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7:55-60)
55.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고서,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시편 31:1-5, 15-16)
1. 주님, 내가 주님께 피하오니, 내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나를 건져 주십시오.
2.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속히 건지시어, 내가 피하여 숨을 수 있는 바위, 나를 구원하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십시오.
3. 주님은 진정 나의 바위, 나의 요새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4. 그들이 몰래 쳐 놓은 그물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십시오. 주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5.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깁니다. 진리의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속량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5. 내 앞날은 주님의 손에 달렸으니, 내 원수에게서, 내 원수와 나를 박해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16. 주님의 환한 얼굴로 주님의 종을 비추어 주십시오.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베드로전서 2:2-10)
2. 갓난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3. 여러분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이 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 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4:1-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감싸고 아우르는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죽음 앞에서’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아무리 처절할지라도 결국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걸으셨던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4본문은 이모저모로 우리를 주님과 일체감을 갖게 해주십니다.
싱크로 율을 100%에 가깝게 묘사한다고 할까요?
무엇 때문일까요?
2014년 5월, 부활절 다섯째 고개를 넘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 가신 그 길 따르려는 우리에게, 하늘의 위로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갈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5-60] 죽음 앞에서 십자가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스데반
(행 7:60)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누가 23:34)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밖에도, 무리가 고소하는 내용, 사형을 진행하는 과정도 흡사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얼굴이 변화하는 모습도 수난당하시기 전 변화산의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행 6:15) '공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
[시편 31:1-5, 15-16] 죽음의 위기 앞에서
사도행전의 응답찬송으로 택해진 오늘 시편은, 딱 스데반의 심정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특히 5절은 오늘 스데반의 기도, 그리고 십자가 예수님의 기도와 그대로 통합니다.
(시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개역개정)
(행 7:59)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누가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서신서 ; 베드로전서 2:2-10] 왕따와 멸시, 죽음의 공포 앞의 소아시아 교회들
이교 환경 속 여러 극심한 왕따와 멸시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키려는 교회들,
어리석은 로마황제들의 폭력 앞에서 신앙을 지켜가야 할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눈여겨 볼 강조점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하나 된 교회, 예수님의 분신과 같은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4.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왕따의 찌든 일상이지만, 사실은 택함 받은 행복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특히 “거룩한 제사장”(5), “왕과 같은 제사장”(9)이라고 반복해서 표현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과 일체감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길을 따르는, 주님 십자가 길과 싱크로율이 99.9%에 달하는 ‘산돌’교회인 것입니다.
[복음서 ; 요한복음 14:1-14] 죽음 앞에서, 오히려 제자들을 위로하시며 길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마침내 십자가 길을 함께 가야 할 ‘제자의 길’을 보여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예수님!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수난당할 것을 예고하십니다.(요한 13:21∼)
그때 베드로는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요한 13:37)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얼마 안 있어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이런 분위기, 이렇게 어지러이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위로와 함께 강력한 기운을 불어넣으시는 것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1∼3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이어지는 도마의 질문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답을 주십니다.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지난 주 본문에서는 “양의 문”이라고 묘사하셨는데, 이번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표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밟아 가신 십자가의 길이 바로 진리에 이르는 길,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제자들, 교회들 역시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고, 십자가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본문의 주인공 스데반은 이 말씀을 고스란히 받아 순종한 제자였습니다.
이어지는 빌립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바로 앞 요한복음 10장에서, 적대자들 앞에서 목숨 걸고 선포하신 말씀인데, 오늘 제자들 앞에서 다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조차 아직 이 복음의 알맹이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알맹이는 앞으로 두 주에 걸쳐 부활절 마지막 주일까지 계속 발전하며 이어질 것입니다.)
(요한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요한 10: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제자들, 교회들 역시 주님과 일체라는 가슴 뛰는 복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길을 갈 수 있는 명분과 힘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교회가 힘차게 일하리라는 말씀입니다.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가리키는 궁극은, 신비로운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 신비의 끝, 십자가의 길이요, 십자가 길의 완성입니다.
특히 13, 14절 말씀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 즉 예수님 뜻대로 구하는 것, 즉 예수님 사신 것처럼 사는 십자가 길은 마침내 다, 주님의 도움으로 온전히 완성되리라는, 결국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리라는, 참으로 황송하고도 영광스러운 말씀, 희망의 말씀입니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정리]
교회는, 제자는 예수님처럼, “내 아버지의 일”(요한 10:37, 14:10c), 즉 “내가 하는 그 일”(요한 14:11, 12)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게 진정 믿음의 증거요, 제자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궁극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 14:27)
그러나 이 제자의 길, 십자가의 길은 결코 불가능한 길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끝까지 힘주시기 때문입니다.
도우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4:12-14)
그분만 믿으면 그길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말씀동시] 놀랍지 않아? (김윤서 지음. 명암교회학교 5학년. 『성실문화』 78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기적을 행한데.
놀랍지 않아?
예수님을 믿는 자는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데.
놀랍지 않아?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야.
