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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4주 (2014년 9월 21일) 예배준비 노트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16:2-15)

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

5. 매주 엿샛날에는, 거두어들인 것으로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면, 날마다 거두던 것의 두 배가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면,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당신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하십니까?"

8. 또 모세가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녁에는 당신들에게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들이 주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원망은 우리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라고 일러주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희가 저녁이 되면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는 나 주가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말하여라."

13. 그 날 저녁에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진 친 곳을 뒤덮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진 친 곳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14.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15.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시편 105:1-6, 37-45)

1. 너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2. 그에게 노래하면서, 그를 찬양하면서,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여라.

3.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을 찾는 이들은 기뻐하여라.

4. 주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힘써 사모하고, 언제나 그의 얼굴을 찾아 예배하여라.

5.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여라. 그 이적을 기억하고, 내리신 판단을 생각하여라.

6. 그의 종, 아브라함의 자손아, 그가 택하신 야곱의 자손아!

37. 그들로 은과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가운데서 비틀거리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38. 이집트 사람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떠날 때 기뻐하였다.

39. 그는 구름을 펼치셔서 덮개로 삼으시고, 불로 밤길을 밝혀 주셨다.

40. 그들이 먹거리를 찾을 때에, 그가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시며,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셨다.

41. 반석을 갈라서 물이 흐르게 하셨고, 마른 땅에 강물이 흐르게 하셨다.

42. 이것은 그가 그의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하신 말씀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43. 그는 그의 백성을 흥겹게 나오게 하시며 그가 뽑으신 백성이 기쁜 노래를 부르며 나오게 하셨다.

44. 그들에게 여러 나라의 땅을 주셔서, 여러 민족이 애써서 일군 땅을 물려받게 하셨다.

45. 이것은 그들에게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할렐루야.

 

(빌립보서 1:21-30)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25.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27.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28.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30. 여러분은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지금 소문으로 듣습니다.

 

(마태복음 20:1-16)

1.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는 품삯을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보냈다.

3. 그리고서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4.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5.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이 되니,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9.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1.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12.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 중 특히 구약과 복음서본문에서 도드라지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원망”입니다.

구약본문인 출애굽기 16:2-15절에는 “원망”이 무려 9번이나 나옵니다.(개역개정은 7번)

복음서본문인 마태복음 20:1-16절에는 “원망”이 딱 한 번 나오지만 강렬합니다.(11절, 개역개정)

 

구약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여정의 초반에 벌어진 일입니다.

복음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의 마지막에 벌어진 일입니다.

즉 예루살렘 입성 직전,

제자들에게 세 번째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기 직전에 들려주신 천국비유의 말씀입니다.

 

원망의 대상은 하나님(주인)입니다.

원망의 동기는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모든 원망의 시작은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것, ‘일용할 양식’에 만족할 줄 모르는 불만(不滿)의 다른 이름 탐욕(貪慾) 말입니다.

고기를 먹던 과거 노예시절과 비교하고,

나와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은, 나보다 뒤쳐진 사람과 비교하며 나온 불만입니다.

 

그런 원망쟁이들은 아무리 먼저 출애굽 했어도 결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원망쟁이들은 아무리 먼저 포도원에 왔어도 결코 천국의 맛을 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첫째들이 꼴찌가 되는 법입니다.(마태 20:16)

 

이번 주 요절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로 정했습니다.(빌립 1:27)

불만과 원망이 없는 생활 말입니다.

받은 은혜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 천국에 가까운 생활 말입니다.

 

 

[구약과 시편 (출애굽기 16:2-15 / 시편 105:1-6, 37-45)]

오늘 구약본문의 분위기는 매우 어지럽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소리로 시끌시끌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부글부글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이미 홍해를 가르시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음에도,

백성들은 종살이시절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는 참담한 짓을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시험해보겠다고 결심하십니다.(4)

아니나 다를까,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직후에 백성들은

계속해서 눈으로 보면서도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음, 탐욕의 끝을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요?

 

19. 모세가 그들에게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하였다.

20.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 모세가 그들에게 몹시 화를 내었다.

