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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문화 응용하기/본문묵상

신정절(왕국절) 1주 (2017년 8월 27일 주일) 예배준비 노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로마서 12:2)

 

[성서일과 4본문]

(출애굽기 1:8-2:10)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9. 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10.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

11.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강제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다.

12.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그 수가 더욱 불어나고, 자손이 번성하였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몹시 싫어하였고,

13. 그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이집트 사람들이,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이나 밭일과 같은 온갖 고된 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므로, 그들의 일은 매우 힘들었다.

15.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16.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18.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 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19.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20. 그래서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21.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22. 마침내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 아이들만 살려 두어라."

2:1.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

3.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6.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7. 그 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8.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왔다.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

10. 그 아이가 다 자란 다음에, 그 여인이 그 아이를 바로의 딸에게 데려다 주니, 공주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공주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졌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다.

 

(시편 124)

1.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2.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에,

3. 원수들이 우리에게 큰 분노를 터뜨려서,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켰을 것이며,

4. 물이 우리를 덮어, 홍수가 우리를 휩쓸어 갔을 것이며,

5. 넘치는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여라.

7.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 났다.

8.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로마서 12:1-8)

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3.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4.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서로 지체입니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7.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8.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성서일과 4본문 묵상]

오늘 성서일과 본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예배공동체, 교회입니다.

 

구약,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였다”(출애굽기 2:9)

시편,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시편 124:7)

서신서,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서 12:1)

복음서,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복음 16:18)

 

오늘 요절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입니다.(로마서 12:2)

 

 

[구약과 시편본문 정리 (출애굽기 1:8-2:10 / 시편 124)]

오늘 구약본문은 모세의 탄생과 구원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천리(天理)를 거슬러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합니다.

 

그들이 강해지지 못하게,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됩니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더 강해지고

모두 떠나게 되니 말입니다.

 

죽이려던 아기가 오히려 출애굽의 지도자가 됩니다.

오히려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어 바로의 왕궁에서 자라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대강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출애굽기의 하반부,

즉 십계명을 받는 출애굽기 20장 이하는 주로 예배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 앞부분의 알맹이 역시 예배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그 가장 기본인 예배 말입니다.

 

출애굽의 동기는 이집트 왕 바로의 핍박과 백성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3:7)

그런데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 예배입니다.(3:12,18, 4:23, 5:1,8,17)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출애굽기 4:23)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는 것을 깨닫고 드리는 감사의 표입니다.

이건 제물 바쳤으니 먹을 것을 달라는 이방제사와 다릅니다.

오늘 아기 모세가 물에서 건져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미의 젖을 먹는 장면에서

이미 예배의 시작을 봅니다.(마치 세례와 성찬의 기미를 보는 듯합니다.)

 

오늘 시편본문은 구약본문의 응답찬송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어려울 때 도우시는 주님께 대한 감사노래입니다.

특히 4-5, 물에서 구원받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 시의 주제는 마지막 8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주님과의 관계말입니다.

 

 

[서신서와 복음서본문 정리 (로마서 12:1-8 / 마태복음 16:13-20)]

오늘 서신서본문의 대 주제는 예배로서의 삶입니다.

1절을 주제로 2-8절이 그 지침으로 보입니다.

특히 3-8절은 바울의 교회관 요약입니다.

그 핵심은 한 몸사상입니다.

 

지체마다 서로 다른 믿음의 경험들은(3믿음의 분량”, 6믿음의 정도)

자칫 삐걱이며 불화의 소지가 될 수도 있지만,

예배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는 법입니다.

예배에서 제대로 한 몸을 이루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예배입니다.

 

다시 보아도 1절이 매우 강렬합니다.

그만큼 하나님 사랑의 강렬하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의 몸은 문자대로는 각자의 몸이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한 몸됨까지 바라보게 합니다.

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몸이 모여, 마침내 모두가 하나 된 참 교회 말입니다.

 

우리가 한 몸 되어 예배할 때,

그게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이 됩니다.(1)

이게 가장 합당하고도 영적인 예배입니다.

