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찬양하여라”
[성서일과 4본문]
(이사야 61:10-62:3)
10.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에 뿌려진 것을 움트게 하듯이, 주 하나님께서도 모든 나라 앞에서 의와 찬송을 샘솟듯이 솟아나게 하실 것이다.
62:1. 시온의 의가 빛처럼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처럼 나타날 때까지, 시온을 격려해야 하므로, 내가 잠잠하지 않겠고, 예루살렘이 구원받기까지 내가 쉬지 않겠다.
2. 이방 나라들이 네게서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뭇 왕이 네가 받은 영광을 볼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를 때에, 주님께서 네게 지어 주신 새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3. 또한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아름다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시편 148)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2.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빛나는 별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5. 너희가 주님의 명을 따라서 창조되었으니, 너희는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6. 너희가 앉을 영원한 자리를 정하여 주시고, 지켜야 할 법칙을 주셨다.
7.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아,
8.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아,
9.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10.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11.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아,
12.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13.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만이 홀로 높고 높다. 그 위엄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14.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은 주님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갈라디아서 4:4-7)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에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2:22-40)
22. 모세의 법대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차서, 그들은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23. 그것은 주님의 율법에 기록된바 "어머니의 태를 처음 여는 사내아이마다,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한 대로 한 것이요,
24. 또 주님의 율법에 이르신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야 한다" 한 대로,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26.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27.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34.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37.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38. 바로 이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40.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찬양! (시편 148:5)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찬양! (이사 61:10, 62:1, 갈라 4:5, 누가 2:30, 38)
오늘의 요절은, “주님을 찬양하여라”(시편 148)로 정합니다.
[구약과 시편 (이사야 61:10-62:3 / 시편 148)]
구약본문은 “구원”과 “정의(의義)”가 자주 반복됩니다.
첫 구절인 10절을 공동번역으로 읽으면 훨씬 잘 들어옵니다.
“야훼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주셨다. 신랑처럼 빛나는 관을 씌워주셨고 신부처럼 패물을 달아주셨다.”(이사 61:10)
특히 62:1절에서,
“정의”와 “구원”이 실현될 때까지
“내가 잠잠하지 않겠다.”, “내가 쉬지 않겠다.”는 표현이 매우 강렬합니다.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이사 62:1)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 속에서
부정부패, 불의, 수없이 많은 엉터리 재판(裁判)들 속에서
특히 세월호 문제를 묻어버리려는 불의하고 악독하고 막강한 세력들 속에서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한국교회는 이렇게 외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 평화의 임금 예수님을 만난 참사람이 사는 길입니다.
이것이 참 평화의 임금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만나게 인도하는 길입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찬양”이 무려 12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천지인(天地人)이 주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1-6절은 하늘[天]에게, 7-10절은 땅[地]에게,
그리고 11-14절은 사람들[人]에게 찬양을 촉구합니다.
만유의 주님께
만유를 지으셨으니 찬양하고(5)
그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합니다.(14)
오늘 우리에게 “그 백성을 강하게” 하셨다는 것은,
불의한 세력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
돈과 권력을 위해 창조질서를 훼손하는
저 어처구니없는 불의한 세력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말씀 같습니다.
[서신서와 복음서 (갈라디아서 4:4-7 / 누가복음 2:22-40)]
오늘 서신서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려고 오셨음을 선포합니다.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라 “자녀”, “상속자”라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 그분 아드님의 영이 오셨다면,
우리가 그분의 자녀, 그분의 상속자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금처럼 부정한 돈 앞에 비굴(卑屈)하고
지금처럼 불의한 권력 앞에 비겁(卑怯)하고
지금처럼 더러운 언론 앞에 침묵하는 것은
결코 예수님의 영을 받은 자, 하나님의 상속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는 두 분 노인이 등장합니다.
시므온과 안나!
호호백발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구원”을 노래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의 구원이 오셨음을 노래합니다.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감격의 상황입니다.
