
떼제 수사들의 아름다운 찬양처럼 점점 건강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찬양이 찬양다워지고 말씀이 말씀다워질 것입니다.
즉, 찬양과 말씀에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운이 생생해 질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눈빛이 썩은 동태눈깔이 아니라,
형형한 사랑의 기운,
황홀한 사랑의 기운이 생동할 것입니다.
[나머지]
* 싱크홀을 보며
세월호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상상도 못했던 땅이 꺼지는 경험입니다.
환풍구 아래도 갑자기 푹 꺼집니다.
안전을 넘어 근본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사회의 상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교회의 상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 빈 무덤 안중근
무덤을 찾을 길 없는 모세처럼(신명기 34:6)
무덤을 지을 수 없는 아펜젤러처럼,
안중근 의사 역시 무덤을 찾을 길 없다고 합니다.
오늘 10월 26일은 마침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가리켜 테러리스트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 의사께서는 거사 직후, 이건 (테러가 아니라) 전쟁 중에 벌어진 총격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의 자격으로
조선을 침탈한 일제와의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의 국모를 시해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를 폐위시키는 등,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15가지 죄목을 나열합니다.
조선을 침탈하고 조선총독부(통감부)를 세워 첫 통감에 올랐던 이토 히로부미,
설상가상 한일합병을 위해 러시아 재무대신과 협상을 하러 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가로막으려 공개 사살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동양평화론의 주창자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동양평화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역설합니다.
미치광이 버스 운전사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다 죽은 본 훼퍼가 떠오릅니다.
안중근이 갇혀 있던
뤼순감옥 간수 치바 도이치는
죽는 날까지 안중근의사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합장을 했으며,
뤼순감옥 형무소장 쿠리하라 사다키치는
안중근의 옥중 저작인 『동양평화론』 완성을 위해서 사형집행 연기를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안중근을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지극한 크리스천이요 한결같은 평화주의자라고 고백합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이렇게 주장합니다.
먼저 뤼순을 개방하여 영구 중립지대로 할 것,
3국 평화회의를 개최할 것,
한국, 중국, 일본의 통화(화폐)를 통일하여 정치경제 공동체 만들 것!
그래야 진정한 동아시아 운명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그래야 서구 열강의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지킬 수 있고,
그래야 궁극적인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모세, 민족의 영도자 모세의 무덤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덤을 찾지 못하는 안중근이 평화의 예언자, 평화를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복음 5:9, 공동번역)
[말씀동시] 예수님 말씀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0호)
예수님 말씀
언제나 옳은 예수님 말씀
악마도 두려워하는 예수님 말씀
예수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힌
바리새파 사람들
중요한 계명
예수님 말씀하시는 으뜸 계명
그 계명을 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말씀시조] 마태복음 22:34-46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네마음 다하여 네목숨 다하여서
네뜻을 다하여서 네하나님 사랑하라
네이웃 네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시니
[말씀한시] 무슨 강령이 제일 큽니까?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0호)
孰大綱領中 (숙대강령중) 강령 중 어느 것이 제일 큽니까?
敬主一心性 (경주일심성) 한 마음 한 목숨으로 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耶穌卽言命 (야소즉언명) 주께서 즉각 말씀하시기를
愛隣如己行 (애인여기행)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시오
麗水孫牧師 (여수손목사) 여수의 손 목사님은
口吮癩患癰 (구연나환옹) 나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고
容納殺子漢 (용납살자한) 자식 죽인 원수도 용납했으니
實踐愛人行 (실천애인행) 이웃사랑(예수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말씀서예] 시편 90:1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0호)
[말씀노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정훈 시, 이석훈 곡. 『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22:34-46)
[노랫말]
1. 사두개파 말문을 막아버린 예수님께, 바리새파 사람들이 한데모여 질문하네
선생님 선생님 말씀해 주십시오, 율법들 가운데서 어느계명 중합니까
2. 네마음을 다하고 네목숨을 다하고, 네뜻을 다하여 네하나님 사랑하라
네이웃을 사랑하라 네몸같이 사랑하라, 온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 여기있다
3. 사두개파 말문을 막아버린 예수님이, 바리새파 말문도 야무지게 막으시네
다윗자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다, 만유의주 사랑의주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설]
경천애인(敬天愛人) 주제의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풀었고, 찬양사역자 이석훈 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4년 7월 17일)
[시편 송서(誦書)] 시편 90:1-6, 13-17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0호)
(*천자문 독송-전래 자장가 풍으로)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다함께]
17. 주--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 은총을 우리-에게-),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말씀동화] 크리스말로윈을 모세가 듣고 하는 말이!
“이거 어려운데? 좀 어려워, 노랫말도 잘 안 들리고... 판소리만큼 어려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모세에게 누나 미림이가 쫑알댑니다.
