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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7주(2014년 10월 12일) 예배준비 노트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32:1-14)

1.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아론에게로 몰려가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게 한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들이 귀에 달고 있는 금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 오시오."

3. 모든 백성이 저희 귀에 단 금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 왔다.

4. 아론이 그들에게서 그것들을 받아 녹여서, 그 녹인 금을 거푸집에 부어 송아지 상을 만드니, 그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5. 아론은 이것을 보고서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고 "내일 주님의 절기를 지킵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6.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서, 번제를 올리고,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 다음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서 흥청거리며 뛰놀았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9.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님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4.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니, 주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주님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다.

 

(시편 106:1-6, 19-23)

1.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의 능력으로 이루신 일을 누가 다 알릴 수 있으며, 주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누가 다 찬양할 수 있으랴?

3. 공의를 지키는 이들과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

4. 주님, 주님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구원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5.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번영을 보게 해주시며, 주님 나라에 넘치는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해주시며, 주님의 기업을 자랑하게 해주십시오.

6. 우리도 우리 조상처럼 죄를 지었으며, 나쁜 길을 걸으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19.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20.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이 되신 분을 풀을 먹는 소의 형상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21. 그들은 또한, 이집트에서 큰일을 이룩하신, 자기들의 구원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22. 함의 땅에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도, 홍해에서 행하신 두려운 일들도, 그들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23.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으나, 주님께서 택하신 모세가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가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파멸의 분노를 거두어들이시게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4:1-9)

1.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2.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면하고, 순두게에게도 권면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3. 그렇습니다. 나의 진정한 동지여, 그대에게도 부탁합니다. 이 여인들을 도와 주십시오. 이 여인들은 글레멘드와 그 밖의 나의 동역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9.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14)

1. 예수께서 다시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서, 초대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하였는데,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로 가서,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서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라고 하여라.'

5.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갔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종들을 붙잡아서, 모욕하고 죽였다.

7.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8. 그리고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9. 그러니 너희는 네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10. 종들은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혼인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만나러 들어갔다가, 거기에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묻기를,

12. '이 사람아, 그대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가?' 하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 때에 임금이 종들에게 분부하였다.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들 안에는 유독 ‘고집이 센 백성’ 느낌이 두드러집니다.

저들은 기어이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합니다.(출애 32:10 / 시 106:19-23)

교회 안에서 갈라진 마음들이 쉬 하나 되지 못합니다.(빌립 4:2-3)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았음에도 고집을 꺾지 못하고 진멸당합니다.(마태 22:7)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를 요절로 택합니다.(출애 32:9)

 

 

[구약과 시편 (출애굽기 32:1-14 / 시편 106:1-6, 19-23)]

오늘 구약본문은 참 어처구니없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의 첫 계명들을 줄줄이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받은 것은 바로 지난 주 본문이었습니다.(출애굽기 20장)

그 직후에 모세는 인간사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하나님의 법을 받습니다.(21-23장)

 

그리고 24장에 보면,

하나님께 받은 모든 말씀과 법규를 책에 기록하고 그것을 선포합니다.

그에 앞서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웁니다.

수송아지를 잡아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는 백성에게 뿌립니다.

이렇게 말씀을 받으며 피로 언약을(맹세를) 했음에도... (출애 24:7-8)

 

모세가 다시 시내산에 올라 40일을 보내는 동안,

백성이 하나님과 가장 구체적으로 만나는 - 언약궤, 성막 등에 관한 말씀을 받는 동안,

언약의 절정이 무르익는 그 찰나에,

백성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 앞에 수송아지를 잡아 바쳤음에도

저들은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신이라 부른다는 것이 언뜻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곧 이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7)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8)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9)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10)

 

그럼에도,

모세의 애원으로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백성을 진멸하지 않으십니다.(11-14)

하나님은 백성의 고집과 달리 그 뜻을 너무 쉽게 돌이키시는 모습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오늘 구약본문의 사건을 고스란히 기억나게 합니다.(6절, 19-23절)

