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아라”
[성서일과 4본문]
(민수기 11:24-30)
24. 모세가 나가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백성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을 불러모아, 그들을 장막에 둘러세웠다.
25. 그 때에 주님께서 구름에 휩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내린 영을 장로들 일흔 명에게 내리셨다. 그 영이 그들 위에 내려와 머물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들은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26. 그런데 두 남자가 진 안에 남아 있었다. 하나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은 명단에 올라 있던 이들이지만, 장막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영이 그들 위로 내려와 머물자, 그들도 진에서 예언하였다.
27.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에서 예언하였다고 알렸다.
28. 그러자 젊었을 때부터 모세를 곁에서 모셔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나서서, 모세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이 일을 말리셔야 합니다."
29. 그러자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두고 질투하느냐? 나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30.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함께 진으로 돌아왔다.
(시편 104:24-34, 35b)
24.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25.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
26. 물 위로는 배들도 오가며, 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27. 이 모든 피조물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28. 주님께서 그들에게 먹이를 주시면, 그들은 받아먹고, 주님께서 손을 펴 먹을 것을 주시면 그들은 만족해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하고, 주님께서 호흡을 거두어들이시면 그들은 죽어서 본래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30.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31.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여라. 주님은 친히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32. 주님이 굽어보기만 하셔도 땅은 떨고, 주님이 산에 닿기만 하셔도 산이 연기를 뿜는다.
33.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34.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
35b.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사도행전 2:1-21)
1.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6.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7.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9.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11.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12.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13.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9. 또 나는 위로 하늘에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 징조를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두움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21.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20:19-23)
19.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면서 붙잡은 말씀의 끈은 “주님의 영”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주님마음입니다.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소통하기를 강렬하게 원하시는 주님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절말씀을 “성령을 받아라”로 정했습니다.(요한 20:22)
[구약본문 ; 민수기 11:24-30]
구약본문은 불평불만 투성이 백성들 사이에서 모세를 돕기 위해 세운 70장로들 이야기입니다.
모세의 소집에 따라 그들은 장막(성막, 회막)에 둘러섭니다.
그들이 모세의 짐을 나누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내립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언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단 한번으로 그치는 예언입니다.(25)
이로 보아 아마 이 예언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이 아닌 황홀경 가운데 예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황홀경 가운데 예언을 체험하게 하심으로, 70장로들이 하나님과 강력하게 소통하는 체험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엘닷과 메닷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들은 70장로들 가운데 두 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이들은 모세에게 불순종하여 소집에 응하지 않고 성막이 아니라 진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주님의 영이 내리신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도 황홀경에 빠져 예언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어느 소년으로부터 전해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얼굴빛이 어땠을까요?
백성들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세운 70장로입니다.
이를 위해 내리신 주님의 영이요, 황홀경 가운데 예언체험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질서를 어긴 엘닷과 메닷에게도 똑같은 성령체험, 예언체험이라니?
여호수아는 당장 질서유지권을 발동시키려 합니다.
모세의 권위와 지도력을 위해 애쓰는 여호수아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너는 지금 나를 생각하여 질투하고 있느냐?” 29절, 공동번역)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언뜻 드는 생각이지만, 엘닷과 메닷의 성령체험은 진중에 있는 백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엘닷과 메닷이라는 불순종의 종들을 통해서도, 백성들과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지막 한마디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나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29)
엘닷과 메닷처럼 불순종하는 저 백성들이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말입니다.
[시편본문 ; 시 104:24-34, 35b]
시편본문에서도 주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면, 그들이 다시 창조됩니다.”(30)
그런데 그 대상이 인간에 국한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넘어 모든 피조세계를 향한 것입니다.
땅위의 생명들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 속 생명들까지, 게다가 물속 괴물까지말입니다.
심지어, 오늘 구약본문과 비교해보니, 그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만 바라보며, 때를 따라서 먹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27)
먹을거리 때문에, 고기타령하며 불순종했던 유대광야의 백성들과 비교가 됩니다.