그 중간에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35)
이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예수를 낳은 엄마 마리아의 고통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의 영을 품은 우리는 어떻습니까?(갈라 4:6)
예수의 말씀을 품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위해 사는 자의 삶,
그 십자가의 길을 닦는 자의 삶,
그 예수님의 길로 인도하는 자의 삶이
과연 안락하고 편리할 수 있을까요?
나를 향한 칼끝을 피하지 않고 직시(直視)할 수 있는 힘,
우린 이미 그 힘을 받은 사람들입니다.(갈라 4:6-7)
[정리]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다시 주님의 길을 닦는 분들이 느껴집니다.
이사야도, 시편기자도, 바울도, 그리고 복음서본문의 시므온과 안나도
정의의 주, 구원의 주, 주님께서 오셨음을 선언합니다.
힘없어 억울한 고통 속에 잠겨 사는 백성을
정의와 구원의 주 예수님께 달려갈 수 있는 길을 닦습니다.
불의한 정권에 의한 폭력적인 포로생활, 식민지 생활로부터의 구원을 꿈꾸었던,
바벨론과 로마로부터 해방을 염원하던 이들에게
구원과 정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는 중요한 명제입니다.
구원의 과정에는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는 법입니다.
사회구원만 그러하고 개인구원은 별개가 아닙니다.
개인의 영혼구원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원리는,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로마 10:10)
여기서 의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됨’을 가리킵니다.(공동번역)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 정의로운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공생애 기간 내내 보여주신 진리의 삶,
생명과 빛의 복음은, 한마디로 정의로운 삶이셨습니다.
돈과 권력의 마귀에 씌인 불의의 길과 끝까지 맞서며,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일신(一身)의 안위와 출세만을 좇는 육(肉)의 길을 버리고
불편해도, 가난해도 하나님의 정의,평화,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 그분의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참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자고 벗들을 그 길로 인도할 사람들입니다.
[나머지]
*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과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오늘 구약본문을 묵상하며 문득 두 영화가 떠오릅니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제이콥의 거짓말』,
그리고 로베르토 베베니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
이 두 영화는 모두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의해 탄압받는 유대인 이야기입니다.
게토에서,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공통된 것은, 동료들에게,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그 거짓말들이 모두 실현된다는 기막힌 이야기입니다.
두 영화 모두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이고,
특히 『제이콥의 거짓말』은,
성경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여러 상징들을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의 예언은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이를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입니다.
모르긴 해도 시므온과 안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꿈같은 예언이 고스란히 실현됩니다.
평화의 임금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 꿈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의 제이콥처럼, 조수아의 아빠 귀도처럼,
아니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진실을, 거짓말 같은 진실, 꿈같은 진실을
이 어둠의 시대에 밝히 선포해야 할 예언자들입니다.
[말씀 동시] 참된 마음 (서하늘 지음. 섬돌향린교회 교회학교 4학년. 『성실문화』 81호)
첫눈에 보자마자 우리나라를 구원해 줄
사람이란 걸 알아보았다.
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기도를 드리니
참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나보다.
어린이였을 때도 아기였을 때도
주님 마음속은 참된 마음이었나보다
참된 마음과 불쌍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고
주님의 작은 부분이라도 닮고 싶다.
[말씀 시조] 아기예수 처음만난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81호)
아기예수 처음만난 안나와 시므온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구원의주 찬양하네
구세주 탄생소식이 온성안에 가득해
[말씀 한시] 청상과부 안나 여인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81호)
靑孀寡婦亞拿女 (청상과부아나여) 청상과부 안나 여인
苦待來臨彌施訶 (고대래림미시하) 메시야의 내림을 학수고대하며
爲嫠傘壽不離殿 (위리팔십불리전) 과부로 80여년 성전을 떠나지 않더니
抱胸神兒照裟婆 (포흉신아조사파) 사바세계 비추는 하나님의 아들을 품에 안았다.
