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성서일과 4본문]
(사도행전 17:22-31)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23.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24.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25.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30.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시편 66:8-20)
8. 백성아,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크게 울려 퍼지게 하여라.
9.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셔서,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게 살펴 주신다.
10.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셔서, 은을 달구어 정련하듯 우리를 연단하셨습니다.
11. 우리를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우시고,
12.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의 머리를 짓밟게 하시니, 우리가 불 속으로, 우리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마침내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13. 내가 번제를 드리러 주님의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께 서원제를 드립니다.
14. 이 서원은, 내가 고난받고 있을 때에, 이 입술을 열어서, 이 입으로 주님께 아뢴 것입니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번제물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숫염소와 함께 수소를 드립니다.(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아, 오너라. 그가 나에게 하신 일을 증언할 터이니, 다 와서 들어라.
17. 나는 주님께 도와 달라고 내 입으로 부르짖었다. 내 혀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18. 내가 마음속으로 악한 생각을 품었더라면,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19.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나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20.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서 거두지 않으신 하나님, 찬양받으십시오.
(베드로전서 3:13-22)
13. 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19. 그는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20. 그 영들은, 옛적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하지 않던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21.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22.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5-21)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22. 가룟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려고 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2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 24.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는 동안 내내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라는 그림이 꿈틀거립니다.
그 관계도(關係圖)를 4본문은 각각 다양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창조주와 심판자로, 시편은 연단하고 구원하신 분으로, 서신서는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신 분으로, 복음서는 나와 교통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4본문 모두를 관통하는 알맹이, 즉 4개 관계도를 하나로 완성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도행전 17:22-31]
①하나님은 만유(萬有)의 창조주시다.(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시지 않는다. 24절)
(참조 ;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 48.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49.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②하나님은 모두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다.(사람의 손으로 섬김 받지 않으신다. 25절)
③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들어지는 분이 아니다. 27, 29절)
지난 주 본문에서, 스데반의 유언(설교)을 들었던 사울(바울)이, 오늘 마치 그 설교를 요약해서 증거하는듯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주님에 대해 철저히 오해하는 유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려주려 애쓰던 바로 스데반의 그 설교 말입니다!
오늘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23)을 통해, 이름만 모르는 게 아니라 아예 신(神)의 핵심을 모르고 있다고 이교도들을 일깨웁니다.
<알지 못하는 신>이란 곧 <신을 알지 못하는 것>!
아테네 시민 여러분은 신의 알맹이를 놓치고 있다는, 그 이름 '알지 못하는 신' 뒤에 숨어 있는 뜻을 풀어줍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아테네 사람들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주님을 환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반성해보는 것입니다.
그분의 알맹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분과 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알맹이 말입니다.
[시편 66:8-20]
그렇다면 하나님의 알맹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알맹이는 무엇일까요?
오늘 시편본문에서 찾은 그것은, 바로 사랑,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힘든 시절조차 연단의 기회로 단련시키시고 마침내 우리를 건지셔서 모든 것이 풍족한 곳으로 이끄시는 분!(11)
바로 “한결같은 사랑을 나에게서 거두지 않으신 하나님”입니다.(20)
[서신서 ; 베드로전서 3:13-22]
오늘 서신서본문과 사도행전본문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개 있습니다.
①이교도들(그리고 이교 출신 교회들)에게 주님을 바로 알게 하려 애쓰는 모습입니다.
②오늘 사도행전의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서신서의 베드로도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인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계신다는, 22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힘겹게 신앙을 지키려 애쓰는 교회들에게 힘을 주려는 뜻으로 보입니다.
(참조 ; 시편 110:1)
그런데 이 말씀은, 사실 예수님께서 목숨 걸고 하셨던 선언입니다.(누가복음 22:69)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결국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 고발당하시게 되었죠.
바로 이런 민감하고 위험천만한 선언을 스데반이 했던 것입니다.
급기야 유대인들의 가슴속에 광풍이 일었고 결국 스데반은 순교하고 맙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묘사하는 것은 이만큼 엄중하고 무거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이 성부성자의 관계도(關係圖)를 매우 밝고 힘차게 선언합니다.
뜨거운 십자가 사랑과 씩씩한 부활신앙으로 외치는 선언입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나 아테네의 이교도들의 신관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추측컨대 신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구석이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그러한 민간신앙(신관)이 교회에 들어와, 심지어 하나님을 나의 수호신(또는 지킴이-문지기) 정도로 여기기까지 하는 경우를 종종 느낍니다.
