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 - 함께 살기!'
코스모 카피탄육 할아버지 그림 (by Cosmo Kapitaniuk)
『코스모 할아버지의 성경그림 이야기 - 창조와 구원 』 (도서출판 성실문화. 2011) 에서 발췌
[성서일과 4본문]
(창세기 1:1-2:4a)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7.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8.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15. 또 하늘 창공에 있는 빛나는 것들은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6. 하나님이 두 큰 빛을 만드시고, 둘 가운데서 큰 빛으로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빛으로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나님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두시고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게 하시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20.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21.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2.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25. 하나님이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들에 사는 모든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2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31.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2.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샛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시편 8편)
1. 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2.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5.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8.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고린도후서 13:11-13)
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12.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마태복음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17.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8.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4본문을 묵상하는 동안 붙잡은 주제는 ‘삼위일체’입니다.
오늘이 성령강림 후 첫째주일이면서 동시에 삼위일체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4본문 가운데 신약의 두 본문에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두 본문은,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을 사람(사람의 아들)에게 맡기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주일의 구약본문으로 왜 천지창조의 본문을 선택하였을까요?
그리고 서신서본문과 복음서본문은 왜 각각 바울의 ‘작별축복’과 예수님의 ‘작별축복’을 선택한 것일까요?
구약의 분위기는 <처음(시작)>이고 신약의 분위기는 <끝>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늘 4본문을 꿰뚫는 주제는, <하나님의 마음 - 사랑 - 함께 사는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4본문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러한 새 향기를 느낍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딱딱한 껍질 안에 담긴 보드라운 햅쌀밥 같은 맛입니다.
[구약본문 ; 창세기 1:1-2:4a]
오늘 구약본문은 성경의 첫머리, 천지창조입니다.
이 긴 본문 한 구절 한 구절이 매우 소중합니다.
매우 신비롭고도 어마어마한 덩치의 이야기들이 즐비합니다.
좀 불분명한 우리말 번역들도 드문드문 눈에 띕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경공부 때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던 구절들, 주제들도 많이 보입니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지는 몰라도, 오늘 구약본문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은 이것입니다.
사람과 짐승들에게 각각 식물(植物)을 먹을거리로 주시는 하나님 마음! (29, 30절)
예언자 이사야가 꿈꾼 세상은 사자도 풀을 뜯는 세상이었습니다. (이사야 11:6, 7절)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생생하게 살아 있던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 꿈!
진화론에서부터 천민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대 강령인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 말고,
사나운 맹수들조차 약한 짐승을 해치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사는> 그런 세상,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꽃피는 세상, 그런 하나님의 뜻이 강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러운 세상 말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이사야 11:9)
오늘 본문 26-27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거기 만유(萬有)를 지으시는 주님의 꿈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특히 “우리”라는 단어가 세 차례 연이어지는 부분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중요한 동인(動因) 가운데 하나, 그건 바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어 하나님의 동역자, 그 태초에 벌이신 일의 동역자로 삼기까지 하십니다.
[성경은 그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까지 부릅니다.(누가복음 3:38, 새번역 및 모든 영어번역)]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며 당신의 형상, 당신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때가 묻은, 하나님의 피땀이 서린, 하나님의 숨결이 스민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더 깊이 소통하고 싶으셨던, 그렇게 함께하고 싶어 하시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으로부터 멀어질지라도, 끝내 우리 모습으로까지 낮추어, 기어이 오시고야 마는 그 이름 임마누엘! (마태복음 1:23)
[시편본문 ; 시편 8]
오늘 시편은, 늘 그러하듯이, 구약본문에 대한 응답찬송으로 선택되었습니다.
1절과 마지막 9절이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주님의 이름, 온 땅 가득한 그분의 위엄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위엄 가득한 이름은 두려움의 대상을 넘어 친근하기 그지없는 이름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삼위 하나님의 이름 안에 가득한 사랑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알맹이인 3-8절은 구약본문의 천지창조를 다시 기억나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천지창조의 동역자로 삼으시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이는 첫 사람 아담을 뜻하면서, 동시에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예수님을 떠올립니다.(히브리서 2:6-9)]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3),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6) 과 같은 표현처럼,
만물에 깃든 주님의 애정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주님의 애정이 가득 배인 만물을 맡기실 정도로(6-8) 그 사람과 긴밀하게 함께 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실 정도로 긴밀하게 함께하시는 그 마음 말입니다.
