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주님과 함께”
[성서일과 4본문]
(여호수아 24:1-3a, 14-25)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그 우두머리들과 재판관들과 공직자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섰다.
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를 비롯한 너희 조상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3. 그러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건너에서 이끌어 내어, 그를 가나안 온 땅에 두루 다니게 하였으며, 자손을 많이 보게 하였다. (내가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14.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십시오.
15.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16. 백성들이 대답하였다. "주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17. 주 우리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가 여러 민족들 사이를 뚫고 지나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모든 민족을, 이 땅에 사는 아모리 사람까지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19.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20. 만일 당신들이 주님을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그는 당신들에게 대항하여 돌아서서, 재앙을 내리시고, 당신들에게 좋게 대하신 뒤에라도 당신들을 멸망시키시고 말 것입니다."
21. 그러자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섬기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주님을 택하고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한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23. 여호수아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이제 당신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내버리고, 마음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24.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25. 그 날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이 지킬 율례와 법도를 만들어 주었다.
(시편 78:1-7)
1. 내 백성아, 내 교훈을 들으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2.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3. 이것은 우리가 들어서 이미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다.
4. 우리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하여 줄 것이니,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
5. 주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의 규례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에게 법을 세우실 때에, 자손에게 잘 가르치라고, 우리 조상에게 명하신 것이다.
6. 미래에 태어날 자손에게도 대대로 일러주어, 그들도 그들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전하게 하셨다.
7.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
1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다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마태복음 25:1-13)
1. "그런데, 하늘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서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불은 가졌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들의 등불과 함께 통에 기름도 마련하였다.
5.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보아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이하여라.'
7. 그 때에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제 등불을 손질하였다.
8.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의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 된다. 차라리 기름 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그 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12. 그러나 신랑이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였다.
13.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은 ‘마지막 때’라는 느낌이 가득합니다.
입동(立冬) 지나 낙엽이 다 떨어져가는 가을의 끝자락이기 때문일까요?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도 떠오르네요.
구약본문은 여호수아의 비장한 마지막 선언입니다.
서신서본문은 임박한 재림의 때를 그리고 있습니다.
복음서본문은 재림준비의 필요성을 긴박한 붓으로 그립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처음을 돌아봅니다.
그분만을 섬기고(수 24:22) 그분 말씀을 따르기를 다시 결심합니다.(24)
늘 주님과 함께 있기를 꿈꿉니다.(살전 4:17)
신랑과 함께 있기 위해 항상 (기름을) 준비합니다.(마태 25:10)
이번 주 요절은 “항상 주님과 함께”(살전 4:17)로 정했습니다.
[구약과 시편 (여호수아 24:1-3a, 14-25 / 시편 78:1-7)]
오늘 구약본문은 ‘여호수아’ 마지막 장인 24장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 땅을 더럽혀온 원주민들을 몰아내고(레위 18:24, 28)
지파별로 자리를 잡은 뒤
마지막 숨지기 전, 여호수아가 유언과 같은 당부를 남깁니다.
당부의 핵심은,
백성 안에 스며들어 있는 이방신을 버리고 주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수 24:23)
그것이 약속의 땅을 더럽히지 않는 길이며, 그 땅에서 쫓겨나지 않을 길입니다.(20)
백성은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그러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24)
이어서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언약을 세우고 말씀을 정리해줍니다.(25)
시편본문은 ‘말씀(“언약”)’을 자손 대대로 전하고 굳게 지키는 백성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그 말씀은 주님께서 “자손에게 잘 가르치라고” 명하시기까지 한 것입니다.(시 78:5)
저들이 말씀을 잘 전하고 잘 지키려 노력하는 것은,
말씀이 허구가 아니라 저들의 역사(歷史)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전후로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역사입니다.
말씀과 더불어 (나와 하나님의) 역사(歷史,役事)를 함께 되새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데살로니가전서 4:13-18 / 마태복음 25:1-13)]
오늘 서신서본문은 임박한 재림 기운이 가득합니다.
죽지 않고 재림을 맞으리라 믿었던 성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자,
남은 교우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일어납니다.