인상적인 부분은, 비록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 은혜를 잊어버렸지만(21, 22)

그런 나지만, 나를 기억해주시길 비는 우리 마음입니다.(4)

그러고 보니 구약본문에도 같은 마음이 나옵니다.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출애 32:13)

 

염치없지만, 이건 늘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염치없는 마음조차 받아주십니다.(출애 32:14 / 시편 106:23)

 

 

[서신서와 복음서 (빌립보서 4:1-9 / 마태복음 22:1-14)]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는 장면입니다.(빌립 4:2)

추측컨대,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무슨 까닭인지, 두 사람의 마음이 갈라진 것입니다.

3절에서, 이 여인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둘의 화해를 도와달라는 것으로 읽힙니다.

 

목회하면서 교회에서 종종 보는 모습입니다.

천사 같던 사람들도 한번 갈라서면 그 고집이 쇠심줄 같습니다.

그럼에도 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길,

우리 안에 너그러운 주님의 마음, “관용”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진멸당할 수밖에 없는 저 쇠고집 백성들을 끝내 용서하신 주님의 관용,

그 주님께서 지금 가까이 오심을 느끼는...!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빌립 4:5)

 

 

오늘 복음서본문은 지난주 본문에서 바로 이어지는 천국의 비유입니다.

3주간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나라 비유, 이스라엘 심판, 기득권자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난주 본문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종들을 두 차례 보내고,

그러자 저들이 주인의 뜻을 전하는 종들을 죽입니다.

그러자 주인(임금)이 고집 센 백성을 진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십니다.

 

차이점은, 소작료를 내라는 청구가 아니라, 잔치음식 먹으러 오라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열매 맺는 민족에게 하나님나라를 넘겨주는데 비해, 누구나 초대합니다.

그래서 종들은 네거리 큰길로 나가서 악한 사람, 선한 사람 가리지 않고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초대받아 잔치자리에 온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골라내어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로 내던지는 장면입니다.

이유는 딱 하나,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징 투성이 비유의 말씀이라 궁금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혼인 예복’이라는 상징의 뜻이 궁금합니다.

 

 

[정리]

복음서본문에 “초대(부름)받은 사람”이라는 구절이 5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문득 ‘성찬식’ 예문이 떠오릅니다.

<천국에서 맛볼 어린양 혼인잔치를 미리 맛보는 자리>라는 성찬식의 의미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인 예복’이란, 회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천국 문 앞에서는 패스포트가 필요합니다.

그 패스포트가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분과의 언약을 다시 기억하고 실행하는 회개!

 

이 회개에 해당하는 삶의 모습이, 복음서본문에서는 혼인 예복을 갖춰 입은 하객들이고,

오늘 서신서본문에서는 빌립보서 4:6-9절의 모습입니다.

오늘 구약본문에 따르자면, 다시 언약,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말씀기억력을 되살리고, 은혜기억력을 되살리는 길입니다.)

 

성찬식, 거룩한 음식을 먹기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평화의 인사입니다.

내 안의 갖가지 종류의 고집들을 꺾고 형제자매와 화해하는!

하나님 말씀 잊고 내 탐욕을 좇아 사느라 시나브로 갈라진 이웃과 화해하는!

그렇게 갈라졌던 사람들과 하나 되면서 주님과 하나 되어가는 자리가 성찬의 자리입니다.

내 안의 황금송아지를 부수고 출애굽의 초심을 회복하는 자리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것은, 내 고집을 꺾는 일입니다.

내 육욕에서 비롯되는 온갖 고집들을 꺾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성찬식의 뿌리 깊은 전통인, 마라나타 정신을 차릴 수만 있다면,

내 고집은 쉽게 꺾일 것입니다.

 

 

[나머지]

* 고집이란? 혼인예복이란?

