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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2014년 5월 4일(부활절 3주-어린이주일) 예배준비 노트

“어리석은 사람들”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2:14a, 36-4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에게 엄숙하게 말하였다.

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37.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38.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39.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41.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시편 116:1-4, 12-19)

1. 주님, 주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기에,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2.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니, 내가 평생토록 기도하겠습니다.

3.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매고, 스올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여서, 고난과 고통이 나를 덮쳐 올 때에,

4.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간구합니다. 이 목숨을 구하여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12. 주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4. 주님께 서원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루겠습니다.

15.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

16. 주님, 진실로,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나는 주님의 종, 주님의 여종의 아들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결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17. 내가 주님께 감사제사를 드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18. 주님께 서원한 것은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 이루겠습니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주님의 성전 뜰 안에서, 주님께 서원한 것들을 모두 이루겠다. 할렐루야.

 

(베드로전서 1:17-23)

17. 그리고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니,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18.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여러분의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그것은 은이나 금과 같은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19.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되었습니다.

20. 하나님께서는 이 그리스도를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미리 아셨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내셨습니다.

21.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22.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23. 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13-35)

13. 마침 그 날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일어난 이 모든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15. 그들이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당신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 받는 이 말들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18. 그 때에 그들 가운데 하나인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22.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24.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26.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28. 그 두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는 척하셨다.

29.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30.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34. 모두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래서 그 두 사람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하였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 중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걸린 구절은 이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누가 24:25)

 

“어리석은(미련한) 사람들”이라는 예수님의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진리를 못 보는, 진실을 못 보는, 생명을 못 보는 눈먼 세상입니다.

내가 어리석고, 우리(한국교회)가 어리석고, 시대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본문말씀 곳곳에 복음서의 이 말씀 (어리석은 사람)과 통하는 구절들이 눈에 띕니다.

 

(행 2:40) “비뚤어진 세대”

(시 116:3) “죽음의 올가미”

(벧전 1:18) “헛된 생활방식”

 

지금은 이런 헛된 미망에서 구원(해방) 되어야 하는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입니다.

 

 

[사도행전 2:14a, 36-41]

오늘도 우리의 주인공 베드로의 힘찬 설교가 이어집니다.

특히 “회개하십시오”(38) 이 말씀의 느낌이 매우 강렬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의 심령을 두들겨 깨우는 선포입니다.

베드로의 이 첫 설교 알맹이는 바로 우리 예수님 첫 선포의 알맹이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 4:17)

 

성령의 능력을 입고(누가 4:14) 선포하신 것입니다.

역시 수제자답게 베드로 역시 성령을 받자마자 이렇게 담대하게 회개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교회가 세워집니다.(41)

천국을 쏙 빼닮은 교회입니다.(행전 2:42-47 - 다음 주 본문)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용서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이들의 모임입니다.(38)

이런 교회가 이 “비뚤어진 세대”의 구원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월호와 같이 구석구석 온통 비뚤어진 세대의 구조선, 구원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시편 116:1-4, 12-19]

오늘 시편본문은 유달리 세월호 참사를 기억나게 합니다.

시 116편의 주제는 ‘죽음에서 구하시는 주님께 감사’입니다.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매고, 스올의 고통이 나를 엄습하여서, 고난과 고통이 덮쳐 올 때에,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간구합니다. 이 목숨을 구하여 주십시오.“ 하였습니다.(3-4절)

 

초월자의 마음에 개미처럼 작은 인생의 죽음이 무슨 관심거리가 될까 싶지만 우리 주님 마음은 그게 아니십니다.

특히 15절을 묵상하면서, 이번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성도들의 죽음조차도 주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신다.(15)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4절을 읽으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간절하고 처절한 부르짖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문득 죽어가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애타게 부르시며 부둥켜안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이렇게 함께 하시니, 적어도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믿으며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십자가 위에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던 외아들을 바라보시는 마음과 다르지 않으시리라 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요?

아무튼 지금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숯처럼 새까맣게 타버리셨을 것만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1;17-23]

오늘 서신서본문의 주인공 사도 베드로는 앞서 사도행전본문에서 힘차게 외친 첫 설교의 주제를 계속 붙잡고 있습니다.

회개한 사람, 즉 ‘헛된 생활방식’에서 해방된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핍박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려 애쓰는 교회를 향한 권면입니다.