아니 지금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서, 먹을거리 때문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돈만 바라보는 우리들과 비교됩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배웠습니다.
엉뚱한 비약일지 모르지만, 오늘 시편노랫말에 따르면, 피조세계에서 인간이 가장 믿음 없어 보일지경입니다.
우리 인간들과만 소통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온 피조물과도 소통하시려고, 그들에게까지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신다는 시인의 노랫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비록 이번 성서일과표에는 아슬아슬하게 빠졌지만, 35절 상반절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죄인들아, 이 땅에서 사라져라. 악인들아, 너희도 영원히 사라져라..”(시 104:35a)
하나님의 영을 받은 피조세계의 한 일원으로서 우리 인간들을 이렇게까지 묘사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러고 보니, 지난 목요일(6/5)이 환경의 날이었으며, 오늘이 바로 환경(선교)주일입니다.
금년 성령강림주일이 환경주일과 겹치는 것 또한 뜻깊습니다.
4대강을 훼손한 죄, 핵발전소 건설로 자연을 몰살시킬 죄를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기회입니다.
[사도행전본문 ; 사도행전 2:1-21]
“혀들이”(“혀 같은 것들이”, 공동번역) 오순절 제자들 위에 내려옵니다.
그러자 성령충만하여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행전 2:4)
여기서 “혀”와 “방언”이 묘하게 통합니다.(영어 단어와 희랍어 단어도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말로도 단어 글꼴, 그리고 발음은 달라도 ‘혀’와 ‘방언’의 뜻은 통합니다.
아마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황홀경에서 방언하는 것 같습니다.
바깥으로 뛰쳐나가서 각 나라 사람들을 골라 달려가서 그 나라 말로 전도(방언)한 것이 아닌 걸 보니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각 나라 말로 방언을 시작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고 희한했는지, 바깥에 있던 각 나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듭니다.
그리고 자기나라 말소리를 골라 찾아가 “하나님의 큰일들”을 듣습니다.(11)
모두 어리둥절해합니다.
방언하는 이들이 갈릴리 사람들인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방언에 갈릴리 사투리가 섞여 있었을까요?),
어떤 이들은 당황하며 신기해하고, 또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합니다.
이를테면 신종마약 같은 것에 취해서 희한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었을까요?
그 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납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을까요?
군중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알아서 통역을 해주었을까요?
오늘 사도행전본문에는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와중에 예언자 요엘의 말씀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17-21)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에는 이 부분 “모든 사람에게”를 “on every kind of people”이라 했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은 오늘 구약본문에서 모세의 마음과 통합니다.(민수 11:29)
여기서도 온 세상 온 민족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복음서본문 ; 요한복음 20:19-23]
오늘 복음서본문은 지난 부활절 2주 본문과 겹칩니다.
그런데 오늘 4본문과 이어서 보니, 오늘 복음서본문에 드러나는 예수님의 마음이 매우 선명합니다.
제자들과 소통하기를 강렬하게 원하시는 예수님 마음!
19절에, 문이 꽁꽁 닫혀있는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대문뿐 아니라, 제자들 마음의 열두 대문 모두 꽁꽁 닫혀 있습니다.
두려움과 상처, 상실감, 죄책감들... 트라우마, 대인기피, 극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소통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십니다.
꽁꽁 닫힌 대문을 어떻게 여셨을까요?
꽁꽁 닫힌 마음 문들을 어떻게 여셨을까요?
물처럼 스며드시는 주님...이건 바로, 소통을 원하시는 주님의 갈증을 드러내는 매우 강렬한 표지입니다.
1) 평화의 인사를 두 번 하십니다.
2) 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하고 말씀하십니다.
4)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5) 그리고 “용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하게 우리와 소통하시려는 주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우리와 소통하시려는 주님 마음으로 일관합니다.
[정리]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 첫 이유는, 그래야 내가 비로소 그분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6/6) 매일성서일과 중 한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오늘 본문들과 연이어서, 지금 하나님께서 자녀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신다는 말씀으로 느껴졌습니다.
