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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3주(2014년 9월 14일, 교회연합주일, 농촌선교주일) 예배준비 노트

“온 땅아, 주님 앞에서 떨어라”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14:19-31)

19. 이스라엘 진 앞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진 뒤로 옮겨가자,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진 뒤로 옮겨가서,

20. 이집트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구름이 이집트 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양 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22.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23. 뒤이어 이집트 사람들이 쫓아왔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24. 새벽녘이 되어,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진을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

25. 주님께서 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드시니,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 이집트 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

27. 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이집트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

28. 이렇게 물이 다시 돌아와서 병거와 기병을 뒤덮어 버렸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 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29.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30. 바로 그 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31.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치신 주님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과 주님의 종 모세를 믿었다.

 

(시편 114)

1.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

2. 유다는 주님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4. 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6. 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았느냐?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

7.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

8.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

 

(로마서 14:1-12)

1. 여러분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3.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

5. 또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7. 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어찌하여 그대는 형제나 자매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11.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

24. 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 달란트 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그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27. 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서,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28. 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자,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였다.

29. 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였다.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집어넣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

31.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

35.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면서 몇 줄기 튼튼한 동아줄 같은 말씀을 잡았습니다.

먼저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원방법과 어마어마한 구원(용서)스케일입니다.

구약의 홍해를 가르시는 모습과 복음서의 1만 달란트 빚 탕감!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체험한 이들의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경외심)’입니다.

그 마음이 희미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큰 용서, 작은 용서 모두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요절말씀은 시편 114:7절로 정했습니다.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

 

 

[구약과 시편 (출애굽기 14:19-31 / 시편 114)]

오늘 구약본문은 흔히들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는,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22절과 29절에 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곰곰이 생각하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이건 우리 전라남도 진도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과는 차원이 다른 현상입니다.

어떤 자연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지난 주 구약본문에서 본 ‘야훼의 밤’이

이집트인들에게는 크나큰 비극이었으나, 히브리인들에겐 해방과 희망이었듯이,

오늘 이 부분, 어마어마한 주님의 역사 역시 똑같습니다.(27-28, 30-31)

이로써 이집트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은 물론, 히브리인들에게도 두려움(경외심)이 생깁니다.

 

23. 우리가 홍해를 다 건널 때까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앞에서 그것을 마르게 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요단강을 다 건널 때까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요단 강 물을 마르게 하셨다.

24. 그렇게 하신 것은, 땅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신가를 알도록 하고, 우리가 영원토록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호수아 4:23-24)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과 스케일은 우리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걸 경험한 사람이라면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마땅합니다.

이런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법입니다.

제 욕심 차리려고 남을 짓밟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구구절절 오늘 구약본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찬송입니다.

특히 바다가 도망쳤다는 대목,

산들과 언덕들이 뛰논다는(놀라서 자빠진다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노래합니다.

 

“온 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7)

 

그런데 우리 주님은 큰 바다를 마른 땅이 되게도 하시지만,

마른 땅을 바다가(물이) 되게도 하십니다.

 

“주님은 반석을 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신다.”(8)

 

무엇을 위해 이런 역사를 일으키시는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로마서 14:1-12 / 마태복음 18:21-35)]

오늘 서신서본문은 교회에서 서로 마음을 합하고 화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과도, 생각이 다른 이들과도 화목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주님 앞에서(“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10절) 모두 도토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토리 키재기 하듯, 그런 다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9)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너도 나도,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구원하시기 위해,(9)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을, 전무후무한 부활 역사를 이루셨다는!

어떤 자연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 역시 하나님의 구원스케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한 개인의 1만 달란트 빚 탕감이란,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1달란트가 5,000 데나리온이고, 1데나리온이 하루 일당이니,

하루 일당을 5만원으로만 계산해도, 1달란트는 2억 5천만 원이고,

1만 달란트는 대략 2조 5천억 원이 넘는 돈입니다.