[서신서본문 ; 고린도후서 13:11-13]
오늘 서신서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작별축복이라 이름 붙여도 될 만합니다.
마지막 13절은 교회 예배의 마지막 작별과정(파송과 축복)에서 ‘축복기도’의 근거가 된 구절입니다.
구약본문과 비교하자면,
천지창조를 마무르시며 첫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맡기셨듯이,
기나긴 권면의 편지를 마무르며 고린도교회에 거룩하신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일이란 아담이 맡았던 바로 그 거룩한 일, 바로 ‘함께하는 삶’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11)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12)
이 모두가 교회가 서로 함께하는 삶(함께 사는 삶)입니다.
“은혜”, “사랑”, “사귐” (13)
이 역시 모두 주님과 우리가 ‘함께하는 삶’(함께 사는 삶)입니다.
11절과 13절 끝의 덕담 역시 ‘함께하는 삶’(함께 사는 삶)으로 일관합니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11)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13)
삼위일체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일체(一體)이신 것처럼 여러분이 함께하는 삶도 일체(一體)처럼 똘똘 한 몸 이루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본문 ; 마태복음 28:16-20]
오늘 복음서본문도 서신서본문과 많이 닮았습니다.
형식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습니다.
형식도 작별축복입니다.
그 내용도 함께하는 삶(함께 사는 삶)입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십니다.(19)
삼위 하나님의 이름, 일체(一體)이신 삼위 하나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저희도 일체(一體)가 되겠습니다>라는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명하십니다.(20)
그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0)
바로 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요한복음 14:23절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과 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아버지와 내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복음 14:23)
[정리]
삼위일체주일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미를 한 뼘 더 넓혀 봅니다.
오늘 4본문을 바탕으로, 삼위일체 교리의 알맹이 가운데,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읽었습니다.
함께하는 일, 나아가 ‘함께 사는 일’은 지극히 거룩한 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하면, 함께 살고 싶어지는 법이죠.
사랑의 열매는 함께 사는 일이죠.
‘삼위일체 하나님’ 이 교리가 주는 중요한 교훈 한 가지는,
그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일체(一體)!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제대로 믿기만 하면, 그 인생, 그 교회는 자연스레 일체를 이루어가게 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똘똘 뭉쳐 한 몸을 이루어 사는 교회야말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째로 믿고 있다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는 말 안에서 아직도 딱딱한 교리를 느끼십니까?
오늘 4본문을 반복해서 읽어봅시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 이름에서, 그 알맹이에서 아주 단단하고도 아주 보드라운 ‘사랑’의 기운이 느껴질 것입니다.
[나머지]
* 말씀∼빛∼생명∼
오늘 구약본문인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하나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생명을 낳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따르면,
말씀이신 하나님, 빛이신 하나님, 그 분으로부터 생명이 시작됩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2.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 생명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작은 것도 소중한 법입니다.
생명은 거룩한 법입니다.
** 쉼(안식)
오늘 구약본문에서 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주제는 쉼(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은 쉬셨습니다. (2:2)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2:3)
사람도 짐승도 그날은 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습니다.(출애굽기 20:8-11)
당신께서 낳으신 생명이 생명의 거룩한 빛을 잃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 뜻’
역사를 보는 눈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것처럼, ‘하나님 뜻’을 보는 눈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다보면 하나님 뜻이 너무 여러 가지가 되어버리고, 심지어 심하게 상충(相衝)할 수도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했는데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다투는 과정에서 힘센 사람들을 중심으로 크게 두 패로 나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비등한 두 패로 나뉘어 교회가 쪼개질 정도로 다툽니다.
세력싸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입니다.
피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진이 다 빠지고 나서야 모두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참 뜻은, ‘하나님 뜻’을 그런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은 어느새 내 뜻, 내 욕심으로 둔갑해버리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모두가 신뢰할만한 ‘하나님 뜻’은 성경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말씀도 해석에 따라, 각자가 이해한 하나님의 뜻이 상충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돌아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드러난 ‘하나님 뜻’은 무엇일까요?
①하나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창세기 1:26-27)
지금 우리가 탐욕과 다툼을 멈추고 깊이 묻혀있는 사랑을 발현시켜 마침내 삼위하나님처럼 똘똘 한 몸 되기를 원하십니다.