이 권면의 알맹이, 즉 교회다운 삶이란 바로 사랑입니다.

 

교회가 속죄 된 것은 돈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얻은 새 삶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죄 용서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이름 예수의 알맹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법입니다.

돈으로 세례 받은 사람은 온 인생을 돈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사랑)으로 세례 받은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으로 관계를 맺어간다는 것입니다.(22)

 

세상에 이런 인생은 귀합니다.

어떻게 이런 희귀한 인생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까?

그건 바로 주님의 보혈(19), 그리고 주님의 말씀입니다.(23)

세상은 이런 순결하고 뜨거운 ‘사랑’을 부러워하는 한편 어리석게도 봅니다.

 

그러나 정작 어리석은 것은,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랑으로 살지 못하고 돈으로 살려고 버둥거리는 인생일 것입니다.

‘사랑’으로 속죄 받은 사람이 다시 ‘헛된 생활방식’으로 되돌아간다니 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밑바닥에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구석구석 즐비합니다.

 

그건 특정 기업에 속해 있는 인물들, 그들의 종교색, 해경 관계자들, 정부 관료들, 정치인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참으로 지금 우리는 모두 다 회개하고 눈떠야 할 때입니다.

돈이 아니라 생명을 먼저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돈이 아니라 생명이, 사랑이 먼저라는 것을 대한민국의 심장에, 교회의 심장에, 내 심장에 새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24:13-35]

오늘 사도행전본문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성령으로 세워지는 교회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신서본문에서, 주님의 피와 주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다져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에서 우리는 낙심한 제자들이 주님 말씀으로 새 힘을 얻는 것을 봅니다.

계속 주님을 못 알아보다가 주님 말씀으로 점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32)

그리고 또 한 가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서 나눠주시는 순간 눈을 뜨게 됩니다.(30-31)

그런데 특기할 것은,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해서 알렸다는 사실입니다.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한 것을 강조해서 마지막에 기록한 것이 눈에 띕니다.

 

외동딸 심청이를 만난 심봉사가 “아버지”하는 그 ‘익숙한 말’을 듣는 순간 눈이 활짝 열리듯,

예수님 만난 두 제자 역시 그 익숙한 축사와 빵을 나누는 행위 속에서 눈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좀 더 비약하자면,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라시며 떡을 떼어주시던 그 식사자리를 기억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이(25) 눈을 뜨고 슬기로워지고 용감해지는 과정에 ‘주님 말씀’과 ‘주님의 밥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어리석은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친절하게 말씀을 풀어주시는 예수님 모습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신 것입니다.(27)

지금 우리가 눈멀고, 어리석은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어쩌면 기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차근차근 통째로 새로 가르쳐주실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자세, 말씀 앞에 경청하는 자세만 갖춘다면, 우리는 차차 눈이 열리고 슬기로워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수제자 베드로가 고스란히 따라하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성경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예수님처럼... 오늘 베드로 역시...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행전 2:40)

그는 이렇게 한참을 더 말하며 그들에게 간절히 권했다. “이 병들고 무감각한 문화에서 빠져나오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을 때에 어서 나오십시오.” (유진피터슨 역 『메시지』사도행전 2:40)

 

 

[나머지]

* 이번 주 매일성서일과 독경하다가 다시 세월호 바다를 묵상한 까닭은...

‘매일성서일과’에 화요일 수요일 연속해서 요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하여 두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냈다.(요나 1:17)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주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2. 아뢰었다.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님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 한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쳤더니, 주님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10. 주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니, 물고기가 요나를 뭍에다가 뱉어 냈다.(요나 2장)

 

역시 ‘매일성서일과’ 월, 화, 수 3일간 시편본문이었던 114편의 바다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3. 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쳤고, 요단강은 뒤로 물러났으며,

5. 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쳤느냐? 요단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

 

말씀은 이렇게 매일매일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 어린이 주일을 맞았는데, 마침 ‘어리석은 사람’을 제목으로 잡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어리다’가 어리석다는 뜻이었습니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원래 15세기까지는 ‘어리다’는 어리석다[우(愚)]는 의미만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유(어릴 유 幼)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는 ‘젊다’입니다)

16세기부터 나이 어리다는 뜻으로도 조금씩 함께 쓰기 시작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愚)와 유(幼)가 서로 뜻이 통하기 때문이겠지요.