 

그런데 왕은 종의 그 큰 빚을 너무 쉽게 탕감해줍니다.

27절의 짤막한 한 절로 설명이 끝나버립니다.

그냥 “가엾게 여겨서”!

 

그런데 그 종은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다른 동료들에 의해 왕에게 고발당하고,

자기가 그 동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벌을 받게 됩니다.(34)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주님의 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27절, 33절)

그런데 이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이 예화는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렇게 측은지심이 바닥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예화 속에서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식이 억울하게 죽어 그 한을 풀어주려고 굶고 있는 아비 앞에서 우리가 하는 말과 짓들이 보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아무리 정당이 다르고, 아무리 돈이, 경제가 좋아도 그렇지...

 

측은지심이 없는 것은, 주님의 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금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고 나오는 길이지만,

아마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큰 소리는 우리 귀가 들을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그 큰 구원 역사를 오늘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원’은 용서 즉 빚 탕감과 직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와 구원의 비밀을 아는 이들의 삶은, 구원의 기쁨을 안만큼 그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삶이란, 이 복음을 말로 전하는 일을 넘어, 몸으로 전하는 삶입니다.

복음을 몸으로 전한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구원의 구체적인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주님의 그 구원의 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복음서본문의 주제와 이어집니다.)

 

그리고 죄 용서를(21) 빚 탕감으로 설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빚 탕감이란 단순한 예화가 아니라 용서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본문을 좀 더 깊이 느끼고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경제, 돈의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고통과 비극을 꼼꼼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정의의 현주소와 경제시스템의 부조리 문제 등도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합니다.

 

매일성서일과 토요일(2014년 9월 13일) 복음서 본문이 바로 마태복음 6:7-15절이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직후 이어지는 14-15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벌써 여러 주째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의 중심에 바로 이 용서의 문제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12절에 대한 난하주가 눈에 띕니다.

용서란 빚 탕감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사람의 빚을 없애 준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없애 주시고”, 난하주)

 

 

[정리]

오늘 4본문의 알맹이는 구원(용서)입니다.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방법과 스케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그만큼 구원(용서)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한번 용서하기도 힘든 우리에게, 일곱 번도 아니고 490번이나, 아니 한없이 용서하라 명하십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마태 18:35)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가르신, 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두려움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날 살리신 주님 사랑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도 그 사랑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돈 욕심으로 꽉 찬 내 인생이,

도저히 길이 안 보이는, 돈 욕심으로 꽉 찬 내 욕심의 바다가,

그 욕심의 바다 한 가운데가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뻥 뚫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을 가로막는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천국 삶을 향한 진리의 길을 가로막는 욕심의 바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장 내게 빚진 사람을 탕감해주는 것 뿐 아니라,

빚 문제를 악순환 시키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그 모순의 중심을 우리는 홍해처럼 갈라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왕국절 3주,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력, 그 막강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나머지]

* 진도를 배경으로 한 릴레이 ‘모세의 기적’

1) 진도 ‘모세의 기적’

해마다 봄이면 전라남도 진도에서 작은 ‘모세의 기적’이 벌어집니다.

물론 이 현상은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폭 50미터에 길이 2.8킬로미터나 되는,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2) 진도 ‘팽목항의 기적’(최덕현 작가)

얼마 전 세월호 만화전이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국회의원회관, 봉하마을, 제주대학교 등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그림 가운데서, 오늘 구약본문인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과 겹치는 그림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팽목항의 기적’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만든 최덕현 작가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길은?

최근 영화 『명량』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병사들의 저 끝없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일자진(一字陣)을 펼친 상태에서 혼자 진격합니다.

다른 부하들의 배는 두려움에 꿈쩍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대장선이 혼자 적들에게 돌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웁니다.

 

그러자 나머지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해결할 길 없었던 부하들의 두려움은,

이순신 장군의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가르침과 실천을 보면서 서서히 용기로 바뀝니다.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스케일!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그것은 경외심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조차 그렇습니다.