한 주간 이 두 뜻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고집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관성을 돌이키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을 만났어도, 말씀을 받았어도, 마음으로 느꼈어도 몸을 돌이켜 주님을 향해 가지 못하고, 도로 안주(安住)하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많은 표적을 보아도,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어도 금세 잊어버리는 백성! 그게 바로 ‘나’,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연속해서 들려주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들어도 돌이켜 회개하지 못하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종교지도자들! 그게 바로 ‘나’, ‘우리’입니다.

혼인예복이란, 고집을 꺾고 회개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참여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에 들어가려고, 자기 겉옷을 깨끗이 빠는 사람은 복이 있다.’(계시록 22:14)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계시록 7:14)

 

** 황금송아지 상을 만든 까닭은?

바로 얼마 전에 하나님 앞에 제물로 수송아지를 잡아 바쳤음에도 백성은 신상으로 황금송아지를 만드는 아이러니 잔치를 벌입니다. 황금과 수송아지라는 이 절묘한 캐릭터를 아론이 단독 아이큐로 창조한 것일까요? 풍요의 땅 이집트에서 430년을 사는 동안 수많은 풍요의 신상을 보아온 백성의 욕구를 반영해 아론은 황금송아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요? 열광하는 백성들 입에서 심지어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탄성을 내지른 이들은, 추측컨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내 마음 속에 막연히 품고 있던 그분의 이미지랑 (황금송아지가) 통한 자들일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하나님에 관한 특별한 이미지가 없었던 이들까지 덩달아 동조합니다. 그리고 아론은 제사로 황금송아지와 온 백성을 묶어버립니다.

생각해보면, 저들의 행동은, 오늘 우리 모습과 비교할 때, 전혀 기괴하거나 이상한 행동이 아닙니다. 자연스런 행동이란 말입니다. 예수 제자가 되겠다던 (출애굽의) 초심은 어디가고, 내 일신, 내 가족의 안위와, 심지어 풍요가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어버린 지금 내 모습에 비출 때 말입니다. 입으로는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읊조리면서도 실제로는 마음이 콩밭에, 몸조차 콩밭에 가 있는 지금 내 모습, 지극히 육에 속한 지금 내 모습에 비출 때 말입니다.

 

*** 충숙공(忠肅公) 이경직

지난 수요일 10/8은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아주 슬픈 날, 바로 을미사변일이었습니다. 1895년 일제가 더러운 욕심으로 이웃나라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날입니다. 이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 참혹한 내용은 일일이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경직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날 조선의 국모를 보호하려다가 일본 낭인들의 칼에 의해 두 팔이 잘려나간 이경직! 이 무렵 숨진 여러 충신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황제는 1900년 사당을 세웁니다. 그리고 서울시 문화재 1호인 장충단 비를 세웁니다. 이 비석에 ‘장충단(獎忠壇)’이라고 쓴 비 이름은 명성황후의 아드님이신 순종황제께서 당시 황태자 시절 친히 쓰셨습니다. 장충단의 정신을 왜곡하기 위해 일제는 나중에 그 비석을 뽑아버리고 거기 벚나무를 심어 장충단공원이라 이름 했다고 합니다. 장충단은 복원되지 못했고 비석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폭도들에 의해 돌아가실 때 그분을 보호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경직선생처럼, 예수님을 보호하려다가 내 두 팔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에게 지금 두 팔이 남아 있는 건, 주님을 보호해드리기 위해서입니까? 지금 내 두 팔은 예수님의 팔이 되어드리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바로 회개에 합당한 삶 말입니다. 십자가 전문가인 송병구 목사님의 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잿더미가 된 독일 남부의 어느 마을(슈바르츠발트)에서 주민들에 의해 대대적인 복구작업이 벌어졌습니다. 무너진 성당의 파편들을 모으던 중에 두 팔이 없는 예수상이 발견되었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들의 범죄로 예수님을 두 번 죽인 꼴이 되었음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던 걸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우리가 주님의 두 팔이 되어 드립시다”’

 

십자가 전시회에서 바로 이 ‘팔이 없는 예수님 상’을 보고 한시를 지은 한학자 오세종 목사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팔이 없는 예수님> (무불달(無不達) 오세종)

上帝大掌天地遍(상제대장천지편) 하나님의 손길은 천지간에 꽉 찼는데

十字苦像無兩肩(십자고상무양견) 십자가 고상(苦像)에는 두 팔이 없으시다

耶穌二手何處在(야소이수하처재) 예수님, 두 손은 어디에다 두셨나요?