②사람과 동물들에게 식물(植物)을 먹을거리로 주신 것입니다.(창세기 1:29-30)
지금 우리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멈추고 더불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③사람이 만물을 다스리게 맡기신 것입니다.(창세기 1:26, 28, 시편 8:6, 8)
지금 우리가 자연을, 만물을 낳으신(지으신) 어버이(주님) 마음으로 보살피기를 원하십니다.
④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것입니다.(고후 13:11, 13, 마태복음 28:19-20)
우리가 삼위하나님 이름으로 전도하고 세례주고 ‘하나님 뜻’(말씀)을 가르치고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 6.15 공동선언
오늘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이 만나 맺은 6.15남북공동선언 1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남과 북이 평화로운 통일로 한 발짝 내디디려 애쓴 역사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하나 없는 우리 하나님의 똑같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함께 살려 애쓰는 일을 삼위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14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6.15 공동선언에서 또 한 발짝 내딛지 못하고 자꾸 뒷걸음만 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번 더 기도해야겠습니다.
6.15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지금 내가,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리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말씀동시] 모든 민족 제자로 삼다 (이소현 지음. 성실교회학교 4학년. 『성실문화』79호)
모든 민족 동생으로 삼듯,
모든 민족 제자로 삼아라.
모든 민족 친구로 삼듯
모든 민족 제자로 삼아라.
모든 민족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말씀시조] 마태복음 28:16-20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79호)
갈릴리 동산에서 하직인사 올릴적에
열한제자 파송하신 예수님의 약속말씀
가르쳐 지키게하라 나너희를 지키리
[말씀한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79호)
天地諸權已與我 (천지제권이여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으니
爾往天下民爲第 (이왕천하민위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
槿邦北域是地極 (근방북역시지극) 무궁화 나라 북녘, 여기가 땅 끝이다
主常偕汝到世在 (주상해여도세재)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있으리라.
[말씀서예] 시편 8:1, 9절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79호)
[말씀노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홍의종 지음. 『성실문화』79호)
[본문] (마태복음 28:16-20)
[노랫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해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대사명이 나온다. 19-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가사로 담았다.
[악보] (2014년 4월 17일 지음, 음원은 다음까페 ‘성서일과사랑방’에 있습니다)
[시편송서(詩篇誦書)]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79호)
(※ 천자문 독송가락, 전래 자장가 가락으로)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 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다함께]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말씀동화] 별에서 온 진딧물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봉성리 수도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프란치스꼬 수사님이 오늘도 마당을 쓸며 ‘백만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네요.
수도원 마당이 아침 세수하는 사이에 수도원 아이들이 우르르 진돗개 몽이를 산책시키러 나갑니다.
몽이는 10년을 하루같이 누빈 동네길이 훤합니다.
좁다란 고갯마루에서 얼른 왼쪽 산비탈을 오릅니다.
그러더니 냉큼 풀숲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네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습니다.
아마 자기들이 변소에 앉아 똥을 누는 모습이랑 많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곁에 있던 개똥쑥이 몽이의 구수한 똥을 먹고 불쑥 한 뼘이나 키가 자랍니다.
볼일을 마치고 나서 다들 한바탕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와 헐떡헐떡 몽이에게 밥을 줍니다.
몽이가 밥을 먹고 물을 먹는 사이에 눈이 밝은 소현이가 몽이를 유심히 살피네요?
머리도 살피고, 귀도 살피고, 옆구리도 살핍니다.
무슨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는 듯, 요리조리 살피는가 싶더니,
“찾았다!”
소현이의 눈도 입도 동그래집니다.
영구랑 나리도 얼른 달려가 살피네요.
동그란 소현이 눈매가 순식간에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요 녀석, 요 뱀파이어, 드라큘라 찜쪄먹을 녀석!”
소현이가 도끼눈을 뜨고 체포한 녀석은 다름 아닌 진드기입니다.
나리언니도 달려들어 함께 진드기를 떼어내기 시작합니다.
몽이 몸에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진드기가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진드기인가 봅니다.
영구오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네요?
영구는 개털 알레르기 때문에 진드기 체포 작전에는 합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소현아, 무슨 진드기가 이렇게 동글동글하고 뚱뚱해? 색깔도 빨갛지 않고 회색빛인데?”
“응 언니, 그건 진드기가 우리 몽이 피를 하도 많이 빨아먹어서 이렇게 된 거야.”