이에 흔들리지 말라고 바울이 다독입니다.
그렇게 2천년이 흘렀습니다.
재림을 고대하는 마음도 ‘처음교회’보다 많이 흐릿해졌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믿기 전보다, 지금은 그 때가 더 가까워지고,
그 징조들이 점점 더 선명해져간다는 사실입니다.(마태 24:3∼)
이 땅에 법이 지켜지지 않고 정의, 평화, 사랑이 허물어질수록
그 때가 가깝습니다.
그럴수록 땅의 논리, 물질과 물리의 논리를 뛰어넘어,
“항상 주님과 함께” 하고픈 마음들이 간절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마태 24:12)
오늘 복음서본문은, 재림이 늦어진다고 여길 때 따르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신랑이 늦어지니,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마태 25:5)
졸던 처녀들 가운데 절반은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였고,
나머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부족해서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해도 외면당합니다.
비정해 보이는 이 상황이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잔치자리까지는 들어갔으나 혼인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혼인예복’과 ‘등불기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나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정리]
“항상 주님과 함께!”(살전 4:17)
이는 지극한 믿음의 표현, 소망의 표현,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분만 의지하는 마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지 않습니다.
철석같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적당히 의지하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주님, 절실하지 않은 그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돈이, 당장 내 배를 채워주는 떡이 더 절실합니다.
이래서는 “항상 주님과 함께!”는 그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는 느낌조차 고전의 한 대목, 그냥 소설의 한 페이지일 뿐입니다.
이런 환경에 어울려 믿음생활 하는 것이 바로 기름 없이 신랑을 기다리는 꼴입니다.
‘등불기름’은 생생한 믿음, 철석같은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에서 나오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면 충분하고,
그조차 콩 한쪽도 나눠먹듯이, 없는 이들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라나타 성도의 생활입니다.
‘마지막’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준 오 헨리『마지막 잎새』의 그 ‘마지막 잎새’는,
죽어가던 이에게 생명의 기운을 더해줍니다.
자연스런 대자연, 대자연의 수레바퀴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인공(人工)을 덧붙이니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으로 급변합니다.
그 인공이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오뚝이 앞에서 중심잡는 가소롭고 서투른 솜씨지만
그건 작은 관심, 작은 헌신, 작지만 소중한 사랑이었습니다.
내 작은 희생의 결과, 나는 병으로 죽게 되지만 너는 살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등불 같은, 기름 같은 귀한 마음입니다.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수 24:15)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시편 78:7)
다시 여호수아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언약을 목숨 바쳐 지키신 주님처럼, 나도 그렇게 언약을 지킬 때입니다.
항상 주님과 함께!
[나머지]
* 성 마틴과 전태일
11월 11일은 성 마틴의 날입니다.
빈자(貧者)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생을 산 대표적인 분입니다.
해마다 이 날 저녁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독일 어린이들은 모두 등불을 들고 골목골목 행진을 합니다.
모든 초등학교 유치원아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심지어 유모차를 탄 아이들도 유모차에 등불을 걸고 행진에 참여합니다.
마틴의 정신을 기리며 반복해서 노래도 합니다.
경찰들은 이날 아이들의 행진을 곁에서 지켜줍니다.
마치 내 가까이 작은 자로 오신 주님을 찾아다니는 것만 같습니다.(마태 25:40)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전통을 온몸으로 익히는 나라는 참 슬기로운 나라입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두운 골목, 후미진 곳을 등불을 들고 걷는 모습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을 연상시킵니다.
11월 13일은 전태일의 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태일 앞에도 ‘성(聖)’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싶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혹사당하는 모습을 보고
버스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고 자기는 통금에 걸리면서까지 그 먼 집까지 걸어 다닌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배운 성경말씀대로 살려다가,
굶더라도 정의의 편에, 약한 자의 편에 서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제 몸에 불을 붙여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22살 저 어린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이 무너진 세상을 바꿔보려고 몸부림친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 나보다 더 약한 자들 곁을 끝까지 지키려던 전태일,
저 작은 전태일이 숨질 때, 주님께서 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셨다는 사실,
전태일의 일생에, 주님은 항상 그와 함께 하셨음을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법이 허물어진 세상, 정의의 깃발이 꺾인 세상에서
법의 주춧돌을 다시 놓으려, 꺾인 정의를 다시 세우려 애쓰는 사람이
바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마태 5:9)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녀들에게는 환한 등불과 넉넉한 기름이 있습니다.