27. 모세가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백성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렛날에도 그것을 거두러 나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28.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언제까지 나의 명령과 나의 지시를 지키지 않으려느냐?...“

 

민수기 11장에 보면 고기타령을 하던 백성들이 천벌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4.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6.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18. 너는 또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맞이하여야 하니, 너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라.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이려나? 이집트에서는 우리가 참 좋았었는데' 하고 울며 한 말이 나 주에게 들렸다. 이제 나 주가 너희에게 고기를 줄 터이니, 너희가 먹게 될 것이다.

19. 하루만 먹고 그치지는 아니할 것이다. 이틀만도 아니고, 닷새만도 아니고, 열흘만도 아니고, 스무 날 동안만도 아니다.

20. 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줄곧 그것을 먹게 될 것이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 있는 나 주를 거절하고, 내 앞에서 울면서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고 후회하였기 때문이다."

33.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극심한 재앙으로 치셨다.

34. 바로 그 곳을, 사람들은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다.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거기에 묻었기 때문이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내 육신의 본능을 먼저 따를 때,

그래서 마치 롯의 아내처럼 떠나온 집을 뒤돌아볼 때,

이미 출애굽한 애굽생활을 그리워할 때,

탐욕의 무덤은 입을 벌리는 법입니다.

 

탐욕의 무덤(기브랏 핫다아와)에 삼켜진 백성들의 모습에,

지난 주 본문이었던, 홍해에 삼켜진 애굽 군인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바로 지난밤에 맏아들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탐욕을 쫓던 바로 왕 때문에 죽은 병사들!

 

오늘 우리에게 탐욕의 무덤, 즉 탐욕의 끝은 무엇입니까?

세월호 희생자들, 그 억울한 약자들의 피눈물과 멍 자국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여전히 경제타령이나 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끝은 과연 무엇입니까?

 

<“잘 살아보세∼” 독재>의 종살이를 뒤로하고

민주(民主)의 땅을 향해 출애굽한 내가

40년 광야생활의 불편함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다시 부르짖고 있는

저 독재 종살이 시절의 ‘고기가마타령’이라니!

이 타령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요?

 

탐욕의 무덤, 그 주둥이를 닥치게 할 수는 없을까요?

그 열쇠(자물쇠)가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만나(만나정신)입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나오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약속(말씀)만 의지하여 탐욕을 꺾고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을 때,

탐욕의 무덤은 닫히고 천국문이 열립니다.

 

 

오늘 시편본문의 하반부는 출애굽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시 105:42)

그리고 ‘약속’을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 백성들입니다.(시 105:45)

 

42. 이것은 그가 그의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하신 말씀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45. 이것은 그들에게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법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할렐루야.

 

 

[서신서와 복음서 (빌립보서 1:21-30 / 마태복음 20:1-16)]

오늘 서신서본문의 바울의 마음은 매우 진지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광야와 같은 삶을 마감하고 주님 계신 곳(천국)에 들고 싶으나,(빌립 1:23)

본이 되고 힘이 되고 싶어서 끝까지 남아 교회의 광야 길에 동행하려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광야와 같은 이 육신의 세상, 경제타령, 돈타령 가득한 세상을 너끈히 이기는

영의 삶, 은혜의 삶 살기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27)

 

이를 가로막는 대적자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기를(28),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29)

오늘 바울은, ‘싸움’(27), “투쟁”(30)과 같은 단어를 써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작은 불편쯤은 너끈히 감수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건 은혜에 대한 감사와 축복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감사할 것이요, 동료들은 그를 축복하는 게 마땅합니다.

감사와 축복!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게 바로 천국의 열쇠, 천국의 시민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주 복음서본문에 이어서 오늘도 천국비유 말씀입니다.

지난주 본문의 주인(왕)과 이번 주 본문의 주인에게서 공통점이 보입니다.

모두 일반상식을 뛰어넘는 큰 은혜를 베푸는 모습입니다.

 

1만 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해줍니다.

오후 5시부터 한 시간만 노동한 품꾼들에게 종일 노동한 자들과 똑같이 1데나리온을 줍니다.

이 두 주인의 공통점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측은지심 가득한, 자비심 가득한 은혜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큰 은혜를 받고도 금세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옥에 가두는 몰(沒)은혜적인 행동처럼,

하루 종일 포도원에서 노동한 품꾼들은 1시간 일한 동료가 받은 큰 은혜를 축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주인을 원망합니다.