진드기박사 소현이가 또랑또랑 흥분해서 대답합니다.
한걸음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영구가 한마디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진드기를 만드신 걸까?”
“맞아, 진드기는 딱 드라큘라 같잖아. 드라큘라는 우리 예수님이랑 딱 반대잖아. 예수님은 우리 모두 영생하기를 바라시며 살과 피를 다 주시잖아. 그런데 드라큘라는 자기 혼자 영생하려고 남의 피를 마구마구 먹어대잖아! 요 진드기 녀석도 딱 드라큘라 같아. 우리 몽이 피를 빨아먹어도 적당히 먹고 말아야지, 제 몸의 열 배, 스무 배도 넘게 뚱뚱해질 정도로 한없이 먹어대는 요 탐욕스런 녀석!”
소현이는 진드기 박사일 뿐 아니라 만물박사입니다.
영구가 다시 중얼거립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진드기 같이 못된 녀석을 만드신 걸까?”
진구의 질문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거립니다.
그 때 늦잠꾸러기 선구가 어슬렁거리며 나와서 한마디 거드네요.
“내 생각에는 진드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거 같지 않아. 저 녀석은 돌연변이가 틀림없어. 수사님께 들은 건데, 원래 에덴동산에서는 모두 식물만 먹고 살았었데. 창세기 1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랑 동물들에게 먹을거리로 주신 것이 식물이었거든. 그리고 자기 먹을 만큼만 먹고 배부르면 그만 먹었지. 과식해서 배탈 나고 그러지도 않았데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에덴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온갖 탐욕이 스물스물 몸에 들어온 거야. 그 바람에 동물들도 서로 잡아먹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상이 된 거지. 우리 몸의 세포도 적당히 살면 죽어서 다음 생명이 그 뒤를 이어가며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인데, 암세포 같은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몸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져버리는 거지. 암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해가는 욕심꾸러기거든. 이 진드기 녀석처럼!”
“정말 제대로 알고 있구나? 그래 맞아, 우리 진딧물들도 원래는 자기 먹을 만큼만 먹고 만족하도록 창조되었단다.”
어라? 이건 뭐지?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람?
수도원 아이들이 모두 깜짝 놀라 두리번거립니다.
“나야 나, 나 진딧물, 마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원(原)진딧물이야!”
소현이도 영구도, 나리도 선구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합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갑자기 우리 수사님 애창곡 백만송이 장미가 들려오네요?
“어라? 이건 프란치스코 수사님 목소리가 아닌데? 뭐지? 도대체 이건 뭐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노랫소리가 계속 들려서 수도원 아이들은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찾아가다가 그만 깜짝 놀랍니다.
수도원 마당에 핀 개똥쑥에서 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동그란 착한 눈을 뜨고 살피니 드디어 보입니다, 보여!
콩알 반쪽보다도 더 작은 진딧물 한 마리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진딧물이 말을 다하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래그래 많이 놀랐지? 놀랐을 거야. 난 너희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머나먼 별에서 온 별 진딧물이란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넘고 공간을 넘고 생각을 넘어 온, 에덴동산의 원(原) 진딧물이야. 물론 하나님께서 보내셨지. 원래 우리 에덴의 모든 생명체들은 아담과 자연스럽게 마음의 대화를 나누었단다. 딱 지금처럼 말이야.”
수도원 아이들은 입을 딱 벌리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별 진딧물의 이야기를 듣기만 합니다.
“그리고 아까 선구가 한 말처럼, 원래 우리 진딧물들은 식물의 진액을 넘치도록 먹지 않고 딱 배부를 만큼만 먹고 만족했었단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곳곳에서 돌연변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지. 진딧물들도 식물의 진액을 넘치도록 먹고 또 먹어서 식물을 말라죽게 만들 정도로 그런 욕심꾸러기들로 타락해 갔지. 그러던 어느 날 드라큘라가 흘린 핏방울 세례를 받은 타락한 진딧물 한 마리가 순식간에 찐드기로 변신을 해버린 거야. 전혀 종류가 다른 놈으로 변신한 진드기는 식물의 진액이 아니라 동물의 피를 빨기 시작했지. 그렇게 수백, 수 천 년이 흐르면서 제 몸의 수십 배나 되는 피를 빨 정도로 타락하게 되었고, 세상이 점점 탐욕으로 물들어가면서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진드기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급기야 살인진드기로까지 무한변신을 하기에 이른 거란다.”