 

(1절 끝을 새번역은 합당한”, 개역개정은 영적으로 번역합니다.

희랍어 사전에 로기켄(로기코스)’는 첫 의미가 rational이고, 둘째 의미가 spiritual입니다.)

 

오늘 복음서본문은 베드로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예루살렘 대장정의 시작입니다.(6:13-20:34)

오늘 본문의 알맹이는 교회(에클레시아)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반석위에 세우셔서 천하무적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18)

그런데 여기서 반석이란 베드로, 즉 예수님의 정체를 제대로 깨친 고백이었습니다.(16)

 

교회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갈 때 든든한 반석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천하무적이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가며 한 몸 되어가는 법입니다.)

죽음 권세를 움켜쥔 악마가 벌벌 떠는 부활권능의 교회 말입니다.(18)

 

 

[정리]

오늘 한국교회는 죽음의 힘이 벌벌 떨기는커녕 죽음의 힘 앞에서 벌벌 떠는 꼴입니다.

, 권력, 명예 등 온갖 탐욕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그 증거입니다.

탐욕은, 우리가 이미 다 알다시피, 죽음 공포의 반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딱 이렇게 죽음의 공포 앞에 벌벌 떠는 전형이

바로 구약의 바로입니다.

그 탐욕 덩어리 바로를 무너뜨리는 상징이 아기 모세입니다.

 

모세는 마치 구원방주를 연상케 하는 바구니를 타고 살아납니다.

모세는 마치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풍요의 상징 이집트를 등지고 떠나갑니다.

당장 닥치는 온갖 광야의 위협을 무릅쓰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갑니다.

그 끝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떠나 마침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차오르는 곳!(로마서 12:2)

거기가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의 생명 양식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제대로 한 몸 되어가는 길입니다.

서로 닮은 구석 하나 없어도 시나브로 하나 되어가는,

강렬한 사랑의 극치, 한 몸 되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예배여야 죽음권세들이 벌벌 떱니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예수님을 제대로 깨치고, 마침내 (한 몸 되어)

천국열쇠 받은 교회 말입니다.(마태복음 16:19)

 

 

[나머지]

 

* 교회, 에클레시아(마태 16:18)

오늘 복음서본문의 교회4복음서 전체에서 여기와 18:17절 딱 두 차례 나오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의 어원은 밖으로 불러모으다라는 뜻으로서, ‘죄악세상에서 불러 모아진 성별된 자들의 모임입니다.(네이버 지식백과사전) 그런데 이 그리스어 에클레시아의 원래 쓰임새는 고대 그리스 민회(民會)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민회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교회가 한몸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짚입니다.

 

** “죽음의 문들”(마태 16:18)

새번역은 죽음의 문으로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죽음의 힘으로, 개역개정은 음부의 권세로 번역합니다. 참고로 유진피터슨의 메시지지옥의 문으로 번역했습니다. 음부, 지옥, 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서 죽음의 총체를 상징합니다. , 대문이란 권세 즉 힘을 뜻합니다. 물론 지옥문이 아무리 크고 단단하다 해도 천국문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천국문에 해당하는 교회의 지금 상태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정체를 제대로 깨쳤는지, 바울의 꿈처럼 주님의 몸 교회가 한 몸 되어가고 있는지...

 

*** 칠석(七夕) 즈음에

마침 내일(월요일)이 칠석입니다. 마치 견우직녀 만나듯이, 사랑하면서도 미움다툼시기질투오해 때문에 멀어진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이에서 교회는 오작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때마침 신정절(왕국절,창조절) 시작입니다. ‘정의, 평화, 하나님의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사위어가는 자연과 이 사회 구석구석에 창조의 기운 이어지는 오작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 신정절(왕국절,창조절)이란? (성실문화92호 지침서에서)

(1) 신정절 출현

예배력(교회력)은 교회 역사상 지금껏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었고 완성된 적도 없었다. 아니 예배력이란 아예 처음부터 완성될 목적으로 출발한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배력은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 중이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과정에서 쉼 없이 계속 발전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가장 괄목할만한 예배력 발전상을 이야기한다면, 먼저 1970년대부터 통용되기 시작하여 전 세계 초교파적으로 상용(常用)하고 있는 성서일과제정일 것이며, 또 한 가지를 들자면, ‘신정절제정일 것이다.