[말씀 서예] 시편 148:1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81호)
[말씀 노래] 아기예수 무럭무럭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성실문화』 81호)
[본문] (누가복음 2:22-40)
[노랫말]
1. 아기예수 응애응애 태어납니다, 아기예수 오물오물 자라납니다
엄마아빠 조심조심 성전에가니, 시므온이 싱글벙글 반겨주네요.
2. 별빛처럼 신비로운 하나님마음, 햇빛처럼 찬란한 하나님사랑
방실방실 아기예수 달덩이얼굴, 한없으신 은혜의주 사랑의얼굴
3. 시므온과 안나가 찬양합니다, 아기예수 슬기롭게 자라납니다
너도나도 예수님 찬양합니다, 주님의몸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해설]
누가복음 2:22-40절 말씀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4.4조로 풀었고, 한양대 교목실장이신 이천진 목사가 가락을 붙였다.
[악보] 아기 예수 무럭무럭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2014.11.13
[시편 송서(誦書)] 시편 148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81호)
(* 천자문 독송-전래자장가 가락으로 )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곳--)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3. 해--와-- 달--아--, 그-를 (그-를) 찬양-하며-,
(밝-고)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5.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6.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 (명령을) 정하셨도--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12.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13.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 이로다---∼
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다함께]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찬-양-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말씀 동화] 고목(古木)나무의 새벽송
봉성리 둥글레 수도원 머리 꼭대기에 성탄절 햇볕이 짱짱합니다.
꽁꽁 언 겨울마당이 봄눈 녹듯 노골노골 해집니다.
겨울참새 몇 마리가 포로로 날아와 수도원 앞마당 오동나무 가지에 내려앉네요.
“참새야 오랜만이다. 한겨울 잘 나고 있느냐?”
“오동나무 오빠도 잘 있었죠? 근데 좀 춥죠? 그 널찍널찍한 푸른 옷도 다 벗어버리고 좀 추워보여요.”
“아냐 난 괜찮아. 벌써 10년짼데 뭐. 양평 겨울이 이젠 익숙하단다. 그나저나 참새야 너희 저 재 너머 소리골에 좀 가보렴. 어젯밤부터 고목나무 할머니 소리가락이 왠지 슬퍼 보이는구나.”
참새들은 저들끼리 뭐라뭐라 재잘거리더니 이내 포로로 날아오릅니다.
공장골 둥글레 수도원 건너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소리골입니다.
소리골엔 양평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할머니 나무가 사세요.
1천살도 훨씬 더 먹은 느티나무 할머니예요.
벼락을 맞았는지 가운데 목질(木質)이 텅 비어 가죽이 오므라져 있는데도
어른 여러 명이 껴안아야 할 정도로 굵디굵은, 그런데 키는 자그마한 할머니 나무죠.
고목(古木)나무지만, 죽은 고목(枯木)은 아니라
아직도 봄이 오면 파릇파릇 느티나무 이파리가 살아난답니다.
어라?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아하! 소리골 명창 느티나무 할머니 노래 소리네요.
“한치뒷산에 곤드레딱죽이 임의 맘(맛)만 같으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겠지∼
청옥산 멀구야다래야 얼크러설크러졌느냐∼ 나는 언제나 임을 만나서 얼크러설크러질거나∼♬”
[평창아리랑]
“할머니 할머니 이건 무슨 노래예요? 아주 구수한 게 강원도 감자냄새가 나는데요?”
“오∼ 이건 평창아리랑이야. 요새 『임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에 나오는 가락이지.”
“할머니도 그 영화 이야기 들으셨군요? 근데 그 영화는 강원도 평창이 아니라 횡성인데요?”
“횡성아리랑이나 평창아리랑이나 거의 같아. 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데 뭐.”
“그나저나 할머니는 어떻게 그 영화 이야기랑 영화에 나오는 노래까지 다 아세요?”