[말씀시조] 요한 14:1-14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이 진리 환히 믿어 근심을 떨치거라
내 이름 굳게 붙들면 내가 손수 이루리
[말씀한시] 천국은 네 안에 있느니라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8호)
人識越星堂(인식월성당) 사람들은 별 너머에 천당이 있다고 알고 있다
示我天父足(시아천부족)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를 보여 주시요
吾偕爾如此(오해지여차) 그동안 그렇게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猶未識我乎(유미식아호) 너희는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吾卽道眞理生命也(오즉도진리생명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我在父(아재부)父在我(부재아)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으니
見我卽見父(견아즉견부)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天國旣臨汝(천국기임여) 천국은 네 안에 있느니라.
[말씀서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8호)
[말씀노래] 나는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78호)
1. 너희는 마음에 근심말아라 / 하나님을 믿으니 또나를 믿어라 /
내가가서 너희거처 예비하리라 / 다시와서 너희를 영접하리라
2. 나의길 너희도 알고있노라 / 주여그길 저희는 모르옵니다 /
도마야 나의길은 아버지의집 / 내가바로 길과진리 생명이란다
3. 너희는 내아버지 알고있노라 / 너희는 내아버지 이미보았다 /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세요 / 빌립아 눈을열고 나를보거라
4. 아버지안에 나있고 내안에 아버지가! / 너희는 이를믿고 결행하여라 /
내이름 내뜻대로 기도하여라 / 내가바로 길과진리 생명이로다
[시편송서] 시 31:1-5, 15-16 (천자문 독송, 또는 전래 자장가 가락으로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 78호)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4.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그물에서--) 빼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 니이다---∼
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 (저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다함께]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나-를) 구원하∼소∿서∼∥
[말씀동화] 해님 달님의 수족지애(手足之愛)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머리가 어질어질 돌아버린 호랑이 한 마리가
결코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저지른 옛날이야기예요.
어질어질한 호랑이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떡 하니 떡장수 아줌마를 만났어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아줌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이산 저산 호랑이들을 몽땅 잡아서 동물원에 가두었다던 그 수다쟁이 방물장수 여편네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어! 그 엉터리 방송만 믿고 이렇게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줌마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주려던 떡 하나를 호랑이에게 던져 줬죠.
탐욕스런 호랑이는 떡을 하나 둘 셋 몽땅 먹어치우고는 급기야 아줌마의 한 쪽 다리까지 달라고 하네요.
떡 하나만 달라던 호랑이는 알고 보니 무시무시한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다리 하나만 주면 더는 안 잡아먹겠다는 호랑이의 거짓말이 점점 무섭습니다.
급기야 또 한쪽 다리는 물론 두 팔과 머리, 아줌마의 몸통까지 몽땅 먹어치운 호랑이는 점점 배가 불렀겠죠?
보통 호랑이라면 배가 부르면 호랑이 굴로 돌아가는 법인데, 이 호랑이는 분명히 정신이 나갔나 봐요.
어슬렁어슬렁 또 어디론가 가고 있네요.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오누이의 집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곤 문밖에서 엄마 흉내를 내며 문 열라고 하네요?
“오빠야, 이상하다, 방물장수 아줌마가 분명히 호랑이가 다 없어졌다고 했는데, 저건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 딱 호랑이 목소리 같다.”
엄마 목소리가 아니어서 문을 못 열어주겠다는 오누이에게, 호랑이는 목감기 때문이라고 둘러댑니다.
호랑이의 거짓말이 점점 막장까지 달려가고 있네요?
그렇다면 손을 좀 보여 달라고 하자 호랑이는 그 큰 앞발을 문 안으로 쑥 집어넣습니다.
탐욕에 눈 어두운 호랑이의 거짓말이 이제 앞뒤 분간도 없는 미친 거짓말이 되어갑니다.
엄마의 손이 아니라 호랑이의 앞발임을 확인한 오누이는 얼른 집을 탈출하려 했겠죠?
그런데 호랑이는 또다시 거짓말을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면 안 잡아먹∼지!”
누이동생은 벌벌 떨며 호랑이 말대로 집안에 가만히 있자고 합니다.
그러나 오빠는 누이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들창문을 통해 뒤꼍으로 달아납니다.
그리곤 얼른 우물 곁 나무위로 올라가네요.
호랑이는 오누이를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나서 나무를 기어오르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나 몸이 너무 무거워 번번이 아래로 떨어지네요?
거짓말쟁이 호랑이가 또 거짓말을 합니다.
호랑이의 거짓말이 점점 높은 산처럼 쌓여만 갑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방법 알려주면 안 잡아먹∼지!”
오빠는 재치있게 기름을 바르면 나무를 탈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호랑이는 얼른 부엌에 가서 참기름을 가져다가 나무에 잔뜩 바르고는 기어오르려 기를 씁니다.
그러나 나무가 미끄러워 아까보다 절반도 못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어흥-! 저런 천하에 둘도 없는 거짓말쟁이 오빠 같으니라고! 어흥-!”
호랑이가 미친 듯이 울부짖자, 오빠는 외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이 몹쓸 거짓말쟁이 호랑이 녀석아, 네 녀석 거짓말 병을 고치는 데는 이게 특효약이니라! 네놈의 거짓말은 사람을 잡아먹는 악한 거짓말이지만, 내 거짓말은 사람 생명을 살리는 착한 거짓말이라고!”