(2) 신정절이라는 용어

신정절(神政節)이라는 이름은 제임스 F. 화이트의 기독교예배학입문(엠마오. 1992) 68쪽에 나오는 ‘Kingdomtide(왕국절)’을 장신대 정장복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성실문화에서는 감리교회의 왕국절과 장로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창조절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검토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단 신정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3) 신정절 제정 역사

신정절(특히 왕국절), 1920년 이후 미국 개신교가 교회력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던 과정에서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인 아담스(F.W. Adams) 등의 노력에 의하여 제정되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1956년 스코틀랜드 출신 목사 알렌 맥아더 등이 이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예배학 서적에는 신정절의 존재조차 소개되지 않고 있다.

(신정절을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는, 김소영, 현대예배학, 대한기독교서회, 1993, 183, 김폴린, 예배법, 보이스사, 1987, 378-379, 박근원, 오늘의 예배론, 대한기독교서회, 1992, 172, 화이트, 기독교예배학입문, 정장복역, 엠마오, 1992, 68, 곽전태, 기독교대한감리회 예배서, 기독교대한감리회, 1992, 176, UMC, The Book of Worship, U.M.P.H, 1964, 61, George. M. Gibson, The Story of the Christian Year, Nashville:Abingdon, p.217, A. McArthur, The Christian Year and Lectionary Reform., London:SCM Press, 1958, 1968 등이 있다.)

(4) 신정절의 가치

신정절은, 복음의 가현화(假顯化)를 막고 교회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게 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긴 기존의 성령강림절기 기간을 둘로 나누어 예배교육 설계에 활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 가치가 돋보인다. Gibson이 위의 책 198쪽에서 신정절의 의미와 가치를 논한 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교회력 가운데서 특히 신정절은 복음서와 서신서에 함축되어 있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을 우리 속에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노동의 문제, 인종차별 문제, 이웃사랑 문제, 에큐메니칼 문제 등등이다.’

 

(5) 왕국절과 창조절의 차이점

신정절, 즉 왕국절과 창조절은 이상의 공통점과 동시에 몇 가지 차이점을 갖는다. 먼저 창조절의 경우 왕국절과 달리, 그 시작이 9월 첫 주일부터라는 점, 그리고 한 해 예배력의 시작이 대림절(대강절)부터가 아니라 창조절부터라는 점이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의 호칭 순서로나, ‘창조를 모든 것의 기점으로 잡는 성경의 순서로서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는다.

(성실문화에서는 신정절을 지키는 것이 신앙교육상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생각하여, 신정절을 처음 제정했던 왕국절 전통을 살려, 8월 마지막주일부터 대림절 전까지로 기간을 잡았다.)

또 한 가지의 차이점은 이 두 절기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창조절이 성부하나님의 절기인 것과 비교하여 왕국절의 경우는 성자하나님의 절기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성부)하나님의 나라와 차별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교리상 삼위일체력(창조절)’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앞서 소개한 김폴린 교수의 예배법에 실린 다음과 같은 왕국절 소개가 참고할 만하다.

왕국절 :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지키는 절기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란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또 그 사랑의 왕국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것들이다. 곧 인간의 형제 됨과 국가 간의 평화와 인간의 자유와 영생 같은 문제들에 관한 것들이다. 이 절기에는 녹색을 사용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성장과 활동을 상징한다..’

 

 

 

 

 

 

[말씀동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김민서 지음. 세움교회 초등부 6학년. 성실문화92)

예수께서 물으셨지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였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지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어

이것을 알려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고

 

좋은 믿음을 갖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해

지혜를 구하면 분명히 알게 하실 거야.