“으이그 이런 촌닭! 네가 이러니까 양평이 촌 소리 듣는 거야 인마! 이거 완전 신상이야, 혜성같이 나타난 신성한 신상!”
장미림과 장모세는 서태지의 ‘크리스말로윈’을 놓고 한창 쫑알잔치 중입니다.
서태지 아저씨가 오랜만에 내놓은 노래 크리스말로윈은
크리스마스랑 할로윈을 뒤섞어 만든 매우 독특한 비빔밥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런 비빔밥은 맛이 별로라네요?
“모세 너는 귀가 문제야, 맨날 정신없는 일본 게임음악만 귀에 달고 사니까 귀가 타락해버린 거라고! 이런 신성한 음악을 좀 들어줘야 네 귀가 정화된다. 알겠냐? 오늘부터 매일 열두 번씩 들어라! 엉?”
“정화는 개뿔? 무슨 해골바가지 장식에다 온통 기괴한 장식이랑 화장이랑... 저런 게 무슨 정화야? 아, 알았어 가사 몇 번 읽어보면 귀에 좀 들리겠지 뭐.”
모세는 누나 미림이가 귀찮습니다.
미림이는 좀 집요한 데가 있거든요.
미림이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안되는 게 없는
자칭 가무악(歌舞樂)의 달인입니다.
벌써부터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를 따라 덩실덩실 삼매경입니다.
가사를 읽어내려가던 모세가 문득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대목에서 멈춥니다.
“누나 그거 알아? 모세는 무덤 없다?”
미림이가 대답합니다.
“없긴 왜 없어, 못 찾는 거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둘이야? 아펜젤러 선교사님도 바다에서 돌아가셨잖아. 그래서 빈 무덤이셔. 안중근 의사는 중국 땅 어디 묻히긴 묻히셨는데, 아직도 못 찾고 있어요. 그래서 효창공원에 빈 무덤만 있지. 서울 가면 효창공원이라고 있거든, 원래 공원이 되기 전에는 정조대왕의 맏아들 문효 세자의 묘역이었는데, 거기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랑 백범 김구선생님 무덤도 거기 함께 있어.”
모세가 중얼거립니다.
“그런가? 무덤 없는 분들이 또 있었네? 그래도 모세는 남달라. 요람도 둥둥 떠내려가는 갈대상자였고,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이건 뭐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전 신비야!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락하게 살게 해 주겠다 어쩌고 하는 거랑 완전 반대로 산거잖아! 광야의 사나이 모세! 완전 야성 포스! 멋있지 않아? 사는 게 좀 많이 힘들긴 했겠지만?”
미림이는 모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문득 천방지축 촌닭 같은 동생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쭈, 우리 촌닭이 이제 좀 꼬꼬댁거리는 걸? 삐약삐약 거리기만 하더니, 이제 좀 더 있으면 꼬끼오∼ 하겠는 걸?”
“누나, 그거 알아? 닭도 촌닭이 더 맛있다? 웬만한 치킨 집에서 파는 닭은 대부분 좁은 닭장에서 성장촉진제 맞고 키운 거라잖아. 그런데 촌닭은 거의 야생닭 같거든, 광야의 모세처럼! 쫄깃쫄깃 맛도 영양도 최고야 최고, 촌닭 만세! 모세 만세!!”
모세는 갑자기 흥분하고 미림이는 깔깔거립니다.
모세가 다시 정색을 하고 누나에게 묻습니다.
“누나 그런데 크리스말로윈 가사 읽어보니까 서태지 아저씨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나봐. 예수님 생일 크리스마스가 너무 세속화되어서 예수님 대신 산타할아버지가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처럼, 사실 할로윈도 원래는 할로우마스라고도 불리는데, 많은 성인(聖人)들 생일 같은 날이었거든.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순교자들까지 다 모아서 그 신앙생활을 기억하며 기리는 날인데, 그게 세속화되어서 도깨비 굿처럼 되어버린 거거든.”
미림이가 가재미눈을 뜨며 묻습니다.
“성인(聖人)들 생일이라면서 왜 돌아가신 날 얘기가 나오는 거냐?”
“아 그건 원래 성인들을 기리는 날은 돌아가신 날이야. 천국에서 다시 태어나신 날이니까 그게 생일이나 마찬가지지.”
미림이 가재미눈이 갑자기 탱자만큼 커집니다.
우리 동생 모세가 이렇게 유식한지 처음 알았거든요.
누나의 탱자 같은 눈을 보자 모세가 씩 웃으며 말합니다.
