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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8주 (2014년 10월 19일) 예배준비 노트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33:12-23)

12.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저에게 이 백성을 저 땅으로 이끌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는 저에게 일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저를 이름으로 불러 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며, 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 그러시다면, 제가 주님을 섬기며, 계속하여 주님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부디 저에게 주님의 계획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

15.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면, 우리를 이 곳에서 떠나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16.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이나 저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18.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9.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20.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1.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22.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23.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시편 99)

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2. 시온에 계시는 주님은 위대하시다. 만백성 위에 우뚝 솟은 분이시다.

3.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5. 우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의 발등상 아래 엎드려 절하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6. 그의 제사장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으니,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그분은 응답하여 주셨다.

7. 주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이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과 율례를 모두 지켰다.

8. 주 우리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한 대로 갚기는 하셨지만, 주님은 또한, 그들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을 경배하여라. 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데살로니가전서 1:1-10)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2.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5.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8.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22:15-22)

15. 그 때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말로 트집을 잡아서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 의논하였다.

16. 그런 다음에, 그들은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이렇게 묻게 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17. 그러니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께서 그들의 간악한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들은 데나리온 한 닢을 예수께 가져다 드렸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21.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22.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에는 마치 운동회 줄다리기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있습니다.

특히 구약과 복음서본문에서 그 느낌이 강합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무리가 예수님과 줄다리기를 합니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줄다리기의 주도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오늘 요절은,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로 정합니다.

 

 

[구약과 시편 (출애굽기 33:12-23 / 시편 99)]

오늘 구약본문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출애 33:1-4)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을 이끌고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고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2. 내가 한 천사를 보낼 터이니, 그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겠다.

3. 너희는 이제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전해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장식품을 몸에 걸치지 않았다

 

한 천사를 보내시되, 직접 동행은 안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억을 촉구합니다.

자신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겠다던, 그리고 이 백성을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는!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와 함께” 가주시길 강청합니다.

“너와 함께”의 뜻이, ‘너희와 함께’로도 볼 수 있음에도,

그래도 마음이 안 놓였는지,

모세는 일부러 “우리와 함께”를, 그리고 “주님의 백성”을 재차 삼차 강조합니다.(15-16)

그러자 주님께서는 통 크게 응답하십니다.

 

“...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마.”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모세는 아예 도장을 찍으려는 듯,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청합니다.

얼핏, 용기가 지나쳐 만용(蠻勇)으로까지 보일 정도입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그러자 통 큰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팽팽한 줄다리기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19-20절에, ‘나의 영광’, ‘나의 이름’, “나의 얼굴” 가운데서

유독 “나의 얼굴”만 보이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겁 없는 백성들에게 질리신 하나님께서,

가뜩이나 겁 없는(?) 모세가 하나님을 다 알아버리게 되면,

경외심이 더 없어질 것을 걱정하신 걸까요?

하나님을 뵈면, 곧바로 형상화 하려는 욕심이 생길 것을 걱정하신 걸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 얼굴을 뵐 수 있게 되면 더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 뜻을 내 살림살이에 맞추어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겁을 상실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오늘 시편본문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구절은,

1절과 3절에 연이어서 나오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떠는 모습입니다.

 

1.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뭇 백성아, 떨어라. 주님께서 그룹 위에 앉으시니, 온 땅아, 흔들려라.

3. 만백성아,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거룩하시다!

 

물론 여기서 1절의 “그룹 위에” 앉으신 주님이란,

주님을 뵐 수 없어서, 주님을 형상화 할 수 없어서,

그룹만 얹혀있는 언약궤의 뚜껑, 시은좌 공간(空間)을 가리킴은 주지(周知)의 사실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데살로니가전서 1:1-10 / 마태복음 22:15-22)]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살전 1:4)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9) 등입니다.

 

조상대대로 우상을 섬기던 이들이 우상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우상을 만들고, 많은 우상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곤 하는 것에 비해서,

하나님은 내가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택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마케도니아의 수도요 항구도시였던 데살로니가!

풍요와 자존심, 수많은 풍요, 다산(多産)의 신들 속에 살던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 그 우상들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은,

오늘 경제중심의 시대, 경제중심의 나라, 경제중심의 교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바리새 제자들과 헤롯당원들입니다. (‘[나머지]***’ 참조)

말로는 우상을 절대악으로 규정하지만, 실제 사는 모습은 이리저리 뒤섞인 자들입니다.