 

 

 

 

[말씀시조] 라암셋과 비돔 건설 (이정훈 지음. 성실문화92)

라암셋과 비돔 건설 강제노동 힘겨워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 생명이 태어난다

강물에 버려졌어도 살은 아기 모세여

 

 

 

 

[말씀한시] 바로의 공주까지도 사용하신 하나님 (오세종 지음. 성실문화92)

埃及憂惶以色列(애급우황이색렬) 애굽인은 이스라엘을 몹시 싫어해서

合土陶甎使勞辛(합토도전사로신) 흙을 이겨 벽돌 만드는 힘든 노동을 시켰다

法老王命收生婆(법로왕명수생파) 산파들에게 바로의 왕명을 내리기를

若爲出男皆戮殘(약위출남개륙잔) 아들이어든 모두 죽여버려라

甚加逼迫彼愈繁(심가핍박피유번) 핍박을 받을수록 저들은 더욱 번성

再勅諸子當歿盡(재칙제자당몰진) 또 다시 조칙 내려 사내아이는 남김없이 모두 죽일 것

利未之女生健兒(이미지녀생건아) 레위족의 여인이 건강한 아들 낳아

爲之葦箱投河濱(위지위상투하빈) 갈대상자에 넣어 물가에 띄웠다

公主臨水將沐浴(공주림수장목욕) 공주가 목욕하러 강가에 나왔다가

發見奇箱取育尊(발견기상취육존) 기이한 상자를 보고 데려다가 귀하게 길렀다

引用讐女導選民(인용수녀도선민) 백성을 구원하시려 원수의 딸까지도 사용하신 하나님

神妙莫測歎服讚(신묘막측탄복찬) 신묘막측이라. 탄복하며 찬미합니다.

 

 

 

 

[말씀서예] 출애굽기 1:12 (오세주 작품. 성실문화92)

 

 

 

 

 

[말씀노래] 베드로의 고백 (이정훈 작사, 아리랑가락. 성실문화92)

[본문] (마태복음 16:13-20)

[노랫말]

1. 빌립보 가이사랴 예수님 질문, 사람들은 인자를 누구라느냐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중 하나라 말들합니다

2. 그러면 너희들은 누구라느냐, 인자가 도대체 누구겠느냐

   시몬이 대답하길 그리스도요, 선생님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3. 바요나 시몬아 복스럽구나, 나는너를 베드로라 부르겠노라

   이반석 위에다가 내교회 세워, 지옥문도 벌벌떠는 권세주리라

 

[해설]

본문을 성실교회 이정훈 목사가 7.5조로 다듬어서 아리랑 가락에 얹었다.

 

[악보] 베드로의 고백 (이정훈 작사, 아리랑 가락)

 

 

 

 

[시편 송서(誦書)] 시편 124 (이정훈 다듬음. 성실문화92)

(천자문 독송가락, 즉 전래자장가 가락으로)

 

1. 이스라엘은- -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우리 편--) 계시지 아니하-- 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다함께]

8. 우리--- 도움---, 천지를 지으신 여호---,

(천지를 지으신 여호---), (여호와)(()) 이름에 (이름에) ∼∥

 

 

 

 

[말씀놀이] (이정훈 지음)

신정절(왕국절) 1, 2017827(성서일과 본문 낱말 맞추기)

출애굽기 1:8-2:10, 시편 124, 로마서 12:1-8, 마태복음 16:13-20

 

 

 

 

 

 

 

 

 

 

 

 

 

 

 

 

 

 

 

 

 

 

 

 

 

 

 

 

 

 

 

 

 

 

 

 

 

 

 

 

 

 

 

 

 

 

 

 

 

 

 

 

 

 

 

 

 

 

 

 

가로열쇠

신약성경에 많은 동명이인이 있는 이름이다. 예수님의 애제자, 베드로의 아버지, 바울과 바나바를 갈라서게 만든 마가라고도 하는 이(15:36-41) 등이 있다. 오늘 본문의 인물은 예수님 오실 길을 닦은 세례자로서, 못된 왕을 비판하다가 왕비의 간계로 처형당한 요단강 예언자다.(마태복음)

요나의 아들’(16:17) 혹은 요한의 아들’(1:42; 21:15)이란 뜻으로서, 사도 베드로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여기서 요나는 요한의 축약형으로 보인다.(마태복음)