자녀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부모마음, 이것은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령받은 이들과만 소통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가서 전한 주님의 그 마음 받은 이들 모두와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그렇게 세워지고, 자라고, 하나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나머지]
* 오늘은 또한 환경(선교)주일입니다.
4본문 가운데서 특히 시편본문이 돋보입니다.
우리의 환경, 아니 우리 자연의 벗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을 받아 성령충만하면, 이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라고 지어주신 자연의 벗들, 창조의 동무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득 온 우주의 벗들과 소통하며 노래하였던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가 기억납니다.
** 사도행전본문에 나열된 여러 나라 이름들
중복되지만 17곳 이름이 나열되는 것이, 마치 지난 주 본문에서 열한 제자 이름이 나열 된 것과 묘하게 연결됩니다.
자세히 연구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나열된 이름들에는 무언가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각 지역 이름에 담긴 뜻, 그곳의 풍물과 역사, 종교, 그리고 지정학적 의미들을 찾아보기...
사진들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직소퍼즐 맞추기 하듯이 이어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숨은그림찾기, 보물찾기하듯 한번 찾아보면 좋겠는데, 혹시 이걸 이미 연구해서 잘 다룬 책이나 자료를 알고 있는 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 요사이 겪고 있는 부모자식간의 소통과 불통
세월호에 자식 잃고 물가에서 자식 이름 목놓아 부르는 엄마 아빠들...
6.4 지방선거에서 자식과의 불통, 또는 소통으로 울고 웃은 아빠들...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내 자식들을 바라보며 반성하는 나...
그리고 오늘 4본문, 성령을 내리시는 주님의 마음에서 자식들과 소통하고픈 어버이 마음을 느낍니다.
자녀들이 귀를 닫아도 어떻게 해서든, 엘닷과 메닷처럼, 기어이 소통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말씀동시] (박새봄, 나재연 지음. 향린교회학교. 3, 4학년.『성실문화』 79호)
두려움은 평화로 평화는 용서로 (박새봄)
예수님 돌아가시고 나서는, 두려운 나날들, 병사들이 쫓아올까, 두려운 마음
예수님 부활하셔서, 오셨을 때는, 기쁜 마음, 평화로운 마음
하지만, 나쁜 병사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도, 용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예수님처럼
닫힌 문에 예수님이 오셨다 (나재연)
닫힌 문에, 예수님이 오셨다.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곤, 축복해 주셨다.
닫힌 문에, 예수님이 오셨다.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곤, 성령을 불어넣으셨다.
그리고 용서하셨다.
[말씀시조] 요한복음 20:19-23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9호)
꽁꽁숨은 제자들을 기여이 찾아가사
평화를 빌어주고 성령을 부으시네
저희도 보내주소서 용서의왕 예수여
[말씀한시] 깊은 상흔 보이시며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9호)
不關閉門出現房 (불관폐문출현방) 문은 닫혀 있었다. 그것에 상관없이 방 안에 나타나셔서
尋訪門徒今問安 (심방문도금문안) 제자들에게 오셔서 ‘잘 있었느냐?’ 물으셨다
示之手脅深傷痕 (시지수협심상흔) 옆구리와 손에 받은 깊은 상흔(傷痕)을 보이시며
爾衆平安受聖神 (이중평안수성신) ‘성신을 받고, 평안하라’고 하셨다.