한마디로 경외심이 없을 때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거기에는 성부와 성자 사이, 그분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십자가 보혈 관계, 그 뜨거운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복음서 ; 요한복음 14:15-21]
오늘 복음서 말씀은 지난주부터 이어지고 있는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는 주로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그런데 오늘 말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씀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7)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20)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뒤에는 아예 그분들이 우리에게 와서 함께 사신다고 까지 표현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는 관계!
세상에 이런 관계가 어디 또 있을까요?
이런 신묘막측(神妙莫測)한 관계를 ‘사랑’ 말고 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리]
오늘 4본문의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십자가 사랑이 맺어주신 관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본문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매우 알뜰하게 마무르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흔합니다.
자칫 추상화해버리고 휘발되기 십상인 사랑을 듬직한 장독에 단단히 담그십니다.
관념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주 생생한 사랑으로 그 향과 맛을, 그 영양가를 잃지 않게 하시려는 듯 말입니다.
여기서 그 장독이란 바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15)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21)
여기서 “내 계명”이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을, 그 관계를 생활화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분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關係圖)가 나날이 생생해지도록 사는 것입니다.
그 그림에서 천국의 향기가 진동하게 하는 삶 말입니다.
오늘 서신서본문에서 베드로는 이를 가리켜 “선한 일”, “선한 행실”, “선한 양심”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내 생활 가운데, 한국교회 가운데 이런 사랑, 이런 선한 양심이 발현되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건 거기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무늬만 교회라는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한다. 너희가 듣고 있는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한복음 14:24)
[나머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한 달하고 열흘이 지났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이젠 좀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오늘도 말씀이 자꾸만 기억나게 하십니다.
오늘 시편에서 물에 빠진 우리를 건져주시는 은혜를 노래하는가 싶더니만(시 66:12), 급기야 서신서본문에서 노아의 방주를 말씀하십니다.(벧전 3:20)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 오늘 금요일(2014년 5월 23일 금요일) 매일성서일과 본문을 읽던 중 충격을 받았습니다.
보통 ‘매일성서일과’는 하루에 3본문이 주어집니다.
금요일 본문은 시편 66:8-20, 창세기 7장, 그리고 사도행전 27:13-38절이었습니다.
시편을 읽으며 물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느끼는가 싶더니,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가 통째로 나옵니다.
자그마치 150일 동안이나 세상이 물에 잠깁니다.
방주에 탄 여덟 명을 제외한 온 인류 모든 사람이 다 죽습니다.
배가 그 여덟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 이어지는 사도행전 말씀에서 말문이 막히고 생각의 길이 막혀버립니다.
21. "여러분, 여러분은 내 말을 듣고, 크레타에서 출항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이런 재난과 손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30. 그런데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려고,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하면서 바다에 거룻배를 풀어 내렸다.
31. 바울은 백부장과 병사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이 사람들이 배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면, 당신들은 무사할 수 없습니다."
32. 그러자 병사들이 거룻배의 밧줄을 끊어서 거룻배를 떨어뜨렸다.
33. 날이 새어 갈 때에,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34.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35.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빵을 들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떼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36.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용기를 얻어서 음식을 먹었다.
37. 배에 탄 우리의 수는 모두 이백일흔여섯 명이었다.
38. 사람들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 남은 식량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였다...
41. 그런데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끼어들어서, 배가 모래톱에 걸렸다. 이물은 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졌다.
42. 병사들은 죄수들이 혹시 헤엄쳐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여 버리려고 계획하였다.
43.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을 구하려고 병사들의 의도를 막고, 헤엄 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뛰어내려서, 뭍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였다.
44.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뭍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두 뭍으로 올라와 구원을 받게 되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노아의 방주는 깨지지 않았고 여덟 명을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배는 비록 깨졌지만 276명 전원을 살립니다.
세월호의 선원들처럼 도망하려는 선원들, 그들을 못 도망가게 막는 순발력도 발휘합니다.
위기감에 휩싸인 넋 나간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이며 희망과 위로, 힘을 주는 지혜와 자비심도 발휘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구원의 방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한국교회에는 바울과 같은 구원의 일꾼이 있습니까?