 

당시 저들의 골칫거리였던,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에 대한 가부(可否)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세금으로 내는 데나리온을 보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 새겨진 초상과 문구를 단서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답을 주십니다.

그러자 저들은 탄복하고 물러갑니다.

 

 

[정리]

저들은 왜 예수님의 답에 탄복했을까요?

절묘하게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지혜에 혀를 내두른 것일까요?

아니면 거기서 어떤 큰 교훈을, 진리를 발견한 것일까요?

아무튼 오늘 예수님의 이 유명한 선언 속에 담긴 교훈은 이것입니다.

 

데나리온에 그 어떤 문구가 적혀있더라도,

가이사(황제)는 가이사일뿐,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너희가 바로 하나님의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것인 내가...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요리조리 쥐락펴락, 줄다리기하며 삽니다.

마치 데나리온처럼, 오늘 내 돈에도 새겨진 신(神) 같은 기운을 느끼며 삽니다.

그 돈(우상=“경제”)과 하나님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합니다.

요령껏 양다리를 걸칩니다.

요령이 나날이 늘어갑니다.

 

그건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가 하나님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엉뚱한 걸 보고나서 하나님 얼굴을 보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뵈면서도 하나님을 못 보던 저들과 똑같습니다.

 

그럼 예수님 성화를 보면 하나님 얼굴을 뵌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얼굴을 볼 수 없듯이,

거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볼 수밖에 없듯이,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한 뼘 더 선명히 뵐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것인 나를 송두리째 하나님께 바치는 길뿐입니다.

온전히 바쳐질 때, 비로소 나는 그분 뜻대로만 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을까?(출애 33:20, 23)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더 잘 믿을 수 있을까요? 눈으로 본 것의 한계는 뚜렷합니다. 내 눈으로 본 것으로 주님의 형상이 고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고정되어 버리는 순간 우상화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의 본뜻을 잊게 만드는, 헛갈리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육의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기 시작할 때, 눈이 밝아질 때(창세 3장) 원죄가, 불순종이, 탐욕이 시작됩니다. (먹음직, 보암직...→ 타락의 시작입니다.)]

왜 수도자들의 수행과정이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눈을 닫고..일까요? 영의 눈과 육의 눈이 반비례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내 육의 눈으로 하나님 찾으려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황제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황제란 무엇입니까?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니라 돈입니다. 돈에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영의 눈을 열고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약한 이웃, 약해서 억울한 눈물 흘리고 있는 이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기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돈에 어떠한 형상이 새겨져 있건, 그 형상이 황제이건, 세종대왕이건, 신사임당이건, 그 돈은 비로소 하나님의 기운이 담긴 생명의 돈이 되는 것입니다. 성별되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병이어의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천국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누구나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시대를 넘어 예수님을 만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보면, 그 순간 내 자아는 죽습니다. 그제야 그 사랑 내 안에 들어와 움직이십니다.

 

** “얼굴이 가다”?

출애굽기 33:14절의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의 원문은 직역하면 “얼굴이 가다”이며, 여기서 얼굴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독일성서공회 해설판 성경)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얼굴은 뵈는 대상이 아닙니다.

동행하는 대상입니다.

동행하며 든든하게 느끼는 대상입니다.

동행할 때 그 얼굴에 환히 담긴 정의와 평화, 사랑과 용기를 발현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서 본문의 시대배경

주후 6년, 유대민족에 대한 로마의 통치가 강화되기 시작합니다.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왕의 아들 아르켈라오스를 폐위하고 코포니우스 총독을 그 지역 통치자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코포니우스 총독은 12-65세 주민들에게 인두세(주민세)를 부과하여 거둔 돈들을 로마황실로 보냅니다. 문제는, 그 주민세를 반드시 로마 은전인 데나리온으로 바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데나리온 앞뒤에 새겨져 있는 형상과 글자 때문입니다. 당시 (1세기 경) 데나리온에는 앞뒤로 로마 황제의 흉상과 대비의 좌상이, 그리고 ‘티베리우스황제, 신적인 아우구스투스의 아들’(Tiberius Caesar, Worshipful son of the God, Augustus, High Priest)이라는 황제 신격화 문구가 새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민세를 내는 문제는, ①황제를 통치자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유일한 통치자라는 유대인들의 신앙에 위배됩니다. ②데나리온에 새겨진 문구대로, 황제를 신(우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었으므로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결국 이를 거부하며 주후 6년 갈릴리 출신 유다라는 이가 주민세 납부 거부 운동을 일으키며 봉기를 일으킴으로써 열혈당(젤롯)이 탄생하게 됩니다. 반면 비교적 정치적으로는 온건파였던 바리새파는 주민세를 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아니고 헤롯당이 세금낸다는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당시 백성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것이 큰 부담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돌파구 하나 만든 것이, 당시 백성들이 혹시 정치적 해방자 메시아가 아닐까하는 관심의 대상이었던 예수를 이용하려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데나리온을 바치지 말라하면 종교적 눈엣 가시를 뽑아낼, 즉 예수를 감옥에 가둘 기회를 얻게 되고, 바치라 하면 백성들로부터의 면죄부를 얻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막힌 답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황제에게 바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좁은 생각에 몰려있던 백성들에게, 보다 큰 눈을 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결론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가 아닙니다. 결론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에 담긴 교훈은 이것입니다. 황제는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선언!