[말씀서예] 시편 104:33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9호)
[말씀노래1, 2] 온 생명의 노래1, 2 (시편 104:24-34,35b. 이정훈 작사, 이천진 작곡. 윤혜림 작곡.『성실문화』)
1. 주께서 손수 만드셨네, 주님의 지혜로 지으셨네
온 땅 가득 온바다 가득, 많고 많은 생명이여
내 영혼아 찬양하라,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나의 노래는 주님의 기쁨, 할렐루야 찬양하라
2. 주께서 손수 먹이시네, 주님의 뜻대로 돌보시네
온 땅 생명을 기르시고, 모든 생명 거두시네
내 영혼아 찬양하라,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나의 노래는 주님의 기쁨, 할렐루야 찬양하라
3. 주께서 성령을 보내시니, 새생명 새창조 새땅일세
주님 영광 영원하리, 주의기쁨 무궁하리
내 영혼아 찬양하라,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나의 노래는 주님의 기쁨, 할렐루야 찬양하라
4. 주께서 눈길을 주시오니,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평생 주님만 찬양하오니, 주여 이몸 품어주소서
내 영혼아 찬양하라,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나의 노래는 주님의 기쁨, 할렐루야 찬양하라
[시편송서] 시편 104:24-34, 35b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79호)
[인도자, 또는 회중]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찬양대, 또는 독창]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인도자, 또는 회중]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찬양대, 또는 독창]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바라나이다-)∼
[인도자, 또는 회중]
28.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찬양대, 또는 독창]
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인도자, 또는 회중]
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2. 그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을 만지신즉 연기가 나는도다
[찬양대, 또는 독창]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다함께]
34. 나-의 기도를 기쁘-게--,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말씀동화]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 풍경
거미줄에 걸린 새벽이슬이
새벽수풀 향기 머금고있네
초록수풀 꼴깍 삼켜버렸네
새벽이슬 속에 나도담겼네
풀잎마다 고인 새벽이슬이
풀잎풀잎 풀잎 노래를하네
꽃잎마다 고인 새벽이슬이
알록달록 으쓱 어깨춤추네
새벽이슬 찾은 풀벌레손님
조심조심 조심 입을맞추네
새소리에 놀란 새벽이슬이
꾀꼴꾀꼴 꾀꼴 숨어버렸네
원더(wonder)초등학교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원더초등학교는 시골에 있는 자그마한 학교입니다.
그런데 원더초등학교는 “자연의 벗”, 생태 특성화 학교예요.
대자연의 놀라운 아름다움과 아기자기한 재미들을 만끽하는 교육!
원더풀 네이처(Wonderful Nature)!
이게 바로 원더초등학교의 꿈이죠.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학교 분위기가 들썩들썩 하네요?
아하,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전교 어린이회장을 뽑는 날이었군요.
어쩐지 벌써 일주일 전부터 학교 구석구석이 선거포스터들로 알록달록하더라니!
오전 내내 마지막 유세를 하고 오후에 투표를 합니다.
유세(遊說)가 뭐냐고요?
‘저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저를 뽑아주세요’ 하며 선전하고 다니는 걸 유세라고 하죠.
올해는 6학년 어린이 가운데서 영구랑 철수, 그리고 나리가 나란히 입후보 했군요.
영구는 집안 대대로 자연보호에 앞장서 왔데요.
영구 외할머니가 바로 그 유명한 자연고등학교 이사장님이시죠.
철수는 조상 대대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자라났어요.
철수 엄마아빠도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유기농 하우스 단지를 운영하고 있으십니다.
그리고 나리는 10년 전 코흘리개 때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습니다.
나리 아빠는 나무를 깎아 이런저런 조각을 만드는 예술가세요.
영구의 선거공약은 학교 구석구석에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참, 공약(公約)이란 여러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맺은 약속이란 뜻입니다.
학교 구석구석 빈터마다 맛있는 과일나무로 가득 채우는 게 영구의 꿈입니다.
철수는 학교에 커다란 밭을 만드는 게 공약입니다.
운동장을 딱 절반으로 갈라서 유기농 하우스를 만드는 게 철수의 꿈입니다.
나리의 선거공약은 특별활동 시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특별활동 시간에 자연을 공부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나리의 꿈입니다.
