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왕국절 13주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 2014년 11월 23일) 예배준비 노트

“공평하게 먹이겠다”

 

[성서일과 4본문]

(에스겔 34:11-16, 20-24)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13.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6.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20.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직접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21. 너희가 병든 것들을 다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너희의 뿔로 받아서, 그것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어 흩어지게 하였다.

22.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23.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24. 그 때에는 나 주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다.

 

(시편 100)

1.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2.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거라.

3.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4.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

 

(에베소서 1:15-23)

15. 그러므로 나도, 주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서,

16. 여러분을 두고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내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9. 또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0.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21.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마태복음 25:31-46)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44.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이번 주일 성서일과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통 주제를 꼽으라면

<목자(임금)의 심판>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십니다.(겔 34:20)

복음서는 임금께서 직접 심판하시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마 25:34)

 

오늘 요절은, 심판의 이유(목적), “공평하게 먹이겠다”(겔 34:16)로 정합니다.

 

 

[구약과 시편 (에스겔 34:11-16, 20-24 / 시편 100)]

오늘 구약본문은 예언자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여기저기 포로로 잡혀간 백성(양)들의 삶을 회복시키시려는 말씀입니다.

길 잃은 양들에 대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내(나의) 양 떼”라는 표현이 7번이나 나옵니다.

 

길 잃은 백성, 주인 잃은 백성들 삶을 회복시키는데서 중요한 과정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20)

여윈 양은 ‘헤매는 양, 길 잃은 양,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양, 약한 양’ 등을 뜻합니다.(16)

(오늘 복음서 본문의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 하나”와 통합니다.)

 

“목자”라는 단어가 4차례 반복해서 나옵니다.(12, 23)

“목자”는 옛 중동지역에서 왕을 품위 있게 부르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독일성서공회판성경 해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위해서 목자를 세우시겠다고 합니다.(23)

그 목자는 다윗이라고 하십니다.(23, 24)

물론 그 시점은 다윗보다 한참 뒤입니다.

즉 다윗 같은 통치자, 다윗의 후손으로 나실 그분이 느껴집니다.

 

오늘 구약본문의 알맹이는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로 보았습니다.(16)

‘공평하게 먹인다’는 한 말씀 안에

심판의 이유, 심판의 목적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한 말씀 안에 정의와 평화의 임금님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에도 “양”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3)

그리고 “환호성”(1, 2), “감사의 노래”(4) 등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왜 이런 감사와 환호성이 울려 퍼질까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길 잃은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께서 나를 찾으셔서 공평하게 먹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왕, 평화의 임금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에베소서 1:15-23 / 마태복음 25:31-46)]

오늘 서신서본문에서는, 만왕의 왕, 만유의 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22)이신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오늘이 바로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이기 때문에 이 본문이 택해진 듯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탐욕에, 우상에, 미망(迷妄)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18), 이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내 눈에 씐 미망의 비늘을 벗겨내고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면,

주님이 바로 보이고, 내 교회의 진면목이 바로 보일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23)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본문은 마지막 심판, 최후심판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이 약속의 말씀 안에 묵시의 긴장감이 강합니다.

요약하자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

그 하나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40, 45)

 

왜냐하면 그가 바로 주님과 직통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파이프라인처럼, 무슨 웜홀처럼 주님과 직통한다는 것일까요?

단순과격!

단순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

도대체 왜 최후 심판에서 이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결론이... 그가 바로 주님(과 직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만요...(??)

 

 

[정리]

그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지극히 작은 자”; 개역)입니다.

이 표현은 한마디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너무 작아서 안 보입니다.

그것도 “하나”입니다.

 

“투명인간 취급”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왕따 문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학교집단에서 힘 있는 아이들 말고 평범한 아이들조차 그 ‘왕따’들을 투명인간 취급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후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또는 귀찮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자들, 권력자들은

작은 자들을 향해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통제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들이 뭉쳐서 시위하는 거,

높은 곳에 올라가 고공농성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자들은 경제논리로 저들을 묻어버리려고 합니다.

보이지 않게 만들고 싶어 안달입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 하나”는 거의 투명인간 수준입니다.

이 시대의 갑(甲), 을(乙)보다 못한 병(丙)입니다.

그냥 병신취급, 병자취급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로 주님과 직통한다니요!

 

너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일입니다.

최후 심판 때에야 알게 될 사실입니다.