(물론 이 투덜이들은 세상에 보기 드문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대부분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의 포도원주인의 경제논리는 지난주 본문의 주인만큼이나 독특합니다.

우리 일반사회의 경제논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의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천국의 경제원리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후한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이 후하다는 것에 감사하기는커녕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니, 역시 천국은 가진 자, 기득권자들에게는 먼,

지금 당장 고난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누가 6:20)

 

오늘 복음말씀에서 원망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자들의 저 빈둥거리는 시간은 무엇입니까?

그건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일자리,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 낙심하고 절망했던 저들의 마음을 돌보기는커녕, 법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법을 따지는 원망쟁이, 투덜이들이 과연 다음에 그 포도원주인이 일꾼을 모집할 때 또 따를까?

그 포도원주인을 따라가 일을 하려고 할까?

거기가, 그 주인이 바로 천국인데 말입니다.

 

아마 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곳이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형평의 원칙을 안 지키고 관례를 무시하는 곳은 적어도 저들 기득권자들에게는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풀 줄도, 은혜에 감사할 줄도, 은혜 받은 이웃을 축복할 줄도 모릅니다.

 

 

[정리]

오늘 구약과 복음서본문의 주인공은 은혜의 은(恩)자도 모르는 투덜이들입니다.

 

지난 출애굽과정에서 수차례 받은 하나님의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은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은혜들을 까맣게 잊고 금세 투덜거리는 백성들!

저들은 잘 먹을 수만 있다면 독재정권도 마다하지 않는 노예근성 투성이입니다.

이집트 시절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는 저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저런 백성들은 급기야 경제대통령을 부르짖습니다.

모세가 잠깐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황금송아지를 만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벌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세상 낙오자들이 나랑 똑같이 대우받는 것에 불만인 기득권자들 이야기입니다.

저들은 약자들, 루저들이 자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 은혜를 축복할 줄 모릅니다.

무엇 때문인가?

 

“일용할 양식”의 예수님 가르침을 잊은 것입니다.

출애굽 광야 40년 ‘만나’에 담긴 그분 뜻을 잊은 것입니다.

제아무리 아이큐 높고 동작 빠르고 부지런하고 체력이 튼튼한 사람일지라도,

모자라고 굼뜨고 게으르고 약해빠진 이들과 똑같이 한 오멜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저 만나의 정신, 저 광야의 경제원리를 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출애굽기 16:17-18)

 

광야의 경제원리에 철저히 훈련된 백성은 금세 천국의 경제원리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큰 은혜, 영생은 천국일꾼, 천국시민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아침 일찍 온 사람이나 오후 5시에 온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1원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똑같은 영생입니다.

 

이런 영생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 천국시민들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자연스럽습니다.

광야의 경제원리, 일용할 만나의 삶이 낯설거나 부대끼지 않습니다.

범사에 만족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나머지]

* 부르짖는 기도

종종 부르짖는 기도를 도깨비방망이쯤으로 착각할 경우가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부르짖음에 ‘원망’이 섞여 있지 않은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더 이상 탐욕 때문에 발생하는 불만과 원망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탐욕을 회개하는 진정한 참회의 기도여야 할 것입니다.

 

** 천박한 경제와 깊은 경제의 차이

경제타령 1절은 “잘살아보세∼♬”입니다.

잘 사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잘 사는 것 뿐 아니라, 육체적,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 역시 좋은 일입니다.

다만, 진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똑 같은 밥 한 그릇도 누가 먹느냐, 어떤 (얼마나 배고픈) 상태에서 먹느냐, 무엇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똑 같은 양의 돈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쓰는 용처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나의 경제, 우리의 경제를 천박(淺薄)하지 않고 깊고 두텁게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내 안의 탐욕을 다스리고 진짜 경제적으로 잘 사는 길 말입니다.

 

*** 성찬식이 아름다운 것은

나에게 있어서 성찬식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또 하나의 이유는,

광야의 일용할 양식, 만나를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만나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이를 막론하고, 뚱뚱이와 홀쭉이를 막론하고

똑같은 것을, 딱 똑같은 양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성찬식이 무엇입니까? 천국에서 맛볼 어린양잔치를 미리 맛본다는 것 아닙니까?