그건 구원과정의 알맹이를 전혀 맛보지 못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세상 두려움과 정반대입니다.

진정한 두려움(경외심)은 오히려 우리를 씽씽 움직이게 합니다.

그 두려움(경외심)은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예수님의 용기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세상 두려움이 나를 가위눌리게 할 때마다,

우리는 내게 진정 주님을 향한 두려움(경외심)이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동시] 용서해주세요 (함소빈 지음. 섬돌향린교회학교 4학년)

제가 괴롭히고 때렸던 사람들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비웃고 욕했던 사람들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화내고 짜증내도 참았던 사람들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저를 낳고 기르시는 제겐 하나님같은

부모님

저를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말씀시조] 마태복음 18:21-35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형제가 지은죄는 수백번도 용서하라

만달란트 사했으니 백데나리온 용서쉽다

용서는 진실로하라 내아버지 닮으라

 

 

 

[말씀한시] 용서받은 죄는 무게가 없다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0호)

罪業無大少 (죄업무대소) 죄에는 크고 적음이 없다

諸愆皆不生 (제건개불생) 모든 죄는 다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된다

得毫平生苦 (득호평생고) 터럭 같은 죄가 평생을 괴롭히고

如山罪無重 (여산죄무중) 태산 같은 죄도 용서 받으면 무게가 없다.

 

 

 

[말씀서예] 시편 114:7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0호)

 

 

 

    

 

[말씀노래] 용서하여라 (주원남 지음. 『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18:21-35)

 

[노랫말]

용서하여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늘 아버지께서 널 용서하신 것처럼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이

백 데나리온을 용서치 못할까

용서하여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늘 아버지께서 널 용서하신 것처럼

 

[해설]

주님께서 용서에 관해 교훈하신 ‘악한 종의 비유’를 곡으로 엮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까닭은 하늘 아버지께서 갚을 수 없는 큰 용서의 은혜를 베푸신 때문이다.

 

[악보] 용서하여라 (높은소리 주원남 작곡, 2014.7.16.)

 

 

 

 

 

 

[시편송서] 시편 11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0호)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고)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주 앞-(에서-),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떨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다함께]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차돌로 샘물이 되게하셨∼도∿다∼)∥

 

 

 

[말씀동화] 꿈꾸는 녹두장군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팽목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우리엄마 울고간다

 

노란 녹두꽃이 떨어지네요.

한여름 지천으로 피어오르던 노란 녹두꽃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하나 둘 지고 있습니다.

팽목항에 나부끼는 노란리본, 지금 다들 잘 있을까?

 

내 이름은 녹두장군!

어릴 적부터 키가 작아 붙은 별명이죠.

녹두장군 전봉준을 닮은 안산 단원고 녹두장군!

그게 바로 저예요.

 

저는 요새 이상한 꿈을 꾸고 있어요.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우리가 탄 배 세월호가 침몰합니다.

진도 팽목항 부근이었어요.

친구들 일부는 헤엄쳐 살아남았고, 대부분 배안에 남아 숨졌죠.

 

저는 침몰한 배 안에 공기가 남아있는 에어포켓에서 며칠 버티다가

드디어 탈출을 결심합니다.

먹을 것도 다 떨어지고 산소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아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거든요.

두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나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어요.

몇 십초가 흘렀는지 모르지만 차가운 물속에서 숨이 차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꼬르륵 꼬르륵 물을 먹고 기절해버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오! 제가 살아있는 거예요!

아니, 근데 도대체 여긴 어디지...?

 

아이 깜짝이야!

웬 낯선 사람이 내 이마를 짚어보고 있네?

수상한 옷차림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였어요.

우리나라 사람 아닌 것 같은데?

무어라 무어라 이상한 나라 말로 중얼거리는데, 더 이상한 건

제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거죠.

 

믿거나 말거나, 3,500살이라는 이 할아버지는

모세가 히브리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킬 때

그 뒤를 쫓아 홍해바다로 뛰어들었던 바로 그 이집트 군인이었대요.