18세기부터 우(愚)는 ‘어리석다’라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어리다’(작다)와 ‘석다’(적다)를 합한 신조어입니다.

 

오늘날의 뜻을 가진 ‘어린이’란 단어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쓰인 것은 17세기부터였습니다.

 

얼운은 어린이 어엿비 너기디 아니며 <경민편언해(1658년)>

늙은이와 어린이와 샹 사은 다 뒤 잇게 고 <삼역총해(1703년)>

늙은 이 공경고 어린이 랑며 <경신록언석(1796년)>

 

(* 국립국어원. ‘새 국어 소식’ 홍윤표. 참조하고 일부 퍼옴)

 

오늘 복음서본문의 주인공은 어리석은 덕분에 예수님께 말씀을 통째로 배운 행운아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26.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눅 24:25-27)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모두 점점 슬기롭고 너그럽게 자라기를, 밝은 눈, 환한 마음으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어른들부터 스스로 어린이(어리석은 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먼저 말씀경청의 자세를 가다듬어야할 것입니다.

 

 

 

[말씀동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함소빈 지음. 섬돌향린교회학교 4학년. 『성실문화』 78호)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다 / 그들은 예수를 보았다. 하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다 / 그들은 예수께서 말을 걸어도 알아보지 못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다 / 그들은 예수와 밥을 먹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다 / 그들은 예수의 행동을 보았다 / 그들은 그동안 예수를 받들고 좋아하고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던 두 제자가 있었다 / 그들은 예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 세상 어떤 일보다 행복해하였다 / 그 모습을 보고 예수는 흐뭇이 웃으셨다.

 

 

[말씀그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김예은 작품. 섬돌향린교회학교 3학년. 『성실문화』 78호)

 

 

 

[말씀시조] (누가 24:13-35)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무디고 어리석은 엠마오 제자들이

말씀에 심장뛰고 애찬에 눈열리네

홀연히 사라진 주여 가신 듯이 오소서

 

 

 

[말씀한시] 낙담하고 귀향할 때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8호)

熱熱門徒從耶穌 (열심문도종야소)  주를 따르던 열렬한 문도가

救主死後落膽歸 (구주사후낙담귀)  예수님이 죽으신 후 낙담하여 귀향할 때

路中異人同伴去 (노중이인동반거)  길에서 이인(異人)이 동행하여 같이 길을 갔는데

不知救主心魂溫 (부지야소심열온)  구주이심 몰랐지만 가슴이 따뜻했다

故鄕草屋迎接主 (고향빈가영접주)  고향 집 초가집에 그 분을 모시고

與主食事祝福餠 (여주식사축복병)  식사를 대접할 때 빵을 축복하셨다

晩覺開眼識救主 (만각개안식구주)  뒤늦게야 영안 열려 구주신지 깨닫고

確信歡喜主復生 (확신환희주부생)  부활의 주 확신하고 기뻐 뛰었다.

 

 

 

[말씀서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8호)

 

 

 

 

 

[말씀노래]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78호)

1.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길가며 두런두런 얘기합니다 /

예수부활 소식에 당황하여서 / 이러쿵 저러쿵 토론하네요

2.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예수께서 슬며서 동행합니다 /

예수부활 소식에 당황하여서 / 부활예수 만나도 못알아봐요

3.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동행하는 예수님께 얘기합니다 /

예수부활 소식에 당황하여서 / 예수님께 예수님을 가르치네요

4.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 부활소식 어처구니 없어합니다 /

시치미를 뚝 떼신 예수님께서 / 성경의 알맹이를 들려주셔요

5. 예수님의 말씀이 뜨겁습니다 / 예수님의 축복이 뜨겁습니다 /

엠마오 우물물이 뜨거워지고 / 제자들의 눈과 마음 밝아지네요

[* ‘엠마오’라는 이름에 ‘따뜻한 샘’(온천溫泉)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시편송서] (이정훈 다듬음. 천자문독송-자장가 가락으로. 『성실문화』 78호)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내-가) 지키리로다-∼

 

[다함께]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 (지키리 지키리)로다- 할렐∼루∼∥

 

 

 

[말씀동화] 세월교회 어린이 잔치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내일이 바로 어린이 날이거든요.

어린이날의 주인공은 물론 우리 어린이들이죠.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 그런데 오늘 어린이주일 예배에 우리보다 언니 오빠들이 더 많이 왔네?