천국의 식탁 원리를 지금 여기서 매주일 재현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손수 음식을 떼어 당신 피와 살을 떼어 분배해주셨던 것처럼,

주일예배 때 목사는 예수님의 분신처럼 성찬식을 인도합니다.

그렇게 떡과 잔을 받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예수님의 분신으로서, 작은 예수로서, 성찬분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의 게으름뱅이들, 나약하고 낙오된 이들,

도저히 성찬을 먹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나눠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것은 내 살이다, 내 피다 하면서 떼어 먹여주신 것처럼,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해라 명하셨던 것처럼,

그것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살과 피 같은 돈을 꺼내어

여러분의 일상에서 만나는 낙오자들을 먹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포도원주인이 되어, 아침 일찍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아침 9시에도,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오후 5시까지도

일일이 틈틈이 지금 고통받는 약자들, 낙오자들의 절망의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진정한 천국의 주인이 됩니다.

천국은 그렇게 확장되어가는 법입니다.

 

 

 

 

[말씀동시] 감사할 줄 알아야지 (김윤서 지음. 명암교회 교회학교 5학년. 『성실문화』80호)

생일선물 받고 불평했어

감사할 줄 알아야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어

하지만 하지만

불평했어

나중엔 그것마저

뺏길지도 몰라

 

 

 

[말씀시조] 마태복음 20:1-16 (이정훈 지음.『성실문화』80호)

천국은 일꾼찾는 포도원 주인같다

첫째도 꼴찌도 똑같은 품삯이다

이것이 내마음이다 꼴찌들아 힘내라

 

 

 

[말씀한시] 늦게 왔어도 앞설 수 있다 (오세종 지음.『성실문화』80호)

向天無後先 (향천무후선) 천국 가는 데는 앞뒤가 없다

恩寵皆平均 (은총개평균) 주님은 누구에게나 균일하게 은총을 내리셨다

先來懶怠遲 (선래나태지) 먼저 왔어도 게으르면 뒤쳐지고

後發惠恩先 (후발혜은선) 늦게 왔어도 은혜로써 앞설 수 있다.

 

 

 

[말씀서예] 시편 105:4 (오세주 작품.『성실문화』80호)

 

 

 

 

 

[말씀노래] 하늘나라는 일꾼들에게 (주원남 지음.『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20:1-16)

[노랫말]

하늘나라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는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네

일찍 일을 시작한 이도 늦게 시작한 이도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먼저 온 자들은 더 받을 줄 생각하고 주인을 원망했지만

이와 같이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

[해설]

하늘나라를 비유하신 주님의 말씀을 곡으로 붙였다. 우리의 구원은 개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이다.

[악보] 하늘 나라는 일꾼들에게 (높은소리 주원남 작곡, 2014.7.18.)

 

 

 

 

 

[시편송서] 시편 105:1-6, 37-45 (이정훈 다듬음.『성실문화』80호)

[전래 자장가 풍, 즉 천자문 독송풍으로]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 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할지어다-∼

 

5-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37.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39.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40.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 (기억)하셨음이로다-∼

 

43.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44.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다함께]

45.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말씀동화] 둥글레교회 베짱이음악회를 시작합니다!

 

1.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일용할 만나를 주시는 주님

   남아도 썩지않는 주님의 만나,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2.오천명 오만명을 먹이신 사랑, 어린양 십자가에 오르신 사랑

   이천년 베푸시는 주님의 만찬,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3.너희가 저들에게 밥을주어라, 너희가 저들에게 만나가되라

   하나님 하늘사랑 땅을적실 때,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이정훈 지음. 감사노래]

 

강계(薑桂)랑 난(蘭)이의 노랫가락이 꽤 구성지네요.

한두 번 불러본 솜씨가 아닙니다.

강계와 난이의 노래는 시나브로 광화문광장을 채웁니다.

강계와 난이의 가락이 세월호 천막 사이사이로 은은하게 퍼져갑니다.

 

강계는 광야교회 초등부 어린이입니다.

난이는 빈들교회 중등부 학생이고요.