특수병거 육백 대로 편성된 정예부대 군인이었는데 (출애굽기 14:7)

아마 오늘날로 말하면 대전차부대 같은 거였나 봐요.

 

“우린 자부심이 아주 대단한 군인이었단다. 천하무적이었지. 제아무리 힘센 세상 어떤 군대도 우리 정예부대 대전차군단 앞에서는 아주 쩔쩔맸다니까? 그런데 우리 왕 파라오가 그땐 정신이 완전히 나갔었나봐. 히브리인들의 하나님께 그토록 호되게 두들겨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기어이 히브리노예들을 되찾아와야 한다며 부리나케 우릴 내보낸 거야. 그런데 말이다. 우린 그때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을 했어. 히브리인들의 하나님께 열 차례나 벌을 받은 직후라서 이젠 웬만한 희한한 일들 쯤에는 외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을 텐데, 이건 뭐 뭐라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대(大)사건이었지.”

 

“도대체 무슨 일이셨는데요?”

 

어느새 저는 호호백발 이집트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가고 있었죠.

 

“오냐. 잘 들어보렴. 모세가 팔을 내밀어 지팡이를 홍해바다로 뻗자마자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거야. 무서운 회오리바람도 불고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아니 글쎄 홍해바다 한 가운데가 둘로 갈라지기 시작하네? 마치 커다란 시루떡을 식칼로 자르고 나서 양옆으로 벌여 가운데 길이 나게 하듯이! 우린 처음에 바다밑바닥에서 무언가 솟아오른 줄만 알았다니까? 이를테면, 오래전에 외계인들이 찾아와서 홍해바다 밑에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강철로 만든 방수벽 두 짝을 바다위로 ‘기깅∼’ 올려서 바닷물을 양쪽으로 쫙∼ 밀어내는 줄만 알았다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었어. 강철방수벽이 아니라 그건 그냥 바닷물이었어! 바닷물이 바닷물을 막는 방수벽이 되어 그 깊은 바닷물을 가르고 50미터, 100미터, 500미터... 어마어마한 큰 길을 만들어낸 거야. 우린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동안이나 히브리인들이 그 길로 홍해를 건너는 걸 구경만하고 있었단다. 아무도 감히 그 뒤를 쫓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 때 갑자기 ‘전군(全軍) 앞으로 돌격∼!’하는 명령소리가 들렸고, 우린 아무생각 없이 그 길로 달리기 시작했지.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린 어느새 바다 한 가운데 와 있었어. 그때 갑자기 우리 병거를 끌던 말들이 히히힝 하고 날뛰기 시작하는 거야. 가만 보니 병거의 바퀴가 빠지고 난리가 아니네? 그런데 우리 이집트 병사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꼼짝도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였는데도, 우린 넋 나간 사람들처럼 바닷물 방수벽을 구경하고 있었단다.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수족관을 어디서 또 구경하겠니? 어라 그런데 저건 또 뭐지? 방수벽 저쪽에서 무언가 되게 큰 물고기가 이리로 헤엄쳐 오고 있는 거였어. 나도 모르게 그만 ‘우와∼’하고 소리 지르는 순간 어느새 바닷물 방수벽이 허물어지며 우린 순식간에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단다. 모두 물에 빠져 죽는 순간, 나 혼자 아까 보았던 그 큰 물고기 뱃속으로 쏙 들어오게 되었지.”

 

“아니 할아버지, 그럼 여기가 고래뱃속이란 말씀이세요?”

 

“글쎄 그렇다니까?”

 

“어휴,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저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두컴컴한 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주변이 온통 물컹물컹한 고래뱃속 같아 보였죠.