그러자 곁에 있던 누이동생이 말합니다.
“그래도 오빠야, 거짓말은 나빠요. 거짓말 하면 저 호랑이 같이 나쁜 사람 되요!”
착하고 순진한 누이동생은, 호랑이에게 나무에 오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어휴, 거짓말하기 싫으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친절하담?
아무튼, 그러자 호랑이는 누이동생의 말대로 도끼를 가져다가 쿵쿵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나무에 오르는 법만 알려주면 절대 안 잡아먹겠다던 호랑이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올라옵니다.
벌벌 떨던 오누이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흔들어 호랑이를 떨어뜨리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라. 움직이지 좀 말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 잡아먹∼지!”
눈이 시뻘개진 호랑이가 군침을 주룩주룩 흘리며 거짓말을 합니다.
집채만 한 호랑이가 점점 가까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벌벌 떨며 울고 있는 누이동생을 바라보던 오빠는 동생을 꼭 껴안고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지금 나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던 예수님 마음은 어떠셨을까? 피에 굶주린 미친 호랑이 떼 같은 군중들의 야유 소리에 예수님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우셨을까? 미친 호랑이 떼 같은 군중들이 돌을 던질 때 스데반 아저씨 마음은 또 어떠셨을까? 얼마나 무섭고 떨리셨을까?’
그 순간 오빠는 두 눈을 번쩍 뜹니다.
문득 호랑이 떼 같은 군중들 앞에 서있던 스데반 아저씨가 저 멀리 하늘이 열리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난 거예요.
그리곤 더 이상 저 아래 호랑이를 쳐다보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누이동생의 손을 꼭 맞잡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저희를 살려주세요.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제발 살려주세요. 방물장수 아줌마의 거짓말에, 호랑이의 거짓말에 엄마도 돌아가시고 이젠 저희 오누이만 남았어요.”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호랑이가 올라옵니다.
시뻘건 입을 쩍 벌리고 호랑이가 올라옵니다.
시퍼런 바닷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듯 차올라옵니다.
“하나님 하나님 제발 저희를 살려주세요. 하나님 아버지랑 우리 예수님이 한 몸, 한 덩어리로 사랑하신 거랑 똑같이, 하나님은 저희를 한 몸처럼 사랑하시는 걸 저는 믿습니다. 만약 저희를 사랑하지 않으시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저희를 사랑하신다면 제발 튼튼한 동아줄 두 개를 내려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바로 그 때, 하늘이 열리고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먹장구름을 뚫고 튼튼한 동아줄이 씩씩하게 내려옵니다.
어? 그런데 동아줄이 두 줄이 아니고 한 줄만 내려오네요?
어떡하지? 동아줄 두 개가 내려와야 오누이가 함께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어떡하지?
이건 무슨 서바이벌 오디션도 아니고, 어떡하지?
“오빠야, 저건 오빠 기도로 내려오는 거니까 오빠가 타고 올라가요.”
마음 착한 누이동생이 생명의 동아줄을 오빠에게 양보합니다.
그러자 오빠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저건 네 거야. 오빠는 저거 없어도 살 수 있어!”
오빠는 또 거짓말을 합니다.
동생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오빠야, 내가 뭐랬노? 거짓말 자꾸하면 호랑이처럼 된다고 했지?”
누이동생이 엉엉 웁니다.
오빠도 누이를 부둥켜안고 엉엉 웁니다.
바로 그 순간 바람이 붑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결에 구름이 걷힙니다.
아니 이럴 수가!
저기저기 저 동아줄 끝에 달린 것이 두레박이 아닌가!
그 옛날 선녀가 타고 내려왔던 바로 그 두레박입니다.
오누이가 함께 탈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왕두레박입니다.
커다란 두레박과 함께 하늘 아버지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희 오누이 사랑이 갸륵하다. 서로 나 먼저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세상에 너희처럼 서로를 살리려는 오누이 사랑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한 몸의 손발처럼 사랑하는 손발사랑, 과연 수족지애(手足之愛)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성부와 성자가 본을 보인 한 몸 사랑을, 수족지애(手足之愛)로 고스란히 익힌 착한 아이들아 어서 올라오렴!”
오누이는 얼싸안고 얼른 두레박에 올랐겠죠?
그리고 뒤에 남은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약이 올라 펄펄 뛰던 그 호랑이, 그 탐욕스런 거짓말쟁이 호랑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하늘에 오른 오누이는 해가 되고 달이 되어 빛을 뿜습니다.
세월은 흘러흘러 어두운 세상이 점점 환해집니다.
돈에 눈이 먼 욕심꾸러기 호랑이 세상, 거짓말투성이 눈멀고 귀 먼 세상을, 빛으로 환하게 밝혀줍니다.
그 빛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수족지애(手足之愛), 사랑의 빛입니다.
[이정훈 지음. 2014년 5월 18일 주일 아침]
(전래 민담, 해님달님 이야기를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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