이름 뜻은 반석인데,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로서 안드레와 형제간이다. 그의 본명인 시몬 대신 예수님이 아람어로 지어주신 이름인 게바의 헬라어 번역이다.(아람어는 수리아 즉 시리아어로서,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다.) (마태복음)

이름 뜻은 아름다움이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히브리 산파 중 한 사람이었다. 히브리인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바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히브리 남아를 구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1:15-21). (출애굽기)

유대 예언자로서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이 있다.(9:1), 하나님께서 결혼도 하지 말고 자녀도 두지 말라고 하셨다.(16:2)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침없이 전하고 그것 때문에 큰 핍박을 받았다. 이름 뜻은 야훼께서 높이신다”, 또는 야훼께서 기초를 놓으신다이다.(마태복음)

 

세로열쇠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로서 여호와의 돕는 자란 뜻으로 풀이한다. 성경에는 약 8명의 동명이인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라헬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11번째 아들이 있고(17세에 형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서 30세에 이집트 총리대신이 되고, 49세에 형들을 다시 만나는 등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동명이인이 예수님의 아버지다. 그리고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 자기 무덤에 예수님 시신을 모셨던 사람도 동명이인 중 하나이다.(출애굽기)

이름 뜻이 큰 집일 정도로 왕궁이 매우 큰 이집트 왕의 통칭인데, 성경에 기록된 ○○12명이다. 이 명칭(직책명)은 단독으로 쓰인 경우도 있고, ‘바로 느고처럼(왕하 23:29; 46:2). 개인 이름과 결합되어 쓰인 경우도 있다.(출애굽기)

이 지명(地名)의 뜻은 (Re, 애굽의 태양신)를 낳았다는 뜻이다. 카이로 북방 120지점의 이집트 북쪽 국경 지대(팔레스타인 남부 지역과 가까움)에 있는 성읍으로서 이집트에 이주한 야곱 일가가 정착한 곳인 고센의 다른 이름이다.(47:11), 훗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출발지가 되기도 했다(12:37; 33:3, 5). 초기에는 소안’(13:22; 78:12)으로 불리기도 했다. 라암세스 2세는 이곳에 국고성을 짓고 요새화하였다(1:11). (출애굽기)

가로지르다’, ‘건너가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마르나 서판에서 강을 건너온 자를 가리키는 하비루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큰강 유브라데를 건너 이주해왔음을 시사하는 말로 보는 견해도 있다.(14:13; 39:14; 5:3; 7:16), 그래서 주로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 쓰인다. 이 단어는 가나안이나 블레셋 등 비 이스라엘 족속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는 다소 배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순수한 자신의 혈통을 자랑할 때 이 명칭을 사용하곤 하였다(고후 11:22; 3:5). (출애굽기)

야훼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이름 뜻을 가진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로서 아합왕과 아하시야왕 시대에 활동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던 때에 참된 예배를 회복시켰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했었다.(9:4) 말라기 4:5절에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다시 보내실 것이라 하셨으며, 마태복음 11:14절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바로 그 사람 ○○○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마태복음)

(*독일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대한성서공회), 성경낱말사전(성도출판사), 인터넷 사전 등을 참고하고 부분 인용했습니다.)

 

 

 

 

[말씀동화]

 

 

[말씀동화] 극단 노란리본을 아시나요?

옛날옛날 한 옛날에, 이것은 호랑이가 머리에 노란리본 꽂고 연극연습 하던 시절 이야기예요.

 

노란 리본을 옷깃에 꽂은 아줌마들이 오랜만에 나들이를 합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경기도 양평입니다.

양평에 있는 양평고등학교 강당에서 공연을 하러 갑니다.

주일 오후 4시에 시작하는 공연입니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연극을 합니다.

아줌마들이 만든 연극 이름은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입니다.

그리고 극단 이름은 노란리본입니다.

 

노란리본 극단은 주로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입니다.

세월호 생존자 엄마들도 같이 합니다.