그렇다면 왜 데나리온을 비유로 설명하신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새 잊었느냐? 너희 온 존재가 이미 하나님 것이었음을...!’

 

 

 

[말씀동시] 참새와 뻐꾸기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1학년. 『성실문화』80호)

털에 윤기가 흐르는 참새 한 마리가

오래 되고 바짝 마른 고목나무에 앉아

목청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는데

나무 구멍에서 쉬고 있던 뻐꾸기가 듣고

한 곡조 시원하게 울어재끼니

참새는 황급히 서쪽으로 날아간다

 

 

 

[말씀시조] 마태복음 22:15-22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황제께 세금바침 가할까 불가할까

은전의 글과그림 누구를 가리키냐

온전히 돌려드려라 주님의것 주님께

 

 

 

[말씀서예] 시편 99:6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0호)

 

 

 

 

 

 

[말씀노래] 진실하고 자유롭고 참되게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22:15-22)

[노랫말]

1. 바리새 제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네, 제자들과 헤롯당원 작당하여 시험하네

   진실하고 자유롭고 참되신 예수님을, 말꼬리나 잡아서 올무에 걸려하네

2.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일, 옳은지 그른지 말씀해 주십시오

   진실하고 자유롭고 참되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나 말씀해 주십시오

3. 데나리온 초상과 글자주인 누구더냐, 황제의 것이라면 황제에게 돌리거라

   진실하고 자유롭고 참되게 바치거라, 하나님건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거라

 

[해설]

마태복음 22:15-22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목사가 4.4조로 풀어서 곡을 붙였다.

가락은 『성실문화』 75호 93쪽에 있는, ‘바리새 시몬의 집에서’를 빌려온 것이다.

 

[악보] 진실하고 자유롭고 참되게 (이정훈 지음, 2014년 7월 17일)

 

 

 

[시편송서] 시편 99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0호)

(* 천자문 독송(讀誦)가락, 즉 전래 자장가 풍으로)

 

 

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다함께]

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말씀동화] 손오공의 올무에 걸린 삼장목사

 

멀지 않은 미래 이야기야.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을 온통 핵발전소, 핵무기 천지로 만들어버리더니

결국 이런저런 핵사고와 핵전쟁으로 세상에 그 많던 사람들이 이젠 거의 사라져버렸어.

 

그러자 이 땅 저 땅 조금씩 남은 마지막 사람들은

드디어 성경말씀을 찾기 시작했지.

전기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성경말씀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거야.

 

그러나 그 많던 성경책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

중국 오지 고산지대의 어느 작은 마을에 남아있는

유일한 성경책 한 권을 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지.

 

성경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의 달인.

한글과 중국어 그리고 영어, 세 나라 글자로 동시 사경이 가능한 신비의 목사.

물 맑은 양평에서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그며 살아온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삼장목사라 불렀단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어느 저녁

삼장은 중국 어느 산 고개를 넘고 있었어.

사흘 동안이나 음식을 구경도 못한 삼장은 배가 무지무지 고팠지.

성경책을 구하러 집을 나설 때 가지고 떠났던 된장 고추장 간장도 다 떨어진지 오래.

거의 기어가다시피 산 고개를 넘고 있는 삼장의 눈앞에

얼씨구? 짜장면 한 그릇이 나타나네?

 

“이게 무슨 신기루지? 어라, 냄새가 정말 짜장면 냄새네?”