학교 강당 단상에 오른 영구가 마이크를 잡고 큰 목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이 저를 전교 어린이회장으로 뽑아 주신다면, 저는 여러분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열심히 학교 구석구석에 과일나무를 심겠습니다. 사과나무도 심고, 배나무도 심고 포도나무도 심을 겁니다. 물론 앵두나무도 심고 뽕나무도 심을 거구요. 그리고 나무 주변에 있는 풀이란 풀은 몽땅 다 뽑아버리겠습니다. 그래서 여름철, 가을철에 열매가 잔뜩 열리면, 그걸 다 따서 여러분과 나누어 먹고, 또 효소도 담고, 또 잔뜩 말려서 겨울방학 내내 먹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열심히 박수를 칩니다.
이번에는 철수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여러분, 박영구 후보의 공약은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햇볕도 안 드는 학교 구석에 과일나무를 심으면 나무가 잘도 자라겠네요? 박영구 후보는 과일나무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니까 저런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세우는 겁니다. 그에 비해서 저는 실제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집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유기농에 대해 잘 압니다. 저는 학교 운동장을 반으로 딱 갈라서 멋진 유기농 하우스를 만들 것입니다. 거기 딸기, 참외, 수박도 심고 상추도 심어서, 우리 원더초등학교 가족들 모두가 돈 없이도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원더풀 하우스, 원더풀 김철수! 저를 뽑아 주십시오, 여러분!”
수박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열심히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영구는 철수가 자기 험담을 하자 뿔이 났습니다.
그래서 얼른 마이크를 빼앗아 잡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여러분, 김철수 후보의 공약이야말로 허무맹랑한 공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운동장을 절반으로 가르면 축구는 누가 합니까? 또 발야구는 어떻게 하죠? 운동장이 반토막으로 쪼그라들면, 발야구 할 때 누가 차도 다 홈런이 되잖아요?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과일나무에 대해 잘 아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희 외삼촌이 포클레인 기사님이라 과일나무 심을 때 여러분은 전혀 삽질 안 해도 됩니다. 제가 다 심을 수 있다고요! 저만 믿어주세요 여러분! 그리고 저 김철수 후보의 엉터리 공약 절대 안 됩니다. 김철수 후보, 그런 엉터리 비닐하우스는 지금 당장 철수하세요, 철!수!”
철수는 영구가 이름가지고 장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다시 마이크를 잡으려 하네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철수와 영구를 진정시키고 마이크를 나리에게 주십니다.
나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차분히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 저는 김철수 후보나 박영구 후보에 비해서 자연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만약 전교 어린이회장에 당선 된다면, 저는 학교 특활시간을 자연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우리 마을에 함께 사는 수많은 새소리를 들어도 그 새들의 이름이 무엇 무엇인지 구별할 줄 모릅니다. 뒷동산에 오르면 무슨 무슨 나무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아는 나무라고는 기껏해야 소나무랑 참나무뿐이죠. 나무보다 키가 작은 풀이름들도 잘 모릅니다. 길가에 핀 알록달록 예쁜 들꽃들조차 이름을 모릅니다. 들꽃 위에 앉아있는 풀벌레들 이름도 모르고요... 부끄럽지만, 제 이름이 나리인데, 저는 나리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자연에 대해 무관심했고, 자연의 벗들과 대화하는 법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학교 일꾼으로 뽑아주신다면, 저는 특별활동 시간을 아주 재미있는 시간으로 만들도록 애쓸 것입니다. 종종 뒷동산에 올라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도 갖고, 거기서 스마트폰으로 찍어온 자연의 벗들을 인터넷에서 그 이름과 특성들까지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장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풀꽃이름 풀벌레이름 외우기 대회, 새소리 흉내 내기 대회, 자연의 벗들 시화전도 열고, 그리고 창작동요 부르기 경연대회도 열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리가 마이크를 놓을 때 쯤 학교 강당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웅성웅성 술렁거립니다.
영구 동생 삼구 때문이었습니다.
삼구가 큰 소리를 칩니다.