爾體雙腕救恤勤(이체쌍완구휼근) 너희 몸의 두 팔로 이웃 사랑 힘쓰라

 

 

 

 

[말씀동시] 비유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 교회학교 4학년. 『성실문화』 80호)

예수님께서 비유하셨다

임금이 종들을 시켜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을 부른다

 

그 다음

다른 종들을 시켜서

사람들을 부르는데

결국 퇴짜를 맞고 만다

 

난 임금이 퇴짜맞는 이유도 궁금하고

예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내시는지 궁금하다

 

 

 

[말씀시조] 마태복음 22:1-14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0호)

천국잔치 초대손님 아무도 오지않아

악한이 착한이들 모두모두 데려오나

예복을 입지않은이 사정없이 쫓겨나

 

 

 

[말씀한시] 잔치에 오지 않으니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0호)

已宰大豚招待讌 (이재대돈초대연) 큰 돼지 잡고서 잔치에 초대했지만

不來富饒亦高官 (불래부요역고관) 배부른 부자나 고관들은 오지 않았네

主怒罰驕焚其屋 (주노벌교분기옥) 주인이 화나 나서 그 집을 불사르고

繫其手足投幽溷 (계기수족투유혼) 수족을 묶어서 어두운 뒷간으로 던졌다.

 

 

 

[말씀서예] 시편 106: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0호)

 

 

 

 

[말씀노래] 천국은 천국은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 80호)

[본문] (마태복음 22:1-14)

[노랫말]

1. 천국은 천국은 당황하는 임금님, 귀한아들 혼인잔치 아무도 안오네요

   농사하랴 장사하랴 먹고살기 바쁘데요, 진수성찬 차려놓고 당황하는 임금님

2. 천국은 천국은 잔뜩화난 임금님, 거듭거듭 초대하러 종들을 보냈더니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욕하고 죽였어요, 큰벌을 내리시는 잔뜩화난 임금님

3. 천국은 천국은 엄격하신 임금님, 악한사람 선한사람 모두모두 부르지만

   혼인예복 안입으면 큰벌을 내리세요, 혼인예복 원하시는 엄격하신 임금님

4. 천국은 천국은 사랑의 임금님, 못됐어도 못났어도 예복만 갖추어라

   말씀듣고 돌이키는 회개의옷 혼인예복, 사랑의왕 마음여는 천국열쇠 혼인예복

 

[해설]

예수님의 천국 비유 가운데 하나인 마태복음 22:1-14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풀었고, 궁정교회 이천진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천국은 천국은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2014년 7월 17일)

 

 

 

 

 

[시편송서] 시편 106:1-6, 19-23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0호)

(* 천자문 독송(讀誦)가락, 즉 전래 자장가 풍으로)

 

1. 할렐루야-- 여호-와께-,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복-이 복-이 있도-다--)∼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6. 우리가 우리의 (조상-처럼-),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악-을 (악-을) 지었나이다-∼

 

19.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20.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21. 애굽에서-- 큰일-을--, (큰일을) 행하신 (구원-자--),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그들이) 잊었-나니-∼

 

22.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다함께]

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말씀동화] 노아할아버지와 세월호(世越號) 선상파티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 줄넘기 하던 시절에

노아할아버지가 커다란 배를 하나 지었지.

오∼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라고?

방주에 온 세상 동물들이 쌍쌍이 다 들어간 유명한 이야기라고?