 

춘장에 갓 볶은 양파 냄새가 삼장의 코를 간질이는 순간,

삼장은 어느새 짜장면 그릇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고 외치며 짜장면 그릇을 잡는 순간, 아뿔싸!

덜컥, 올무에 걸려버렸네.

누군가 철사줄로 단단히 쳐 놓은 올무에 걸린 거야.

바로 그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원숭이 무리들이 모여드네?

 

“뭐야 뭐야, 이게 뭐야? 이거 산짐승이 아니라 비쩍 마른 사람이잖아?”

 

“두목 어쩌죠? 황제께서 사람고기도 잡수실까요?”

 

“그러게, 맛없는 사람고기를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더구나 너무 말랐어.”

 

어디서 낯이 좀 익었다 싶었는데 가만 보니까 손오공이네?

이마 위에 있는 머리띠를 보니까 딱 손오공이야.

손오공이 삼장목사를 잠시 쏘아보더니,

 

“어이, 사람, 넌 누구냐?”

 

“난 대한민국 양평에 사는 삼장목사라는 사람이다. 중국 오지마을에 단 한 권 남아 있던 성경책을 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지. 어서 가서 세 나라 말로 성경책을 베껴서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니 나를 풀어다오.”

 

‘삼장’이란 말을 듣는 순간 손오공은 깜짝 놀랐어.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거든.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하 원숭이들이랑 뭐라뭐라 속닥속닥 의논을 하네?

 

“네가 정말 삼장목사인지 어떻게 아느냐? 신분증을 보여다오.”

 

“신분증? 목사가 무슨 신분증이 있겠느냐? 난 그런 거 없다.”

 

“신분증이 없어? 좋다. 그럼 내가 한 가지 퀴즈를 낼 테니 답해 보거라.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으냐 그르냐?”

 

삼장목사는 어쩐지 귀에 익은 질문이라 생각하며 잠깐 생각에 잠겼단다.

 

“세금이라? 세금을 뭐로 바치느냐? 너희에게 돈이 있을 리 없는데?”

 

“물론이지. 우린 고기로 바친다. 짐승을 잡아서 바쳐.”

 

“그래? 그럼 그 세금으로 바치는 짐승을 가져와 보렴.”

 

“여기 있잖아. 너잖아. 네가 바로 오늘 바칠 세금이야.”

 

“내가? 왜?”

 

“왜긴, 너 지금 붙잡혔잖아. 딱 걸렸잖아, 올무에?”

 

삼장목사는 곰곰이 생각했어.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지.

 

“그럼 내가 누구를 닮았느냐? 너희 황제를 닮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닮았느냐?”

 

잠시 머리를 갸웃거리던 손오공이 한다는 말이,

 

“글쎄? 누굴 닮았지? 황제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을 본적도 없으니 네가 하나님을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옳거니 저팔계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얘들아 어서 가서 저팔계 불러와라.”

 

 

그 때 마침 돼지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었어.

가만 보니까 저팔계 같긴 한데, 삼장목사처럼 비쩍 말랐네?

마른 저팔계가 마른 삼장목사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하는 말이,

 

“제가 보니까 목사님이시네요? 제가 이래 봬도 원래 하늘나라에 살던 장군이거든요. 그러다 너무 탐식, 탐욕에 빠지는 바람에 하나님께 벌을 받아 이렇게 된 거죠.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요새 제가 정신 좀 차리고 다이어트 중이랍니다. 그러다 보니 닫혔던 눈도 열리고 귀도 열리고, 멀리서 목사님 음성 듣고 반가워서 달려왔어요. 그건 그렇고, 도대체 목사님이 어떻게 이런 수준 낮은 올무에 걸리셨나요? 여긴 먹을 것밖에 모르는 짐승들이나 걸리는 올무인데?”

 

“아 그건, 배가 너무 고파서 이렇게 되었네요. 사흘이나 굶었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만...”

 

“아, 그랬군요. 참 안되셨네요. 그래도 비쩍 마른 목사님이 뒤룩 살찐 목사님보다는 훨씬 보기 좋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으세요.”

 

그 때 손오공이 끼어드네.

 

“야 팔계야, 잡담 그만하고 답을 내거라. 넌 하늘나라에 있다 왔으니까 하나님 본적 있지? 네가 보기엔 저 삼장목사라는 자가 우리 황제를 닮았느냐 아니면 하나님 닮았느냐?”