그걸 미리 보여주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투명인간 같은 병(丙)을 애써 찾는 사람과

애써 무시하는, 외면하는 사람

마지막 때,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인간뿐입니다.

전자가 양, 후자가 염소로 분류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염소를 가리켜 악마의 졸개라고 표현하십니다.(41)

 

 

[나머지]

* 평화의 임금님 모실 준비

다음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원래 초림이 아니라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절기 색깔도 사순절처럼 금식, 금욕을 상징하는 보랏빛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때라는 뜻입니다.

 

대림절 직전주일이 늘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마지막 심판을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서

심판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배려한 날입니다.(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은 그 분이 바로 ‘평화의 임금님’이시라고 가르쳐주십니다.

‘평화(平和)’란 쌀(벼[화(禾)])을 입[구(口)]에 공평[平]하게 넣어줄 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이게 평화의 출발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경제이데올로기, 경제이론들이 있지만

이런 평화(平和)정신에서 출발하지 않는 경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 평화(平和)정신이 깨질 때 다툼이 일어나고 미움이 치솟습니다.

광야 40년 ‘만나’의 체험은 평화훈련이었습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온갖 과욕을 빼내는 과정이었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를 주님처럼 대해야 합니다.

주님 모시듯 공양하고 찾아가 벗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겔 34:16)

 

이게 바로 평화의 임금님,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말씀 동시] 크고 작은 조개들 (이선구 지음. 성실교회 고등부 1학년. 『성실문화』80호)

 

해가 저무는 하늘 아래 바닷가

크고 작은 조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큰 조개 안에는 썩은 냄새 풍기는 벌레

작은 조개 안에는 콩알만한 진주

큰 조개 긁어모은 사람은 울상을 하고

작은 조개 주워 모은 사람은 미소를 짓는다

 

 

 

[말씀 시조] 마태복음 25:31-46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약한자 돌보는게 예수님 모시는길

병든자 외면하면 주님이 아프시다

작은자 귀히모셔라 영생천국 거기에

 

 

 

[말씀 한시] 걸인으로 변장하고 오신 예수님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80호)

 

會初稀敎友 (회초희교우) 교회 초창기 교우도 몇 명 없을 때

糧桶少食糧 (양통소식량) 쌀통에 식량도 없었는데

當時丐乞訪 (당시개걸방) 그 때에 걸인이 방문했었다

猶發矜恤動 (유발긍휼동) 걸개가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贈與洞糧物 (증여동량물) 벌어온 동냥을 죄다 털어 내놨는데

去後覺主往 (거후각주왕) 그가 가고 난 후에야 주님인 줄 알았다

耶穌觀察士 (야소관찰사) 예수님이 관심 갖고 보시다가

變裝出顯堂 (변장출현당) 거지로 변장하고 찾아 오셨다

腹滿否認耶 (복만부인야) 내 배가 부를 때 배척당한 예수님

窮悽慰撫情 (궁처위무정) 처지가 곤궁하니 위로하러 찾아 오셨다.

(이 시의 내용은 필자가 교회 설립 초기에 실제로 경험했던 사실이다.)

 

 

 

[말씀 서예] 시편 100: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80호)

  

 

 

   

[말씀 노래] 너는 내가 주릴 때에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80호)

[본문] (마태복음 25:31-46)

[노랫말]

1. 너는내가 주릴때에 먹을것을 주었고, 목마를때 물을주고 나그네때 영접했다

헐벗을때 옷을주고 아플때 돌봐주고, 감옥에 갇혔을때 너는나를 찾아왔다

 

2. 주님주님 아닙니다 그런적이 없습니다, 저희는 해드린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다 아니로다 진정으로 말하노라, 약한이웃 돌본것이 바로내게 한것이다

 

3. 너는내가 주릴때에 먹을것을 주지않고, 목마를때 나그네때 헐벗을때 아플때도

감옥에 갇힐때도 돌봐주지 않았다, 약한이웃 외면하면 나를외면 한것이다

 

[해설]

예수님 다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복받은 사람들과 저주받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 인생사 이웃과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작은 부분까지 시시콜콜 일일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신 것이 인상적이어서, 가능한 일일이 묘사했다.