**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버티기
세월호를 잊지 말자며, ‘리멤버 0416’ 운동으로 ‘일인시위’를 시작한 오지숙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뉴스엔조이, 구권효기자)
알고 보니 분당 우리교회(이찬수 목사) 교우였습니다.
여러 중요한 내용 가운데 유독 하나가 제 마음에 박힙니다.
세월호법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야합에 그치고 마는 정치권을 보면서
‘이 땅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하며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가까운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 현장에서는 이런 절망을 매일 겪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10년째 사역중인 중국선교사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점점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세상은 점점 악해질 것이라고 나오지 않느냐고!
그러니 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악에 물들지 않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의인 열 사람(창세 18:32), 의인 한 사람은(예레 5:1) 못되더라도,
악에 물들지 않은 하나의 그리스도인으로!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개역개정)
[말씀동시] 어리석은 다섯 처녀 (이진구 지음. 성실교회 교회학교 6학년. 『성실문화』80호)
어리석은 다섯 처녀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
게으르고 준비성 없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
[말씀시조] 마태복음 25:1-13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열처녀 모두졸때 신랑이 당도하니
미련한 다섯처녀 기름없어 낭패로다
그러니 깨어있어라 주오실날 모르니
[말씀한시] 어리석은 아가씨는 가슴 치며 울리라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0호)
古習婚姻深宵行 (고습혼인심소행) 옛날에는 혼인식을 한밤중에 행했다
陰引吸陽稱字昏 (음인흡양칭자혼) 음(陰)이 양(陽)을 흡인(吸引)하니 ‘어둘 혼(昏)’이라 했다.
新郞耶穌忽夜來 (신랑야소홀야래) 예수님이 신랑으로 한 밤 중에 불쑥 오실 때
未燈愚女擗踊漣 (미등우녀벽용연) 등불 없는 우매한 아가씨는 가슴치며 눈물 흘리리.
[말씀서예] 시편 78:7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0호)
[말씀노래] 열 처녀의 비유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25:1-13)
[노랫말]
1. 열처녀 등불들고 어디가시나, 울긋불긋 등불들고 어디가시나
새신랑 가까웠다 소식을듣고, 두근두근 우리신랑 마중간다네
2. 신랑을 기다리다 졸음이오네, 신랑이 늦어져서 잠이들었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소리, 보아라 신랑이다 맞이하여라
3. 열처녀 얼른깨어 등불을보니, 어리석은 다섯처녀 기름이없네
기름사러 간사이에 신랑이왔네, 뒤늦게 도착하니 문이닫혔네
4. 주님주님 애원해도 문은안열려, 새신랑 하는말씀 너희누구냐
그러므로 늘깨어서 준비하거라, 천국문 예수님을 예비하거라
[해설]
열 처녀 비유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풀었고, 찬양사역자 이석훈목사가 곡을 붙였다.
[악보] 열 처녀의 비유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2014년 7월 18일)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0호)
(* 천자문 독송, 전래 자장가 풍으로)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다함께]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 계명을 지(키게 지키게 하-셨-∼도∿다∼)∥
[말씀동화] 미륵(彌勒)이가 만난 예수님
영구가 학교 역사동아리에서 중요한 미션을 하나 받았어요.
한창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에 대해 연구하던 중이었는데요,
진흙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한 사람을 발견한 거예요.
그 이름 이미륵(李彌勒), 본명은 이의경!
영구는 며칠 동안 부지런히 이미륵에 대한 자료를 뒤집니다.
영구는 자료가 많지 않은 이미륵을 정리하다가
문득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라는 점 때문에,
자기도 이미륵 이야기에 약간 상상을 더해서 소설식으로 발표하기로 합니다.