넋 놓고 별 진딧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서로 마주봅니다.
서로 마주보며 눈만 껌뻑거립니다.
“그래,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거냐고? 지금 너흰 그게 궁금하지?”
‘아니 세상에,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거지?’
별 진딧물은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줄 아나 봐요?
“하나님께서는 몇 해 전부터 계속해서 에덴의 원 생명체들, 너희 표현식으로, 별 생명체들을 보내셨단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보이지 않았지. 그러나 너희는 수도원 아이들이라 역시 다르구나. 옹달샘처럼 맑은 영적 상상력과 신령한 말씀이 가득 담겨 있어서 그런지, 과연 너희는 우리 에덴의 원 생명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도 있구나!”
“그래, 그건 그렇고, 왜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신 거냐?”
“아, 그건, 이대로 가다가는 너희들의 욕심이 지나쳐 지구마저 삼켜버리고 말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신 거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뒤로도 끊임없이 핵발전소를 만들려고만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양송전탑을 세우려드는 것을 보시고 마침내 결심을 하신 거지. 먹어도 먹어도 배고파하는 걸귀(乞鬼) 같은 세상, 드라큘라와 암세포를 닮아가는 지구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시려는 것이지.”
별 진딧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은 문득 며칠 전 기남이 삼촌, 승화 이모 댁에서 본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났어요.
늘어나는 인구수를 열차 크기, 열차 에너지에 맞게 줄이려고 무시무시한 살상극을 벌이던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바로 그 못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사님들께 들은 말씀도 기억났습니다.
지금 세상의 생물 멸종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사람들의 무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걸귀 같은 세상, 살인 진드기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별 진딧물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지난 주 화요일, 경기도 일산에서 일어난 용오름 때 나는 미션을 포기하고 용오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단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너희 같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한 번 더 여기 머물렀는데, 오늘 너희를 만나서 정말 기쁘구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려는 말씀은 딱 하나야, 바로 창세기 1:1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이란다. 너희는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읽고 또 읽고 하나님의 마음이 들릴 때까지 읽고 묵상하기 바란다.”
“그런데 별 진딧물아, 이왕이면 말 나온 김에,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알맹이 마음이 뭔지 좀 알려주면 안 될까? 네 말 듣다보니까 우리 마음이 급해져서 그래. 쫌만 알려주라!”
아이들의 부탁에 별 진딧물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엽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주 단순하고 쉽단다. 창세기 1, 2장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은 이거야.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낳으신 것이니 다 거룩하고 소중하다. 그래서 생명들은 모두 함께 어울려 살아야 마땅하다. 서로 약육강식(弱肉强食) 즉 약한 자를 죽여 그 고기를 강한 자가 먹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고기 먹는 것도 점점 줄여야 한다. 고기 맛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선물, 즉 식물들의 참맛을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야 한다. 걸귀처럼 돈을 긁어모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 하루 먹고 남은 것은 그날 못 먹은 이들에게 나눠줄 줄 알아야 한다. 내일 너희가 먹을 먹을거리는 옹달샘처럼 계속 솟아나고 있으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한주간의 이렛날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 이처럼 너희의 몸도, 마음도, 배도, 욕심도 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너희는 함께 더불어 사는 에덴의 몸과 마음을 되찾게 될 것이다. 바로 이거야!”
“이레는 쉬는 날? 그럼 ‘여호와 이레’가 바로 그건가?”
상상력이 풍부한 영구가 기발한 생각을 해냅니다.
그러자 별 진딧물이 깔깔 웃습니다.
“이레는 일곱이라는 뜻이지? 그런데 ‘여호와 이레’의 뜻과도 통하는구나! 하나님께서 너희를 살리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두신 안식일 정신이니까 말이야.”
걸귀 같은 세상, 살인 진드기 같은 세상이 어떻게 하면 다시 에덴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맑디맑은 옹달샘 같은 수도원 아이들을 만난 별 진딧물의 마음은 샘물처럼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별 진딧물을 보내신 하나님도 행복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수도원 아이들은 몽이를 괴롭히는 진드기들도 별 진딧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애창곡인 말씀노래, ‘이사야의 꿈’을 목소리 높여 힘차게 부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6-9)
[이정훈 지음. 2014년 6월 15일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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