엄마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참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마음 속 상처들이 아물어 갑니다.

 

 

큰 박수를 받고 울고 웃으며 무대를 내려옵니다.

양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엄마들이 다음 작품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우리 교회 예배 본문말씀이 출애굽기 18절부터 210절까지였어요. 이집트 미친 파라오가 이스라엘 신생아들 가운데서 남자아기들을 죽게 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강물에 던져 죽이는 거였어요. 자식이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 때문에 그 말씀 읽기가 퍽 힘들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읽고 묵상했어요. 그런데 아기 모세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는 이야기예요. 이 성경말씀을 좀 각색해보면 어떨까요?”

 

다들 좋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모세이야기를 제안한 엄마가 계속 말합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안 나오지만, 대부분 아기엄마들은 유가족인데, 모세엄마는 생존자 가족이니까, 모세엄마 역할은 우리 생존자 엄마가 맡는 게 어떨까요?”

 

이 말을 들은 생존자 엄마가 고개를 숙입니다.

잠깐 생각하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며칠 고민해볼게요.”

 

또 다른 엄마가 말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 잘 알아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유가족 엄마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파라오의 명령이 무서워서, 가족들이 아기를 물에 던져야 했으니까요.”

 

이 이야기에 모든 엄마들이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집니다.

 

 

처음 모세 이야기를 꺼낸 엄마 눈빛이 환하게 빛납니다.

 

모세엄마는 표정 연기가 정말 중요해요. 석 달 동안이나 정든 아기를 물에 떠나보낼 때의 표정과 집에 돌아와 가만히 방에 앉아있는 넋 나간 표정, 그리고 딸이 달려와서 하는 이야기 듣고 어리벙벙한 표정, 아기모세를 건져낸 파라오의 공주에게 달려가면서 점점 상기되는 표정, 그리고 공주에게 도착해서 표정관리하려 애쓰는 표정, 그리고 아기모세를 품에 안고 돌아오면서 공주의 모습이 안 보이는 곳에 다다르기 무섭게 얼른 젖부터 물리며 짓는 그 표정까지요!”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거듭니다.

 

이번 연극은 아기모세에게 젖 먹이는 장면이 제일 중요해요!”

 

그러자 생존자 엄마가 속삭이듯 말합니다.

 

이스라엘 유가족 엄마들이 모세엄마가 젖먹이는 것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엄마들이 한사람씩 대답합니다.

 

아마 부럽고 또 기뻤을 거예요. 그런 눈물이 줄줄 흘렀겠죠.”

 

아마 어떤 엄마는 젖을 짜서 강물에 흘려보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팽목항 부둣가에 아이가 좋아하던 초코파이 가져다 둔 것 처럼요.”

 

혹시 그렇게 강물 속으로 스며든 엄마 젖 먹고 죽은 아기가 되살아날 수는 없을까요?

 

엄마들은 차창 바깥 풍경만 바라봅니다.

남한강 푸른 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엄마 한사람이 밝은 목소리로 제안합니다.

 

이번 작품은 아기모세 이야기로 시작하지 말고 아기모세 이야기를 끝에 하면 좋겠어요세상의 여러 엄마들이 아기에게 젖먹이는 에피소드를 모아서 재미있게 엮으면 어떨까요? 동네 아줌마들이 아기심청이 젖먹이는 장면 같은, 제자식도 아니지만 젖동냥 다니는 심봉사를 위해서 말이죠! ”

 

엄마들 눈빛이 샛별처럼 반짝입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심청이도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나잖아요? 그리고 제 자식 아닌데 젖 먹여주는 장면이 참 좋아요. 나도 평생 제일 큰 소원이 내 새끼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 해 먹이는 건데... 내 새끼가 아니더라도, 심청이 같은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밥해 먹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여태 못했을까요?”

 

노란리본 극단 엄마들 표정이 하나하나 살아납니다.

새 연극을 구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통증들이 풀립니다.

바알간 저녁노을에 젖은 노란리본이 수줍게 미소 짓습니다.

 

[이정훈 지음. 2017827일 주일 밤]