세월호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선주가 구원파와 관계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 ‘구원’이라는 이름말입니다.
묘하게도 그 이름과 정반대의 길로 치닫는 저들 사는 모습에서, 혹시 나를 발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안 느껴집니까?
적어도, 세월호 이후에는 변해야 합니다.
세월호 이전까지는 몰라도 지금은 변해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 이전까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 관계를 오해했을지라도,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말입니다.
세례받은 인생이라면, 최소한의 “선한양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재산을 다 잃고 배는 깨지더라도 사람만은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몸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구원파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나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행 17:30)
[말씀동시] 예수님의 말씀 (김민서 지음. 명암교회학교 3학년. 『성실문화』 78호)
나는 나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많이 받고
나도 나도 예수님을 많이 많이 사랑하지
예수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나도 나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은!
내 머리 속에 저장해 놔야지!
[말씀시조] 요한복음 14:15-21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 78호)
너희 날 사랑하면 내 계명 지키리니
보혜사 진리의 영 너희 안에 계시리라
나 너희 버리지 않고 다시 오리 반드시
[말씀한시]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 78호)
愛我卽守誡(애아즉수계)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爾在我(이재아)吾在子(오재자) 그리하면,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네 안에 거하리라
不舍若孤兒(불사약고아) 너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며
主顯示天父于我(주현시천부우아) 하늘 아버지를 내게 보이실 것이니라.
[말씀서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 78호)
[말씀노래] 너희 나를 사랑하면 (이정훈 작사, 이석훈 작곡. 『성실문화』 78호)
1. 너희나를 사랑하면 내계명을 지키리라 / 내아버지께 구하리니 다른보혜사 보내시리 /
보혜사는 너희와 영원토록 동거하리 / 그는 진리의영 너희는 그를알리
2. 그는 진리의영 너희안에 계시는분 / 나는 아버지안에 너희는 내안에 /
너희위해 다시올때 너희안에 나있으리 / 내계명을 지키는자 그는나를 사랑하리
3. 내계명을 지키는자 나를사랑 하는자여 / 내아버지 크신사랑 성부사랑 받으리라 /
그리고 나도또한 그사람을 사랑하여 /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로다
[시편송서] 시 66:8-20 (이정훈 지음. 천자문가락 또는 전래 자장가가락으로 다듬음, 『성실문화』 78호)
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13. 내--가-- 번제-물을-,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 (높-이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귀-를) 기울이셨도-다--∼
[다함께]
20. 하--나--님--을--, 찬-송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말씀동화] 예수님의 사랑가
“두구두구두구∼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즐거운 퀴즈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문제, 형이랑 동생이랑 싸웠는데 동생편만 드는 것을 뭐라 할까? 아는 사람?”
‘형편없는 세상’
“오∼ 역시! 오늘도 우리 신동이 시작부터 짱인데.”
“두 번째 문제, 미소의 반대말은?”
“당기소”
아이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이번에도 신동이었거든요.
신동이는 아마 아이큐가 150은 넘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문제, 이건 좀 어려울 거다. 콩쥐의 깨진 독을 수리해준 형제들은?”
“독수리 오형제”
선생님의 퀴즈문제가 떨어지지 마자, 신동이의 입에서 자판기처럼 답이 튀어나옵니다.
우린 모두 열렬하게 박수를 칩니다.
신동이의 넌센스 퀴즈실력은 우리 반에서 단연 최고죠.
누가 점집아이 아니랄까봐, 거의 족집게 수준입니다.
우리 반 집중력 향상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퀴즈대회입니다.
1등하면 상품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익한 퀴즈문제를 만들어 오는 사람에게도 상을 주십니다.
“혹시, 오늘 퀴즈문제 만들어온 사람 있나?”
“저요∼!”
오늘도 진구(眞求)가 손을 번쩍 듭니다.
“에이, 너 또 성경퀴즈 아니야?”
아이들이 한마디씩 하며 투덜거립니다.
진구는 교회집 아이라 성경퀴즈 문제를 주로 가져오거든요.
그래서 퀴즈대회 때 진구가 내는 문제는 별로 인기가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진구는 용감한 어린이입니다.
한번 씩∼ 웃고는 칠판 앞으로 썩 나가서 문제를 내기 시작합니다.
“오늘 문제는 쉬우니까 잘 풀어보세요. 노아의 홍수 때 방주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몇 사람일까요?”