 

아냐 아냐, 이건 그 이야기가 아니야.

그 보다 훨씬 뒤에 있었던 다른 이야기야.

노아할아버지는 홍수 뒤에도 350년이나 더 살았단다.(창세기 9:28)

 

노아할아버지는 홍수가 그친 뒤에 제일 먼저 포도농사를 지었지.

오랫동안 물에 잠겼던 땅은 하늘님의 도우심으로 포도풍년이 들었단다.

그 덕분에 노아할아버지는 매일매일 포도를 마음껏 먹었어.

아침 먹고 포도, 점심 먹고 포도, 저녁 먹고 또 포도를 먹었지.

그래도 포도가 넘쳐나서 포도로 주스도 만들고 잼도 만들고, 또 포도주도 만들었어.

 

하루는 노아할아버지가 포도주에 잔뜩 취해서 쓸데없는 용기가 마구 솟아났단다.

그래서 또 배를 한척 만들기 시작했어.

‘이번에는 지난번 방주랑 다르게 좀 세련되고 날렵한 모양으로 만들어야지.’

지난번에는 그냥 넓적하게, 단순하고 못생긴 방주였잖아?

그땐 노아할아버지가 너무 초보자라서 하늘님께서 아주 쉬운 설계도를 주신 건가봐.

 

아무튼 노아할아버지는 술김에 온갖 호기를 부려가며 화려한 배를 지었지.

배의 앞코도 날렵하게, 뒷꼬리도 물찬제비처럼 미끈하게,

심지어 배의 아랫부분까지도 방주랑 달리 날렵하게 지었어.

영화배우 현빈 아저씨 턱처럼, 역삼각형으로 지었다니까?

정말 멋지지 않니?

 

그런데,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

포도주에 너무 취한 탓일까?

노아할아버지가 배를 짓다 말고 그만 쿨쿨 잠이 들어버렸네?

나머지 갑판 위로 올라가는 선실부분은 어떡한다지?

 

어떡하기 뭘 어떡해?

노아할아버지의 후손들이 짓기 시작했지.

수많은 세월이 흘러흘러 노아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이 배를 지어갔단다.

 

 

우리 여기서 잠깐 노아할아버지 족보를 한번 살펴볼까?

노아할아버지의 장남 이름이 셈인데,

셈을 중심으로 위로 10대조 할아버지가 바로 아담이고,

셈 아래로 10대손이 바로 아브라함이야.

어때 외우기 참 쉽지?(누가복음 3:34-38)

 

노아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고,

므두셀라의 아빠가 바로 그 유명한 에녹이야.

에녹 할아버지는 일생 365년을 사는 동안 늘 하늘님과 동행한 분이지.

늘 하늘님과 동행하시더니 어느 날 우화등선(羽化登仙)하듯 홀연히 사라졌단다.

하늘의 별처럼 참 아름다운 분이셔.(창세기 5:21-24)

 

 

그나저나 갑판 위로 삐죽하게 솟은 선실이 아무래도 좀 불안한 걸?

노아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짓듯이,(창세기 11:4)

갑판 윗부분이 자꾸자꾸 높아만 가네?

그러더니 그들은 배 이름을 세월호(世越號)라고 지어버렸지.

세상을 초월한다나 뭐라나?

 

세상 초월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이름만 세월이면 뭐하나?

바벨탑 아무리 높이 쌓으면 뭐하나?

 

그런 건 세상초월이 아니야.

진짜 세상을 초월하는 건 에녹 할아버지처럼 사는 거야.

늘 하늘님과 동행하는 거 말이야.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도 내 근본 본향을 잊지 않고 사는 거 말이야.

아무튼 노아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이름 모를 후손들은 마치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 악을 쓰는 듯 세월호를 높다랗게 지었어.

아니나 다를까? 그러던 어느 날 세월호가 침몰해버렸단다.

 

그렇게 애써 만든 배가 갑자기 왜 침몰했느냐고?