“나도 목사님께 지난주에 처음 들은 거야. 이번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이잖아. 마틴 루터가 교회의 잘못을 95개 조항으로 정리해서 교회 문 앞에 써 붙인 날이 10월 31일이야. 바로 다음날인 11월 1일이 제성절(諸聖節), 즉 모든 성인의 날이기 때문에, 하루 전날인 10월 31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처럼 제성절 이브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모이니까, 그래서 그 날 써 붙인 건가봐.”
“그럼 할로윈이 원래 도깨비나 좀비, 잡귀잡신들이 아니라 많은 성인(聖人)들의 날이었다는 말이야?”
“응. 그게 이렇게 저렇게 타종교의 민속 문화들이랑 섞이면서 변질한 거래. 원래는 모세처럼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의 선배들, 내 신앙생활에 밑거름과 자양분이 되어주시는 그런 분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날인데, 갑자기 무덤에서 좀비 같은 캐릭터들이 튀어나오는 날로 변한거야. 변해도 너∼무 변한거지.”
미림이는 모세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말 그러네. 크리스마스가 변질한 것 뺨칠 정돈네?”
“참, 누나, 그런데 이 크리스말로윈이 사회 현실을 풍자한 노래라고 그러는데, 제목 철자도 그렇고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소품들 분위기도 그렇고... 교회를 풍자한 것 같지 않아? 완전 교회 반대편에서 말이야.”
“내 생각도 좀 그래. 음악 하는 사람들이 원래 자유롭잖아. 그런데 요새 교회가 이래저래 욕 많이 먹잖아. 그러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식으로 교회를 풍자하고 그러는 거지. 이 노래가 정확히 무엇을 얼마나 풍자하는 건지는 몰라도, 마침 종교개혁일이 코앞이니까 교회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맞아. 모세처럼 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교회가 교회다워질 텐데... 요새 교회는 너무 약해진 것 같아. 모세나 세례요한 같은 야성을 잃었어. 예언자 포스가 없어. 그래서 사회로부터 야단맞으면 꽁무니 빼기에만 바쁘고... 내가 보기에도 우리나라 교회 어른들 좀 찌질해 보여. 다른 나라 교회도 이럴까?”
모세도 미림이도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그러다 문득 미림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모세야, 우리 함께 서태지 아저씨나 윤도현 아저씨처럼 밴드 만들면 어떨까? 어제 양평역전에서 공연한 ‘기억하자 세월호’ 바꿈세 노래패도 밴드 비슷하지 않았어? 기타에 건반도 있고 젬베도 있고... 우리는 종교개혁밴드 어떨까? 너무 센가? 그럼 모세밴드? 아무튼 이름은 차차 짓기로 하고, 교회개혁을 위해 외치는 예언자밴드를 컨셉으로 만들어보자. 너무 큰 거만 쫓아다니지 말고 작은 거, 그러니까... 나팔대신 리코더, 큰북 대신 소고, 그리고 큼지막한 건반대신 멜로디온도 좋고, 비싼 기타 대신 자그마한 우크렐레는 어때? 뭐 탬버린이나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도 괜찮고!”
“누나, 갑자기 너무 아기자기해지는 거 아냐? 그런데 중요한 건, 악기도 악기지만, 노래가 좋아야지? 좋은 노랫말도 지어야하고 곡도 붙여야하고, 우리가 그런 걸 어떻게 해?”
“왜 못해? 어제 누나가 바꿈세 공연에서 독창하는 거 못봤냐? 나 난생처음 큰 무대에서 독창한 건데 완전 떨었잖아.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불렀거든! 박수도 좀 받았거든... 그럼 되는 거 아냐? 우리도 할 수 있어, 밴드!!”
모세가 싱글거리며 웃습니다.
“비웃지 마라 장모세!”
“아냐아냐 비웃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서 그래. 누나 어제 멋졌어. 한 가지 옥의 티라면.. 목소리가 너무 작았달까? 집에서 꽥꽥 소리 지르는 거 반 만 했어도 목소리가 두 배는 컸을텐데... 큭큭”
미림이는 도끼눈을 뜨고 모세를 바라보다가 이내 반달눈이 됩니다.
멋진 교회 밴드를 만들어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미림이도, 모세도 두근두근 신이 납니다.
좋은 노래, 예언자의 노래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경말씀을 넓고 깊고 가슴깊이 읽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미림이랑 모세는 오늘부터 말씀독송을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교회개혁밴드라면 당연히, 루터처럼, 말씀으로 시작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다른 밴드보다 우리 밴드음악에는 사랑을 담뿍 담을 겁니다.
갑순이 갑돌이 끼리끼리 사랑 말고, 우리 예수님 사랑을 담을 겁니다.
어려운 친구를 위해 내 모든 걸 내 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담을 겁니다.
시작이 반이랬으니까 벌써 반은 만들었네요?
자 그럼, 우리 교회 밴드 이름은 뭘로 할까요?
[이정훈 지음. 2014년 10월 26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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