강계네 광야교회는 서울에 있는 작은 교회들의 연합체입니다.

난이네 빈들교회는 양평에 있는 작은 교회들의 모임이고요.

 

주일예배 때는 따로 모이지만 중요한 일이 생기면 벌떼처럼 뭉치는 교회죠.

어른들은 이런 교회를 프로젝트교회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마자

여기저기 작은 교회들이 광야교회라는 이름으로, 빈들교회라는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뭉쳐서 진도 팽목항으로도 가고, 서울 광화문광장으로도 갑니다.

 

얼마 전 광화문광장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광화문광장에 모였어요.

광야교회와 빈들교회가 한데 모이니 썰렁하던 광화문광장이 조금 따뜻해지네요!

광화문 단식장 곁에서 치킨, 피자, 짜장면, 초코바 먹기 놀이한다는 소리에 얼른 달려간 겁니다,

유가족들이 술 먹고 사람 때렸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굼뜨던 지체들까지 순식간에 모두 모입니다.

 

 

원래 광야교회는 서울에서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사랑의만나를 나누는 일을 했어요.

영등포지역 작은 교회들이 힘을 합해서

매일매일 밥못먹는 이웃들을 위해 영등포역 광장에서 매일 사랑의만나 밥을 나눠드리죠.

 

빈들교회는 양평에서 오병이어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했어요.

양평의 작은 교회들이 힘을 합해서

매일매일 구석구석 외로운 어르신들께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강계는 영등포역 사랑의 만나밥상 주변에서 잔심부름을 합니다.

밥을 다 먹고 난 몸이 불편한 분들 대신 식판을 나르기도 하고요,

때론 밥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는 아저씨들께는 얼른 추가 밥을 퍼 나릅니다.

 

“똑같이 주면 어떡해? 사람 덩치가 크면 더 많이 줘야지. 암, 그렇고 말고!”

 

강계는 고개를 갸웃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합니다.

 

‘이상하다. 출애굽 한 히브리백성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매일 똑같이 한 오멜씩만 받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덩치 큰 사람은 더 많이 먹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배고픈 건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는 강계가 엄마께 여쭤봅니다.

 

“오늘도 우리 강계 질문 참 좋구나. 만나는 매일 한 사람 먹을 만큼씩만 가져가는 하늘양식이지. 한 사람이 하루 먹을 양식이 한 오멜인데, 한 오멜은 2리터가 조금 넘는 양이란다. 성경말씀을 한번 볼까?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출애굽기 16:17-18)’ 어때 이제 좀 이해가 가니?”

 

“엄마, 그럼 덩치가 큰 사람은 더 많이 먹어야 하는데, 한 오멜로 하루 먹고 부족하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엄마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이 거두어도, 적게 거두어도 한 오멜이 되었고, 그리고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라는 말씀의 뜻은, 그 한 오멜로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큰 차이 없이 하루를 살 수 있었다는 말씀 아니겠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단다. 하늘양식 만나를 베푸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만, 하늘사랑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뜻이란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한다는 건 하나님이 무슨 애정결핍증 걸린 이기적인 분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의 깊은 뜻은, 풍년들게 하려고 온갖 어리석고 음란한 짓을 일삼는 이방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고, 알량한 제 머리와 힘만 믿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렇게 버는 돈은 남 주기 아까운 법이거든! 내 돈이 하나님만 의지해서 번 돈, 하나님께서 베푸신 돈이라고 생각하면 어렵고 약한 사람에게 나눠주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래서 제 아무리 똑똑하고 재빠른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많이 거둔다고 거두어도 하루 먹을 한 오멜, 아무리 어리버리한 사람도, 달리기 못하는 장애인조차 조금밖에 못 거두어도 하루 먹을 한 오멜을 거두게 되었다는 거! 이게 하늘양식인 만나의 교훈이야. 게다가 머리를 써서, 혹시라도 내일 안주시면 어떡하나 하고 비상식량으로 만나를 남겨두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세가 그들에게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 모세가 그들에게 몹시 화를 내었다.(출애굽기 16:19-20)’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 중요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 딱 광야시절의 만나와 같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란다.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강력한 마음이 담긴 기도지. 어때 이젠 좀 이해가 되니?”