 

“오래전, 그러니까 한 2,700년 전 쯤인가? 그 땐 ‘요나’라는 사람도 여기 들어왔었다니까? 오랜만에 친구 하나 생겨 좋았는데, 며칠 안 되서 내가 잠자는 사이에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무척 서운했었지. 그리고 얼마 전에도 또 희한한 친구들이 들어왔다 나갔어요. 제페토라는 영감이랑 어떤 꼬마였는데, 그 녀석 이름이 피노키오였지 아마?”

 

그 때 갑자기 ‘푸핫∼’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이집트 할아버지 이야기솜씨가 정말 대단하죠?

 

“아니 이 녀석, 왜 갑자기 웃는 거야? 내 말이 그리 웃기냐?”

 

“예 할아버지, 참 재미있어요. 근데 그건 그렇고, 그럼 할아버지 여기서 꽤 오래 사셨겠네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든 거 보단 좀 외로운 게 흠이지 뭐. 때 되면 물고기도 들어오고, 이런저런 난파선에서 밀려들어오는 맛있는 먹을거리 상자도 있고, 희한한 장난감들도 들어오고... 그런대로 살만한데, 말벗이 없어서 외로운 게 딱 흠이야. 그래도 땅에 있을 때보단 여기가 맘 편하고 좋아. 군대생활 참 힘들었거든. 돈 몇 푼 빌린 거 갚지 못하는 바람에 날마다 군대영창에 쳐넣는다고 협박하는 동료녀석 때문에 골치 깨나 아팠지. 그리고 정예부댄 개뿔! 툭하면 상관들한테 욕먹고 왕따 당하고, 심지어 상급자들한테 밤마다 두드려 맞는 게 아주 지긋지긋했지. 아마 요샌 그런 군대 없겠지? 그런 군대생활 보단 차라리 여기 고래뱃속이 훨씬 뱃속 편하고 좋아.”

 

“예 할아버지. 요샌 아마 그런 군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얘야, 넌 도대체 누구냐? 어떻게 여기 들어오게 되었어?”

 

“아, 저는 학생이에요. 안산에 있는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죠.”

 

“그래. 너는 학교에서 나쁜 녀석들한테 두드려 맞거나 그러진 않았느냐?”

 

“네, 전 뭐 두드려 맞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오 그래, 너희 학교는 참 착한 아이들만 모인 좋은 학교로구나.”

 

이집트 할아버지 말씀에 전 마음이 찔렸어요.

사실은 제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편이었거든요.

키는 작지만 주먹이 매운 돌주먹 녹두장군이 바로 접니다.

조금이라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녀석들은 가만 놔두지 않았죠.

나중엔 빵 심부름, 음료수 심부름도 시키고 막 못살게 굴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아직 사과도 못했는데 어떡하지?

 

그 때였어요.

할아버지께라도 그 고백을 막 하려던 차였는데, 어? 어? 갑자기 고래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네?

나는 순식간에 하늘위로 빨려 올라가버렸어요.

그리곤, 어휴 꿈에서 깨어났죠.

 

 

아직 깜깜한 한밤중이었어요.

저는 놀란 가슴을 쓸며 다시 잠이 들었죠.

이번엔 아까 이집트 할아버지 꿈 때문인지, 모세의 기적을 제 눈으로 보는 꿈이었어요.

우리가 탄 세월호가 갑자기 좌우로 이리저리 급히 기우뚱거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첨벙, 자빠지고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탈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세상 사람들 모두 발만 동동 구르며 “어떡해 어떡해∼” 한탄만 하고 있을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우리가 타고 있는 세월호가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하네요?

그리고는 “쿵∼!” 소리가 나네? 아마 배가 땅바닥에 닿았나 봐요?

 

“이상하다 물속에서 이렇게 빨리 가라앉아 땅에 닿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 왜 바닷물은 차오르지 않는 걸까?”

 

갸우뚱거리며 우린 하나 둘 모두 뒤집어진 배에서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어요.

아니 세상에!

이런 모세의 기적이 또 있나!

팽목항의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우린 모두 뒤집어진 세월호 밖으로 나왔어요.