[악보] 너는 내가 주릴 때에 (이정훈 지음, 2014년 월 일)

 

(오자 교정; 1절 첫줄 첫마디 "녀=너" / 1절 둘째줄 첫 마디 "목마를 때=목마를 때" / 3절 둘째줄 첫마디 "복=목") 

 

 

   

[시편 송서(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80호)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1. 온- -- --, 땅- 이- 여-, 여- 호- 와-, 께- -- --,

즐- -거 운-, 찬- 송- 을-, 부- -를 지어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2. 기쁨 으- 로-, 여호 와- 를-, 섬- -- 기-, 며- -- --,

노래 하면 서-, 그의 앞- 에-, 나아 갈- 지어, 다- -- --∼

 

[낭송; 맡은이]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다함께]

후렴) 4. 감- -- 사-, 함- -으 로-, 그의 문에 들어, 가- -- 며-,

찬송 함으 로-, 그의 궁- 정에, 들- -어 가-, 서- -- --∼

 

그- 에- 게-, (감- -- 사-,) 감- 사- 하-, 며- -- --,

그- -- 의-, 이- 름- 을-, 송축 할지 어-,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5. 여호 와- 는-, 선하 시- 니-, 그의 인자 하심, ((이)) 영- -원 하고,

그의 성실 하심,((이)) 대- 대- 에-, 이- -르 리로, 다- -- --∼

 

[다함께]

후렴) 아- -리 랑-, 아- -리 랑-, 아- 라- 리-, 요- -- --∼

아- -리 랑-, 고- 개- 로-, 넘- -어 간-, 다- -- --∼

 

※ 후렴은 회중이 합창한다. 시편 본문은 앞소리로서 찬양대에서 독창이나 중창으로 하고, 3절만은 맡은이가 낭송한다. 이어서 4절 앞부분은 뒷소리가락으로 회중이 합창하고, 가장 마지막 후렴은 회중과 찬양대가 합창한다. 마지막 후렴은 몇 차례 더 반복하는 동안 점점 느리게, 점점 작게 부르는 것이 좋다.

※ 가락은 아리랑가락이고, 장단은 세마치로 읊는다.

(후렴, 즉 뒷소리는 세마치로, 앞소리는 중중모리로 해도 좋다.)

※ 쉼표(‘,’)까지 세마치 한 장단 3박 이다.(중중모리일 경우는 한 줄이 한 장단)

(즉, 세마치 4장단이 중중모리 1장단이다.)

※ 세마치장단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편의상 1박을 3분박 대신 2분박으로 구분했다.

 

 

 

[말씀 동화] 넘버쓰리 병삼(丙三)이 아저씨 

 

이리 칠 저리 칠, 바지아래 똥칠이야, 하이칼라 기름칠,

구리구리 강촌이라 개천봉

이런 봉 저런 봉, 개미허리 잘룩봉, 강건너 무수봉, 하왕십리 무학봉, 남자배우 윤일봉, 여자배우 도금봉, 살인강도 고재봉, 그때 그사람 심수봉,

구리구리 강촌이라 개천봉

아메리카 방구는 초코레트 방구, 초코레트 방구는 단방구,

재패니스 방구는 가다꾸리 방구, 가다꾸리 방구는 시금털털,

우리나라 방구는 구호물자 방구, 구호물자 방구는 배가고파, 배가고파,

어허 품바 잘 헌다. 품바 품바 잘 헌다∼♬

밥은 바빠서 못 먹소, 죽은 죽을까봐 못 먹소, 술은 수리수리 넘어간다.

어허 품바가 잘 헌다. 품바 품바 잘 헌다...∼♬

[전래민요, 봉타령, 품바타령 중 일부]

 

또 술 한 잔 하셨나 봐요.

신바람 난 병삼이 아저씨의 봉타령입니다.

무슨 봉, 무슨 봉 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름이 줄줄줄 나오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가락은 들썩들썩, 장단도 으쓱으쓱 신바람 나는 노랩니다.

 

저도 이젠 흥얼흥얼 가락이 입에 붙었다니까요.

봉타령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거든요.

아직 가사는 몰라도 가락은 확실히 입에 붙었어요.

 

저는 길 건너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밤이고 낮이고 병삼이 아저씨를 봅니다.

푼돈만 생겼다하면 우리 가게에 들어와 소주 한 병 사가시거든요.

다른 거 사시는 건 거의 없는 병삼이 아저씨.

 

더 가까운 곳에 평화슈퍼가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는 술은 절대 못사시는 거예요.