 

강계는 엄마 말씀에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에겐 좀 어렵지만, 그래도 이젠 약간 이해가 갑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그래서 광야교회로 모일 때마다 어른들은 아낌없이 사랑의 밥을 풀 수 있었나 봐요.

만나처럼 매일매일!

만나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하나도 아까운 생각 없이 넉넉히!

 

문득 지난주일 복음서말씀이 기억납니다.

포도원주인이 많이 일한 사람이나 적게 일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똑같이 품삯을 준 이야기!

문득 포도원 품삯이 광야의 하늘양식이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지런한 사람이나 굼뜬 사람이나 똑같이 한 오멜을 받은 것처럼,

일 많이 한 사람이나 조금 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똑같이 베푸시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그나저나 덩치 큰 아저씨가 저녁끼니 걱정 때문에 밥 욕심내시는 게 걱정입니다.

식판에 밥을 많이 담아 드시고도 더 달라는 게 바로 그것 때문이거든요.

위장에 탈이 날까봐 걱정입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난이는 오늘도 아빠와 함께 오병이어 도시락을 나릅니다.

차를 타고 시골 마을 구석구석을 돌다보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죠.

우리 양평에 혼자사시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땐, 열심히 밥을 지었는데, 이젠 혼자라서 밥을 잘 안 하신답니다.

 

난이는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배달하고, 어제 잡수신 빈 도시락을 모아 설거지도 합니다.

설거지를 하던 난이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아빠, 그런데 우리 빈들교회 도시락 이름이 왜 오병이어 도시락이죠?”

 

“그걸 여태 몰랐어? 너 오병이어 뜻은 알지? 떡 다섯 덩이랑 물고기 두 마리! 그런데 그게 너처럼 작은 아이가 바친 도시락이었잖아. 물론 보온 도시락이나 스텐 도시락은 아니었어도, 오병이어는 도시락이었거든. 작은 아이의 헌신하는 마음이 담긴 오병이어 도시락! 우리도 그 작은 아이처럼 작은 교회들이잖니? 우리처럼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있는 안성맞춤 사역이어서 오병이어 도시락이라고 이름붙인 거야. 우리가 처음 모일 때, 딱 떡 다섯 개랑 물고기 두 마리처럼 모두 일곱 교회가 모였었거든.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병이어라는 상징 속에는 작은 아이가 바친 도시락이라는 뜻도 있지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는, 즉 작은 음식이라는 뜻도 담겼단다. 그런데 이 작은 도시락에 예수님의 사랑마음이 담기자 광야의 만나처럼 빈들의 하늘양식으로 변신하였지! 그래서 오천 명, 오만 명, 수많은 사람들이 넉넉히 먹고도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았잖아?”

 

오병이어 도시락에 이런 심오한 뜻이 담겼군요.

난이는 오병이어 도시락에서 새삼 2천 년 전 빈들의 향기를 느낍니다.

멀리 있어 더 은은하고 신비로운 향기!

 

문득 성찬식 때 들은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치 작고 작은 오병이어에 하늘마음이 담겨 무궁무진한 하늘양식이 된 것처럼,

작고 작은 예수님 몸에 하늘사랑이 담겨 무궁무진한 하늘양식 성찬이 되었다는!

그래서 우리도 성찬의 도(道)를 따라 내 몸과 내 피 같은 돈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라는!

오병이어처럼 작은 교회들이 모인 우리 빈들교회의 오병이어 도시락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입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만난 광야교회와 빈들교회가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이름도 뜻도 비슷합니다.

모임의 구성도 하는 일도 비슷해서 딱 오누이 남매 같습니다.

그래서 금세 친해졌습니다.

광야교회 강계도 빈들교회 난이랑 금세 친해져서 “난이 누나, 난이 누나∼” 자꾸자꾸 부르며 따릅니다.

 

광야교회랑 빈들교회는 광화문광장 천막 사이사이에서 무슨 봉사를 할지 궁리합니다.

둘 다 하늘만나, 오병이어처럼 도시락 봉사로 잔뼈가 굵었는데...

단식하시는 분들께 도시락은 안 어울리겠죠?