그때 저기 팽목항 부둣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우리를 찾아 달려오는 엄마 아빠, 형제자매들이었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를 찾는 아이들도 달려오네요.

 

모두가 부둥켜안고 엉엉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우린 모두 팽목항으로 올라오는데,

어?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팽목항에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네요?

가만 보니까 어디선가 많이 낯익은 사람들도 있고...

 

맞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사람들,

우리를 구조해주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수십 명 수백 명이나 되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세월호를 향해 들어갑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갑니다.

 

무엇 때문일까?

문득, 범인은 반드시 사건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법이라는 말이 기억났어요.

무슨 증거라도 남았을까봐 얼른 찾아 감추려는 것일까요?

 

바로 그때였어요.

세월호 참사의 범인들 수백 명이 세월호로 들어가자마자

팽목항 앞바다는 다시 방수벽이 무너지고 세월호는 물에 잠깁니다.

어쩌지? 아무리 나쁜 사람들이지만, 어쩌지? 어쩌면 좋지?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번쩍 잠을 깹니다.

 

“녹두야, 우리 녹두장군∼ 어서 일어나라. 너 좋아하는 청포묵 해놓았다.”

 

청포묵? 얼른 일어나서 밥상으로 달려갑니다.

녹두를 갈아 만든 청포묵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거든요!

 

 

아침을 맛있게 먹고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선 세월호 만화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수많은 대한민국 작가들께서 세월호를 잊지 말자며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 가운데 최덕현 선생님의 『팽목항의 기적』이란 작품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어젯밤 꿈에 본 바로 그 장면이었거든요!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한 아이랑 마주쳤습니다.

우리 반 아입니다.

늘 내가 괴롭히던 아이...

저 아이에게 빵 심부름시키고 갚지 않은 돈만 아마 몇 십만 원은 족히 될 겁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엽니다.

 

“미안하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그래도 우린 살아서 다행이야. 나 꼭 일주일 내로 다 갚을게. 다신 그런 짓 하지 않을게. 그동안 너를 괴롭혔던 것 몇 배로 다 갚을게..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어? 왜 저러지? 내 음성이 들리지 않나?’

 

가만 보니까 내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나 봅니다.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 영정그림 앞에서 한참동안 서서 그림 하나를 어루만지고만 있네요?

가만 보니 그건 바로 제 그림, 저를 그린 영정그림이었습니다.

새야새야를 흥얼거리며 내 얼굴을 닦아주던 그 녀석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잘 가라 녹두장군, 이젠 편히 쉬렴!”

 

‘고마워!’

 

저는 진심으로 외쳤습니다.

아마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아까 제 미안한 마음을 저 아이는 들었나봅니다.

새야새야를 부르며 녹두장군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저 아래 전시장 옆에 단식하는 어른들이 보입니다.

그 옆에서 단식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보이네요.

닭고기에 피자에 초코바까지 잔뜩 늘어놓은 사람들...

언젠가 저 분들, 하늘 무서운줄 아는 날이 오면, 깨닫게 되겠죠.

그땐 우리 모두 저들을 용서할 수 있겠죠...

 

노란 녹두꽃이 떨어지네요.

한여름 지천으로 피어오르던 노란 녹두꽃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하나 둘 지고 있습니다.

팽목항과 광화문에 나부끼는 노란리본도 하나 둘 떨어질 때가 되어갑니다.

 

한바탕 신나는 꿈꾸고 저는 갑니다.

한세상 행복한 꿈꾸고 저는 갑니다.

광화문 여러분, 팽목항 여러분, 엄마아빠 모두모두 행복하세요.

그리고 부디 저를 잊지 마세요.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팽목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엄마 울고간다

 

[‘새야새야’ 가사 일부와 조금 개사 ; 파랑새는 청나라 군인, 일본군, 우리 관군을,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녹두로 만든 청포묵 파는 청포장수는 백성들을 상징했다고 합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9월 14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