1899년 3월 어느 날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驚蟄)이 지나자마자
황해도 해주 어느 마을에서 응애응애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어요.
엄마는 아기를 미륵(彌勒)이라 불렀죠.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우리 미륵이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짓지 마라, 흰둥개도 짓지 마라∼
미륵아∼ 미륵아∼, 우리 미륵이, 까∼꿍!”
그나저나 엄마는 아기 이름을 왜 미륵이라고 불렀을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아마 엄마도 세상 사람들처럼 미륵불을 되게 좋아했나 봐요.
미륵불은 세상이 끝장날 정도로 힘들 때 꼭 오실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믿고 기다리던 분이거든요.
미륵이가 태어나던 때, 그러니까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갈 무렵은
우리나라가 온통 혼란스러운 때였어요.
그 땐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꾼 직후였어요.
청일전쟁이 막 끝나고 러일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죠.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정말 극도로 혼란스러울 때였습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세워지기 직전 세상이 한창 어지러울 때,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주장했던 궁예라는 사람이 있었죠.
이밖에도 세상이 아주아주 혼란스러울 때마다
미륵불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삼천리 방방곡곡마다 차고 넘쳤죠.
이제 엄마가 왜 아기 이름을 미륵이라 불렀는지 대충 짐작이 가죠?
엄마는 어지러운 세상이 행복해지길 바랐어요.
우리 아기가 자라날 세상이 좀 더 평화롭길,
아니 우리 미륵이가 그런 평화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랐는지도 몰라요.
그나저나 미륵이가 태어난 황해도 해주는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태어나신 곳으로 유명한 고을이랍니다.
백범 김구선생님도 해주에서 태어났고요,
미륵이보다 스무 살 더 많은 안중근 의사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셨죠.
그러고 보니 미륵이는 안중근 의사랑 인연이 깊네요.
안중근 의사랑 사촌형제 간인 안봉근 선생님 도움으로
미륵이는 22살 이른 나이에 독일로 망명해서 살게 되었거든요.
의과대학을 다니던 미륵이는 1919년 3.1운동에 뛰어들었어요.
고향 선배님인 안중근 의사께서 1909년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일으키신지
딱 10년만인 1919년에, 안중근 의사의 고향 후배 미륵이도 거사에 뛰어든 거죠.
그리고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해로 망명을 한 겁니다.
이어서 우여곡절 끝에 미륵이는 머나먼 나라 독일에까지 가게 된 거고요.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 미륵이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잠깐 살게 되었어요.
그때 거기서 미륵이는 제 이름 미륵이랑 아주 비슷한 분을 만나게 되죠.
바로 예수님이셨어요.
한국 땅에서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분 예수님을, 이제 제대로 만난 거죠.
식민지 시절 태어나 식민지 예루살렘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분,
그리고 세상 마지막 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분!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대요.
우리나라 옛 어른들이 미륵을 기다리던 거랑 아주 비슷하죠?
미륵이는 세상 마지막 때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 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오실까?
그리고 세상 마지막 때는 과연 언제일까?
미륵이가 독일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살 무렵
독일은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답니다.
1934년 경 독일 총통이 된 아돌프 히틀러라는 사람이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모두 짐승으로 변하죠.
전쟁 중엔 그 어디나 매일매일이 세상 끝 날 같습니다.
이웃사촌 간이었던 유대인들을 사람취급도 안 하네요?
사랑의 종교라는 독일의 그리스도교가 점점 이상해져갑니다.
미륵이는 온통 혼란스러웠어요.
이럴 때 예수님이 오셔야 할 텐데!
오셔서 빗나간 교회도 바로잡아주시고,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잡아주셔야 할 텐데!
드디어 전쟁이 끝나갑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에서 패한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 버렸죠.
미륵이는 그런 독일이 안쓰러웠어요.
22살 젊은 나이에 독일로 망명(亡命)을 와서
두 번째 조국처럼 살아온 나라거든요.
미륵이는 나를 받아준 나라가 큰 슬픔과 혼란에 빠지자
큰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글쓰기에 매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소설을 지어냅니다.