“우리 영구 형은 과일나무 박사야. 어떤 과일이 제일 비싸고 제일 맛있는지도 다 아는 척척박사라니까? 우리학교에서 영구 형이랑 나보다 과일나무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너네는 과일을 마트에 가야 사먹지? 우린 따먹어. 서울 외할머니 댁에 가면 얼마든지 종류별로 따먹을 수 있다고! 단감나무도 있고 대봉나무도 있다니까? 너네는 과일나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라. 너희는 너무 무식해!”
제 이야기에 스스로 도취한 삼구가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웁니다.
삼구를 바라보는 친구들 눈매가 곱지 않습니다.
아마 삼구는 자기 형 영구를 도우려고 그러나본데,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지 대화의 기술이 부족합니다.
저쪽에서도 아이들이 술렁이네요?
철수 동생 수현이 때문입니다.
수현이가 단상 위에 있는 자기 오빠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쫑알거리는 중입니다.
“얘들아 우리 철수오빠 절대 찍지 마, 네버에버 절대로! 우리 오빤 겉으로만 유기농 박사인척 하지 실제론 완전히 깡통이라고! 우리 집 농사에도 손 하나 까딱 안한다니까? 하우스 일이 바쁠 때 엄마 아빠가 아무리 불러도 도망가기 일쑤야. 맨날 나만 가서 하우스일 심부름하고 그런다니까? 철수오빠는 위선자야! 완전 위선자! 절대 찍어주지 마!”
또 한쪽에서는 얼굴이 발그레한 나리 동생 나훈이가 동무들에게 한창 이야기 중입니다.
“얘들아, 우리 나리누나 잘 부탁한다. 누구를 찍건 너희 마음이지만, 그래도 우리 나리누나 공약이 좀 소박하긴 해도 알맹이가 알찬 공약이라는 건 알아주면 좋겠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누나가 얼마나 성실하고 솔직한지는 알거든. 올봄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동물들 식물들 사진 찍고, 인터넷에서 일일이 비교해보면서 찾아 늦게까지 공부하고, 우리 엄마가 영어공부나 그렇게 열심히 해보라고 아무리 야단치셔도 돌부처처럼 끄떡도 안 해. 나리누난 정말 자연의 벗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봐도 우리 누난 진국이야 진국!”
스마트폰 카톡방마다 삼구랑 수현이 그리고 나훈이의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영구랑 철수, 나리 이야기보다 동생들의 이야기가 더 인깁니다.
영구랑 철수, 나리 이야기에 별 관심 없던 아이들도 동생들 이야기에 귀가 솔깃합니다.
영구 동생 삼구는 외할머니 댁 과일나무 사진들을 올립니다.
나리 동생 나훈이는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나리와 나훈이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눈에 띕니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나무십자가입니다.
나리 아버지는 도시에서 사실 때도 버려진 가로수 나뭇가지로 나무십자가를 만드셨습니다.
교회를 모르던 나리 아버지는 나무십자가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교인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통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상징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허물고, 원수 맺은 것을 녹여버리는 십자가입니다.(에베소서 2:13-16)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원수가 되고, 사람과 자연이 원수가 되는 것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소통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나리네 십자가를 자세히 보면 십자가 가로나무 어깨 위에 물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물새인지 비둘기인지 모르지만, 나훈이는 카톡방에 그건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성령님은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들 사이도 방언을 통해서라도 기어이 소통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리의 십자가에는 나무랑 새, 식물과 동물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십자가에는 하나님과 사람이신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는 오랜만에 모든 학생들이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소통은 하나 되게 하는 것인데, 선거판이 이리저리 갈라지는 것은 소통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영구랑 철수는 동생들이 얄밉기 그지없습니다.
평소 아우들과 소통을 잘 하지 못한 것이 후회막심입니다.
나리는 아우가 한없이 사랑스럽습니다.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누나의 평소 생활을 아우가 눈여겨 보아온 것입니다.
나리가 목걸이 십자가를 만지작거리며 빙그레 미소를 짓습니다.
문득 아빠표 목걸이 십자가를 영구랑 철수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6월 8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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