다들 머리를 갸웃갸웃 합니다.
선생님은 빙글빙글 웃으며 서 계십니다.
그 때 영숙이가 손을 번쩍 들며 외칩니다.
“여덟 명!”
모두들 진구 얼굴을 바라봅니다.
“딩동댕∼ 정답!”
영숙이는 교회학교 어린이가 아닌데도 척척박사입니다.
넌센스 퀴즈에는 약해도 상식퀴즈의 달인이거든요.
“이번엔 약간 어려운 문젠데...”
진구가 뜸을 들이네요.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이건 성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신분이 누군지 아는 사람?”
모두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네요?
진구도 좀 난감한지 선생님 얼굴을 한번 흘깃 훔쳐본 뒤에 다시 한마디 더합니다.
“굉장히 쉬운 문젠데.. 그럼 힌트,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여기서 ‘나’는 성경책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사랑이 많은 분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이 많은 분일걸요?”
역시 영숙이가 손을 번쩍 들고 외칩니다.
“예수님!”
“딩동댕∼ 정답!”
진구가 두 문제를 내고는 땀을 닦으며 자리로 돌아옵니다.
교회 안 다니는 아이들은 오늘도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며 투덜거립니다.
선생님께서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오늘 진구 문제는 어렵지 않았지? 노아의 방주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얘기고, 거기 노아 부부랑 노아의 세 아들 부부가 들어갔으니까 모두 여덟명이라는 거, 아! 그러고 보니까 노아의 아들이 세 명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구나. 진구 덕분에 우리 반 상식이 오늘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예수님말씀 문제는 좀 쉽지 않았지? 그래도 진구가 힌트를 많이 줘서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였었지?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짧은 말씀 가운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려 네 번이나 들어있네?”
그 때 진구가 불쑥 한마디 끼어듭니다.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요,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가’래요. ‘릴레이 사랑가!’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진구는 아예 이 말씀을 줄줄 외우고 있었습니다.
역시 교회 성경말씀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는 ‘사랑’인가 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자 그럼, 퀴즈문제 준비해 온 사람 더 있나? 오늘 마지막으로 문제 낼 사람?”
모두 조용하네요?
선생님께서 교실을 한 바퀴 빙글 둘러보십니다.
그 때 저 구석자리에 있는 귀동이가 눈에 띕니다.
귀동이 표정이 잔뜩 긴장한 게 무언가 준비해온 것처럼 보이는걸요?
귀동이는 얼마 전에 전학 온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직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귀동이는 당집아이거든요.
무당집 아이, 귀동이 엄마는 무당입니다.
우리 반엔 점집아이 신동이, 교회집 아이 진구, 절집아이 성철이도 있는데, 게다가 당집아이 귀동이까지 생긴 겁니다.
다들 우리 반은 종교박물관 같다고 한마디씩 하며 웃었죠.
그런데 신동이도 성철이도 당집아이 귀동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당집아이랑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시나 봅니다.
그러나 딱 하나 진구만큼은 당집아이 귀동이랑 가까이 지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집에서 엄마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주시는 말씀 때문입니다.
“왕따 당하는 아이들 친구가 되어 주렴, 그게 예수님의 계명, 예수님 마음이란다.”
선생님께서 귀동이 눈치를 살피시더니 말씀하십니다.
“혹시 귀동이 퀴즈문제 준비해온 것 있느냐?”
“... ...”
귀동이가 선생님 눈을 피해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딴청을 하네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귀동이를 부르십니다.
“귀동아, 괜찮아. 아무 문제나 준비한 게 있으면 한번 나와 봐. 멋진 문제 아니어도 괜찮아. 어떤 문제든지 우리 반을 위해 유익한 거니까 어서 나오렴.”
귀동이 얼굴이 홍시처럼 빨개졌네요?
귀밑까지 발그레해진 귀동이가 그래도 못이기는 척하며 앞으로 나옵니다.
“사실 저는 준비해온 문제는 없는데요, 진구가 내는 퀴즈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어서요.”
“옳지 좋아, 그래, 그런 문제도 괜찮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는 우리 머릿속에서 연상작용(聯想作用)을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단다. 어디 한 번 말해보렴.”