 

강계랑 난이도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는 악기가 떠오릅니다.

난이는 작고 작은 우크렐레 선수입니다.

강계는 리코더를 무척 잘 붑니다.

그러고 보니 우크렐레나 리코더나 모두 오병이어처럼 작은 악기들입니다.

 

난이랑 강계의 제안에 광야교회도 빈들교회도 손뼉을 칩니다.

광야교회와 빈들교회는 둥글레교회라는 이름으로 뭉치기로 했습니다.

둥글레교회의 광화문광장 사역으로 베짱이음악회가 결정되었습니다.

 

둥글레교회의 베짱이음악회는 둥글둥글한 마음들이 모인 음악회입니다.

자칫 날카로워지기 십상인 세월호 희생자가족들의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줍니다.

배고픈 단식자들 마음속에 든든한 뱃심을 심어드립니다.

사랑고프고 외로운 분들이 술에 의지하지 않도록 사랑의 힘을 부어드립니다.

 

베짱이음악회는 우크렐레랑 리코더를 시작으로 작은 멜로디온까지 더해집니다.

맑고 청아한 소금도 더하고 단소랑 소고까지 더합니다.

작고 작은 악기들이 여섯 개가 모였습니다.

한 개를 더해야 일곱 갠데... 뭐 작고 좋은 악기 더 없을까요?

이리하여 베짱이음악회는 오병이어의 신비를 이루어갈 것입니다.

 

난이와 강계가 우크렐레와 리코더 이중주 연습을 합니다.

문득 난이가 강계에게 묻습니다.

 

“강계야, 그런데 네 이름 뜻이 뭐야 좀 독특한데?”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강계지성(薑桂之性)에서 따온 이름이야. 강계는 생강이랑 계수나무 껍질 즉 계피를 뜻하는 말인데, 이 두 식물의 공통점이 묵을수록 맛이 매워진다는 뜻이래.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진해지라는 뜻이지”

 

“오∼ 그런 심오한 뜻이 담긴 이름이었군! 내 이름이랑 비슷한데? 나는 난초(蘭草)에서 따온 이름인데 우리 동양란의 향기가 참 좋잖아. 그런데 난의 향기는 가까이 코를 대고 냄새 맡는 게 아니라 좀 멀리서 맡는 법이래. 그래야 향이 좋대. 좀 어려운 말이지만, 향원익순(香遠益淳)이란 말이 있단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아진다, 뭐 그런 뜻이라지? 사람도 멀리 있어 더 그리워지는 법이잖아...”

 

“그러네, 누나 이름이랑 내 이름이랑 많이 통하네. 우리 베짱이음악회 작은 음악의 향기들이 누나이름 난(蘭)처럼 멀리까지 퍼져 가면 참 좋겠다.”

 

“아쭈, 조그만 녀석이 제법인 걸? 내 생각도 그래. 우리 둥글레교회가, 우리 베짱이음악회가 생강과 계피, 네 이름 강계처럼 오래 묵을수록 진한 맛을 잃지 않으면 참 좋겠다. 그치?”

 

강계랑 난이랑 다시 이중주를 시작합니다.

작지만 점점 진해지고 점점 멀리까지 퍼지는 기운입니다.

광야생활 내내 내리던 만나처럼 우리 하늘음악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빈들의 오병이어처럼 작고 작은 우리 음악은 열두광주리를 남길 것입니다.

 

우크렐레와 리코더에 맞춘 감사노래 가락이 구성지게 흘러갑니다.

배고프고 힘없는 분들 사이사이로, 꼴찌가 첫째 되는 기운이 진동합니다.

광화문 천막 사이사이로 은은한 사랑의 기운이 스며들어갑니다.

 

1.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일용할 만나를 주시는 주님

   남아도 썩지않는 주님의 만나,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2.오천명 오만명을 먹이신 사랑, 어린양 십자가에 오르신 사랑

   이천년 베푸시는 주님의 만찬,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3.너희가 저들에게 밥을주어라, 너희가 저들에게 만나가되라

   하나님 하늘사랑 땅을적실 때, 보리떡 다섯개는 열두광주리

[이정훈 지음. 감사노래]

 

[이정훈 지음. 2014년 9월 21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