이건 미륵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서 쓴 소설이에요.
그런데 이 책이 나오자마자 독일 사람들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된 이 소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독일 사람들의 상처투성이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게 했어요.
큰 위로를 주고 따뜻한 희망을 준거죠.
황해도 해주에서 처음 미륵이라 불린 이래로
47년 만에 독일에서 제 이름 미륵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한 거네요.
쌍 마틴! 미륵이가 독일에 살면서 두 번째로 만난 분이 바로 마틴이예요.
마틴은 성인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죠.
해마다 11월 11일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빼빼로를 외쳐대는데,
독일 사람들은 마틴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합니다.
주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아이들이 행진을 하는데
손에 손에 등불을 하나씩 들고 행진을 하죠.
심지어 유모차를 탄 아기들까지도 유모차에 등불 하나씩 걸고 행진한답니다.
마틴은 아주 오래 전 사람이에요.
전쟁의 신 마르스, 마르티누스에서 딴 그 이름처럼 마틴은 군인이 되었죠.
요새 컴퓨터 게임의 종결자 같은 이름, 마틴입니다.
그런 마틴이 어느 추운 겨울밤에 임자를 만납니다.
말을 타고 귀가하던 마틴은 길거리에서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노숙인을 만나죠.
그리고 자기 외투를 칼로 잘라서 덮어줍니다.
그날 밤 꿈에, 마틴은 예수님을 만나는데요,
아 글쎄, 예수님께서 자기가 덮어준 그 외투를 입고 계시지 뭐예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마틴은 큰 충격을 받았겠죠?
그런데 이런 마틴을 만난 미륵이는 어땠겠어요?
아마 미륵이도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이름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노숙인이 바로 예수님이셨다니!
다시 오시겠다던 예수님이 벌써 오셨다는 건가?
뭐지? 이건 뭐지?
마틴처럼 미륵이도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태 25:40, 새번역)
그러고 보니 독일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마틴을 배웁니다.
마틴이 만났던 노숙인으로, 걸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미륵불이 오시길, 메시야가 오시길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신 예수님, 작은 자로 오신 예수님,
이름도 얼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어둡고 후미진 곳에 오신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겁니다.
미륵이는 이런 독일 사람들, 독일 어린이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죠.
예수님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제 이름 미륵의 의미도 좀 더 생생해집니다.
마지막 때라는 것의 의미도 좀 더 잘 느껴지고요.
그리고 미륵이는 담담하게 자신의 마지막 때를 맞이합니다.
‘압록강은 흐른다’를 쓰고 난 뒤 몇 해 뒤 1950년 봄 춘분 무렵
미륵이는 세상을 떠납니다.
22살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난 지 30년 만에
다시 고향 땅을 밟지는 못했어도
미륵이는 하늘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영구는 이미륵(李彌勒)박사를 연구하는 동안 ‘마지막 잎새’를 떠올렸어요.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인 ‘마지막 잎새’의 바로 그 마지막 잎새!
큰 병에 걸려 죽어가는 이웃을 위해
이파리 하나 그려 붙인 이웃사촌 베이먼!
그 이파리 그림 덕분에 희망을 갖고 살아나게 된 환자 대신
베이먼은 자신이 그 병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독일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만큼
아마 베이먼이 비를 맞으며 그렸던 마지막 잎새 그림은 대단한 걸작이었던 거죠.
마지막 잎새처럼, 누구에게나 마지막 때는 옵니다.
이미륵(李彌勒)의 이름 미륵처럼,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마틴이 만난 예수님처럼,
우리가 등불을 들고 찾아나서야 할 춥고 배고픈 약자들이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다 죽은 세상에
평화의 씨를 품고 오신 분들입니다.
우리가 동방박사처럼 기어이 찾아내야 할 분들입니다.
떨어지는 늦가을 낙엽을 바라보며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면서,
오늘 내 등불에 기름을 채웁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11월 9일 주일 아침]
* 이미륵의 생애를 참고하여 몇 가지 상상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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