바벨탑처럼 너무 높이 지었기 때문이냐고?

아니아니 그건 아직 아무도 몰라.

세월호를 쓸데없이 높이 지었다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여러 사람의 욕심 때문이라는 사실이야.

바벨탑처럼 꾸역꾸역 욕심이 쌓이고 쌓여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세월호는 침몰했다는 사실!

 

문제는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에서 숨진 사람들이야.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남은 가족들이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한을 풀어주려 매일매일 우는 저분들...

 

세월호 침몰의 구체적인 병원균을 낱낱이 밝혀내고,

마치 에볼라 바이러스를 모조리 소탕하듯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그 무자비한 탐욕의 바이러스들을 뽑아내는 일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힘을 모아 해야 하는 일 아니겠니?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세월호에서 벌어진 혼례식 이야기야.

노아할아버지의 세월호(世越號),

아니 노아할아버지의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이 만든

세월호에서 벌어진 희한한 이야기!

 

 

물에 빠진 세월호를 가엽게 여기신 하늘님께서

어느 달 밝은 밤에 세월호를 만지작 만지작거리시더니

수륙양용 잠수함으로 변신시키셨단다.

그래서 세월호는 바다 속 용궁까지 누비며 별의별 구경을 다 할 수 있게 되었지.

 

그뿐 아니야, 세상에 이런 트랜스포머가 또 있을까?

어느 날 세월호가 다시 한 번 변신을 한 거야.

붉은 달이 떠오르던 어느 날 밤이었어.

하늘님께서 바다 속 세월호를 또 만지작거리시니까

얼씨구? 세월호가 하늘위로 둥실 떠오르네?

 

세월호 승객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걸 깨달으신 하늘님께서

따뜻한 가을 햇살을 쪼이게 해주시려고 한 번 더 변신시키신 거야.

하늘가득 노란 풍선에 매달려 둥실둥실 솟아오르는 세월호!

그러고 보니까 우리 하늘님의 신비한 힘은

두 손 모은 세상 사람들의 염원을 아주 많이 참고하시는 것 같지 않니?

 

아무튼 이렇게 바다 속과 하늘을 누비던 세월호가

어느 날 다시 바다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단다.

그리고 아주 멋진 선상파티가 벌어진 거야.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혼례식이 벌어진 거야.

 

 

단원고 아이들과 함께 용궁과 천궁을 여행하시던 선생님들 가운데서

두 분이 혼례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날만큼은 파도도 아주 잠잠하고

용궁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축하 오케스트라 소리도 일품이었단다.

 

혼주는 두 선생님의 하늘아버지께서 맡으셨고,

혼주이신 하늘님께서 혼례식 초대장인 청첩장을 돌리셨지.

청첩장은 SNS를 통해 1차로 어떤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내졌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던 거야.

그 큰 사고의 책임자들 말이야.

그 명단? 그것이 알고 싶다고?

그건 아직 일러, 조금만 더 기다려보렴.

곧 낱낱이 밝혀질 거야.

아무리 큰 비밀이라도 하늘 아래 한 뼘이라도 감출 수 있는 곳은 없단다.

 

아무튼 중요한 건, 청첩장을 1차로 받은 사람들은 하나도 안 왔다는 사실이야.

인터넷으로 요청해도 안 오고,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하며 초청해도 꿈쩍도 안하는 거야.

두 번씩이나 청첩장을 돌리는데도 그들은 안 왔어.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

농사지어야 한다는 둥, 장사하러 가야 한다는 둥 하며 딴청이네?

완전 경제타령하고 자빠졌네?

그건 그래도 양반이야, 어떤 이들은 청첩을 돌리는 이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거야.

 

그러니 혼주 마음이 어땠겠어?

저런 무뢰한들을 그냥 두시겠어?

나 같으면 절대 그냥 안 두지. 군밤이라도 한가마니씩 먹일텐데,

하늘님은 어쩌실까? 난 그게 굉장히 궁금해.