아마 고등부 언니 오빠들이 우리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우르르 몰려왔나 봐요.

아니나 다를까?

언니 오빠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네요.

언니 오빠들이 신나는 어린이주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왕왕왕왕 나는 왕자다 하늘나라의 나는 왕자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 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내 앞길 가로막는 자 모두 다 물리치리라

이 세상을 앞장서가는 나는 왕 나는 왕 나는 왕자다

 

공공공공 나는 공주다 하늘나라의 나는 공주다

내가 비록 어릴지라도 나는 공 나는 공 나는 공주다

내 앞길 가로막는 자 모두 다 물리치리라

이 세상을 앞장서가는 나는 공 나는 공 나는 공주다

 

아이돌 뺨치는 능수능란한 춤부터 엉거주춤 막춤까지 뒤죽박죽이지만, 그래도 정말 분위기 하나는 끝내주는걸요?

떠들썩한 춤 잔치를 마치자 이번에는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네요.

 

 

예수님 제자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 정도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어요.

어? 그런데 왜 엠마오 마을로 가는 걸까?

예수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사람들이라던데,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제자들도 있었나보죠?

집이 가까운 제자들부터 하나하나 해산하는 중이었나?

아무튼 제자들 대부분은 머나먼 갈릴리까지 가기 힘들어서 아직 꽁꽁 숨어 있던 중이었나 봐요.

 

의리 없이 혼자 내뺄 수 없어서 둘이서 가나?

에이∼ 혼자나 둘이나 거기서 거기지 뭐!

철석(鐵石)같이 믿고 따르던 우리 대장 예수님이 맥없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었죠.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냥 열두 대문 닫아걸고 꽁꽁 숨어 있거나, 아니면 가까운 고향으로 부지런히 달아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한 청년이 두 제자를 깜짝 놀라게 하네요?

처음에는 어느 틈엔가 스르르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더니만, 연이어서 또 한 번 놀라게 하네?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도 예수님 돌아가신 사건을 듣도보도 못했다고?

이런 듣도보도 못한 무관심증 환자가 다 있나!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 하나 모르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어리버리한 사람은 난생처음이었거든요.

우린 이런 사람을 가리켜 철없다, 철모른다, 어리석다고 하죠!

 

그런데 이 사람이 제자들을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만드네?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해 아주아주 환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직계제자인 우리 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네?

그것도 성경말씀 구석구석을 줄줄 외워가면서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실 것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더러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구박까지?

 

‘우리가 아까 속으로 어리석다고 한 걸 눈치 채고 복수하는 건가? 그나저나 뭐지? 이게 도대체 뭐지? 예수님보다 더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이 다 있다니?’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 있죠?

그 청년의 신비로운 말씀풀이에 넋을 놓고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다 와버린 거예요.

제자들은 얼른 그 신비로운 청년을 붙듭니다.

 

“여보세요, 날도 다 저물었는데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쉬어 가시죠, 네?”

 

제자들의 가슴이 아까부터 두근두근 거리고 있습니다.

손발을 씻고 저녁 밥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손님이 떡을 집어 드네요?

속으론 깜짝 놀랐지만, 집주인은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 이 낯선 청년이 자기들의 리더, 선생님처럼 여겨졌거든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그 다음 일이에요.

 

‘이게 벌써 네 번짼가? 아니 다섯 번짼가? 이 낯선 청년이 우리를 계속해서 깜짝 놀라게 하네?’

 

밥상에서 떡을 들어 축복기도 하고 곧 이어서 떡을 떼어 우리에게 나눠주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거예요.

 

‘아니 세상에! 이 청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셨네?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시라니! 아니 돌아가신 건 분명한데, 그럼 다시 살아나신 거 아냐? 아까 성경을 풀어주실 때 해주신 말씀처럼,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버리 얼떨떨하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씨구?

아니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지?

꿈에도 그리던 우리 예수님을 드디어 뵈었는데,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셨네?

일곱 번이나 제자들을 놀라게 하시면서 예수님이 사라지신 거예요.

 

제자들은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컴컴한 밤이 다 되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죠.

정신없이 삼십 리를 달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리고 동료 제자들을 만나 아까 겪은 이야기를 합니다.

삼십 리 길에서 우리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던 성경말씀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그리고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주실 때 우리 눈이 번쩍 열리게 되었던 그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마구마구 들려줍니다.