“진구가 낸 문제 중에 ‘예수님의 사랑가’라는 성경구절 때문에 떠오른 건데요, ‘사랑가’라는 민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랑가에는 종류가 많은데요. 제가 내는 이 ‘사랑가’는 남다른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두 가지 전통민요를 비빔밥처럼 잘 섞어서 만들었다는 건데요...”
아이들이 그만 까르르∼ 웃습니다.
‘데요’, ‘데요’로 이어지는 귀동이 말투도 재미있고, 홍시처럼 발그레한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귀동이는 귀여운 데가 있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더욱 발그레해졌지만, 그래도 귀동이는 용기를 내서 고개를 번쩍 들고 말을 계속합니다.
“제가 내고 싶은 문제는요, 제가 아는 이 사랑가가 어떤 민요들을 섞어서 만들었느냐 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갸우뚱거립니다.
무슨 문제가 이렇지?
선생님도 잠깐 갸우뚱거리시다가 귀동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저∼ 귀동아, 우리는 사랑가라는 노래를 잘 모르는데, 게다가 네가 내는 ‘사랑가’는 특별한 사랑가 같은데, 우리가 어떤 사랑가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순간 우리 반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며 합창을 합니다.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귀동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네요.
뭐지? 저 녀석 부끄럼쟁인 줄 알았더니 우리가 깜빡 속았잖아?
귀동이는 구성진 목소리로 사랑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1. 사 사랑을 할려면, 요 요렇게 한단다. 요내 사랑 변치 말자, 굳게 굳게 다진 사랑.
어화 둥둥 내사랑, 둥당가 둥당 가아, 덩기 둥당기 내 사랑
꽃과 나비, 너울너울 춤을 추고, 우리네 사 사랑은, 아이가이가 두둥실 좋을시고∼♬
2. 당 당신은 내 사랑, 아이 알뜰한 내 사랑, 인편단심 변치 말자, 굳게 굳게 다진 사랑.
어화 둥둥 내사랑, 둥당가 둥당 가아, 덩기 둥당기 내 사랑
너를 보면, 신바람이 절로 나고, 너를 만 만나면, 아이가이가 두둥실 좋을시고∼♬“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에 교실이 떠나갈 듯합니다.
아니 저 녀석? 귀동이는 저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요?
여기저기서 ‘앵콜’ ‘앵콜’하며 난립니다.
어느새 불그레하게 흥분하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귀동아, 너 참 노래 잘하는구나. 대단한 사랑가다. 자 그럼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까 어서 답을 맞춰보자. 귀동이 상식퀴즈문제 답을 아는 사람?”
그러자 또다시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갸우뚱거리기만 합니다.
그러자 귀동이가 입을 엽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오르는 바람에 문제로 내긴 했는데, 사실은 퀴즈문제로는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냥 제가 답을 말하겠습니다. 이 노래는 경상남도 함양에서 유래한 ‘함양양잠가’라는 민요랑, 전라남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남도잡가 중 ‘개고리타령’이라는 노래의 한 부분을 따서 비빔밥처럼 맛있고 사이좋게 섞어 만든 노래입니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오래전부터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전라도랑 경상도 민요를 합해서 ‘사랑가’라고 지은 뜻 깊은 노래라고 저희 엄마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처음엔 좀 낯선 고장, 낯선 이야기였지만, 끝까지 들어보니 무언가 뜻 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지금까지 귀동이를 은근히 멀리했던 신동이랑 성철이 마음도 조금씩 귀동이에게로 움직입니다.
하교 길에 진구가 오늘 처음 들은 귀동이의 사랑가 가락을 흥얼거려봅니다.
함께 걷던 귀동이가 빙그레 웃으며 따라 불러줍니다.
진구는 귀동이가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을 참 좋아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귀동이의 사랑가는 노랫말도 그렇고 만들어진 사연도 그렇고, 딱 예수님 마음하고 닮았기 때문입니다.
귀동이가 사랑가를 자주자주 흥얼거리며 그 노래처럼 살게 될 때, 귀동이는 얼마 안 있어 예수님을 만날 것이 분명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조차, 내 사랑을 나눠주기 시작할 때, 이렇게 예수님 마음을 닮기 시작할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시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만나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진구는 귀동이의 사랑가가 오늘 예수님 말씀의 릴레이 사랑가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말씀을 읊조립니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요한복음 14:21)
[이정훈 지음. 2014년 5월 25일 주일 아침]
(넌센스 퀴즈문제 세 개는 인터넷 상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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