“난 이 자리에 가만 앉아 있어도 오만 세상 소리 다 듣지. 둥둥 흘러가는 구름도, 빙글빙글 헤엄치는 바람도, 그리고 너희 참새들도 매일매일 세상 소식 전해주잖니? 그나저나 너희는 오늘 무슨 소식 가져왔니?”
“저희는 사실 저기 공장골 둥글레 수도원 오동나무 오빠한테 부탁을 받고 여기 왔는데요. 어젯밤부터 할머니가 자꾸 구슬픈 노래만 부르신다고 해서요. 근데 이제 알겠어요. 그 영화 때문에 슬퍼서 그러시는군요? 할아버지 나무가 돌아가셨나봐요...”
“아냐, 우리 요셉 영감님은 저기 있어. 갈릴리 나사렛 근처에 있어.”
“갈릴리 나사렛이요? 요셉영감님이요? 그럼 할머니 성함은요? 혹시?”
“나? 난 마리아지.”
“아하, 할머니 이름이 마리아셨군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닌데 너무 멀리 계셔서 슬프신 거군요?”
“아니라니까? 우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땅 속으로 이웃 마을이야. 마음만 먹으면 금세 다 통해버려. 순식간에 통해버려. 땅 속 세상은 여기처럼 텅 빈 공간이 별로 없어, 꽉 찼거든. 그래서 너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땅 속은 훨씬 가깝고 빨라! 게다가 1천년 2천년 동안 뿌리가 얼마나 멀리 뻗었는지 너희는 상상도 못할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런데 저기 재 너머 공장골 오동나무 오빠는 왜 할머니 소식을 자세히 모르죠?”
“그야 너무 어리니까, 겐 이제 겨우 열 살이잖니? 내가 자세히 얘기도 안 해줬고.”
“그럼 할머니는 왜 그렇게 우울하셨나요? 노래도 딱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부르신 것 같은데요...?”
“노래야, 그 영화 생각이 나서 그냥 흥얼거려본 거고... 실은 요 앞집 나리 때문에 좀 우울했거든. 나리가 많이 아파서 요새 집에 안 있어. 집 떠나 좀 먼 곳에 가 있거든. 게다가 어젯밤 성탄전야 새벽송도 안 왔다니까?”
“새벽송을 안 와서요?”
“응. 매년 성탄전야에 둥글레 수도원 아이들이 와서 새벽송도 부르고 고운 선물도 주고 가곤 했는데, 나리가 없어서 그런지 올핸 안 왔지 뭐야? 핸드벨도 하고 우크렐레도 하고, 리코더도 하고 노래도 하고 참 재미난데 말이야.”
“둥글레 수도원에 무슨 일이 있어서 못 온건 아닐까요?”
“아니야, 소방서도 가고, 원덕역도 가고 개군이고 용문이고 매년 가는 곳엔 다 갔데. 우리 나리네랑 저기 삼성리 외국인 노동자들 기숙사에만 쏙 빼먹고 안 갔데요! 작년 새벽송 때 무슨 일인지 기숙사 관리인이 새벽송 오는 거 되게 싫어하더래. 거기 삼성리에 사는 우리 손자 느티나무한테 들었어. 게도 한 3백 살 정도 먹었는데, 나이 먹어 그런지 좀 서운해 하더라고. 원래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 좀 먹으면 쉽게 서러워지는 법이거든. 그래서 나도 우리 손자도 우리끼리 새벽송 했지 뭐. 난 아리랑 부르고, 우리 손자는 뭐 불렀다더라? 게 노래도 나처럼 좀 구슬펐을 거야 아마.”
“아유 할머니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탄 새벽송을 구슬픈 노래 부르면 어떡해요? 아기 예수님 태어나신 기쁜 날인데?”
“그런가? 내가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 우리 애도 이름이 예순데, 예수님 생일날 좀 미안하네...”