 

 

오늘 우리 목사님 말씀이 정말 신나죠?

제자들이 일곱 번씩이나 깜짝 놀라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스워요.

그런데 목사님이 이 대목에서 중요한 말씀을 주시네요.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다면 이렇게 깜짝 놀라게 될 거라고!

깜짝 놀라지도 않고 무덤덤한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그러니까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깜짝 놀라지도 않고 가슴이 뜨거워지지도 않는 건 부활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게 아니라고요!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목사님 설교말씀 들으면서 점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지네요.

어? 그런데 언니 오빠들도 가슴이 뜨거워지나?

갑자기 하나 둘 일어나더니 예배당 가운데 둥그런 무대를 만드네요.

아까처럼 춤판을 만들려나?

아니, 가만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언제 준비했는지 이것저것 무대 소품들을 가져다 놓는 걸 보니 아마 연극무대를 만드는 것 같아요.

 

예쁜 언니 하나가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부활절 셋째 주일이면서 어린이 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누구보다 사랑하시던 우리 어린이들의 날이네요. 부활 예수님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서 언니오빠들이 축하공연하는 거 재미있게 보세요! 오늘 공연의 주제는, 부활예수님을 못 알아보다가 마침내 눈을 뜨게 된 엠마오제자들처럼 드라마틱하게 눈을 뜨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공연은 뮤지컬이랑 마당극을 섞은 것 같은 재미난 무대였어요.

뮤지컬이랑 마당극 형식을 섞은 것 뿐 아니라 내용도 많이 섞었네요?

심청전이랑 춘향전을 섞은 것 같았어요.

옆에 있는 고등학생 오빠가 얘기해주네요.

 

심청이는 열다섯 살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가 살아나서 아빠 눈을 뜨게 해줬고

춘향이는 열여섯 살에 이도령을 만나 사랑하다가 세월이 몇 년 흘러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데요.

중학생 나이에서 고등학생 나이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라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 가장 좋아하는 옛날이야기라네요?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아빠를 부르는 딸 목소리를 듣자 심청이 아빠가 눈을 번쩍 뜹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떡을 들어 축복기도 하시고 떼어 나눠주시자 눈이 번쩍 열린 제자들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모두 신나게 손뼉을 쳤어요.

꽉 막혔던 우리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고 신바람이 났거든요.

더 신나는 건, 심청이 아빠 눈만 열린 게 아니라 세상 모든 눈먼 사람과 눈먼 짐승들의 눈까지 열리게 된 사실이죠.

 

곧이어 옥에 갇힌 춘향이가 풀려나는 이야기마당이 펼쳐졌어요.

착한 동생 심청이가 바다에 빠져 죽은 뒤에, 예쁜 언니 춘향이가 눈먼 아빠를 위해 기생이 되었다가 못된 변사또 때문에 옥에 갇혀 고통당하고 있었는데, 세상이 갑자기 180도 변한 거예요.

아마 세상은 이렇게 슬픈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연달아서 터지기도 하나 봐요.

그런데, 세상에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슬픔이 큰 기쁨으로 바뀌는 일도 이렇게 연달아서 벌어질 수 있나 봐요.

 

가만가만, 조용조용, 잘 들어보세요.

춘향이 남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변장을 하고 들어오네요.

자기만 부자 되고 맛있는 거 혼자만 먹으려고 가난한 백성들 못살게 구는 대표적인 탐관오리 변사또의 생일잔치 자리에요.

선비들이 쓰는 갓은 썼지만 거의 노숙인 차림을 한 이도령이, 잔치손님들 사이에서 거의 왕따 당하고 있네요?

역시 세상은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네요.

하나님을 닮은 교회는 절대 저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했어요.

 

오! 역시 이도령이 가만있지 않는군요.

멋진 한시를 즉석에서 한 수 지어 붓으로 쓱쓱 써서 변사또에게 주니까 그 시를 읽는 변사또가 부들부들 떠네요?

도대체 뭐라고 지은 시지?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에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금동이에 담긴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물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아라

 

드디어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함성과 함께 탐관오리들이 흠씬 두들겨 맞고 붉은 색 오랏줄에 꽁꽁 묶여버렸어요.

이도령은 어느새 구름같이 멋진 옷을 갈아입고 어사또가 되었네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이도령을 춘향이가 못 알아보는 장면이 참 재미있었어요.