소주 달라고 했다가는 평화슈퍼 할머니한테 혼꾸멍난다나 뭐라나?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병삼이 아저씨는

젊은 시절 조경 일을 하시다가 고관절을 다치셨죠.

그 바람에 일도 못하게 되고,

자식들에게 짐 될까봐 가족들을 떠나 이리저리 흘러흘러 우리동네까지 오셨습니다.

 

병삼이 아저씨는 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사람입니다.

광야교회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아저씨 집이 있죠.

한 사람 드러누우면 꽉 차는 방이지만

그래도 사방에 벽이 있고 머리 위엔 지붕이 있는,

겨울엔 찬바람을 막아주는 어엿한 집입니다.

 

몇 걸음만 나가면 영등포역.

역전엔 무수한 노숙인들로 즐비합니다.

병삼이 아저씨는 노숙인들이 불쌍합니다.

겨울 노숙인은 정말 불쌍하죠.

그래도 집이 있고 전기장판도 있는 나보다 훨씬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추운 날엔 노숙인들을 집으로 데려갑니다.

박스도 못 구해 덜덜 떠는 노숙인 한 두명씩 데려갑니다.

칼잠을 자더라도 데리고 잡니다.

 

가끔 기부천사들이 먹을거리를 가져다줄 때도

병삼이 아저씨는 혼자 먹는 법이 없습니다.

늘 광야교회 앞으로 달려가서 거기 모인 노숙인들과 함께 나눕니다.

 

며칠 전엔 고뿔을 앓고 낫더니

당산동 어느 교회 목사님이 보신탕을 한 냄비 가져왔지 뭐예요.

목사님이 기도해주고 나가자마자

얼른 냄비 째로 들고 나갑니다.

 

오늘도 찬바람 맞으며 웅크리고 앉아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

병삼이 아저씨를 보자 너도나도 다들 반기네요.

오랜만에 보는 보신탕에 너도나도 달려들어

마파람에 게눈 감춘 듯 보신탕 냄비는 국물도 싹싹 금세 바닥이 납니다.

 

“안주를 이렇게 빨리 먹어버리면 어떡해!”

 

벗들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병삼이 아저씨 얼굴엔 흐뭇한 아빠미소가 번집니다.

어느새 나와서 고래고래 평화슈퍼 할머니의 야단소리도 그저 자장가 같습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좋은 음식 맛보니 세상 살맛납니다.

 

키도 작고 힘은 없어도

병삼이 아저씨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먹을거리 나눠먹을 때마다 병삼이 아저씨는 교통순경이 되십니다.

 

힘세고 덩치 큰 사람이 작고 힘없는 사람을 어깨로 밀쳐내면

영락없이 바로잡아 주십니다.

 

“야 이 친구야, 너 그러면 못써!”

 

병삼이 아저씨의 이 한마디면 금세 정리가 됩니다.

 

평화슈퍼 할머니는 욕쟁이 할머니 과에 속하지만,

그래도 병삼이 아저씨를 아주 미워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저씨를 동생처럼 아끼십니다.

아끼니까 술 좀 그만 먹으라고 야단치시는 겁니다.

 

병삼이 아저씨가 좋아하는 참치 통조림을 그냥 주실 때도 있다니까요.

돈이 좀 모자라도 그냥 주시고,

때론 유통기간이 좀 지났다면서 한통을 덤으로 주실 때도 있습니다.

 

병삼이 아저씨는 쪽방촌 사람들과 영등포역전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으뜸입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동네 국회의원 나가도 될 거라고 추켜 주어도,

“나는 넘버쓰리, 병삼이야”라며 겸손해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영등포역 앞을 지나쳐도

길거리 노숙인들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씨 좋은 병삼이 아저씨, 쪽방동네 으뜸스타 병삼이 아저씨조차

힐끗 바라봐 주는 사람도 하나 없습니다.

 

우리 동네에선 인기 많은 사람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병삼이 아저씨는 아무 볼품없는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

보이지도 않는 작고 작은 한 사람, 그저 투명인간일 뿐인 거죠.

 

언젠가 내가 소주 한 병 사들고 나가는 아저씨께

큰맘 먹고 용기 내어 물어본 적 있었어요.

 

“아저씨, 아저씬 우리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분이잖아요? 그 인기의 비결이 뭔지 되게 궁금해요. 알려주실래요?”