“아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리아 요셉이니까 아드님 이름도 예수군요? 그럼 아드님 예수 나무는 지금 어디 있나요?”
“어디 있긴? 전부 교회에 가 있지.”
“교회에요? 어느 교회 어디요?”
“어느 교회긴? 세상 모든 교회 짓는데 다 쓰고 또 십자가도 만들고 그랬지.”
“아하 그렇군요.”
“그나저나 참새야. 너 혹시 다른 교회 새벽송 소식 들은 거 있니?”
“아뇨, 별로 없는데요.”
“그렇구나. 새벽송이 점점 사라져서 참 슬퍼. 지난 2003년 성탄전야엔 양평에 안개가 무지무지 많았거든. 그 때 둥글레 수도원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양평에 있는 100년 넘은 교회들도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새벽송을 못 돌았다지? 그런데 문제는 그 뒤로 점점 새벽송 도는 교회들이 줄어들고 있다잖아? 춥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민원도 들어온다고 하고... 그래도 우리 마을 둥글레 수도원 아이들은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10년 넘게 한 번도 안 빼먹고 새벽송 돌거든. 물론 동네 사람들 싫은 소리 안하게 아주 지혜롭게 한다니까? 악기 소리도 아주 작은 걸로, 노래도 짧고 조용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런 거 부르고, 또 선물은 얼마나 정성껏 준비하는데?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한테 바치듯이 정성스럽게 종합선물세트로 만들더라고!”
“종합선물세트요? 나 그거 되게 좋아하는데? 쵸콜렛도 있겠네요? 과자도 종류종류 다 있고, 그쵸?”
“물론이지, 따뜻한 양말도 들었대.”
모처럼 느티나무 마리아 할머니 주름이 활짝 펴집니다.
“그나저나 우리 프란치스꼬 수사님은 언제 오시려나? 지금쯤 오실 때가 되었는데? 우리 프란치스꼬 수사님은 매일 이 앞을 지날 때마다 나를 어루만져 주시거든.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시지. 나더러 자매라나 뭐라나...”
마리아 할머니 얼굴이 소녀처럼 빨개집니다.
참새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그때 저기 공장골 쪽에서 아저씨 한사람이 고개 넘어 걸어오는 게 보입니다.
그 아저씨는 천천히 걸어서 나리네 집 쪽으로 가더니 이내 마리아 할머니 앞에 서네요?
그리곤 마리아 할머니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집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틀림없습니다.
“자매 느티나무여, 우리 구원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합시다.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아,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시편 148:9-13)”
한참 마리아 할머니를 어루만지며 무언가 중얼중얼하던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갑자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네요?
나리네 새벽송을 빼먹어서 대신 부르는 노랠까요?
가만히 들어보니 흥겨운 성탄찬송이 틀림없습니다.
“1.아기예수 응애응애 태어납니다, 아기예수 오물오물 자라납니다
엄마아빠 조심조심 성전에가니, 시므온이 싱글벙글 반겨주네요∼
2.별빛처럼 신비로운 하나님마음, 햇빛처럼 찬란한 하나님사랑
방실방실 아기예수 달덩이얼굴, 한없으신 은혜의주 사랑의얼굴∼
3.시므온과 안나가 찬양합니다, 아기예수 슬기롭게 자라납니다
너도나도 예수님 찬양합니다, 주님의몸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말씀노래, ‘아기예수 무럭무럭’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흥겨운 굿거리장단에 어깨춤이 절로나옵니다.
마리아 할머니도 이 노래가락에 따라 콧노래 흥얼거리며 어깨춤을 춥니다.
우리 마리아 할머니는 평창아리랑뿐 아니라 이 노래도 즐겨 부르실 것 같습니다.
아기예수 탄생 따라 새벽송이 불리듯이,
새벽송 따라 나리네도, 외국인 노동자들도,
주님의 몸 교회도 ...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12월 28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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