이도령이 끝까지 자신을 가리다가 마침내 춘향이에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헤어질 때 정표로 빼주었던 춘향이의 반지를 건네주니 춘향이 눈이 번쩍 뜨입니다.

 

우린 모두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심청이가 아빠 만나는 대목, 춘향이가 남친 만나는 대목에서 모두모두 눈물을 주르르 흘렸어요.

그리고 눈물 닦을 겨를도 없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어요.

 

목사님께서 일어서셔서 마무리 말씀을 하시네요.

 

“사랑하는 여러분, 세월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오늘 부활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심청이가 꿈에 그리던 아빠를 만나고, 우리 춘향이가 정말 꿈에 그리던 보이프렌드를 만났듯이, 그리고 엠마오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듯이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돌아보면 심청이 아빠가 딸을 못 알아보듯이, 춘향이가 남친을 못 알아보듯이, 엠마오 제자들이 부활예수님 못 알아보듯이, 사실 우리들도 부활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심청이 아빠처럼, 춘향이처럼, 엠마오 제자들처럼 두 눈 번쩍 뜨고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을 똑바로 보며 신나게 신앙생활 합시다!”

 

우린 모두 한 목소리로 “아멘!” 하고 외쳤어요.

목사님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우리 세월교회 어린이 여러분과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복 받은 사람들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전도 받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고, 세상에서 가장 빨리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사람들이니까요! 베드로후서 3:8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아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세월호와 함께 물에 빠져 죽어간 시간이 몇 분 몇 초도 안 되는 순식간이었다고 생각하겠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주간 참회수요일에 우리는 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곧 숨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부활절을 맞았고 이렇게 부활절 셋째 주일 어린이주일도 맞습니다. 지금 우리 세월교회는 부활예수님을 찬양하고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곧 우리 주님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평화로운 안식을 취할 것입니다. 우리 주 부활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우리는 다시 깨어 일어나 얼싸안고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마치 하룻밤 푹 잘 자고 일어난 것 같을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이제 우리 모두 주님 품에서 편히 쉽시다. 우리 부모형제들이 더 이상 우리 때문에 슬퍼하지 말도록 기도합시다.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과 욕심꾸러기 재벌들 그리고 돈밖에 모르는 무책임한 세상은 우리 어사또께서 처리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형제와 세상 사람들 모두 눈을 뜰 수 있도록, 이 귀한 생명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돈에 눈먼 세상이 모두 눈 뜰 수 있도록, 그래서 마침내 부활예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뭐지? 목사님의 이 말씀은 도대체 뭐지?

그럼 아까 재미있는 춤판이랑 마당극을 벌인 언니 오빠들은 또 뭐지?

숨진 단원고등학교 언니오빠들이었나?

그럼 난, 난 뭐지?

엄마, 엄마, 아빠, 엄마야 ∼

 

급하게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다가 번쩍 눈을 떴어요.

주루룩 식은땀이 흘러내리네요.

엠마오 제자들이 일곱 번씩이나 깜짝 놀란 것 다 합친 것만큼이나 깜짝 놀란 거죠.

 

꿈이었네요.

어린이 주일 새벽에 세월호 꿈을 꾼 거에요.

세상에... 세월호에 세월교회라니...!

뭐 이런 꿈이 다 있지?

꿈이지만 정말 생시처럼 생생했어요.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서울 이모랑 전화통화중이신가 봐요.

요새 우리 이모는 매일 시위하러 다니신대요.

“가만히 있으라”는 손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한다네요?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이랑, 그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이 주로 시위를 하신대요.

아마 우리 엄마한테도 같이 나가자고 권하는 전화인 것 같아요.

 

세상이 온통 꿈같아요.

너무너무 슬픈 일들이 꿈처럼 흘러가고 있어요.

우리 이모 말씀이, 이런 슬픔은 어서어서 씻어버려야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대요.

그래야 이런 슬픔이 다시 생기지 않는대요.

그래서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 대요.

 

문득 꿈속에서 만났던 우리 언니오빠들 얼굴이 떠오르네요.

신나게 춤추며 나를 즐겁게 해주던 고마운 얼굴들...

간밤 세월교회 꿈을 생각하면 눈시울도 더워지고, 점점 가슴이 뜨거워져요.

어쩌면 그 언니오빠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부활예수님을 만난 엠마오 제자들처럼요!

 

[이정훈 지음. 2014년 5월 4일 주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