 

예수님 말씀 중에 이런 구절 기억하니?

 

“임금은 노해서, 자기 군대를 보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마태 22:7)

 

난 이 말씀이 굉장히 무서워.

그 살인자들을 죽이신다는 건 조금 이해가 가는데...

그들의 도시까지 불살라버리신다는 건 과연 무슨 뜻일까?

문득 노아할아버지 때가 떠오른다. 으스스해!

 

아브라함 때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소돔성이 불바다가 되었는데(창세기 18:32)

그래도 예레미야 때는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성읍을 용서하신다고 했는데...

그 도시에는 의인이 단 한명도 없어서 그랬던 걸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1)

 

 

여기서 혹시 너흰 궁금한 게 더 없니?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다 외면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거긴 딱 한 가지 숨겨진 이유가 있단다.

그건 바로 그 혼례식에는 특별한 혼례예복을 입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지.

 

그런데 그 혼례예복은 세상 최고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라서

절대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옷이라는 게 문제였어.

그 디자이너는 별의 별 옷을 다 만드는데,

도깨비감투처럼 입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투명 망토랑,

입으면 걸음걸이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버리는 하늘옷을 비롯해서,

 

입기만 하면 배부르고 모든 탐욕이 사라져버리는 흥부 옷,

입기만 하면 내 안의 모든 슬픔과 어두움이 사라져버리는 콩쥐 옷,

입기만 하면 내 안의 모든 고집과 미움이 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심청이 옷 등등...

 

그런데 이 혼례예복은 이런 옷들보다 훨씬 더 귀한 옷이었거든.

이 혼례예복은 입기만하면 세상 어떤 무거운 죄도 다 사라지고 기쁨이 가득해지는 옷이었단다.

그래서 이 옷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었던 거지.

오직 우리 예수님의 보혈, 그 크신 사랑으로만 살 수 있는 옷이라는 사실!

 

문제는,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은

내가 내 모든 허물을 진심으로 고백하며 회개할 때만이

그 사랑 내 안에 깊숙이 스며드신다는 사실이지.

그 때 비로소 그 귀한 혼례예복을 입을 수 있게 된다는!

 

 

아무튼 속이 상한 혼주께서 다시 청첩장을 돌리셨어.

이번엔 아무나야.

악한사람 선한사람 가리지 않으셨어.

 

역시 그 청첩장은 누구에게나 무거운 청첩장이었단다.

물론 혼례예복 때문이지.

세월호를 침몰시킨 직접 범인은 아니어도,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세월호 침몰과 무관한 사람은 없잖아.

 

너도 나도,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세상이 이렇게 썩을 때까지 눈막고 귀막고 입막고 살아왔잖아.

노아할아버지 때처럼 세상은 온통 죄악이 물처럼 차오르고 있잖아.

탐욕의 바벨탑이 우리 안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잖아.

 

그래도 두 번째로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은 좀 달랐어.

세월호 선상파티에 용기를 내서 참석하기 시작하는 거야.

세월호가 더 이상 죽음의 배가 아니라 21세기 구원의 방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지!

대한민국에 세월호 리본을 옷깃에 달고 가방에도 노란 리본을 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양평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바꿈세(바람개비들이 꿈꾸는 세상) 유니폼을 구해서 입기 시작하네?

 

그렇게 모두모두 세월호 선상파티에 참석했단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딱 한 사람 되게 야단맞고 쫓겨났다는데?

물론 혼례예복을 안 입었기 때문이지.

 

대체 그 사람은 혼례예복을 안 입고 어떻게 배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혼주이신 하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 그 한 사람을 딱 찾아낼 수 있으셨을까?

그건 그렇고 그게 대체 누굴까?

세월호에 오르면서 겁도 없이 혼례예복 입지 않은 그 고집불통이 대체 누굴까?

넌 그게 궁금하지 않니?

 

[이정훈 지음. 2014년 10월 12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