 

“아휴 이런 무식한 성님이 다 있나? 오공이 형님.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예요.”

 

“뭐라고?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봐? 보아야 믿건 말건 할 것 아니야?”

 

“아이고 이런 무식한 원숭이 같으니라고, 형님이 이러니까 아직도 그 머리띠 금고아 하나 풀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니요. 어디서 굴러들어온 황젠지 뭔지 한테 깨지질 않나. 그 나이에 맨날 세금이나 바치고, 나 원 참 부끄러워서 원...”

 

“왜 또 그 소리냐? 그만 해라. 나보다 머리가 좋은데 어떡하느냐?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사람처럼 말 잘하고 머리 좋은 침팬지는 처음 봤다니까? 리더십은 또 얼마나 좋은데?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니에요. 게다가 혹성탈출했다잖아? 이름도 씨저래요. 가이사! 완전 황제잖아? 그건 그렇고, 어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저 자가 황제를 닮았느냐 하나님 닮았느냐? 그리고 하나님을 눈으로 못 보면 어떻게 하나님 닮았는지 알아?”

 

“잘 들어봐요. 하나님은 내가 눈으로 보고 믿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보고 나를 믿으시는 거야. 그리고 나한테 딱 다가오시는 거지. 그리고 ‘얘야 내가 너를 좋아한다. 나 너 사랑한다.’ 딱 이러시는 거야. 그 때 내가, ‘예 하나님 저도 하나님 사랑해요.’ 이렇게 해서 내가 딴 데 한 눈 팔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될 때,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 내가 하나님이랑 하나가 될 때, 그 때 하나님이 온통 완전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거라고요. 그리고 나처럼 하나님이랑 같이 같은 집에 살다가도 탐욕에 사로잡히는 순간, 하나님이랑 정 반대편에 떨어지는 거예요. 탐욕은 우상숭배거든. 한마디로 바람피우는 거지. 결국 하나님 자식이 아니라 짐승의 자식이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이 모양 이 꼴로 돼지처럼 살지만, 이제 탐욕을 줄이고 다이어트에 어느 정도 성공하니까, 이제 좀 보여요. 내가 보기에 이 분은 원숭이 황제랑은 완전 다른, 하나님 닮은 분이예요. 황제가 아무리 사람처럼 말 잘해서 사람 비슷하다 해도, 저 분은 황제가 아니라 딱 하나님 닮았어요. 성경말씀 찾아 목숨 걸고 여행하는 거 보면 몰라요? 형님 옛날에 삼장법사랑 불경 찾으러 여행한 거 기억 안 나요?”

 

한참을 저팔계 설교를 듣던 손오공이 삼장목사를 바라보고 대답하네.

 

“삼장목사님. 저팔계가 그러는데, 당신은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 닮았다는데?”

 

“그래? 그럼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지. 나를 황제에게 세금으로 바치는 건 옳지 않아. 어서 하나님께 돌아가게 이 올무 좀 풀어라. 그리고 내친김에, 황제한테 내 말을 전하렴. 이젠 약한 자들 없는 살림, 아이들 코 묻은 돈 삥 뜯지 말고, 강한 자들, 부자들에게 세금 많이 걷으라고. 그래야 지금 세상 사람들처럼 요 모양 요 꼴 되지 않는다고.”

 

“예 그럴게요.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내 머리띠 이거 좀 풀어줄 수 없으세요? 이거 아주 골치 아픈 건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그건 내가 풀어주는 게 아니란다. 너도 나처럼, 너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루하루 성경말씀 읽고 쓰며 살아보렴. 그래서 네 안에 있는 탐욕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게 될 때, 늘 너를 옥조이는 머리띠, 네 모든 고통의 근원인 그 머리띠도 시나브로 사라지게 될 거야.”

 

그 때 저팔계가 끼어들어 한 마디 거들었어.

 

“오공 형님. 지금 당장 일단 양평에 갑시다. 가서 삼장목사님 사경하시는 거 도와드립시다. 그게 형님이나 나나 우리 모두 살길이요.”

 

이윽고 짜장면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운 삼장목사는 올무를 풀어버리고

손오공과 저팔계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오정까지 데리고

머나먼 양평으로 길을 잡았단다.

 

저들이 가는 길에 이제 또 어떤 요괴들이 나타날까?

성경말씀이 가는 길,

성경말씀이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직 참 멀고 험하구나.

 

[이정훈 지음. 2014년 10월 19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