 

병삼이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인기는 무슨... 난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야.”

 

“아이 참 아저씨도, 아무 것도 아니긴요? 아저씨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데요?”

 

“참, 아니래도 그러네. 내 이름을 봐. 난 병삼이야. 넘버쓰리 김병삼(金丙三)이. 갑(甲)도 아니고, 을(乙)도 못되는 병(丙)인데다가, 일(一)도 아니고 이(二)도 아닌 삼(三), 난 병삼(丙三)이야. 아부지께서 없는 듯이 가만히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야. 난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그냥 김병삼이라고, 넘버쓰리!”

 

넘버쓰리가 그런 뜻이었나?

아무튼 아저씨 이름에 그런 우울한 뜻이 담긴 줄 그 때 처음 알았죠.

그런데 며칠 지나 저는 아저씨 이름에 그 보다 더 깊은, 심오한 뜻이 담긴걸 알게 되었어요.

평화슈퍼 할머니 설교를 들으면서 알게 된 건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야 이눔아. 술 좀 작작 먹어라. 멀쩡한 사람이 술 때문에 맨날 이게 뭐고? 자넨 이 동네에서 남바쓰리아이가? 우리 예수님이 남바 완, 내가 남바 투, 그리고 남바 쓰리가 바로 자네잖아? 그 술 사먹을 돈 모아서 빵이라도 사서 사람들 나눠주면 얼마나 좋아? 니눔 술값만 모았어도 벌써 이 거리 노숙인들 겨울 외투 한 벌씩 다 사주고도 남았을기다.”

 

아시겠어요?

당신 몸조차 다 나눠주신 예수님이 넘버 원,

동네 가게 중에서 덤 인심 가장 좋은 평화슈퍼 사장님이 넘버 투,

그리고 먹을 거 생기면 콩 반쪽이라도 나눠먹는 우리 병삼이 아저씨가 넘버 쓰리!

평화(平和)란,

밥을 공평하게 입에 넣어주는 일이라는 게 평화슈퍼 할머니 경영철학이세요.

평화의 평(平)자가 평평하다는 뜻이니까 공평하게 나눠 준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밥을 입에 넣는다는 건 뭔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평화(平和)에서 ‘화할 화(和)’라는 글자를 다시 둘로 갈라보면,

밥, 즉 쌀을 뜻하는 ‘벼 화(禾)’, 그리고 입을 뜻하는 ‘입 구(口)’라지 뭐예요?

딱 맞는 말이죠?

 

평화슈퍼 할머니가 그러시는데요,

굶더라도, 가난하더라도 공평하게 나눠먹을 줄 알아야 한데요.

우리 병삼이 아저씨처럼 말이죠.

내 거라고 나 혼자만 먹고, 심지어 남의 것까지 빼앗아 먹으면 벌 받는데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목자가 양이랑 염소를 가르듯이 갈라서 심판하신데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웃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사람은 염소가 되고,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며 섬긴 사람은 양이 된데요.

 

양은 예수님이랑 같은 집에서 살게 되고 염소는 같이 못 살고요.

왜냐고요? 예수님이 딱 양처럼 사신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 맞죠!

 

온 세상 투명인간들, 루저들, 넘버쓰리들,

갑(甲)보다 을(乙)보다 못한 병(丙)들만 골라서

친한 벗으로 어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같이 나눠먹고,

심지어 그들 위해서 목숨까지 나눠준 분이 예수님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평화의 임금님이라고 부르나 봐요.

모든 걸 나누시는 분, 공평하게 나눠주시는 분이니까요.

병삼이 아저씨는 예수님을 참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설교말씀 들을 때마다

예수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예수님 말씀도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작은 거라도 나눠먹을 때 생기는 기쁨 두 배를

병삼이 아저씨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 안경도 못 사지만

눈은 나빠도 나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잘도 찾아냅니다.

개미처럼 작은 넘버쓰리들, 을(乙) 보다도 못한 병 병 병(丙)들이 잘도 보입니다.

 

“이런 병 저런 병, 아리따운 소주병, 대한민국 갑을병, 여기저기 병병병 .∼♬”

 

봉타령 가락에 맞추어 ‘병(丙)타령’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병삼이 아저씨가 병타령을 흥얼거리며 투명인간들을 찾아나섭니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밤,

투명인간처럼 오시는 예수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11월 23일,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 주일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